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월지 순금 장식 (문서 편집) [[분류:신라의 금제유물]][[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분류:경주시의 문화재]][[분류:동궁과 월지]] [[파일:경주 월지 순금 장식1.jpg]] [[파일:경주 월지 순금 장식5.jpg]] 월지 순금제 장신구 [[https://dmoo.tistory.com/entry/2011-059-안압지|사진 출처1 : 안압지 글/고경희, 사진/한석홍 1996, 대원사]], [[http://blog.daum.net/tasofhso/15359030|사진 출처2 : 안압지 출토 유물]] [[파일:경주 월지 순금 장식2.jpg]] 월지 금제 원형 장식 [[https://blog.naver.com/chefjhkim/220578958012|사진 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파일:경주 월지 순금 장식3.jpg]] 월지 금제 산수화무늬 장식 [[https://www.nrich.go.kr/gyeongju/scholarshipUsrView.do?menuIdx=627&idx=700022&project=2|사진 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보고서1]]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동궁과 월지|월지]](月池)에서 발견된 7세기~8세기 [[통일신라]]시대 [[순금]] 장식 수백여 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 내용 == 과거 [[안압지]]라고 불리던, [[경주시]] [[동궁과 월지|월지]](月池)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황금 장식품들이다. 정확한 수량은 알 수 없으나 발굴조사 당시 수백여 점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장식품들의 제작 연대는 7세기~8세기 무렵으로 확인했다. 최초 발굴조사 당시 경주 월지에서는 무려 1만 5천여 점이 넘는 신라시대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상]], [[숟가락]], 청동거울, [[벼루]], [[송곳]], [[가위]], 건물의 목재 조각, 심지어 유람용 배까지 별의별 유물들이 다 나왔다. 이후 지속적으로 월지를 발굴하여 2008년 기준 금속공예품 1152점, 목제품 920점, 철제품 603점, 와전류 2만 4353점, 토기류 3388점, 기타 2171점 등, 총 3만 2587점에 이르는 신라시대 유물들이 추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http://blog.daum.net/tasofhso/15359030|#]] [[황남대총]] 등 옛 신라 고분에서 발견되는 황금 장신구들이 사람이 착용하는 위세품인 것과는 달리, 월지에서 발견된 이 황금 장식품들은 주로 건물에 달았던 것이라 추정한다. 가장 호화롭게 만드는 [[궁궐]] 내에서까지 금속 장식물로 사치를 부리는 것을 경계했던 [[조선]]시대와 달리, 과거 [[신라]]시대 건축물들은 화려하게 금 장식으로 꾸몄기 때문에 햇빛이 비치는 날이면 수많은 건물들이 금빛으로 번쩍거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아예 건물 전체를 황금으로 만든 [[금입택]]도 다수가 있었다고 전한다. [[파일:경주 월지 순금 장식4.jpg]] 2019년 9월 15일자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방송에서 월지 순금 장식품들 중 [[선각단화쌍조문금박]]를 방영하여 인터넷에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s://lucyskitchen.tistory.com/2035|#]]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제작된 [[분황사]] 치미와 함께 공개된 것으로, 2.5 cm 크기 작은 금판에 [[봉황]]을 위시로 한 새모양과 각종 꽃문양을 그렸는데 육안으로는 잘 볼 수 없고 [[현미경]]을 사용해야만 볼 수 있다. 7-8세기에 만든 [[한국]]의 황금 장식품들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