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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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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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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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07
2009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5 KBO 리그 최다 안타왕

KBO 보유 기록
연속경기 최다출장
1009경기[1]


최태원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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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7번
김평호
(1990~1992)

최태원
(1993~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7번
팀 창단

최태원
(2000~2003)


신주일
(2004)
SK 와이번스 등번호 70번
강병철
(2000~2002)

최태원
(2005~2007)


김태균
(2008~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85번
백인호
(2003~2007)

최태원
(2008~2011)


신동수
(2012~2018)
LG 트윈스 등번호 85번
최인영
(2011)

최태원
(2012~2016)


한혁수
(2018)
한화 이글스 등번호 71번
김종수
(2015~2016)

최태원
(2017)


전형도
(2018~2020)
kt wiz 등번호 85번
박계원
(2014~2016)

최태원
(2018)


한혁수
(2019~202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5번
장태수
(1994~2016)

최태원
(2019~2022)


김정혁
(2023~)




파일:‘철인’ 최태원.jpg

최태원
崔泰元 | Choi Tae-Won

출생
1970년 8월 19일 (53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미성초 - 성남중 - 성남고 - 경희대[1]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2차 1라운드 (전체 3번[2],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3~1999)
SK 와이번스 (2000~2003)
지도자
SK 와이번스 1군 작전·주루코치 (2005~2006)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 (2007)

KIA 타이거즈 1군 주루코치 (2008~2009)
KIA 타이거즈 2군 작전코치 (2010)
KIA 타이거즈 1군 주루코치 (2011)
LG 트윈스 1군 팀배팅코치 (2012)
LG 트윈스 1군 작전·주루코치 (2013~2015)[3]
LG 트윈스 육성군 수비·작전코치 (2015)[4]
LG 트윈스 2군 수비·작전코치 (2016)
한화 이글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17)[5]
한화 이글스 1군 주루코치 (2017)[6]
kt wiz 2군 수비코치 (2018)[7]
kt wiz 1군 작전코치 (2018)[8]
kt wiz 1군 벤치·작전코치 (2018)[9]
삼성 라이온즈 1군 작전코치 (2019)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20~2022)[10]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대행 (2022)[11]
경희대학교 야구부 감독 (2023~)
가족
배우자 박민경, 아들 최준서[12]
종교
개신교[13]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4. 여담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image/295/2010/01/10/15.jpg}}}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2루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쌍방울 레이더스[편집]




파일: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의 최태원.jpg


성남고등학교 시절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경희대학교에 와서 실력이 성장한 선수로 볼 수 있다. 그 덕분인지 1992년 꼴찌를 해서 3장의 지명권을 쥔 쌍방울 레이더스가 1라운드에서 세 번째 선수로 그를 뽑았다. 1라운드에서 뽑힌 내야수는 최태원 외에 한양대학교 출신의 손차훈, 경성대학교 출신의 허준, 고려대학교 출신의 마해영이 있었다. 특히 손차훈은 대학 시절 국가대표 2루수 자리를 꿰찰 정도로 출중한 활약을 했는데 손차훈보다도 먼저 뽑힌 것을 고려한다면 쌍방울 스카우트팀이 최태원의 잠재력을 더 높게 본 셈이라 할 수 있다.

파일:몸을 날리는 최태원.jpg

현역 시절 쌍방울에서는 부동의 주전 2루수 겸 1번타자 역할을 했다. 매년 100개 이상의 안타를 꾸준히 때려낼 수 있는 정확한 컨택과 우수한 작전 수행 능력, 안정적인 수비를 앞세워 쌍방울 내야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키스톤 콤비였던 김호와 함께 선수단의 군기반장 역할을 했고 처절한 가난을 타개하고자 '보스' 김기태를 삼성으로 떠나보낸 뒤에는 주장 역할을 하면서 어렵사리 꾸려가던 쌍방울 선수단의 든든한 중심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사실 쌍방울 시절의 최태원을 더 빛나게 했던 것은 바로 1,009경기 연속출장[14]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기록이다. 이 기록은 쌍방울 시절이던 1995년 4월 23일 OB 베어스전부터 시작됐으며 1999년 9월 8일 LG 트윈스전에서는 당시 1위 기록이던 김형석의 622경기 연속출장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15]


2.2. SK 와이번스[편집]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1061223143628067_242.jpg



히스토리 21 최태원, 1009경기 연속 출장 '불멸의 천일야화'
팀이 SK로 바뀐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출장하는 경기마다 신기록 갱신이었는데 2002년 8월 2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1,000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세웠고 2002년 9월 8일 현대 유니콘스전을 끝으로 기록이 마감됐다.

사실 최태원의 연속출장은 기록 후반기에는 부진한데도 대타나 대수비 등의 방식으로 경기 막판에 교체되어 투입되는 등 사실상 기록을 위한 출전[16]으로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2000년까지는 규정타석을 채웠고 2001년에도 비교적 괜찮았지만, 2002년에 이르자 선수가 부진한데도 기록을 위한 출전을 하고 있다는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최상의 멤버로 운영해야할 팀의 전력에 구멍을 내는 일이므로, 당시 강병철 감독은 언제 이 기록을 끝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1,000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세운 뒤[17] 최태원에게 언제 기록을 종료하면 좋을 지 결심하라고 제안했고 최태원이 감독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하자 14경기를 더 출전시킨 후 감독이 기록을 끝냈다.

이 무렵에는 부진 때문에 1,000경기 이후의 경기들은 주로 8회나 9회에 대타, 대수비로 출전해 기록을 간신히 이어나가고 있었다.[18] 기록이 중단된 경기는 2002년 9월 9일 LG 트윈스전으로 8회까지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신언호 코치가 벤치에 있던 최태원에게 오늘은 출장이 어렵겠다고 통보했다고. 당시 최태원의 포지션 경쟁자였던 정경배는 9회가 됐는데 자신을 교체하지 않아 놀랐다고 한다.[19]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기록이 막상 끝나자 최태원은 눈물을 펑펑 쏟았는데 최태원의 말로는 강제로 기록이 중단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 감독에 대한 서운함과 미안함 등의 감정 등으로 복잡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식으로 연명하듯 출전해서 만든 기록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봐야겠지만 어쨌든 최태원의 기록은 대기록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기록 후반기의 상황 때문에 스타일이 구겨졌지만 1,009경기 전체를 놓고 보면 95% 이상은 선발 출전한 경기들이다. 최태원 이전에 606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만들었던 김인식(前 MBC 선수)도 후반기에는 그런 식으로 기록을 업데이트했다.

대기록이 중단되면서 선수 생활의 동력을 잃었던 것인지 이듬해인 2003년, 33세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했으며[20] 2004 시즌 페넌트레이스 홈 개막전이었던 4월 4일 은퇴식을 치뤘다.문학 야구장에는 그의 연속출장 기록이 적혀져 있다. 이와 관련해 1,000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달성했을 때 칼 립켄 주니어가 영상 메세지를 보내서 격려하기도 했다.


참고로 최태원의 연속출장 기록 다음으로는 김형석의 622경기[21], 황재균의 618경기[22], 이범호의 615경기[23], 김인식의 606경기, 홍현우의 574경기, 양준혁의 547경기, 이승엽의 497경기로 이어진다.

2020년 기준으로 현역 선수 중에서는 박해민이 448경기 연속출장으로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으나 타격 부진으로 5월 2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엔트리에 들지 못하며 기록이 끊어졌다. 따라서 최태원의 기록은 앞으로도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프로 첫 안타는 1993년 4월 18일 광주 해태전에서 기록했으며 이것이 쌍방울이 해태를 상대로 광주 13연패를 끊는 결승 투런 홈런이 되었다.

1,200경기를 넘게 출전했음에도 통산 홈런이 24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전형적인 컨택형 타자.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선수생활 초반에는 빠른 발로 20도루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 노릴 수 있던 기량이라 본인이 홈런만 좀 어떻게 하면 20-20은 매년 달성했을텐데 라는 푸념을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코치가 "20-20이 별거냐. 1년에 홈런 1개식 20년을 치면 그게 20-20이지."라는 드립으로 선수단과 기자단을 박장대소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 시즌까지 최태원은 정말로 매년 홈런 1개씩을 치고 있어서 기록 달성의 가능성을 높였으나 5년차인 1997 시즌 홈런 2개를 치면서 기록 달성은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나이가 들며 대부분의 타자들이 그렇듯 주력이 줄어드는 대신 근력을 늘려, 한 시즌 5개 정도는 쳐 줄 수 있을 정도로 파워가 늘었고, 위에 쓰여 있듯이 통산 20-20은 결국 달성해냈다.


파일:20170326133643_11.jpg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오랜 기간 뛰지는 못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 때부터 이어진 원클럽 플레이어였기에 은퇴 후 현역 시절 입었던 유니폼과 기념구가 인천 SSG 랜더스필드 안에 위치한 L's 갤러리[24] 레전드 플레이어 존에 진열되어 2022년 박물관이 폐관될 때까지 전시됐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최태원(야구)/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여담[편집]


  • 아들 최준서는 덕수중과 휘문고등학교를 거쳐 강릉영동대학교로 진학했으나 대학에서는 거의 뛰지 못했고 졸업 후 1년 쉰 뒤 사이버한국외국어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편입학이 아니다.) 아버지와 똑 닮은 외모로 인해 지하철에서 어느 야구팬에게 질문도 받았다고.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 안경현의 아들 안준[25], 전상렬의 아들 전형근[26] 등 휘문고에서 뛰는 야구인 2세들의 인터뷰에서 확인 가능하다. 덕아웃 인터뷰

  • 선수 시절부터 팬 서비스에 대한 미담이 매우 많다. 팬들이 방문하거나 사인 요청을 하면 아주 친절하게 응대해준다고 한다. 특히 라이온즈 TV에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팬들의 평가가 아주 좋다. 그 중에서도 퇴근길 직캠에서 강명구 코치와 더불어 참여도가 제일 높은 코치로, 그 유명한 퇴근길 참사 당시 강명구, 김민수와 더불어 적극적으로 답변한 3명이었기에 팬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27] 최고령인 김용달 코치를 퇴근길에 적극 참여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 라이온즈 TV에서 통역들의 말에 따르면 에스파냐어를 잘한다고 한다.[28]

  • 생각보다 옷을 잘 입는 편이다. 라이온즈 TV 퇴근길 직캠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선수는?'이란 질문에서 김용달 코치가 인정했다. 최훈과 콜라보를 하여 자신의 캐릭터 티셔츠를 만들기도 했다.#[29]


  • SNS를 잘 활용하는 몇 안 되는 코치이다. 올 시즌 개인인스타 계정을 열어 간간히 게시물을 올리다 2군에 내려가서는 선수들의 소식을 가까이서 전달해준다.

  • 삼성 시절 코치진 중에서 삼성 출신이 아님에도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위에 서술한 좋은 팬서비스와 원팀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가다 보니 인기가 많은 듯하다.

  • 배우 박성근과 외모, 목소리가 비슷한 편이다. 외모가 비슷하면 목소리도 비슷한경우가 많은데 이쪽도 그런듯하다.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쌍방울
111
377
.263
99
12
2
1
23
51
13
46
.313
.342
1994
113
383
.248
95
13
2
1
27
52
31
(4위)
53
.300
.339
1995
125
496
.296
147
(1위)
20
1
1
30
68
29
37
.347
.342
1996
126
449
.258
116
22
3
1
40
57
5
45
.327
.323
1997
126
477
.306
146
(4위)
30
1
2
39
68
3
57
.386
.379
1998
126
469
.288
135
22
3
4
39
65
9
46
.373
.350
1999
132
486
.239
116
19
0
2
40
60
12
60
.290
.31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133
492
.262
129
15
0
5
50
71
9
66
.323
.348
2001
133
318
.242
77
14
0
5
31
40
13
44
.333
.332
2002
121
260
.262
68
7
2
2
22
28
6
28
.327
.331
2003
33
24
.208
5
2
0
0
3
5
0
2
.292
.269
KBO 통산
(11시즌)
1284
4231
.268
1133
176
14
24
344
565
130
484
.333
.341


6. 관련 문서[편집]


[1] 체육대학 (1989학번)[2] 쌍방울이 전년도 꼴지였기 때문에 당시 규정에 의거해 1라운드에서 전체 1순위로 3명을 지명했다.[3] ~6월 14일[4] 6월 15일~[5] ~5월 23일[6] 5월 24일~[7] ~5월 10일[8] 5월 11일~6월 17일[9] 6월 18일~[10] ~7월 31일[11] 8월 1일~[12] 휘문고를 졸업했으며 강릉영동대 졸업 후 사이버한국외국어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해 뛰고 있다.[13] 참조[14] 이전에는 1,014경기였으나, 이후 기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5경기가 줄어 최다출장경기를 1,009경기로 정정했다. 기사 어떻게 된 일이냐면 5번째 경기에서 대주자로만 나서고 빠져서 인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사자들은 오류가 초반에 발견돼서 망정이지 연속출장 중반에 발견되었다면 큰일날 뻔했다며 안도했다고 한다.[15] 2021년 10월 14일 자 스포츠조선 기사에 오랜만에 전경기 출전 선수와 관련된 기사에서 이 기록이 언급되었다. 정규시즌이 마침 늦게까지 진행되다 보니 절묘한 날짜에 나온 기사로, 여전히 현역 선수 중에는 이 기록의 반의 반 정도 수준의 연속출장기록이 최다일 정도로 불멸의 기록임을 새삼 알 수 있다.[16] 일본에서도 한신 타이거스가네모토 도모아키가 막판에는 이런 식으로 연속경기 및 연속이닝 출장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지명타자가 없는 센트럴 리그 특성상 가네모토의 한 자리를 위해 다른 누군가는 영향을 받아야만 했다.[17] 위에서 설명했듯이 기록정정이 있기 전이라 실제론 995경기. 어쨌든 이후에도 더 출전한 덕에 1,000경기 연속 출장은 달성했다.[18] 심지어 2002년 8월 25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9회말 대타로 등장해 겨우 1,002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이어갔을 정도. 최태원도 이 경기 이후로는 기록 중단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19] 그도 그럴 것이 이 시즌 기록은 최태원이 정경배보다 나았다.[20] 마지막 시즌은 자신을 위해 도와준 선수단, 코치, 감독들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1군 엔트리에서 빠졌지만 선수단과 같이 동행하였다고 한다.[21] 1994년 9월 4일 군산 쌍방울 레이더스전 패배 직후 윤동균 감독의 체벌 위협에 반발하여 팀을 이탈하면서 기록이 끊어졌다.[22] 2016년 4월 30일 발가락 미세골절로 1군에서 제외되면서 기록이 끊어졌다.[23] 경기 후반에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강우콜드로 인해 교체되지 못해 기록이 끊어졌다.[24] 전신팀인 SK 와이번스부터 이어저 오는 구단 역사관으로 인천야구의 변천사와 SK 와이번스 히스토리, 레전드 플레이어존 및 우승 트러피 등이 전시되어 있다.[25] 두산 베어스에 신고선수 입단했으나 방출당했다[26] 2019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두산에 지명.[27] 대부분의 코치들은 가끔 참여하거나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라이온즈 TV에 나오지 않은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 퇴근길 직캠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지나가던 선수들도 불러세워서 같이 참여할 정도.[28] 최태원의 친누나가 경희대 서반아어학과를 나왔다. 여담으로 최태원 자신과 부모(아버지 최영열은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으로 경희대 태권도학과 교수와 국기원장을 역임했으며, 어머니는 소프트볼 선수였다고 한다.), 누나와 동생 모두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 이 때문에 주위에서 반장난 식으로 '최태원도 경희대로 진학하겠지'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부담스러웠다고 한다.[29] 판매 수익금은 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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