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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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파일:예멘 국장.svg 예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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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ٱللَّهُ، ثُمَّ ٱلْوَطَنُ، ٱلثَوْرَةُ، ٱلْوَحْدَةُ
알라, 국가, 혁명, 통일
상징
국가
연합 공화국[1]
국화
아라비카커피
국수
아라비아표범
역사
1918년 10월 30일 예멘 왕국 성립
1962년 9월 26일 예멘 아랍 공화국 성립
1967년 11월 30일 남예멘 독립
1990년 5월 22일 예멘 통일
1991년 5월 16일 현행 헌법 제정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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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550,000㎢ / 세계 49위
수도
최대 도시

사나(صنعاء, Sana'a)[1]
내수면 비율
0%
접경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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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34,277,612명(2023년) | 세계 48위
인구밀도
44.7명/km²(2023년) / 세계 160위
민족 구성
아랍인 79.5%, 아프로-아랍인 13%, 3.8% 소말리인
출산율
세계은행 자료 3.89명(2020년)
HDI
0.455(2021년) / 세계 183위
공용 언어
아랍어
공용 문자
아랍 문자
종교
이슬람 99%,[1] 기타 1%
군대
예멘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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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
지구
333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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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단일 국가, 대통령제 (임기: 7년 중임제)
단일 국가, 임시 정부
민주주의 지수
1.95점, 권위주의 (2022년)
(167개국 중 155위)
대통령지도위원회
위원장

라샤드 알알리미
(Rashad Al-alimi / رشاد محمد العليمي)
대통령지도위원회
부위원장

타레크 살레[1]
(Tareq Saleh / طارق محمد عبد الله صالح)
총리
마인 압둘말리크 사이드[2]
(Maeen Abdulmalik Saeed / مَعِيِن عبد الملك سَعِيِد الصَّبْرِي)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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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
시장경제
GDP
명목 GDP
$281억 3,400만(2022년) / 세계 195위
GDP(PPP)
$656억 3,000만(2022년) / 세계 111위
1인당 GDP
명목 GDP
$891(2022년) / 세계 195위
GDP(PPP)
$2,078(2022년) / 세계 213위
국부
$720억 / 세계 92위(2019년)
신용 등급
측정 결과 없음
화폐
공식 화폐
예멘 리알
ISO 4217
YER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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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
UTC+3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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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1985년 8월 22일(북예멘)
1990년 5월 17일(남예멘)

북한
1963년 3월 9일(북예멘)
1968년 2월 7일(남예멘)
무비자 입국
(여행금지 국가)
주한대사관
도쿄도 미나토구 니시아자부[1]

ccTLD
.ye, اليمن.
국가 코드
YE, YEM
국제전화 코드
+367
여행경보
여행금지
전 지역


파일:600px-Yemen_on_the_globe_(Afro-Eurasia_centered).svg.png

1. 개요
2. 역사
3. 상징물
4. 지리
5. 민족
7. 정치
8. 사회
9. 내전 (2014년~) 및 종파 갈등
10. 문화
10.1. 언어
10.2. 종교
10.3. 음식
10.5. 스포츠
11. 군사
12. 외교
13. 창작물에서
1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중동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의 서아시아[2]에 위치한 국가.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축복받은 아라비아(Eudaimon Arabia)'라 불렀을 정도로 과거에는 부유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막대한 석유 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심각한 부패로 기득권이 아닌 서민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데다 내전으로 기반 시설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산업적으로 발전되지 못하여 축복받은 아라비아의 칭호는 한낱 동쪽 어촌들이었던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에게 빼앗기고 아라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수도 겸 최대도시는 사나(صنعاء, Sana'a)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는 아덴이다.[3] 공용어는 아랍어이다.[4]

아덴은 예로부터 동방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근대에는 배후에 석탄 지대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대영제국의 본토와 인도의 중간에 위치하여 제국 내 가장 큰 항구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지역 제일의 석유화학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 뉴욕에 이어 물동량 기준 대영제국 내 제일, 세계 2위의 항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철수 이후 공산국가 남예멘의 수도가 되어 완벽히 몰락하였다.

2.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예멘/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상징물[편집]



3.1. 국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예멘/국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국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예멘/국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 국가[편집]



예멘의 국가는 '연합 공화국(الجمهورية المتحدة)'으로 북예멘과 남예멘이 통일한 1990년에 지정되었다. 통일 전 남예멘의 국가를 가사만 바꿔 사용하고 있으며, 가사 개정으로 가사가 이전보다 짧아졌다.


가사 개정 전의 국가.

4. 지리[편집]


면적은 55만km² 영토를 가지고 있다.[5] 그러나 이웃에 있는 4배 크기의 사우디아라비아 때문인지 작아보인다.[6]

파일:attachment/Yemen_coast_guard.jpg

소규모의 미군이 예멘에서 해안경비대를 창설해서 훈련과 장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곳 아덴만 인근에서 예멘 해군이 치안 확보에 기여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예멘은 홍해의 입구이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는 중요한 지역이다. 예멘에서 마음만 먹으면 홍해를 막아서 수에즈 운하를 차단할 수가 있다. 아래에서 언급되는 예멘의 내전에 미국사우디영국이집트가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다.

서남아시아아라비아 반도에 있지만, 동아프리카와도 가깝다. 그래서인지 문화적으로도 동아프리카 문화가 융화되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 동아프리카와 같이 언급될 때도 있거나 동아프리카로 분류될 때도 있는 듯 하다. 단, 동아프리카와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연관이 많았던 것일 뿐, 지리적으로는 서남아시아가 맞다.[7] 그나마 소코트라 섬은 아프리카로 보기도 한다.

기후는 저지대는 건조기후를 띄고 있으나, 고지대는 비교적 선선하고 비가 오는 편이다. 위도가 낮은 편이라 연교차는 크지 않은 편. 남부의 항구 도시 아덴의 경우 연평균 기온은 29.1℃, 강수량은 36mm이며[8], 해발 2,250m의 고지대에 위치한 수도 사나의 경우 연평균 기온 16.2℃, 강수량 265mm로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띈다.

5. 민족[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예멘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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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대부분은 아랍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멘 아랍인들 중 북서부 지역에는 시아파 자이드파 인구가 많은데, 이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순니파들과의 갈등을 피해 모인 시아파들의 후손으로, 아라비아 반도 내에서 다른 순니파들과 엉켜 살아야 하는 이유로 다른 시아파 신도들에 비해 순니파에 대한 입장이 상당히 온건한 편이다. 순니파는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샤피이파 법학파에 속하며 이집트 및 동아프리카 무슬림들과 문화적 공통 분모가 적지 않은 편이다. 비교하자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랍에미레이트는 한발리파가 우세하고 이웃 오만은 이바디파가 우세한 상황에서 서로 사회 분위기 및 문화가 조금씩 달리지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상술했다시피 지리적으로 동아프리카와 가깝기 때문에 예멘내에도 소말리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불가촉천민처럼 극심한 차별을 당하는 아크담족도 있다. 이스라엘 국민들을 구성하는 미즈라힘 가운데 예멘 출신이 꽤 많은 편인데, 21세기에는 극소수의 유대인들만 살고 있다. 예멘 유대인들 중에서도 흑백 혼혈이 드물지 않고, 지중해의 아랍어권 출신 다른 세파르딤/미즈라힘 유대인들과 외모 차이가 확연히 나는 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내 예멘 유대인들은 베타 이스라엘과 연계된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기도 하다.

또한 역사적으로 흑인 노예들을 많이 데려온 탓에 예멘인들의 염색체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들의 염색체가 10%가량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10%는 거의 모두 여성 유전자였다고 한다. 이유는 흑인 남성들은 노예로 데려오는 족족 모두 거세를 시켰기 때문이다. 아프리카男을 노예로 삼고 거세한 아랍인들…카다피가 사과하기도 했다.

6. 경제[편집]


서아시아경제
키프로스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키프로스/경제|

파일:키프로스 국기.svg

키프로스]]
[[북키프로스#경제|

파일:북키프로스 국기.svg

북키프로스]]
[[튀르키예/경제|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아르메니아/경제|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이란/경제|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캅카스
[[아제르바이잔/경제|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조지아/경제|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압하지야/경제|

파일:압하지야 국기.svg

압하지야]]
[[남오세티야#경제|

파일:남오세티야 국기.svg

남오세티야]]
레반트
[[이스라엘/경제|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경제|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팔레스타인]]
[[레바논#경제|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요르단/경제|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이라크/경제|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시리아/경제|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아라비아 반도
[[사우디아라비아/경제|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경제|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예멘#경제|

파일:예멘 국기.svg

예멘]]
[[아랍에미리트/경제|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오만/경제|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쿠웨이트/경제|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카타르/경제|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예멘은 국민의 38%가 절대빈곤에 처하였으며 실업률이 30%인 아랍 국가 중 최빈국가이다. 이는 내전과 테러리스트들로 인한 치안 불안도 있고, 석유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그중 대다수가 족장들이 가져가는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마약으로 쓰이는 까트로 인해 생산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되어있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보다 압도적으로 잘 산다는 점과 많은 예멘인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잘사는 나라로 허드렛일을 하러 나감을 생각하면 까트만이 예멘이 가난한 원인은 아니다.

또한 남예멘북예멘의 통일은 국민경제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동독서독통일 독일의 경우와 달리 예멘은 (남예멘이든, 북예멘이든, 통일 예멘이든) 경제 부흥이 매우 힘겨운 최빈국이었다. 자본주의 국가였던 북예멘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고, 공산주의 국가였던 남예멘은 북예멘의 1/2만큼 못 사는 나라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국민들의 의식주는 하향평준화가 되고 말았다.

경제성장률을 보면 그 처참함이 느껴지는데, 2010년까지는 고성장은 아닐지언정 3~4%의 꾸준한 성장을 보여줬으나 2011년에 가볍게 -15% 찍어주시고 다음해 약간 반등했으나(+2.1%) 2014년에 -10.6%을 2015년에는 무려 -30.4%의 무시무시한 경제파탄을 보여주셨다. 그뒤로도 쭉 마이너스 성장을 하다가 2018년에 간신히 +0.8%가 되었다. 문제는 경제가 저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찍는 것과 다르게 인구 증가 속도는 엄청나다는 것.

설상가상으로 2014년부터 일어난 예멘 내전으로 나라가 완전히 박살이 나면서[9] 예멘의 1인당 GDP는 2023년 IMF 통계 기준으로 고작 573$, 순위도 195개국 중 187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참고로 콩고민주공화국, 북한의 1인당 GDP가 예멘보다도 높은 600$대고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조차 1인당 GDP가 예멘보다 유의미하게 낮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예멘이 어느 정도로 극심한 극빈국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아시아에 있는 국가 중에서 예멘보다 가난한 나라는 1인당 GDP가 전술한 통계에서 뒤에서 2등을 기록한 아프가니스탄 하나밖에 없다.

7. 정치[편집]




예멘을 통치하는 것은 사자를 타는 것과 같다. 한번 올라타게 되면 당신은 내릴 수 없다.

- 예멘 속담 -


과거에는 아랍 세계에서 그나마 민주적인 나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선거 제도가 약간이나마 갖추어져 있고 여성을 포함한 개개인의 인권 보호가 어디까지나 여타 아랍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다 정도이지만. 여기까지는 좋아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다. 높은 실업률[10]+부패한 제도+서구식 민주주의[11]=정부의 정당성 결여라는 구도가 성립된다. 이 선거 제도도 상당 부분 형식적인 게 상원 의원[12] 111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하원은 2003년 총선에서 살레의 소속 정당 국민전체회의(GPC)가 301석의 하원 의석 가운데 238석을 차지했고(정확히는 226석을 차지했고 12명의 무소속 의원이 당선 직후 GPC에 가입했다),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살레가 77.2%를 득표하고 야당 후보는 21.8%만을 득표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10년째 명목상으로라도 경쟁이 있는 선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13], 이것도 10년쯤 전의 얘기지 지금은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시위대, 크게는 국민 전반에 대한 탄압, 이후 정권을 잡은 후티 세력의 쿠데타 이후 행보 등을 보면 국민들의 민주적 권리는 점점 줄어들고 불안정은 극대화되는 시리아와 리비아의 전철을 밟고 있다.[14]

까놓고 말해서 정부가 정부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 지방 부족, 알 카에다 등등 다양한 세력에 의해 예멘 정부의 통제력이 매우 약화되어 있다. 또한 전통적인 기호품인 환각 작물 까트(قات, Khat)를 대량 재배할 때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수자원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단지 모든 주요도로와 유전, 파이프라인의 "선과 점"만 통제하고 있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UN 보안 담당관 밥 아돌프 중령의 의견으로는 예멘 정부의 국가 장악력이 50%에 불과하다고. 예전에 유전을 개발하여 산유국으로 떠오른 덕택에 들여오는 외환으로 온나라의 곳곳에서 떵떵거리는 족장들을 제압할 수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 석유가 대거 족장들의 뇌물 수입으로 들어갔고, 나라의 발전도 이룩하지 못했으니, 지금까지도 아라비아 반도최빈국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취약국가지수 통계에서 남수단, 시리아, 소말리아를 제치고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에서 실패국가로 악명높은 북한이 고작(?) 30위로 올라갔고,[15] 역시 내전을 겪은 시리아아프가니스탄이 각각 3위와 9위로 올라갔던 것을 고려하면 이 나라가 얼마나 절망적인 어려움을 맞이하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최근에 민주화를 추구한 혁명으로 독재자 살레가 실각한 뒤에도 사회의 혼란은 지속되었으니, 북부에서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준동하고 있으며 남부에서는 남예멘의 재분리를 요구하는 분리주의자들, 그리고 이 혼란을 틈타 침투한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살림을 차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안정을 위해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나, 부족주의 성향이 강한 예멘 특성상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는 않을 듯하다. 오죽하면 제2의 시리아가 되어간다고 할까. 거기에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의 스티븐 오브라이언 국장은 예멘이 모든 면에서 붕괴되고 있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예멘은 샤리아를 헌법의 기초로 삼으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되었고, 국교로 이슬람교가 되면서 술판매도 금지되고 사회의 모든 면에서도 보수화가 진행되었다. 거기에다 여성들의 인권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고, 조혼까지도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예멘은 형법내에서 돌팔매 처형, 참수형이 허용되지만, 실제 총살이 행해지며 거기에다 불륜, 동성애, 매춘, 신성모독과 변절도 사형이 가능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8월 9일엔 소아성애자 3명이 공개적으로 총살된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8. 사회[편집]


(전략)... (부통령에게 스콜피온 기관단총을 쏴대기 시작한) 동시에 다른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AK-47 소총을 들고 들어와 다른 장관들을 사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들의 경호원들도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1986년 1월 13일 남예멘개각 모습.[16]

[17]


혼란스러운 역사와 막장인 정치 상황 때문에 자연인 1명당 4정 꼴로 총기가 난무한다. 4인당 1정이 아니다. 오죽하면 1980년대 남예멘에서 귀찮은 협상이나 투표가 아니라 '총질'에 의한 개각을 시행한다. 대통령 경호원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데 더 황당한 건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장관들의 경호원들도 무장 중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대통령 측 경호원들vs장관들+장관 경호원들 간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거기다가 장관들이 죄다 족장이라 수도 시내로 총격전에서 확대되어 전투가 확산되었다. 그런가 하면 2008년에는 잘 조직되고 정부 경찰 제복으로 위장한 6명의 테러리스트가 미국 대사관을 공격한다. 물론 위험 지역의 미국 대사관은 요새화가 되어 있으므로 미국 대사관 테러는 실패하고 애꿎은 예멘 정부군만 다쳤다.[18]

이렇게 개막장인데도 아랍 세계에서 가장 인구 증가율이 많다.(연간 2.8%) 이 속도면 25년 뒤 인구가 2배다. 2005년 인구가 2,000만 명이고, 2022년 현재 3,000만 명이다. 2100년에는 7,400만명이 되어 일본을 추월한다.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이며 한때 합계 출산율 9명대라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나라[19]였다.[20] 현재는 4-5명대. 문제는 예멘이 가난한 나라인데 국민 대다수가 문맹일 정도로 교육 수준도 형편없어서 이렇게 인구가 증가해봤자 국가에 부담만 된다.

튀니지 혁명으로 아랍권 전체가 혁명 열기로 들끓는데, 예멘에서도 혁명 열풍이 불어 결국 정부가 전복된다. 예멘의 경우, 이집트, 리비아와 함께 대표적인 정권 전복 사례다. 아랍권 일대의 혁명은 전체 인구의 40~50%를 차지하는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주도하는데, 특히 예멘의 경우, 30대 이하의 인구가 전체 인구수의 75%다. 이슬람에서 피임을 금하고 아이를 많이 낳는 걸 오래 전부터 권장해, 대다수 나라들이 인구 증가율이 엄청나 젊은 층이 많아 혁명 여파 확대에 기여한다. 자세한 내용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을 참고한다.

예멘이 북예멘남예멘으로 나뉜 시절 남예멘이 공산국가라 여권을 신장하지만 예멘이 통일하며 악명 높은 샤리아를 법으로 지정해 샤리아 법원 등의 이유로 여성들의 인권이 하락하고 조혼까지 널리 퍼져 있다.링크링크 그리고 샤리아를 헌법의 기초로 삼으면서 예멘은 보수화를 시작한다.

예멘 반군이 10대 소녀 수십명을 징발해 첩보, 의무, 경비, 소년병 모집과 같은 전투 지원 업무는 물론 여군 부대에 보내 전장에도 투입했다.#

후티반군에 의한 범죄가 일어나고 2021년 6월 30일 휴먼 라이츠 워치는 후티 반군이 인티사르 알-함마디라는 20살의 여자 배우 겸 모델을 퇴폐 행위와 마약 소지 혐의로 기소했고 성추행과 학대를 한다고 했다.#

9. 내전 (2014년~) 및 종파 갈등[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예멘 내전(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50121182915_V.jpg

파일:Yemen Religions.png

북예멘에는 시아파가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남예멘은 수니파가 많다. 예멘 전체를 놓고 보면 수니파가 다수다. (짙은 녹색은 시아파, 연두색은 수니파) 과거에는 유대인도 많이 살았지만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과의 중동전쟁 이후에 예멘 등 아랍권 지역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현지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이스라엘로 떠나 버려서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파일:1625px-Yemeni_Civil_War.svg.png

2015년 3월 말 기준으로 상황을 보면 시아파 후티 반군(녹색)이 이미 수도 사나와 과거 북예멘 지역을 대부분을 장악하고 제 2의 도시이자 과거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을 포위하고 있으며, 정부군(붉은색)은 동부 사막지대로 쫓겨난 상태다. 그나마 남은 지역의 상당부분도 알카에다(AQAP)(흰색)가 통제하고 있다.

파일:Yemeni_Civil_War--202111.png

6년 반이 지난 2021년 11월 기준으로 그나마 알카에다는 쓸려 나갔고, 후티 반군의 장악 지역은 큰 변화가 없고, 과거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 인근과 무칼라 항 부근, 소코트라 섬남예멘을 재건국하려는 남부과도위원회가 장악하고 있다. 정부군은 여전히 동부 사막지대에 쫓겨난 상태로 있다.


10. 문화[편집]



10.1. 언어[편집]


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예멘 내에서는 예멘 아랍어를 포함한 여러 아랍어 방언에 속하는 언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소코트라 섬에서는 소코트라어라는 언어도 사용되고 있다. 영어는 예전에 남예멘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중요한 외국어이지만, 교육받은 사람들에 한해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예전에 남예멘이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일부 러시아어 사용자들도 존재하고 있다.

10.2. 종교[편집]


종교는 이슬람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있고 샤리아 법원까지 있다. 이중 수니파가 다수이고 시아파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니파는 대부분 샤피이파 마드하브이고 시아파는 대부분 자이드파이다. 역사적으로 북예멘 고원 지대는 10세기부터 대부분의 경우 자이디 이맘들이 통치하였고, 1970년까지 이맘 겸 국왕인 카심 왕가가 통치한바 있다. 수니파는 남부 아덴 지역과 동부 하드라마우트에 분포한다.

다만 자이드파는 초기부터 순니측과 영향을 주고받아 정통 칼리파들을 인정하는 등 교리상 큰 차이가 없어 종교적인 마찰은 의외로 적은 편이다. 또한 천년 이상 공존하다 보니 양측의 신도들은 각자의 모스크가 없을 경우 상대 종파의 모스크에서 예배를 올리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한다. 다만 자이드파 국가를 바라는 후티 세력이 예멘 내전을 일으키고 사우디 등 순니 연합군이 개입하며 종교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또한 예멘에도 소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일부 기독교신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예멘에는 수만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특히 17세기 들어 더욱 증가했으나 20세기 중반 대부분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통일 이후에는 샤리아를 헌법의 기초로 삼으면서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가고있다. 거기에다 변절하는 경우에도 사형에 처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10.3. 음식[편집]


질 좋은 커피가 유명한데, 예멘 모카 마타리는 한국에서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팬시와 더불어 세계 3대 커피라 불릴 정도.[21] 예멘산 커피는 특유의 복잡한 맛과 향으로 애호가들에게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예멘의 커피는 100% 건식 가공되며, 그 방법으로는 커피 열매(체리)째로 바짝 말린 뒤 맷돌에 으깨어 커피에 필요한 부분만을 얻어내는데, 그 과정상 불량률이 매우 높은 데다 전근대적인 유통 구조 때문에 등급에 사기를 치는 일도 종종 있다. 건식 가공을 하는 지역들도 이후 경제 발전 및 생산량 증가로 인해 수세식 가공이나 허니 프로세싱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예멘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건식 가공에서 예멘 커피 특유의 복합적인 맛이 나오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괜찮은 맛의 블렌드 커피에는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원두이기도 하다. 중세부터 커피를 재배하여 수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가 근처이며, 당시 가장 큰 커피 수출 항구가 예멘에 위치하고 있어 커피 무역에 관한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던 곳이다. 이 항구 이름이 바로 모카다.

시드르 꿀 (Sydr Honey)도 특산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사막 기후가 많지만 그래도 자급자족할 먹을 거리는 충분히 재배할 수 있었으나 마약성 잎사귀인 카트 재배(물이 많이 필요하다)로 다른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여기에만 물을 많이 써서 지금은 먹을 거리인 밀가루와 여러 가질 죄다 수입해오고 있다. 더불어 사막화마저 가속화되고 있는 형편임에도 까트 중독자가 많아서 이 문제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년도 안 가서 까트도 수입해와야 하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엉망이 된다고 한다. 즉 내전 상황이 아니라도 먹을 것 문제로 헬게이트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혹시 한국인이 예멘에 가서 까트를 씹거나 복용하고 귀국시엔 마약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한국에서도 예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제주도아살람 # 등의 요리집이 예멘 등 중동계 요리를 취급한다.[22] 주식으로는 캅사(만디 포함), 케밥, 후무스, 쿠브즈[23] 콩으로 만든 죽, 뚝배기같은 냄비에 들어가는 고기 요리 등이 있다고 한다. 고기의 경우 종교, 문화적 이유로 돼지고기보다는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등을 주로 먹는다. 중동 쪽 향신료를 쓰는 편이기에 그쪽 향신료가 낯설거나 약하다면 먹기 힘들 수도 있다. 중동요리 잘 먹는 사람들은 예멘 요리 쪽도 무리없이 잘 먹는 편이다.

10.4. 조혼[편집]




예멘은 돈을 받고 어린 소녀를 강제로 결혼시키는 조혼(早婚)이 잦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가난하다 보니 교육 수준이 낮은 데다가 설사 교육을 받는다 해도 좋은 직장은 구하기도 힘들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지참금을 받고 딸을 일찍 시집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인데,[24] 1980년대까지는 결혼 최소 연령을 15세로 지정했지만, 1990년대 이후 ‘딸의 결혼 시기는 부모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해당 법을 무효화했다. 예멘 보건사회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5세 이전에 결혼한 여성은 전체 여성의 25%에 달한다 한다.[25] 때문에 이런 일도 있다. 예멘의 소녀 신부 대부분은 성숙 연령기에 이를 때까지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예멘에서는 가난한 가족의 경우 어린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을 절감하거나 결혼 대가로 신랑 측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어 딸을 조기 결혼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예멘은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조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0.5. 스포츠[편집]


나라 사정이 저러다 보니 스포츠도 별다른 특징이 없다. 그나마 축구인기가 있긴 하지만 별다른 성적을 낸 게 없다. 아라비안 걸프컵에서도 동네북이다. 자세한 것은 예멘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고할 것.

10.6. 관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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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사나의 구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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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의 맨해튼으로 유명한 시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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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라마우트 일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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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왕궁이던 다르 알 하자르. 예멘의 전통 주택과 성채. 북부 내륙 도시들에는 동화 속에 나올만한 초콜릿 과자집처럼 생긴 고층 가옥들이 남아있다. 더 많은 사진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세가 불안하기 전인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중세적인 풍경을 보존하고 있는 괜찮은 여행지로 배낭여행자 커뮤니티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수백 년 전의 옛날 모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많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예멘의 도시를 걷다 보면 그들의 언어로 인사를 하거나 영어로 Welcome to Yemen이라고도 선뜻 말해줄만큼 친절하다고 한다. 수도 사나를 비롯해 세계유산인 자비드, 지블라, 타이즈, 다마르, 핫자, 아므란, 샤라자, 카우카반, 툴라, 타림, 세이윤, 시밤 등 유서깊은 도시들이 매우 많다.

특히 시밤 마을은 사막 한가운데에 흙으로 만든 집들이 9~10층으로 고층 빌딩을 이루고 있어 '세계 최초의 마천루', '고대 세계의 맨하탄' 등으로 불리며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던 세계적인 관광지였는데,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치안으로 현재에 이르러는 여행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랍의 하와이[26]라고 불릴 만큼 천혜의 관광자원이 가득한 나라이기도 하다. 온갖 대추야자 열매와 일절 개발되지 않은 바다와 산과 호수가 가득하여 그야말로 환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그리고 그 중에서 특히 소코트라 섬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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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인하여 안타깝기도 하지만 되려 사람이 설치지 않아서 저런 자연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부정할 수가 없다. 2009년에 이곳을 여행한 이의 책을 보면 내전 지역이나 위험 지역을 피해 무슬림들과 같이 다니고 지내면서 현지인들과 친해지면 물가도 더 싸고 사람들이 순박해서 좋았다는 내용이 있다. 게다가 이런 위험 덕분에(?) 외국인이 오지 않아서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실컷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왔다고 한다. 한편 아덴과 호데이다 등 항구들은 현대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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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부 셰하라 지역의 석조 다리. 판타지물의 풍경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아름답다고 한들, 지속되는 내전으로 인하여 현 시점의 예멘은 엄연히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국내법 위반이다.

2009년 3월에는 시밤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향한 폭탄 테러가 일어나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사태를 수습하고자 방문하던 공무원과 유족들에게도 테러 공격이 가해졌다. 2009년 6월 15일에는 독일인 선교단과 선교를 하러 간 한국 여성 엄영선(당시 34세)과 독일인 개신교 선교단들이 납치되어 총살되기도 했다. 결국 2011년 6월 28일부터 반년(6개월)동안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었다. 희생자 가족들은 여행제한국가로 가는 걸 정부가 막아달라고 호소했고, 결국 예멘은 여행금지국가가 되었다.

11. 군사[편집]


예멘군 문서 참조

12. 외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예멘/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창작물에서[편집]


  •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전쟁 영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배경이다.
  • 블랙 옵스 2에서도 등장한다. 이전에 비해 발전한 것은 그저 군인의 무장 뿐, 여전히 막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파리드는 메넨데즈와 합류하기 위해 예멘군을 닥치는 대로 사살해야만 한다.
  • 언차티드 시리즈의 3편에서 중후반부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역시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로 함부로 입국할 수 없는 나라 취급을 받고 있다보니 주인공인 드레이크가 취재 기자로 위장하여 보물의 단서를 찾기 위해 입국한다. MBC 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는 가정 상황 때문에 예멘으로 떠날까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 프리즌브레이크 5 에서 메인 배경으로 등장을 한다. 내전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 크툴루 신화압둘 알하자드가 이 곳의 수도 사나 출신이다.
  • 폴란드볼에서 독일 제국과 비슷하게(위아래 반전) 생겨서 가끔 이용되는 편이다.

1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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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예멘 국가를 살짝 변형해서 국가로 지정했다. 두 국가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2] 소코트라는 동아프리카로 보는 편이다.[3]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한 오래된 도시다.[4] 영어는 주요 외국어이지만,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다. 남예멘 지역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기에 일부 러시아어 사용자가 존재한다.[5] 한반도의 2.5배에 달하고 프랑스보다도 크다.[6] 인구 역시 사우디 인구가 2,700만명 이라서 거의 대등한 수준(80%).[7] 비슷한 예시는 이집트, 수단. 이집트 역시 아프리카(좀 더 정확히는 북아프리카) 동부에 있기 때문인지, 동아프리카와 엮이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이집트까지 합쳐서 동북아프리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아예 아랍화된 흑인이 사는 완전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 수단은 동아프리카로도 분류되기도 한다.[8] 사막기후지만 오만이나 카타르, 바레인같이 아라비아 반도의 해안가 지역처럼 습도가 70%에 달하는 등, 동남아를 능가하는 살인적인 더위를 자랑한다.[9] 어느 정도냐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3년간 소말리아를 제치고 취약국가지수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10] 위에서도 말했지만 30%의 실업률에 청년실업은 40%이다[11] 즉 다수결 원칙, 다원화된 의견(물론 반정부적인 의견도 포함된!), 다양한 문화의 수용 등인데, 국가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고 부족 연대의식이 강한 지역에서는 투표나 선거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턱이 없다. 정치인들이 국익보다는 출신 지역과 고향만 우대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종파로 인한 갈등, 여기에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는 상당수의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기 어렵게 만든다.[12] 말이 상원이지, 아랍 왕정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일종의 자문 위원회다. 단순히 자문 기능만 있고 입법 기능은 없으며 입법 기능은 오로지 하원만이 담당한다.[13] 2012년 살레의 퇴임 직후 대통령 선거가 있기는 했으나, 현직 대통령인 압드 라부 만수르 하디가 단독 후보로 출마해 100% 지지율로 당선되었다.[14] 북아프리카서아시아에서 민주공화제가 멀쩡하게 돌아가는 나라들이 터키튀니지이스라엘, 조지아아르메니아, 북키프로스남키프로스 뿐이고, 그들의 본류(本流)는 빠르면 11세기부터 프랑스물과 이탈리아물과 네덜란드물을 잔뜩 마셨거나, 늦어도 19세기부터 러시아물과 독일물과 영국물을 잔뜩 마셨다는 공통점이 있다.[15] 오래 전부터 중동아시아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내분과 종파간의 내전과 대규모의 난민 문제가 없기 때문에 순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정부의 합법성(State Legitimacy) 분야에서는 남수단과 공동으로 1위를 차지했다.[16] 토마스 L. 프리드먼,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서울: 창해, 2003, pp.91-92[17] 말이 장관이지 이들은 각 부족의 대표들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개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런 꼬라지는 북예멘도 별 차이 없었다.[18] 특히나 리비아의 미국 대사관 테러 때문에 위험 지역의 미국 대사관들의 요새화는 더욱 삼엄하다.[19] 통계집계 이후 출산율이 극도로 높았던 나라는 1966년케냐, 1967년마셜제도, 1968년리비아, 1970년요르단, 1973년코트디부아르, 1978년르완다, 1982년오만, 1986년니제르가 있다. 그냥 높은 걸 떠나서, 정말 저렇게 낳으면 아프지 않나가 가장 먼저 걱정될 정도.[20] 참고로 한국도 한창 출산율이 높았을 때는 6명대였고, 타 국가들도 대체로 6-7명대였다.[21] 물론 세계 3대 좋아하는 한국과 일본 한정이다. 일본에선 예멘 대신 탄자니아가 들어가곤 한다.[22] 링크 걸린 아살람은 제주 난민 사태 시기 난민 신청해서 한국 정착에 성공한 예멘 요리사가 자기와 비슷한 처지인 예멘 출신 정착민들을 주요 손님으로 상정해서 만든 요리집이다. 물론 예멘 요리를 포함한 중동 요리를 먹고싶은 한국 손님들도 찾기도 한다.[23] 중동식 전통 빵.[24] 과거 한국에서도 가난했을 시절에 좀 산다는 집에 식모로 내보내는 일이 많았던 것과 일맥 상통한다.[25] 이것도 이슬람 탓을 하기 쉽지만, 조혼은 전 세계적으로 흔하던 일이다.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워낙 적어서 일찍 결혼하던 문제도 있긴 하지만, 7세기 이슬람권에서도 8살 소녀와 결혼(정확히는 양녀로 받아들였다가 좀 큰 다음에 결혼했다) 기록이 있고, 지금도 인도서남아시아 비이슬람 지역이나 아프리카중남미 원주민들에겐 꽤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법적으로 금지되어 몰래 결혼하거나 외부인들에겐 양녀거나 친척이라고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2011년 6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참고). 구한말 미국인 선교사들이 설립한 이화학당은, 어린 여학생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시집가는 폐해로 골치를 앓았다. 선교사들이 부모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방학을 없애 학생들을 집에 보내지 않기도 하고, 결국은 "재학 중에는 금혼"이라는 교칙을 정했다. 이 교칙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시대가 바뀌면서 오히려 기혼 여성의 대학 입학과 학습을 방해하는 부역효과를 낳게 되어,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금혼 교칙을 폐지했다.[26] 이건 오래 전 YTN에서 틀어주던 국제뉴스로 나온 바 있는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