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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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가한 편이라 조용한 거리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잠깐! 뭔가 이쪽으로 돌진하고 있다!


으아아아ㅡㅡ


끽ㅡㅡ
다급한 바퀴의 마찰소리, 눈 앞에 거대한 물건들이 곧 나에게 쏟아지려 하다가 멈췄다.

하지만 담겨있던 종이상자들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쏟아쳤다.

리어카다! 익숙한 작은 얼굴이 리어카 뒤에서 나왔다.


우히히! 지휘사, 좋은 아침!


에루비?!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너무 위험하잖아!


거품경제라는 말 자주 하잖아~ 여기 상자에 든 건 대부분 거품이야, 안 무거워, 안 무거워! 상자에 맞아도 안 죽어!


그러나 정말 별로 큰 일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에루비와 함께 흩어진 상자들을 다시 수레에 쌓았다.


이게 다 뭐야?


구 시가지 사람들에게 선물할 거야, 과자랑, 장난감이랑, 스티커랑...... 어쨌든 싹 다 일상 용품이니까!


정말 아이 같은 생각이네, 내용물 중에 진짜 생활 필수품은 전혀 안 들었겠지......


흥! 지휘사, 너 내 생각이 아이 같다고 했겠다! 그럼 네가 말해봐, 진정한 생활 필수품이 뭔데?


기본적으로, 영양가 있는 음식?


지휘사 일상의 엥겔 계수가 아주 낮다는 걸 알 수 있겠군.

엥겔 계수 알아? 시기마다 음식 소비가 전체 소비의 비중을 차지하는 걸 말하는데, 비중이 높을수로 생활 수준이 낮아지지.

유감스럽게도, 난 바로 네 엥겔 계수의 비중이 어떤지 알아맞출 수 있어, 분명 깜짝 놀랄 정도로 높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내가 중앙청의 지휘사의 생활수준 따위 알 게 뭐야. 이제 구 시가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여주러 가야겠네! 또 봐!


에루비는 상자가 담긴 리어카를 아주 빠르게 밀고 스케이트화를 끌고 다니면서 잽싸게 사라졌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중력이 쏠리면서 다시 바닥에 흩뿌려졌다.

하아. 할 수 없이, 다시 다가가서 상자 줍는 걸 도와줬다.


에루비 너, 너무 빠르게 밀잖아, 이렇게 하면 위험하니까, 내가 한다?


나의 능숙한 솜씨로 "생활 필수품"은 빠르게 구 시가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오! 나쁘지 않네, 지휘사! 네가 이렇게 의리 넘칠 줄은 몰랐어! 동지라고 해도 되겠다!


에루비는 깡총 뛰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웃으며 상자에서 물 한 병을 꺼냈다.


지휘사 목 많이 마르지? 자, 이거 너 마셔!


아, 천만에ㅡㅡ 풉! 맵잖아!


우헤헤, 속았지 이 바보야! 다음에 또 봐!


이 토끼 자식...... 이게 은인을 대하는 태도야?!

속에 든 매운 액체를 버리려고 하는데, 어깨에 고액의 수표와 그 위에 연필로 비뚤비뚤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뭐, 이거 가져다가 엥겔 계수 좀 낮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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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전술 단말기의 메시지 알림음에 잠이 깼다. 메시지에는 고등학교 근처에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했다.

곧장 메시지에 남겨진 장소로 달려갔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다시 막 떠날려던 참에, 익숙한 슉슉 하는 스케이트 소리와 카랑카랑한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우히히~ 너 말야, 지휘사!!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


거짓말 하지 마, 분명히 방금 왔으면서, 기다리기는 무슨!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ㅡㅡ 몬스터는 어딨어!


누가 너 보고 그렇게 지루하래, 지휘사, 이렇게라도 안 하면 너 올 생각을 안 하잖아!

자, 지휘사의 도움이 필요한데~


뭐랄까, 좋은 일은 절대 아닌 거 같은ㄷ......


자기를 너무 깔보지 마! 나한테 좀 배우라고, 어떤 상황이든 자신한테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어야 돼!


난 나를 얕본 적 없어, 그저 너에 대해 대비하는 것 뿐이야. 우선 말해두겠는데, 나는 너의 어떠한 장난에도 얽히고 싶지 않아.


장난치는 거 아냐, 나는 네가 나의 가정 교사가 되어달라고 의뢰를 하는 거야.

백조 그룹 후계자의 가정교사!!

네가 한 번 계산해 봐, 중앙청의 지휘사보다 급여가 얼마나 높아질 지.

크게 할 일은 없고, 그냥 심플하게 나의 생활을 귀엽고 순하게 묘사해서, 부모님한테 보고만 해 주면 돼.


거절하겠어.


왜? 이게 얼마나 후한 대우인데!


일은 나쁘지 않은데, 그 대상이 너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말썽꾸러기를 멀리하자, 이건 내가 지키고 있는 인생 규칙이야.


정말이지 재미없는 인생 규칙이네. 이렇게 큰 비즈니스를 놓치면, 조만간 후회하게 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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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공원 벤치.


아! 아아아!


어! 이거 지휘사 잖아! 왜 이렇게 한숨을 퍽퍽 쉬셔?
설마......

이 나를 기쁘게 할 슬픈 일이라도 생긴 건가!


네 웃는 얼굴은 삼가 줄래, 많이 거슬리거든.


내 미소가 뭐가 어때서! 사람은 영원히 낙관적이여야 한다고! 그래서, 네 고민은 도대체 뭘까?


난...... 고민 없어.


우히히! 너 오늘도 나한테 충분히 쥐어짜일 줄 알았지? 오늘은 안 할 거야, 근데 너 뭔가 편안해 보이잖아!

좋아, 그럼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겠어, 너는 계속 나를 위해 수고하도록!


또 뭘 하려는 거야?


여전히 그 일이지, 내 가정교사가 되는 게 어때?


난 거ㅈ......


우리 부모님이 준 금액 외에, 내가 따로 계산한 건 이 정도야.

그리고 네가 한다고만 하면, 네 돈도 매일 훔치지 않을게! 어때?


누님, 가정교사 일에 대한 건 맡겨만 주십쇼!


너 이 자식... 내가 상상했던 것과 좀 다르잖아...... 뭐, 나야 싫지만 않으면 장땡이지.

됐어, 또 보자!


에루비는 손을 흔들면서 방방 뛰며 떠났다.

자본주의에 물든 고민이라, 이런 일을...... 에루비가 이 비밀을 지켜줄까?
음, 너무 많이 생각했어, 기분 탓이겠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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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이 수갑을 채웠다.


예? 어떻게 된 일이죠?


중앙청의 지휘사 님 맞으신가요? 현재 당신이 어떤 몽환 가희의 앨범을 고가에 되팔았다는 혐의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서까지 따라와 주셔야겠습니다!


잠깐? 뭐라고요! 앨범을 되팔아? 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대파 트윈테일의 공주님을 감히 모른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늘에 맹세코! 공주님께 죄송한 일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전 결백해요!


억울하면 취조실에 가서 저희와 자세히 얘기하시죠.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이 때, 에루비가 눈 앞에 나타났다.


에엣? 지휘사? 너도 경찰에 잡힐 일을 할 줄 아는 거야?
정말이지 대단한 걸~

경찰 선생님, 이 자식이 뭔 짓을 했나요?


앨범을 되판 혐의가 있습니다.


이번 건 글렀네, 나도 열성 팬이라구. 이번 건은 그냥 못 넘기겠네~


말했잖아! 나는 억울하다고!


경찰 선생님, 이 사람이 자기는 억울하다는데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일단 그래도 취조실에 가셔야 합니다.


그럼 나도 뭐 어쩔 수 없네 지휘사, 알아서 잘 해봐~


저기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사실 에루비가 더 암상매매에 어울릴 사람 아닌가요!


음...... 그럼 두 사람 모두 함께 가시죠.


비록 모두 취조실로 끌려갔다, 근데 왜 나만 수갑을 차고 있는 거야!

수많은 지루한 질문세례가 이어졌다. 경찰을 탓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많은 증거들이 나와 에루비를 향했다.

결국 무죄를 스스로 증명하여 가까스레 나올 수 있었다.


으히히, 지휘사도 나왔구나~
누군가 우리를 모함하는 거 같은데, 좀 화나지 않아?


어쨌든 나는 정말 화가 나!


어때? 같이 힘을 모아서, 고가에 앨범을 되팔은 진정한 범인을 함께 조사해볼래?


가야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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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루비와 고가에 앨범을 되파는 흑막을 찾기로 하여, 함께 구 시가지 일대를 뛰어다녔다.

갑자기 리듬이 이상하지만 익숙한 노랫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이어서 두 사람이 작게 속삭이는 게 들렸다.

서둘러 에루비와 담 모퉁이에 숨었다.


진짜로 이거 맞지? 정말 틀림없지? 이 복제한 디스크들을 정말 원가의 세 배로 팔 수 있는 거 맞지?


에루비라고 하는 녀석이 구 시가지에서 꽤 인지도가 높던데, 에루비가 흔히 쓰는 해킹 방식이야, 우리는 아주 비슷하게 따라했으니까ㅡㅡ 괜찮아! 곧 있으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하하하, 그럼 됐어, 다 그녀에게 덮어씌우면 되겠군!


어차피 그녀의 집안 배경도 예전부터 깨끗한 편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그녀부터 의심할 거야!

거기에 그 중앙청의 지휘사, 듣자 하니 정체불명에 신분도 수수께끼라, 덮어씌우는 데 가장 적합해! 오늘 후딱 해치워버리고 빨리 발 빼면 아무런 문제도 없어!


나는 서둘러 경찰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 곳의 상황을 알렸으나, 에루비는 가위를 들고 나왔다.


정말이지 따분한 놈들이잖아. 원래 너희들에게 벌을 줄 생각은 없었는데, 당한 대로 돌려줘야지, 그게 내 원칙이다!

그리고, 지휘사까지 괴롭힌 것도 짜증나 죽겠네! 지휘사를 괴롭힐 수 있는 건 나 뿐이란 건 알고 하는 거지!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지금부터 나쁜 아이와 게임을 할 시간이야, 함께 놀아보자고!


에루비는 거대한 가위를 뽑아 솨 하는 소리와 함께 휘둘렀다. 한 차례의 불빛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두 사람은 푹 쓰러졌다.


우히히! 아직도 할 생각 있어?


안 할게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이 해적판 앨범들을 우리 앞에서 태워버려! 깡그리 태워버려!


짙은 연기 속에 경찰들도 제 때에 도착했고, 진범 둘을 데려갔다.


캬아, 지휘사랑 엮이니까 재밌는 일이 좀 생기네!


이럴 때 마다 흥분 좀 가라앉힐 수 없겠어?


서로 얘기를 나누던 도중, 구 시가지 주민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에루비! 저도 드디어 전설의 초록색 머리 아가씨의 신곡을 들을 수 있는 건가요? 다들 들었다던데, 저도 듣고 싶어요!


음, 그게......


잠깐만! 에루비, 너 정말 앨범 되팔은 거야? 내 믿음 돌려줘!


아 아니, 그게 아니라고! 이 사람이 말한 초록색 머리 아가씨는 내 얘기야!

구 시가지 사람들이 내 목소리가 몽환 가희랑 닮았다고, 녹음해달라고 조르는 거 있지!


뭔가 비슷하네, 너무 비슷해서 음원이라고 의심할 정도야ㅡㅡ원래는 이런 거였구나?


괜찮다면 지휘사 한테도 한 장 선물할게. 나도 내 목소리에 자신있다고!


앨범에서 나오는 건 확실히 에루비의 목소리였다. 달달한 전자음은 아니었지만, 음색이 너무 비슷해서 놀랄 정도였다.


어때? 좋지? 내가 생각해도 난 다재다능인 거 같아!


너무 좋다ㅡㅡ 너무 좋아, 에루비!


그렇게 얘기를 하며, 고개를 돌려 에루비를 봤다. 명랑하던 에루비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얼굴을 돌렸다.


뭐, 네, 네가 좋으면 됐지...... 내가 잘 하는 일은, 굉장히 많다고!


에루비, 여기서 나한테 한 곡 불러주는 게 어때?


어? 정말로 그렇게 듣고 싶어?


정말! 정말이야, 에루비!


그럼ㅡㅡ네가 좀 낮춰봐, 네 귓가에 부를게.


나는 몸을 낮췄고, 에루비는 내 귀에 가까이 왔다ㅡㅡ
귀 주위의 공기가 따뜻해지기 시작한 느낌이 들었고, 마치 보송보송한 큰 토끼가 가까이 온 것 같았다.

토끼는 갑자기 귓가에 대고 우히히 하며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나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입술이 이미 내 귀에 달라붙었다.

1초. 2초. 3초. 시간이 멈춘 듯 귀가 뜨겁기만 했다.


우히히, 장난친 건데~ 바보 지휘사!


에루비는 엄청 큰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소리를 친 후, 빠르게 스케이트를 타고 멀리 도망갔다.

...... 에루비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게 그녀의 성격이겠지.

명랑하고 귀엽고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토끼...... 귀를 만져보니 정말이지 아프고 뜨거웠다.

하지만, 어찌 됐든...... 이런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작은 악마 에루비와 함께하니 꽤 즐겁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