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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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형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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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파일:체육훈장.png
연도
2005년
이름
김원형
분야
스포츠
사유
체육발전유공
체육훈장기린장(5등급)

김원형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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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7
2008

파일:두산 2019V6.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19

파일:SSG 랜더스 우승 엠블럼 V5.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감독

2022

파일: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로고.svg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1998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3 준플레이오프 MVP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한국시리즈
2022 KBO 감독상


보유 기록
최연소 노히트 노런
20세 9개월 25일 (1993년 4월 30일)
단일 구단 최다 경기 1위 유지 감독
145경기 (2022년 4월 2일 ~ 2023년 4월 2일)
단일 시즌 최다 경기 1위 유지 감독
144경기 (2022시즌 / 와이어 투 와이어)


김원형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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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48번
창단

김원형
(1991~1994)


김종국
(1996)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6번
이상대
(1991.5.15.~1994)

김원형
(1995~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16번
팀 창단

김원형
(2000~2011)


이재영
(2012~2015)
SK 와이번스 등번호 70번
김태균
(2008~2011)

김원형
(2012~2016)


이승호
(2017~201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5번
이용호
(2013~2016)

김원형
(2017~2018)


이우민
(2019)
두산 베어스 등번호 70번
공필성
(2016~2018)

김원형
(2019~2020)


유재신
(2021~2023)
SSG 랜더스 등번호 70번
서한규
(2019~2020)

김원형
(2021~2023)


결번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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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원형 2023 프로필.png

김원형
金圓衡 | Kim Won-hyong

출생
1972년 7월 5일 (51세)
전라북도 전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전주중앙초 - 전주동중 - 전주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1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1~1999)
SK 와이번스 (2000~2011)
지도자
SK 와이번스 플레잉코치 (2011)
SK 와이번스 루키군 투수코치 (2012~2013)
SK 와이번스 1군 불펜코치 (2014~2015)[1]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15~2016)[2]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투수코치 (2017~2018)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2018)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19~2020)
SSG 랜더스 감독 (2021~2023)[3][4]
병역
예술체육요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등장곡
Puff Daddy - I'll Be Missing You
상훈
체육훈장 기린장

1. 개요
3. 피칭 스타일
4. 연도별 성적
5.1. 감독 성적
7. 박경완과의 관계
8. 기타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야구인. 前 SSG 랜더스 감독[5].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

전주고등학교 야구부 출신[6]으로 1990년대 전주 연고 구단 쌍방울 레이더스의 핵심 투수로서 1군에서 뛰기 시작한 첫 해부터 선발로 활약했으며 김성근의 재임기였던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선발 로테이션을 도는 와중에도 가끔씩 중무리로도 나와서 던지고 스윙맨의 역할도 하는 등 전천후로 활약했다. 무엇보다 고향 구단이 처음 생겨나서 어렵사리 1군에 적응하는 과정은 물론 홈에서 연전 연승을 거듭하던 영광의 시절과 가난에 지쳐 처참하게 쓰러지는 모습까지 모두 목격한 돌격대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쌍방울 해체 후 재창단된 SK 와이번스의 창단 멤버로 참여했으며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비로소 우승에 성공하며 프로 선수 생활 17년 만에 통산 첫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2011년 시즌 후 현역에서 은퇴한 뒤 SK 와이번스,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직을 맡았다. 2020년 시즌 종료 후 친정 SK 와이번스의 제8대 감독으로 부임했으며[7] 2022년 KBO 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 통합 우승을 달성하면서 KBO 역대 두번째로 단일팀 선수-감독 우승 경험 기록자가 됐다.[8]


2. 선수 경력[편집]




3. 피칭 스타일[편집]




김원형의 전매특허 구질이었던 커브볼
134승으로 다승 전체 9위[9]를 기록하고 있다. 전성기 시절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팀 전력이 그리 좋지 않았던[10] 관계로 144패로 송진우에 이어 다패 2위를 기록했다. 투구이닝 전체 4위(2,171이닝). 1위 송진우, 2위 정민철, 3위 이강철. 야만없이지만, 김원형이 조금만 더 강한 팀에 있었더라면 해태는 못 되어도[11] LG나 OB에서라도 있었으면 다승 순위에서 선동열도 제쳤을 것이다. 어찌 보면 비운의 투수.

채찍질 하듯이 던지는 투구폼이 인상적이며, 177cm, 75kg의 투수로서는 그리 좋지 않은 체격이지만, 전성기 때는 그 체격에서 140대 후반의 패스트볼을 구사하였다. 후기에는 최고구속 140대 초반, 평균 구속 130대 후반. 대신 수준급의 제구력을 갖춰 맞춰잡는 스타일의 피칭을 선보인다.

주로 느린 체인지업으로 완급조절을 하며, 포크볼도 던진다. 기교파 변신 이후, 땅볼 유도할 때 간간히 싱커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의 최고의 주무기는 빠르고 "횡"이 아닌 "종"으로 떨어지면서도 스트라이크인데도 타자가 머리로 공이 날아오는 줄 알고 움찔할 정도로 큰 각을 지닌 12-6성 파워커브로, 희대의 마구 중 하나였다. 구속은 125km/h 정도.[12]

삼성의 당대 최강의 파워커브볼러인 삼성 암흑기의 에이스 "만딩고" 김상엽과 비견되기도 하였다. 덕분에 매니지먼트 게임인 프로야구매니저에선 김원형의 레전드 카드를 입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1성구 카드로 1995년도 올스타 김상엽이 나왔다. 커브 구속은 김상엽보다 조금 느리지만 각도 하나는 당대 제일이었다고. "헬리콥터 커브"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같은 시기를 불태운 라이벌 정민철과 거의 비슷한 유형의 커브볼러였다. 그러나 정민철은 패스트볼과 커브볼 속도의 간극을 이용한 커브라면 김원형의 패스트볼과 커브는 속도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궤적도 거의 똑같은 볼이라 기다리는 타자 입장에선 이게 속구인지 커브인지 영겁과도 같은 고민을 하다가 배트를 휘둘러야했고 그러면 대부분 삼진이었다.

볼넷을 매우 싫어하는 스타일로 볼넷을 줄 바에는 홈런이나 안타를 맞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 공격적으로 피칭한다.[13] 그리고 이건 2021년 랜더스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보여준다.


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
WHIP
1991
쌍방울
29
136⅓
7
11
0
-
4.69
131
12
78
75
77
71
1.48
1992
22
138⅓
8
7
1
-
3.32
125
13
60
104
60
51
1.29
1993
26
135⅓
11
9
0
-
2.93
115
9
70
87
50
44
1.29
1994
25
132
5
11
1
-
5.39
143
14
63
75
85
(3위)
79
(3위)
1.48
1995
25
143⅔
9
8
0
-
3.95
145
14
71
69
82
(4위)
63
1.41
1996
26
126⅔
5
8
0
-
4.12
133
10
56
69
71
58
1.45
1997
29
157
9
9
0
-
2.75
(5위)
139
13
50
80
62
48
1.16
1998
51
150
12
7
13
-
2.52
(5위)
130
10
48
109
54
42
1.15
1999
17
37
2
3
2
-
4.86
30
3
16
38
22
20
1.1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
WHIP
2000
SK
29
93
2
13
(1위)
5
0
5.81
112
18
36
52
70
60
1.54
2001
26
154⅓
9
9
0
0
4.37
152
20
(4위)
63
100
89
75
1.37
2002
13
58⅓
4
5
0
0
5.25
67
14
19
37
40
34
1.44
2003
30
79⅓
7
7
1
4
3.74
87
13
24
44
34
33
1.32
2004
30
135
8
6
1
1
4.20
147
19
(5위)
51
78
70
63
1.39
2005
30
171⅔
(5위)
14
(4위)
8
0
0
3.41
172
17
(5위)
45
94
73
65
1.18
(4위)
2006
24
139⅓
5
9
0
0
4.07
152
11
54
52
69
63
1.39
2007
43
73⅔
5
4
0
4
4.15
87
6
30
25
41
34
1.48
2008
42
74⅓
12
(4위)
6
2
2
3.15
73
6
28
41
28
26
1.29
2009
25
33⅓
0
4
0
1
4.59
36
3
19
17
17
17
1.62
2010
3
2⅓
0
0
0
0
0.00
0
0
0
0
2
0
1.29
KBO 통산
(20시즌)
545
2171
(4위)
134
144
(2위)
26
12
3.92
2179
225
(2위)
881
1246
1096
946
1.35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1991
4완투
1완봉
1992
7완투
1완봉
1993
6완투
3완봉
(5위)
1994
2완투
0완봉
1995
4완투
2완봉
1996
1완투
0완봉
1997
3완투
(5위)
0완봉
2001
6완투
1완봉
2004
2완투
0완봉
통산
29완투
7완봉


5. 지도자 경력[편집]




5.1. 감독 성적[편집]


감독 성적
연도

경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21
SSG
144
66
64
14
6위
-
2022
144
88
52
4
1위
우승
2023
144
76
65
3
3위
3위[14]
통산
432
230
181
21
0.560
V1

6.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원형/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박경완과의 관계[편집]






파일:김원형 박경완.jpg

파일:/image/018/2008/05/12/1210565405.791537_PP08051200012.jpg}}}
현역시절 김원형과 박경완 배터리[15]

영혼의 전주-쌍방울-SK 배터리로 김원형을 언급하든, 박경완을 언급하든 간에 둘은 꼭 서로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이 나오는 존재이다.

박경완과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함께 지낸 영혼의 배터리이자 30년지기 절친인데, 같은 전주 출신을 시작으로 전주 중앙초-전주동중-전주고를 함께 나와서, 전주 연고팀인 쌍방울에 같이 입단했다. 1991년 김원형 덕에 박경완이 입단할 수 있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 대학 진학을 모색하다가 무산되면서 졸지에 붕 떠버린 박경완이 쌍방울로 갈 수 있었던 것은 팀 내 최고 유망주의 친구라서 볼 받아주고, 말동무 해달라는 팀의 뜻이 컸다고 한다. 박경완은 고등학교 때는 생각보다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고, 기량 저하까지 겹치면서 프로 진출마저 불투명했으나, 그해 1차 지명선수였던 김원형의 도움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고, 성공 신화를 같이 쓸 수 있었다.

1997 시즌 후 어려운 모기업 사정으로 인하여 박경완이 현대로 당시 사상 최고인 9억이란 거금에 트레이드되었다. 한편, 박경완이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될 당시 둘도 없는 친구였던 김원형은 충격을 받고 "나 딴 팀 안 갈거야!!"라고 외치며 도망쳐서 스쿠터로 전주시내를 이리저리 질주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떨어져서 다른 팀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박경완이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잠시 떨어져 있었던 때, 박경완이 타석에 들어서자 벤치에서 빈볼 사인이 났음에도 차마 빈볼을 던질 수 없어 위협구만 연거푸 던지다 퇴장당한 사건은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보여준다. 1998년 7월 26일 경기.


파일:김원형 은퇴식.jpg


파일:201404051757269726_l.jpg

김원형의 은퇴식에 꽃다발을 전달하는 박경완
절친 박경완의 은퇴식에 시구자로 나와 함께하는 김원형
그리고 박경완이 FA 자격을 얻어 2003년 SK에 돌아오면서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5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같은 팀에서 함께 지내며 21년차 역대 최장수 배터리로 활약하게 되었다. 둘 다 은퇴한 2013년에도 김원형은 투수코치, 박경완은 2군 감독으로서 코치로서도 또 같은 팀에서 생활하게 되었으며, 2014시즌에도 김원형이 1군 투수코치, 박경완이 그대로 2군 감독을 맡게 되면서 같은 팀에 있는 햇수가 24년으로 늘어났으며, 2015년에도 박경완이 육성총괄, 김원형이 1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며 결국 같은 팀에 있는 햇수 25년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6 시즌에도 박경완은 1군 배터리 코치에, 김원형은 1군 투수코치에 선임되어 같은 팀에 있는 햇수를 26년으로 연장시켰다.

쌍방울 시절 박경완과의 에피소드(?). 밑의 5시 방향 조그만 기사도 둘의 기사다.

2011년 은퇴를 선언한 김원형이 준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에 나섰을 때,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박경완[16]이 자기 공을 받지 못한다고 하니까 아쉽다고... 아... 영혼의 배터리...

결국 2014년 4월 5일, 박경완의 영구결번식 겸 은퇴식 날에 박경완이 시포, 김원형이 시구를 함으로써,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21년차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장수 배터리는 서로에게 마지막이 된 한 개의 공을 던지고 받으며 둘의 프로생활 20여년의 대장정의 끝을 맺고, 성대한 마무리를 맞이하였다. 시구와 시포 후, 두 영혼의 배터리의 마운드에서의 마지막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박경완: "원형아!"

김원형: "이게 마지막 공이다"

박경완: "그래, 고맙다"

김원형: "수고했다"

박경완: "어... 고맙다!"



파일:김원형 박경완 코치.jpg

SK 와이번스의 코치로 함께했던 김원형과 박경완.

파일:박경완 김원형 인터뷰.jpg

2020년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 함께한 김원형 두산 투수코치와 박경완 SK 수석코치.

2020년 스포츠동아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여전히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팀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보니 대놓고 나가서 보기에는 조금 껄끄럽다고. # 맞대결 후 사석에서 만나게 되면 둘 중 한 명은 패한 팀 코치이기 때문에 구설수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

그리고 2021년 김원형은 감독으로 SK에 돌아왔지만 박경완은 감독대행 자리에서 물러나 SK를 떠나면서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다. 김원형이 박경완의 후임 자리로 가게 된 것.


파일:박경완 KBO 레전드 40인 시상식.jpg

박경완의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시상식에서 재회한 김원형 감독.
박경완 국가대표팀 배터리 코치가 2022년 8월 22일, 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 성실함의 대명사 부문에서 전체 순위 23위로 레전드 40인에 선정되었고, 2022년 9월 18일 SSG 랜더스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 클리닝 타임에서 시상식이 진행됐다. 김원형 감독이 박경완 코치에게 기념 트로피를 건내주면서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김원형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는 민경삼 대표이사가 기념액자와 트로피를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김원형 감독이 박경완 코치에게 직접 트로피를 전달하고 싶다고 구단에 요청했다고 한다.

2023년에는 박경완이 염경엽의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 1군 배터리 코치로 부임하게 되면서 2020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두 친구가 그라운드에서 만나게 됐다. 근래에는 경기 전 워밍업 타임 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며 5월 24일 SSG 랜더스와 LG 트윈스의 홈 경기을 앞두고 이호준이종범, 박경완 등 현역 시절 레전드 급 성적을 기록했던 LG 트윈스의 코치들이 배팅 케이지에 들어서 타격 연습을 했고 김원형 감독은 타석에 들어선 박경완이 날카로운 타격을 뽐내자 "아직 살아있네, 살아있어"라고 유쾌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8. 기타[편집]



파일:미친동안김원형.jpg

  • 별명은 곱상한 외모와 덤으로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한 동안으로 인해 '어린왕자'[17][18]. 당장 쌍방울 레이더스 초기 시절의 모습만 봐도 성인 프로선수라기 보다는 중학교 리틀 야구단 선수 같아 보인다. 워낙에 외모가 곱상한 덕에 쌍방울 입단 동기이자 선배인 김기태가 "얘는 어디 높으신 분 빽으로 여기 들어왔냐"고 말했을 정도. 이 외모 덕분에 적어도 쌍방울의 연고지였던 전주지역 내 인기는 아이돌 스타급이었다. 쉽게 생각해서 박정수가 KIA 선수 시절 광주에서 얻은 인기의 몇 배였다고 보면 된다. 박정수가 광주에서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과거 전주의 김원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심지어 박정수는 어쩌다 한 번 나오는 1.5군급 불펜 투수지만 김원형은 팀을 먹여살리는 에이스 투수였기에 그 가치는 더더욱 컸다. 특히나 모기업 쌍방울이 가난에 허덕여 레이더스 야구단을 해체하려 하자 전주 팬들도 직접 나서서 쌍방울의 속옷을 사 줬을 정도인데 그 팀의 젊고 잘생긴 에이스는 그야말로 형용불가. 저 사진이 찍혔을 당시 나이가 무려 39세. 현재는 나이 50세가 되었지만 지금도 면도 잘 하고 머리 스타일 정리만 깔끔하게 하면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동안 외모를 지니고 있다.[19] 다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두산 시절부터 갑자기 흰 머리가 늘었고 감독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로 인해 주름이 늘어난 탓에 더 이상 동안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 이 곱상한 외모와 다르게 성격은 매우 드센 것으로 보인다. 현역 시절에는 그 김성근조차도 "걔는… 성질이… 어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정도. 특히 주장 시절에는 장악력이 굉장하였다고 회고했다. 감독이 돼서는 특히 투수가 볼넷을 남발하면 몹시 무섭게 변한다. 물론 볼질을 좋아할 감독은 없으나, 특히 김원형은 현역 시절에 제구력이 좋은 투수였고 자신감도 있었으니 볼질을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선수단과 소통하면서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편이라고 한다.

  • 현역 시절 포크볼로 유명했던 만큼 투수들에게 포크볼은 기본적으로 장착시켜 성공적으로 전력화시킨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원준, 크리스 플렉센.

  • 2010년대에 KBO 리그 현역 선수 생활을 보낸 최초의 감독이다.[20]


  •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으로는 광주광역시의 김기태, 부산광역시의 조원우에 이어 3번째로 정식 감독이 됐다. 아울러 전라북도 전주시 출신으로는 최초의 감독이기도 하다.[21]


  • 허용투수기도 하다. SK 선수 시절인 2003년 6월 22일, 이승엽의 세계 최연소 300홈런 신기록을 허용한 상대 투수였다. 아이러하게도 둘 다 20년 뒤인 2023년에는 각각 SSG와 두산의 1군 감독으로 맞대결을 펼치게 됐고 두산을 상대로 11승 1무 4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 선수 시절에도 상당히 공격적으로 카운트 싸움을 들어가는 스타일이었다 보니 SSG 랜더스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투수들에게 공격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피칭을 강조한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밀어넣다가 안타를 맞고 홈런을 두들겨 맞을지언정 볼넷으로 주자를 쌓는 꼴은 절대 못 보는 볼넷 혐오자. 홈런으로 경기를 터뜨린 투수보다, 볼넷으로 장작 쌓다가 불지른 투수를 칼같이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2군으로 보내 버리는 극명한 취향이 꽤나 자주 드러난다.[22][23]

  • 2023년 기준으로 김광현, 최정, 김성현, 이재원, 김강민, 고효준은 김원형의 현역 시절부터 같이 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인데 김원형이 감독 부임 이후로도 같은 팀의 선수로써 활약했다. 특히 김광현, 최정, 김강민, 이재원은 선수 김원형과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받기도 했다.

  • 2007~2008년 SK 와이번스 선수로, 2019년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2022년 SSG 랜더스의 감독으로 모두 우승반지를 껴보는데 성공하면서 조범현, 이강철에 이어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해본 세 번째 사례가 됐다.[24]

  • KBO 역사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로 2022 정규시즌 - 2022 한국시리즈를 통합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정근우가 등번호를 바꾸게 한 장본인이다. 원래, 정근우는 16번을 계속 유지해 왔는데 SK 와이번스 입단을 해보니 김원형이 16번을 달고 있었던 것. 차마 선배의 번호를 달라고 할 순 없었기에, 남는 번호였던 8번과 47번 중 8번을 택하게 되어 8번이 정근우의 대표 번호가 된 것이다.[25]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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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월 14일[2] 8월 15일~[3] 감독 부임 자체는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에 했으나 페넌트레이스 개막 전인 2021년 3월 5일에 구단이 SSG 랜더스로 변경됨에 따라 SK 소속으로 지휘한 경기 없이 SSG 초대 감독이 됐다.[4] 2023년 10월 31일 계약기간을 2년 남기고 경질됐다.[5]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감독이고 SSG 랜더스로 구단명 변경 후 첫 감독이다.[6] 전주고 출신 KBO 리그 선수는 김원형 외에도 그의 영원한 친구인 박경완, SK 시절 가을의 영웅이던 박정권, 삼성과 KIA에서 해결사 역할을 한 최형우 등이 있다.[7] 다만 2021년 초 SK가 와이번스 야구단을 신세계그룹에 매각하면서 SK 감독으로서 경기를 지휘한 적은 한 번도 없게 됐다. 고향 구단 쌍방울의 마지막 감독인 김준환과 같은 케이스.[8] 역대 최초는 前 두산 베어스 포수-감독 김태형이다.[9] 은퇴 시점에서는 다승 전체 5위로, 현재는 1위 송진우, 2위 양현종, 3위 정민철, 4위 이강철, 5위 김광현, 6위 선동열, 7위 배영수, 8위 윤성환[10] 쌍방울은 창단 초창기부터 투타의 전력 균형이 제대로 맞춰지지 못한 팀이었다. 그 중에도 투수 부문에서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구단 역사상 내로라하는 스타급 투수를 꼽아봐도 김원형, 조규제, 김현욱, 김기덕, 성영재 뿐이다. 특히 선발진은 10년이라는 짧은 구단 역사 내내 5선발 체제를 제대로 구축한 해가 없었을 정도로 진짜 답이 없었다. 초창기 에이스 박성기부터 이후 짧은 전성기 때의 오봉옥, 최정환 등의 선수들이 나름 터져 주었으나 롱런한 선수들은 아니다.[11] 만약 전북에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지 않고 호남에 해태 타이거즈 한 팀만 있었다면 해태 유니폼을 입은 김원형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12] 당대의 선수로는 이대진, 정민철, 정민태 이와 같은 선수들도 사용하였다. 단, 정민태는 슬로우 커브에 집중으로 사용했다.[13] 그의 영혼의 배터리였던 박경완이 2020년 인터뷰에서 "원형이는 2S 볼카운트에서도 볼을 빼는 법이 없었다. 포수 입장에서는 그때 안타를 맞으면 코치님에게 박살이 나는데, 덕아웃 들어가서 '볼 좀 던지자'라고 하소연 하면 '미안해' 라고 할 뿐 다음 이닝도 똑같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14] 준플레이오프에서 NC 상대로 패배했으나, NC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3위 확정.[15] 첫 번째 사진에서 둘이 같이 걸어온 커리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인지 박경완의 현대 시절 경력(1998~2002)이 누락되어 있다.[16] 당시 재활 중[17]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도 이 별명이 있다.[18] 감독 취임 이후에는 '왕동님'이라고 불린다.[19] 그런데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고 나서 홍보팀이 포토샵의 색 처리를 잘못했는지 SNS에 올린 사진에서는 늙수그레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오키나와, 미야자키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영상에서는 얼굴이 돌아온 편. 그러니깐, 처리를 제대로 못한 게 커서 이상하게 보였다는 것.[20] 2010년에 은퇴하고 2022년에 KIA 감독으로 취임한 김종국이 두 번째, 2017년에 은퇴하고 2023년에 두산 감독으로 취임한 이승엽이 세 번째 사례다.[21] 전라북도 출신으로 범위를 넓히면 해태 타이거즈 최후의 감독이자 KIA 타이거즈 초대 감독이었던 군산시 출신 김성한이 있었다. 쌍방울 최후의 감독이었던 완주군 출신 김준환도 있기는 하지만 단 한 경기의 정식 경기도 치러보지 못하고 구단이 해체됐기에 역대 감독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감독대행으로는 앞서 언급된 김준환 전 쌍방울 감독대행과 김원형의 친구인 박경완 전 SK 감독대행이 있다.[22] 물론 투수의 제구가 완벽하지 않아서 공이 빠지거나, 유인구에 타자가 속지 않거나, 볼배합으로 수싸움을 하다가 타자의 선구안으로 볼넷을 골라 나가는 경우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어디까지나 정타를 맞을까봐 스트라이크 존 안에 공을 꽂아넣지 못 하고 바깥쪽 공만 던지는, 소위 '달아나는 피칭'이 문제인 것. 실제로도 세이버메트릭스로도 볼넷은 타자의 출루율을 높이기 때문에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다. 게다가 볼질하는 투수에 대해 김원형이 성격상 더 얄짤없다고 해도, 원래 상대편이 아닌 이상 볼질은 투수도 코칭스태프도 수비하는 야수와 포수도 심지어 투수팀 팬들도 다 짜증나고 싫어하기 마련이다.[23] 2021년 김세현3연속 밀어내기 볼넷을 주면서도 딱히 심각함을 자각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이자, 칼같이 2군으로 내려버리고 며칠 후 방출시켜 버린 일화는 '세현하다'라는 밈으로 쓰일 정도로 김원형의 성향을 극명하게 대표한다. 물론 김세현은 투수로서의 처참한 성적 이외에도 과거 그와 아내가 저질렀던 업보도 있기 때문에 팀 내 워크에씩 함양을 위해서라도 방출할 이유는 충분했다.[24] 다만 아직까지 한 구단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해 본 사례는 없다. 조범현도 선수 때는 OB(1982년), 코치 때는 삼성(2002년), 감독으로써는 KIA(2009년)에서 해보는 등 각자 다른 팀 소속으로 우승을 했고 이강철은 선수와 코치 시절 우승을 모두 해태-KIA에서 해 봤으나 감독으로써의 우승은 kt에서 해봤다. 하물며 삼성 코치로 3번, 감독으로 4번이나 우승을 이뤄본 류중일도 현역 시절에는 우승반지를 한 번도 얻어보지 못했다. 간혹 김태형 전 두산 감독이 한 구단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우승을 해본 사례로 알려진 경우가 있지만 김태형은 2001년 한국시리즈 당시 정식 코치가 아니라 엔트리에 없었고 선수(1995년), 감독(2015~2016년, 2019년)으로만 우승을 경험해 봤다.[25]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16번의 반이 8번이고 오뚝이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8번을 고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