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음이의어에 대한 내용은 TK(동음이의어) 문서
TK(동음이의어)번 문단을
TK(동음이의어)# 부분을
, 대구경북 전반에 대한 내용은 대구경북 문서
대구경북번 문단을
#s-번 문단을
대구경북#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대경권 지도.svg

1. 개요
2. 정치적 구분으로서 TK의 역사
3. 현황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구경북(대경권)을 가리키는 두문자어로, 대구광역시의 이니셜 T, 경상북도의 이니셜 K를 합친 것이다. 김진현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이 1987년 12월 23일 칼럼에서 이 표현을 제일 먼저 썼다.

TK는 단지 대구경북의 지리적 준말이 아니라 대구경북의 정치적 성향을 강조할 때 쓰이는 말이다. 경상도 안에서도 정치 성향이 좀 다른 PK와 구분해서 말할 때도 사용되는 편이다.

현재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DG(Daegu-Gyeongbuk)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이 쓰일 적에 생긴 말이라서 TK(Taegu-Kyŏngbuk)가 되었다. 현재 DG는 대구경북이 아닌 대구광역시의 이니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자세한 건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항목 참조.

TK의 범위는 당연히 대구와 경북을 가리키지만, 경상남도임에도 부산, 창원보다 대구 생활권에 가까운 경남 서·북부 일부 지역(거창, 창녕, 합천 등)도 넓은 의미의 TK에 포함되기도 하는데 경상남도의 해당 지역 출신이면서 TK계로 분류되는 정치인으로 전두환, 홍준표[1]#[2] 등이 있다. 이들은 고향은 경남이지만 청소년기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보냈고, 정치 기반도 대체로 대구경북 중심이기 때문에 TK계로 분류된다.

주로 언론에선 보수정당의 지지도가 높은 대경 지역을 일컫는 의미의 정치 용어로 많이 쓰이는 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서들에서 보이듯 과거엔 1950년대까지는 조선모스크바라고 불렸을 정도로 좌파의 천국이었던 지역이었다. 그 사례가 1946년에 발생한 대구 10.1 사건, 박정희의 대표적 사법살인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사람의 상당수가 대구, 경북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 학생의거를 주도하고 박정희 정권을 타파하려는 운동권 세력들 중에서도 TK 출신이 제법 있었다. 1960년대 학생운동의 리더였던 김중태는 경북 의성 출신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역주의도 지역색도 두드러지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영남이나 호남권에서도 특정 정당 후보에게만 몰표를 주진 않았다.


2. 정치적 구분으로서 TK의 역사[편집]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TK 출신의 대통령은 아래와 같다.

경상북도 구미시 출신. 박 전 대통령의 출생 당시에는 구미시가 아니라 선산군 구미면이었다.
전두환은 경상남도 합천군 출신이지만 초등학교 졸업 당시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대구광역시에서 자랐다. 아울러 합천군 자체가 PK 권역의 창원시·부산광역시보다 대구에 가까운 생활권이며, 실제로 이 지역 출신은 대경권의 명문 학교로 많이 진학하는 등 PK보다 TK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지역이다. 실제로 합천군 일대의 서부경남은 경남에서도 보수세가 TK와 비슷할 정도로 강한 편.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서 육군사관학교 입교 전까지 줄곧 대구에서만 자랐다.

이렇게 80년대까지는 이른바 TK 군사정권이 계속 집권했다. 21세기 들어서도 TK 쪽 대통령이 탄생한다.

태어난 곳은 일본이지만 실질적으로 성장한 곳은 경상북도 포항시다.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지만 실질적으로 대구에서 산 기간은 얼마 되지 않으며, 초·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서울특별시에서 다녔다. 다만 구미 출신인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 영향 때문에 TK가 정치적 근거지가 될 수 있었다.

TK 출신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면서 그 영향으로 이후에도 민주공화당 -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 자유민주연합[3]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의 강력한 텃밭이 되었다. 특히 노년층이 많은 군 지역이나, 이들의 고향이거나 경제적 혜택을 입은 도시에서는 여전히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매우 강하다.

1970년대 ~ 1990년대만 해도 대구는 구 마산시와 같이 섬유공단이 많았었다. 단, 구 마산시는 상도동계의 영향으로 대구보다는 민주당계 정당의 득표율이 높았다. 참고로 이는 2023년 현재도 유효하다. 또한 문민정부 시기에도 민자당 - 신한국당이 우위를 점하던 경상북도와 달리 문민정부 시기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4] 민자당 - 신한국당이 무소속과 자민련 등에 밀려 참패하고 신한국당이 통합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이 된 15대 대선부터 다시 거대 보수정당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박정희의 고향이며, 공단의 영향으로 외지인과 젊은층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박근혜에게 80% 이상 몰표가 나왔다. 단,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는 40% 초반으로 김천시와 더불어서 경북에서 홍준표의 득표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 되었다.
포항은 이명박이 유소년기를 보낸 지역인지라 친이계의 세력이 강하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비롯해서 현 시점에서는 TK를 비롯한 영남권의 정치적 격변이 계속되고 있다. 중도보수를 표방한 바른미래당은 TK에서 지지도가 가장 높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5~15%대를 웃돌고 있고,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40~60%대로 보수의 심장답게 견고하다.

특히 PK를 비롯한 동경남에서는 파란을 일으켜 민주당계 정당 소속 후보가 당선되고 서경남과 TK 지역에서도 경합을 벌이는 지역도 몇몇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前 대통령의 4선 지역구대구광역시 달성군은 민주당과 경합을 벌이거나 10~20% 차이로 자유한국당이 우세하고, 노동자들이 많아 진보 계열이 어느 정도 우세인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에서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게 몰빵을 보여주었지만 지선을 시점으로 경합을 벌여 급기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장세용 후보가 구미시장에 당선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명박 前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도 접전을 벌이고 포스코가 있는 포항제철소 지역에서는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는 등 세 대통령의 지역구의 정치적인 변화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소속 의원도 많이 당선되고 있다.

앞으로도 TK 민심이 국민의힘 텃밭으로 갈지,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변화될지, 새로운 대안정당이 등장하지 않는 한 요동치는 지역이 될지 어느 방향으로든 향후 관심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3. 현황[편집]


2016년 10월 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정치적 스캔들이자 최악의 국기 문란 사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지고 분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시각에서는 대구, 경북이 박근혜에 대한 지지만 철회한 것 뿐이지, 박정희와 보수에 대한 지지는 철회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는 견해도 꽤 많이 있다. 그 증거로 (TK 아닌 서울 출생이던 최순실 사태에 엮이고 말았다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정 지지도가 타 지역 평균이 0~4%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반해, 대구, 경북은 검찰 조사 불응 후폭풍으로 잠시 3%대로 떨어졌다가 바로 다음 주에 10% 내외로 지지율이 금방 회복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아직도 2위를 수성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높은 지지율과 최순실 게이트 사건 이후 늘어난 부동층이 최악의 게이트 사건 후에도 야당을 선뜻 지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세월이 지나면서 비토 여론이 식으면 다음 선거 때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중, 노년층의 표로 또 다시 자유한국당 친박계로 흘러가면서 TK 자민련을 만들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TK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다만, 재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낮아서 조직과 노인표가 중요하고 상주시/의성군 등 재보궐선거를 한 곳이 농촌 지역이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결과이기도 하다. 학생, 청년과 노동자가 많아서 민주진보세력의 지지가 어느 정도 나오던 대구나 경산, 칠곡, 구미 등의 위성도시나 사드 문제 때문에 박근혜와 자유한국당에 대한 반감이 강해진 성주, 김천 등에서는 자유한국당의 당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자세히 보면 문재인은 중노년층의 자유한국당 지지에 질린 TK의 젊은이들이 결집하면서 저번 대선에 비해 심상정이 진보표를 거의 5% 정도 갈라 먹는 상황에서도 2-3% 정도 더 득표했고 홍준표는 보수표 일부가 기권하거나 안철수유승민으로 분열하면서 TK에서 1등은 했지만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 TK의 콘크리트도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이 보이고 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TK에서도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민주당 득표율이 30-40%대로 상승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대구경북은 수성구 을 단 한 곳을 제외한 전 지역구에서 미래통합당을 뽑아 한국 보수우파의 요람임을 공고히 했다. 미래통합당 후보가 낙선한 수성구 을의 당선자는 다름 아닌 무소속 홍준표로, 대권주자급 거물이라는 그의 높은 이름값 때문에 생긴 예외 사례였으며 무소속이라 해도 어차피 미래통합당에서 탈당한 후보였다. 집권 초반기에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80%에 육박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민주당 쪽으로 추가 약간 기울어지더라도 20% 차이로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경합까지는 아니지만 비등하게 이긴 지역도 있어서 보수야권이 텃밭을 뺏길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침체, 조국 사태 등으로 보수층이 결집하였고, 민주당 정치인들의 TK에 대한 잦은 망언 등으로 이어져 현 정권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면서 대구, 경북 전 의석을 보수계열이 싹쓸이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 들어서 7회 지선에서 민주당이 당선되거나 선전했던 대구광역시, 포항시, 구미시에서도 보수세가 강해져서 40%대에서 30%대로 하락을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나마 민주당이 경합열세였던 지역에서 열세로 떨어졌고, 일부 지역구에선 무려 70% 이상의 높은 득표율을 던졌다. 보수가 패하거나 신승한 지역구가 많았던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와 비록 보수세가 다시 회복되었지만 민주당도 악재 속에서 나름 선전한 부울경(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과도 다르게 보수화가 강해지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나마 민주당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정당의 텃밭 중에서도 핵심 지역이면서 보수결집이 다시 강해진 TK의 전 지역구에서 평균 25-30% 정도의 표를 확보하였다. 이 때 경주시는 정의당 후보와 표가 갈리기도 했는데 그 후보는 2014년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인용한다는 판결을 내렸을 때 법정에서 "오늘로서 헌법이 정치 자유와 민주주의를 파괴하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살해한 날입니다.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라고 외친 권영국 변호사이다. 이렇게 경주시를 제외하면 민주당이 TK의 전 지역구에서 최소한 선거비 전액 보존에 성공한 것에 나름의 의의가 있는 상황이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TK의 보수세는 20대 총선 이전보다도 더 강해졌다. 사상 최초의 TK 출신 민주당 후보인 이재명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TK 전역에서 윤석열은 약 73.9%, 이재명은 22.8%를 득표하였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원래는 경상북도 지역이 보수세가 가장 강하고 대구가 그 뒤를 따랐으나, 이번엔 윤석열 후보가 대구에서 75.1%를 얻고 경북에서 72.8%를 얻었다. 점점 젊은층의 보수화가 가속되어가는 과정에서 젊은 층의 인구비율이 높은 대구가 그 영향을 받지 않았냐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5]

대구·경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구경북 문서 참조.


4.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04 02:08:25에 나무위키 TK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홍준표는 제35대 대구광역시장이다.[2] 참고로 전두환이 홍준표의 이웃 동네 아저씨였다고 한다.[3] 15대 총선에서는 김영삼문민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대구광역시에 한해 제1보수정당인 신한국당이 아닌 자민련이 13석 중 8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4] 1993년 재보궐선거(대구 동구 을), 1994년 재보궐선거(대구 수성구 갑),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15대 국회의원 선거.[5] 그 밖에도 민주당의 대구 봉쇄론과 예산차별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대구이기 때문에, 그것도 큰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추측이 있다. 반대로 경북의 경우에는 이재명의 고향인 안동시가 포함되어있는데 이것도 이재명이 대구보다 경북에서 더 많은 표를 얻는 데 영향이 있다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