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창단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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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진행과정
2.1. 배경
2.2. 급물살을 탄 9구단 창단 논의
2.2.1. 왜 창원시였는가?
2.3. 2011년 1차 이사회
2.4. 2011년 2차 이사회
2.5. 2011년 3차 이사회
2.6. 2011년 4차 이사회
2.7. 2011년 5차 이사회
2.8. 창단 작업
2.8.1. 이후 로드맵
2.8.2. 선수수급
2.8.3. 외국인 보유한도 확대 방안
2.8.4. 구단명
2.8.5. 스카우트
2.8.6. 초대 감독 후보군, 그리고 감독 선임
2.9. 창원시의회와 NC의 갈등
3. 주체별 입장
3.1. 엔씨소프트
3.2. 롯데 자이언츠
3.3. 타 구단
3.4. 야구계
4. 의미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엔씨창단슬로건1.jpg

한국프로야구에서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이후로 리그가 9구단으로 확장되는 과정에 대한 문서.


2. 진행과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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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구단 엔씨소프트 다이노스 창단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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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NC의 페넌트레이스 우승 후 허구연의 구단 창단 뒷이야기

2.1. 배경[편집]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아홉번째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모기업 재정난으로 해체한 이후, KBO는 구단 매각 과정에서 현대를 대체할 기업을 찾았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얽히면서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후 네이밍 스폰서 형식으로 서울 히어로즈가 창단되었지만 스폰서가 없어 구단 운영에 각종 애로사항이 발생하는 것[2]을 보면서 KBO는 8구단 체제의 위험성을 느꼈다. 따라서 안정적인 리그 진행을 위해 9, 10구단 창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추진하기 시작했다.[3]

2010년 4월 엔씨소프트 R&D 센터에 야구해설가이자 KBO야구발전실행위원회 위원장인 허구연이 초청되어 강연을 가졌다. 강의가 끝난 뒤 허구연은 평소에 프로야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 가벼운 티타임을 가졌고, 프로야구계의 현황과 신규구단 창단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갔다고 한다. 그 후 김택진 대표는 사내 임원진과의 충분한 논의 끝에 아홉번째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허구연 위원장과의 만남 6개월 후 프로야구단 창단 TF팀을 구성하게 된다.


2.2. 급물살을 탄 9구단 창단 논의[편집]


2010년 한국시리즈가 진행 중이던 2010년 10월 16일, 부산일보에 창원시가 9구단 창단에 나선다는 기사가 나왔다. 통합창원시의 전신 중 하나인 옛 마산시롯데 자이언츠의 제2연고지로서 열성적인 야구팬으로 유명했고, 1989년 한일합섬과 함께 제8구단 유치에 나섰던 바 있다.

10월 26일 KBO와 창원시가 신규구단 창단 시 창원시 유치에 관한 업무협약(제9구단 창단 MOU)을 맺었다. 이는 통합 창원시가 각 지역의 통합성을 높이기 위할 목적으로 프로야구단 유치 후 현 마산 야구장 시설을 보완하고, 별도의 구장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4] 그리고 이때부터 롯데의 반대가 시작되었다.

11월 26일엔 미국 마이너리그 몇개 구단의 운영과 경기장 식음료판매 기업으로 알려진 오베이션스사가 신규 구단 창단 신청서를 접수하고, '안산 돔구장'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외국기업에 대한 거부감으로 큰 반향을 몰고오진 못했다.

12월 13일 엔씨소프트 프로야구단 창단 TF팀은 창원시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 9구단 창단의향서를 비공개로 KBO에 제출했다.

전날 있었던 고원준의 트레이드로 시끌시끌했던 야구계에 12월 22일, 폭탄과 같은 뉴스가 드랍되었다. 엔씨소프트가 9구단 창단 의향서를 제출했다는 것을 공개한 것이다. 과거에 농협, STX, KT의 인수가 무산된 이유 중 하나는 사전 작업 과정이 언론에 노출되어 제대로 된 준비 시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엔씨소프트의 창단 의향은 자신들 본인이 밝힌 것이며, KBO는 철저하게 보안을 지켜냈다. 하지만 롯데는 이미 사전 감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가 9구단 창단 의향을 밝히자 선수협-일구회등의 야구단체와 김성근-김인식 등의 야구인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창원시도 반색하면서 마산 야구장 보수 및 창원구장 신설 및 장기대여, 네이밍 라이츠[5] 등을 부여할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야구팬들의 지지도 매우 높았다. 그러나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롯데는 바로 반대의사를 밝히고 당일 주식시장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다음날 KBO 이상일 사무총장은 인터뷰를 통해 엔씨소프트를 비롯, 비공개의 2개 기업이 더해져서 3개 기업이 창단의향을 밝혔다는 것을 공개했다. 창원을 기반으로 하는 9구단에 대한 논의였기에 안산 돔구장을 요청한 오베이션스사의 논의는 공식적으로 제외되었다. 기업이 더 있는 것이 알려지자 9구단(창원) - 10구단(수원)으로 9, 10구단 동시창단설이 나오기도 하였다.[6]


2.2.1. 왜 창원시였는가?[편집]


국내 스포츠 특성상 수도권에 프로구단들이 몰려 있고, 프로야구단 또한 8개 구단 중 4개 구단이 수도권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KBO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9구단 수도권 창단 불가 조건으로 지방 연고지를 물색하였다.[7]

당시 KBO는 제9구단을 2~3년 이내로 1군 리그에 진입시키려 했고, 따라서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중 프로야구 경기를 곧바로 진행할 수 있는 시설이 구비된 곳은 마산전주 둘 뿐이었다.[8] 그러나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은 1999년 쌍방울이 재정난으로 해체된 이후 사실상 방치되면서 제대로된 시설 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노후화되어[9] 야구장 재활용이 불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KBO는 마산 야구장을 9구단의 연고지로 최종 낙점하여 창원시와 손잡고 창단을 추진하게 된다.

창원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창단 논의는 2010년 6.2 지방선거통합시 출범 국면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기존 마산구장을 보수하면 홈구장으로 사용할 수 있고, 행정구역 통합으로 108만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좋은 여건으로 작용했다.

창원시 입장에서는 창원마산시, 진해시가 합쳐진 통합 창원시가 2010년 출범하며 갖은 진통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야구단 창단을 계기로 프로야구가 시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정치적인 의도도 있었다.#

당시 창원시장이었던 박완수인터뷰에서 "창원, 마산, 진해 등 3개시가 통합되면서 지역 통합에 따른 이질감을 이른 시일에 극복하고 지역민끼리 강한 결속력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스포츠가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신규 야구단의 유치로 경제적인 파급효과와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마산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시민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계기를 조성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신규 프로야구단 유치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2.3. 2011년 1차 이사회[편집]


롯데의 반발이 첨예한 가운데 9구단 창단관련 과정을 확정할 2011년 1월 11일, 2011년 KBO 제1차 이사회가 열렸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못미쳤다. 엔씨소프트의 창단 여부를 심의하여 결론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오늘 이사회에서는 9.10구단 창단이 필요하다는 것에 롯데를 제외한 7개 구단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신생구단의 창단 자격에 대해서는 기준을 마련하여 추후 이사회에서 논의하기로 하였다.[10] 즉, 신생구단 창단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는 선에서 그쳤다. 확정된 줄 알았던 창원시의 9구단 유치도 확정이 아니라고까지 하였다.


2.4. 2011년 2차 이사회[편집]


다소 비관적인 전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2011년 2차 이사회가 2월 8일 열렸다. 8개 구단 사장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1시간 50분만에 나온 결과는 'KBO가 정한 9번째 신생구단 창단 지침[11]'을 승인하고, 이후 우선협상자 결정을 KBO에 일임한다는 것이었다. 표결은 하지 않았고 롯데를 제외하고 7개 구단의 찬성. 그리고 KBO는 바로 창원시-엔씨소프트를 우선협상자로 결정하였다.

창단 지침은 구단의 경우 유동비율 150% 이상, 부채비율 200% 이하, 자기자본순이익율 10% 이상 or 당기순이익 1천억 이상, 모기업 신설구단 지원계획의 적정성과 오너의 구단주 취임 충족, 자금 조달 및 자금운영 계획의 적정성, 야구발전 기여 계획, 보호지역(연고지)의 전용구장 확보와 신청 법인의 보호지역 주민의 여론, 지자체의 지원 등을 꼽았다. 신규구단 보호지역의 경우는 해당도시 인구수가 100만명 이상이 되어야 함을 명시하였다.

신규 구단 후의 조건은 상법상 납입 자본금 10억원 이상의 주식회사의 설립과 가입 승인 이후 5년 내의 2.5만석의 전용구장 확보, 가입금 및 야구발전기금(총 50억 이상), 100억원의 보증금 예치 후 5년간 참가자격 유지 시 세금을 제한 원금과 이자전액을 반환하며 유지하지 못할시 KBO에 귀속, 창단 후 퓨처스리그(2군 리그) 참가기간에는 회비의 20%만 납부하고 표결권제한-사업수익분배 미지급 등이 규정되었다.

한때 장병수 롯데 사장이 중간에 퇴장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이는 지난 1차 이사회가 3시간 가량, 이대호 연봉조정위가 4시간 가량 걸렸던 것에 비해 이번 이사회가 너무 빨리 끝난 탓에 정상적으로 이사회가 종료된 후에 퇴장하는 것을 기자들이 중도 퇴장했다고 보도한 탓이다. 가장 먼저 퇴장하긴 했다.

아직 '우선협상자' 자격이며, 우선협상이 종료된 이후에도 구단주 총회의 추인을 받아야 하지만, 세부협상과 사실추인일 뿐임으로 9구단 창단까지의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 그러나 이번에 확정되지 않은 선수충원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예정이다. 1군 합류 시점도 이후 협상을 통해 정해질 예정. 세부협상은 4월 2일 개막전까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수충원 문제로 당장 2011 시즌부터 2군 리그에 참여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편 제9구단 창단논의가 본격화되자 경기도수원시제10구단을 반드시 창단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김문수 지사가 적극적으로 뛰고 있기에 2011년 3월부터 시작되는 KBO 회의에서 제10구단 문제를 공식 의제로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KBO역시 올해 안에 창단할 구상을 하고 있다고..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소재의 A기업을 후보로 삼고서 추진 중이라는 듯.


2.5. 2011년 3차 이사회[편집]


2011년 3월 22일에 열린 KBO 제3차 이사회에서 8개 구단 사장단의 합의에 따라 신생구단으로서 정식적인 자격을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역시나 롯데만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후 열리는 구단주 총회에서 최종 승인만 받으면 9구단으로서의 자격은 완전히 다 갖추게 된다.

그리고 같은 날 엔씨소프트는 초대 단장에 이상구 전 롯데 자이언츠 단장을 선임했다.

KBO는 창원시에 새로운 구장이 2015년까지 지어지지 않으면 보증금 100억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조항을 새로이 집어넣었고, NC는 순순히 이를 받아들였다.


2.6. 2011년 4차 이사회[편집]


2011년 5월 17일에 열린 4차 이사회에서는 KBO 이사진 규정을 '총재 및 사무총장을 포함한 10인 이내'에서 '총재, 사무총장, 각 구단 대표이사'로 변경하였다. 즉 엔씨소프트 구단 대표이사가 이사진에 합류하면서 KBO 이사진은 11명이 된다.


2.7. 2011년 5차 이사회[편집]


2011년 6월 21일에 열린 5차 이사회에서는 신생구단의 선수수급방안이 확정되었다. 수급방안은 2012~2013 시즌 드래프트에서 신인 2명 우선지명 및 2라운드 종료 후 5명 특별지명 / 2012 시즌 종료 후 각 구단에서 보호선수 20명 제외한 1명씩 영입 / 2012~2013 2시즌간 FA를 시즌마다 최대 3명까지 계약 가능 / 용병 4명 등록, 3명 출전(기존구단 3명 등록, 2명 출전 가능)이다. 여기에 더해 엔씨소프트는 2011 시즌 종료 후 각 구단별로 보호선수 25명을 제외한 1명씩을 영입 가능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안에 대해서는 실행위원회에서 차후 검토하도록 했다.[12]

2차 드래프트는 2011 시즌 종료 후 격년제로 열리며, 용병, FA, 군보류 선수 및 보호선수 45명을 제외한 선수들 중 당해년도 성적의 역순으로 최대 3라운드까지 지명할 수 있고, 신생구단은 3라운드 종료 후 5명을 추가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2.8. 창단 작업[편집]


외부 전문 컨설팅 업체에 감독, 단장을 포함한 야구단 인력 구성방안에 대한 자문을 의뢰한 상태라고 한다.


2.8.1. 이후 로드맵[편집]


3월 22일 정식 구단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였고 구단주 회의에서 최종승인이 남았으나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수 수급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중.


2.8.2. 선수수급[편집]


3월 8일 구단 단장들의 실행위원회에서 나온 방안은 1군 진입 직전년도 종료 후 보호선수 20명 외 1명을 우선적으로 지원. 2013년 종료 후에는 1년 간 자유계약선수(FA) 선수 3명까지 계약. 구단에 지명되지 않은 상무(6명), 경찰청(9명) 선수에 대해 우선 교섭권을 2년 간 부여.

신인 선수에 대해서는 2명을 우선 지원하며 2라운드 종료 후에는 2년간 5명을 특별 지명. 외국인 선수는 2년 간 4명 등록, 3명 출전. 더불어 한국형 룰5 드래프트인 2차 드래프트는 보호선수 50명 중에 선수를 뽑아가도록 유도.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것이 저 지원방안대로 할 경우 1군에 진입하면 동네북이 될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위의 방안대로라면 1군에서 제대로 뛸만한 선수는 각 구단에서 지원받는 8명 빼고는 없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초특급 신인이라고 하더라도 현대 프로야구에서 바로 첫 해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13] 구단에 지명되지 않는 상무, 경찰청 소속 선수들이라면 1군 전력이라고 보는 것조차 어렵다.

더군다나 그나마 지원방안이라고 나온 2차 드래프트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보호선수 50명을 선정할 때 군보류 선수, 신인선수, FA대상자 등은 자동 보호 대상이다. 그 외 선수들로 50명을 보호하고 나서 남는 선수들은 2군에서도 전력감이 못 되는 선수다.[14]

이런 문제점 때문에 아직 지원방안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는 별로도 NC에서는 자체 입단 테스트를 통해서도 선수 수급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대상에는 경찰청과 사회인팀 선수도 포함이라고.

2011년 6월 20일까지 1차 서류전형을 받는다고 한다.


2.8.3. 외국인 보유한도 확대 방안[편집]


상대적으로 약한 신규구단의 전력을 강화시키는 겸 하여 외국인 선수 엔트리의 확대가 논의되고 있다. 선수협에서도 신규구단 안착 시 외국인 보유한도 환원, 등록선수를 63명에서 67명으로 확대, 최저연봉을 현행 2400만원에서 300~500만원 인상의 3대 전제조건 수용을 내걸고 3명 보유 2명 출전으로 확대하는 데 찬성의사를 밝혔다.

외국인한도 확대는 구단 측에서는 전부터 확대를 시도해왔으나, 내국인 선수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선수협이 그동안 반대해온 일이었다. 이는 '내국인 선수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선수협의 설립취지상 주장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 자기들 밥그릇 지키자고 만든 이익단체니까 말이다.

물론 한국야구보다 인프라가 훨씬 넓은 일본프로야구가 한 구단당 4명의 외국인선수를 1군에 동시출장시킬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지나친 폐쇄성이자 이기주의라고 할수 있다.[15] [16] 9구단 & 10구단이 하루빨리 연착륙을 하고 팀간 전력차이도 없앤다는 명분을 위해서도 9구단 & 10구단이 생긴다면 외국인선수 보유 & 출장수를 대폭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꽤 있는 상황.

9구단이 창단 가시화가 되고 10구단도 추진 중인 상황에서 현실화된다면 팬들의 의견은 용병 3명 보유 3명 출장 혹은 4명 보유 4명 출장으로 대폭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선수협의회에서는 3명 보유 2명 출장이란 의견을 고집하고 있다. 2개 구단이 생기면 새로운 자리가 굉장히 많이 생기는 셈인데 선수협의회 입장도 이해하기는 하지만 두개구단이 창단 확정되는데 겨우 3명 보유 2명 출장으로 늘리는 수준이라면 구단도 늘어나고 자리도 늘어나는데 프로야구 균형발전이란 측면에서 프로야구 선수협의회가 전향적으로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요즘 외국인은 투수만 뽑으니 3명 보유 2명 출장이면 3명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한명이 2군 내려가면 최소 10일은 2군에 있어야 하고 그사이에 선발 로테이션이 꼬일 수도 있기에 3명 보유 2명 출장은 선수협의회가 너무 지나치게 자리에 연연하는 입장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오죽하면 '철밥통' 소리까지 나올까...

9구단 창단과 동시에 기존팀은 3명 보유 2명 출장, 엔씨는 2년간 4명 보유 3명 출장으로 되는 분위기인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고 새로운 팀이 하나 창출되는데 선수협에서 그거밖에 양보 안하느냐는 야구팬들의 의견도 있는 상태다. 9구단 창단되면 기존팀은 3명 보유 3명 출장 신생팀은 2년간 4명 보유 4명 출장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늘어난 팀이 생김으로써 선수가 더 필요해지고 전력급 선수가 분산되는 효과가 생기는 만큼 이게 합리적인 방법일 가능성이 높다.


2.8.4. 구단명[편집]


2011년 4월 엔씨소프트는 전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야구단 이름 온라인 공모전을 개최했다.# 선정자에게는 엔씨소프트 프로야구단 홈경기장 영구지정좌석, 순금(10돈 상당)으로 제작된 입장권, 2011 한국시리즈 티켓(1인 2매), 엔씨소프트 음악서비스 '24hz'의 1년 이용권을 제공한다.

9구단 팀명과 관련해 매년 '아구데이축제'를 열고 있는 '한국아구데이위원회'란 단체는 "아구(아귀의 사투리)를 엠블럼으로 한 '아구스'란 한글 이름을 9구단 팀 명으로 채택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그러나 야구팬들의 반응은 당연히 싸늘했다. 애초에 아귀라는 것 자체가 통합 이전 마산만의 상징이었을 뿐 다른 진해나 창원과는 그다지 연관도 없다.[17] 이러한 점에서 구 마산만을 생각하는[18] 핌피현상식 이름 짓기라면서 까였다.

이에 대해 창원시와 엔씨소프트측은 5월에 발족하는 야구사업법인과 협의해 명칭을 정한다는 입장. 기본적으로 창원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2만 2000여 명이 7900여 건의 아이디어를 낸 가운데, 2011년 8월 2일 공룡을 뜻하는 NC 다이노스(NC DINOS)가 최종 선정되었음이 공지되었다.#. 이후 법인명도 ㈜엔씨소프트프로야구단에서 NC다이노스프로야구단으로 공식적으로 변경되었다. NC라는 영문 브랜드에는 연고지인 창원이 3개 시(창원·마산·진해) 통합으로 새로운 창원(New Changwon)으로 재탄생해 '스포츠를 통한 지역 통합'에 앞장서겠다는 비전이 담겼다.


2.8.5. 스카우트[편집]


4월 25일 스카우트 진 구성 완료.

전 용마고 박동수 감독이 팀장. 팀원은 양후승(대전고 감독), 유영준(장충고 감독)[19], 전종화(전 LG배터리 코치), 구동우(청원고 투수코치), 지연규(북일고 투수코치), 황현철(경찰청 수비코치), 문왕식(순천 이수중 코치)씨 등이다. 해당기사 전체적으로 고교야구 등 아마야구에 정통한 분들로 구성되어 신인지명을 위한 초석으로 보인다.[20]

향후 스카우트진에서 몇 사람은 코칭스탭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고 지연규, 구동우, 전종화, 양후승 스카우터는 코치가 되었다.


2.8.6. 초대 감독 후보군, 그리고 감독 선임[편집]


엔씨 다이노스의 초대 감독 후보로 선동열, 김인식, 김재박, 이순철, 최동원, 양상문, 이만수, 제리 로이스터 등이 거론되었다. 엔씨소프트는 각 감독후보들의 장단점을 고려해 가장 경험이 많은 감독 중에서 선발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선동열 전 삼성감독은 신생팀 창단감독설을 부인하면서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알려졌으나 사실 본인은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하며[21] 로이스터는 MLB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던 중 엔씨 측에서 감독 선임을 선수단 구성 이후인 2011년 가을 이후에 하겠다고 밝히면서 감독 후보군은 현직 감독들로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김성근, 김경문 감독이 모두 2011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끝나기 때문. 이들 모두 선수육성과 팀운영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엔씨가 현직 감독 중 한 명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는 야구팬들의 추측이 있었다. 또 김경문 감독은 2011 시즌 중 사퇴했고 김성근 감독도 SK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2011 시즌 후 감독들의 대이동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2011년 8월 31일 NC는 초대 감독으로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인 김경문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기간 3년에 총 14억에 계약. 김경문 감독의 육성 능력을 높게 보고 감독으로 선임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최동원의 오랜 팬이었던 김택진 구단주가 애초에 최동원을 NC 초대 감독으로 임명하려 했다는 것을 창단 몇년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허나 최동원의 건강 문제로 인해 모시지 못했다고.


2.9. 창원시의회와 NC의 갈등[편집]


삐걱대는 창원 9구단 창단작업, 재협상 주장의 3대 쟁점은?

창단 작업 전 창원시의 반응만 보면 제9구단의 앞날에는 핑크빛 미래만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시의회는 '본사 이전 또는 R&D연구센터 건립을 포함해 NC가 지역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엔씨에 태클을 걸었다. 처음 엔씨소프트와 프로야구단 창단 협약을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 와서야 뒷북을 친 것으로, 몇몇 의원은 망언[22]을 하기도 했다. 지역 정치계에 능통한 사람들은 이를 박완수 당시 통합 창원시장과 창원시의회 간의 알력다툼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에 2011년 6월 16일 엔씨소프트가 어쩔 수 없이 구장 건설비 30%까지 지원해줄 수 있다는 화끈한 지원방안을 내세웠으나, 시의회는 또다시 미지근하게 반응했고 엔씨 측은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미 10구단 창단설까지 흘리던 수원시를 비롯해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완주군의 공동창단, 용인시도 프로야구 구단 유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이러한 외부요인 때문인지 2011년 6월 28일 창원시의회는 프로야구 9구단 창단협약을 최종 통과시켰다.[23]

이후 메인 홈 구장 신설 부지 선정과 관련하여 논란이 일어나면서 삐걱거리기도 했다.

3. 주체별 입장[편집]



3.1. 엔씨소프트[편집]


창단 추진 당시 경제가 매우 안 좋았고 창단 논의를 하던 일부 기업들과 협상 중 수도권 연고를 원하던 일부 기업들이 대부분이었고 9구단 수도권 연고 창단 불가 방침을 매우 중요시 여겼던 KBO는 의견 마찰로 난항을 겪게 되면서 계속 무산되고 있었는데 게임 기업이며 이미지가 부정적이고 기업 규모가 크지 않아서 협상 대상자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던 NC소프트 회장인 김택진이 직접 KBO 사무실로 찾아와 설득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9구단 창단 의향 의사를 밝힐 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통합 창원시의 뜨거운 유치 열정, KBO의 강력한 신생구단 창단 의지와 야구팬들의 강한 열망, 엔씨소프트의 창의성, 도전정신, IT 기술력과 노하우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더 즐겁게 만든다는 기업 목표가 어우러져 창원 지역과 우리나라 프로야구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 마련을 위해 의향서를 냈다" 게임회사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벗고, 삼성-LG-SK-롯데 등 굴지의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시즌 중 매일같이 기업명이 노출됨으로서 얻을 수 있는 홍보효과도 크다.

하지만 NC도 연고지 부분에 있어서 9구단 창단 기업으로 확정되자 서울이나 수도권 1도시를 원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KBO는 9구단 수도권 창단 불가 방침을 매우 중요시할 때라 NC는 그렇다면 부산에 제2홈을 쓰고 싶다고 의견을 피력하였다. KBO는 롯데와 부산에 협의를 먼저 구하라고 통보하였고 기사 내용과는 좀 다르게 롯데의 강력한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http://blog.daum.net/zeeshan/16490411

창단 발표 첫날에는 주가가 크게 떨어졌으나,[24] 이후 실질 운영비는 연 30~50억원 수준으로 엔씨 운영에 미칠 영향이 적을 것이란 분석과 향후 이미지 개선과 마케팅 효과까지 따지면 실보다는 득이 많을 거란 평가 등이 이어지면서 하루 만에 반등세로 돌아섰다.

2011년 2월 8일, KBO에서 제9구단 창단을 위한 우선협상자로 지명되었다. 당장 창단은 아니고, KBO와의 최종협상을 남겨두고는 있지만 큰 고비를 넘겼다. 이로서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이유로 엔씨소프트 주가는 당일 주식시장 전체 7%가 급락하는 가운데도 오랜만에 5% 넘게 급등하고 다음날도 7%나 오르는 등 객관적으로도, 시장 상황으로 보아서도 상당한 폭으로 주가가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반대표를 던진 롯데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3.2. 롯데 자이언츠[편집]


롯데 자이언츠NC 다이노스 창단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야구계와 야구팬들에게[25]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어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롯데가 반대하는 공식적인 이유는 현재(당시) 히어로즈 구단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파행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구단을 늘리는 것은 KBO의 과욕이라는 논리였다. 장병수 롯데 사장은 "부실구단이 생기면 모든 책임은 KBO에 있다"라면서, 신생구단의 기준이 30대 기업이거나 연간 홍보비용이 5천억 이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병수 사장은 또 "9구단이 창단되면 리그 수준이 저하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NC가 1군 진입 2년차부터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반면 롯데가 계속 하위권에서 맴돌면서 장병수 사장이 짤린 지 몇 년이 되도록 장병수 사장 본인과 롯데가 함께 욕을 먹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은 사실 다 표면적인 것이고, 롯데가 9구단 창단에 반대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롯데의 (명목상의) 광역 연고지인 경상남도에 새로운 야구단이 들어온다는 것 때문이었다. 부울경 지역 800만 인구를 기반으로 마케팅을 하는 구단에서 약 절반 가까운 300만명이 넘는 경상남도의 잠재 고객들을 경쟁 구단에 빼앗기는 셈이니, 사실 당연히 반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광역 연고로 수급해오던 경남지역 고교선수들까지 NC에 눈뜨고 내어주게 되는 상황.[26][27]

허나 롯데는 이를 제도상으로 제지할 명분이 없었다. NC가 창단할 당시 롯데의 공식적인 연고지는 부산광역시로 한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경상남도 일대가 롯데의 연고범위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NC 창단 11년 전인 2000년에 이미 도시연고제가 재확정되었기 때문인데, 다만 이렇게 도시연고제로 바뀐 후에도 KBO의 신인선수 지명제도에서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광역권이 인정되고 있었고 학생선수들의 전학에 따른 신인지명 자격 요건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상의 문제점이 존재했던 상황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시 광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구단 연고제도가 바뀐 이유는 구단들의 연고지 이동을 용이하게 만들고,[28] 신생팀의 창단을 원활하게 유도하기 위한[29][30] 목적이 있었다.# NC는 창단 당시 KBO가 도시연고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롯데 측에 연고지 분할 배상금(입성금)을 지불하지 않고 창단하게 된다.[31] 롯데 입장에서는 속이 타는 일이었지만[32] 이에 반발할 제도상의 명분이 없었고, NC는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당시 변경되었던 제도의 혜택을 2011년에 보게 되면서 비교적 걸림돌없이 수월하게 창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연고제는 이후 수원시를 연고로 한 kt wiz 창단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이 때는 연고지 보상금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33]


3.3. 타 구단[편집]


롯데 자이언츠를 제외하고는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구단은 없었다. 대체로 제9구단의 운영 기업이 제대로 된 기업이면 찬성한다는 유보 의견이 가장 많았고, 당시 롯데 외 나머지 구단 중에서 그나마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팀은 같은 영남권 팀인 삼성 라이온즈였는데 이 역시 NC의 경기력에 대한 의문을 표시한 정도였다.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가 엔씨소프트의 창단 의사가 나온 이후에 바로 찬성의사를 밝힌 두 구단인데, 이 중 SK의 경우는 최태원 SK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가 직접 자문을 구하는 관계라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NC 다이노스 창단이 확정된 후 NC가 군산상고, 전주고 등 전라북도 내 고등학교를 지역 연고 학교로 가져가자 KIA 타이거즈 팬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또 롯데가 지원해왔던 울산 쪽 고등학교도 NC가 가져가면서 롯데가 울산에서 2구장으로 경기를 치르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도 생겨났다. 완전한 NC의 연고지로 거듭난 창원과 달리 울산은 신인 1차지명 제도가 폐지된 2022년 전까지 야구장은 롯데, 고교야구는 NC인 이중적인 상황이 유지되었다.


3.4. 야구계[편집]


두 팔 벌려 대환영이다. 일자리가 늘어난다. 규모가 커지니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4. 의미[편집]


NC의 창단으로 1990년 3월 15일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이후에 근 20여년만에 리그가 확장하게 되었다.

프로야구단의 증가를 통해 선수단과 코칭스탭을 합쳐서 최소 80자리에 프런트까지 더하면 더욱 많은 야구관련 일자리가 창출되고, 이것은 충격효과로서 중고등 아마추어 야구의 활성화를 위에서 자극하게 될 것이다. 기존 야구선수들에게도 직장의 폭이 넓어지게 되는 효과가 있다.

창원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엔씨소프트의 미래에 대한 비전의 결합은 타 야구단에게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며, 이후 10구단이 만들어진다면 그때의 좋은 선례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 구단이 '8개 구단의 유지'를 협박수단으로 비정상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사시에 대체 수단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다.[34]
물론 홀수구단체제는 경기일정을 짜는 것이 까다로워지고 한 구단이 놀게 되지만, 월요일 경기를 통해서 일정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이미 KBO는 1986년부터 1990년에 홀수구단체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경기일정 배치의 어려움, 기록 형평성의 문제점 때문에 KBO에서는 다시 홀수구단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35] 10구단이 이어서 창설될 것으로 보이며, 9구단은 쌍방울의 전례를 따라 1년간 2군에서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상무와 경찰청의 군경팀을 합쳐서 올린다는 루머가 야구사이트에서 돌고 있으나, KBO에서는 논의를 시작한 적도 없으며, 이는 국방부-행정자치부의 협의를 얻어야 하는 일인데다가 각 구단이 군경팀을 1군에 올리는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36] 무엇보다도 상무팀이 승부조작 비리에 말려든 사건 때문에....

KBO에서는 홀수 구단을 반대하는 구단이 차라리 월요일 경기를 하고 4일 연휴를 하지 말자는 의견을 내면서, 월요일 경기를 검토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홀수 구단을 해소하자는 논리가 리그 확대의 장점을 빼고, 9구단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사실상 경기수 감소와 4연속 휴식일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9구단을 지지하는 구단들은 136경기로 확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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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SN스포츠, 2011-05-30[2] 2008년에는 히어로즈가 KBO 가입금 분납을 거부하며 협상을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2009년 이후에는 충격적인 소위 '트레이드 파동'이 벌어지면서 구단이 주요 선수들을 팔아치우기 시작한다.[3] 2010년 10월 기사에 의하면 KBO는 "파이를 키워야 더 큰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을 이미 마쳤다. 한 야구인은 "구단 하나가 늘어나면 100명 정도의 신규 일자리가 생기게 된다. 야구인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4] 다만 당시 야구팬들은 시큰둥했는데, 당시 넥센 히어로즈도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9구단은 그저 너무 먼 이야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위 유튜브 영상에서도 나온 내용이지만 허구연 해설은 이런 히어로즈의 파행 운영에 대한 대비책으로라도 새 야구단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당시 유영구 총재에게 펼쳤다고 말했다.[5] 구장에 이름을 붙일 권리를 말한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AT&T'파크 같은 식으로 말이다.[6] 9구단은 수도권 연고 불가 방침이었기 때문에 10구단을 수도권 연고로 창단을 하려면 9구단 지방 연고 창단이 우선시 확정되어야 했다. [7] 9구단 창단 시 관심을 보였던 대부분 기업들은 수도권 연고를 원했고 수도권에 구단 절반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리그 불균형을 예상한 KBO와의 의견 마찰로 대부분 협상이 결렬되었다. NC도 KBO가 제시한 창원을 토대로 창단 의향서를 제출하였지만 이후에 수도권 도시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부산을 홈으로 쓰고 싶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8] 제주와 울산, 포항 중 하나도 후보였지만 제외되었다.[9] 경쟁 후보지였던 마산 야구장이 1982년 개장한 반면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은 1963년 개장했다. NC가 창단한 2011년 기준 이미 48년 된 야구장이었다.[10] 당시 KBO 보도자료에서 신생구단 창단 관련 전문.[11] 가이드라인 순화어[12] 엔씨의 입장에서는 2012 시즌 2군리그를 신인만으로 뛰어야 하는 데다 1군 진입 후를 생각해서라도 기존 선수들이 더 필요하고, 구단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전력약화, 선수 입장에서는 1년간 2군에서만 뛰어야 하므로 FA자격 취득이나 연봉 등에서 불이익을 얻는다는 문제점이 있다.[13] 류현진이 괜히 괴물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2007년 두산의 금지어 이후 2017년 이정후가 신인상을 받기 전까지 순수한 신인은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9 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는 3년 연속으로 이정후, 강백호, 정우영같은 신인왕들이 나오고 있다.[14] 이해가 안 된다면 응원하는 팀의 선수 이름을 세면서 말해보라.[15] 그러나 최근 일본야구의 현실을 볼때 이는 자칫 잘못하면 외국인 용병으로 리그가 잠식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당장 오릭스나 야쿠르트같은 하위권 팀만 아니라 요미우리 자이언츠조차도 외국인 선수(+ 리그 9년이상 등록으로 용병제한 풀리는 선수까지 포함) 의존도가 장난 아니다.[16] 일본프로야구에서 외국인선수 제도를 1군에 4명 2군에 무제한으로 두는 의미를 잘 생각해보자... 파이가 한국보다 훨씬크고 아마선수층이 두터운데도 팀간 전력차가 난다. 8년차 이상이면 내국인 취급해서 외국인쿼터에 포함 안 되는 규정도 있다. 일본 국내선수들의 자리를 뺏는다는 느낌도 들지만 왜 이렇게 할까도 잘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그런데 한국프로야구는 아마선수층이 일본보다 태부족이고 2개 구단이 늘어나는데 3명 보유 2명 출장이란 미미한 양보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점에 있어서 전력균형이란 명분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국내선수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좋지만 수준 높은 외국인선수들과 경쟁으로 이겨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자. 일본프로야구도 용병 풀로 채우고도 주전에 못 들어가는 외국인선수도 많다. 그게 다 일본 국내선수들이 외국인선수와의 경쟁에서 이겨서 주전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외국인이 확대되더라도 경쟁으로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중요하지 자리 더 생기고 외국인은 제한해서 안주한다면 프로야구팀간 전력차와 기량발전에 저해가 된다.[17] 창원시가 9구단 창단에 의욕적인 이유 중 하나 지자체 통합의 상징으로서 추진하는 사업이다.[18] 구 마산시민들도 이 이름에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정확히는 아구찜 상인과 그 관계자들만의 주장이다.[19] 이후 스카우트 팀장, 단장을 거쳐서 감독대행으로 승진했다.[20] 다만 고교야구 시즌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선 지도자들을 빼간 것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사전 조율이 이루어지기는 했다지만.[21] 2011년 10월 18일 KIA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유야무야되었다.[22] 박완수(새누리당) 시장 재임 시절 2011년 6월 창원시의회 김동수 의원(북면·의창동)이 "2000억~3000억원의 건설비용이 예상되는 신규 야구장 건설은 창원시에 엄청난 재정 부담"이라며 "신규 야구장 건설계획을 보류하고, 5년 이내 신규 야구장을 건립하겠다는 엔씨소프트와의 협약 조항은 삭제한 뒤 필요시 야구장 건립을 검토할 수 있다는 수준으로 재협약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동수 의원은 새누리당 소속이었으나 창원시청과의 소송 등 불화를 겪기도 했고, 2017년 탈당했다. 여담으로 허성무 시장(더불어민주당) 재임 시기인 2019년 1월 창원시청 감사관으로 임용되기도 했다.[23] 이 와중에 일부 의원들이 보류를 요구하여 전자투표를 실시했으나 부결되었고 정식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24] 단순히 창단 발표 하나 때문에 주식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물론 창단 발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이는 당일 주식 시장에 돌았던 블레이드 앤 소울의 출시 연기설(당시 2012년 중반까지 밀린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블소가 2012년 6월에 오픈하면서 이 소문은 사실이 되었다.), 셧다운제 도입 등의 다양한 악재가 겹친 탓이 컸다.[25] 특히 경남지역 야구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NC가 창단하기 전 마산 지역에 배정된 롯데 홈 프로야구 경기란 1년에 고작 6경기뿐이었고 그나마도 대개 우천취소가 잦은 6~7월에 집중해 편성되었기 때문으로, 자세한 내용은 마산아재 문서 참조.[26] 창단 이듬해인 2012년 12월 KBO와 9개 구단이 신인 1차(연고)지명 부활에 합의하자 NC와 롯데는 또다시 연고권의 범위를 두고 대립하게 된다. 이를 두고 일부 롯데 팬들은 'NC가 부산 연고지 분할을 주장했다' 라고 날조하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12년 12월 당시 부산 지역신문인 국제신문 기사에 따르면 각 구단의 프런트가 모인 윈터미팅에서 NC 측이 1차지명을 광역연고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마치 서울처럼 부울경의 고교팀 9곳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NC와 롯데가 경쟁을 통해 1차지명 선수를 택하자는 것이었다. NC 관계자는 "전면 드래프트가 도입되기 전 서울에서 LG와 두산이 경쟁체제로 1차지명을 했듯이 NC와 롯데도 같은 방법으로 경쟁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고, 이에 롯데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27] 당시 또다른 기사에 따르면 당시 지역연고 1차지명 도입을 앞두고 구단들이 "연고도시 학교에서만 지명권을 행사했을 때" 구단간의 불균형이 심각하게 발생함을 KBO측에서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에 장기간의 진통을 거쳐 느슨한 광역연고제를 기반으로 한 1차지명 제도가 시행되었고, 이는 2022년 신인드래프트까지 유지되었다.[28] 이는 2000년 당시 SK 와이번스의 창단 과정과 현대의 서울 연고이전 시도 등과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연고이전 문서와 당시 기사를 참고.[29] 창단 당시 SK는 서울 연고를 희망했으나, 구단주 총회에서 SK의 연고지를 수원시로 한정하자 SK가 "기존 팀들은 광역 연고제의 혜택을 받는 상황에서 신생팀의 연고지만 수원으로 한정하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이며, 그럴 거면 경기도 광역연고를 허용하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KBO가 도시연고제 도입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30] 이후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연고지 보상으로 SK에게 받은 54억원을 그대로 LG와 두산에게 분할해 넘기면서 서울로 입성하려던 계획이 모기업 자금난으로 인해 보상금을 다 소모하게 되며 틀어졌고, 이후 제2구장으로 사용하던 수원시에 자리잡게 되는 등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31] 참고로 광역연고제가 실시되던 시절 쌍방울 레이더스는 10억을 해태 타이거즈에 지불했고, SK 와이번스는 현대 유니콘스에 54억원을, 서울 히어로즈는 LG와 두산에 각각 27억원의 연고지 배상금(입성금)을 지불한 바 있다. 이는 MLB 역시 마찬가지이다.[32] 과거 전북에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될 때 해태 타이거즈와 광주 팬들은 격렬하게 반대했고 김대중 총재에게 탄원하여 당시 정치권이 개입하기까지 하면서 해태 타이거즈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액수의 연고지 분할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는 광역연고권이 인정되던 시기였고, NC의 창단 시기에는 도시연고제가 시행된 지 10년이나 흐른 상태였다. 창원시를 연고로 하는 NC가 창단할 때는 당연히 부산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롯데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33] 이전 버전 문서에는 'kt 창단 시에는 수원을 광역 연고지로 하는 팀이 없었기에 NC와 상황이 같지 않다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NC 창단 때나 kt 창단 때나 도시연고제가 시행중인 상황은 같았다. NC의 창단시기인 2011년에도 KBO 규정 상 창원시를 광역 연고지로 가지고 있는 팀은 없었다.[34] 단, 그 1개 구단이 NC의 창단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만약 본문과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그 구단이 빠질 타이밍을 재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그게 아니라면 구단주가 정말 야구를 사랑해서 근근이 팀을 붙잡고 어떻게든 운영해보려 고군분투하는 것이 된다(...). 아니면 '고객'이 하나 늘어나는 걸 좋아하는 것이든가… 이후 그 팀이 대단한 성적을 올리고 구단주의 화려하고 파격적인 행보가 주목받게 되면서, 그 팀에 대한 의혹의 시선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최종적으로는 정말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환영한 게 맞았던 것이다(...).[35] 8구단 체제에서 140경기가 가능한데, 9구단 체제에서는 월요일 의무 휴식을 유지할 경우 128경기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로테이션이 재수가 없으면 3일간 쉰 팀만 계속 만나게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휴식기를 앞둔 팀은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전력을 쏟을 수 있다. 휴식을 거치면 당연히 에이스의 등판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에 투수기록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될 수밖에 없다. 오래 쉬지 않도록 일정을 짜면 3연전이 아닌 2연전이 많이 생기는데, 3연전이 흥행에 도움이 되는 건 둘째치고 이동횟수가 늘어난다.[36]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2군 구단 하나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이 50억 가량 되는데, 이게 1군으로 올라오면 4배인 200억으로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