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신인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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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신인 드래프트
KBO ROOKIE D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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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현재 방식 및 제도
3. 변천사
4. 폐지된 제도
4.2. 고졸 연고 자유계약
4.3. 고졸우선 지명
5. 역대 드래프트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BO 신인 지명 회의(또는 KBO 신인 드래프트)는 KBO 리그의 각 구단이 아마추어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한 지명을 하는 연례 행사이다. 고교, 대학 야구선수들이 프로야구에서 뛸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일반적인 길이다.[1]

매년 8월 말에서 9월 중순 사이[2]에 신인 드래프트 행사를 개최하여 다음 시즌부터 프로에서 뛸 선수를 지명한다. 예를 들면 2020년에 입단할 선수를 2019년 8월 말에 뽑는 형식.


2. 현재 방식 및 제도[편집]


2023년 KBO 신인드래프트(2022년 시행)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가 시행되었다. 기존의 지역연고 고교출신 선수 우선지명제도인 1차 지명이 폐지가 되면서, 전국의 모든 지명 대상 선수를 구단의 연고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며 뽑는 방식이 되었다. 즉, 이제는 모든 선수 대상으로 2차지명만 하는 형태이다.

전년도 최종 팀 순위의 역순(10위-9위...2위-1위)으로 1명씩 지명을 하면서 총 11라운드를 시행해 한 팀당 최대 11명씩을 뽑을 수 있다. 기권을 하여 더 적은 선수를 뽑는 것도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매 라운드마다 전년도 순위의 역순으로 지명하는 일명 'Z자 방식'과 홀수 라운드는 역순, 짝수 라운드는 정순으로 지명하는 'ㄹ자 방식' 에 있어 방식의 변동이 심한 편이었다. 초창기부터 2000년 드래프트까지 Z자 방식, 2001년[3] ㄹ자 방식, 2002년~2006년 Z자, 2007년~2016년 ㄹ자, 다시 2017년도 신인 드래프트(2016년 시행)부터 현재까지는 Z자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4]

지명한 선수에 대한 지명권 효력은 2년이다.[5] 즉, 고졸 선수를 지명했지만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을 갈 경우, 졸업 후에는 해당 구단에 갈 필요가 없고 다시 드래프트를 받게 된다.

신인 드래프트 참가를 원하는 선수는 드래프트 참가 신청을 해야한다. 지명일 30일 전까지 드래프트 참가 신청서에 재학 중 징계, 부상 이력을 기재하고 학교 폭력 관련 서약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등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지명을 받고도 계약을 하지 않았거나 신청을 하지 않은 선수는 2년이 경과한 뒤에 다시 신청할 수 있으며 한 번 신청서를 제출한 뒤에는 이를 철회할 수 없다. 그 동안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었다.[6] 그러나 김유성, 나승엽 건을 계기로[7][8] 졸업 예정 선수들도 신청한 선수들에 한해서만 드래프트 대상에 넣도록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이 2020년 12월 8일 열린 KBO 실행위원회에서 나왔고 2021년 5월 25일 열린 KBO 이사회에서 확정되었다.

국내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마친 뒤 국내 프로야구 팀에 입단하지 않고 해외로 나갔던 선수가 KBO 리그에서 뛰려면, 최종 해외 소속 팀과의 계약이 끝난 지 2년[9]이 경과해야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다. 이를 보통은 해외파 유예기간이라고 부른다. 단, 이 해외복귀선수는 지명받고 입단하더라도 계약금을 받지 못하며 최저 연봉[10]으로 첫 시즌을 보내야 한다. 해당 선수가 아시안 게임 금메달, 올림픽 메달로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얻더라도 이 규정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 및 외국 프로야구 소속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는 한국 국적의 해외 아마추어(고등학교 이상) 출신 선수, 고교 및 대학 중퇴자(정상적으로 다녔을 때 졸업 학년인 경우 한정)는 연고지에 상관없이 반드시 신인드래프트를 거쳐 입단해야 한다.[11] 세 경우 모두 신청 마감은 국내 신인 지명 30일 전까지로 한다. 2018년 1월 30일 KBO 이사회의 결정으로 비선수 출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산하 팀에서 전혀 뛴 적이 없는) 중 KBO가 정한 세칙에 따라 참가 자격을 갖춘 자가 프로에 뛰고자 하는 경우 위와 마찬가지로 신인 지명 30일 전까지 신청을 해야 한다.

2019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부터 대학야구를 살리기 위한 방침으로[12] 10라운드 안에 대졸선수를 무조건 1명 이상 지명해야하는 규정이 생겼다. 이를 어길시 큰 금액의 벌금과 다음 해 드래프트의 1차 지명 선발권을 박탈하는 게 벌칙이다. 또한 정식으로 규약에 삽입되지 않았지만, 라운드 외에 육성선수는 대졸 선수 또는 고교 졸업 후 독립리그 등에서 1년 이상 뛴 선수만 받기로 각 구단에서 합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졸 선수들의 지명이 지지부진하다보니[13][14] 2023년 신인 지명(22년 시행)부터 3,4년제 대학교의 2학년을 마친 선수도 드래프트에 참여 가능하도록 하는 얼리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었다. 다만, 프로 지명을 받았음에도 입단을 거부하고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한 경우에는 얼리로 나오지 못하고 졸업 예정 년도에 나와야 하며# 육성선수 입단도 불가능하다. 또한 얼리 드래프트를 신청해 지명 대상이 되었으나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 역시 육성선수로 입단할 수 없다.

2023년 고교 최대어로 꼽힌 장현석의 미국 진출을 계기로 지명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인 드래프트 당일까지 KBO 리그 구단들은 어떤 형태로도 템퍼링을 할 수 없는 반면 MLB 구단들은 마음대로 계약을 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3. 변천사[편집]


프로 원년인 1982년부터 신인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다만 첫 해는 OB를 제외한 5구단에 한해 단 12명의 선수만 뽑은 조촐한 규모였고, 본격적으로 신인 지명을 시작한 것은 1983년이다. 이 때부터 지역연고제 활성을 위해 지역연고 선수들을 우선지명하는 '1차 지명'과 우선지명에 선택되지 않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2차 지명'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1986년까지는 사실상 2차지명이 무의미했다. 연고선수 1차지명이 1985년까지는 무제한 지명이었고 1986년에도 10명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1차지명보다 2차지명을 더 적게 뽑는 모습이었다. 1987년에 1차지명을 팀당 3명으로 제한하면서 제대로 된 2차지명이 시작되었다.

한편 당시에는 연고 고교 졸업 선수는 특별한 지명 절차 없이 계약할수 있던 '고졸 연고 자유계약' 제도가 존재했다. 1988년 태평양 박정현 등의 성공 사례가 나오자, 이후 1,2차지명보다 고졸 자유계약을 더 많이 뽑는 팀이 속출하기도 했다.

1990년 1차지명이 2명으로, 1991년 1명으로 줄었다. 이 시기 신생팀 쌍방울의 특별지명으로 1차지명 후 10명을 뽑아갔다.

1997 드래프트부터 2차지명에 12명 제한을 두기로 결정을 내리자 1996 드래프트 때는 각 구단마다 적게는 14명에서 많게는 28명을 지명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15] 무제한으로 뽑을 수 있을 땐 6~7명 뽑더니

2000년 드래프트 부터는 고졸우선 지명이 폐지되었고, 본격적으로 현대의 신인 드래프트 형태가 정착되었다.

2004 드래프트부터 2차지명의 지명권 효력이 2년으로 줄었다.[16] 대학 입학선수도 2년으로 똑같이 적용되었다.[17][18]

2007 드래프트에는 1차지명을 2명으로 늘리고 2차지명을 ㄹ자 순서로 바꾸었다. 1차지명은 일년만에 다시 1명으로 돌아갔다.

2007년 4월에는 '해외진출 선수 계약 우선권'이 걸린 특별 드래프트가 열렸다. 한국인 선수가 해외진출을 하면서 국내 드래프트에 응하지 않았거나 지명 후 해외진출로 지명권이 소멸되어 소속팀이 없는 가운데 국내리그로 복귀했을 때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외진출 선수의 계약 우선권을 분할하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문서 참조.

2010 드래프트부터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되었다. 1차, 2차 지명의 개념이 사라지고 한번에 모든 선수들이 드래프트에 참여해 각 팀의 지명을 받게되었다. 모든 팀이 한 번씩 지명하는 것을 한 라운드라고 하며, 총 10라운드로 진행되었다. 홀수 라운드 때는 전년도 순위의 역순으로 지명하고 짝수 라운드 때는 전년도 순위순으로 지명하는 'ㄹ'자 지명 방식은 기존 2차지명 그대로 진행했다. 지명권은 2년간 유효했으며 다만 1라운드 지명자의 경우엔 과거 1차 지명자처럼 지명권이 영구적이었다. 즉, 대학 진학이나 군입대를 하더라도 해외진출을 하지 않는 이상 지명팀에 입단해야만 했다. 또한 고졸 선수가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한 경우에는 다시 지명 대상이 되어도 1라운드 지명이 불가능했다.

NC와 KT의 신생팀 특별지명이 있었다. NC는 12~13년, KT는 14~15년 2번의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 2명씩과 2라운드 후(KT는 1차 부활로 2차 1라 후) 5명/3명 지명을 했다.

2014년도 드래프트부터 1차지명이 부활하게 된다. 전면 드래프트가 도입된 후로 지역 아마야구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KBO는 전면 드래프트 도입 당시에 지역 아마야구 지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정작 시행에 들어가면서 손을 놔 버렸다.

2018년부터 다시 전면 드래프트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조금씩 일기 시작하더니 연말이 되자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19] 그러나 지역 아마야구 지원 문제, 서울을 제외한 지역 팜 황폐화 문제 등의 해결 방안이 명쾌히 나오지 않는 이상 전면 드래프트 회귀는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이후 금지되었던 지명권 트레이드가 2020년에 부활했다. 단, 트레이드 후 열리는 차기 신인 드래프트의 지명권 교환만 가능하며 미국에서처럼 먼 미래에 시행하는 지명권을 교환할 수는 없다. 지명권 트레이드는 받는 것은 제한이 없으나 주는 것은 최대 2장까지 가능하며 지명권끼리 트레이드는 불가능하다.

그 동안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는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었던 것이 신청자에 한해 실시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는 2022년도 신인 드래프트(2021년 시행)부터 적용된다.

2023년 KBO 신인드래프트(2022년 시행)때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가 다시 시행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이 해 드래프트부터는 KBL과 V-리그에서 볼 수 있는 대학 선수 얼리 드래프트가 적용되어 4년제 대학교 2학년 재학 선수이면 졸업하지 않고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게 된다.[20] 종전 전면 드래프트 시행 때와 마찬가지로 고졸 선수가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한 경우에는 다시 지명 대상이 되어도 1라운드 지명이 불가능하다.

4. 폐지된 제도[편집]



4.1. 1차 지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BO 신인 드래프트/1차 지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고졸 연고 자유계약[편집]


프로야구 초창기에 시행된 제도. 시행 목적은 연고 선수를 중심으로 각 구단을 구성함으로써 지역 팬들의 소속감 강화 및 고교야구의 인기 계승이며, 대상은 각 구단별 연고지(광역연고) 내 고교 소속의 3학년 선수이다. 특별한 지명 절차 없이 계약만으로 입단이 가능했다. 단, 입단 교섭 기간이 11월 1일부터 15일까지로 제한되었으며 프로야구와 아마야구의 갈등이 첨예했던 1991~1993년에는 고졸 대어들과 관련한 분쟁이 잦았다.

1995년까지 유지되었으며, 이 제도가 없어짐에 따라 아래에 서술된 고졸 우선 지명제도가 한시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과정으로 입단한 유명한 선수로 김원형, 이종열, 박종호, 염종석, 정민철, 이대진, 이호준, 김재현, 주형광, 이승엽, 임창용, 정수근 등이 있다.


4.3. 고졸우선 지명[편집]


1996년부터 고졸 연고 자유계약 제도를 대체격으로 제도로 각 구단의 연고지 내 고교 3학년생이 대상이었다. 각 구단별로 1996~1998 드래프트에는 3명, 1999 드래프트에는 1명을 지명했다.

시행 목적은 각 구단의 연고지 내 고교 유망주에 대한 투자의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과 함께 대학 선수들이 1차 지명받을 권리를 보장함에 있었다. 따라서 연고지명 폐지 당시 대학 1학년이었던 선수들이 졸업하는 1999년 드래프트를 끝으로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제도 자체가 신인 지명이 대졸 위주에서 고졸 위주로 넘어가는 과도기성 제도였다.

고졸우선 지명으로 1차 지명을 받은 고등학교 3학년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프로 팀에 입단하거나, 지명 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지명권의 효력이 이어졌기 때문에 졸업 이후 프로팀에 입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5. 역대 드래프트[편집]


'(연도) KBO 신인드래프트'로 입력해도 리다이렉트된다. (예시: 2016 KBO 신인드래프트).


6. 관련 문서[편집]


[1] 또 다른 방법으로는 육성선수로 입단하는 방법이 있는데, 선수가 프로에서 자리 잡기엔 쉽지 않은 방법이다. 해당 항목 참조.[2] 대체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끝난 시점.[3] SK 와이번스의 창단으로 이 해에만 방식이 일시 변경되었다.[4] 드래프트는 사실상 상위라운드가 중요한데 ㄹ자 방식은 꼴찌팀이 1번, 20번을 지명하고 1위 팀이 10번, 11번을 지명하면서 꼴찌 팀이 확실히 유리하다고 보기 힘들었다. 이에 하위권을 해도 메리트가 전혀 없었던 팀을 중심으로 개정이 논의되었고 전력 평준화 도모라는 드래프트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Z자 방식이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다.[5] 원래 지명권은 1년간 유효했으나 1992 드래프트 때 양준혁쌍방울 레이더스 입단 거부 파동 후 3년으로 늘었다가 2년으로 줄었다.[6] 한국만 드래프트가 신청제가 아니었던 것이 메이저리그, 일본, 대만 드래프트와 비교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물론 비선출이거나 대학 중퇴 선수, 해외 복귀파, 프로 입단 없이 상무에서 복무한 선수 등은 신청제였지만, 사실상 해외 복귀파 외에는 신청해도 지명이 안 되는 수준이라 의미가 없었다.[7] 김유성은 2021년도 신인 1차지명에서 NC의 지명을 받았다가 학폭 논란으로 지명 철회가 되었고, 나승엽은 해외 진출 문제로 논란이 된 바 있다.[8] 이 두 문제도 중요하지만 졸업 예정자들이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 보니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의 진로 문제가 실제 이상으로 뻥튀기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전병두 조롱 건으로 논란이 된 홍종표, 고교 때부터 스포츠토토를 한 사실이 드러난 정현욱 등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선수들의 인성 문제도 신경써야 했던 상황. 앞으로는 프로에 갈 뜻이 있는 선수들만 드래프트에 나오도록 하며 부적격자를 걸러 내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이다.[9] 규약에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복귀 연도 선수 등록일인 1월 31일 기준이다. 이 기간 중에 독립 리그 팀에서 뛰는 것은 상관이 없다. 독립 리그는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정식 프로 리그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10] 2014년까지 2400만원, 2015년부터 2020년까지 2700만원, 2021년부터 3000만원.[11] 그래서 재일교포 선수의 경우도 프로야구를 가지 못한 경우는 드래프트로 입단해야 한다. 2020년 두산 10라운더 안권수가 대표 케이스. 반대로 일본 프로야구를 거친 재일교포는 자유계약으로 입단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일본프로야구 선수로 야쿠르트의 우에다 츠요시가 있다. 이 선수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에 한국 구단과 본인이 희망하면 자유계약으로 KBO에 올 수 있다. 물론 북한 국적이나 일본 국적을 고른 사람이라면 재일 출신이어도 용병으로밖에 못 들어온다.[12] 1차 지명 최원준, 최채흥의 사례나 2021년 KT위즈 신인 드래프트의 기조와 같은 대졸 선수 지명 사례가 있으나 이는 예외적인 것으로 일반적으로 한명도 안 뽑거나 한두명 정도 지명하였고, 대졸 지명 의무화 이후에도 보통 중하위 라운드에서 한두명 지명하고 있다.[13] 특히 2019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의 결과는 대졸 선수 의무 지명 규정에 대해 회의감에 빠뜨리게 만들었다. 우승은커녕 비록 자금력을 바탕으로 성장해나가고 있지만 아직 수준차가 있다고 평가받던 중국에게 져서 4등을 했다. 또한 해당 대회에서 주목받은 선수들도 고등학생보다 몇 년의 성장을 더 거친 대학야구 선수가 아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소형준 같은 선수가 주목을 받아 왜 프로 구단에서 대졸선수들을 기피하게 되었는지 모습을 보여준 예가 되었다.[14] 여담으로 대졸선수가 인기가 많은 일본프로야구의 경우는 KBO식으로 지명을 하면 엄청나게 까인다. 2011년에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가 드래프트 지명자 9명 중 8명을 고졸로 지명한 적 이 있었는데 고졸 자포자기 지명(...)이라면서 엄청나게 까였고, 2019년에 한신 타이거스도 드래프트에서 6명 중 5명을 고졸로 뽑자 '스카우터가 코시엔 구장에서 다른 데 안 가고 눌러앉았냐'(...) 등의 말이 나오면서 까였다.[15] 정작 저렇게 대책없이 지명해 놓고 절반 가량은 지명권을 포기했다. 선수단 규모가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지명된 선수 중 대학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거나, 중도하차했거나, 아예 대학 진학조차 하지 않은 선수가 많았다.[16] 다만 2003 드래프트까지 1라운드 지명권은 1차 지명권과 마찬가지로 지명권이 영구적이었다. 롯데의 김대우는 롯데와의 계약금 차이로 롯데 입단을 거부하고 고려대에 입학했다가, 대학 졸업하면 롯데로 가야하니 해외진출을 노리고 대학을 중퇴하고 상무에 입대했다가, 상무 제대 후 롯데는 여전히 가기 싫은데 MLB 진출에 실패하고 갈 곳이 없어 규정위반을 감수하면서 대만리그에 진출했다가 결국 그때껏 지명권을 포기 안 한 롯데에 입단했다.[17] 일례로 전준우는 2004, 2008 드래프트 모두 롯데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2년제 대학으로 진학한 경우는 2학년 재학연도의 신인 2차지명일 7일 전까지 해당 선수와 계약한 후 KBO에 제출하면 효력이 인정된다. 단, 졸업 유예를 하거나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게 되면 유효 기간 경과로 지명권이 소멸된다.[18] 한편 지명을 받았더라도 해당 선수가 유급을 하면 지명권이 소멸되었으나 1998년 신인 지명에서 두산에 지명되었다가 유급한 김주용(당시 성남고, 2001 드래프트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2차 1라운드에서 지명했던 김주철의 형)이 1년 뒤 롯데에 다시 지명된 것을 계기로 유급하더라도 지명권이 소멸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19] 당시 KBO의 드래프트 제도는 서울 지역 팜의 공동 관리 때문에 서울팀 3곳에만 유리하도록 변형 되어있었다.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은 결국 이루어 지지 않았고 지역팀 1차 지명자체가 폐지되어 이 유리함이 같이 사라졌다. 간단히 말하면 대전 고교팀에서 초고교 투수 3명이 동시에 나와도 한화가 1명 고르고 나머지 2명은 전체 지명으로 나와 전해 최하위 팀과 그 다음팀으로 갈수 있는 구조지만, 서울고교팀에서 이런 경우가 나오면 LG,두산,키움이 일단 각 1명씩을 다 데려가버리니 전년도 최하위팀은 1명도 데려갈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성적에 따른 지명 순서를 부여해 전력 평준화를 이루고 리그 흥행과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가 무너지는 제도였다는 것이다.[20] 단, 지명을 받은 뒤 프로에 입단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 선수는 얼리 드래프트를 신청할 수 없다.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것은 자신이 프로에 갈 뜻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지명한 팀에 입단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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