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DOKAWA

덤프버전 :

분류

KADOKAWA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KADOKAWA
파일:KADOKAWA 로고.svg파일:KADOKAWA 로고 화이트.svg
기업명
정식: 株式会社KADOKAWA
영어: KADOKAWA Corporation
한국어: 주식회사 KADOKAWA[1]
국가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업종명
출판, 영상, 판권 사업, 디지털 콘텐츠 사업 네트워크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및 콘텐츠의 기획·개발·운영, 동영상 커뮤니티 서비스의 운영 등
설립일
2014년 10월 1일
대표자
나츠노 타케시(夏野剛)[2] (대표이사 사장)
본사
도쿄도 치요다구 후지미 2번가 13-3
총직원 수
4,910명 (2021.04)
최대주주
카카오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펼치기 · 접기 ]
기업 규모
대기업
법인형태
주식회사
법인번호
2010001163289
시장정보
도쿄증권거래소 1부
종목코드
9468
자본금
256억 2400만
총매출
2099억 4700만 (2021.03)
영업이익
136억 2500만 (2021.03)
순이익
95억 8400만 (2021.03)
총자산
2696억 4800만 (2021.03)
주요 자회사
도완고
북 워커
프롬 소프트웨어
주요 주주
카카오(8.31%)
카와카미 노부오(5.78%)[1]
카도카와 츠구히코(2.06%)[2]

1. 개요
2. 명칭과 역사
3. 특징
4. 분야
5. 도완고
5.1. 카도카와 그룹과 도완고의 합병



1. 개요[편집]


KADOKAWA는 출판·영상·인터넷 콘텐츠를 다루는 기업체로, 카도카와 그룹의 지주회사다.[3] KADOKAWA의 산하, 즉 카도카와 그룹에는 수많은 회사가 있으며 로고도 약간씩은 모양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봉황을 사용하고 있어서 대부분 회사의 로고가 비슷하다.


2. 명칭과 역사[편집]


2019년까지는 1대 카도카와 쇼텐(2019년 당시의 사명은 KADOKAWA)이 지주회사이자 1대 KAKOKAWA로서 카도카와 그룹을 총괄하고 있었으나 2019년에 KADOKAWA·DWANGO(2019년 당시의 사명은 카도카와)가 1대 KADOKAWA(1대 카도카와 쇼텐)의 사업을 승계받고 사명을 KADOKAWA로 변경해 2대 KADOKAWA가 되었다. 1대 KADOKAWA(1대 카도카와 쇼텐)는 사명을 'KADOKAWA Future Publishing'로 변경하고 중간 지주사가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1945년, '카도카와 겐요시'가 카도카와 쇼텐을 설립했다. 카도카와 쇼텐은 1998년에 도쿄증권거래소 1부시장에 상장되었다.[4] 카도카와 쇼텐은 수많은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해 카도카와 그룹을 형성했으며, 2003년에 '카도카와 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지주회사가 되었다.[5] 회장은 카도카와 쇼텐의 사장이던 '카도카와 츠구히코'. 2006년에는 '카도카와 그룹 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2013년에는 'KADOKAWA'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2014년 10월 1일, 카도카와 그룹과 도완고의 통합 회사인 'KADOKAWA·DWANGO'가 설립되었고 주식이 이전되어 KADOKAWA는 KADOKAWA·DWANGO의 자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KADOKAWA·DWANGO가 지주회사가 되었어도 여전히 카도카와 그룹을 총괄하는 실질적 지주회사의 역할은 KADOKAWA가 수행하고 있었다. 2015년 10월 1일, KADOKAWA·DWANGO의 사명이 '카도카와'로 변경되었다. 2019년 7월 1일, 'KADOKAWA'의 사명이 'KADOKAWA Future Publishing'로 변경되고 '카도카와'의 사명이 'KADOKAWA'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KADOKAWA(前 카도카와)가 KADOKAWA Future Publishing(前 KADOKAWA)로부터 사업을 승계받아 카도카와 그룹의 완전한 지주회사가 되었다. KADOKAWA Future Publishing은 중간 지주사가 되었다.

알기 쉽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45년 ~ 2014년 9월: 카도카와 쇼텐 → 카도카와 홀딩스 → 카도카와 그룹 홀딩스 → KADOKAWA
2014년 10월 ~ 2019년 6월: KADOKAWA·DWANGO → 카도카와 / KADOKAWA가 KADOKAWA·DWANGO(카도카와)의 자회사가 되었으나 업무는 제대로 이전되지 않아서 여전히 실질적 지주회사의 역할을 수행.
2019년 7월 ~ 현재 : KADOKAWA → KADOKAWA Future Publishing / 카도카와 → KADOKAWA / KADOKAWA(前 카도카와, 前 KADOKAWA·DWANGO)가 업무를 승계받아 완전한 지주회사가 됨.

본 문서에서는 1대 KADOKAWA(前 1대 카도카와 쇼텐, 現 KADOKAWA Future Publishing)와 2대 KADOKAWA(前 카도카와, 前 KADOKAWA·DWANGO)에 대해 둘 다 서술하고 있다.[6]

기업 총수의 퇴임 과정이 별로 깨끗하지 못한 편이다. 카도카와 쇼텐의 설립자이자 1대 사장이었던 카도카와 겐요시는 두 아들, 장남 카도카와 하루키와 차남 카도카와 츠구히코에게 회사를 물려줘서 1975년에 하루키가 카도카와 쇼텐의 2대 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1992년 9월에 하루키와 츠구히코가 경영 노선의 차이로 인해 서로 대립하자 하루키는 츠구히코를 부사장직에서 해임한다. 이에 츠구히코는 분노해서 사토 타츠오[7]를 비롯한 카도카와 미디어 오피스[8]의 대부분 직원들과 함께 카도카와 쇼텐을 퇴사하고 미디어 웍스를 설립했다. 그런데 1993년에 하루키가 코카인 밀수로 잡혀가자 츠구히코가 카도카와 쇼텐으로 돌아와 4대 사장으로 등극했다.[9] 그리고 츠구히코는 카도카와 쇼텐을 오늘날의 카도카와 그룹으로 키운 뒤 1대 회장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1993년부터 2022년까지 약 30년 동안 카도카와 그룹을 키우고 회장으로 군림하던 츠구히코였으나 그 또한 2020 도쿄 올림픽뇌물 공여 혐의로 체포되어 2022년 10월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카도카와의 2번째 수장이었던 하루키와 3번째 수장(그룹 1대 수장)이었던 츠구히코가 둘 다 불명예스럽게 퇴임하게 된 것. 카도카와의 설립자이자 1대 사장인 카도카와 겐요시 또한 여자관계가 복잡해서 이혼과 재혼은 물론이고 혼외 자식이 여러 명이라 구설수가 많았다고 한다.[10][11]

2010년 일본의 디지털 미디어(벨소리, 전자책 등) 서비스 회사이자 당시 니코니코의 운영주체였던 도완고와 업무제휴를 했고, 2011년 6월 자본제휴까지 맺으며 10월 12일자로 미디어 팩토리의 모회사라 할 수 있는 리쿠르트에서 미디어 팩토리 주식 100%를 카도카와 그룹 홀딩스에 전량 매도 합의하며, MF문고J도 카도카와 그룹 산하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 확정되었는데 이로서 카도카와는 일본 라이트 노벨 업계의 큰축인 전격문고와 MF문고J를 손에 넣음으로써라이트 노벨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을 이루게 되었다.

2013년 10월 1일부로 자회사 9개(3대 카도카와 쇼텐, 아스키 미디어 웍스, 후지미 쇼보, 미디어 팩토리, 엔터브레인, 카도카와 학예출판, 카도카와 프로덕션, 카도카와 매거진, 츄케이 출판)를 합병하여 사내 컴퍼니로 재편했다. 이외에도 카도카와 영화 등을 자회사로 갖춘 회사가 되었다. 이 일환으로 카도카와 2020 엑스포를 개최하여 라이트노벨 5개 회사가 전부 참여한다. # 2015년에는 사내 컴퍼니제를 폐지하고 브랜드로 재편했다.

2016년 4월 오키나와에 쌍방향성 통신 고등학교인 N고등학교를 설립했다. IT·문예·디자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교사로 채용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 카도카와(前 KADOKAWA·DWANGO)가 상장된 지 3년 만에 주식이 반토막나고 말았다.[12][13] 아무래도 케모노 프렌즈 1기의 감독인 타츠키강판 사태 때문에 평판이 악화된 것이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2019년 11월 중순부터 반등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3월 전세계 증시 대폭락 전 고점은 19년 12월 27일에 기록한 2137엔. 코로나 19로 인해 1022엔까지 떨어졌으나 두 달 만에 전고점을 회복, 신고점을 계속해서 갱신하며 2020년 8월 21일 기준으로 최고점 2811엔을 달성했고 금요일 장마감 기준 종가 2801엔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020년 11월 6일.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에 있는 사쿠라타운이 개장했다. 본사는 도쿄도 치요다구 후지미2초메 13-3에 있다. 호텔 홈페이지

2021년 1월 26일자 기사에 카카오가 지분 7.3%를 보유하면서 KADOKAWA의 최대주주[14]로 등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픽코마의 콘텐츠를 애니화시킬 수 있는 KADOKAWA의 최대주주가 됨으로서, KADOKAWA와 디지털 콘텐츠 영역에서의 장기적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2021년 2월 4일. 소니, 사이버 에이전트와의 재정 협력을 발표하였다. 소니와 사이버 에이전트는 카도카와의 지분을 각각 2%을 구매하여 IP를 개발 및 홍보에 협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카도카와에 또 악재가 발생하는데 그건 바로 넷플릭스의 일본 시장 진출. 넷플릭스는 미래 인재양성을 위해서 뛰어난 인재들을 스카웃해왔는데 카도카와는 이로 인해 꽤 큰 타격을 입었다.

2021년 8월 17일, 2013년에 흡수합병한 자회사들의 브랜드를 축소 운영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점차 기존 브랜드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것으로 보인다.

2024년 4월에 카도카와 만화 아카데미와 카도카와 애니메이션 성우 아카데미가 도쿄와 오사카에 개교한다.


3. 특징[편집]


일본의 미디어 그룹이란 이미지와는 달리 중복되는 사업을 하는 자회사들에 대해 구조조정을 안 해서 그런지 재정 상황은 열악했고, 적자와 흑자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했다. 단적으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러키스타가 대박난 2007년에도 적자를 봤다. 그래서 결국 2013년에 구조조정(#1, #2)을 하기로 했다. 자세한 것은 카도카와 쇼텐 참조.

비판 및 사건 사고 문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히토츠바시 그룹 산하의 유명 만화 출판사인 소학관(쇼가쿠칸)과 함께[15] 일본 출판업계의 최고 대기업이지만 동시에 업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블랙기업으로도 악명이 높다.


4. 분야[편집]


만화·라이트 노벨·애니메이션·소설·영화·게임·인터넷 매체·잡지 등 일본의 문화계 대다수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창작품 뿐만 아니라 유통도 장악해 있는 미디어계의 거인으로 2016년 Yen Press라는 회사를,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서적 유통회사인 Hachette Book Group과 손을 잡고 인수하기도 했다.[16]
  • 만화
유명한 만화사에는 밀리지만 만화 잡지나 라이트 노벨이나 애니의 미디어 믹스 코믹스 등으로 나름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 경험 때문인지 자사 뿐만 아니라 Fate 시리즈의 만화판 등도 있다. 코믹 워커 글로벌이라는 웹툰 연재 사이트를 출범했다.
  • 라이트 노벨
라이트 노벨 시장의 93%를 독점하고 있는 기업이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소드 아트 온라인》등 초인기작을 여럿 가지고 있는 전격문고가 산하 레이블 중 하나이며, 전격소설대상은 라이트노벨 관련 수상식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소설 연재 사이트인 카쿠요무(カクヨム)(#)도 소유하고 있다.
  • 애니메이션
대부분의 애니의 스폰서. 스폰서 화면에서 빠지는 일이 드물다.[17] 제작위원회를 통해 강한 입김을 행사하며 계열사 만화나 라노벨의 미디어 믹스 애니메이션인 경우 이건 더 심해진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업계를 카도카와가 다 장악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계의 스폰서는 반다이남코, 애니플렉스, 부시로드, 도호 애니메이션, 킹 레코드, 카도카와 이렇게 크게 6개 사가 경쟁한다.[18] 이들은 경쟁하면서도 제작위원회에 동시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으며 제작위원회의 리스트에 카도카와가 자주 올라가지만 단순히 니코니코 동화에서 VOD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돈 좀 내서 이름이 올라간 경우도 있다. 모든 작품을 카도카와가 프로듀스하는 게 아니다. 제작위원회는 돈 많이 낸 기업이 발언과 사업권에서 우위를 갖는다. 그러니까 딱히 독점은 아니며 카도카와가 스폰서하지 않은 애니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이 회사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분야는 라이트 노벨이지 애니가 아니다. 그럼에도 케모노 프렌즈 사건 때문에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업계를 카도카와가 장악하고 있는 양 잘못 알려져버렸다.[19] 하지만,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카도카와의 영향력은 절대로 무시할 수준은 아니며, 카도카와와 경쟁하는 회사들 역시 대부분 카도카와의 문제점을 한 두개 정도 답습하거나 오히려 카도카와보다 더 심각한 문제을 안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영화
과거에 주력급으로 진출했고 좌절된 현재도 영화계의 큰 손이다.(#) 이누가미 일족 영화화가 성공하면서 카도카와 영화 붐이라 부를 정도로 1980년대 공백기였던 일본 영화계에 신흥 강자로 등장했으나[20], 여러 문제 때문에 [21] 도호-도에이-쇼치쿠-닛카츠로 대표되는 기존 메이저 스튜디오 체제를 완전히 뒤엎진 못했다. 그래도 메이저급에 속한다. 출판업계를 꽉 쥐고 있는 만큼 인기 소설 원작의 영화화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이누가미 일족 등 명작영화도 다수 배출. 2000년대 초에는 호러 영화로 이득을 보기도 했다. 특히 2002년 당시 심각한 경영난으로 도산한 다이에이를 흡수합병하면서 가메라가메라 시리즈의 판권까지 얻었다. 2005년, 카도카와는 가메라 탄생 40주년을 기념하여 《가메라 ~작은 용자들~》이라는 신작을 제작한다. 이후 2015년, 카도카와는 가메라의 50주년 기념 영상으로 여러모로 괴수물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으나, 아래의 비판 문서의 행적으로 인해 제작이 불투명해지고 말았다.
  • 잡지
애니 잡지인 전격 G's magazine, 뉴타입, 냥타입카도카와 쇼텐 소속. 게임 잡지 패미통도 역시 카도카와계다.
  • 게임
카도카와 서점, 아스키 미디어, 엔터 브레인을 통합시킨 '카도카와 게임즈'가 관리하고 있다. 일본 게임계에서 패미통의 입지를 무시할 수 없다. 쯔꾸르(RPG 만들기)를 통해 동인 게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많은 작품의 발매원으로 두고 있는데, Fate 시리즈[22], 영웅전설 시리즈 등이 대표적. 2014년 4월에는 프롬 소프트웨어를 인수했다. 그러나 프롬 소프트웨어의 경우 자회사가 되었다고 크게 간섭하지는 않는 모양. 또한 하술할 2014년 10월 도완고의 인수 합병으로 스파이크 춘소프트가 카도카와 게임즈의 산하에 있다. 이 분야에서는 그나마 카도카와의 갑질 강도가 미약한 편에 속한다.[23] 유튜브에서도 '채널 크로스'란 이름의 마인크래프트 중계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토끼 모양 캐릭터인 '페켓츠'(ペケッツ)가 등장하는 영상툰까지 만들고 있다. 페켓츠 영상툰은 주로 일본 초등학생 및 중학생들이 공감한 법한 내용을 주제로 만들어진다.
  • 인터넷 매체
일본 최대 서브컬쳐 사이트인 니코니코 동화니코니코로 유명한 도완고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 2차 창작 관련
MMD배 12회 등에 심사위원으로 한자리를 얻었다.
이런 판국이니 창작자들이 눈치를 보는 건 다반사고, 갑질도 심해서 만화가가 심각한 취급을 당해 자신의 사연을 담은 만화를 그리고 절필을 선언하거나(#),[24] 하루히 2기처럼 일부러 애니를 망하게 만드는 갑질을 했다는 의혹, 그리고 이번에 터진 케모노 프렌즈 2기제작에서 기존 1기 감독 및 핵심 인물 강제 하차 등 툭하면 어러가지 잡음이 일어나고 있다. 창작자에 대한 취급이 문화계 대기업인데도 안 좋다는 말이 끊이질 않는 편.

나는 친구가 적다의 작가 히라사카 요미나는 친구가 적다를 연재하던 MF문고J를 카도카와가 인수합병하자 나는 친구가 적다 완결 이후에 가가가 문고로 넘어가 여동생만 있으면 돼.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작중에서 꾸준히 까는 악의 축이 '혼리버'다. Horn+River=角+川=角川(카도카와)를 비튼 것. 문제는 가가가 문고를 가지고 있는 소학관(쇼가쿠칸) 역시 카도카와에 뒤지지 않는 블랙기업으로 악명이 높다(...).


5. 도완고[편집]


파일:Dwango_logo.png
旧 드왕고(DWANGO) 로고.

파일:06d2eb74-de60-11eb-8511-d9e23952d972_w600.webp
現 도완고(ドワンゴ) 로고.

원래 미국계 기업인 Interactive Visual Systems(IVS)社의 서비스 드왕고( D.W.A.N.G.O, Dial-up Wide-Area Network Game Operation)[25][26] 일본 지사로 시작하였다.

1996년 드왕고가 아시아 진출을 결정하면서 일본에도 진출했다.[27] 원래 일본 지사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고 '소프트웨어 재팬'이라는 회사에 운영권을 위임한 형태였다. 당시 소프트웨어 재팬의 직원으로 (후일 도완고 회장이 되는) 카와카미 노부오(川上量)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소프트웨어 재팬 재직 당시 드왕고의 일본 서비스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같은 해 소프트웨어 재팬이 도산해버렸고, 이를 계기로 당시 Microsoft 일본 지사에 근무 중이었던 제임스 M. 스팬[28]이 카와카미를 추천인으로 내세웠는데 이를 계기로 카와카미가 도완고의 사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는 당시 인디게임 제작집단이었던 Bio_100% 서클[29]의 대표격이었던 모리 에이키(a.k.a. alty)의 도움도 컸다.[30] 이렇게 1997년 드왕고 일본 지사는 IVS(=드왕고)의 자회사로서 유한회사 법인으로 세워졌다.

불과 2년 뒤에 드왕고 미국 본사가 파산했다. 그리고 1999년 8월 드왕고의 일본 지사가 파산한 드왕고의 모회사 IVS로 부터 'DWANGO'라는 상표 및 지적재산권에 관한 전세계적 권리을 넘겨받았다. 이때부터 미국 기업 드왕고는 일본 기업 도완고가 된 것이다.[31] 휠라, JVC, 미스터 도넛과 비슷한 케이스인 셈.

이후 도완고는 한동안 벨소리 서비스 등을 제공하다가 니코니코 동화를 출시하여 대박을 쳤다. 니코동 운영 이전이나 이후나 (휴대)전화 관련 부가서비스가 주업이었던 만큼 여전히 Dial-up으로 시작하는 원래 사명의 의미와 실제가 크게 다른 건 아니었지만 사실상 (네트워크) 게임 서비스업과는 거리가 다소 멀어졌다.[32]


5.1. 카도카와 그룹과 도완고의 합병[편집]


2014년 그동안 도완고를 눈여겨본 KADOKAWA는 주식회사 도완고와 경영 통합 합의를 발표하였다. 반다이 남코 홀딩스처럼 새로운 통합 지주회사를 설립, 새로운 회사의 사명은 주식회사 <KADOKAWA·DWANGO>로 회장은 도완고의 카와카미 노부오 회장, 사장은 KADOKAWA의 사토 타츠오 사장이 취임한다. 양사의 상장 폐지는 2014년 9월 26일, 통합 지주회사 설립 등기일 및 상장일은 2014년 10월 1일로 예정되어 있다. 주식 이전 비율은 KADOKAWA=1.1688, 도완고=1. 단원 주식 수는 100주로 하고 단원 미만 주식은 새로운 회사에서 사들인다. 주식 이전으로 인해 카도카와 그룹의 지주회사였던 KADOKAWA는 KADOKAWA·DWANGO의 자회사가 되었다. 이후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살려 세계에 유례없는 콘텐츠 플랫폼의 확립을 목표하며 진화한 메가 콘텐츠 출판사로서 새로운 인터넷 미디어로의 발돋움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종목 코드는 9468. 하지만 상장 이후에 계속 떡락 중

2015년 6월 23일부터 카와카미 노부오 회장과 사토 타츠오 사장이 서로 직함을 바꾸기로 했다. 사토 타츠오가 회장, 카와카미 노부오가 사장이 된다는 것.

2015년 10월 1일에 <KADOKAWA·DWANGO>의 사명이 <카도카와>로 변경되었다. 이 이름은 'KADOKAWA'의 '카 2개'와 '도완고'의 '도'와 '와'를 가져와서 만든 이름으로, 회사의 통합을 잘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도완고가 카도카와 그룹의 산하가 되었다는 걸 상징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토 타츠오가 회장이 된 것도 그렇고 사실상 기존의 도완고는 카도카와 그룹에 완전히 먹혔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기도 그렇고 카카오와 비슷하다

2017년 6월, <KADOKAWA>의 회장이자 카도카와 그룹의 총수였던 카도카와 츠구히코가 <카도카와>의 회장이 되었다. 카도카와 그룹의 지주회사였던 <KADOKAWA>가 <카도카와>(KADOKAWA·DWANGO)의 자회사가 되었으나 카도카와 그룹의 카도카와 츠구히코가 아닌 도완고의 카와카미 노부오가 회장으로 취임하고 이후에는 사장이었던 사토 타츠오가 회장으로 취임한 탓에 정작 카도카와 그룹의 총수였던 츠구히코는 회장이 아니라 고문이라는 직책이었는데 드디어 츠구히코가 카도카와 그룹의 총수답게 <카도카와>에서도 회장직을 달게 된 것. 역시 도완고는 카도카와에 완전히 먹혔다

2019년 7월 1일, <카도카와>의 사명이 <KADOKAWA>로 변경되어 기존에 카도카와 그룹의 지주회사였던 <KADOKAWA>(이후의 사명은 <KADOKAWA Future Publishing>)로부터 대부분의 사업을 승계받았다. 2014년부터 KADOKAWA(KADOKAWA Future Publishing)는 이미 카도카와(KADOKAWA·DWANGO)의 자회사였지만 KADOKAWA가 본래 카도카와 그룹의 지주회사였던 만큼 대부분 업무를 여전히 카도카와가 아니라 KADOKAWA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제 카도카와(KADOKAWA·DWANGO)가 명실상부 카도카와 그룹의 지주회사가 된 것이다. 다만 모든 업무가 이전된 것은 아니라고 하며 KADOKAWA Future Publishing는 중간 지주사가 되었다.


6. 너의 이름은. 열풍[편집]


2016년 일본 영화계에서 유례없는 대히트를 기록한 너의 이름은.의 소설판과 만화판, 공식 비주얼 가이드북, 외전 라이트 노벨 '너의 이름은. Another Side: Earthbound'이 이곳에서 나왔다.

2014년의 합병 상장 이후, 특별한 시너지 효과 없이 계속적으로 수익이 악화되는 과정에서, 합병된 니코니코동화의 프리미엄 회원 수도 200만 명 대에서 정체되며 재상장 이후 주가가 2년만에 반토막이 나는 등 악화일로를 겪고 있었으나, 너의 이름은.의 열풍 덕분에 3개월 만에 V자를 그리며 절반까지 회복하며 재상승 중이다. 회사 실적 역시 2천억 엔 대의 매출과는 맞지 않게 거의 영업이익 적자 근처 수준이었으나, 수백억 엔 수준으로 회복. 하지만 이후 너의 이름은. 열기도 식어가면서 다시 적자로 돌아가게 되었고 주식도 다시 반토막이 되면서 수백억이 증발해버렸다.

이 당시 800~600엔 대에 거래되며 우하향 개잡주 취급받던 카도가와 주식은 2019년 들어 가파르게 올라 1천엔을 돌파하고 코로나 이후로 급상승하더니 3,400엔을 찍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7. 비판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ADOKAWA/비판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28 15:21:55에 나무위키 KADOKAWA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일반적으로는 '카도카와'라고 하나,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서 '가도카와'라고도 한다.[2] 2021년 6월 21일부터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 갈라파고스화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다. 부인이 나카타니 겐 전 방위대신의 여동생이다.[3] 지주회사지만 2013년의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에는 2003년 이전처럼 직접 사업을 하기도 한다.[4] 종목코드는 9477이다. 블룸버그의 증권 정보 페이지 후술하겠지만 이 주식은 KADOKAWA·DWANGO로 이전되면서 2014년 9월에 상장 폐지되었다.[5] 이후에 카도카와 쇼텐이라는 이름의 회사들이 분사되어 다시 설립되기도 했으나 이 회사들은 카도카와 그룹의 자회사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6] 문서 상단의 회사 프로필은 2대 KADOKAWA(前 카도카와, 前 KADOKAWA·DWANGO)다.[7] 카도카와 츠구히코의 최측근. 카도카와 그룹의 사장이자 2인자였다. KADOKAWA·DWANGO의 1대 사장이자 2대 회장이기도 하다. 원래는 게임 및 완구 관련 기자였는데 1982년에 카도카와 쇼텐이 컴퓨터 관련 잡지를 만들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츠구히코에게 찾아가 잡지를 만들 거라면 이런 잡지가 어떻겠냐고 기획서를 제출했고 이 기획서가 통과되어 콤프틱이 창간된다. 사토 타츠오는 츠구히코의 권유로 자신이 창간한 잡지사인 콤프틱에 입사했고 이후 카도카와 미디어 오피스로 이적, 1992년에는 츠구히코를 따라 카도카와를 퇴사하고 함께 미디어 웍스를 설립한다. 츠구히코가 카도카와 쇼텐에 복직하고 사장이 된 이후에도 여러 중역을 맡다가 카도카와 그룹의 사장이 된다. 2018년 6월에 카도카와 그룹에서 퇴임하고 코에이 테크모 홀딩스의 사외 이사로 취임한다.[8] 카도카와 쇼텐의 자회사로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던 회사였다.[9] 3대가 아닌 4대인 이유는 하루키가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워낙 급히 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탓에 당장 회사를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 카도카와 쇼텐의 전무였던 오오하라 쿠니미츠가 3대 사장으로 취임했었기 때문. 하지만 츠구히코의 복권으로 사장직에서 물러나 겨우 1달만 사장직에 있었다.[10] 원래 이혼할 때 츠구히코는 엄마 쪽에서 양육을 하기로 합의했지만 츠구히코가 아빠 겐요시에게 안겨서 울었던 탓에 겐요시가 츠구히코도 양육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이때 츠구히코가 엄마를 따라갔다면 카도카와 쇼텐과 카도카와 그룹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11] 장남이었던 카도카와 하루키도 아버지의 여성 편력을 이어받아(...) 5번의 이혼과 6번째 재혼 끝에 배다른 자녀가 3명이나 된다.[12] 상장 당시 2100대에서 1100대로 떨어졌다. 한국으로 치자면 몇 천이 하락한 것과 같다. 결국 몇백억이 공중분해됐다.[13] 2016년 여름에도 반토막까지 갔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 미디어 믹스 판권을 얻는데 성공을 해서 주식이 1600까지 올라왔던 적도 있었다. 곧바로 떡락했지만[14] KSD-NH가 이보다 더 높은 지분인 8.31%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나 KSD-NH는 시티은행이 상임대리인으로 되어있는 카카오 계열 지분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KSD-NH는 KADOKAWA 말고도 여러 곳에 투자를 하고 있다.##[15] 쇼가쿠칸도 회사 규모가 큰 편이고 도라에몽과 같은 유명 작품들까지 가진 만화계의 큰손이라는 점에서 카도카와와 특성까지도 비슷하다. 금색의 갓슈 원고 분실 사건, 내부 부정 폭로, 만화가들에게 가하는 과도한 갑질과 고압적인 태도로 유명하며, 진심으로 주간 소년 선데이의 폐간과 쇼가쿠칸의 폐사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내에서도 좌청룡 쇼가쿠칸 · 우백호 카도카와라 할 정도로 악명이 자자하다.[16] 카도카와 지분 51%, 하체트 49%.[17] 그래서 오타쿠들은 대부분 "이 방송은 카도카와 쇼텐과 아래의 스폰서들의 제공으로 보내드립니다"라는 말을 알고 있다. 코노 방구미와 카도카와 쇼텐토 고란노 스폰서노 데쿄데 오쿠리시마스(この番組は角川書店とご覧のスポンサーの提供でお送りします。)[18] 그 외에는 넷플릭스 같은 OTT 업체도 단독 스폰서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도호같은 전통적인 영화제작사나 게임업체인 DMM(사실 DMM은 게임퍼블리싱 사업 못지않게 성인비디오가 주력이나 그쪽은 fanza로 분리), Cygames도 뒤늦게 진출했다.[19] 거의 모든 애니 제작위원회에 카도카와가 이름이 올려져 있다고 해서 나온 말인데 제작위원회에는 수익만 받아내려고 이름만 올려놓고 제작에는 관여 안 하는 경우도 많다.[20] 2021년 회고전을 가지기도 했다.[21] 할리우드 진출작이었던 루비 카이로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감독이 대마초 하고 나타나는 등 현장이 엉망진창이었다고 한다. 결국 엄청난 폭망을 기록.), 형제끼리 분쟁, 1993년 하루키 본인에게 약물 스캔들 터진게 가장 컸다.[22] Fate/stay night Realta Nua PS2, 비타판, Fate/hollow ataraxia 비타판 등.[23] 게임업계는 개발자 혼자 자생이 가능할 정도로 카도카와가 갑질할 수 없는 위치다. 게다가 카도카와보다 더 강력한 게임회사가 일본에 널리고 널렸고 세계로 가면 더 널렸다.[24] '어느 신인 만화가에게 정말로 벌어진 무서운 일'이라는 제목의 만화로, 소년 에이스에서 벚꽃색 프렌즈 연재했던 사쿠라 시키 작가가 그렸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항목에서 후술.[25] 밥 헌틀리와 키 킴브렐이 창업했는데 미국의 PC/콘솔 게임의 멀티플레이를 위한 서버 중개업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비슷한 경쟁 서비스로는 칼리, TEN, X-BAND, 게임스파이 등이 있었으며 X-BAND도 당시 일본 유명 PC통신인 NIFTY를 운영하던 닛쇼이와이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진출했었다.[26] 링크가 둠 위키로 되어있는것은 붐에 편승해 전성기를 구가했던 회사였기 때문. 자체적인 멀티플레이용 맵팩도 배포했을 정도다. 더 자세한것은 영어가 된다면 이 영상을 참조해도 좋다.[27] 일본 이외에도 대한민국(!), 싱가포르에도 사업을 전개했었는데, 대한민국의 경우 "한국에도 드왕고가 서비스했었어?"라고 할 정도로 코어 PC게이머를 제외하면 인지도는 많이 없었던 편으로 보여진다.[28] 시애틀 출신 주일 미국인으로 주일미군으로 복무한 부친 덕분에 미국-일본간 TCK인듯하며, 상당한 일본통이었다. 세가 엔터프라이즈, 일본MS(DirectX 일본 내 홍보 등을 담당)를 거친 뒤 도완고로 옮겼고, 지금은 니코니코 동화의 집행임원으로서 영어판 서비스 관련 직책을 맡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양반이 일본 MS에 재직했을 당시 드림캐스트Windows CE를 탑재하는 것에 큰 공을 세웠다.[29] 주로 PC-9801 플랫폼의 인디 게임을 개발한 단체다. 대표작으로 Super Depth 시리즈, NyaHaX 시리즈, TURB 시리즈 등이 있다. 일본어 위키에서는 1998년까지 동인게임 서클이었다고 서술하는데, 주로 프리웨어 포맷으로 코미케가 아닌 곳에서 유통된 게임이 많기에, 정체성으로 따지면 동인게임보다는 일반적인 인디게임 개발팀이라는 정체성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30] 실제로도 (법인화 이후의) Bio 100%는 도완고와 지분관계에 있었으며, 도완고 대주주중 하나였고, 모리도 지분 5%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알려져있다. 이후 모리 에이키는 일본MS를 거쳐 도완고의 대리 부사장 겸 대주주 등 간부직을 역임하다가 퇴사해 2008년 아노도스라는 스타트업을 세웠다.[31] 출처: 일본어 위키백과의 ドワンゴ 항목.[32] 니코동 이후 네트워크 게임 서비스업에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ai sp@ce라는 게임도 서비스했다. 그러나 ai sp@ce는 세컨드 라이프같은 것에 부가적으로 딸리는 게임 성향만 강한 소셜 플랫폼(지금으로 치면 원시적인 메타버스)의 색채가 더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