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986년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K리그

역대 K리그}}}
1985 시즌

1986 시즌

1987 시즌


1. 참가팀
2. 리그 방식
3. 외국인 선수
4. 클럽 순위
5. 사건/사고
5.1.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6. 다른 시즌 보기



1. 참가팀[편집]




연고지
창단년도
비고
대우 로얄즈
부산/경남
1979

럭키금성 황소
충청
1983

유공 코끼리
서울
1982

포항제철 아톰즈
대구/경북
1973

한일은행 축구단
미정
1970

현대 호랑이
인천/경기
1983


한일은행 축구단은 축구대제전에만 참가하고 프로축구선수권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2. 리그 방식[편집]


1986시즌은 아마추어와 프로팀이 격돌하는 ‘축구대제전’과 프로팀들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로 리그를 분리해 운영했다. 축구대제전은 지난해 우승팀 럭키금성을 비롯 대우, 포항제철, 현대, 유공 등 프로 5개 팀과 한일은행이 참가했다. 춘계리그와 추계리그로 나누어 각각 30경기씩 60경기를 치렀고, 각 리그 우승팀이 챔피언결정전을 가져 종합 우승팀을 가렸다. 이와 함께 프로 5개 팀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를 신설해 프로팀의 연고지를 순회하며 경기를 가졌다.[1]

3. 외국인 선수[편집]



4. 클럽 순위[편집]



86 축구대제전 춘계리그
순위

경기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구단 형태
비고
1
파일:포항제철 아톰즈 엠블럼 (1985~1995).png포항제철 아톰즈
10
3
6
1
9
5
+4
12
프로

2
파일:럭키금성황소.png럭키금성 황소
10
3
5
2
9
8
+1
11
프로

3
파일:유공축구단 엠블럼.png유공 코끼리
10
4
2
4
11
10
+1
10
프로

4
파일:대우 로얄즈 로고.svg대우 로얄즈
10
4
2
4
8
10
-2
10
프로

5
파일:한일은행축구단 엠블럼.png한일은행 축구단
10
3
3
4
9
10
-1
9
실업

6
파일:현대 호랑이 엠블럼.svg현대 호랑이
10
2
4
4
6
9
-3
8
프로


  • 승리 시 승점 2점, 무승부는 승점 1점을 획득한다.
  • K리그 1986 시즌 챔피언 결정전 진출

86 축구대제전 추계리그
순위

경기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구단 형태
비고
1
파일:럭키금성황소.png럭키금성 황소
10
7
2
1
19
9
+10
16
프로

2
파일:현대 호랑이 엠블럼.svg현대 호랑이
10
5
4
1
16
8
+8
14
프로

3
파일:대우 로얄즈 로고.svg대우 로얄즈
10
6
0
4
18
14
+4
12
프로

4
파일:유공축구단 엠블럼.png유공 코끼리
10
3
3
4
18
16
+2
9
프로

5
파일:포항제철 아톰즈 엠블럼 (1985~1995).png포항제철 아톰즈
10
2
2
6
9
18
-9
6
프로

6
파일:한일은행축구단 엠블럼.png한일은행 축구단
10
1
1
8
8
23
-15
3
실업


  • 승리 시 승점 2점, 무승부는 승점 1점을 획득한다.
  • K리그 1986 시즌 챔피언 결정전 진출

86 축구대제전 챔피언 결정전
1차전, 11월 22일(토), 동대문 운동장
파일:포항제철 아톰즈 엠블럼 (1985~1995).png포항제철 아톰즈
1
0
파일:럭키금성황소.png럭키금성 황소
2차전, 11월 23일(일), 동대문 운동장
파일:럭키금성황소.png럭키금성 황소
1
1
파일:포항제철 아톰즈 엠블럼 (1985~1995).png포항제철 아톰즈


축구대제전 1986 우승
파일:포항제철 아톰즈 엠블럼 (1985~1995).png
포항제철 아톰즈
첫 번째 우승


5. 사건/사고[편집]



5.1.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편집]


19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김종부는 각 프로팀들에게 눈독의 대상이었다. 해외의 각종 잡지에서 김종부를 86년 월드컵 대표팀의 핵심으로 간주했고 실제로 월드컵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하면서 기량을 발전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3월 21일 대표팀 전지훈련으로부터 귀국한 김종부를 놓고 현대와 대우가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대우는 이미 김종부의 작은형을 구단 경리담당으로 임명하고, 과거 2년간 김종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족까지 접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상황이었다. 현대도 만만치 않아서, 김종부의 모교인 고려대에 3억원의 시설투자를 약속했고, 고려대 측에서는 김종부에게 현대로 갈 것을 권유하게 된다.[2] 김종부는 대우로 가고 싶은 의사를 여러번 드러냈으나 학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현대는 김종부와의 가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며 법정싸움으로 옮겨가겠다는 자세를 취했고 김종부가 대우와 현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빚자 여론 또한 악화해간다. 결국 체육부가 나서서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고려대가 김종부의 제명을 요구하면서 축구협회는 김종부를 월드컵 대표에서 제외하는 충격적인 일로 이어진다. 결국 축구계가 나서서 김종부 구명운동이 일어나고 김종부는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하여 득점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우와 현대는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김종부를 두고 계속 대결을 벌였고, 이와중에 상처를 받는 것은 선수 뿐이었다. 월드컵 이후로도 계속된 싸움은 현대의 팀해체 위협과 축구계 내분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우도 현대도 아닌 포항으로 김종부는 리그 데뷔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1년간 운동을 쉰 김종부는 이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없었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결국 95년 그렇게 가고 싶었던 대우에서 씁쓸한 은퇴를 하게 된다.


6. 다른 시즌 보기[편집]





[1] 원래 이번 시즌부터 홈 앤드 어웨이의 지역연고에 기반한 리그를 실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체육부는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명목아래 반대의사를 표시했으며, 경품으로 관중을 유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인터뷰까지 했다.[2] 이러한 접촉을 안종복 당시 대우 사무국장이 등장해서 저지한다ㄷㄷㄷ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29 09:35:52에 나무위키 K리그/1986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