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K.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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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호벤 F.K.52 (Koolhoven F.K.52)

1. 제원
2. 요약
3. 설계 및 개발
4. 복엽기로 싸운 핀란드 공군



1. 제원[편집]


형식 : 단발 복좌 전투기
설계 : 프레데릭 쿨호벤(Frederick Koolhoven : 1886~1946)
생산 : 쿨호벤 (Koolhoven)
초도 비행 : 1937년 2월 9일
생산 시기 : 1938년~1940년
운용 시기 : 1939년~1943년
승무원 : 2명
전장 / 전폭 / 전고 : 8.25 m / 9.8 m / 3.3 m
익면적 : 28.4 m2
중량 : 1,650 kg ~ 2,500 kg
동력 : 브리스톨 머큐리(Bristol Mercury VIII) 공랭 9기통 엔진(838 hp) 1기
최대속도 : 380 km/h
순항속도 : 308 km/h
항속거리 : 1,130 km
상승한도 : 9,800 m
무장 : 7.7mm 기관총 2정 (날개) / 7.62mm L-33/34 기관총 1정 (후방) / 폭장 150 kg
생산수 : 6대
운용 : 네덜란드 공군, 핀란드 공군


2. 요약[편집]


네덜란드로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있던 항공기 제작사 쿨호벤(N.V. Koolhoven)에서 개발한 단발 복좌 복엽 전투기로, 1930년대 중반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37년에 처음 소개되었다. 복엽기 중에서는 매우 드물게 캐노피로 밀폐된 조종석을 갖추고 있었지만, 단일 스트럿 고정식 랜딩기어가 장착되어 신기술과 재래식 기술이 뒤섞인 과도기적인 구조로 만들어졌다. 원형기를 포함해도 고작 6대만 만들어졌지만, 뜻밖에 네덜란드 왕립공군과 핀란드 공군에서 실제로 운용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해 싸운 워버드였다.



3. 설계 및 개발[편집]


F.K.52의 프로토타입 기체는 1937년 2월 9일에 처녀 비행을 했지만, 같은 해 8월 11일에 추락 사고를 일으켜 대파되었다. 이 사고로 말미암아 발주처인 네덜란드 왕립공군은 도입을 망설이게 되었지만, 개발자이자 쿨호벤 사의 대표 프레데릭 쿨호벤은 무슨 자신이 있었는지 F.K.52를 만들기 위한 생산 라인 1개를 발하벤 공항(Waalhaven Airport)에 자리잡고 있는 공장에 준비시켰다. 이윽고 해가 바뀐 1939년에 네덜란드 공군은 36대의 F.K.52를 발주했지만 얼마 후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했을 때까지 단지 5대만 완성되어 있었다.



4. 복엽기로 싸운 핀란드 공군[편집]


핀란드소련이 침공하여 겨울전쟁이 벌어지자, 쿨호벤 전투기는 스웨덴 귀족이면서 항공 개척자로 일컬어지던 칼 구스타프 폰 로젠(Carl Gustaf von Rosen : 1909~1977) 백작이 2대를 구입해서 전투기가 부족해 쩔쩔 매던 핀란드 공군에 기증했다. 이 2대의 전투기는 1940년 1월 18일에 핀란드로 날아가 무사히 도착했고, KO-129호기와 KO-130호기라는 등록기호를 부여받고 일선에 배치되었다. 사실, 1940년쯤 되면 복엽 전투기는 일선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기 때문에, 핀란드 조종사들은 스웨덴 백작이 기증한 2대의 복엽기를 가리켜 콜호(Kolho)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40년 3월, 이 복엽 전투기들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 비롤라티 마을 어귀에 교두보를 형성하기 위해 새까맣게 몰려든 소련 군대를 향해 폭탄을 떨구고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겨울전쟁 동안 2대의 쿨호벤 전투기들은 15회 이상 전투를 경험했고, 전선에서 소련 전투기를 만나 교전한 경험까지 하게 되지만 기적적으로 격추되는 일은 없었다.

1941년이 되자 장비에 조금 여유가 생긴 핀란드 공군은 남부의 항코(Hanko) 지역에서 제6정찰비행대(LeLv 6)에 의해 사용되었다. 두 복엽기는 겨울전쟁에서는 살아남았으나, 이어진 계속전쟁 중에 소련 공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KO-130호기는 항코 상공을 날으면서 전단지를 살포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소련군으로부터 대공포 사격을 받고 불시착했지만 두 승무원은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에스토니아에서 1941년 8월 16일에 소련군의 공격을 받고 추락한 두 승무원들과 기체를 발견한 에스토니아 반군들은 남아있던 비행기의 잔해를 불태우고 그틀의 시신을 벨리제(Velise)에 예를 갖추어 매장해주었다.
남아있던 KO-129호기는 1943년 비행 사고로 카우하바(Kauhava)의 페르나(Pernaa) 마을 북쪽에 추락했지만, 조종사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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