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aea/스토리/Sid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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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2. 사야
2.1. 해금 조건
2.2. Absolute Reason
2.2.1. 3-0
2.2.2. 3-1
2.2.3. 3-2
2.2.4. 3-3
2.2.5. 3-4
2.2.6. 3-5
3. 코우
3.1. 해금조건
3.2. Crimson Solace
3.2.1. 4-1
3.2.2. 4-2
3.2.3. 4-3
3.2.4. 4-4
3.2.5. 4-5
3.2.6. 4-6
3.2.7. 4-7
3.2.8. 4-8
4. 시라히메
4.1. 해금조건
4.2. Divided Heart
4.2.1. S-1
4.2.2. S-2
4.2.3. S-3
4.2.4. S-4
4.2.5. S-5
4.2.6. S-6
5. 레테
5.1. 해금조건
5.2. Ambivalent Vision
5.2.1. 5-1
5.2.2. 5-2
5.2.3. 5-3
5.2.4. 5-4
5.2.5. 5-5
5.2.6. 5-6
5.2.7. 5-?
5.2.8. 5-?
5.2.9. 5-?
6. 앨리스 & 테니얼
6.1. 해금 조건
6.2. Ephemeral Page
6.2.1. 7-1
6.2.2. 7-2
6.2.3. 7-3
6.2.4. 7-4
6.2.5. 7-5
6.2.6. 7-6
7. 라그랑주
7.1. 해금조건
7.2. Esoteric Order
7.2.1. 9-1
7.2.2. 9-2
7.2.3. 9-3
7.2.4. 9-4
7.2.5. 9-5
7.2.6. 9-6
8. 에토/루나
8.1. 해금 조건
8.2. Binary Enfold
8.2.1. 10-1
8.2.2. 10-2
8.2.3. 10-3
8.2.4. 10-4
8.2.5. 10-5
8.2.6. 10-6
9. 마야
9.1. Lasting Eden
9.1.1. 15-1
9.1.2. 15-2
9.1.3. 15-3
9.1.4. 15-4
9.1.5. 15-5
9.1.6. 15-6
10. 혜안
10.1. Severed Eden[1]
10.1.1. 16-1
10.1.2. 16-2
10.1.3. 16-3
10.1.4. 16-4
10.1.5. 16-5
10.1.6. 16-6
10.1.7. 16-7
10.1.8. 16-8


1. 개요[편집]


Arcaea의 Side Story를 기록한 문서.


2. 사야[편집]



2.1. 해금 조건[편집]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3-0
Absolute-5
파일:arcaea_char_23_icon.png
파일:arcaea_antithese_base.jpg
사야Antithese 클리어
3-1
Absolute-1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
파일:arcaea_antithese_base.jpg
Antithese 클리어
3-2
Absolute-2
파일:Arcaea/Corruption.jpg
Corruption 클리어
3-3
Absolute-3
파일:arcaea_char_23_icon.png
파일:Arcaea/Black Territory.jpg
사야Black Territory#Arcaea 클리어
3-4
Absolute-4
파일:Arcaea/Cyaegha.jpg
사야Cyaegha#Arcaea 클리어
3-5
Absolute-6
파일:Arcaea/Vicious Heroism.jpg
사야Vicious Heroism#Arcaea 클리어


2.2. Absolute Reason[편집]



2.2.1. 3-0[편집]


또 다른 깨어남이자, 그녀의 첫 번째 깨어남.

모든 이가 머릿속이 텅 빈 채 기억의 세상에서 깨어난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빛이 각막을 통해 쏟아져 들어올 때 그녀를 휘감는 감각은 낮선 것이다. 먼저 그녀의 가슴이 열정적으로 뛴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쌓여가는 절망감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녀는 배 주위에 두른 옷을 잡으며 귀가 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찡그리며, 그녀는 눈이 두 개가 아닌 하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얼굴 여기저기를 더듬어 본다.

"이게 대체...?"

그녀는 기침을 하며 자기 자신을 일으킨다. 그녀가 장갑 사이로 느낀 것은 그녀의 오른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딱딱한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거의 부드러운 물체였다. 그녀는 자신이 장갑을 끼고 있음을 자각한다. 자기 몸을 내려다본 그녀는 왜 자신이 이런 옷을 입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또한, 자신이 입은 옷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녀는 지금껏 벽에 기대어 잠자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본 그녀는 구석자리 세 곳을 포함해 사각형의 공간에 자신이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구석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상태다.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지만 거기엔 지붕도 없다. 그녀는 애초에 왜 이런 곳에 지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자문한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희미하게나마. 그녀는 발을 디딜 만한 곳을 찾아 자신이 기대어 자던 벽을 따라 터덜터덜 걷는다. 벽돌들을 걷어내던 그녀는 벽돌이 새하얗다는 것을 눈치챈다. 위를 올려다본 그녀는 벽뿐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하얗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은 날고, 의지가 사라진, 인간 세상의 끝없는 풍경 혹은 여러 사회를 모방한 공간일 것이다. 이상하다. 게다가 그녀가 이 공간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어째서일까?

반사 유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보이는 것들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수십 가지의 이론을 만들어낸다. 비록 그녀가 혼자이고, 자신의 이름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럴듯한 진실을 상당 부분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특히, 한 이론을 뒷받침할 더 많은 이유를 발견한다.

그녀는 확신과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얀 세상은 질문만 던질 뿐 답은 해주지 않는다. 며칠이 흘러도, 폐허 속에는 아무런 답도 보이지 않는다. 몇 주가 흘러도, 유리 안에는 아무런 답이 보이지 않는다. 유리로 가득 찬 세상은 언제나 타인의 모습과 더 선명하고 다양한 장소들을 비추며 그녀를 조롱한다. 진짜를, 특히 하얀 세상 그 자체를 흉내 내는 메아리는 인간의 발명품인 것이 분명한 것들을 모방한 것으로 가득 찼다. 두 달, 혹은 그보다 좀 더 긴 기간 사이에,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를 빋을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보았다고 느꼈다. 그것도 확신을 가지고.

얼마 전인가 그녀가 깨어났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의 부서진 계단 맨 위에서 있을 때였다. 그녀는 하늘의 굽이치고 나눠진 부분을 응시한다. 그곳은 백 개가 넘는 아르케아의 조각들로 만든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유리창으로, 깨진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 자신을 분명히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절대로 부족하다. 추측만으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그녀는 맹세한다. 이 왕국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고 아주 조금밖에 알려주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곳이고, 그렇기에 그녀는 그 수수께끼를 풀고 그 이유를 찾아낼 것이라고.

그렇게 그녀가 아르케아를 완전히 받아들이자...

아르케아도 그녀를 완전히 받아들였다...

읽힐 뿐만 아니라 살아나가야 할, 거대하고 끝이 없을 것 같은 기록의 저장소로서.



2.2.2. 3-1[편집]


파일:Arcaea/Story/3-1.jpg

이른 저녁이다. 바깥은 태양이 발하는 호박빛의 황혼이 쉼 없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지만, 주변을 둘러싼 초원에 놓인 장치들이 그 빛을 빨아들여 달이 내뿜었을 법한 빛과 비슷한 광선으로 바꾸고 있다.

연회에는 어떤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비록 저택 밖에서 지켜보는 눈들은 없지만, 항상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상류층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녀도 이 사실을, 이 모든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어두운 곳에 앉아, 햇빛이 닿지 않는 천장과 계단을 비추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이 사실이 주는 의미에 대해 차분히, 침묵에 잠겨 생각해 본다.

"라비니아."

술잔을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든다.

약혼자(너무 잘 차려입어 답답해 보일 정도지만, 편안한 자세로)가 그녀 앞에 서 있다.

"잔 안에 있는 술은 와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그녀는 멀쩡한 눈으로 술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리고 대답한다. "이건 사과주야... 도노반."

"그렇군." 방의 나머지 부분을 둘러보던 그는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그 대답을 듣는다. 그가 살짝 웃는다.

"엄마나 다른 사람들은 와인 한 잔 정도는 몸에 좋다고 하지..." 그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혹시 술에 취한 남자를 본 적 있어?"

그녀는 움찔하더니 곰곰이 생각해보고 대답한다. "아니."

"잘 됐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 편이 나아." 이렇게 말한 뒤 그는 돌아섰다. "모건과 이야기 나누러 갈게. 오고 싶을 때 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도노반은 벽난로 옆에 있는 둘의 유년 시절 친구에게 다가간다.

항상 그렇지만, 이미지는 유지되어야 한다. 난롯불의 불길은 겨우 몇 발자국 주위를 밝혀주고는 사라져, 바닥에놓인 등불로 빨려 든다.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어둡지만 아늑하다. 느긋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다. 머리 위에 걸린 등불 몇 개가 내뿜는 빛은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거나, 술 몇 병과 함께 신경 써서 차린 음식들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다. 절반이 유리로 된 벽 너머로 보이는 바깥은 야생화와 돌, 개울들과 같은 야생에 가까운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다. 새틴의 빛깔과도 같은 한밤의 푸른빛에 싸여 있다. 연회에는 스무 명의 손님들이 왔는데, 절반은 이 방에, 나머지는 홀이나 서재 같은 곳에 있다. 그녀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녀는 사과주를 입안에 머금고 음미해 본다. 사과주를 별로 마신 적 없는데도 그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더 나은 맛과 감각을 불러일으켜 보려고 하지만, 그 순간 혓바닥의 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총평: 굉장히 불쾌한 맛이다. 이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그녀는 옆에 있던 작은 탁자 위의 화려한 문양의 받침 위에 잔을 내려놓는다. 그녀는 다소 멍한 상태로 그녀의 다른 쪽 눈에서 피어나는 꽃잎들을 매만지며 앉은 채로 듣고, 바라본다.

그녀는 도노반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상당히 많이 해냈어. 처음 그 계획을 들었을 때, 난 당연히 불가능할거라 생각했거든."

"찰스는 아직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라고 다른 손님이 말한다. 모건이 아닌 나탈리아다.

"놀랍군." 도노반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온전한 세상이라." 그는 말한다. "인류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2.2.3. 3-2[편집]


깜빡거리던 등불을 쫓던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눈은 이제 곧 남편이 될 남자를 찾는다. 손을 뻗어 술잔을 쥔 그녀는 한 모금을 마신다. 그 한 모금으로 그녀는 자신이 왜 술잔을 내려놓았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창조된 세상에 관한 일은 그저 저들의 특별한 관심사도 아니다. 그들은 그 세상에 대해 그리 많이 대화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녀는 사실 이것이 정말 흥미로운 주제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짜증이 치민다. 때로는 이들이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자는 점점 인내심을 잃는다. 그녀는 일어서서 거실을 지나, 좀 더 화려하고 밤 분위기에 맞게 꾸민 홀을 통과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하지만 희미하게만 기억나는 방들을 지나친다. 그녀는 불이 켜지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이 쭉 뻗은 길을 따라, 열쇠 구멍도 없는 듯한 문들을 열고 나아간다. 문이 열린 곳에서는 몇 명의 남녀가 마주 앉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혹시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더라도, 그녀 쪽에 눈길을 한 번 던지고는 다시 대화로 돌아오거나 휴식을 취한다.

그녀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저택은 최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옛날 '전통'에 얽매인 곳이다. 그렇다. 조광통도 신기하고,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자연도 특이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정원에 있는 빛을 변형하는 기계들이었다. 그녀도 그 기계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아직 없었다.

한 마디로, 그녀는 "궁금했다".

따분한 사교 모임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됐고, 오늘도 그저 수많은 또 하나의 '오늘'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몸담고 싶은 하루는 아니다. 생명과 창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놀라운 것들이다.

하지만 그녀가 정면 진입로로 향하는 문으로 다가서자...

그녀의 손가락이 앞에 놓인 커다란 손잡이의 나무 부분에 닿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곳에는 과거가 아무것도 없음을, 그녀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직감한다. 이 세계 전체에서 그녀가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장소는 없다. 그녀의 자리는 기술을 경배하는 초원이 아니라, 곧 남편이 될 남자가 있는 거실이다.

"바깥"이란 공상에 불과하다. 아무 의미 없는,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다.

별로 기분 좋지 않은 깨달음이다.

손잡이에서 손을 뗀 그녀는 돌아서서 현재 조각 하나하나마다 세상의 다른 곳을 비춰주고 있는 샹들리에 아래에 섰다. 조각이 보여주는 모습은 끝없이 변화하며, 그녀가 다가갈 수 없는 장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샹들리에가 내뿜는 천상의 빛에 가까운 반짝임은 사라지면서 이 장소와 샹들리에 자체에 너무나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녀의 눈과 입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가슴속에 타오르는 불만의 작은 불꽃을 안고 저택으로 터덜터덜 걸어 돌아온다.



2.2.4. 3-3[편집]


폭풍이 벽 뒤의 지형에 쌓인 꽃잎들을 휘날린다.

하얀빛과 사파이어의 반짝이는 빛이 눈길을 사로잡고, 연회의 젊은이들이 신이 나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마법같은. 굉장한.

그녀는 라운지로 돌아와 인공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지켜본다.

그 우스꽝스러운 장엄함을.

그녀는 꽃들이 처음 바람에 흩어지던 날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그녀는 이제 "기억"해내는 것은 질릴 만큼 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그녀는 어디까지가 경계일까 시험해 보았다.

창문은 닫혔고, 정원으로 나가는 유리문도 막혔으며, 통풍구는 빗장이 쳐졌다.

여기에 대한 그녀의 물음은

"사람들이 일부러 막아서 일까 아니면 내가 여기에 갇혀서 일까?"

그녀는 은유와 감정이 어린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저기 찔러 보고, 확인해 보고, 뒤집어 보고, 돌아다닌 뒤에,

그녀는 자신과 아는 사이로 여겨지는 지인이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날씨가..."

"왕이..."

"있잖아, 지난주에..."

지루할뿐더러 별 내용도 없다.

몇 가지의 질문은 불신 또는 냉대로 이어졌다.

마치 아무런 질문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가 주로 궁금했던 공학, 기술, 진보 같은 주제가

다른 손님들에겐 아무런 흥밋거리도 되지 않는 듯싶었다.

커지는 절망 속에서 묵묵히 귀 기울이던 그녀는 마침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더러운 행성보단 조금 나은 정도지만, 앞으로 사람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들었어."

거기에 대해 다시 물었지만... 역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정보였으므로, 그녀는 라운지에 들어섰다.

그녀는 지금 폭풍을 바라보며, 그 세상을 이해하며, 그 세상에 속에 서 있다.

여자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는 약혼자를 지나친다.

그가 "라비니아, 돌아왔구나."라는 말로 그녀를 반갑게 맞자, 그녀는 그의 옷깃을 쳐다본다.

그는 옷깃을 쫓는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다.

배우들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눈에 띄거나, 독특한 행동에 대해선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다.

그녀는 점점 더 과감해지지만, 다른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일상대로 움직일 뿐이다.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거겠지?

그녀는 오랫동안 답을 원했던 한 가지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한다.

"인간이 만든 세계...란 유리로 만든 것 아니야?"

"...흐음? 뭐라고...? 아니야, 라비니아. 그런 싸구려가 아니야."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눈이 커진다. 동공은 작아진다.

수많은 질문들 중 하필 그 질문이었다.

도노반은 그녀의 어깨너머를, 그리고 벽들을 쳐다보며 말한다.

"어쨌든, 사랑스럽지 않아? 당신의 사랑스러움에 견줄 수 있을 만큼..."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대답을 사실상의 확인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결정을 내린다.

저 너머의 꽃의 소용돌이가 잔잔하게 공기를 타고 흩어지며 춤추는 동안,

그녀는 음식이 놓인 탁자로 다가가 빵 앞에 멈춰 선다.

도노반이 말을 잇는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여기 끝없이 펼쳐지는 계곡 같은 볼거리가 풍성할 거라고 했어.

지금은 황량하지만 말이야. 개념 같은 거지. 이해하겠어?"

그녀는 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을 멈추고, 듣는다.

"하지만 그곳으로 갈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 엄청난 세계와 만나게 될 거야.

그 세계의 잠재력을 생각해 봐, 라비니아."

그녀는 한숨을 내쉰다. 또다시 영양가 없는 이야기다.

그녀는 질 좋은, 잘 다듬은 나무에 손을 가져간다.

그녀는 재빨리 돌아 기다리는 남편에게 다가간 뒤,

손을 휘둘러 그의 목으로 가져간다.

빵칼의 날이 그의 목에 닿은 채 멈춘다.

아무런 감정 없이, 심지어 한 점의 반감도 없이, 그녀는 아무 말 않고 소년의 목을 긋는다.

그리고 무엇이 흘러나올지 가까이서 지켜본다.



2.2.5. 3-4[편집]


흘러나온 것은 피가 아니다.

흘러나온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신사의 목은 분명 끔찍한 방법으로 잘렸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끔찍함"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목이 잘려나간 처참한 이미지 대신, 그의 잘린 목은 구겨지고 찢겨나간 종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내부를 채운 것은 "그림자"가 아닌 "부정적인 공간"이다. 그의 몸속을 채운 것은 공허이다. 칼에서 잘려나간 상처 부분이 어떤 하얀 빛으로 희미하게 반짝이고, 그녀가 사용했던 칼의 날에선 진동하는 파편들이 떨어져 나와... 공중에 떠 있다.

도노반은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초청객 역시 그녀의 행동으로 공포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여성들은 기절해 쓰러졌으며, 도노반은 자기 목을 향해 손을 뻗는다. 몇몇 남자들이 그녀게 달려와 그녀의 팔뚝을 끌어당긴 뒤 그녀의 목을 움켜쥔다. 그녀는 칼을 꽉 쥐고, 무감각한 표정으로 남편의 당황한 눈동자 안을 들여다본다.

제지하려고 달려드는 손님들과 몸 다툼을 벌는 와중에, 그녀는 도노반 뒤에서 바닥에 쓰러져 완전한 발작 상태에 빠진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의 목소리는 갈수록 왜곡되더니, 갈라지고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미 그때, 기억은 부서지고 말았다.

이건 실제와 많이 달랐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 왜곡된 기억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바뀔 수 없다.

평화로운 한때에 예고 없이 자기 남편을 급습하는 부인이라니...

그녀는 뭔가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었고, 따라서 지금의 결과에 만족했다. 비록 실내에 있던 소수의 손님들은 이 소란에도 당황하지 않았지만, 일부는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다. 기억을 이 정도까지 변형시킨 것은 최초인 것 같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성공이다.

세상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그녀가 볼 수 있는 곳에선 갈라진 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후 현실은 그것으로 인해 거의 구겨져 버린 것 같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안락을 위해 모든 세상을 만든다... 분명 그것보다는 더 나은 용도가 있을 거야."

손에 쥔 빵칼을 내려놓은 그녀는 빵칼이 그녀가 내려놓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쉰다.

"이제 '기억'도, '메아리'도, '실체 없는 상'도 지경겨워. 무엇보다 '유리'가 특히..."

방이 쪼그라든다.

"결국, 또 하나의 의미 없는 꿈이였어."

행성이 갈라진다.

새하얗게 흐려지고 옅어지더니,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사방에서 잠시 반짝한다. 이 회상 속에 간직된 모든 소리가 스쳐 지나가는 사이, 유리가 미끄러져 나가는 그 잠시 동안안, 그녀는 빛과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은 채로 있는다. 다시 눈을 뜨자 희미하게 빛나는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음은 뒤숭숭해지고, 빛나는 고통의 물결이 한 차례 더 밀어닥친 후 그녀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당혹스러운 세계와 마주한다.

하얀 세상과 폐허. 기억으로 재구성된 아르케아의 왕국.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조각을 바라보며 그녀는 "아르케아 대해서 좋은 감정을 품었었지"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이 세상의 창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어. 게다가 거의 텅 비었지. 흐음. 내가 그것들을 볼 수 있다면, 없앨 수도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유리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낸다. 땅 위를 흐르는 반짝이고 날카로운 강으로. 사야라는 이름의 여자는 평탄한 지평선을 바라보는 가운데 무심결에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최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들을 되돌아보며, 수없이 많은 다른 기억들과 비교해 본다.



2.2.6. 3-5[편집]


"이와 같은 다른 곳에서, 인간은 신처럼 군림할 수 있다."

그것이 그녀가 배운 사실이었다.

눈 속에 꽃 한 송이를 품은 소녀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기억의 책을 덮는다. 대부분은 별 가치가 없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소득은 있었다.

사실, 처음엔 실망했다. 그녀가 방문한 세계가 시시한 곳임을 금방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시함도 인류의 잠재력에 대해 뭔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방법'이 아닌 '이유'에 대한 더 많은 이론이 그녀를 앞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여기저기 흩뿌려진 희망 속에 세상의 폐허들을 돌아다니는 여행일 수도, 혹은 그저 세상과의 극히 표면적인 스침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움직이게 한 주된 동기였다면, 두 번째 동기는 그녀가 이백 개가량의 기억들을 목격한 뒤 분명해졌다.

"거기엔 실현 가능한 재건에 대한 새로운 내용은 아무도 없었어." 그녀는 넓게 흩어진 유리의 강 가운데 곁에 있는 조각 하나에게 손짓하며 속삭였다. "하지만 거기에도 어떤 가치는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녀는 새로운 조각의 빛에 눈을 돌렸고, 그 조각이 비추는 과거의 영상을 꼼꼼히 살피며 무심결에 중얼거린다. "거의 집에 다 왔어..."

그녀는 조각을 손바닥 위에 놓은 채 이제는 아주 익숙한 다리를 건넌다. 그녀의 왼쪽에는 한때는 도시들이었으나 지금은 마구잡이 폐허로 변해버린 잔해들이, 그녀의 오른쪽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유리와 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녀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태어난" 장소로 향한다.

그녀는 먼 거리에도 개의치 않고 나아가 무너진 네 개의 벽이 선 장소 앞에 선다. 벽들 사이에는는 빛나는 수정의 거대한 구체가 하나 있다. 마치 깨진 껍데기처럼 미완성 상태로 깨지고 흩어진 구체다. 웃음, 눈물, 죽음, 그리고 축하가 수정의 표면에서 명멸한다. 꽃, 초원, 사막, 대양... 동물, 사람, 기술...

그녀는 기억들을 하나로 엮어서 세상을 재창조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재창조는 고사하고 이런 식으로 기억들을 이런 식으로 하나로 모아서 진짜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시도는 할 수 있다.

그녀는 새로 가져온 조각이 내뿜는 빛 때문에 눈을 찡그린다. 그녀는 "네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보여줘"라고 크게 외친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그녀는 새로운 시간대로 이동한다. 순식간에 그녀 앞에는 인공적인 빛으로 가득 찬 세계가 펼쳐졌고, 거기엔 인간이 만든 끝없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숫자의 탑들이 저녁 하늘의 구름들을 가로지르는 높이로 서 있었으며, 어둠에 쌓인 이동 수단들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불쾌한 공기가 그녀의 폐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불협화음이 그녀의 귀를 가득 채운다. 그녀에게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과거가 생겨나는 모습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지켜본다. 수십 가지 질문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녀는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낼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일을 해내서라도.



3. 코우[편집]



3.1. 해금조건[편집]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4-1
Crimson-1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
파일:Arcaea/Paradise.jpg
Paradise 클리어
4-2
Crimson-2
파일:external/wikiwiki.jp/?plugin=ref&page=%A4%B3%A4%DC%A4%EC%CF%C3&src=charicon_Kou.png
파일:Arcaea/Party Vinyl.jpg
코우Party Vinyl#Arcaea 클리어
4-3
Crimson-3
파일:Arcaea/Flashback.jpg
코우Flashback 클리어
4-4
Crimson-4
파일:Arcaea/Paradise.jpg
코우Paradise 클리어
4-5
Crimson-5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
파일:Arcaea/フライブルクとエンドロウル.jpg
Flyburg and Endroll 클리어
4-6
Crimson-6
파일:external/wikiwiki.jp/?plugin=ref&page=%A4%B3%A4%DC%A4%EC%CF%C3&src=charicon_Kou.png
파일:Arcaea/Nirv lucE.jpg
코우Nirv lucE#Arcaea 클리어
4-7
Crimson-7
파일:Arcaea/Diode.jpg
코우Diode#Arcaea 클리어
4-8
Crimson-8
파일:Arcaea/GLORY : ROAD.jpg
코우GLORY : ROAD#Arcaea 클리어


3.2. Crimson Solace[편집]



3.2.1. 4-1[편집]


파일:Arcaea/Story/4-1.jpg

끝없는 낮은 지루해지기 마련이다.뜨거운 태양 아래에 너무 오래 놓여있으면, 누구든 차가운 달을 갈망하게 된다.

그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80일간의 낮?"

"7개월간의 낮?"

"어쩌면... 1년..."

하늘을 물들인 하얀 빛이 그녀의 '집'의 갈라진 벽 틈을 뚫고 스며들어 온다. 온 바닥을 뒹굴뒹굴하며 자던 그녀의 몸은

무심코 들어온 빛에 쪼이고 말았다.

탄식이 새어나온다. "제발 불좀 꺼줘..."

그렇지만 오늘도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도 그녀는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문을 찾는다. 한없이 펼쳐진 아르케아의 세계에서 맞이할 또 다른 '날'을 위해.

여행은 언제나 즐겁기만 한것은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백지상태에서 처음 깨어난

그녀가 어떤 사실만큼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과 하늘. 이 두 가지는 언제나 밝게 빛난다는 사실이었다.

"좋아...!" 숨을 내뱉으며 한마디를 꺼낸다. "먼저 몸을 움직여보자!"

그녀가 손을 뻗어 내밀자 어떤 유리가 그녀를 향해 날아온다.

기억의 유리조각이 아닌,

'아르케아'가 아닌,

그저 흔하고도 평범한, 넓은 유리판이었다. 빙글빙글 돌면서 그녀의 앞에 다가온 유리판으로 뛰어오르며, 곧장 또 다른

유리판을 불러낸다.

그녀가 발견한 집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황폐한 복합 도시의 흔적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 외딴섬에 놓인 해변 별장이었다.

해변이라고는 하나 바닷물은 전부 말라버렸고, 별장이라고는 하나 소라게가 버린 껍데기처럼 여기저기 갈라졌으며 , 반대편인

내륙 쪽에는 기괴한 모습의 커다란 백목 기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집들은 그녀의 호기심, 혹은 무심코 건드리며

뜯어고친 흔적들로 안팎 할 것 없이 정신없었다. 오늘은 그 집들의 벽과 유리창들을 들어내어 경주로와 계단, 터널들 만들려

하고 있었다. 다리에 살아 있다는 실감을 주려는 듯이,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반짝이는 통로 위를 달려 나갔다.

이 모든 장난들은 이세계가 그녀에게 배푼 작은 관용이었다. 그녀가 깨어난후, 아르케아의 세계를 어뚱한 생각으로 휘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한편,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그녀의 밑에 펼쳐진 상상의 바닷속에서, 무언가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아주 희귀하고도 드문

무언가가, 모래 위에 살포시 놓여 있던 것이다.

그녀는 그 무언가에 눈을 흘기더니, 콧바람을 내쉬며 히죽히죽 웃었다.



3.2.2. 4-2[편집]


그녀에게 유리는 간단히 다룰 수 있는 물건이였다. 하지만 독특한 유리 조각, 아르케아는 어째선지, 아니, 확실히 그녀의 힘으로는 다룰 수가 없었다. 기억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기억들은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따라다니지도 않을 뿐더러, 그녀가 이를 들여다보거나 그 안을 방문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숨을 씩씩대며, 소녀는 수정의 발판에서 힘차게 뛰어올랐다. 뛰어오른 그녀의 뒤로 그녀가 만든 구조물이 조각조각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중력이 그녀를 완전히 땅으로 붙잡아 내리기 전, 그녀는 오른손을 뻗어 침대에 있던 담요를 불러온 후 즐겁게 휘둘러댔다. 그러고는 무겁고도 푹신한 무언가를 불러냈다. 공중에서 떨어지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만의 나태의 옥좌가 그녀의 몸을 받아내었다. 그녀가 아끼는 커다랗고 칙칙한 팔걸이의자였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아, 집 위의 하늘을 날며 눈을 반쯤 감은 채, 묘지처럼 늘어진 건물들로 장식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기쁨과 만족감에 젖은 그녀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오늘의 '아침' 운동도 아주 성공적으로 끝냈다. 그녀는 계속 머나먼 곳을 바라보며, 지금의 기쁨을 조금 깎아 내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있는 세계의 크기, 그리고 그 세계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본 것들이 이 세계의 3분의 1정도는 되는 걸까? 어쩌면 16분의 1일까? 너무나도 광활하고,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기억으로 가득한 세계.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 떠올라 의자를 흔들며,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광대하고도 오래된,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무질서한 세계. 그녀는 이 세계가 자신 이외의 누군가도 있을 지 모를,

기이하고도 신비한 세계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뜨고는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는 별들로 가득한 하늘이 있지 않을까.

그 하늘 아래에서, 다른 소녀들이 자신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붉은 소녀는 어깨까지 걸친 담요의 끝자락을 잡은 채 생각했다.

끝나지 않는 아침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자, 이정표 없는 여행의 출발이기도 했다.



3.2.3. 4-3[편집]


"흠, 어쩌면..."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대며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체중을 싣는다.

"혹시 저쪽에, 태양이 떠있는 걸까...?"

머리 위의 '천국'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무엇이 이곳을 빛으로 채우며 환하게 만들어주는 걸까?

지금까지의 여행이 '앞'을 향해간 것이었다면, '위'를 향한 여행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녀는 짓궃은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었다.

의자를 밟고 선 채 담요를 밑으로 떨어뜨리고, 그것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담요가 땅에 닿을 무렵, 한 나무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의자에서 뛰어올라 눈앞에 새로이 나타난 기둥의 짧은 강철 막대기를 붙잡았다.

떨어지지 않게 기둥의 옆면에 발을 단단히 고정한 채, 기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가 알기로는 이것은 다른 세계에서 전기를 보내거나 통신을 하는 데에 쓰이던 기둥이었다.

그녀는 강철 막대기를 쥔 손 아래 또 다른 막대기에 한쪽 다리를 내려놓는다. 그렇게 한쪽 팔다리로만 몸으르 지탱한 채, 구세계의 파괴된 잔해 위에 늠름히 섰다.

그녀는 수평선에 널린 수많은 건물들을 바라본 후,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안전하게 오르려면 사다리 같은 것이 필요했다.

그녀 발밑에 놓인, 그녀의 집을 제외한 다른 집들이 다시 무너져 내린다. 판자들과 침대 몸통, 장식장과 창문들,

그녀가 예전에 사용했다가 버려두었던 잔해들이 모래가 흐트러지듯 분해되기 시작한다. 부서지는 모든 것들이 확실하게 모여가며, 하나의 건축물로 형성되어 갔다. 하지만 진짜 건축가의 작품처럼 정교하진 못했다. 그녀가 세우는 탑은 천천히 하늘을 향하고 있었지만,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울퉁불퉁한 면 사이에 날카로운 물건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기도 했으며, 탑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가기도 했다.

불행히도 그녀의 섬에는 더 이상 쓸만한 재료가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재료를 끌어다 썻음에도 1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 높이밖에 되지 않는 결과물을 보며, 그녀는 밀려오는 짜증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녀는 투덜대며 수평선을 바라보고는, 그것을 움켜쥐려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당겨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필연적인 일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게 제아무리 강한 힘과 기술이 있다 한들,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3.2.4. 4-4[편집]


패배감을 맛보며 손을 내린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기로 마음먹는다. 탑 대신 나선형의 계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한 시간하고도 또 한 시간, 그로부터 한 시간하고도 두 시간. 마침내 일을 끝낸 그녀는 자신의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

외형은 여전히 우스꽝스러웠고, 전에 것보다 훨씬 더 대충 만들어진 것 같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 설계가 훨씬 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기특하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새로운 건축물을 만든 그녀는, 한시의 지체도 없이 곧장 계단을 올랐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갔으며, 팔걸이의자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혹시나 그녀가 탑에서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그리고 바닥 쪽의 계단을 끄집어 내어 위로 올려 보내는 방식으로, 꼭대기를 향해 계단을 이어나갔다. 머지않아 그녀는 끊이지 않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옅은 구름들을 지나며, 정상을 향해간다.

때때로 잠시 앉아 쉬거나 '밤시간'동안 잠을 자야 할 만큼 여행은 길어졌다. 이윽고 4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마침내 천국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하나의 배움을 얻게 되었다. '천국'이란 것은 뚫을 수 없는 거대한 구름의 벽이다.

그녀는 바닥 쪽의 계단 조각이 하늘에 떠다니는 솜털에 걸려 더 이상 위로 올릴 수 없을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위쪽으로 올리려던 계단을 자신의 옆에 놓은 채 붙잡았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자신의 최후의 비행을 감행하기로 마음먹는다.

꼭대기 즈음에 다다르자, 그녀는 모아 두었던 파편들과 판자, 기둥들을 끌어와 자신이 딛고 설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머리 위의 구름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하얀 무언가가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밀어내었고, 최대한 발끝을 들어 더욱 높은 곳으로 손을 뻗어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이 막다른 곳임을.

"정말...?"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낙담에 빠지려던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어떤 빛이 비쳤다.

그녀의 바로 오른쪽에서, 어떤 물체가 빛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흩뜨려놓고 간 구름에서 떨어져 나온 빛나는 물체들이었다.

스무 개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아르케아가 모인 군체가, 그녀를 향해 오고 있었다.

붉은 소녀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태양도 없는 아르케아의 하늘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땅에 선 그녀가 찾은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이 세계의 첫번째 기억들이라는 사실을.



3.2.5. 4-5[편집]


은은하게 떠도는 향냄새.

울려 퍼지는 마을 사람들과 어린이들의 목소리.

밝고도 활기찬 분위기.

요리하는 냄새, 빵 굽는 냄새가 거리를 휘감듯 퍼져 나와 그녀의 코를 한층 더 즐겁게 해준다.

올려다본 하늘은 선명한 햇살을 가리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도 푸르다.

이것은 새로운 세상의 기억. 그녀는 천천히 이 기억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부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이 기억은 한창 장인의 심부름을 하던 어느 도우미 소녀의 것이었다. 어떤 장인 밑에서 일하던 도우미였을까?

장밋빛 머리카락의 소녀는 아직 이 기억에 대해 정확히 알아내진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진짜 관심사는 다른 데에 있었다.

이 세계는...

'저것 좀 봐...!"

...마치 일편의 환상과도 같았다.

닫히지 않는 입과 반짝이는 눈빛. 그녀는 눈앞의 모든 광경에 놀라워한다. 머리 위에는 집들의 지붕과 지붕을 잇는 털실들이, 알록달록한 종이를 받치며 하늘을 수놓듯이 걸려있다. 언뜻 보기엔 치렁치렁한 장식이 달린 전선처럼 보였지만, 이는 전선이 아니라 축제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장식물이었다. 판석이 깔린 거리와 붉은 벽돌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검은 연기는 그녀가 지금 서있는 곳이 오래된 옛 마을, 혹은 도시임을 알려주었다.

거리에 즐비한 가판대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그란 태양 장식의 목걸이, 부적, 예쁜 반지들이 놓여 있었고, 어떤 가판대에는 그녀가 예전에 다른 기억의 도서관에서 보았던 동굴의 모양을 본뜬 것들도 있었다. 마을 아가씨들의 옷차림은 그녀과 입은 옷차림과 비슷했다. 축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너무 튀지도 않았다. 포근한 색들로 이루어진 이 알록달록한 세계에서, 때때로 시원하게 퍼지는 푸른빛의 장식들이 그녀를 매료시켰다. 그녀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중, 묘기를 부리는 거리 공연가들과 노래하는 음유시인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노래는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하면서도, 그 속의 가르침과 충고 또한 녹아들어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전시된 과자들의 견본을 구경하며 약간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은 약간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을 아무런 걱정도 없이 보내고 있었다. 견본을 구경하며 어떤 붉은 한 조각이 그녀의 이목을 끌었고, 곧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딸기 타르트'라고 불리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도우미 소녀가 갖고 있던 동전을 내밀고 그것을 받았다. 한 입 베어 문 그녀는 이곳이 정말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멋진 곳임을 실감했다. 말로 다 못할 만큼 멋지다! 인생의 기쁨을 맛 보여주는 달콤한 한 조각과 즐기는 아름다운 풍경의 세계.

이 기억 속의 세계에서 그녀는 분명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세계를 더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그녀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가빠 오는 숨도 잊은 채 가벼운 발놀림으로 빙글빙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모든 길모퉁이를 돌아다녔다.



3.2.6. 4-6[편집]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절대 서두르지 말자.' 이 마을의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각형 건물 밖에 걸린 표지판을 보며, 이곳이 신성한 장소임을 깨닫는다. 이곳은 신과 악마, 요괴와 같은 신적인 존재를 모시는 장소였다. 거리 공연가들이 보여주던 묘기들은 '환상', '이상', '불가능'으로 가득했다. 실제로 모든 공연가들 또한, 자신들의 묘기가 마법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생생한 빛을 띤 가루로 불꽃과 연기, 구름을 만드는 '주문'을 부리고, 물웅덩이에 말을 걸고 수면에 퍼지는 잔물결을 해석해 '운명'을 점치며, 그녀의 눈앞에서 빛을 이리저리 다루어 다른 존재와 '대화'하는 그 모습들은, 한눈에 도저히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지 알 방도조차 없었다.

이 세계는 풍요롭고도 믿음이 가득한 곳이었다. 기묘하고도 신비한, 그리고 명확한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

정취로 가득한 길을 산책하던 그녀에게, 기억이 살며시 귀띔해주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마법들이 사실은 허구이자 인위적인 행위이라는 사실을. 매우 가치 있지만, 절대적인 허구로 이루어진 전통.

그녀는 산책 끝에 도시의 바깥 경계선까지 다다랐다. 정확히는 이 기억 자체의 경계선이기도 했으며, 그녀가 아무리 지나가 보려 해도 정해진 현실의 끝으로 나가는 것을 완강히 막는 방어막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가로막는 낮은 높이의 간이 울타리 너머로, 그녀는 파릇파릇한 언덕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인상적인 늙은 떡갈나무 몇 그루와 함께 맑게 빛나는 호수를 바라보며, 그녀는 어째서 자신의 믿음을 배척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계속 그 믿음을 버리지 않는 이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몸소 깨달았다. 여기 있는 그녀 자신조차도, 유리 조각이 날아다니는 기이한 세계에서 온 존재였다. 그런데 왜, 이런 신비한 호수에 사기꾼 요정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받아들여지지 못할까? 섭리와 논리를 벗어난 생각들이 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걸까?

이 기억의 주인은 장인의 도우미였다. 그리고 그 장인은, 환상 속의 존재를 연구하는 마법사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도우미 소녀는 장인의 연구가 진전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추측하기에, 도우미가 장인을 도운 목적은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더욱 굳세어지도록, 더욱 나아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붉은 소녀는 그 현실에 아쉬워하듯 농담 섞인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푯말에 손을 올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리고 그녀는 이곳으로부터 서쪽에 고대의 숲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가 먼 곳까지 돌아다닐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 기억이 작은 심부름만을 끝내는 기억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 다른 기억을 통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 문명과 마법, 공연의 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아르케아의 정상에서 맞이했던 그 유리 조각의 군체에는, 이 세계 이외에도 또 다른 다양한 세계들을 비추는 유리 조각들이 있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들뜬 마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앞쪽 옷자락을 잡는다.

정말 굉장해. 미소 짓던 그녀의 얼굴이 애타게 떨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흥분과 즐거움이 밀려왔다.



3.2.7. 4-7[편집]


파일:Arcaea/Story/4-7.jpg

스무 번쯤 됐을까? 아니면 더 지났을 무렵, 그녀는 세는 것을 멈추었다.

"좋...았어..."

투박한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상자 앞에 앉은 그녀는, 숨을 내쉬며 섞여 나오는 혼잣말과 함께 상자의 윗면을 손바닥으로 털어내었다. 상자에 쌓여 있던 먼지들이 파도처럼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앞면의 자물쇠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오늘의 그녀는 홍수로 소실된 북쪽 지방의 어떤 고성을 여행하는 기록 보관원이었다. 다행히도 상자가 외부로부터의 수분을 전부 막아준 덕분에, 안에 든 종이들은 멀쩡했다. 고대 시대의 경첩이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동료가 다른 방에서 그녀의 발견에 대해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4시대의 두루마리에요." 그녀가 어깨 너머로 대답했다. 그녀는 두루마리 중 하나를 꺼내어 펼쳐보고, 나쁜 요정들을 상대하던 이들의 역사를 들춰보았다.

그녀는 옛 시대의 사람들이 요정들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옛이야기들은 언제나 그녀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녀는 어제 이야기꾼으로 일하면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남들에게 들려주는 기쁨도 체험했다. 옛적의 어떤 남자가, 머나먼 호숫가에서 막대한 보물을 발견해 배에 실었다. 그가 다시 호수를 건너가려 하자 바람의 정령이 나타나 그의 배를 바람으로 뒤흔들었고, 지나가던 물의 정령이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어버렸다. 그 후로 그 둘은 떨어진 보물들을 나누어 가졌다. 이 이야기에는 조심성 없는 안일함에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이야기가 이러한 생물들에게도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기록 보관원으로서의 하루를 끝낸 그녀는 아르케아의 세계로 잠시 돌아왔다. 그리고 세워뒀던 건축물을 임시 기지로 삼아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끝낸 후 그녀는 학교 선생님의 기억을 방문하여 무질서한 자연과 갑작스러운 위험, 부주의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아이들과 어른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규칙을 가르치는 수업을 하였다. 마법처럼 술술 풀어나가는 수업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기억은 아주 즐겁고 흥미로운 곳이었기에, 그녀는 끊임없이 조각들의 기억을 찾아갔다. 그녀는 아르케아 조각들의 세계에서 만나고 친해지는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보고 듣는 그 모든 것들을 그녀의 기억에 분명하게 새겨나갔다.

더없이 놀랍고도, 어딘가 애수 어린 느낌의 경험이었다.

천국에서 찾은 모든 기억들을 찾아가, 그 기억들의 구석구석까지 최대한 빠짐없이 탐험한 그녀에게, 마침내 시끌시끌하고 북적이는 축제날, 정확히는 한밤중의 축하 행사만이 남게 되었다. 이는 출산과 풍작의 신에게 감사를 올리고, 악령들을 쫓아내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두 신사 건축가인 랭커스터와 샤이아를 발견했다. 그들을 만난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수년이 지난 시기의 재회였다. 그렇지만 둘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며 설탕에 절인 사과를 주었고, 그녀는 둘도 없는 귀한 것을 받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들이 일제히 하늘을 가리킨다. 천 개의 찬란한 불꽃들이 뽐내듯 불타오른다. 신들에게 바치는, 저마다의 삶과 생명들에게 바치는 불꽃들.

그러나 그녀는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며... 그리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부풀어 오르는 감동도, 차오르는 희망도,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기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기억해냈다. 왜 모두가 한데 모였는지 알았다.

그녀는 익숙한 기억 속의 마지막 밤을 지새우며, 모든 것에 만족한 듯이 하늘을 칠하는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가슴을 쿡쿡 찌르는 아픔과, 눈가를 적시며 내리는 눈물과 함께, 그녀는 비로소 마음의 충만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3.2.8. 4-8[편집]


포근하고도 마음 설렜던 기억들. 그런 기억들 속에서 여러 달을 지내며, 때로는 '영원히 여기 있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작에는 끝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과거로 남은 기억에서, 그녀가 볼 수 있는 미래는 없었다.

두 번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을, 그곳에서의 추억들을 간직한 채, 그녀는 하얀 세상으로 돌아왔다. 지나버린 나날이 끝맺은 이야기, 끝나버린 삶과 사랑처럼 돌아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그녀는 자신을 부르던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모든 기억들에서 보낸 매 순간들이 전부 소중한 추억들이었음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토록 얻고자 했던 해답을 찾은 것처럼, 그녀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하늘은 갑자기 그녀를 향해 떨어져 내리려는 것 같았고, 임시 거처로 삼았던 구조물의 모든 조각들도 제각각 다른 속도로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무언가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머리 위의 진짜 하늘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으로 만든 발판에 선 그녀는 하늘에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나부끼며 얼굴을 때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저 둥둥 떠 있는 조각들을 뒤로 새로운 밤하늘이 펼쳐지는 모습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구름이 찢겨나가며 떨어지고 도망가듯 사라져가며, 그 자리를 대신하듯 심연과 같은 반짝이는 그림자들이 자리 잡았다. 그림자는 보랏빛의 수평면을 이루어 더 멀리 어둠으로 물들여갔고, 연보랏빛의 거센 파도가 요동치며 이를 뒤따르듯 퍼져나갔다. 그리고 별들이 나타났다. 낮이 끝났다.

가슴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름 하나를 마지막으로 속삭이며, 손등으로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녀의 유리가 마침내 두꺼운 구름의 마지막 장막을 뚫었다. 촘촘히 얽힌 잿빛의 풍경이 비로소, 가장 머나먼 부분까지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의 새로운 삶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손을 맞잡으며 언젠가, 수평선 너머의 어딘가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발견하리라는 확신으로 차올랐다. 그날이 오면, 자신의 손으로 대단한 일을 해내리라 굳게 믿으며.

다가올 그 순간까지, 그녀는 미래를 내다볼 것이다.

아르케아에서, 현재를 살아가며.



4. 시라히메[편집]



4.1. 해금조건[편집]



{{{#fff 스토리 #
진행 순서
'''

해금 조건
'''
S-1
Divided-1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
파일:Arcaea/Blue Rose.jpg
Blue Rose 클리어
S-2
Divided-2
파일:shirahime_icon.png
파일:Arcaea/First Snow.jpg
시라히메First Snow#Arcaea 클리어
S-3
Divided-3
파일:Arcaea/Blue Rose.jpg
시라히메Blue Rose 클리어
S-4
Divided-4
파일:Arcaea/Blocked Library.jpg
시라히메Blocked Library#Arcaea 클리어
S-5
Divided-5
파일:Arcaea/nέο κόsmo.jpg
시라히메nέο κόsmo#Arcaea 클리어[2]
S-6
Divided-6
파일:Arcaea/Lightning Screw.jpg
시라히메Lightning Screw#Arcaea 클리어


4.2. Divided Heart[편집]



4.2.1. S-1[편집]


자신도 모르는 이름, 그녀의 이름은 “시라히메”다.

시라히메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손에 홀을 쥔 채로 깨어났다. 이 물건들이 무엇인지 안 순간 시라히메는 그 의미도

알게 되었다. 두 가지 색의 눈동자를 가진 백발의 소녀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 나에게 절을 하거라!”

“어... 음?”

"...이 자도 아닌가 보군.”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자세로 곁눈질하며 스스로가 공주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 소녀는 “왕좌”-부엌 의자지만-

에 기댄 채로, 친구-유리 틀 속에서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친구-에 대한 기억을 혼란스럽게 기억해내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네 개의 조각.

시라히메는 과거의 진실을 찾아 헤매며 네 개의 조각을 탐험했다. 그곳에야말로 가장 확실한 진실이 있으니까!

이 물건들의 중요성에 대한 타고난 지식, 말의 이해력, 그리고 자신이 아주 예전에 깨어난 세상을 인식해 온

방법은 그녀에게 “아르케아”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는 단순히 혼란이나 기회의 장난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느낌과는 관계없이 더 중요한 것은, 백색의 세계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것이다.

정말 불편해. 그녀에게는 확실함이 필요하다.

“들어봐, 하무-”

“하루.”

“하토.” 시라히메는 잠시 멈추었다가 손을 옆으로 펼쳐 보였다. “내 성에 관련한 기억을 찾고 있어. 내 '성’ 말이야.

이해했어?”

“성,” 하루가 따라한다. “그러니까 네가 여왕이나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입술 위에 느슨하게 주먹을 댄 채로, 시라히메는 그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음, 어쩌면 공주일지도,” 고심 끝에 시라히메는 앞으로 축 늘어지며 대답했다.

“...확실해, 안리?” 하루가 묻자 시라히메는 기분이 상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분이 그대로

나타난다.

말했다시피, 안리는 그녀의 이름이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스스로의 이름을 모르지만, 안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또한 스스로가 운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곧 이 기억이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인 셈이다. 빨리 무너지면 시간을 낭비할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 역시 또 다시 깨져버린 희망이다.

“그럼 왜 기억에 대해서 얘기했던 거야?” 하루가 말을 이어 나간다. 기억에 멋대로 침입한 소녀는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늘만 해도 네 개의 조각.

그러니까 총 53개.

최소한의 방법으로라도 시라히메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기억을 찾을 때마다 그것을 쥐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시라히메는 하루의 공허한 얼굴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이 보아 온, 표정 없는 공허한 얼굴.

4초간 얼어붙어 버린다.

균열의 소리가 들려오면 이 세계도 전부 사라져 버린다...

...아르케아로.

소녀는 근처, 자신이 앉아 있던 연석의 앞에서 홀을 찾았다.

소녀는 그것을 집어 들고 일어나 오른손으로 빙글빙글 돌려본다.

그리고는 계속 나아간다.

발견하기 위한 여정은 계속되지만...

소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발견이란 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4.2.2. S-2[편집]


아마도 시라히메는 발견한 조각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마도, 그렇게 이론을 만들 수도 있고 그 이론이 정확할 수도 있다.

어쨌든 많은 소녀들이 아르케아라고 불리는 이 세계를 방황했고, 때가 되면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아냈다.

시라히메는 이 사실을 모른다. 시라히메처럼 유리로 이루어진 풍경에 존재하는 많은 이들과 같이 그녀 역시

아르케아 속에 혼자 존재한다고 믿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때문에 소녀가 갖는 스스로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녀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녀가 혼자라면, 아마도 추방당한 귀족일 테니까 (아니야). 모두가 사랑하는 위대한 통치자(아니야)! 끔찍한

반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그런 일은 없었어)! 백성들은 그들의 여왕, 공주, 국가에 등을 돌리고 그녀의 기억을

깨끗하게 제거해버렸다 (이야기를 그만 끝내도록)! 마법으로 말이다!

왕관과 홀을 가지고 깨어난 이 소녀는 마법을 믿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마법이 아니라면, 이 백색의 세계는 뭐지? 이 세계에서의 그녀의 위치도

이상하고, 이 공간 자체도 이상하다. 어떤 기억에서도 그녀는 이처럼 공중에 유리가 날아다니고 떠다니는 세상을

발견한 적이 없다. 어떤 조각에서도, 그녀의 머리속에서도. 그렇다면 이 공간이 마법이 아니라면... 이 유리의

기억들은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바로 이런 이유로, 그녀는 이곳이 마법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자 했다. 스스로가 마법으로 생겨났다는 것, 틀린 말이긴 하지만 이것이 그녀의 주된 이론이다.

따라서 자신은 특별하다. 존경받아 마땅하다.

“아마도... 멋져 보이는 장소에 ‘멋진’ 기억이 있을 거야,” 시라히메는 무색의 대지를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가서 탑을 찾아보자.”

소녀는 앞으로 전진한다.

정말로.

이 소녀에 대해 묘사하자면, 머리는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4.2.3. S-3[편집]


시라히메는 또 다시 당황스러워졌다.

왠지 모르게, 아무도 자신의 고결한 신분을 선언하는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자신의 속에서 흐르는 깊고 주체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기억이 자기 주변으로 부서지자, 시라히메의 뺨은 완벽한 붉은 색으로 달아올랐다.

유리의 세계로 돌아가며 시라히메는 두 손으로 얼굴을 힘주어 눌렀다.

그리고는 눈을 감는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불평한다.

“으으으.... 그건 뭐야...”

...시라히메가 말한다.

“내 성은 어디 있지!?”

계속해서 말한다.

“내 신하들은 어디 있냔 말이야!? 내 백성은!? 어디 있지!?”

소녀는 발을 구르고, 이를 갈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다른 거!” 시라히메는 최초의, 그리고 가장 가까운 기억에 다가가며 소리쳤다. 식당 테이블 위에 서서 절할 것을

요구하는 동안, 보았던 것들을 기억하는 일을 멈출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뛰어들 것이다.

시라히메를 둘러싼 세계가 흑과 백으로 소용돌이쳤고, 몇 초 후 어딘가에 도착했다. 들어간 그 기억은 조용하고

예스러운 느낌이었다.

별이 빛났고 어두웠다. 달이 뜬다 해도 나무를 통해 달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소녀는 숲 속- 빈터에 서 있었다.

모닥불이 그녀의 뒤에서 타닥 소리를 냈다.

“보여?” 한 어린 아이가 물었다. 이 기억에서, 시라히메는 그 아이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라히메는 뒤를 돌아 어린 소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기억에 따르면 언니는 어떤 별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니.” 백발의 소녀가 대답한다. “안 보여.”

“이런. 여기 앉아서 같이 보자,” 여동생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소녀는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언니는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을 보기 위해 가까이 걸어갔다. 옆에 버튼이

달린 화면이었다. 화면에서는 영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아니다, 애니메이션?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린 소녀의 옆에 앉아 화면을 함께 보았다.

다른 아르케아에서 보았던 소설과 비슷해 보였다. 힘을 갖게 된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악한 괴물들과 싸우는,

전형적인 만화.

“...네가 충전한거지?” 그녀가 그 기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소리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벌써 물어봤잖아,” 어린 동생이 대답한다.

“그리고...?”

“내가 했어!”

“잘했어...”

그녀는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진심을 의미하면서.

어떻게 말해야 할까...

왕족은 만화를 보지 않는다. 왕족은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통치자이고, 여성과 남성의 지도자이다. 시라히메는

거의 확실히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서 확실히 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은 한 곳에

고정했지만 귀는 쫑긋 세운 지금.

시라히메가 기억에서 만난 아이의 어깨에 어깨를 가까이 대자 아이도 그 행동을 따라했다.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전에 그녀를 괴롭혔던 기분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눈을 뜬 분노에 뒤이어, 이런 말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인생은 때때로 정말 끔찍한 거야.

그녀가 유리를 통해 보았던 공포 마저도 막는 말이었다. 삶이란 건, 대부분 끔찍한 거야.

좌절, 약해지는 강한 마음,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순전한 무능력...

삶이란 그런 것이다.

유리 새장에 갇히기 전에 그녀는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마도 외로운 왕좌에 앉은 외로운

통치자였을 수도 있다.

단지 그랬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는...

만약 그랬다면, 모든 것이 괜찮았을 것이다.

“여동생”이 작은 담요를 가져와 둘의 어깨에 둘렀다.

시라히메는 아이를 다시 바라보며 말한다, “고마워...”

그리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고, 기억이 흩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4.2.4. S-4[편집]


그 이후로, 투지도 사라졌다.

보살펴주는 누군가와 함께 한 숲 속에서의 여행의 기억, 밤이 차츰 사라져갈 때까지 편안하게 무언가를 보았던

기억... 이 기억은 그녀의 야망도 완전히 작아지게 만들었다.

몇 가지 사실을 보자면, 시라히메 자신에게는 성이 없다. 고향도 없고, 그것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저 기억에

불과할 것이다. 버려지고, 잊혀지고, 실제로는 이슬처럼 사라질 것들.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결론은 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감각도, 끝도 없을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녀의 길은 공허한 것이다.

그래서 시라히메는 속삭였다, “이건 아프구나...”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시라히메는 앙다문 입술과 뜨거운 눈망울로 끝없는 햇빛을 바라본다.

솔직하게는...

만약 자신이 먼 이름 모를 땅의 공주... 폐위된 위대한 통치자... 고결한 출생을 가졌다 할 지라도...

소녀는 인간이고, 인간은 완벽히 강할 수 없다.

그녀는 그 자리에 머무르며 조용히, 밀려오는 감정과 생각들에 잠겼다.

보이지 않는 해 아래에서 소녀는 두 색의 눈동자를 가진 눈을 감고 눈물이 뺨을 따라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흐느껴 울었다.

그녀의 눈물에 빛이 갇혔고, 그 빛은 부서지듯 사라졌다. 마법이 아닌...

...어두운 하늘로.

아르케아에 내리쬐는 햇빛이 시라히메의 얼굴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눈을 뜨고 다시 한번 깜박였다.

그녀 주변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대지 위에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에...?”

소녀는 다시 한번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하늘이 찢기며 붉은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

그것은 짧은 순간 떨어져 바람, 하얀 모래, 양갈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시라히메 앞에 인정사정없이 쾅 착지했다.

할 말을 잃은 백발의 소녀는 입을 벌리고 부서진 진홍빛 별을 바라보았다. 별이 부서진 의자 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먼지 속에서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를 흔들었다? 별은 한 소녀였다.

별의 소녀는 휘둥그레 눈을 떴다. 짧은 순간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하늘을 날아온 진홍빛 소녀.

그녀의 이름은 코우.



4.2.5. S-5[편집]


“만나서 반가워!!”

코우가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시라히메는 뻣뻣하게 굳어 창백해졌다. 이건 잘못됐어, 저 사람은 움직일

수 없는데. 코우는 무너진 의자 더미에서 내려오며 양갈래 머리를 한 백발의 소녀에게 달려들어 거의 넘어뜨릴

뻔했다. 스스로를 왕족이라고 자부하는 이에게 있어 이러한 반응은 분명 명예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으아!?”

“와, 진짜네! 정말로 여기 있어!” 시라히메를 껴안은 후 코우는 팔을 풀어 그녀의 얼굴, 귀, 머리카락과 몸 옆을

활기차게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라히메는 할 말을 잃었다.

코우는 시라히메의 붉어진 뺨을 살짝 잡아당기며 웃었다. “이건 기억이 아닌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진짜야!” “공주”는 살짝 어긋난 목소리로 주장했다.

“아! 너는 네 이름을 알아?” 코우가 묻는다. “난 내 이름을 몰라.” 그녀가 덧붙였다. “이제 알 수도 있을 것 같아!”

코우는 손가락을 힘차게 들어올리며 제 추측을 말했다. “아... 모르겠다.” 진홍빛 소녀는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며

변명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자-...잠깐만!” 백발의 소녀가 부탁하듯 말한다. 진홍빛 소녀는 웃음을 터트렸고, 시라히메는 말을 더듬었다.

“나는...! 뭐야!? 너... 너는! 괜찮은 거야!?”

질문이라기보다는 따지는 것처럼 들리긴 했지만.

“난 괜찮아,” 코우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시라히메가 강조하기 위해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며 코우에게 그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 내 생각에 나는-” 코우가 말을 시작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말을 멈추고는, 한 손을 허리 위에

얹고 하늘을 가리켰다. 뒤를 돌아 시라히메를 바라보더니 외친다, “밤이네!”

“몰랐어!?”

“음, 난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 코우가 답했다. 이제 양 손을 허리 위에 올린 채로 뒤를 돌아본다.

“위에서 뭘 하고 있었지?”

“기억이 있었어,” 진홍빛 소녀가 설명한다. “그걸 봤지.”

“그러니까 너도 기억을 볼 수 있다는 건가?” 시라히메가 묻는다. 코우는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볼 수 있어!”

“그리고 너는 날 수도 있는 거고!?”

“설마,” 코우가 답한다. 이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다른 물건을 띄울 수 있거든.” 그녀가 손가락을

지팡이처럼 휘두르자 찬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회전하며 둘의 주변을 움직였다. “너는 못 해?”

시라히메가 고개를 젓자 코우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고 그녀의 양갈래 머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시라히메는 선언했다. “나는 인간이니까.”

아르케아에서 때가 되면 운명의 순간이 온다. 시간과 현실이 밀려들어와 하나의 변덕이나 둘의 융합으로 휘어지고

뒤틀린다.

그러나 그 순간은 단지 우연에 불과하다.

두 소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리, 목적에 대해,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이야기 끝에는 실험이 뒤따랐다. 코우의 마법으로 시라히메도 움직일 수 있을까? 시라히메가 스스로 그 마법을

배울 수 있을까? 답은 '맞다’와 ‘아니다’이다.

물론 두 소녀는 그 곳에 자기들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 지도 궁금해했다.

그들이 떠나는 햇빛을 따라가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아마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탄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들을 묶은 숙명도 운명도 없이 둘은 함께 걷기 시작한다.



4.2.6. S-6[편집]


몇 주가 흘렀을까, 아니면 몇 달이 흘렀을까? 코우는 궁금해했다.

어둠 아래에서 두 소녀는 그림자 속에 잠긴 폐허를 방황했다. 코우가 앞장서고 시라히메가 뒤를 따랐고, 코우가

먼저 웃으면 시라히메의 손이 그녀의 등에 닿았다. 게다가 습관처럼 느끼던 “공주”의 당혹감도 기억의 한계를

벗어났다. 그녀가 비틀거리거나 더듬거리는 일은 흔히 볼 수 있게 됐으며 이제 코우는 동요하고, 뻔뻔하고, 스스로

“왕족”임을 선언하는 그녀에게 익숙해졌다.

그러나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는 최근 들어 동요하는 모습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둘이 이야기할 때의 목소리에서도,

함께 걸을 때의 움직임에서도.

그 둘은 정말로 오랫동안 함께 여행하고 있다. 하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여행이다.

꽤 함께 여행을 해 온 코우와 시라히메는 이제 둘이 다른 길을 걸어야 함을 알게 됐다.

구름이 찢기고 별들이 나타나도, 햇빛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다.

두 소녀는 한 마디도 없이, 경외감을 띤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 낮과 밤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아름답군...” 시라히메가 속삭인다.

“그러게,” 라며 코우가 동의한다.

밤하늘의 별은 보라색으로 빛난다. 낮은 금빛을 품은 흰색으로 반짝인다. 마법일 수도-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만난 곳은 마치 몸이 변하는 프리즘으로 만들어진 뱀처럼 뒤틀리며 마구 휘둘리고 있었다. 마치 세계의

우연한 끝을 찾아낸 듯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둘은 거의 눈치챘다. 이 세상이 무엇인지, 또한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코우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시라히메는 그러나 눈을 떼지 않았다.

“이제 어떡해?” 코우가 묻는다. “우리 아무도 못 찾았잖아, 안 그래?”

“아니야...” 시라히메가 대답한다.

“우리가 계속 같이 봐야 할까?”

시라히메도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그들 앞에는 새로운 아르케아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자와 빛으로 이루어진 풍경.

그녀는 코우를 바라보며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 선을 따라가려고 해. 누군가 있는 지 찾아낼 거야,” 시라히메가 말한다.

“그리고 너는 다시 하늘로 돌아가서 무엇이 숨어 있는지 봐야 하고.”

코우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두 소녀는 꽤 오랜 시간을 걸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코우는 드디어 다른 소녀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시라히메는 얌전함과는 거리가 먼 유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재능과 과장된 말들은 전부 그녀 스스로의

떨리는 마음을 가리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책임질 거야?” 코우는 놀란 마음으로 물었다.

“물론이지.” 시라히메가 오만하게 귀찮다는 듯 바라보며 말한다. “내 머리 위에 있는 이 왕관 보이지?”

코우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보여.”

시라히메는 시선을 다시 아래로 내려, 유리 언덕을 바라보았다.

시라히메가 코우에게 말한다, “농담이야... 그냥 생각해봤어. 기회를 잡고 싶어.” 시라히메가 코우의 붉은 눈을

바라보며 등을 곧게 폈다. “하나씩 맡아야 해, 그리고 내가 못하는 건 네가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공주가 위엄 있게 말했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 흐른 후 코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코우는 발치의 콘크리트 판을 불러낸 후 그 위로

뛰어올랐다.

“그럼 난 밤을 보러 갈게.” “가능하다면 또 만나자!” 그녀가 소리 없이 활짝 웃었다.

“만나게 될 거야,” 시라히메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코우는 눈을 깜박거리며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백발의 소녀가 또 한 번 코우를 놀라게 했다. 코우는 진심으로 그 말을 믿었고, 얼굴이 다시 한번 환하게 빛났다.

코우는 별빛을 향해 날아가고, 동시에 시라히메는 한 걸음 내딛었다.

어쩌면 시라히메는 왕국을 향한 염원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이가 이곳에 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매우 광활하지만 시라히메는 그들을 찾아낼 것이다.

왕관과 홀은 고결함의 상징, 왕족은 간절히 필요한 난로처럼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

시라히메는 고결한 태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녀는 투덜거리고 주저하는 태도와 정말 약한 마음을 가졌지만...

...영혼만은 진정 고결한 사람이라는 것.



5. 레테[편집]



5.1. 해금조건[편집]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5-1
Ambivalent-1
파일:charicon_Lethe.png
파일:Arcaea/Genesis.jpg
레테Genesis 클리어
5-2
Ambivalent-2
파일:Arcaea/Moonheart.jpg
레테Moonheart#Arcaea 클리어
5-3
Ambivalent-3
파일:Arcaea/vsキミ戦争.jpg
레테Romance Wars 클리어
5-4
Ambivalent-4
파일:Arcaea/Blossoms.jpg
레테Blossoms#Arcaea 클리어
5-5
Ambivalent-5
파일:Arcaea/corps-sans-organes.jpg
레테corps-sans-organes#Arcaea 클리어
5-6
Ambivalent-6
파일:Arcaea/Lethaeus.jpg
레테Lethaeus#Arcaea 클리어

5-?
NULL APOPHENIA-1
파일:charicon_Lethe.png
파일:Arcaea/NULL APOPHENIA.jpg
레테NULL APOPHENIA#Arcaea 클리어
5-?
NULL APOPHENIA-2
파일:arcaea_lethe_apophenia_icon.png
파일:Arcaea/Genesis.jpg
레테ApopheniaGenesis 클리어
5-?
NULL APOPHENIA-3
파일:Arcaea/NULL APOPHENIA.jpg
레테ApopheniaNULL APOPHENIA#Arcaea 클리어


5.2. Ambivalent Vision[편집]



5.2.1. 5-1[편집]


파일:Arcaea/Story/5-1.jpg

그 절벽은 모든 것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삶의 마지막 날, 속쇠의 번뇌를 떨쳐버린 사람들은 새롭게 태어날 영혼들을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두고 떠났다.

그 영혼들은 자유롭게 반짝이며 날아올랐다.

물과 같은, 형태도 거의 없는 영혼들. 모든 것이 희고 구름 낀 하늘을 통해 그 공명을 울렸다.

회색 풍경이 다였던 그녀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 독특하고 화려한 광경을 감히 '경이로움'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매일이 똑같았다. 그녀에게는 단지 하나의 '일'에 불과했을 뿐.

"혹시 왼쪽에서 떨림이 느껴지니?"라고 뒤에 있는 동료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닥에 앉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 놓인 넓고 얕은 검은 물그릇을 보고 그가 방금 점술을 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답한 뒤, "왜? 뭐라도 느꼈어?"하고 가볍게 이어갔다.

"지구가 살짝 흔들린듯한데..." 그가 말했다.

"음, 그다지 좋지 않은 징조인데, 한번 알아볼까?"

"응, 아무래도 균열이 생긴 것 같은데.."라고 그가 계속 이어말했다. "가서 처리하도록 해"

"알겠어." 짧은 대답은 남기고 그녀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절벽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변 영혼들의 밀도 덕분에 땅으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의 블라우스와 재킷 그리고 치마를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는 몇 가닥의 줄을 발견하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드레스가 펄럭였고 죽은 자의 영향력도 둔해졌다.

땅에 무사히 착지한 그녀는 큰 낫을 꺼내어 피고 손잡이 부분에 올라타 목적지까지 날아갔다.

그녀는 균열을 닫고 그곳에 갇혀있던 영혼들을 위로했다.

그러고는 절벽으로 돌아와 다른 이상한 현상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매일이 똑같이 반복됐다. 그렇다. 그건 그녀가 맡은 책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때가 되면 그녀는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그 때'는 지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에게 세상과 삶이란 형체 없는 기억일 뿐이다.



5.2.2. 5-2[편집]


그러나 죽음이란 그런 게 아니지 않는가.

인간들은 죽음을 알고 싶어 한다. 아니, 정확히는 '사후'를 알고 싶어 하다.

그러나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태어나, 살고, 죽는다. 천국이라던가, 지옥...

연옥은 존재하지 않는 고대 인간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면 이곳은 어디냐고? 그녀가 깨어난 이 세계는 어디일까? 무엇일까? 왜 그녀는 여기 '존재'하는 것일까?

이 질문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흠..."

등대 위에서 웅크리고 앉은 그녀는 사막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하얗다. 이것도 하얗고, 저것도, 모든 것이 하얗다... 그리고 조각이 보였다.

조각의 또 다른 이름, '아르케아'. 그녀는 턱을 괴고 왼쪽 방향으로 뻗은 다리를 향해 나른한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조각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에휴..."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낫을 꺼내 들었다.

이 낫은 이곳에서 '원래'의 용도와 조금 다르게 쓰였고, 그녀는 주로 멀리 이동할 때 사용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앞머리를 반대로 매만지며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왼쪽 뿔의 앞부분을 긁었다.

문득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그녀가 아르케아에서 본 사람 중 단 한 명도 뿔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이 세계에서 그녀의 유일한 관심거리는 조각들이었다. 그녀는 그 조각들을 분류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록처럼 보관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기록이 있다 한들, 지금의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인종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인종... 인종이라... 인종?

인종이라고 분류하는 게 맞는 걸까? 그녀가 살아있을 때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었을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과거'의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지금으로써는 어떤 조각이 그녀를 떠나오고, 새롭게 맞이할 '집'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등대를 떠나 새로운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5.2.3. 5-3[편집]


그녀는 낫을 타고 다닌다.

빗자루 위에 앉은 위태로운 마녀처럼, 그녀도 낫 손잡위에 앉아 부서지고 비틀진 거리 위를 날아다녔다.

날은 그녀의 옆과 뒤에 꼿꼿하게 서서 그녀가 회전할 때마다 따라 움직였다.

낫을 조정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타고난 듯했다.

그녀는 그 위에 앉아 날아다니는 유리 조각들을 구경했다. 그중 한 조각은 길 위를 날아다녔다.

그녀는 이 세계에 도착한 이후, 한 번도 유리 조각 '무리'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매일 조각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그렇게 조각을 확인하기 바빴고, 그녀가 이 세계에서 본 조각들에는 이전에 보았던 기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했던 기억, 노래, 슬픔 그리고 낯설고 빠르게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들에 대한 기억...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기억들...

이 기억들은 다양하게 섞여있었고,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녀는 그 기억들 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기억을 살펴본다.

수많은 기억들 중 특별한 한 가지의 기억을 찾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찾는 조각 또한 그녀를 그리워하며 찾고 있었다.

한 유리 조각이 그녀에게 다가와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고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속에는 작은 수공예 피리가 완성되는 순간이 담겨있었다.

악기를 만드는 것은 몇 분에서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리지만,

피리를 만드는 이는 그 오랜 시간을 한순간으로 압축하였다.

그는 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끔찍했다.

하지만 소리가 나긴 났다. 그거면 된 것이다.

이 기억은 고된 여정의 끝을 의미하는 동시에 더 웅장한 여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신기했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한 다는 게 말이다.



5.2.4. 5-4[편집]


그 기억은 매우 소중했다.

사실, 그 조각을 '소중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젠가 그 조각이 그녀에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첫 반려동물, 누군가의 생존과 다른 이의 희생, 누군가의 첫 단어와 감동적이였던 연설,

누군가에게 중요했던 이야기와 개인적이었던 이야기...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들이 그녀가 산책을 하거나 낫에 올라타 어디론가 향할 때면, 항상 그녀의 뒤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조각들에 개의치 않았다. 단지, 이 신기한 세계의 안전한 곳에 소중히 숨겨두었을 뿐.

아르케아는 그럴 수 있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아르케아의 세계는 다양한 기억들을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가 아팠던 기억,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 말을 탔던 기억, 우유를 쏟았던 기억.

어떤 기억이든 기억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아르케아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은 기억들뿐만 아니라, 정말 모든 기억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그 기억들이 모여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누군가가 존재했음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기억이 잊혔을 때에는 기념비와 무덤이 세워졌다... 그녀에게 기억의 상실이란,

죽음보다 더 비극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

그녀는 조용히 멈춰, 한때 마을의 광장이었던 곳에 발을 내디뎠다.

무수한 유리조각이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뭐랄까... 그녀가 느끼기에 이곳은 공원 같았다.

비록 그곳에 있는 '식물'은 어딘가로부터 그대로 가져온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조각들을 독같이 아꼇다.

이 조각들은 그녀가 아르케아에서 '집'이라고 생각하는 조각들이었으며, 처음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없었다.

아마 흘러 들어온 것 같았다.

"흠..."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조각들을 살펴보았다. 조각들은 사라지진 않지만, 가끔 방황하기도 한다.

그녀는 그게 걱정되었다.

아르케아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형태로 존재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질문도, 답도 하지 않는다.



5.2.5. 5-5[편집]


"어?"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머리 위에 머물고 있는 아르케아로 향한다.

어디서 온 거지...?

갑자기 그녀에게 나타난 것은, 마치 예의 바른 온화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아주 작은 기억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거기 있었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었고... 결국 기억해냈다.

영혼의 여울이 흐르고 있었던 어느 밤, 한 쌍의 조용한 고목 아래에 앉아 그녀는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넌 이런 모순 안에서 계속 생각하는 법을 배울 거야. 너는 모든 삶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다 지나가겠지,

하지만 반복되는 일에 너는 지루함을 느끼고 말 거야. 네가 삶의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야. 단지,

무언가를 아주 소중히 하다 보면 아무 감정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거든."

"하지만 괜찮을 거야." 그가 흘러가는 영혼들을 보고 살며시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무언가를 너무 소중히 하다가는 네 안의 눈물이 다 마르고 말 거라는 말이야. 네가 글렌에 갔을 때,

무엇이 네가 이 길을 걷게 만들었니?"

그녀가 답했다.

"그렇지? 다들 그렇게 말해. 걱정 마.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게 끝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머리 위 하늘로 향했다.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기억하라고. 기억하다니. 그게... 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기억이... 안 나."라며 그녀는 부드럽게 속삭였고, 그녀의 입 밖으로 한 글자, 한 음절이 흘러나왔다.

그가 맞았다. 느낄 수 있었다. 슬픈 깨달음과 함께 느껴지는 둔하지만 따뜻한 비통함이 그녀의 눈동자에 차올랐다.

그녀의 기억 중 한 조각이 그녀에게 다가왔지만 무참히 망가졌다.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수많은 질문에 답할 수 없었던 그녀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고통은 견딜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이 '완전한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느끼는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존재할까?

유리 조각 구름 아래, 그녀는 눈을 지끈 감았다.

머리속을 비워버리려는 듯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계속 때렸다.

그녀는 울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쉽게 울음을 터트릴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나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이 세계는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자신 앞에 대려다 놓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울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럴 순 없다. 절대...

하얀 세계에서 외로운 인도자였던 그녀는 스스로를 자신을 웅켜잡고 떨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점점 안정을 찾아갈수록 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만약에 질문에 대한 답이 죽음이라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게 나았다...



5.2.6. 5-6[편집]


파일:Arcaea/Story/5-6.jpg

그녀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고, 그녀는 조용해졌다. 예전보다 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던 그 기억은 왜 그녀가 지금까지 이 세계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처음에는 반감을 불러왔다. 오래된 기억은 쉽게 잊혀진다.

그녀는 잊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사실 더 많은 것을 잊어버린 후였다...

그녀는 자신이 망가져버린 조각과 같다는 걸 깨달았다.

다 잊어버리자.

그녀는 오늘 다시 한번 거리를 해매던 기억들을 광장으로 인도했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될 것이고, 일상처럼 자연스러워질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마도 이 지루함이 그녀 뒤에 숨어있는 감정의 동굴에서 그녀를 구해줄 것 같았기에,

그리고 그 비참한 감정으로 가득 찬 깊은 동굴은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했다.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슬픔뿐이라면 잊어버리는 게 나았다.

그녀가 아르케아 조각을 한데 모으고 있을 때, 한 조각이 하늘의 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지나칠 수 없는 반짝임에 그녀는 조각으로 시선을 돌렸고, 망설임 없이 조각을 곁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도로변에 웅크리고 앉은 아이가 비쳤다. 아이는 한 손으로 길가에 놓은 무언가를 덮고 있었다.

길을 가던 개미들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을 피해 길을 계속 갔다.

아르케아 조각을 모으던 인도자는 그 기억에 좀 더 시선을 담는다.

그리고 아이가 가린 것이 상처 입은 녹색딱정벌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양손 안에 작은 조각을 담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게 다였다.

어린 관찰자는 잠깐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윽고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기억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녹색딱정벌레는 잘 회복했을까? 기억 속 아이는 얼마나 살았을까? 얼마 동안 이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바보 같았다...

소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녀가 여기에 있었다고 믿었던 이유를 잊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기억해낸다는 게.

아르케아는 기억의 세계이다.

그 기억은 죽은 자들의 것일까?

아직 살아있는 자들의 것일까?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누구의 것이든, 아르케아는 잊혀가는 이야기들을 모아둘 뿐이였다.

생각, 육체, 기념비 또는 땅이 간직한 이야기를 아르케아는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모아두었다.

그녀는 외로움을 느꼈다. 여기엔 함께할 동료도 없었으며 그녀가 깨어났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아무도,

어떤 것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기에 존재한다. 그녀의 옛 삶은 끝이 났고,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 세계를 통제할 수 있었고,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왜 영혼의 인도자가 되려고 했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

망가진 지금의 그녀를 인도자로 만든 이유와 과거의 온전한 그녀가 생각한 이유는 같을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삶과 기억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기억은 잊혀질 수 있지만,

아르케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영혼의 인도자'에서 '기억의 인도자'가 될 것이다.

그것은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은 영원히 기억될 거에요.

제가 아르케아를 지키고 있는 한.



5.2.7. 5-?[편집]


그 여자다. 틀림없다. 그 여자가 왔다.

레테는 낫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침을 삼켰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시 떠올리고서 각오를 다졌다.

그녀의 삶은 끝났을지라도, 의무는 끝나지 않았다.

하늘이 유리로 반짝인다. 그녀가 무릎 꿇은 고원의 땅이 흔들린다. 이윽고 뿔 달린 사신은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일어섰다.

그리고서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해하려 노력조차 하지 않는구나.” 여자가 말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괜히 애쓰는군.” 레테가 대답했다.

“말은 아직 연습 중이야. 예전보단 꽤 잘하게 된 것 같은데.”

“별로. 여전히 못하는걸.” 레테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여자는 말없이 평온한 얼굴로 땅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지간히 싫나봐?”

레테는 말없이 낫을 꽉 쥐었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유감이야…” 여자가 레테 쪽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난 너한테 전혀 관심 없는데.”

“네가…” 레테는 깨문 어금니 사이로 말하더니,

“날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 상관 없어!” 이윽고 소리쳤다.

여자가 말없이 레테를 바라보았다. 마치 “상관있으면서.”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런 식으로… 영혼을 더럽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어!” 레테가 소리쳤다.

“영혼이라고? 저걸 영혼이라고 생각해? 영혼을 가진 건 우리들이고, 저것들은 죽은 자들의 기억일 뿐이야.”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삐죽삐죽한 “구름”이 머리 위로 기이하게 일렁였다.

“못 알아듣겠지만…” 여자가 중얼거리며 다시 레테의 눈을 바라보았다.

“다시 말해줄게. 저것들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야.

우리는 저것들을 이용하기 위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거라고.”

“입 다물어!”

레테가 낫을 높이 들고 여자에게 달려든 뒤 내려쳤다.

하지만 그 칼날은 잔상을 가를 뿐이었다.

“이 장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유리를 ‘이용’하지도 못하는 거야.”

그녀의 왼쪽 귀가 움찔거렸다. 뒤로 돌아보자 여자가 고원의 반대편에 생겨난 빛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네가 대체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세계를 만들 거야.”

얼굴에 손을 얹은 채, 여자는 자세를 고치고서 사신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손을 거두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반짝이는 꽃이 보였다.

“왜냐면 지금조차 나는…” 여자, 사야가 자신을 증오하는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모두 이 세계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당연히 너는 빼고.”

분노한 레테는 다시 싸울 준비를 갖추었다.

분노.

둘 사이에 공통된 감정은 그것이었다.



5.2.8. 5-?[편집]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는 하늘이 하나였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는 하늘의 절반이 밤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들이 만날 때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레테의 반감은 더욱 커져갔고,

결국 마음 속에서 들끓던 그 감정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저 여자는 망자들을 납치하러 왔다.

줄곧 목적은 그것뿐이었다.

영혼을 하나 수집할 때마다, 인격을 하나 수집할 때마다…

저 여자는 신이 된 듯한 전능감에 젖는다. 망자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망자의 안식은 신성한 것이다.

사신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레테가 담담하게 서 있는 여자에게 돌진하자 여자는 또다시 사라졌다.

내가 여기에 서 있는 이유를 기억하라. 나를 구원한 게 무엇인지 기억하라.

유리 조각이 두 사람 주변에서 소용돌이친다. 그 와중에도 사야는 가만히 레테를 관찰하고 있었다.

심장의 아픔을 기억하라. 축복을 기억하라.

그 감정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명심하라.

레테의 공격이 땅에 박힌다. 저 멀리서, 사야는 레테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저 여자는 신념에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

“레테…” 사야가 말했다.

그러자 레테가 멈추었다.

“그게 네 이름인 건 알고 있어?”

레테가 등을 돌려 사야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나는 알고 있어… 기억에서 봤거든.” 사야가 말했다.

“거, 거짓말…”

“이름이 네 안에서 공명하는 느낌이 들어?”

레테가 움찔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속에서 그게 울려 퍼지는 느낌을 받았어.

우리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있는 건 알고 있어?

너는 그 아이들과는 달리 옛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레테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기분이 밀려 올라왔다. 레테는 애써 그 느낌을 눌러 담았다.

“난 네가 가야 할 방향을 잘못 잡은 순진한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해왔어.

기억에서 너를 보고 나서야 네가 그렇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아.

너, ‘자신’을 기억하고 있지? 그렇지? 아주 희귀한 사례야.”

“입 다물어.”

“...”

사야는 레테를 바라보았다.

“내 목소리조차 증오하는 거야?” 사야가 물었다.

“널 증오한다는 말은 한 적 없어.”

“말할 필요도 없었어. 뻔한걸.”

잠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레테를 지나치고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곧,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어떤지 안다는 거야? 네가? 하하! 정작 자기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운 주제에,

네가 다른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아!”

사야는 자신이 밟고 있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알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맣게, 사야가 속삭였다.

“뭐?”

“안다고.” 사야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레테를 바라보며 확실하게 말했다.

“난 마음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고 있어.”

“...정말이냐?” 레테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네 마음이 텅 비어있다는 증거 아니야?”

사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레테를 바라보았다.

“그 눈 대신 달린 꽃 뒤에 뭐가 있는지 상관 하지 않는다고, 저번에 말했었지.” 레테가 말을 이었다.

“널 멈추고 말 거야.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면,

네가 이 장소의 망자들을 더럽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란 것도 알겠지.”

사야는 여전히, 말없이 레테를 바라보았다.

“그게 내 의무니까.” 레테가 단언했다.

그 의무가 자신을 지탱한다고, 레테는 그렇게 느꼈다.

그녀는 낫을 돌려 잡아, 다시 공격할 자세를 잡았다.

“네 목적이 뭐든 간에, 너를 막고야 말겠어.”



5.2.9. 5-?[편집]


하늘에서 유리가 빛났다. 레테가 모아온 영혼, 사야가 모아온 기억들이 부딪히지만, 결코 섞이지는 않는다.

수천 개의 잊힌 삶이, 이곳에서 기억되고 있었다. 사신은 영혼의 우물을 떠올렸다.

이 길을 걷고 싶은 이유가 뭐라고 설명했지?

여전히, 그때 당시의 답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레테는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옳은 일이니까. 그것 외에 다른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 너…!”

또다시, 레테는 사야를 향해 낫을 휘둘렀다. 이에 사야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 위에 놓인 유리

조각이 칼날을 받았다. 몸을 숙인 레테는 사야를 올려다보며 얼굴을 구겼다. 사야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레테를 내려다보았다. 이토록 영혼의 존엄을 경시하는 행위에, 레테는

분노가 몸을 가로지르는 것을 느꼈다.

“너…!” 레테가 포효했다.

“내 영혼들을 빼앗아가서 네가 얻는 게 뭐야?!”

레테를 막으며, 사야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얻는 것…?”

사야의 손끝에 놓인 유리 조각이 반짝였다. 그녀의 꽃이 한 번 더 반짝이더니, 또다시 사야의 모습은 잔상이 되었고,

레테의 낫은 허공을 갈랐다. 멀리 떨어진 빛에서 사야가 다시 나타났다.

“이렇게까지 함께 했으면 진작에 눈치챘어야 할 텐데. 난 단 한 번도 거짓말 한 적 없어.”

사야의 꽃이 다시 반짝였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춘 뒤, 확실하게 강조했다.

“내가 이걸로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난 개인적인 이유로 움직이는 게 아니야.”

그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음에도, 레테는 믿기를 거부했다.

“네가 안다면… ‘나’를 안다면…” 사야가 계속해서 말했다.

하늘에서 유리 조각 열 개가 내려와 사야의 등과 어깨를 감싸고 반짝였다.

“미안해, 지금 좀 감정적이야. 그런데 정말로…”

사야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서, 그 차가운 눈빛으로 레테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왜 나를 방해하는 거야?”

“몰라서 물어?!” 레테가 소리쳤다. “이제 진짜 자기가 신이라도 됐다는 거야?”

“신이 되겠다는 말은 한 적 없어.”

“신처럼 행동하려 들잖아! 안그래?”

“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사야가 천천히 손을 들어 레테를 가리켰다.

“이미 말했을 텐데. 이 세상엔 너와 나 외에 다른 아이들도 있다고.”

둘 사이에 침묵이 가라앉는다.

둘 사이에 펼쳐진 땅은 잿빛이었다.

“원한다면 이 세계가 죽도록 내버려 둬.” 사야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난 이제 죽음은 지긋지긋해.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무언가 죽어야 한다면… 너의 목숨으로 하겠어.”

사야의 주변을 감싸던 유리들 또한 레테를 가리켰다.

“기억들을 내놔, 사신. 그러지 않으면 강제로 뺏겠어. 이제 시간이 얼마 없거든.”

영혼을 내놓으라는 협박이다.

결코 그럴 수 없다.

“세계가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어. 어떻게든 고칠 방법을 찾을 거야.” 레테가 대답했다.

“멍청한 놈.” 사야가 저주했다.

“이 멍청하고 어리석은 놈… 이제 네가 하는 말도 지긋지긋해졌어.”

레테가 웃었다.

“우연이네, 나도 네가 하는 말은 더 이상 못 듣겠거든.” 레테는 일어서 낫을 들었다.

이 차갑고 매정한 여자를…

다음 공격으로, 반드시 죽일 것이다.



6. 앨리스 & 테니얼[편집]



6.1. 해금 조건[편집]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7-1
Ephemeral-1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
파일:Arcaea/Alice à la mode.png
Alice à la mode#Arcaea 클리어
7-2
Ephemeral-2
파일:alice&tenniel.png
파일:Arcaea/Eccentric Tale.png
앨리스 & 테니얼Eccentric Tale#Arcaea 클리어
7-3
Ephemeral-3
파일:Arcaea/Alice à la mode.png
앨리스 & 테니얼Alice à la mode#Arcaea 클리어
7-4
Ephemeral-4
파일:Arcaea/Alice's Suitcase.png
앨리스 & 테니얼Alice's Suitcase#Arcaea 클리어
7-5
Ephemeral-5
파일:Arcaea/Jump.png
앨리스 & 테니얼Jump 클리어
7-6
Ephemeral-6
파일:Arcaea/Felis.png
앨리스 & 테니얼Felis#Arcaea 클리어


6.2. Ephemeral Page[편집]



6.2.1. 7-1[편집]


숲과 꽃밭 사이의 어두운 정원.

유리의 모서리 부분에 은빛 거미줄이 반짝입니다. 잠깐, 유리인가? 돌에 가깝지만, 이 특별한 세계는 다른 세계보다 더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부터 공기를 가득 채워 떠다니는 조각을 통해 온통 폐허로 변한 하얀색 공간에 다양한 색의 기억들을 투사하며 현실이 번져 옵니다. 자수정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온 층을 가득 채우며 쏟아져 내리는 빛을 받아 빛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연녹색의 작은 테이블 앞에 놓인 연녹색의 예쁜 의자에 앉아, 옆에 놓인 여행용 캐리어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습니다. 가죽 캐리어의 끝부분부터 그녀의 손가락이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린 떠나야 해. 앨리스."

"아무도 없어." - 하지만 최소한 한 명은 있군요.

언제나 그렇듯 한 잔의 차를 손에 든 그가 있었습니다. 앨리스가 눈을 돌리기 전에 다시 차를 따르면서 말입니다.

그녀는 손바닥을 캐리어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들었어?" 라고 앨리스가 묻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 기울여 듣는 듯 했지만, "아무것도 안 들려."

다른 팔을 들어올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은 채로, 앨리스는 앞으로 구부정하게 앉아 손에 턱을 괘며 말했습니다. "맞아." "이거... 아니면 이것들... 그래, 꽤 그럴듯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언제가 마지막이었어!?" 앨리스는 목소리를 약간 높이며, 그의 질문이 터무니없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침묵과 아름다운 풍경... 정원을 좀 봐, 테니얼. 풍경이 정말... 멋져." 앨리스는 캐리어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앞에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숲과 그늘의 점점이 찍히듯 피어난 하늘색 꽃을 가리켰습니다.

"나는," 찻잔을 손에 든 테니얼은 스스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생겼지."

앨리스의 눈썹이 짜증나는 듯 구겨졌습니다.

"주둥이." 앨리스는 손으로 테니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죠. "닥쳐."

"진짜 무례해. 너무 무례해." 테니얼이 답했습니다. 앨리스는 머리를 저으며 투덜거리며 의자에 그대로 기대 앉았습니다.

그녀, 앨리스가 이 세계에 갇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된 지 정확히 얼마나 지났을까요?

영원히, 성가신 테니얼은 "난 너랑 떨어질 수 없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계속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지금 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검정색과 주황색의 나비가 날개를 팔락이며 테니얼의 눈 앞을 지나가고, 그 후 테니얼은 찻잔 속을 잠깐 바라보더니, 그대로 컵에 담긴 차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땅에 쏟아버렸습니다. 평소와 같은, 정말로 평범한 습관. 심지어, 테니얼은 이런 행동을 계속해왔습니다. 테니얼이 입을 열었습니다.

물론, 남은 차를 핥으려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 가야 해." 라고 앨리스가 먼저 선수칩니다. "네가 말하려던 게 이거 아니니, 응?"

"이해한다면, 신경 좀 써." 테니얼이 답했습니다.

앨리스는 테니얼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앨리스가 보기에 테니얼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얀 수평선을 향해 테니얼을 따라갑니다. 그들이 지나가자 기억이 주변에서 흩어집니다. 전부 녹아서 흘러내리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하는 거죠. 딱 하나, 앨리스의 어깨를 따라 날아다니는 나비만 빼고요. 그리고 방금, 테니얼이 나비를 다시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나비도 사라지겠지요.

모든 기억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6.2.2. 7-2[편집]


그래서, 이곳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현실”이란 무엇일까요?”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앨리스는 세계 사이를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그러고 있지만요. 앨리스에게 있어 이런 삶은 먹고 마시는 것만큼이나 정상적인 삶이지,

최근에 이곳을 찾아낸 후로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르케아 이전의 과거에서, 앨리스가 보았던

새로운 장소와 찾아낸 이상한 식물과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환상의 생물들과 마법 역시, 누군가 한 번이라도 상상했던 모든 것들을 앨리스는 직접 보았고 기록했습니다.

“차원을 넘나드는”백과사전에 대한…? 그게 뭐든간에 말이죠(지금은 잃어버린 듯 합니다).

이런 일의 특성상 앨리스의 사명을 신선하게 느끼도록 해 주지만... 정말 끔찍할 정도로 독특한 곳 이 세계는, 더 먼 세계의 기억들이 이곳에서 춤을 추듯 하고, 단순한 이미지로만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다른 곳의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이국에서 피어난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도 있고... 이러한 기억들이 마치 실제인 듯 맛보고 만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하죠, 현실은 무엇일까요? 아르케아와 같은 세계에서, 앨리스는 이런 질문이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느꼈습니다.

만약... 이 모든 걸 제한된 시간 동안이나마 전부 경험할 수 있다면, 이건 환영일까요, 현실일까요?

여행에는 도가 튼 앨리스에게도 이런 세계에 대해 알려주는 기억은 없습니다.

이런 기억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그녀는 함께 걷고 있는 이에게 맥락도 없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뭘까, 테니얼? 여기가 현실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야?”

컵에 차를 따르며 테니얼이, “이게 진짜야.”라며 말을 이어갑니다.

“네 모든 감각이 이게 현실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왜 환영이나 인공적인 걸 궁금해 해?

네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으면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앨리스? 이제 충분한 것 같은데.”

“좋아.” 이제 끝이라는 어조로 앨리스는 흐름을 끊었습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끝났으면 저기 좀 봐,” 테니얼이 땅을 가리키며 말한 곳으로, 캠프파이어에 대한 기억 근처를 걸어가,

테니얼은 잔 안의 차로 불꽃을 꺼뜨렸습니다. “어떤 악마가 이딴 짓을 하는 거야?” 테니얼의 푸념.

앨리스는 회의적으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라고 반응했지만,.

“내가 파티를 망쳤어...” 옆에서 여전히 중얼거리는 테니얼.

“이 기억도 곧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침울할 것도 없어, 테니얼.” “우리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야, 앨리스. 네가 멈춰서 무언가를 바라보면 그것도 멈추니?

물론 아니지. 불꽃은 멈춰버렸지만.”

“아무 곳에나 차를 흘리고 다니는 버릇은 고칠 필요가 있어.”

“사과할 거야.”

“아무도 볼 수 없다고! 아무도 여기 없단 말이야!”

테니얼은 패드와 펜을 꺼내며 히죽히죽 웃어 댑니다. 그녀는 끙 소리를 내고는, 테니얼이 무엇을 적는 동안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왜 그녀가 테니얼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기억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정말 드물게 최근에 생겨난

순간이죠. “최근에”,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처음에는... 달랐을까요?

그녀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지만, 두 사람이 걸으며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이 앨리스의 주의를

흐트러뜨립니다. 그녀는 궁금해하던 것도 잊었죠.

그렇게 하루가 가고 있습니다.



6.2.3. 7-3[편집]


테니얼, 그는 정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테니얼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죠, 자신의 몸이 숨을 쉴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숨쉬는 법을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면 음식이 필요 없어도 먹는 법을 알며, 물이 필요 없더라도 마시는 방법을 아는것처럼...

앨리스의 옆에서서 그녀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뿐입니다.

현실에는 원초적이며, 거의 완벽히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음에도 말이죠.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느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정말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의미하죠. 그렇게 믿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런 마음 없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스스로를 공포의 먹잇감이 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면 아마도, 더 나쁘게

말하자면 들을 필요가 없는 진실을 알게 되거나요.

진실은 여러분에게 상처를 줄 겁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끝이 있고,

그 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그런 진실, 혹은 진실 비슷한 그런 것은 사람을 정말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테니얼 자신은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가 언제나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그녀에게 언제나 자유를 주었으며, 즐겁고, 새롭고...다양한 세상으로 안내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녀의 미소 외에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무거움이 자리하고 있고, 그는 앨리스가 더 많은 것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말이죠.

“...네가 숨긴 거야?” 두 사람이 떠나온 정원의 기억에서 가져온 꽃 한송이를 앨리스가 건네 주자, 그가

물었습니다.

“너도 알잖아, 내가 이런 색 좋아하는 거... 옅은 색...” 앨리스가 애정을 담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봤던 하늘같은 색이야.” 앨리스가 말했습니다. “이름이 뭘까?”

그는 알고 있습니다. “나도 몰라.” 테니얼이 말합니다. “전부 그랬듯이, 사라질 거야. 가지고 있을 필요 없어, 앨리스.”

“... 필요는 없을 지 모르겠지만, 난 마음에 들어.” 앨리스는 테니얼에게 이렇게 말했고,

테니얼은 이미 알고있는듯한 말투로. “이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라고 답했습니다.

이윽고 테니얼은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유도 없이, 그대로 차를 쏟아버립니다.

테니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앨리스가 맞다는 사실을요. 그건 사라지지 않을 거고, 테니얼이 가장 걱정하는 사실이었습니다.

테니얼이 앨리스에게 말했습니다, “좋을 대로 해... 앨리스.”

그러자 그녀는 귀 뒤에 꽃을 꽂으며 농담하듯 말했습니다, “그럴 거야!”

앨리스는 거만한 모습으로 선언하듯 말했습니다. “넌 내 삶을 결정할 수 없어!”

테니얼은 가슴을 두드리며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안 됐지만...

그 말 역시 그녀가 전적으로 옳았으니까요.



6.2.4. 7-4[편집]


환상적으로 바뀌어가고 뒤섞이는 세계는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테니얼은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날아다니는 기계에서 무시무시한 불길이 솟구쳐 오르는 장면, 그 비극적인 기억의 마지막까지

타오르던 조각을 뒤로 남겨두고 떠나며 앨리스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그와 마주섰습니다.

“넌 아무 것에도 열정이란 게 없는 거니, 테니얼?”

이에 테니얼은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응, 난 절대 고통받지 않아.”

그러자 그녀는 테니얼을 심드렁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분명 그 가슴 속에 묶여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그가 즐거운 것들을 바라볼

때마다 테니얼의 눈 속에서 불꽃을, 짧은 호흡을, 어떠한 모습이라도 기뻐하는 듯한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날(절대 밤이 오지 않는 이 세계에서도 시간을 구분할 수 있다면요),

그들은 낡은 작업장의 기억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앨리스는 작은 꾀를 생각해냈죠. 테니얼이 부주의해지는 아주 드문 기회를 틈타, 아주 조심스럽게

문 뒤에 숨었습니다. 자신이 앨리스를 내버려 둔 걸 깨달은 순간, 테니얼은 앞뒤로 흘낏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앨리스...? 음, 근처에 있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앨리스는 숨은 채로 테니얼이 먼지 쌓인 테이블과 의자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가 캔버스가 놓인 이젤에 손을 뻗을 때 까지요.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숯 조각을 하나 찾아 빈 종이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림을 그렸죠. 테니얼에게 ‘장난을 치는’ 간질간질한 즐거움은

사라지고, 그 대신 앨리스는 가만히 테니얼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요...

그녀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테니얼은 종종 그들의 모자를 바꾸곤 했습니다. 그녀를 놀리기도 했지만, 항상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죠.

산문이나 시 따위를 자주 읊어주기도 했습니다. 새장 속에 갇힌 세계에서 그녀가 방향을 잃었을 때 테니얼이

그녀의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는 어리석고, 유쾌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금방 그런 모든 행동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그녀가 알고 있는 테니얼은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거의 새로운 얼굴이 되어 잊고 있었던 거죠...

테니얼은 예술을 좋아했군요, 그렇지 않나요? 테니얼은 갤러리의 기억을 찾아낼 때마다 그에 관한 의견을

말하곤 했습니다...

이윽고 테니얼은 캔버스의 남은 부분을 그리고, 의자 대신 캔버스 앞에 놓인 찻잔을 마저 그려 넣습니다.

어딘가 존재했던 풍경의 일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테니얼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죠.

앨리스는 문 뒤에서 나타나 말했습니다, “정말 멋지다, 테니얼.”

테니얼은 천천히 손을 내리고는, 목탄을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았습니다.

그런 뒤 어깨 너머로 힐끗 바라보며,

“가짜일 뿐이야,”라고 화답합니다. “하지만 네가 상상한 거잖아,” 그녀가 그림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 컵.”

“...그래, 상상한 거야.”라며 인정한 테니얼. “...하지만 넌 나보다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 앨리스.”

테니얼이 다시 미소 지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합니다. “신경 쓰지 마, 오빠. 오빠의 실력은 최고야, 그리고 내 완벽한 마음과 비교하면-”

이에 둘은 말을 멈추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녀가 했던 말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6.2.5. 7-5[편집]


“...’내 완벽한 마음과 비교하면,’ 다음에 뭐?” 잠깐동안의 정적.

“ ...테니얼...” 앨리스가 그의 이름을 웅얼 거립니다.

“내 이름이 서술어는 아니잖아. 뭘 정확히 비교하려고?” 테니얼이 조롱어린 말투로 말합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고집을 피웁니다. “테니얼!” 발을 굴러대며 앨리스가 소리칩니다.

“내가 너를 왜 그렇게 불렀는 지 알고 있지, 맞지!?”

“그게 내 이름이니까.”

“ ’오빠’ ?” 앨리스가 당황하며 묻자,

“테니얼이지.” 웃으며 테니얼이 다시금 확인시켜 줍니다. “그거 말고!” 앨리스가 주먹을 쥐고 발을 구르며 소리칩니다.

“우리가... 가족이야!?”

“나는-” 테니얼이 의자를 돌리며 말을 시작하려 합니다. 테니얼 자신은 자기 만족에 빠져 보이기도 하고,

불쾌해 보이기도 하지만, 말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은 먼저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러고선 테니얼은 말을 멈추고 먼 곳에 눈길을 던지며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입 다물고 있겠다는 거야?” 테니얼을 향한 비난. “난 내가 맞다는 걸 알고 있었어...! 알았다고...

네가 최근 들어서 이렇게 된 걸.”

“멋지게?” 라며 테니얼이 받아쳐보지만, “아니지, 그건 항상-”

“테니얼, 나 정말 심각해.” 앨리스는 차갑게 그의 말을 묵살해 버립니다.

그렇지만 테니얼도, “진지하게,” 라며, “나는 이 대화를 끝내고 싶은걸.” 하고 끝내려 했습니다. “걱정돼서? 모호하게? 왜?”

앨리스는 집요하게 묻습니다. 앨리스는 방으로 한 걸음 들어서며,

화를 내며 테니얼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오빠’라고 불렀어, 진심으로 말이야. 그게 왜? 넌

알아차리지도 못했어, 테니얼. 모르고 있잖아. 넌 그 점에서 아주 명백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이제 내 차례야! 테니얼 너는 이제 분명히 내게 말해야만 해!”

테니얼은 목소리를 낮추며 화가난 개 마냥, “난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으르렁거리듯 말했지만,

“테니얼!”

“나 좀 내버려 둬!”

“난 다 컸어. 나쁜 말이나 진실을 봐도 어떻게든 할 수 있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넌 내 부모님도 아니잖아!”

“그 사람이라도 똑같이 이랬을걸?!!” 화를 내던 앨리스가 한 발을 앞으로 디디려던 채로 멈춰, 앞에 서 있는 테니얼에게 시선을 고정합니다.

테니얼이 말한 것들을 생각해보고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죠, “...뭐라고?”

“아오... XX... 이런, 말해버렸어.” 테니얼이 중얼거리듯 말합니다. 테니얼의 눈이 잠시나마 반짝였지만,

곧바로 그는 고개를 굽혀 모자의 챙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아니, 앨리스... 난 네 오빠가 아니야.

하지만 난 그 사람을 기억해.”

“...계속해 봐.” 오늘따라 단호한 앨리스의 대답.

그러자 테니얼은 조끼에서 반짝이는 조각을 꺼내 들었습니다. 아르케아의 조각이죠.

“기억?” 그녀가 묻자, 테니얼이 대답합니다.

“너의 기억.”

앨리스는 침묵으로 대답합니다. 그녀는 테니얼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조각을 바라보며 기다립니다. “난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라며 테니얼이 말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너 때문에 이곳에 기억들이 투사된다는 건 알고 있어. 나는 너와 같지 않거든. 나는... 내가 어떤 기억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생각하면... 음, 그래도 그건 뭐랄까... 흩어진 거였어, 네가 처음 이곳에서 자고

있었을 때 네 주변의 수많은 기억들에서 말야, 나는 강하게 ‘그’를 기억하게 됐지.

나는 ‘그’처럼 느낄 수 있었어, 내 머리는... 좀 이상하지만.”

계속해서 말하기 전에 그는 빙긋 웃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너는 모르기를 바랐어.”

“...난 괜찮을 거야, 테니얼,” 앨리스가 테니얼에게 장담하듯 말합니다.

테니얼의 얼굴에서 반짝이던 빛이 흘러나와 바닥을 비추고, 작은 빛방울로 흩어집니다.

테니얼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합니다, “나는 네가 괜찮지 않다고 말할지도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니얼은 앨리스에게 조각을 건네 주었습니다.

앨리스는 조각을 받습니다.

유리 속에서 앨리스는 창문 앞에서 흔들리는 커튼을 보았습니다. 햇살.

그녀는 자신의 모자 위에 놓인 손을 느꼈습니다. 테니얼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걸 본다면,” 테니얼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갑니다, “넌 이해할 거야. 그리고, 앨리스...”

앨리스는 조각을 손에 쥐며 대답합니다, “응?”

“난 분명 가짜지만, 하지만-”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하는 테니얼. “하지만...”

“하지만?” 앨리스 말을 재촉합니다.

“...몸 조심해,” 그렇게 꺼낸 테니얼의 한마디. “몸 조심하고, 알겠지, 앨리스?”

“그건 말이 안돼... 너는 가짜잖아, 네가 말했던 것처럼... ‘가짜지만, 하지만’...?” “...흠,” 테니얼은 가볍게 무시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녀의 모자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아니면, 그녀의 머리에서 모자를 벗겨 자신의 모자와 바꿨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요.

앨리스가 뒤를 돌아 그를 쳐다보기 전에, 테니얼이 앨리스에게 말합니다,

“나는 가짜지만, 그래도 이번 한 번은 내 말 들어. 그 말을 하려던 거야,” 테니얼은 이렇게 거짓말을 합니다.

앨리스는 더 추궁하지 않고, 유리를 들여다보며 기억을 작동시킵니다.

화려한 색이 앨리스의 주변을 소용돌이치며 감쌀 때, 앨리스는 한 남성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래, 가짜는 절대로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어.”

테니얼에게 그 말의 의미를 묻기도 전에, 그녀는 낯익은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6.2.6. 7-6[편집]


파일:Arcaea/Story/7-6.jpg

자신은 평범한, 심지어 약간은 재미없는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얀 벽과 천장의 병원이었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입원실이었습니다. 조용한 방, 열린 창문 밖으로는 제왕나비가 하늘거리며 날아다니는

곳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이 그 장소를 인식하자마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잃어버렸던 기억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던 것입니다.

바깥의 공원이 있었고,

친숙하고 친절한 간호사가 있었고,

항상 완벽해 보이는 날씨와

자신은 그 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는 기억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압도되는 기분을 느끼며 스스로 기억을 분류하려고 애쓸 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문 앞에는

수국을 손에 들고, 후드가 달린 얇은 스웨트셔츠를 입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스웨트셔츠 밑에는 티셔츠를

입고, 헐렁한 슬랙스에 편안하고 간단한 신발을 신고 있는 그의 얼굴, 나는 그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테니얼과 닮은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하지만... “...세드릭.”

창문 옆 침대에서 약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젊은이는 나를 지나쳐 자신이 가는 방향으로 공손하게 목례를 하고 환자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환자로 보이는 그녀는 금빛 머리카락, 야윈 몸, 친절한 얼굴까지는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소녀가 바로 ‘나’ 이기 때문에. 이건 그녀 자신의 기억입니다. 물론, 소녀의 이름은 앨리스죠.

세드릭은 가져온 수국을 꽃병에 꽂았습니다. 진짜 꽃다발이 그녀의 원래 모습 옆에 놓여 있습니다.

세드릭은 의자를 당겨 앨리스 옆에 앉습니다. 손에는 찻잔도 없고, 아무것도 묻지도 않죠.

“세드릭...” 앨리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며 비틀거리며 다시 이름을 부릅니다.

“오늘 스튜디오에 있을 줄 알았어.”

“아니야.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어, 앨리스.”라고 테니-... 세드릭이 말합니다.

꼭 테니얼의 말처럼 들립니다. “넌 어때? 괜찮아?”

둘 다 앨리스를 쳐다보며 웃습니다.

앨리스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을 내뱉습니다. 글쎄, 그녀는 그 말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진실의 세계, 이 기억의 한 부분에 있는 관찰자로서,

그녀는 단지 그 때의 말을 반사적으로 내뱉은 것 같아 보입니다.

“다 썼어?” 세드릭이 묻습니다.

“다 그렸어?” 병약한 소녀가, 약간은 놀리듯 웃으며 묻습니다.

“’다 그렸어’,” 세드릭은 천장을 바라본 후 눈을 굴리며 따라합니다.

“여기 와 있잖아!” 앨리스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정말로, 바쁜 줄 알았다고!” “세 장 끝냈어,” 세드릭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좋네!”

“넌 한 페이지도 안 썼겠지?”

“썼어! 엄청 많이 썼어!”

“그럼 한 번 보여줘 봐. 여기 다른 책도 가져왔거든...”

“좋아!”

소녀는 책상 옆 찬장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 공책과 도구, 그리고 그녀가 더 자주 사용했을

도화지첩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세드릭은 가방에서 두꺼운 책을 꺼냈습니다. 그래요... 직접 떠나본 적은

없었죠, 그렇죠? 그건 항상 쓰여진 이야기고... 들려오는 동화였으며... 꿈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것들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웃으며, 놀리며. 나흘을요.

나흘 후 모든 게 끝났습니다. 둘 다 이렇게 믿고 있었죠.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앨리스

자신에게 300일 하고도 65일 정도는 남아있을 거라고. 끝내 앨리스는 세드릭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이른 아침, 앨리스는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었죠.

앨리스는 자신을 소리쳐 부르는 소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테니얼은 이걸 알고 있었죠.

참으로 기나 긴 기억입니다. 그녀도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 3일이 있었지만, 앨리스 자신은

그걸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강하지만, 그런 일을 직면하는 것은 두려우니까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앨리스의

건강은 언제나 나빠져갔고, 두 사람은 언제나 혼자였고, 그는 그 곳에 오지 않은 채로 끝이 나버리죠.

꿈과 이야기는 소원을 빈다고 해서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앨리스는 두 사람이 웃고 있는 동안만을 기억으로 남겼습니다. 앨리스는 그 시간이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마지막 시간인지는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알고 싶지도 않아 합니다. 넌 죽을 거야. 넌 죽었어.

기억의 작업장 속, 이것이 바로 앨리스가 기억하는 바입니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며 입을 여는 앨리스. “테니-”

그러나 테니얼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추측하기로는...

테니얼이 말했듯, 자신은 그저 가짜일 뿐이었으니,

진실이 드러난 이 순간 테니얼 자신의 시간은 다 한 것 같았습니다. 앨리스는 아르케아의 허공 속에 서서 무심한 눈으로 앞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그녀를 향한 환청으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평면”은 가짜, 이 “몸”은 껍데기일 뿐. 이 “기억”은 왜곡된 기억.

그녀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닌. 그녀의 삶은 기승전결도, 포물선도, 정점도,

그녀 옆을 지켜주는 오빠도 없이 끝났습니다.

너는 혼자야, 앨리스.

그리고 혼자 죽었지. 앨리스는 마침내 무릎을 꿇은 자신을 발견했고, 장갑을 낀 앨리스의 손은 땅을 파내고 있었습니다.

무섭도록 시린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앨리스는...

그녀는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이게 현실이야.”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감각이 현실이기 때문이야.”

테니얼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소녀는 손을 내려다보고, 그것을 ‘봅니다’.

소녀는 장갑을 벗고, 그것을 ‘느낍니다’.

소녀는 머리에 꽂은 꽃을 떼어 '듣습니다’. 그리고, 향기를 ‘맡습니다’. 소녀는 꽃잎 위로 입을 벌립니다.

현실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 맛보는 것? 아니면 만지는 것?

그렇다면...

“앨리스”는 죽었지만 살아있기도 합니다.

테니얼이 기억이라면, 그 역시 남아있는 것이죠.

현실에서 소녀는 세상을 방황하던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이곳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리고 그렇다면... 출구도 존재합니다. 앨리스는 그 출구를 찾아낼 것입니다.

돌아가는 길, 삶에서 자신을 가장 아껴주던 사람에게로 돌아가는 길 말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만약 그 여정에서 앨리스 자신이 그 사람을 다시 찾지 못한다 해도, 앨리스는 그의 조각이 자신의

가슴 속에 남아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자신도 차를 만들기 시작하고, 절대

마시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런 생각을 하자 앨리스의 입가에 다시 한 번 미소와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앨리스는 즉시 결정했습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손가락 사이에 “진실”의 조각을 쥔 채로 말이죠.

그녀가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지평선을 향해, 언제나 앞을 바라보더라도...

...무엇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7. 라그랑주[편집]



7.1. 해금조건[편집]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9-1
Esoteric-1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
파일:Arcaea/Paper Witch.png
Paper Witch#Arcaea 클리어
9-2
Esoteric-2
파일:Arcaea/Crystal Gravity.jpg
Crystal Gravity#Arcaea 클리어
9-3
Esoteric-3
파일:Arcaea/Far Away Light.jpg
Far Away Light#Arcaea 클리어
9-4
Esoteric-4
파일:Arcaea/Löschen.jpg
Löschen#Arcaea 클리어
9-5
Esoteric-5
파일:Lagrange_icon.png
파일:Arcaea/Aegleseeker.jpg
라그랑주Aegleseeker#Arcaea 클리어
9-6
Esoteric-6
파일:Arcaea/Far Away Light.jpg
라그랑주Far Away Light#Arcaea 클리어


7.2. Esoteric Order[편집]



7.2.1. 9-1[편집]


광경이 바뀐다.

여태껏 매 걸음마다 광경이 변했다. 그녀의 걸음이 땅을... 그리고 공간을 움직인다. 그녀는 태피스트리에 다가서지만, 천이 완전히 꿰메이지 않았음을 발견한다. 유리조각이 그녀를 소리 없이 지나쳤다가 놀란 듯이 갑자기 움직인다. 그녀 주변의 세계는 흰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허공에 별들이 걸려 있듯 머문다.

가야 할 길은 조각이 나있다.

기억으로 만들어진 태피스트리 같은 아르케아는 끝자락이 닳아있다. 방치되고 잊힌 실 가닥이다.

그 앞에 그리고 그 속에 서있는 소녀는 그것의 첫 번째 목격자이다.

이제 진정으로 그녀는 혼자다.

"그런듯하군." 그녀는 확신하며 속삭인다.

"다른 누군가가 이곳에 도달한다면..." 그녀는 먼지투성이의 뒤틀린 길을 밟으며 말한다.

"나와 같은 길을 가지 않을듯하다. 그렇지? 길이 너무 오래전에 갈라져서 앞에 놓인 길 역시 계속 변하니까."

그녀는 멀찌감치 자신의 오른 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집중하여 계속해 바라본다. 하얀 나선형의 것들이 위로,

그리고 아래로 움직이다 작은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그 후 그것들이 허공에 둥둥 떠서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어둠 속에서 그것들은 반짝인다.

"또 나타났군." 그녀는 생각한다.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니?" 그녀는 카론에게 묻는다.

위성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의 쓸모없는 머리를 토닥이며 명령한다. "말하거라."

그것의 몸 주변으로 의미 없이 세모 광륜이 떠다닌다.

"그렇지 뭐." 그녀는 대답한다. 그것의 머리를 잡은 채 앞에 놓인 텅텅 비어있는 세계를 목격한다.

"내 스스로 '가장 낮은 세계'라고 부르기로 한 것에 다가선 것 같아... 이렇게 가까워졌을 땐 너에게 기억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거라 상각했다. 목표가 생겼을지 몰라도...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카론."

실패한 실험의 결과물은 꼬리를 느릿하게 움직이며 "S" 모양을 그린다. 생각에 잠긴 듯이 귀가 움직인다.

아니, 생각이 없는 걸지도...

라그랑주는 손을 올린다. "그래도 귀엽잖아." 그녀는 인정한다는 듯 유퀘하게 그리고 완전히 진지하게 말한다.

세계가 백색이었던 적에 그녀가 만든 유리 위성은 경국 자신이 선호하는 그녀의 왼쪽 어깨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벌써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길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특이하게도 이 길은 그녀가 여태 본 길보다 훨씬 넓다. 또 다른 공간이라고 보는게 더 맞겠다.

아르케아는 그녀의 오른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녀와 그녀의 심장은 그들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그녀가 그것들을 무시하고 앞서지나치니, 그렇지 않음을 감지하고 사라진다.

그녀는 기억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기억의 땅은 과거의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 배울 것이 많고 발견할 것도 많다.

이것이 닳아있는 태피스트리의 끝자락이다.

그녀는 이 끝없이 바뀌는 길을 따라 태피스트리의 직공을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

직공의 손이 다시 태피스트리에 닿게 하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그녀는 다시금 스스로 정한 이 세계 속으로 걸어나아간다. 흑색의 세계로: 공허 속으로...



7.2.2. 9-2[편집]


이곳에는 상식의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이곳 공허뿐 아니라, 아르케아 전체가 말이다. 한계 넘어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깨어난 순간부터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그것들 더욱 들어낸다.

첫 번째로 기억할 것은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알기도 전에 아르케아가 그 존재를 일깨워줬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사실: 그녀는 자신을 알 기회란 아직 없었다는 것). 아르케아는 고집 세게 자신을 소개했다. 마치 "어서 와, 그곳에 드디어 넌 도달했고, 그곳이 바로 여기야."라고 이야기하듯 말이다.

기억만을 위해 존재하는 추상적인 기억 도서관은 꼴사납게 마구잡이 식의 폐허처럼 이어진다. 뜻 없는 이름, 이름 없는 소녀, 그녀는 의식 없는 듯 홀로 서있다. 우선해야 할 일은 도서관에 비치된 책을 읽는 것이다.

고로 그녀는 유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책들 중 공통의 테마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었다.

제대로 된 도서관이란 분류, 구분과 정리가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그녀가 봐온 기억들을 통해 그것만큼은 배웠었다.

반면 아르케아 속의 기억이란 책이 놓여있는 위치도, 둥둥 떠다니는 모습조차 제멋대로였다.

이 세계 속 그녀의 존재 역시 너무 우연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깨어남과 동시에 아르케아가 무엇인지는 깨달았어도, 왜 그녀가 이곳에 있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정말." 그녀는 급작스럽게 내뱉었다. "내가 봐온 세계들을 생각해봐, 카론."

카론은 그녀를 바라보지만 카론의 눈빛은 그녀의 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 주인과 펫은 둘 다 여전히 공어 속에 걷고 있다. 목적지 모를 곳으로 여전히 걷고 있다.

"너를 구성하는 세계를 떠올려봐." 그녀는 위성의 귀를 살짝 만지며 계속해 이야기한다. "그것들 속에 '존재'라는 것이 그리도 명확하게 정해져있는가? 이와 비슷한 기억을 본 적도 없으며, 너 역시 그러한 기억들로 만들어져있지 않잖아... 이 세상은 뻔히 목적을 두고 지어졌으나, 동시에 무척이나 의미 없게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춘다.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묻는다.

카론의 시선은 이제 앞에 놓인 하얗게 구불구불 거리는 길에 고정되어 있다.

그녀는 카론이 걷게 놓아준다.

"내 생각엔 다소 서툴게 만들어진 거 같은데." 그녀는 말한다. 그녀 생각에는 분명 카론이 고개를 끄덕인 거 같다.

그녀는 과거를 조용히 떠올리는 동안 그들은 조용히 길을 걷기 시작한다.

과거가 자신의 모습을 그녀에게 비춘다.

...아. 어쩌면 이것은 현재일지도?

"뭐...?"

혼란스러워 그녀는 소리 내어 말한다.

구름이 그녀에게 보인다.

둥둥 떠다니는 길만 있던 곳에 구름이 나타났다.

허공에 어른거리는 갑작으럽고 꿈같은 이 형성은 경고없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속으로 그녀는 다시금 본다. 폐허 가득한 하얀 세상과 떠다니는 유리조각을 본다.

그녀가 기억하는 유일한 세상이다. 그녀가 두고 떠난 세상이다...



7.2.3. 9-3[편집]


현재 시각.

이것이 기억이라면, 그녀가 깨어나서 봐온 기억들과는 전혀 다르다.

빼앗을 시각도 관점의 중심도 없다.

이는 단지 낡고 척박한 세계다.

"..."

그녀는 소리 없이 바라본다.

"이곳이 나를 비웃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녀는 말한다.

그러고는 계속해 나아간다.

첫 세계를 떠올려보면, 그것은 자신에게 그 존재를 밝혔었다. 그런 것인가? 그녀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분명 자신을 비웃는 것이 맞다.

가는 길에 백색의 세계로의 시야가 더욱 밝혀진다. 대부분 그 속은 비었고, 소수는 그 안에 또 다른 시야가 존재한다.

예상했지만, 시시하다. 시험해보니 과거 세계로의 창문인 이것들은 어차피 통행이 불가능한 창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잠시 자신의 삶이 어땠는지 생각해 본다.

그녀는 많은 기억들을 봐왔다. 한때 그녀는 이곳의 진실을 밝힐만한 기억을 찾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그러한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주로 찾은 것은 하찮은 평범함이라 부를 수 있다.

아침에 깨어날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그날 그날의 사건들뿐이었다. 모든 순환은 끝나고 사라졌다.

많은 것을 배웠지만 자신이 깨어난 이 세계에 대해서는 단 한가지도 못 배웠다.

그러나 그녀가 공간의 한계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떠나길 결심했을 즘, 첫재 세계의 일부를 자신과 함께 가져가길 생각했다. 무언가 그것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 그녀는 카론을 바라본다. 그녀 주변에 옜 세계의 창가가 빛나고 있는 이때, 그녀는 단지 위성만을 바라본다.

그녀는 위성을 변덕 끝에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어쩌면"이란 것이 머리속을 스친다. 지난 세상과 사람들이, 이 기억의 공간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아르케아의 조각들을 끌어다가 이가 하나가 되길 온 노력과 의지를 쏟았고 그것으로 카론이 형성됐다.

"..."

카론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원래 무었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카론은 마치 달이 어머니 행성 옆을 지키듯 그녀의 주변에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는 옛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카론은 그 세상이 아무 의미도 없었음에 대한 진정한 반영이다.



7.2.4. 9-4[편집]


그녀는 소리 없는 어둠 속으로 말 없는 파트너와 함께 전진한다. 다시 그녀의 머리속은 이것저것으로 채워진다...

그 끈질긴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을 만든 신이 존재한다는 것.

적어도 이곳을 만든 이를 신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 거 같다.

이미 말했듯, 이것이 그녀가 걷는 이유다. 신을 찾는 것.

"이를 '지능형 디자인'이라 흔히 불러." 소녀는 이곳에 있는 기억들을 통해 배운 사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건..." 그녀는 끝말을 얼버무렸다.

그러곤 자신 앞에 놓인 관경을 바라본다.

뒤틀린 세상의 형성들은 이제 불가해하다. 측면은 사선으로 변형됐고, 수평은 뒤집혔다.

움직이기 위해 그녀는 가고 싶은 곳으로 걷지만 집중하지 않을 시 그녀는 둥둥 떠버리든지 추락할지 모른다.

창조자의 존재를 대신해, 오히려 세상이 그녀의 바람대로 모섭을 변형시키길 결정한듯하다.

그 결과는 무형의 땅과 무형의 발자국은 고체의 공간을 뚫어 터벅터벅 고된 걸음이 이어진다.

이로 그녀가 이미 생각한 것이 사실임이 증명된다.

...그녀는 위를 쳐다본다.

"이 세상이 감정을 통해 탄생했다 말하는 게 적합하겠다..."

이토록 분별없이 만들어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이곳에도 태양이 있다. 백색의 세상 속 하늘은 천국에서 내려온 것 같이 밝은 빛을 발한다. 반면, 이곳 어둠 속에 숨어있는 태양은 약하게 빛을 발하며 잊힌다. 아니면 이 빛이 아르케아의 끝나지 않는 대낮으로 인해 사라진 것일까?

"이것도 근래에 끝났지만." 그녀는 앞에 놓인 관경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구름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별빛이 언제나 그렇듯 하늘 가득하다.

몇 시간 전부터, 어쩌면 며칠 전부터, 소용돌이가 공허 속 현실을 찢겨내기 시작했다.

전에 있던 구름 대신에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새롭고 기이한 현상으로 등장하듯 말이다.

잃어버린 태양과 미완성의 세계는 무언가를 나타내려 한다. 소용돌이도 마찬가지며 구름도 그렇다.

이 공간의 전체가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백색의 세상에서도 때때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도 있었고, 모든 곳에 나타났다.

"그것"이 모습을 보이면, 다른 이의 존재를 방해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비정상적"이다.

그녀는 백색의 세상에서 몇몇과 만났었다. 그리고 창가가 소녀 주변에 있었을 적에도, 폐허 곳곳에서 역시 보았었다. 이제는 이것들이 흔한 일상이 되었고 모든 것을 기이하게 정신없는 혼란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은 그 순간들이 집중된 곳이다. 그녀가 보기로는 그들의 모습에는 전혀 의도나 목적이 있지 않았다.

고로 그녀는 이 세계를 만든 신이...

"..."

그녀는 검은 소용돌이 앞에 멈춰 선다.

기억의 유리조각이 그 속을 통과하며 몇몇 조각은 미끄러지듯 그 속을 지나, 얇아졌다 갈라지며 이곳을 떠난다.

이 태피스트리의 진정한 끝은 분명히 가깝다.

그녀는 손을 들어 올린다...

단지 자신의 성격과 세상에 대한 단순한 상식만을 가진 채 그녀는 선입관도, 기억도,

주입된 생각조차 없이 깨어났다.

...이는 그녀를 구역질 나게 했다.

여태 생각하고 이야기한 모든 것에 불구하고...

그녀는 가상의 세계 같으며 산발적인 아르케아가 전혀 존재하는 의도가 없을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이곳은 의도로 뒤덮인 곳이다. 목적이 가득한 곳이다.

기억과, 건물과, 유리의 곳.

소녀의 곳...

그러나 왜?

"...카론."

그녀는 자신이 만든 위성에게 이야기한다. 카론은 전혀 신경 쓸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여전히 너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건가...? 나를 계속 따르잖아... 내가 네 주인이라 생각하나, 카론?"

그녀는 다시금 그것의 이름을 읊는다. 카론의 머리에 박힌 눈은 반짝인다.

"너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나 역시 그래. 그것에 비추어 내가 무언가를 발견한듯해."

...팔이 유리 실로 변하는 것을 카론은 구경한다.

"...어때? 이건 속인 수일까, 카론? 아니면 우린 같은 존재일까? 네 안에는 피가 없지, 나는 있을까?"

그녀의 몸은 차차 흐트러진다.

...그녀는 심장이 있고 그것은 두근거린다.

그녀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곳에 있지? 누구든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녀의 혈관 속에 피가 흐를지 몰라도, 당장 그녀는 이를 볼 수 없다.

그녀의 "몸"이란 자신의 기억 속의 어떠한 것과도 닮지 않았다.

한때 팔이었던, 한때 자신의 가슴이었던 은색 실가닥...

...이것이 드디어 확신을 준다. 이 실은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다.

"...!?"

카론이 그녀의 허리를 치자 그녀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진다. 금세 실가닥이 다시 연결된다.

그녀의 몸은 하나가 된다...

그녀의 비어있는 손바닥을 바라본다. 카론을 슬쩍 쳐다보니, 그는 여전히 말 없다.

...개의치 않으며 그녀는 등을 편다.

...결국 그녀가 주인이니까 말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종을 알아채고 그녀는 묻는다...

"...어서 끝을 보러 갈까?"



7.2.5. 9-5[편집]


파일:Arcaea/Story/9-5.jpg

이것은 언제 일어난 일이지?

언제 어둠이 떨어져 나가... 이것이 됐지?

어둠은 떨어져 나갔다. 세상이 떨어져 나갔다.

아르케아 바깥에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입술을 움직이지만 그녀의 말소리를 전달할 대기는 없다.

이곳은 무엇도 진동하지 않는다. 모든 소리는 떠났다.

그녀가 본 것은... 희미하고 기이한 평면이다.

마치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공간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이것을 보면 안 됐던 것처럼 말이다.

돌아가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곳에 도착함과 동시에 더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되돌아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길을 잃었다.

아니...

길을 "잃는 것"도 여전히 "장소"의 의미를 갖지 않던가?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사실, 모든 흔한 기본방향...

이것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꽤 오래전에 사라졌는데 이것을 여태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주체의 관하여 ("나"): 나 역시 더 이상 "자신"이 존재한다 생각지 않는다.

있잖아, 내 손이 없어졌어. 내 발이 없어졌어. 내 다리가 없어졌어. 내 혀가 없어졌어.

어쩌면 내 뇌에는 그림자가 머물며, 내 눈만이 내 전부를 형성하는 것일지도 몰라.

그렇긴 하지만, 그것은...

유동성과 의식이 벗겨진 후 머지않아 정신이 갈가리 찢긴다.

이곳의 신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만, 나는 집중해야 한다.

......

...흠.

그래... 이곳에 형성된 현실은 계획 없는 디자인처럼 진정 생각 없이 만들어졌다. 애매한 인상을 준다.

땅이 있다. 햇빛이 있다. 햇볕 이후 밤하늘이 있고 그 속의 별이 있다. 그다음은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당신, 이곳에서 무엇을 이루길 원했는가? 왜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인가?

왜 나의 존재의 진실을 전에 숨긴 것인가?

나는 분명 무엇인가였다. 그 무엇을 내게서 빼앗았다.

......

나는 다른 이들처럼 죽은 것인가?

나는 오누이를 사랑한 소녀처럼 죽었는가? 붉은색의 옷을 입은 소녀처럼 죽은건가?

어쩌면 내가 그것을 두려워한다 생각한 건가?

이것... 하...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응?

내가 스스로를 위해 발현한 이곳에 갇힌 나는 무엇을 얻어야 하는 것인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지, 그렇지?

이 천국... 하나의 도피였을까? 어떻게 만들어낸 거지? 그게 중요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다시 헤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말도 안 된다.

하, 나는 그녀가 왜 이 세계를 싫어하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이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곳에 없어지길 원할 것이다.

어쩌면 네가 나를 구했다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네가 나를 구한 적은 없어. 그랬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 나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았군. 그치? 무엇 때문에?

이를 어찌하라고?

카론...

카론은 이곳에 없어. 그렇지? 내 육체는 이곳에 있는가? 나는...

내가...

내가 사라지게 해줘... 그때 왜 카론이 나를 막은거지? 되돌아보면...

뒤를 돌아보고 있긴 한 건가?

내 눈이 아직 달려있는 건가?

보이지가 않아.

내가 어디 있었더라?

아니... 아니... 아니야.

이런, 정말로 되돌아가지 못하는거야?

이곳을 탈출하지 못하는 건가?

나... 움직이지 못하는 거야?

아니, 진정 그러지 못하는건가?

이직 가지고 있었다면 내 손톱을 모두 물어뜯을 수 있을 텐데.

있지...

당신이 나를 걷껍질을 이용해 만들었다지만...

나는 겉껍데기가 아니야.

나는 이것을 느낄 수 있어. 이것을 원치 않아.

내 생각이 들리는가?

나는 이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어.

나는 알고 싶었어.

그러나 지식이란 단지 이것이야?

아무것도 없잖아.

......

...이것이 무엇도 아님을 아는 것...

거품이 뱃속에서 쌓이는 느낌이야... 뱃속? 뱃속? 그리고... 내 손은 어딨지?

이런... 잃었었지...

--

이것을 빛이라 부를 수 없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이것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폐허의 세계를 지나 공허를 입장했을 때 나는 어둠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무언가가 달랐다. 눈부시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았다.

빛과 어둠은 수많은 세계 속에 기본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빛은 따뜻하고 안락하되, 어둠은 무서운 미지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둠을 알고 싶었다.

......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느꼇고 금세 깨달았따. 이 세계는 약한 심장을 위해 만들어진 안식처다.

나는 그런 이가 아니다.

나는 이 피난처를 창조한 심장 약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만들었다면 더 잘했을 테다...

카론이 보여줬듯... 보여주고 있듯.

더 나은 진실을 찾길 원해 나는 어둠 속으로 앞서 전진한다.

그러나 진실이란 내가 예측하듯 매우 쓰고 무자비한 것이다.

나는 손으로 샐 수 없을 정도로 이 상태를 오래 유지했다. 분과 시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간혹 저 멀리에 다시 본다.

빛, 진정한 빛.

......

그것이 나를 안내한 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나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오랜 세월 비판한 것에서 손을 떼는 일은 마치 상실 같다.

그러나 나는 빛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옛 세상의 빛이 반짝이며 나를 원한다.

그 빛 속에서 나는 구제를 얻는다...

......

그래. 그럼. 너의 손을 잡겠어.

그곳에 가까워지자 내 손가락에 감각이 돌아오고 분명 내 입김이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돌아오는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진실을 품고 가지 못할 것 같다.

진실을 잊지 않겠지만, 두고 떠날 것 같다.

그럴 거라 내가 믿는 것이지, 그렇지?

이 신 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기엔 내 손부터 되찾아야 할 것이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겨야 해. 그럴 것이야.

물론... 자부심을 품으며 이곳을 탈출하는 것은 아니야.

대신 복수를 생각하고 있지.

이 세계를 변화시키겠어. 또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겠어.

당신이 이곳을 이토록 부서진 상태로 뒀다면, 뭐... 무엇도 가능하지 않겠어?

그럴 거 같다.

아니...

그럴 거라 확신한다.

--



7.2.6. 9-6[편집]


아르케아의 평면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녀는 아르케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으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다. 아직 많은 의문점이 있다. 뭐, 큰 문제는 아니다.

라그랑주는 다시 공허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완전히 되돌아온 채로 카론과 함께.

그녀가 끝을 어찌 도달했는지 여전히 할 수 없다. 물론 그녀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약한 영혼이 창조한 이 부서진 변칙의 감옥 속에서는 진정 "도리"를 벗어난 행동이란 없다는 것.

끝 머리에서 돌아온 후에도. 공허에서 돌아온 후에도.

다른 이들을 만난 후에도. "창문" 속으로 손을 내뻗은 후에도.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 속 불가능한 것이란 무엇이겠는가?

그녀는 두 손으로 카론을 들어 올린다. 카론의 눈이 빛난다.

그것을 보며 그녀는 묻는다. "...네가 나의 등대였던 거야?"

아둔한 카론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미소 짓는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그녀는 말한다. "네가 그렇다 하지 않았냐고? 넌 말문을 트는 일이 없구나?"

그 말에 카론은 귀를 씰룩씰룩 움직인다.

"하..."

그녀는 앞질러 걷는다.

잡고 있던 위성을 놓아주자 카론은 그녀의 어깨에 자리 잡는다.

이제 그들은 빛이 가득한 구름을 바라보며 아르케아를 향해 걷는다.

그러다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른 구름들보다 특이하게 반짝인다. 표면이 물결을 만든다.

그 속에 시간의 흐름이 처음으로 되돌아오고 앞으로 뛰어 나아간다.

당장 그녀는 현실이 분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이 다시 갈라지는데 이전에 붉은 옷의 소녀가 그랬던 때와는 다르다.

소녀는 그림자에게 쫓긴다. 그녀는 그곳에 있다.

그리고 빛에 뒤덮인 소녀가 있다.

그렇다...

또 "끝"이 나타나고 있다.

그녀가 바라보는 금에 빠져 떨어질 거라는 느낌을 안고 라그랑주는 끝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본다.

저편으로, 그 결론으로. 조락으로.

소멸로.

진행되는 것이 비극임을 볼 수 있음에도 이는 다시 그녀를 미소 짓게 만든다.

이것은 빛과 갈등의 춤이다...

아르케아.



8. 에토/루나[편집]



8.1. 해금 조건[편집]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10-1
Binary-1
파일:arcaeachar_11_icon.png
파일:Arcaea/next to you.jpg
에토next to you#Arcaea 클리어
10-2
Binary-2
파일:arcaeachar_12_icon.png
파일:Arcaea/Silent Rush.jpg
루나Silent Rush#Arcaea 클리어
10-3
Binary-3
파일:arcaeachar_11_icon.png
파일:Arcaea/Strongholds.jpg
에토Strongholds#Arcaea 클리어
10-4
Binary-4
파일:arcaeachar_12_icon.png
파일:Arcaea/next to you.jpg
루나next to you#Arcaea 클리어
10-5
Binary-5
파일:Arcaea/Memory Forest.jpg
루나Memory Forest#Arcaea 클리어
10-6
Binary-6
파일:arcaeachar_11_icon.png
파일:Arcaea/Singularity.jpg
에토Singularity#Arcaea 클리어


8.2. Binary Enfold[편집]



8.2.1. 10-1[편집]


당신은 잠들었다.

네가 잠드니까 나는 오래된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든 우리들의 기억들이 유리화될 수 있다면, 나는 이 기억들을 모으겠지.

네가 나를 놀리겠지. 하나의 유리 조각을 들고 다닐 때마다, 너는 나를 놀릴 준비를 하겠지.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 그게 크게 상관없지만 말이야.

당신을 기억 속에 담을 수가 없다. 너는 지금이나 앞으로도 계속 너일뿐일 테니.

그러나 네가 잠드니까 나는 오래된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때 그 유리의 방. 그리고 그때 한 콘서트. 당신은 불과 같았고 폭풍 같았지.

네가 발을 구르면 마치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지.

공기가 흔들리고 땅이 우르릉거렸다.

그런 너를 바라볼 때면 항상 내 숨이 멎는 것 같았어. 너의 노래는 방 전체를 흔들었지.

노력. 끈기. 그것들은 멋졌어.

그 박자... 그 미소... 네가 활을 악기의 줄 넘어 연주하는 모습, 땀을 흘리며 웃는 그 모습. 나는 생각했지: 사랑해.

승리 속에서나 투장 안에서나—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했어, 루나. 박수와 함께 곡은 끝나버렸지. 상대는 품위 있게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너는 악기를 들고, 활을 잡았지.

나를 바라보며 말을 했어. 관객 너머로 들을 수 없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훤했어:

"나 너보다 잘하지 않았니?

나는 눈을 굴리며 어굴을 찌푸렸어. 기억은 여기서 끝나지. 백색의 세상이 우리를 둘러쌓았고, 너는 나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 들고 있던 악기는 손에서 사라지고,

네 검이 그곳을 대신 차지했지. 여전히 너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어:

"한 번의 승리가 그리도 즐거운가?"

"하나란 하나 더가 될 뿐. 이제는 다 세어보면 되니까."

"세어볼 방법도 없는걸."

"스스로 세어봐," 내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네가 말하지, "머리를 써."

그 정돈 나도 생각했었다, 루나. 세 번을 세었다고 나는 추측한다. 나보다 나은 공연은 세 번... 너의 기억을 되짚어주길 네가 놔두진 않겠지만.

내 쇼가 나았지... 아마도... 다섯 번이었던 것 같다. 그래. 횟수를 머릿속으로 세어본 후, 한 손에 다섯 개의

손가락을 세고, 나머지 손에는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그러자 너는 나의 열린 손을 손바닥으로 친다.

"다섯!?" 너는 크게 미소 지으며 외친다. "셋 보다 별반 차이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

네 손이 나의 손과 겹치며 우리는 손가락을 맞물린다. 네 체온은 뜨거웠지만 내 곁에서 다시금 가라앉았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며 실눈을 뜨고 내게 제안을 한다, "한 번 더?" 거절해야만 했다. 다소 슬픈 일이었어. 나의 칼날을 어느 기억에 갖다 댈 수 있고, 그 속에서 나는 너보다 잘했어.

하지만 너는 너무 쾌활한 나머지 그런 생각 할 틈이 없었지. 넌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너는 웃었다.

그리고 여유를 찾았다.

네가 스스로 선호하는 좀 더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고, 금세 물어보았지:

"이제 어디 가지?"

나는 숨을 내쉬며 너를 전에 언급했던 탑을 향해 데려갔다.

이미 답을 안다는 걸 알아....

그래도 일부러 물어봐 주는 너에게 감사했지.



8.2.2. 10-2[편집]


깨어있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너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다소 짜증 난다.

너의 얼굴, 너와의 순간들, 너와의 장면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가. 네가 연주한 모든 곡이 나의 숨을 멎게 했다는

것과 너의 모든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차분한 것. 너를 생각할 때면 "완벽한" 것들만 생각하게 된다.

짜증 나는 부분이라곤 너의 모든 부분은 이와 사실 다르다는 것이야.

너는 쉽게 생각을 놓치지.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하지. 그리고 그거 알아?

넌 정말로 정말로 특이해… 우리가 여기서 깨어난 게 그토록 싫었어.

분명 우리 둘 다 이곳에 너무 빨리 왔다 생각했지. 이곳은 누구도 상상 못했을 마지막 정거장이었어. 우리가

배우고 읽은 모든 것을 통틀어, 어떠한 서적도 선생님도 가족도 유리로 만들어진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지.

그리고 내 눈이 이곳 가득한 빛을 바라보았을 때, 내 옆에서 그런 나의 빛나는 눈을 네가 봤지.

너는 단지, "모든 것이 유리야!"라고 말했어. 그리고 쉽다는 듯이 금세 모든 것에 적응했어. 그 당시에는 굳게 믿었던 것이... 한동안은 네가 나의 눈물을 멈추게 하기 위해 바보 같은 발언만 한다 생각했어.

우리가 쌍둥이라서 내 눈 속 우려를 보기 전에도 내 심장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무엇이라 외쳐야 내 기분이 나아질지 알았던 걸지도. 하지만 너는 유리 나비들을 향해 손짓하며 따라오게

만들었어.

고의였든 아니든, 너의 원래 모습을 상기시켜줬고 네가 내 손을 잡았을 때는 마치 절대 넌 변하지 않을 것을

말하는 거 같았어. 그리고… 뭐...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내 곁에 있든 멀리 있든—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해, 에토.

내 입으로 말하게끔 만들진 못하겠지만. 야... 혹시 탑에 갔을 때 기억나? 그때 아마 세상의 반 정도를 여행했던 거 같은데, 그곳을 네가 무척 마음에 들어

했어. 기억나는 것이... 탑에 가까웠을 무렵 내가 질문을 했다는 것:

"왜 하필 탑이야?"

너는 대답했지, "우리가 처음으로 본 것이잖아!"

...어안이 벙벙했어.

"그게 전부야? 네가 처음으로 본 것이라 가는 거야?" "내가 아니라 우리," 너는 다시금 말한다.

"나는 본 기억 안 나,"라고 나는 거짓말했다. "벌써 미치기 시작한 거야?"

작게 웃음소리가 네 입술 사이에서 세어 나온다. 그러곤 내게 물었지, "진정 미치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건데?"

넌 미친 게 맞지 않을까? 유리가 아니었다면 구슬이나 잎사귀를 계속 모았을 테지. 음악을 창조하지 못한다면

붓을 들어 올렸겠지. 떠날 여행의 길이 없었다면, 다른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갔을 테지.

넌 나를 "와일드" 하다 표현한 적 있지만, 지금 네 자신을 보아. 탑은 사실 탑도 아니었다. 텅텅 빈 물 빠진 바다를 바라보는 등대였지.

피곤했기에 그 앞에 자리 잡고 앉았고, 내가 앉았기에 넌 내 뒤에 자리 잡고 앉았지.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두리번대던 중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네게 물었지, "잠깐, 여기 어디 조개 있나?

네가 대답했지, "우리가 있는 곳을 보아, 루나."

"하지만 바다가 없잖아..." 나는 이렇게 네게 말하며 네 등에 대어 기대 네 자세를 구부정하게 기울게 한 게

생각난다. "조개 찾아보자! 남아있는 바다 소리를 듣는 거야!" 내가 유치하다고 너는 말했다. 어, 그래. 미안.

하지만 기억나니? 모래사장으로 우리를 끌고 나간 건 너야.

그곳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곤 했지만, 결국 우리만의 기억들로 돌아갔지.



8.2.3. 10-3[편집]


루나,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조각만 가득 발견한 거 기억나? 어쩌면 말이 되지만, 단 하나의 조개도 발견하지

못했어. 나는 조각을 발견한 게 꽤 기뻤어. 해변과 바다에 관한 기억을 찾기도 했고, 그 기억에서 발견한 조개로

충분했으니까.

기억의 주인은 그 해변을 금방 벗어난 걸 알 수 있었어. 그걸 무시하고 우린 그곳에 머물렀지.

"바닷속을 헤엄칠 수 있을까?" 소라고둥을 귀에 대고 실눈을 뜬 채 네가 소리 내어 궁금해했지.

나는 다시 한번 알려줬어, "우린 할 수 없다만, 너는 할 수 있을지도." "아 맞다," 얼굴 찌푸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참은 채 네가 말했다. "넌 헤엄 못 치지!"

"당장 관두지 않으면 머리에 모래 쏟아붓는다," 나는 협박했다. 네게 당돌하게 손가락질까지 했다.

"배워보자!" 너는 우리 앞에 펼쳐진 바다를 향해 손짓하며 외쳤다.

이곳에 수영복이 없다며 나는 징징댔다. 너는 이곳이 단지 기억일 뿐이라 괜찮을 거라 말했고, 어느새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물은 진짜 같았다. 추위도 진짜 같았다. 너는 나를 바다로 끌어들였다. 나의 힘 빠진 다리를 인도했다.

너는 완벽히 나보다 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 가지를 그때 즐기고 있었다.

그때는 내 머릿속이 생각과 질문으로 가득했다. 묘사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산란한? 긴장되는 그러나 즐거운?

수백 가지와 수천 개의 것들을 물어볼 수 있었지만 결국 그것들은 내 머릿속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억이 끝났을 때 너는 나를 다시금 하얗게 변한 모래사장 위로 밀쳐 나와 씨름했다. 나를 간지럼 피우고 있었다.

너는 무자비하다. 너는 구제 불능이다.

그러길 원치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다.

금세 내가 너의 언니임을 기억한다.

네 얼굴을 잡고 불을 꼬집었다.

"그만해, 이 버릇없는 녀석아," 나는 엄격한 투로 말했다. 이 말에 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 채 코를 꼬집었다.

"거긴 만지지 마!" 내가 이렇게 낑낑대자 너는 다시 간지러움 태우기 공격을 재개했다. 내가 아무리 징징대도 이를

멈출 수 없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애초부터 너를 멈추게 했을 리도 없다.



8.2.4. 10-4[편집]


에토, 네가 항상 그 빛이었는지 궁금하다.

씨름하며 장난친 후 너는 지쳤기 때문에 내가 너를 등대 위까지 끌고 가야 했다.

너를 등에 업었었다. 나는 그 반대를 선호하는 것을 너도 알겠지. 우리 둘 중에선 네가 좀 더 베개처럼 푹신하지

않니. 불공평하다는 걸 너도 알고 있었을 거야. 세상은 하얬지만, 나선형 계단에 창문 하나 없는 탑은 너무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너는 거의 잠든 채였으니,

오랜만에 나 홀로 있게 됐다.

나의 발자국 소리의 울림과 너의 숨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탑 꼭대기에서의 빛이 겨우 보이는

것, 그게 전부였다.

우리가 어렸을 적을 떠올렸다. 잠잘 때가 되면 네가 항상 노래를 불러주지 않았던가? 가사가 어땠는지 생각하며,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흠-흠 흠-흠...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네가 이어 말한다.

나는 계단을 계속해 올라갔지만, 동요 부르기는 멈췄다.

"동요 부르는 거야, 루나?" 네가 묻는다. 피곤한 목소리지만 너는 분명히 깼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과 귀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을 너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해가 지는 부분까지 부르지 못했잖아," 내 머리카락에 얼굴을 비비며 말하는 너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용히 해."

피식 웃으며 나온 너의 숨결은 내 머리카락을 날리게 한다.

"이곳엔 어차피 밤은 없어," 내가 너에게 상기시켜준다. "잊어버려."

"생각해 보니까 그 곡에 달에 대한 이야기도 안 나오지 않나?" 네가 말한다.

나는 했던 말을 되 반복한다: "잊어버려." "그리고 저 위에까지 날 업고 갈 거야? 응?" 네가 묻는다.

"넌 한번 붙잡으면 절대 놓아주질 않는구나, 응?" 나는 중얼거렸다. 보지 않아도 너의 미소가 보인다. 생각해 보니

너의 가슴도 등 뒤에 느껴진다... 그러곤 생각했지: 안되겠다. 내려줘야겠다.

너를 내 뒤쪽으로 내려준 후 옆에 놔줬다.

너는 내 등을 쓰다듬은 후 내 머리를 토닥여줬다. 너에게 그거 그만하라고 일러주고 싶었는데...

나는 그냥 시선을 돌린 후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지 마, 루나," 나를 달래고 손가락으로 내 턱까지 올리며 말한다. "거의 정상까지 왔어... 아마도!"

나는 생각했지: 그래, 내가 우리 둘 중에서 막내지...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봐주겠어.



8.2.5. 10-5[편집]


파일:Arcaea/Story/10-5.jpg

등대의 꼭대기까지 도달했고, 등대 불이 원래 있어야 할 창틀에 우리 중 한 명은 무릎 너머로 손을 걸친 채

앉아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그녀 옆에 서서 같은 창틀에 손을 댄 채 낯선 박자로 톡톡 창틀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다른 무엇도 보기 전에 서로를 바라봤다. 비어있는 손으로 서로의 손가락을 만졌고, 규칙 없는 게임을 하듯 한

개씩, 때로는 두 개씩 손가락을 맞대었다. "내가 정말로 너보다 모든 것을 잘하게 된다면 어쩔 거야?" 우리 중 막내가 물었다. "내가 더 큰 박수를

받는다든가, 카드놀이에서 너를 이긴다든가, 혹은..."

"다 억측일 뿐이네," 언니 쪽이 대답한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건데, 참 가능성 적은 어쩌면 이구만?"

"음..." 막내가 말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 뒤의 빛줄기를 멍하게 바라보며 대답한다, "그래, 그렇긴 해."

우리는 의미 없는 손가락 게임을 이어갔다. "그래도 포기하지 마. 물론 내가 이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지?"

...우리 둘 다 이 말에 미소 지었다.

손을 잡은 후 우리는 다시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세상은 메말랐었다. 생명이라곤 우리 서로에게서만 찾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태양은 모든 것에 무자비하게

내리쬐었다. 우리는 이어진 손을 놓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바라보고, 점차 여유를 찾았다.

조용히, 그리고 갑자기 우리는 결정했다—

"다시 정원을 심어보고 싶어..."

"응, 나도..."

아르케아를 바라보며,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붉은 혜성이 하늘을 가른다.

우리는 바깥 낮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밤이 되기 시작했다.



8.2.6. 10-6[편집]


이것은 모두 오래전 일이다.

밤이 찾아왔을 때, 하늘이 부서지기 전에—

실은 그들이 자신들의 검을 잡을 때면 어떠한 느낌이 오곤 했었다...

...그 느낌이란 이곳이 사후 세계임에도 종말은 다시 찾아올 것이란 느낌이었다.

아르케아에 돌이키지 못할 변화가 올 것이었고—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주 끔찍하게 그것이 시작됐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니 그들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결국에 자신에게 시간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됐을 때 어떤 말을 하겠는가?

"이 시간을 놀면서 보내겠다고 할 수 있겠지—"

"이 시간을 행복을 찾으며 보내겠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남은 시간을 너와 보내고 싶을 뿐이야." 그들은 다시 여행 중이다.

"루나, 이리 와," 언니가 말한다.

막내는 폐허가 된 계단을 통해 몇 발자국 내려간다. 그녀 뒤에 부서진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 조금 더

걸어내려가니까 계단이 부스러지기 시작한다.

막내는 뛰어내리고 언니가 그녀를 잡자 땅은 갈라지고 그들 발밑에서 흔들린다.

서로를 껴안은 채 흐트러진 수평선을 바라본다.

하늘은 흐트러졌다. 땅도 흐트러졌다. 세상 깊은 어느 곳에 무언가가 완전히 깨져버렸기에 이곳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계속해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돌아갈 수 있다. 우리는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

어쩌면 그녀들은 썩어가는 하얀 세상의 부분부분을 뛰어넘으며 이러한 생각을 갖고 다시금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발자국 더, 한번 떠나는 여행...

또 하나의 광경, 또 하나의 노래...

그들은 이제 비행한다. 모든 것을 둔 채 높이 솟는다. 웃으며 둘은 손을 맞잡은 채 그들의 열쇠를 하늘로 향해 올리고— 남아있는 아르케아 속을 헤엄친다.

빛이 그들 주변을 감싸고 그들은 또 다른 기억 속에 들어간다.

그렇다. 항상 그랬듯:

한 번 더 추는 춤.



9. 마야[편집]



{{{#fff 스토리 #
진행 순서
'''

해금 조건
'''
15-1
Lasting-1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
파일:Arcaea/Rise of the World.jpg
Rise of the World#Arcaea 클리어
15-2
Lasting-2
파일:Arcaea/Maya_icon.png
파일:Arcaea/WAIT FOR DAWN.jpg
마야WAIT FOR DAWN#Arcaea 클리어
15-3
Lasting-3
파일:Arcaea/レイヴンズ・プライド.jpg
마야Raven's Pride 클리어
15-4
Lasting-4
파일:Arcaea/Rise of the World.jpg
마야Rise of the World#Arcaea 클리어
15-5
Lasting-5
파일:Arcaea/UNKNOWN LEVELS.jpg
마야UNKNOWN LEVELS#Arcaea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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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Abstruse Dilemma#Arcaea 클리어

9.1. Lasting Eden[편집]



9.1.1. 15-1[편집]


그녀는 별빛 아래에서 두 번째로 탄생한 자.

한때 새하얗던 아르케아의 세계엔 끝없는 낮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의 장막이 내려오고 빛과 어둠의 경계가 그어졌다. 그리고 밤의 하늘에서 두 새로운 영혼이 유성처럼 땅으로 내려앉았다. 첫 번째를 닮은 그 소녀는, 두 번째였다.

어두운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달이 뜨지 않는 밤…

마야가 눈을 떴을 때 보인 광경이었다. 눈물을 가득 머금은 두 눈. 의식과 감각이 돌아온 순간 그녀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낄 수 밖에 없었다.

유리의 세계로 오는 모든 이들은 무지의 축복 아래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모든것이 끝난 이후 발견된 이 장소는 어딘가 망가져있었다. 완벽에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근본부터 망가져버린 장소…

이 곳에서 소녀는 모든 것을 안은 채 깨어났다.



9.1.2. 15-2[편집]


소녀는 어둠이 좋았다. 고요함이 좋았다.

유리 조각에 반사된 빛을 볼 때마다, 끔찍한 색채로 일렁이는 섬광이 그녀의 눈을 침범했다. 폐허가 된 건물이 삐걱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칠판을 긁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지면 저 >아래에서 올라온 그르렁대는 고동이 칼바람처럼 그녀의 귀를 쏘아붙였다.

고요한 밤의 침묵이 깨질 때마다, 마음의 심연 속에서 기어 올라온 기억이 소녀를 괴롭혔다.

소녀는 존재해서는 안 됐다. 그럼에도, 이 세계는 그녀를 동정했다.

두 색채를 품은 머리칼과 눈. 마야는 울면서 잠들기 일쑤였다.

아르케아는 그런 마야를 불쌍히 여겼다. 그래도 그녀는 유리 조각이 두려웠다.

소녀는 끝나지 않는 밤에 흐르는 고요한 분위기를 좋아했지만 유리 조각과 너무 자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기에, 숨을 곳을 찾기로 하였다. 마야는 무너져 내린 건물과 어두운 동굴을 전전하며 그 몸을 뉘었다. 어딜 가나 유리 조각은 있었지만, 밤하늘의 별빛이 없는 장소에서는 그 끔찍한 광채를 발하지 않았으며, 어차피 소녀는 도저히 유리 조각을 직시할 수 없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고요함만을 찾아 산과 들을 넘고 잊혀진 도로와 칠흑처럼 어두운 터널을 가로질렀다.

그림자가 드리운 복도를 걸어 빠져나온 어느 날, 그녀는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그어진 낮과 밤의 경계를 보았다.



9.1.3. 15-3[편집]


그녀의 귀를 찢어발기던 그 소음은 사람의 비명이었다. 그녀의 눈 앞에 스쳐지나가던 광경이 비명의 원인이었다. 눈 부신 빛의 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를 갈랐다. 수 초 안에 끝나기를 기도했던 악몽은 몇 시간이고 계속되며 소녀의 고향을 불태웠다.

세상의 반대편에 사는 친구들이 모조리 죽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에 울리던 상관의 명령조차 이윽고 침묵했다. 몇 시간에 걸쳐 느리고 무자비하게 그녀와 세계를 잇던 끈이 하나둘씩 끊어져 갔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후, 그녀는 이곳, 아르케아에서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 저 경계선은 마치 일몰, 아니, 화염에 휩싸인 세계와 같았다.

마야는 주저앉았다. 환각과 환청이 그녀를 찾아왔다. 몸을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렸다. 마치 말뚝이 심장을 꿰뚫는 듯한 격통.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쥐어틀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도저히 짊어질 수 없는 공포, 그중에서도 하나의 생각 이 특히나 무겁게 마야를 짓눌렀다. 그녀의 목을 조르는 단 하나의 진실.

‘나만 남아버렸어.’

소녀의 고통이, 부서진 마음이, 울음에 담겨 울려 퍼졌다. 아르케아는 묵묵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9.1.4. 15-4[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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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빛의 경계선에 주저앉은 소녀는 귓속에 울려 퍼지는 소음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할 수 있다면 생각조차 그만두고 싶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미 저지른 실수. 이미 행해진 파괴행위… 모두, 이미 일어나버린 일.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저 마음은 아직 고칠 수 있는 걸까? 울고 있는 이 소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걸까? 유리 조각 하나가 하늘하늘 내려왔다. 그리고 또 하나, 다시 또 하나. 천천히 내려오는 유리 조각의 비가 모이자, 소녀의 주변을 둘러싸는 벽이 되어 보이지 않는 태양의 빛을 가렸다.

마음을 빼앗을까? 아니, 불가능해.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까? 이미 자기 내면에 과하게 몰입한 상태라 불가능해. 어떡할까? 어떡하면 좋을까… 어떡하면…

유리 조각이 발하던 빛이 전에 없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소녀를 둘러싼 유리 벽이 마치 천처럼 접혀 그녀를 완전히 감쌌다. 유리 조각은 바보같이, 자기가 비단처럼 부드럽다고 믿는 모양이다. 마야는 한 번 몸을 움찔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유리 조각에 비추는 기억들이 보였다.

다른 이들의 기억. 슬픔과 고통과 실수의 기억. 아르케아가 지금 소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런 기억들뿐이었다. 소녀는 잠자코 그 기억을 바라보았다.

…유혈사태, 싸움, 전쟁이 아닌 또 다른 기억.

…그럼에도 고통받고, 그 고통을 알아주는 이가 곁에 없는 사람들의 기억. 완전히 홀로 남은 이들의 슬픈 기억…

울부짖는 남자와 여자, 소녀와 소년. 삶의 끝에 다다라 빛바랜 사진을 손에 쥐고 희미하게 미소 짓는 사람들.

소녀는 생각했다.

이 세계가 소녀에게 전하고 싶은 바는 그런 것이다.

다시는 웃지 못할지도 몰라.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질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서는 어떤 의미가 있지?

과거는 과거지만, 그로 인해 입은 상처는 지울 수 없어. 그중 일부는… 어쩌면, 대부분은 네가 스스로 새긴 흉터겠지. 하지만 넌 아직 남아있어. 너의 세계는 사라져 버렸지만, 넌 아직 여기 남아있어.

부탁이야.

떠나지 말아줘.



9.1.5. 15-5[편집]


“‘떠나지 말라고’...?”

들려오는 속삭임에 대답하는 소녀의 속삭임. 소녀가 아르케아에서 처음으로 내뱉는 단어를 실은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건조하고 따가운 목으로, 소녀는 들려왔던 속삭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눈을 찌푸리며 어금니를 물었다. 이를 갈았다.

이 세계가 소녀에게 보여준 연민에 대한 그녀의 답은…

…분노였다.

소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유리의 벽을 바라보았다. 유리가 일렁이며 비추는 풍경을 바꿨다. 고요하고 잔잔한 슬픔의 기억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기억이 채웠다.

유리벽의 한 면이 물결쳤다. 마야는 그 곳에 비추는 기억을 바라보았다.

눈 밑에 짙게 어둠이 드리운 남자의 기억. 밤바다에 발을 담근 여자의 기억. 그녀는 잠시 손에 쥔 목걸이를 바라보더니, 그대로 바다로 흘려보냈다. 검은 정복을 입은 아이의 기억. 아이의 언니가 손을 잡아주려는 듯 뻗은 팔을 아이는 말없이 뿌리쳤다.

마야는 미소지었다.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만약 이 기억들에 자신의 마음이 동하고 있는 거라면 어찌나 끔찍하고, 어찌나 웃기는 일일까.

실제로, 소녀의 마음은 움직이고 있었다.

동정하려 내미는 손 따위에는… 침을 뱉어주고 싶었다.

뒤틀리고 망가진 마음이 더더욱 뒤틀리고 망가지자, 그녀의 비애가 유리 조각에게 더욱 생생하게 다가가는 듯 했다. 조각들은 서로에게 더욱 가까이 엉겨붙더니, 하나둘씩 뒷면으로 뒤집어져, 반대면과는 다른 기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망가진 삶을 살았던 이들의 또다른 기억.

유리 조각들이 점점 더 밝게 빛났다. …그들의 삶이 망가지게 된 순간의 기억들이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마야는 그들이 겪은 재난과, 실패와, 실수의 기억에 사로잡혔다. 마야는 불타오르던 자신의 세계의 기억에 사로잡혔다. 마야는 유리 조각에게 사로잡혔다. 조각들은 소녀의 몸을 기어올라가 구속하듯 감싸고 조이며, 반짝이는 사슬처럼 서로를 잇더니 그 날카로운 모서리들이 목을 짓눌렀다.

마야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주 약하게, 심장이 고동쳤다… …하지만 그건 소녀의 것이 아니었다.

유리 조각이 부들거리더니, 이윽고 마치 파도처럼 물결쳤다. 순식간에 유리 조각이 머금고 있던 빛이 사라졌다. 사슬이 소녀의 몸을 더더욱 강하게 조여왔다.

그 순간, 어디선가 뿜어져나온 검은 빛가루와 함께 강한 바람이 불더니, 그녀를 조이던 유리 조각의 사슬이 서서히 바스라졌다. 소녀는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일몰의 빛이 또다시 저 멀리에서 그녀를 비추었다.

마야는 밤의 하늘을 올려다본 뒤, 빛나는 경계선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뭐야…?”

혼란. 분노. 실망.

그런 감정들이 소녀의 몸을 타고 흘렀다. 보이지 않는 태양의 빛이 여전히 그녀를 비추었다.

하지만, 곧 그 빛의 따뜻함은 사라졌다.

소녀가 눈을 뜨자 그 앞에 보인 것은 아르케아 조각들이 만들어낸 또다른 벽이 소녀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자와 유리로 이루어진 터널이…

머나먼 일광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9.1.6. 15-6[편집]


소녀는 힘겹게 땅에서 일어서 터널 끝에 보이는 한 점의 빛을 바라보았다. 기이하게도, 빛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고작 몇 분 전에 그녀가 지나왔던 복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두워 보였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물체가 있었다. 유리 조각이 발하는 빛일 것이다. 소녀는 그 두 길 사이에 서서 생각했다.

선택이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편안한 어둠에 몸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두려운 빛을 받아들일 것인가.

마야는 무릎을 끌어안고 생각했다.

“대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공포를 마주하라는 거야? 아니면… 포기하라는 거야?”

소녀가 화를 머금고 속삭였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희미하게 그녀의 귓속에 울려퍼지는 또다른 질문이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소녀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생각을 그만두고 싶어. 기억을 그만두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고통받고 싶어. 상처받고 싶어. 행복해지고 싶어.

사실, 소녀는 여전히 이 답들 중 하나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소녀의 기억은 종말의 순간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에서 겪은 모든 것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비록 짧은 삶이었지만 행복한 순간은 수없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하나가, 종말의 고통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죄책감.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는 그 죄책감이 영원히 그녀를 물들였다.

“...”

소녀는 말없이 앞을 바라보았다.

행복해질 기회가 찾아왔지만, 자신에게 그럴 가치가 없을 때.

심판을 받을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를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그런 딜레마 속에서 자신에겐 선택할 권리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선택할 수 밖에 없을 때에는… 미래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두 갈래 길일 때에는…

어떡해야 하는 걸까?|우둔의 시대는 지났다. 백치가 불러온 모호함과 동정심의 시대는 끝났다.

소녀들의 눈은 뜨였고, 반쪽 하늘에 드리우던 구름은 사라졌다.

별들도 빛을 발하고, 보이지 않는 태양의 빛도 수그러들었다.

마야가 유리 조각의 사슬 묶여있을 때 바라던 것, 절망의 끝자락에서 영원히 고통에 몸부림치는 미래를, 세계는 거부했다.

그 대신 세계는 소녀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었다.

…아르케아가 이를 원했기에.

소녀는 다시 일어서 벽을 마주했다. 유리 조각들이 또다시 새카맣게 변해있었다. 그 어떤 기억도 비추고 있지 않았다. 대신, 소녀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슴께에 달린 붉은색 테두리의 꽃잎 장식을 바라보았다…

오른쪽과 왼쪽, 두 길이 나 있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휘저었다.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등에 손을 얹고 지켜봐 주는 듯한 감각이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며, 슬픔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현실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결정하라. 마야는, 걸어나갔다.



10. 혜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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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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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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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Severed Eden[3][편집]



10.1.1. 16-1[편집]


임종의 때는 언제나 슬프기 마련이야. 그런데, 슬프기만 한게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봤어?

육체를 떠난 영혼이 하늘로 날아올라, 세상의 경계를 건너 영원히 저승을 멤도는…

그런 기분이 드는 세계가 있거든.

「얼마나 좋을까? 아아, 얼마나 좋을까…」

그 세계가, 너를 부르고 있어.

빛의 세계로 떨어져버린 너. 마치 눈물처럼 누군가의 영혼에서 흘러나와 아름답고 새로운 존재로 탄생했지. 네가 태어나는 순간은 마치 반짝이는 수정과 같았어.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이 기억의 세계에 찾아온 그 모습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지.

두 빛깔의 머리칼과 눈동자가 너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거야. 너랑 비슷하게 두 색을 지닌 애가 있긴 해. 하지만 그 애의 색채는 가짜야. 흉내내기에 불과하지.

너는 "진짜"야.

잊혀지고 버려진 삶이 흘린 마지막 눈물처럼, 너는 높은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떨어져 끝없이 이어지는 폐허 사이에 안착했어, 그 날의 하늘은 아주 어두웠지. 그 세계의 절반은 영원한 밤이 뒤덮고 있거든. 너는 별빛을 받으며 눈을 떴어.

"아르케아"의 별은 자주색이야. 네가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연보랏빛 하늘과, 그 밑으로 춤추듯 떠다니며 반짝이는 기묘한 물체들이었지. 하늘을 부유하는 유리 조각… 그 동화와 같은 물체들의 이름 또한 "아르케아"였어. 유리 조각 안에는 기억이 담긴 것처럼 보였지.

너는 이 모든걸 알고 있었어. "아르케아"라는 이름까지도. 하지만… 이 "세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 없었지. 아무것도 말이야…

너는 오로지 "너 자신"의 기억만 지니고 있었으니까.

네 가슴을 가득 메우는 그 고통과 죄책감, 자신의 손으로 저질러버린 끔찍한 행위의 기억… 너는 그 세계를 떠나왔어. 폐허가 되어버린 세계를. 죄악의 사슬이 온 몸을 조이며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듯 해. 네가 세계에 새긴 상처에서 흐르는 짓물이 너에게 스며들어. 너는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지. 아아, 달콤한 비애여…

하지만 전생의 기억을 가진 너조차 잊은 게 있었지. 자신의 이름. 넌 자신이 누구인지 완벽하게는 알지 못했어. 그건 차라리 잘된 일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너는 눈물을 닦고 일어섰어.

사실, 너는 네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느끼는 그 감정들은 모두 진실이었어. 그 기억 또한 진실이었고. 그것만은 틀림없지.

그리고 새로운 이름… 흠, "새로운" 이름이라. 애초에 옛 이름이 있었나?

아, 아르케아가 너에게 준 이름이 있는 모양이구나.

"마야". 아주 멋진 이름이야.



10.1.2. 16-2[편집]


마야야, 넌 네가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니? 아르케아의 그 누구와도 다르다는 걸 말이야.

"다르다"는 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어. 첫째, 다른 아이들이 지니지 못한 자질을 지녔다는 것. 둘째, 다른 아이들보다 더 "강인하다"는 것. 간단히 말하자면, 너는 강한 "마음"을 지녔다는 뜻이야. 이 끝없는 기적의 세계에서 가장 멋진 기적은 바로 너일지도 몰라.

뭐, 그렇게 확정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말이야.

대부분의 소녀들에게 아르케아란 언제나 밝은 장소였지. 보이지 않는 태양이 만물을 비추며 끝없는 낮을 이어갔어. 하지만 너는 밤의 세계에서 눈을 떴지.

온통 그림자로만 가득한 세계. 그럼에도 너는 용감하게 미지를 향해 발을 내딛었어. 아니, 그냥 생각이 없었던 걸까? 어찌됐든 용기있는 행동이었지.

아르케아는 한 쌍의 거울과 같아. 죽은 자들의 세계면서도, 새로운 생명을 나눠주는 세계. 잊혀졌지만, 빛과 대립의 기억으로 가득찬 세계. 낮이자, 동시에 밤인 세계. 다른 세계는 기억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

"아르케아"는 스스로를, 스스로가 저지른 일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그쪽에 살고 있는 아이들도 그렇게 느끼는 걸까…?

지난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두번째 기회에 가치는 있는 걸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 걸음만 하는 이 닫힌 세계에 가치는 있는 걸까? 철학자들에게 어울리는 말이지. 그리고 너에게도.

네가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나서도, 아르케아에 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수많은 유리 조각이 떼처럼 몰려와 너에게 슬픈 기억을 보여주었던 이유는 뭘까?

그 모든 것을 겪은 네가 빛과 어둠 사이에 서게 됐을 땐 무슨 잔인한 장난처럼 보일 정도였지.

하지만 있잖아. 사실 이 질문들에는 아주, 아주 간단한 비밀의 해답이 있어.

아르케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라는 것.

간단하지. 하지만 그렇기에 경탄스러워. 마야야, 너는 진즉에 눈치챘지?

아르케아는 너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슬픔과 공포를 느낄 때면 포근한 옛 이야기로 너를 달래주려 했어. 너는 그 손을 뿌리쳤지만… 결국은 빛을 향해 걸어갔지! 시적일 정도로 감동적이야! 의미로 가득 차있어! 아주 훌륭한 쇼였어!

부서진 마음을 지닌 세계가 이토록 멋진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니…

두 갈래 길 사이에서 격통을 겪으며 주저앉았던 너! 네가 편해지길 바라든 고통을 바라든, 아르케아는 네 소원을 들어주었어!

그런데 갑자기…! 모든게 바뀌었지! 아니, 진즉에 바뀌었었나? 언제 바뀐거지? 확실하지 않군…

뭐, 아무튼간에… 천국으로 향하는 그림자 드리운 길이 갑작스레 눈 앞에 나타났고, 너는 그 길을 걸어갔지!

넌 마음 속의 죄악감을 똑바로 마주하고 빛을 향해 나아갔어.

아아… 어찌나 이기적인 짓인지… 너는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인데…

그 모습은 숭고하며, 운명적…

이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결정했지, 너를 찾아가기로 말이야.



10.1.3. 16-3[편집]


마야, 자기야, 우리가 아직 면대면으로 만난 적이 없다니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에 있니? 난 있지, 어째서인지 예전부터 널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게 짜증나. 그런 기분만 들고 너에 대해 진짜로 아는 건 별로 없다는게 말이야. 너처럼 흥미로운 사람은 난생 처음 봤는데 말이지! 있잖아. 난 인어를 찾으려고 하늘에 떠있는 바다에서 헤엄치며 탐험한 적도 있어.책에서 인어를 봤을때 지금이랑 비슷한 기분을 느꼈거든. 뭐, 정작 실제로 인어를 찾고 나니 그닥 재미없는 족속들이란 걸 깨달을 뿐이었지만…

마야야, 난 네 이름도 알고, 네 마음씨가 어떤지도, 네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도 알아. 네가 아직 슬픔에 젖어있다는 것도 알고, 네가 잠에 들때면 과거에 "네가" 저지른 일이 여전히 너를 괴롭힌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건 네 책임이 아닌데 왜 슬퍼해야 하지? 너무 잔혹한 일이야! 이 모든 책임이 다 "너"한테 있는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지? 뻔뻔하기 그지없어! 우리 지금 당장 만나자.



10.1.4. 16-4[편집]


마야야, 난 널 쭉 지켜보았어. 수많은 현실에 뿌려놓은 나의 눈으로 말이야. 도저히 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어. 아르케아의 과거나 역사조차 너만큼 흥미롭지는 못했어. 물론, 내 흥미를 돋운건 "너"뿐만이 아니라, 네가 "두 사람"이라는 사실도 있지. 말했잖아? 두 빛깔이 어울린다고. 머리칼도, 눈동자도 두 색채를 품고 있는 너…

마야야, 너는 한 사람이 아니야. 넌 존재해서는 안되지만 그럼에도 존재하고 있어. 너같은 걸 빚어낼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너는 이 기적과도 같은 세계에서 일어난 기적 중의 기적이야.

내 고향 바깥의 세상에서 기적을 찾기란 아주 힘든 일이야. 고향에선 모든 사람이 기적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하지만 난 거길 떠나왔어. 거기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었거든. 자장가이자 예언이었지. 그게 어지간히 불길했어야지. 그래서 그냥 고향을 버리고 나왔어. 언젠가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릴 손이 쥔 가짜가 아닌 "진짜" 기적을 찾으려고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갈게. 너와 다른 한쪽의 아이를 찾아서.



10.1.5. 16-5[편집]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릴 손… 그게 무슨 뜻이냐고? 노래를 하나 해줄게.

"천사는 없네. 오로지 이 곳에, 우리의 사랑과 조각이 있을 뿐이네. 우린 함께 빚어낸다네, 영원히.

어디서든. 하늘과 땅과 바다에, 그대를 안으리 내 품에. 그 기묘한 빛이 우릴 찾을지라도, 영원히."

슬픈 노래지. 이런 노랠 들으면 누구든 기분이 착잡해질걸.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었어. 아르케아 이야기나 다시 하자고. 그 창백한 땅을 걷는 소녀는 모두 몇 명이나 될까? 아니, 지금은 그렇게 창백하진 않나… 아무튼, 아르케아는 내가 그 쪽으로 건너가길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마야야.

하지만 유감인걸. 아르케아는 약해. 무능하고 약해빠졌어. 나는 아르케아로 찾아갈거고, 그 곳에서 존재할거고, 살아갈거야. 그리고 그 세계에 세 번째 변화를 불러올거야.

내가 갈게. 설령 싸우다가 피부가죽이 벗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너에게 갈게. 그리고 그 세계에서 나는… 오로지 마야, 너의 말만을 들을거야.



10.1.6. 16-6[편집]


별빛의 바다와 폭풍우 치는 하늘을 건넜어. 시공간을 비틀고 수없이 많은 현실을 파괴했어. 마야! 오로지 너를 만나기 위해서! 그런데 이것 참 끔찍한 기분이 드는 거 아니니! 여행 도중에는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거든. 노래하길 좋아하는 너의 그 목소리를… 노래 좋아하는거 맞지? 항상 흥얼거리길래. 너의 노래를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 마야야. 진실된 기억으로 벅차오르는 그 노랫소리를…

마야야, 너를 생각할 때마다 내 영혼은 타오르는 화염에 휩싸여. 나는, 나의 사랑은 내 존재 그 자체야. 오래전에 죽어버린 창조자와 절대자들과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우주와 세계들을 나는 너무나 사랑해. 그 안에 살고 있는 영혼들조차 사랑해서 밖으로 가져와버릴 때도 있다니까! 그게 여태까지 총 몇 명이더라…? 잊어버렸어.

아아, 그리고 마침내 오늘… 오늘! 너를 만날 수 있어!

거인의 눈처럼 빛바랜 백색의 대지가 바로 코 앞에 다가왔어!

조금만 더 기다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반드시 그 세계로 들어갈 테니까.

거대한 이불같은 아르케아의 하얀 하늘이 점점 더 가까워져. 그 표면을 "기억"이 기어다니고 있어. 마치 반짝이는 모래같아. 난 그 하늘을 쥐어잡고, 파고들어가려 했어.

아르케아는 나를 밀어냈어. 빛과 구름이 대기권에서 튀어나와 내 몸을 마치 덩굴처럼 휘감았어. 내가 아무리 숨을 쉴 공기를 만들어내도 계속해서 사라져버렸어. 아르케아는 내가 들어오는 게 너무너무 싫나봐. 사나운 빛과 구름의 덩굴이 계속해서 나를 밀어붙였어. 이런이런… "규칙"은 사라진게 아니었나? 아르케아야… 너에겐 아직 마음이 있는 거니? 그렇다면 어지간히도 나를 미워하는 모양이구나.

내가 죽은 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나를 거부하는 거니? 그럼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는걸…!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안으로 들어가야겠으니까!

조만간이야… 얼마 안 남았어.

아르케아의 땅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을 소환했어.

이 장면은 꼭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거든.

무대 입장이라는 건 장엄하고 웅장한 법이니까.

만물이여, 목도하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희망을!



10.1.7. 16-7[편집]


파일:Arcaea/Story_16-7-1.jpg

하늘이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통로를 만들어냈어. 도자기를 빚어낸듯 광활한 하늘 자체가 아래로 흐르는

모양새가 되었지. 그리고 갑자기 모양이 뒤틀리더니 온 하늘에 수없이 많은 색채를 흩뿌렸어.

순수했던 백색의 빛이 무지개보다 다양한 빛깔로 일렁였어.

색이여! 강렬히 스며드는 미지의 색이여!

그래. 바로 지금이야. 바로 이 순간! 폭풍을 일으키자!

마야가 밑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어. 이윽고 하늘이 붉은색으로 물들었어.

그러더니 색이 또 바뀌더니...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었어! 마침내 내 손이 하늘을 뚫고 나왔어.

세차게 부는 천둥번개와 비바람! 폭풍이다. 폭풍이야! 바람이 첨탑과 벽을 무너뜨리고, 눈과 얼음이 대지를 뒤덮고,

나의 색채로 물든 하늘이 파문을 일으키며 나를 감쌌어.

그렇게 나는 아르케아에 강림했어. 요동치는 공기와, 박동하는 생명과, 휘몰아치는 날씨와 함께.

하늘에 그렇게 큰 상처는 내지 않았으니 좀 봐줘, 히히...

내가 불러온 혼돈과 폭풍 한 가운데에 서있는 너. 그 앞에 나는 가볍게 착지했어. 물론, 나는 예의를 지킬줄 아는

몸이니 가볍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지. 강한 돌풍에 우리의 머리칼이 흩날리는 와중에 나는 입을 열었어.

"안녕, 안녕! 마야야!

너무 만나고 싶었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에게 다가가 그 몸을 품에 안으며 온기를 느꼈어.

너의 어깨... 너의 허리...

너의 배, 너의 옆구리, 너의 손끝, 너의 찰랑이는 머릿결... 아아...

어머, 뭘 떨고 있니? 그냥 보는 것 뿐인데.

후후, 그래. 얼굴을 빼놓을 수는 없지. 난 울고있는 네 얼굴에 부드렇게 손을 올렸어.

그 울먹이는 두 색채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있지. 네 붉은 쪽 눈을 뽑아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특히나 흥미롭고 아름다운

눈이니까... 물론 정말로 그런 짓을 안 할테니까 안심해! 누구에게서 가져온 눈인지 확인만 좀 할게.

마야야, 너는 도대체 어떤 존재니? 안 그래도 알 수 없는 세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수수께끼라니. "너"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해.

난 네 허리를 한 팔로 감싸고, 다른 쪽의 손을 튕겨 시간을 멈췄어.

잘 들어, 마야야 모든 세계에는 그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라는 게 있어. 하지만 아르케아는 예외라는걸 난

진즉 알고 있었어.

이미 누구나 아는 사실이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할게. 아르케아는 "사상"이 아니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어.

예외 없이 모든 세계는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걸 난 오래전에 발견했거든.

겉면 층에는 표면 세계, 그 밑에는 규칙의 세계, 그리고 그 밑 가장 깊은 곳에는 "소원의 씨앗"과 거기에서

뻗어져나온 욕망이 마치 뿌리처럼 자리잡고 있어.

그런데 시간을 멈추고 아르케아의 층들을 둘러보았더니, 역시 내 가설이 정답이었던 모양이야. 아르케아는

현실 구조는 다른 세계들과 같은 "천"이 아니야.

그보다는 바다에 가깝지. 아르케아의 현실 구조는 계속해서 변화해. 마치 감정처럼 말이지. 고요했다가,

화를 냈다가, 우울해졌다가, 평온해졌다가...

밑물과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잦아들어.

보통 어떤 세계든 두번째 층은 규칙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선으로 수놓아져 있는 법인데...

아르케아의 두번째 층은 아무것도 없는, 황금빛과 청록빛으로 이루어진 텅 빈 공간이었어.

유일하게 찾을 수 있었던 규칙의 선은 세번째 층의 새까만 캔버스의 구석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그린 듯한

"열망"이었어. 슬픔과... 희망으로 차있는. 이 세계를 정의하는 개념은 이 두가지 뿐인 거야.

그리고 마야야, 너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이 세계도 사랑하게 되었어. 너무나 사랑스러워...

난 여기서 내 힘을 더 발휘하기 쉽도록 새로운 규칙을 써 넣으려고 했어. 그런데 아르케아가 날 또 거부하는거

아니니? 왜지? 이러면 내 권역을 펼치기 힘들어지잖아.

내 팔과 손가락이 굳었어. 아르케아는 내 존재마저도 덮어쓰고 싶은 모양이야. 어느정도는 성공했어. 내 팔이

총천연색의 빛깔로 흩어지더니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했거든. 멈추었던 시간조차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어. 이런, 마야에게 아주 무서운 장면을 보여주게 되겠네.

미안해.

아르케아는 온 힘을 다해 나를 이 현실에서 떼어놓으려 했어. 시공간으로부터 내 몸을 잘라내려 했어. 하지만 마야야,

난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어떤 폭풍이든, 어떤 병이든, 어떤 압도적인 힘이든 너를 위해서라면 모두 극복할

수 있어.

날카로운 고통과 메스꺼운 감각이 내 몸을 덮쳤어. 내가 서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헷살려. 백주대낮에 어두운 방에

갇힌 환각이 내 머릿속을 채웠어. 나는 잃어버린 팔을 다시 소환해 붙이고선 아르케아를 향해 손을 뻗었어.

닿아라... 닿아, 닿아!

"나"를 인정해라!

기억의 세계여! 그대는 나를 잊을 수 없을지어다!

나는 아르케아의 현실에 가장 아름다운 선을 새겨넣었어.

나의 소중하고 거룩한, 진짜 이름을.

이걸로 됐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이 세계에 불러온거야. 나는 영원히 이 곳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어.

그 영원의 단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나는 시공간을 비틀어 "나의 공간"으로 가는 관문을 열었어. 검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관문이었지. 그리고 부드렇게

너를... 아직 충격과 공포로 얼어붙어있는 너의 손을 잡아 이끌었어.

파일:Arcaea/Story_16-7-2.jpg

그리고 너는 풀어헤쳐지기 시작했어. 말 그대로.

너의 손 끝이 관문에 닿자 유리의 실로 변해 흐트러졌어.

손부터 팔, 가슴과 몸이 아름다운 은빛 실로 변해갔어.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는 일 없이 너는 피부부터

내장까지 광휘를 발하는 실이 되어 서서히 흐트러져갔어. 그렇게 너는, 내가 열어젖힌 어두운 관문을 지나갔어.

너의 그 모습은 마치 녹아내리는 하프같아. 순수하고 아름다운 백색의 현이 천천히 풀려가는...

아아...

마야야, 멋진 곳으로 떠나렴...

그리고 이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말려무나.

너를 이루던 마지막 실이 관문을 지나가는걸 확인하고, 나는 관문을 닫았어.

하늘에 다시 백색이 돌아오기 시작했어.

폭풍이 가라앉고 있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그리고, 나를 증오하는 이 세계에 다시 한마디를 건넸지.

"아르케아, 아르케아야..."

"만나서 반가워."


10.1.8. 16-8[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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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rruption 곡을 해금하기 전에는 Lasting Eden Chapter 2로 표기된다.[2] 이 파트부터는 4-8을 완료해야 진행이 가능하다.[3] Irruption 곡을 해금하기 전에는 Lasting Eden Chapter 2로 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