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식 자동소총

덤프버전 :

Type 63
63式自动步枪
63식 자동보총


파일:type63_rifle.jpg

종류
돌격소총
원산지
[[중국|

중국
display: none; display: 중국"
행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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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역사
1968년~1978년
개발년도
1959년~1963년
생산
중화인민공화국 국영 조병창
생산년도
1969년~1978년
생산수
6,000,000정
사용국






사용된 전쟁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 내전
베트남-캄보디아 전쟁
중월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기종
원형
56식 자동소총
세부사항
탄약
7.62×39mm
급탄
20/30발들이 박스탄창
작동방식
가스 작동식
회전 노리쇠 방식
총열길이
531mm
전장
1,033mm
중량
3.8kg
발사속도
680~725RPM
탄속
735m/s
유효사거리
800m

1. 개요
2. 상세
3. 애매한 컨셉
4. 기타
5. 대중매체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ifle_Type_63.jpg

63식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
56식 기병총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된 중국자동소총. AK-47을 복제하여 56식 보총을 만들어 본 경험으로 반자동소총이었던 SKS를 완전 자동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상세[편집]


중국이 사용하던 56식 반자동소총(SKS)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959년 개발 시작해서 1963년에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공식적인 정식 명칭으로는 63식 자동소총이다. 서방에서는 1968년에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해서 Type 68 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북한의 68식과는 다른 물건이다. 북한군의 68식 자동소총(보총)은 AK-47/해외#북한 문서 참고. 다만 중국제 63식이 북한군에게 소량 수출된 바는 있는 듯 하다.

이후 63식 자동소총은 당연히 중국군이 가장 큰 사용자지만, 소비에트 영향권에서 갈라서서 중국과 제한적인 교류를 시작한 알바니아도 사용했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북베트남에 수출도 되었고, 캄보디아와 기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 소량이 수출된 적이 있다.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에는 아프가니스탄에 물량이 수출된 적도 있다.

중국제 SKS인 56식 반자동소총과 흡사해보이지만 SKS를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고, SKS가 틸팅 볼트를 쓰는 반면 63식은 AK-47(56식 자동소총)의 회전 노리쇠 방식을 사용하는지라, 상부 총몸 부분이 다르다.

반자동소총인 SKS와는 달리, 63식 소총은 자동/반자동 조정간이 있는 자동화기다. 기본 탄창은 20발짜리인데, AK-47의 30발 탄창을 약간 개조하면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조정간은 총의 우측 방아쇠울 약간 위에 존재한다. 중국산 SKS처럼 접절식 스파이크형 총검이 기본 사양이고, 공포탄총류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절식 가스 레귤레이터를 장비한다.



3. 애매한 컨셉[편집]


원래 중국군의 보병 교리는 1930-40년대 국공내전, 중일전쟁과 1950년대 6.25 전쟁[1]에서 확립된 것으로, 보병 대병력이 장거리 사격으로 화망을 구성하면서 걸음으로 적진에 육박하여 총검으로 근접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소련이 개발한 SKS는 이런 중국군의 교리[2]에 딱 알맞은 소총이었다.(소련에서도 이런 교리로 SKS를 도입했다.) 이런 교리에 맞춰서 설계되었기 때문에, 63식은 AK-47과 같은 탄을 쓰지만 가늠자의 최대 유효사거리가 800m씩이나 된다.이는 AK-47의 두배에 가깝다.[3]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군은 AK-47을 처음에 사정거리가 짧은 기관단총의 개념으로 파악했고, 실제로도 그렇게(冲锋枪) 불렀을 정도였다.(1970년대 이후에야 자동보총(自动步枪)으로 명칭이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중국군 수뇌부는 정확도가 낮고 사정거리가 짧다고 본 AK-47보다는 SKS를 더 선호하였다. 사실 이건 중국군 수뇌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련도 SKS와 AK-47을 도입할 때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AK-47은 독소전에서 대활약을 한 PPSh-41의 후계작, SKS는 모신나강의 후계작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소련은 1960년대 초반 현대전에서 더이상 보병의 장거리 사격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AK로 통일하며 SKS를 퇴출한 반면, 중국측은 소련과의 교류가 1950년대 말에 단절되었기 때문에 이런 아웃데이트된 교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SKS의 정확도 및 사정거리와 AK-47의 연발성을 모두 갖고 싶은 중국군 수뇌부는 두 총을 적절히 합친 63식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이런 전법이나 보병의 장거리 사격은 현대전에서 소용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미군조차도 베트남에서 초기에 63식과 비슷한 컨셉인 M14 소총을 들고 참전했다가 즉시 M16 소총으로 교환했고, 소련도 마찬가지로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SKS를 1선부대에서 퇴출했다. 그러므로 SKS 개량형의 컨셉으로 만들어진 63형은 영 애매한 컨셉의 총이 되었다. 원래 63식을 개발할 때만하더라도 자동/반자동 사격이 가능하면서도 다연발탄창을 장착한, 어느 상황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화기를 상정하였다. 하지만 모든 것에 만족하려 하면, 결국 어떤 것도 충족할 수 없다는 교훈만을 입증하였을 뿐이다.

63식은 AK-47과 같은 탄을 쓰는 주제에 유효 사거리나 명중률은 명백히 구식 장총과 맞먹으려고 했고, 현대적인 개인화기로는 좀 무겁고 너무 긴 편이다. 자동사격을 할 경우 그 형태 때문에 반동제어가 여의치 않았고 현대적인 돌격소총에 비해 장탄수가 부족하여(AK의 30발이 20발로 감소되었다) 화력면에서도 모자람이 있다. 그리고 하필이면 문화대혁명처럼 당시 나라 사정이 엉망진창일 때 대량생산되었기 때문에 총 자체도 상당히 신뢰성이 나쁘다는 악평을 받았다. 파생형으로 몸통이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것도 있었으나 그 당시 중국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 목재만도 못한 강도가 나왔다고 한다.

초기제작형(1964년 생산이 개시되어 1966년 문화대혁명 직전까지 프로토타입 약 2000여정이 생산되었다.)은 56식 보총보다 뛰어난 명중율로 중국군 수뇌부도 만족하고 이어 대량생산이 결정되지만 대량생산기간에 하필이면 문화대혁명(1966)이 벌어져 제조 노동자들이 품질향상보다는 사상교육 및 모택동 어록을 더 외우거나 홍위병들이 파벌싸움 하는데 신경썼기 때문에 마무리가 무성의한 날림제조가 많아서 신뢰성도 떨어진다.[4]

미국과 싸우고 있던 북베트남에도 지원되었으나, 이미 수많은 실전경험을 쌓은 북베트남은 같은 중국제라도 AK-47을 복제한 56식 자동소총을 선호했고, 63식은 소수만 실전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런 애매한 컨셉 때문에, 중국군의 불만을 샀으며 더구나 위에서 지적된 대로 생산기간 중의 정치적 격변 때문에 개별 소총의 품질도 엉망으로 중월전쟁에 참전한 부대들에 원성을 샀다. 원래 60년대 초반 중국군 1선부대들은 AK패밀리였던 56식 자동소총을 장비했으나,[5] 자국 보병 교리에 맞는다고 판단하여 63식으로 모두 교환했다가 베트남 전의 전훈 및 일선사용경험으로 63식이 문제가 많다는 것이 불거지면서 다시 1978년에 56식으로 돌아가는 뻘짓을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부대가 장비할 만큼 56식이 많이 보급된 것도 아니어서, 1979년 중월전쟁에 참가한 상당수의 부대는 63식을 들고 참가했고, 결국 미군이 베트남 전쟁 초반 M14를 가지고 벌인 삽질을 반복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면에서 쓰임이 애매한 총이다. 돌격소총급 탄을 쓰는데 사거리는 구식 소총급을 노리고, 돌격소총처럼 운용하려면 무겁고 긴데다가 장탄수도 부족하다. 스파이크식 총검은 핸드투핸드 전투에서는 어느 정도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미 베트남 전쟁에서 보듯이 수류탄 및 자동화기로 무장한 현대전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여러가지로 이 총은 미군이 베트남전쟁 초기에 사용하던 M14 소총[6]과 컨셉이 비슷하며, 결국 비슷하게 실패하게 되었다.

중국은 63식의 실패를 교훈삼아 자국산 총기개발에 더욱 열을 올려 81식 자동소총을 개발한다. 또한 63식을 개발하면서 만든 가스시스템은 차기소총인 81식에 계승되었다.


4. 기타[편집]


중월전쟁 이후 중국은 이후 63식에 제식소총의 자리를 내주었던 AK 패밀리로 돌아가서 1978년에 제식 총기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56식이 다시 일선부대에 채용되었으며, 1981년에는 56식과 같은 컨셉의 81식 자동소총이 개발되어 1990년대 말까지 제식소총의 자리를 차지한다.

1980년 후반에는 반자동 화기로 개조한 것이 호주로 수출해서 민수용으로 팔린 적이 있는데, 충분한 지식이 있으면 다시 자동화기로 개조 가능할 정도라서 문제가 되었다. 몇정이나 자동화기로 개조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호주에서 흘러온 물건 아니면 중국이 팔아넘긴 물건이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의 무장 세력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자동사격이 가능하게 개조된 것으로 보이는 63식 소총의 사격 영상. 얼핏 보면 SKS와 비슷해 보이지만 가스관 끝부분이 SKS와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상을 올린 사람은 당시만 해도 SKS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서야 63식 소총이라는걸 알았다고 한다.


5. 대중매체[편집]





6. 둘러보기[편집]


냉전기의 중국 인민해방군 보병장비
파일:중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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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기의 베트남 인민군(월맹군) 보병장비
파일:베트남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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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6.25 전쟁에서 중공군은 공중지원과 포병지원이 부실했기 때문에 보병은 보병 자신이 지원해야했다.[2] 여기에 미군-소련군식의 군개념을 지향했던 국방장관 펑더화이가 마오와의 충돌로 실각하면서 보병중심을 못박은 마오쩌둥 군사사상에 대한 변경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시대에 뒤진 교리가 맹종되었다.[3] 다만 사용 탄인 7.62×39mm의 특성상 무거운 탄자로 인해 400m부터는 탄도가 잘 유지되지 않아 명중률과 위력이 급감한다.[4] 이 시기에 홍위병들이 파벌싸움한다는 이유로 군수공장의 부품과 설비들을 탈취하는 짓을 벌였고 이것때문에 품질이 떨어지고 생산수도 적어지는 등 차질이 생겼다.[5] 1962년 중국이 대승을 거둔 중인전쟁 당시 중국군은 모두 AK의 카피인 56식을 사용했다. 반면 인도군은 한참 뒤쳐진 리-엔필드 사용.[6] 이것도 M1 개런드M1918 브라우닝의 장점을 모두 갖고 싶다는 컨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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