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6년 중국 증시 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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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주요 경제/금융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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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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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 경제 | 제2차 세계 대전
대침체가 정확히 언제 끝났는지는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20세기 이전
(연준 이전)
네덜란드 튤립 투기 파동(1636) · 미시시피 거품(1718) · 남해회사 거품 사태(1720) · 1792년 공황(1792)· 1819년 공황(1819) · 1837년 공황(1837) · 1857년 공황(1857) · 검은 금요일(1869) · 당백전(1866) · 장기불황(1873-1896) · 1907년 은행 패닉(1907)
20세기
(연준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초인플레이션(1919) · 1929년 월가 대폭락(1929) · 대공황(1929-1939) · 쇼와불황(1930) · 석유 파동(1973-1979) · 검은 월요일(1987) · 일본 거품경제 붕괴(1985-) · 닷컴 버블(1995-2001) · 1997년 외환 위기(1997-2001)
2000년대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2002)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 · 대침체(2008-) · 짐바브웨 초인플레이션(2008-) · 그리스 경제위기(2008-)
2010년대
베네수엘라 초인플레이션과 경제위기(2014) · 2014 브라질 경제위기(2014-2017) · 2015-2016년 중국 증시 폭락(2015-) · 브렉시트 증시 폭락(2016) · 튀르키예 리라화 폭락(2018-) · 아르헨티나 통화 위기(2018-) · 레바논 경제 위기(2019-)
2020년대
대봉쇄(2020-) · 2020년 주가 대폭락(2020) · 2021년 헝다그룹 파산 위기(2021) · 2022년 러시아 경제위기(2022) · 2022년 스리랑카 경제위기(2022) · 코로나 버블(2022) · 2022년 전 세계 물가 폭등(2022) · 레고랜드 사태(2022) · 흥국생명 채권사태(2022) ·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2023) · 2023년 은행 위기(2023)





1. 개요
2. 진행
2.1. 2015년 6월 주식 폭락
2.2. 2015년 8월 11일 위안화 평가절하
2.3. 2015년 8월 12일 톈진 항구 폭발 사고
2.4. 2015년 8월 25일 인민은행 경기부양책 발표
2.5. 2015년 9월의 주가 안정
2.6. 2016년 1월의 주식시장 재붕괴
2.7. 2월 동향
2.8. 3월 동향
2.9. 4월 이후
3. 여파
3.1. 버블붕괴로의 발전 가능성
3.2. 신흥국의 타격
3.3. 글로벌 경제위기로의 발전 가능성
3.4. 중국 공산당의 리더십 손상
4. 원인
4.1. 중국 정부의 강력한 주식 부양책
4.2.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
4.3. 중국 정부의 경제통계 신뢰성 저하
4.4. 중국 정부의 과도한 개발
5. 기타


1. 개요[편집]



파일:w508bc2.png
<2015년 9월 20일 기준 1년 주가변동 그래프>

파일:QyFGA0S.png
<3년짜리 그래프로 보면 더 극적이다.>

2015년 6월 15일, 그동안 폭등을 거듭하고 있던 중국의 상해종합지수가 돌연 폭락하기 시작해 8월 말까지 주가지수가 42.6% 떨어진 사건. 6월 12일 종가 기준 5,166.35를 찍었던 상해종합지수는 2015년 8월 24일 종가로 3,209.91을 기록하였으며 8월 25일에는 3천 포인트의 벽을 뚫고 2964.97을 기록했다. 8월 24일 하루만에 증발한 자금이 한화로 733조라고 한다.

위기 초입에는 그리스 경제위기에 밀려 언론의 관심에서 살짝 비껴나가 있었으나, 한국 입장에서는 그리스 위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실제로 동시기 코스피 지수 또한 2,052포인트에서 1,856포인트로 떨어졌으며, 2008년 서브프라임 경제위기에 맞먹는 사태가 아닌가 하는 전망도 나왔었다. 다행히 우려하던 대규모 경제위기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9월부터 주가가 안정화되었으나 2016년 1월부터 다시 주식시장이 폭락을 기록했다.

2. 진행[편집]



2.1. 2015년 6월 주식 폭락[편집]


2015년 5월 5일 4.06% 폭락, 5월 28일 6.50% 폭락 등 위기의 전조는 5월에 이미 비쳐지고 있었으나, 6월 5일 5,000 포인트를 넘고 6월 11일 5,100포인트를 넘는 등 6월 초까지 상해종합지수는 상승 일변도였다. 그러나 6월 12일 5.166.35로 최고가를 기록하고 6월 15일 5,062.99로 2.0% 하락을 기록한 뒤, 8월 25일까지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주가지수가 2,201.38 포인트로 42.6% 하락했다.

6월 15일부터 8월 25일까지 51 거래일 동안 하락을 기록한 거래일은 29일, 상승을 기록한 거래일은 22일이며, 최저 하락율을 기록한 날은 8월 24일의 8.49%, 두 번째로 낮은 하락율은 7월 27일의 8.48%이다. 반면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날은 7월 9일의 5.76%. 날짜에서도 보다시피 중국 정부에서 내놓고 있는 처방들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8월 10일 4.92% 상승했으나 8월 11일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하고도 일주일간 횡보하다가 8월 18일 6.15% 하락을 찍으면서 또다시 폭락했다.

이미 2015년 한 해 상승분은 다 토해낸 상황이며, 8월 말 주가지수는 2014년 12월 15일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2.2. 2015년 8월 11일 위안화 평가절하[편집]


주식폭락 와중에 인민은행이 8월 11일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조치이기는 하나 이 때문에 직접 피해를 보게 되는 한국, 일본의 주가지수가 하락하게 되었으며[1],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반등하지 못했다.


2.3. 2015년 8월 12일 톈진 항구 폭발 사고[편집]


공교롭게도 위안화 평가절하가 일어난 다음날 톈진항에서 초대형 폭발사고가 났다.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피해까지 대륙의 스케일로 나버린데다 사고 수습은 커녕 유독물질 확산같은 후폭풍이 더 크게 일어나는 중이라, 에너지개발 관련 주식이 폭락하면서 매도세를 주도했다.

다행히 대륙의 스케일상 톈진항 사고는 쓰촨성 대지진 같은 인명사고가 아닌한 국지적인 수준의 피해(...)에 불과하고 증권사들의 추가피해가 없었던 탓에 실제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오래가지 않았다고 한다.


2.4. 2015년 8월 25일 인민은행 경기부양책 발표[편집]


인민은행은 8월 25일 기준금리를 4.85%에서 4.6%로, 지급준비율을 18.5%에서 18%로 낮추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최근 경기둔화 우려와 함께 주가지수 폭락사태가 겹치자, 중앙은행이 꺼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드디어 꺼내든 셈. 발표 당일인 8월 25일 주가지수가 3천포인트를 하방돌파한 상황이라 주식시장에 이 대책이 먹힐지 주목된다. 일단 8월 26일 개장 후 주가지수는 0.53% 상승 출발을 하면서 순풍에 돛을 다는 듯했는데... 악발이 좀 약한 듯한 분위기였다.

결국 다 허사로 돌아가며 2900선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8월 27일 3천선을 회복한 후 28일에는 3천 2백선까지 상승했다. 다만 과거에도 3, 4일간 주가가 횡보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빠질 만큼 빠진 건지 더 빠지기 전에 잠시 횡보하는 것인지는 지켜봐야 되는 상태. 9월 9일 기준으로 8거래일 동안 3,100~3,200선을 유지하면서 주가가 횡보했다. 일단 급한 불은 꺼진 듯?

이 와중에 중국 당국은 공매도 조사를 한답시고 기업인과 증권사 대표까지 실종(을 가장한 체포)되는가 하면, 경제신문 기자가 정부의 주식시장 개입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냈다가 체포돼 방송에서 자신의 를 자백한다던가 주식 폭락과 톈진 폭발사고와 관련해 온라인 루머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기자 등 200명을 체포하는 등 언론탄압도 불사하는 비시장적인 수단까지 동원하는 추태를 보였다.

2.5. 2015년 9월의 주가 안정[편집]


8월 25일 경기부양책 발표 이후 8월 27일 종가 기준 3083.59를 기록하고 9월 20일까지 14 거래일동안 3000~3250 선에서 장기간 박스권을 형성했다. 이전과는 달리 장기간 주가가 안정돼 있는 것으로 보아 주가 하락 → (신용투자자들에 대한) 마진콜 → 투매 → 주가하락으로 이어지던 1차적인 폭락 사이클은 종료된 듯. 11월 중순까지 주가하락 없이 꾸준히 상승하며 3천 대 중반을 회복한 것으로 보아 2015년 주식폭락 사태는 진정되었다.

2015년 11월 27일 주가가 3635.55에서 3436.30으로 199.25포인트, 5.48%가 떨어지는 일이 있었으나 그 뒤 4거래일 동안 상승을 기록하였다. 보름을 조금 넘긴 12월 14일에는 이런 뉴스도 떠서 안정성이 증가되고 있었다. 12월 31일에는 3539.18로 장을 마무리했다.


2.6. 2016년 1월의 주식시장 재붕괴[편집]


그러나 2016년 1월 4일, 첫 거래일에 3296.26으로 242.92포인트, 6.86%가 하락하는 떡폭락 장으로 첫 거래를 열었다. 4일 13:30분, 사상 처음으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으며, 1차 서킷 브레이커가 풀린 후에 재차 7% 폭락하면서 당일 거래가 완전히 중지됐다. 서킷브레이커 등 거래정지 제도가 2016년부터 적용됐는데 도입된 첫날에 화끈하게 발동된 셈. 폭락 원인으로는 사우디 - 이란 단교로 인한 중동발 불안 확산과 중국 제조업 지표의 부진이 거론되었다. 또한 1월 8일을 기점으로 지난 7월 국유기업과 상장사의 최대주주와 5%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상장사 관계자들이 6개월 동안 주식을 팔지 못하게 금지했던 조치가 풀리는데, 해당 물량들이 시장에 쏟아진다면 주가하락 추세는 당분간 더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1월 5일은 8.55 포인트 하락, 6일은 74.13포인트 상승을 기록하며 4일의 주가하락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1월 7일, 개장 후 13분만에 5.38%가 하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으며, 거래재개 후 또 7% 이하로 떨어져[2] 개장 후 30분만에 시원하게 끝났다. 작년 5~8월에 이어 또다시 주식 시장 붕괴가 시작되는 듯한 모습. 거래정지 당시 주가지수는 3115.89로 작년 9월~12월 간의 상승분을 또다시 다 까먹어버렸다.

2016년부터 시행했던 서킷브레이커가 4일 동안 4차례 발동되자 시행을 중지시켜버렸다. 이번 주가하락 사태 전체적으로 당국의 대처가 아마추어 수준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듯.

1월 8일, 61.41포인트, 1.97% 상승하였다.

1월 11일, 169.71포인트, 5.33포인트 하락을 기록하며 또다시 추락했다.

1월 12일에는 6.16포인트 0.2% 상승하며 지수를 일단 유지했으나 장중 2979포인트까지 떨어지며 2015년 8월의 최저점에 서서히 접근해가고 있었다.

1월 13일, 결국 2949.6으로 장을 마감하였다. 73.26포인트, 2.42%가 빠지면서 심리적 저지선인 3000선이 무너져버렸다. 52주 저가인 2015년 8월 26일의 2927.29에 매우 근접한 상황.

1월 14일에는 장중 2900선에 근접했다가 오후장에 반등, 3007.65로 1.97% 상승했다.

그러나 1월 15일, 장중 내내 하락하면서 106.68포인트, 3.55%가 빠지며 겨우 2900선에 턱걸이한 2900.97로 2015년 8월의 최저선을 하방돌파했다. 2014년 12월 4일의 2899.46과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뒤처진 상태이며, 주식폭등이 일어나기 전 주가가 1900~2000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었던 것을 고려해본다면 앞으로도 주가가 밀릴 가능성은 꽤 높다고 볼 수 있을 듯.

1월 18일, 오전 거래에서는 2900선이 당연히 붕괴되었고, 두 차례의 반짝 상승으로 널뛰기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가, 오후 거래에 들어 보이지 않는 손이 상승세를 이끌면서 2913.84로 상승마감했다. 이와는 별개로 오전에 나온 뉴스를 보면 정말로 황하 정모가(아니면 황해 정모라도) 이뤄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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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장 막판에 6.42% 떡폭락하였다. 이로써 52주 신저가를 경신하게 되었다. 이제 2015년 세웠던 전저점(2850포인트)을 가볍게 아래로 뚫고 내려갔다. 그리고 고점 기준으로 '이제야' 50% 하락했다. 통상 거품경제가 붕괴할 때는 주가지수가 80% 이상 붕괴[3]되는 걸 감안하면 그때까지 아직 중국증시는 나름 잘 버텼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버블붕괴 80% 룰을 적용할 경우 중국 증시는 1000포인트까지는 내려갈 수 있다.

1월 27일에는 장초반 살짝 상승한 것 외에는 2670선을 멤돌다가 장마감 직전 당국이 또 개입했는지 14.23포인트, 0.52% 하락한 2735.56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그동안 대폭락 후에는 1~2일 정도 소폭상승하는 흐름이었는데, 이제는 당국의 개입조차 지수하락을 막지 못하는 모양. 그리고 다음날 2,655.66으로 전일대비 2.92%나 하락했다.

최악의 경우 1929년의 다우지수 폭락처럼 90%가 무너지면서 500포인트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었다. 이 경우 진정한 대공황. 물론 이정도까지 가지는 않았다.


2.7. 2월 동향[편집]


2월이 되자, 하루 간격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더니 지수가 조금씩 안정적으로 상승세를 보였으며, 춘절 연휴로 인해 2월 8일부터 2월 12일까지 휴장하였다. 춘절 연휴동안 다른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지수가 폭락하면서 불안한 심리가 있었지만, 2월 15일에 춘절 연휴가 끝난후 다시 열린 시장에서는 2746.20으로 -0.6% 하락으로 마감해 폭락히 잠잠해진걸로 보였다. 2월 22일 현재 종가 2927.18을 찍었고, 10거래일 평균 2700을 넘겨 안정권에 다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다...만, 2월 25일 6.41% 폭락하는등 아직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2.8. 3월 동향[편집]


3월에도 여전히 2700~2800선에서 주가가 횡보했다. 3월 1일 2733.17을 시작으로 5거래일 연속 상승해 3월 8일 2901.39를 찍었지만 곧바로 2800선으로 뒤쳐져 3월 14일 종가 기준 2859.50을 기록했다. 1월의 붕괴 이후 2015년 9~12월처럼 대세안정기에 들어간 듯한 모습. 하지만 언제 또다시 2016년 1월의 주가폭락이 재연될 지 모르므로 안심은 금물이었다.


2.9. 4월 이후[편집]


3월 이후 5월 초순까지 2800~3000대 박스권 장세를 유지했다.


3. 여파[편집]



3.1. 버블붕괴로의 발전 가능성[편집]


부동산 침체, 태양광 버블 붕괴[4] 등 실물 경제 분위기도 좋지만은 않은 분위기인데 주식시장까지 무너져버려서, 중국도 일본식 버블붕괴 루트를 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파다했다. # 이런 중국발 경제침체가 서비스 산업 구조개혁으로 이전해가는 과정 중에 하나로 대공황과 같은 경제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결국 어느 쪽이 맞았는지는 사태가 지나가봐야 알 일. 2016년 1월 기준으로 단기적인 경제불황은 없었지만 경제침체 가능성은 도사리고 있었다.

2016년 5월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금융위기는 가능성이 아닌 시기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 지난 10년간 GDP 대비 총부채비율이 2008년 155%에서 260%로 폭증했으며, 중국 은행의 자산이 전세계 GDP의 40%에 이른다고.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GDP 1위안을 올리려면 1위안을 부채로 조달하면 됐지만 지금은 4위안이나 필요하다고 한다. 중국이 새로 목표로 삼은 6%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엄청난 여신 제공이 필요하고, 이는 곧 금융의 부실로 연결되는 상황인 셈. 증시폭락 정도가 아닌 본격적 금융위기가 닥친다면 그 후폭풍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렇듯 중국 경제가 극심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특별인출권이 되었던 위안화 위상도 많이 흔들렸다. 관련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8559364



반대 의견으로 프랑스 국적의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중국 경제 경착륙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으며 한국 기획재정부유일호 장관도 중국 경착륙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높은 부채는 대부분 민간기업에서 발생한 것이며, 중국은 금융 경제를 정부 통제 하에 두기 때문에 미국발 금융위기 같은 대형 악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중국 위기 반대론의 주요 근거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추동력을 잃고 일본식 경제 불황, 즉 저성장 시대에 빠르게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다. 조지 소로스 등은 중국 경제를 비관적이게 보고있고 워렌 버핏 등은 낙관적이게 보고있다. #

2016년 상반기 중국 GDP 성장률이 6.7%를 달성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5&aid=0002630270

IMF도 중국의 2016, 2017년 성장을 6%로 예상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3714176

3.2. 신흥국의 타격[편집]


중국의 수요에 의존했던 러시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원자재 수출국들이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3.3. 글로벌 경제위기로의 발전 가능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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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4일, 다우존스의 주가. 이 1,089포인트 폭락은 다우 존스 역사상 최대의 폭락치이다.

신흥국과 한국, 일본 등의 인접국에 이어 미국도 주식폭락 사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우지수가 8월 17일 종가 기준 17,545에서 8월 24일 15,871까지, 나스닥 지수 역시 5,059에서 4,526포인트까지 빠진 상황.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연준의 금리 정상화에도 차질이 생겼다고 한다. #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의 실물경제까지 무너진다면 그 여파는 중국이 투자했던 아프리카 등의 신흥국 시장과 원자재 수출국, 대중국 수출에 의존하는 몫이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는 한국이나 역시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큰 미국, 유럽, 일본 등에도 미칠 것은 거의 확실하다. 한국이나 미국 입장에서는 그저 중국의 실물경제는 멀쩡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3.4. 중국 공산당의 리더십 손상[편집]


이번 주식폭락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정부, 특히 그 최상부에 위치한 중국 공산당에 있다. 정책적으로 주식시장을 부양한답시고 관영언론을 이용해 일반 대중들의 주식시장 몰빵을 유도한 셈인데, 공산당 독재국가의 관영언론의 위치는 기타 민주국가의 공영방송과는 비교할 수 없다. 사실상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과 정책을 대변하는 위치이고, 때로는 사설 등으로 정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등 정권 상층부의 입 노릇도 겸하는 곳이 관영언론이다.

이런 정부의 적극적인 유도로 수 백만 이상의 대중들이 주식시장에 몰려들었다가 폭락으로 깡통 찬 것으로도 모자라 황하 정모, 양쯔강 정모중국판 주갤럼를 하게 생겼으니 그 원성이 어디를 향할 것인지는 불문가지. 아직까지 공산당을 향한 민심 이반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없지만 이번 사태로 중국 공산당의 리더십에 큰 손실이 간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번 사태 전까지 중국 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 거대한 경제 체제를 잘 이끌어오면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도 신뢰의 대상이었으나 위기의 와중에 내놓는 대책마다 실패를 거듭하고, 또 각종 경제통계 조작 논란까지 겹치면서 신뢰도를 상당부분 깎아먹었다. # 특히 통계조작이나 거품은 이전부터 랑셴핑 등 여러 경제학자들이 지적한 부분인데 한꺼번에 터지면서 다 드러나 버렸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거품 형성 때문에 붕괴가 좀 더 앞당겨진 측면은 있지만.

이번 사태 대처에서 중국 정부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아마추어적인 면을 여지없이 보이는 중이다. 대주주의 주식매각 금지, 서킷브레이커 제도의 도입 후 4일만의 취소, 경제신문 기자나 주식거래 업체 상무의 형사처벌 등 비시장적, 비경제적 조치를 잇달아 내놓으며 시장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데, 그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그 동안 거대한 국가를 상당히 잘 유지했었다는 중국정부의 평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고해보아야 할 듯하다.

2월 20일, 중국정부는 서킷브레이커 제도를 도입한 시아오 강 증권감독위원장을 경질했다.


4. 원인[편집]


간단히 말해서 2014년 1월 2천 포인트에서 1년 6개월만에 5천 포인트로 오를 정도로 과열된 중국 주식시장의 버블, 중국의 경제성장률 저하, 중국 정부의 각종 경제통계의 신뢰성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4.1. 중국 정부의 강력한 주식 부양책[편집]


중국 정부는 주식시장 성장을 위해 여러 정책을 써 왔는데, 그 중 하나가 관영언론을 통한 주식시장 개입 유도였다.# 이에 전문 투자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도 정부의 보증을 믿고 대거 주식시장에 몰려들었으며 이렇게 몰린 자금으로 1년 6개월에 상해주가지수는 2천 포인트에서 5천 포인트로 상승했다. 그러나 태양광 버블 등이 붕괴되며 일부 기업들이 무너지자 상승세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주식시장 붕괴의 단초가 된 것. #


4.2.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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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간 중국 경제성장률 그래프

2008년 서브프라임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6%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2010년 12%에 가까운 높은 성장률을 보인 중국 경제도 2012년 즈음부터 서서히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었다. 부동산/내수 경기가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지방정부의 부채 증가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2016년 전인대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는 2016년 목표 경제 성장률을 6.5%~7%대라고 발표하며 고속성장 시대의 종료를 선언했다.#


4.3. 중국 정부의 경제통계 신뢰성 저하[편집]


이 문단의 내용은 중국의 중진국 함정 문서에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문제는 현재 발표되고 있는 경제성장률 등의 수치를 믿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2015년 경제성장률 7% 달성에 매진하고 있고, 정부 발표상으로는 7% 성장을 이뤄낸 것으로 보이지만 그 수치 자체가 믿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통계의 신뢰성이 없다는건 공산당 수뇌부들도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바인데. 리커창은 랴오닝성 당서기 시절 각종 통계가 현실과 맞지 않다는걸 체감을 했고, 그래서 실물경제인 전력소비율과 화물철도 운송량 그리고 대출잔액으로 성장률을 추론한다고 했다.

2015년 4월 27일 중국은 1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분기 성장률로는 6년만에 최저치이나, 이 수치마저도 신뢰성을 의심받는 형편이었다. 시티은행은 전년 동기 대비 실질 GDP 성장률이 6% 미만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으나, 민간 조사업체는 4%에서 3%를 부르는 곳도 있었다.# 만일 3%라면 이미 성장동력 고갈됐다는 대한민국의 2.6%와 별 차이도 없는 상황...이 아니라 아직 1만달러도 안되는 중국 경제규모+거대한 빈곤층 규모 특성상 헬게이트와 동의어다.

이런 통계 주작질은 중국만 저지르는 일은 아니나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위치인데다 더 큰 문제는 통계조작의 스케일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방법론이나 인플레이션 추정법도 공개되지 않았고 계산법 중 많은 부분이 재현도 안된다고 한다.

4.4. 중국 정부의 과도한 개발[편집]


중국 정부가 지나치게 인프라 건설에 몰두한 나머지 현재 공실률이 20% 중반을 찍는다고 한다. 지금도 내륙으로 들어가면 여기저기서 텅텅 빈 아파트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유령도시들을 찾아볼 수 있다.

5. 기타[편집]


여담으로 한국에서도 2014년부터 중국 정부가 외국인(중국 기준)의 중국 주식 투자 허용 정책을 시작한 것과 맞물려 해당년도 말엽부터 중국 주식 투자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많은 한국인들이 텐센트, 알리바바 그룹[5], 바이두, 제이디닷컴같은 주식들을 샀는데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주가 폭락을 당하면서 일제히 손실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후 한국에서 이 상황은 2021년 말부터 미국 주식 투자 열풍이 불었다가 이후 반 년만에 전세계적인 자산 폭락장으로 인해 그 열풍이 완전히 꺼지는 것으로 재현되었다.

2015년 중국 주가 폭락 과정에서 한국의 프로바둑기사 부부인 최철한 - 윤지희 커플의 일화가 있다. 최철한 九단의 만류로 윤지희 三단이 중국 주식 사는 걸 단념했는데, 그 덕분에 다른 기사들과 달리 곤란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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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한국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이때부터. 2000포인트를 횡보하던 코스피 지수가 8월 11일 2000포인트가 무너졌으며 2주일만에 1850선 아래로 밀려버린다.[2] 단 한 번 일어나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 증시의 서킷브레이커는 2번 일어날 수 있다. 단, 두번째는 얄짤없이 그날 거래는 시마이.[3] 대한민국 IT버블 당시 코스닥지수가 2000년 2834에서 2003년 350포인트까지 87.6% 폭락했고, 일본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붕괴 당시 닛케이 225 지수는 38915포인트에서 7000포인트까지 82.0% 하락했으며, 미국IT버블 당시 나스닥지수도 5126포인트에서 1000포인트까지 82%가량 떨어졌다.[4] 한국의 웅진그룹이 망해버린 이유. 태양광 셀 생산사업에 올인했다가 중국이 끼면서 단가가 폭락해 그룹이 무너져버렸다. 이젠 중국조차 버티기 힘들어진 것. #[5] 특히 알리바바는 해당년도에 미국 증시 상장 이슈로 인해 주가가 역대급 고점을 기록하고 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