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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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08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파일: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주별 결과.svg


오바마 365인 (67.8%) ✔
(32.1%) 173인 매케인


2008년 11월 4일
2008 대선

2012년 11월 6일
2012 대선
}}} ||
선거 일시
11월 4일 5시 ~ 11월 5일 6시 (UTC)
투표율
58.23%
선거 결과
후보
[[공화당(미국)|

공화당
]]
대통령 존 매케인
부통령 세라 페일린

[[민주당(미국)|

민주당
]]
대통령 버락 오바마
부통령 조 바이든

선거인단


173명
365명
전국 득표


45.7%
59,934,814표
52.9%
69,456,897표

대통령 당선인
부통령 당선인

파일:오바마 바이든.jpg

민주당



}}} ||

1. 개요
2. 배경
3. 경선
4. 본선
4.1. 주요 이슈 및 진행 경과
4.2. 대선 여론조사
5. 결과
5.1. 접전지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제44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2008년 11월 4일 ~ 11월 5일까지 실시된 선거.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선거인단 과반수를 확보해 당선되었다.

2000년 선거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했던 민주당이 8년만에 정권을 되찾은 선거이자, 미국 230년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이 탄생한 선거.

2. 배경[편집]


비교적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었지만, 2기 임기(2005년 ~ 2009년)는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자신이 벌인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뒤이은 이라크 전쟁의 양대 수렁에 빠진 연방 정부의 재정 문제는 매우 악화되어 가고 있었고, 전사·상자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2005년 텍사스 만 일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부시 행정부의 재난대처능력에 대한 불신과 의문을 가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쐐기를 박은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년 9월 14일 세계 금융 위기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정점인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전에도 이미 미국 경제는 곳곳에서 위기신호를 내보내고 있었고, 2006년 미국 중간선거 때 여당인 공화당이 참패를 당한 이후 부시 행정부의 인기도 끝없이 떨어져만 가서, 2008년 초 시점에는 이미 민주당에서 누가 나와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외부적으로는 부시 행정부의 강성일변도 외교정책으로 인해 NATO의 동진같은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독일 등 기존 동맹국과 관계가 크게 소원해졌고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진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 행태에 대한 반감도 심해진 상태였다.

3. 경선[편집]



3.1. 민주당[편집]



파일:obama_hillary_clinton_2008_ap_img.jpg

CNN 주관 경선 토론회에 나선 버락 오바마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
민주당의 대선주자 0순위는 누가 뭐라해도 뉴욕 주 연방상원의원이자 전임 대통령 빌 클린턴의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힐러리는 영부인 시절부터 적극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여왔고, 높은 대중적 인지도에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상징성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힐러리 대세론은 2004년 존 케리의 패배 이후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맞서는 중량감 있는 여러 후보들이 있었다. 델라웨어 주의 6선 연방상원의원 조 바이든, 지난 대선당시 존 케리의 러닝메이트이기도 했던 노스 캐롤라이나의 전 연방상원의원 존 에드워즈, 뉴멕시코 주 주지사 빌 리처든슨, 오하이오 주 연방하원의원으로 민주당 내 대표적 좌파 정치인 데니스 쿠시니치, 그리고 이들에 비해 중량감은 낮았지만 2004년 대선 민주당 후보선출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 찬조연설로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 일리노이 주 초선 연방상원의원 버락 오바마가 있었다.

이후 본 경선단계에 돌입하면서 데니스 쿠시니치, 빌 리처든슨, 조 바이든 등이 사퇴했고 존 에드워즈는 경선 초기 저조한 득표율로 사퇴했다. 그리고 힐러리 진영도 내심 이 상황을 반겼는데, 강적들로 분류한 중진들이 죄 포기했고, 신예 오바마가 홀로 경쟁자로 남은 상황. 힐러리 진영에서는 사실상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이 유력해진 상황에서 오바마까지 사퇴하면 경선이 김 빠지니 오바마가 적당히 완주하길 바랬다. 하지만 오바마는 결코 초짜가 아니었다.

전국적인 풀뿌리 자원봉사당 조직과 소액 정치기부금 등에 기반하여 오바마의 인기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특히 역사상 첫 유색인종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상징성까지 더해지며 첫 여성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의 상징성을 상쇄했다. 여기에 민주당 내에서도 클린턴 부부의 준(準)연속적 집권에 회의를 가진 세력이 많았고, 경선에서 중도하차한 중진들 대다수가 오바마에 붙어버렸다. 여기에다 인기없는 전쟁이며 명분없는 전쟁이던 이라크 전쟁에 힐러리가 찬성했던 것이 역풍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이변은 1월부터 시작되었다. 오바마가 1월 3일에 실시된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37.6%의 득표율로 승리한 것이다. 백인 인구가 90%를 상회하는 중서부 농업주에서 승리함으로써 흑인들로 하여금 "이번에는 해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적지 않은 백인들이 흑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이 승리는 엄청난 성과였다. 12만 5천명의 2004년보다 훨씬 많은 23만 9천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것도 민주당의 승리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이 오바마의 참신한 이미지와 '변화', '통합'이라는 비전에 매료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힐러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며, 감성적인 행보로 지지층을 결집시킴으로써 접전 끝에 뉴햄프셔에서 승리했다. 따라서 관건은 1월 26일에 실시될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였다. 지금도 다수의 미국 흑인들은 남부에 거주하고 있다. 즉 1964년 대선을 시작으로 민주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흑인들이 어느 후보를 선호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우스 캐롤라이나야말로 진정한 경선의 풍향계라고 할 수 있다. 공화당의 경우에도 남부에 거주하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표심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승부처로 꼽힌다. (아들 부시가 매케인 의원이 입양한 딸을 사생아로 몰아세움으로써 매케인 의원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압승한 지역이 다름 아닌 사우스 캐롤라이나다.)

그런데 클린턴 측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프라이머리 직전에 인종관계를 경선의 주요 현안으로 부각시킨 것. 그 결과 경선에서 투표한 흑인들 중 78%가 오바마를 지지했고, 제법 많은 백인들도 결집시킨 이 신참 상원의원이 더블 스코어를 상회하는 격차로 힐러리를 꺾었다. 지금도 흑인이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등록유권자의 60% 정도를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종갈등을 조장함으로써 흑인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은 힐러리가 두지 말아야 할 악수였다. 그리고 오바마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압승한 결과 민주당 경선의 판세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1]

이 때까지만 해도 아직 힐러리 대세론이 흔들린건 아니었다. 1월 15일 미시간, 1월 29일 플로리라라는 대형주 2개의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가 승리, 전체적으로는 힐러리가 리드였다. (이후에 실시된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같은 주들의 경선 결과가 보여주듯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바마는 사실상 승기를 굳힌 2008년 5월에도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러한 과정은 월스트리트 고액 강연, 이메일 스캔들로 대표되는 힐러리의 비호감 이미지가 2016년 대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가 힐러리를 정직도 조사에서 완전히 간발의 차이로 앞섰다.)

2월 5일 이른바 슈퍼 화요일에서도 양자 대결은 매우 치열했다. 이 날, 오바마가 847명, 힐러리가 834명의 선거인단을 각각 획득, 누적 오바마 1,036 vs 힐러리 1,056으로 선거인단 20명으로 그 격차가 매우 줄어들었다. 사실 이것도 이 날 경선이 열린 주 중 최대 주인 캘리포니아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가 38명 차로 이긴 탓이지, 전체적으로 오바마가 승리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걸로 분위기는 완전히 오바마로 휩쓸렸다.
이후 벌어진 2월달의 모든 경선(9일 : 루이지애나, 네브래스카,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 워싱턴 주, 10일 : 메인, 12일 : 메릴랜드, 버지니아, 워싱턴 D.C. 19일 : 하와이, 위스콘신)을 오바마가 다 이겨버렸다. 2월 말 시점의 선거인단은 오바마가 1,323, 힐러리가 1,222명으로 오바마가 선거인단에서 역전해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3월 6개 주 경선 결과는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3월 4일 4개 주 중 오하이오, 로드 아일랜드에서 힐러리가, 텍사스와 버몬트에서는 오바마가 이겼고, 8일 와이오밍, 11일 미시시피 경선에서도 오바마가 승리했다. 선거인단 격차는 미세하게나마 늘어나 106명 차가 되었다. 3월 22일 펜실베이니아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가 12명 차로 이겨 선거인단 격차가 100명 아래로 줄어들었으나 남은 주가 몇 개 없었다.[2]

5-6월의 경선에서 힐러리는 마지막 반전을 노려 인디애나(4명차), 웨스트 버지니아(12명차), 켄터키(23명차), 푸에르트 리코(21명차), 사우스 다코타(3명차)를 이겼으나, 이긴 곳에서 벌어들인 격차를 다 더해도 오바마와의 격차를 역전할 수 없었다. 오히려 오바마가 노스 캐롤라이나(19명차), 오리건(10명차), 몬태나(2명차)에서 이기면서 힐러리의 마지막 역전 희망은 사라져버렸다.

이로서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버락 오바마가 확정되었다.
파일:Obama_Biden_logo.svg
2008년 오바마-바이든 캠페인 로고



3.2. 공화당[편집]



파일:mccain2008.jpg

공화당 경선 토론회에 나선 존 매케인 후보 등 공화당 경선 후보들
이라크 전쟁에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 등으로 부시 행정부의 인기가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는 있었지만, 경선 시작 시점인 2008년 초까지는 아직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진 않았기에 아직 공화당에서도 후보 선출만 잘 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보여졌다.

이 자리에 아칸소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애리조나 주 연방상원의원 존 매케인, 매사추세츠 주지사 밋 롬니, 텍사스 주 연방 하원의원 론 폴,전 뉴욕시장 루디 줄리아니[3] 등이 경합에 나섰고 첫 아이오와 코커스를 허커비가 가져갔으나, 2월 초 와이오밍, 뉴햄프셔, 미시간에서는 밋 롬니가 역전했고, 전 지역에서 고루 득표한 매케인이 무섭게 따라붙었다. 매케인은 뉴햄프셔에서의 1위를 시작으로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라는 두 대형주에서 1위를 차지하며 슈퍼 화요일을 앞두고 1위로 치고 올라갔다.

대망의 슈퍼 화요일, 매케인은 홈 스테이트인 애리조나를 시작으로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델라웨어, 일리노이, 미주리, 뉴욕, 오클라호마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세론을 굳혔다. 캘리포니아, 뉴욕이라는 초대형 주 2개에 일리노이, 애리조나, 미주리같은 중대형 주들에서의 승리가 결정적이었다. 롬니는 미네소타, 유타, 매사추세츠라는 중대형 주 3개에서 승리했지만 나머지 승리 주들이 알래스카, 콜로라도, 몬태나, 노스 다코다같은 소형 주들이어서 격차는 크게 벌어졌고 역전이 불가능하다 보아 슈퍼 화요일 직후 경선을 포기했다. 허커비는 조지아, 앨라배마, 아칸소,테네시, 웨스트 버지니아같은 남부 주에서 승리했다.

롬니의 사퇴 이후 경선은 매케인의 독주였다. 이후 경선에서 캔자스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매케인이 승리하면서 공화당은 존 매케인을 2008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다. 매케인으로서는 2000년 경선에서 부시에게 당했던 패배를 잘 극복한 셈.
파일:McCain_Palin_logo.svg
2008년 매케인-페일린 캠페인 로고

4. 본선[편집]




당시 선거 토론

4.1. 주요 이슈 및 진행 경과[편집]



파일:1101081110_400.jpg

버락 오바마 VS 존 매케인
경선 과정이 마무리되고 본선으로 달려가던 중 민주당에는 역대급 호재가, 공화당에는 역대급 악재가 터지고 만다. 상술한 2008년 9월 세계 금융 위기였다. 안 그래도 2008년 당시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집권 공화당의 인기도 사이좋게 떨어지던 중에 터진 악재였다.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화룡점정이었고 미국민들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을 원망하고 있었다.

오바마와 민주당 측은 이 상황에서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 경선기간 구축한 전국적인 지지조직을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현재에 대한 책임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명백히 제시하는 포지티브 전략을 내세웠다. 아울러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조 바이든을 지목한다. 젊은 패기의 흑인 남성 후보 오바마가 가지는 약점을, 워싱턴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며 외교안보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백인 남성 조 바이든으로 만회하는 안정적인 방법이었다. 더구나 바이든은 아일랜드계 가톨릭이기 때문에 전국 선거에서 투표하는 미국인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가톨릭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과 블루칼라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클린턴 부부의 지지층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바마가 바이든을 발탁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문제는 공화당이었다. 매케인 캠프는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밀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다고 구경만 하다가 백악관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원래 매케인은 젊은 신예 오바마의 등장으로 대거 뺏겼던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해 민주당 출신 무소속 상원의원 조 리버만[4]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문제는 조 리버만은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앨 고어 당시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나갔던 적이 있는 후보인 데다가 원래 민주당 출신이었으니 낙태에 대해 찬성하는 발언도 한 적 있었다는 것. 당연히 이 계획이 새어나가자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발 여론이 폭증했고, 결국 이 결정을 무르고 매케인 캠프에서는 보수적인 후보를 새로 찾기 시작했다.

존 매케인은 집안 대대로 군인 가문에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고, 워싱턴의 정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기에 연륜과 경험, 외교안보 부분에서는 절대적인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즉, 노련한 매케인에 대비되어 젊어야 하고 대중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공화당이 찾아낸 당시로선 최선의 후보가 알래스카 주지사로, 젊고 중앙정계나 매스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선함을 가졌으며, 흑인인 오바마에 비교되는 소수자의 상징인 여성으로서 흑인 오바마에 맞서 소수자를 상징하고 여성표를 대거 흡수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으며 이른바 사커맘으로서 보수 기독교 우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완벽해보였던 후보 세라 페일린이었다. 망했어요

사실 페일린의 진가가 드러나기 전에는, 의외의 러닝메이트 지명으로 단번에 매케인과 공화당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처음 기대했던 대로 여성 표심이 대거 움직이는 기미가 보였기에 이 선택은 매우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5] 그러나 매스컴의 주목이 높아진다는 것은 양날의 검. 당연히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언론과의 인터뷰가 잡히게 되면서 뉴페이스 세라 페일린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다. 그 진가는 세라 페일린 항목 참조.

그렇게 9-10월의 조정기간을 거치면서 페일린의 민낯이 제대로 드러났고 공화당 지지자들조차 멘붕하기에 이르렀다. 페일린 지명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오바마를 오차범위 턱 밑까지 추격한 매케인이었으나 페일린의 병크,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악화되는 경제 상황으로 추격의 모멘텀을 잃어버렸다. 더군다나 매케인의 나이도 걸림돌이었는데, 고령의 매케인이 임기 중 혹여라도 사망하면 그 승계를 페일린이 하게 되는 것이다. 공화당 성향의 중도층들은 이 악몽같은 시나리오에 치를 떨며 투표를 포기하거나 혹은 콜린 파월처럼 아예 오바마를 찍었다.

4.2. 대선 여론조사[편집]


파일:2212.png

5. 결과[편집]


주별 결과
정당
승리한 주
선거인단
민주당
캘리포니아(55), 콜로라도(9), 코네티컷(7), 델라웨어(3), DC(3), 하와이(4)[6], 인디애나(11), 네바다(5), 네브래스카(1)[7], 뉴햄프셔(4), 뉴저지(15), 뉴멕시코(5), 뉴욕(31), 노스캐롤라이나(15), 버몬트(3), 버지니아(13), 워싱턴(11), 미네소타(10), 로드아일랜드(4), 오리건(7), 일리노이(21), 메릴랜드(10), 매사추세츠(12) , 위스콘신(10), 미시간(17), 아이오와(7), 플로리다(27), 메인 (4)[8], 오하이오(20), 펜실베이니아(21)
365
공화당
알래스카(3), 애리조나(10), 아칸소(6), 앨라배마(9), 조지아(15), 아이다호(4), 캔자스(6), 켄터키(8), 루이지애나(9), 미시시피(6), 미주리(11), 몬태나(3), 네브래스카(4)[9], 노스다코타(3), 오클라호마(7)[10], 사우스캐롤라이나(8), 사우스다코타(3), 테네시(11), 텍사스(34), 유타(5), 웨스트버지니아(5), 와이오밍(3)
173

1996년[11] 이후 12년만의 민주당 대승[12]이다.

전통적인 대형 스윙 스테이트인 오하이오(51.49% : 46.92%), 플로리다(51.03% : 48.22%)에서 모두 오바마가 이겼다. 또한 서부의 소형 스윙 스테이트 3주-네바다(55.15% : 42.65%), 콜로라도(53.66% : 44.71%), 뉴멕시코(56.91% : 41.78%)를 압도적 격차로 탈탈 털어버렸고,[13] 이걸로 부족해 전통적인 레드 스테이트 버지니아[14](52.63% : 46.33%), 노스 캐롤라이나(49.70% : 49.38%)[15], 인디애나(49.85% : 48.82%)[16] 3개를 오바마가 이겨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미주리(49.23% : 49.36%)[17]나 몬태나(47.11% : 49.49%)[18]는 공화당이 겨우 수성한 경우.

특히 인디애나와 미주리, 노스 캐롤라이나의 경우 격차가 매우 좁은(인디애나 28,391표 차 오바마 승, 미주리 3,903표 차 매케인 승, 노스 캐롤라이나 14,177표 차 오바마 승) 대표적인 격전지였는데 아이고 의미없다. 인디애나와 노스 캐롤라이나를 뒤집었다 한들 스윙 스테이트 3개를 다 털리고[19] 버지니아를 뺏겼으니 답이 없다.[20] 이는 공화당에 있어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온갖 악재란 악재가 다 겹친 결과였다.[21]

무엇보다, 오바마-바이든 티켓은 투표마감시각과 동시에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아이오와, 미네소타, 뉴햄프셔, 메인에서 방송사의 승리선언을 따냈고[22], 동부시각 밤 10시가 되기도 전에 오하이오[23]뉴멕시코에서도 승리선언을 따내는 기염을 토해, 서부 4의 투표마감(23시) 직전 기준 22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상태였다. 결국 서부 4대장의 투표마감이 선언됨과 동시에 오바마-바이든 티켓의 승리가 확정[24], 미국 동부시간 기준 선거 당일에 승자가 결정되는 아주 드문 미 대선으로도 기억되었다.[25]

5.1. 접전지[편집]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접전지
주 이름
선거인단수
승자 득표율
패자 득표율
득표율 차이
지난 승리자
이번 승리자
결과
미주리
11명
49.43%
49.29%
0.14%
조지 W. 부시&
딕 체니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공화당 수성
노스 캐롤라이나
15명
49.70%
49.38%
0.32%
조지 W. 부시&
딕 체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탈환
인디애나
11명
49.95%
48.91%
1.04%
조지 W. 부시&
딕 체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탈환
네브래스카 2구
1명
49.97%
48.75%
1.22%
조지 W. 부시&
딕 체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탈환
몬태나
3명
49.49%
47.11%
2.38%
조지 W. 부시&
딕 체니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공화당 수성
플로리다
27명
51.03%
48.22%
2.81%
조지 W. 부시&
딕 체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탈환
오하이오
20명
51.49%
46.92%
4.57%
조지 W. 부시&
딕 체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탈환
조지아
15명
52.10%
46.90%
5.20%
조지 W. 부시&
딕 체니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공화당 수성
버지니아
13명
52.63%
46.33%
6.30%
조지 W. 부시&
딕 체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탈환
사우스 다코타
3명
53.16%
44.75%
8.41%
조지 W. 부시&
딕 체니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공화당 수성
애리조나
10명
53.39%
44.91%
8.48%
조지 W. 부시&
딕 체니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공화당 수성
노스 다코타
3명
53.15%
44.50%
8.65%
조지 W. 부시&
딕 체니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공화당 수성
콜로라도
9명
53.66%
44.71%
8.95%
조지 W. 부시&
딕 체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탈환
사우스 캐롤라이나
8명
53.87%
44.90%
8.97%
조지 W. 부시&
딕 체니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공화당 수성
아이오와
7명
53.93%
44.39%
9.54%
조지 W. 부시&
딕 체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탈환
뉴햄프셔
4명
54.38%
44.73%
9.65%
존 케리&
존 에드워즈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민주당 수성
네브래스카 1구
1명
54.10%
44.33%
9.77%
조지 W. 부시&
딕 체니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공화당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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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편 이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이후 2020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의 부통령 조 바이든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주며 바이든의 체면을 지켜주었고, 그 덕에 '슈퍼 화요일' 이전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한 민주당 주류 출신 후보로 올라서게 되어 사실상의 주류 단일후보가 된다.[2] 오바마의 자서전 <약속의 땅>에 따르면, 3월 15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의 승리를 확인하고는 민주당 경선의 승리를 확신하고, 바로 본선을 준비했다고 한다.[3] 2007년 후반까지 여론조사 1위를 유지했지만 08년 1월 30일 경선 후보 사퇴 후 매케인 지지[4] 당시 코네티컷 연방상원의원. 2006년 상원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패했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승리했었다. 이후 민주당에 복당하지 않고 무소속 신분으로 공화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존 매케인을 지지했다. 존 매케인의 대선 패배 직후, 결국 무소속 신분을 유지한 채 민주당의 원내교섭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2012년 선거에 불출마하며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5] 실제로 잠시 전국 지지율에서 매케인이 오바마를 역전하기도 했다.[6] DC를 제외한 주 가운데 오바마 최고 득표율[7] 2구 승리[8] 메인 1,2구 모두 승리[9] 1, 3구 승리[10] 매케인 최다 득표율[11] 빌 클린턴이 재선되었던 선거.[12] 선거인단 기준[13] 이 세 주는 2008년을 기점으로 블루스테이트로 바뀌었다. 히스패닉을 적극적으로 껴안은 부시와는 달리, 부시 이후 공화당에서 히스패닉 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애시당초 뉴멕시코는 히스패닉 인구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주이다. 네바다도 북서부에 위치한 와쇼 카운티의 인구가 테크 기업 유치와 인구 증가로 인해 민주당이 격차를 벌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콜로라도 역시 1980년대에 신설된 6번 지역구가 2018년에 처음으로 민주당 하원의원을 선출했듯 블루화되고 있다. 덴버 교외지역을 포괄하는 이 지역구는 이민자 인구가 많기 때문에 민주당이 희망을 걸었지만 이민자들과 유대 관계를 구축한 공화당 현역이 번번이 민주당의 공세를 막아냈다. 하지만 2018년에는 트럼프의 집권으로 인해 불기 시작한 '블루 웨이브'에 무너지고 말았다. 또한 현직 콜로라도 주지사는 주 역사상 최초의 공개적 동성애자이다.[14] 현재는 도시성향이 강해져 대선에서 민주당이 4연승하며 블루 스테이트로 평가되는 곳이나, 이 때 기준으로는 1964년 이후 최초의 승리였다.[15] 이 지역 역시 버지니아와 비슷하게 76년 이후 민주당 최초 승리였다. 현재는 블루스테이트인 버지니아와는 달리 스윙스테이트인 점이 차이점.[16] 광산노조와 러스트벨트가 민주당에게 몰표를 던지면서 민주당이 64년 이후 최초로 승리한 것이다. 허나 이 선거 이후 다시 레드스테이트로 돌아간다.[17] 불과 3,904표 차이로 이겼다.[18] 12년 만에 5% 미만의 격차가 나왔다.[19] 오하이오, 플로리다, 콜로라도. 이후 오하이오와 플로리다는 공화당 우세 지역이 되었고 콜로라도는 민주당 우세 지역이 되었다.[20] 버지니아의 경우 팀 케인과 조지 앨런이 격돌한 2012년 선거가 주목을 받았는데 케인이 승리함으로써 민주당이 버지니아의 연방상원 2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나마 2014년까지는 박빙의 접전 끝에 민주당이 승리하는 구도가 유지되었는데, 트럼프가 취임한 후부터는 민주당이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하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주의회 다수당을 탈환함으로써 25년 만에 처음으로 주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는 기염을 토했다.[21] 실제로 그 격전지 중 인디애나와 노스 캐롤라이나를 공화당이 되찾은 게 2012년 선거였다. 결과는 그냥 선거인단 격차가 조금 줄었을 뿐인 민주당 승리.(...)[22] 이 때문에 오바마의 선거인단 수가 시간대 별로 큰 폭으로 늘어났는데, 20시 3명->102명(매케인 21->39명), 21시 102명->174명(매케인 69->81명), 23시 220명->297명(매케인 141->145명)으로 당선 확정이 되었다.[23] 실제로는 EST 21:25 기준 오바마-바이든 티켓의 오하이오 승리가 선언된 순간 이미 당선자는 결정된 것이었다. 서부 3주와 하와이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고, 오하이오 승리로 확보된 선거인단 195명에 이들 4주의 표(77명)를 합치는 순간 매직넘버 270을 넘겼기 때문. 반면 매케인은 이 시점에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텍사스, 사우스다코타, 네브래스카, 미시시피, 애리조나에서 조차 아직 승리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었다.[24] EST 23시 기준 이미 확보한 220명 + 55명 + 7명 + 11명 + 4명 = 297명. 거기에 직후 콜로라도와 플로리다에서 오바마의 승리가 확정되면서 선거 인단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한편 이 시점에서 매케인이 확보한 선거인단은 141명+4명 = 145명.[25]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도 선거날 자정을 넘긴 다음에야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가 선언되었으며, 이 2008년 대선은 실제로는 밤 9시 25분 경 오바마-바이든 티켓의 오하이오 승리가 선언된 시점에서 게임 오버였다. 한편 2012년 대선은 11시 이전까지는 롬니가 근소하게 앞섰으나 태평양 연안 주들에서 오바마가 승리하면서 뒤집어졌고, 이후에도 아이오와와 위스콘신 등에서 오바마가 승리를 확정지으며 점점 270에 가까워지다가 밤 11시 30분 경 오하이오와 오리건에서 오바마가 승리하면서 재선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