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덤프버전 :

역대 대학수학능력시험
1999 수능

2000 수능
(1999.11.17.)

2001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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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시험의 상세
3. 둘러보기 틀


1. 개요[편집]


1999년 11월 17일에 실시되었다.[1] 총 지원인원은 896,122명이었고, 응시인원은 868,366명이었다. 역대 수능 최다인원이 응시했던 수능이다.[2] 수준은 1999학년도의 물수능 기조를 이어 쉽게 출제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만점자 역시 전해에 이어 1명 있었는데 대원외고에 다니던 박혜진씨[3]가 만점을 받았다. 1999학년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81년 3월생~1982년 2월생이 응시했다.

EBS FM을 통한 듣기평가가 진행된 마지막 수능이었다. 그 다음 수능부터는 각 고사장에 배부되는 카세트 테이프로 대체.

2. 시험의 상세[편집]


시험은 다음과 같이 총 4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999학년도 수능과 같다.

교시
영역
계열 구분
문항
배점
시간(분)
1
언어 영역
공통
65
120
90
2
수리 · 탐구 영역(Ⅰ)
인문, 자연, 예체능
30
80
100
3
수리 · 탐구 영역(Ⅱ)
사회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48
72
120
자연
32
48
과학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32
48
자연
48
72
4
외국어 영역
공통
55
80
80
합계
230
400
390


시험은 쉬웠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인문계 평균 점수는 400점 만점에 249.1점으로 1999학년도 평균 성적에 비해 10.3점 상승했고 자연계의 평균 점수는 263.8점으로 전해에 비해 13.1점 상승하였다. 상위 50%집단의 평균 성적도 인문계는 308.6점으로 전해에 비해 9.4점, 자연계는 328.3점으로 15.1점이 상승하였다.

과목별로는 언어영역(국어)이 상당히 어려워 만점자가 전국에서 10명(0.001%)밖에 되지 않았다[4]. 계열별로 115점 이상이 인문계에서 183(0.040%)명, 자연계에서 127명(0.042%)이었으며 예체능계는 6명이었는데 합치면 316명(0.036%)이었다. 110점 이상 인원도 전국에 6982명(0.804%)이었으며, 105점 이상 인원은 전국에 35,588명(4.098%)이었다. 이는 최상위권에게 언어영역이 매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전체 평균 점수는 120점 만점에 76.1점(100점 만점에 63.4점)으로, 1999수능의 84.7점(120점 만점)에 비해 8.6점 하락한 수치이다.7차 이후의 방식으로 계열 통합으로 계산시 원점수 120점 만점에 105점(100점 만점으로 환산시 87.5점,표준점수 최고점 144점)까지 1등급이 나왔을 것이다.

반대로 수리탐구1(수학)은 매우 쉬웠다. 자연계의 경우 75점 이상이 29662명(9.82%)로 매우 많았고 만점자 비율도 3.82%(자연계 만점자 11515명)로 거의 4%에 육박했다. 이과 수학에 한해선 2008 수능 수리 가형, 2015 수능 수학 B형에 준하는 물수능이었다. 인문계도 수학이 전해에 비해 쉬워져 74점까지 인원 누적 비율이 3.74% 정도였다.(인문계 만점자 4887명) 수리영역 만점자가 계열 통합으로 16402명 나왔다.7차 이후의 방식으로 계산시 인문계100점 만점에 90-91.25점(표준점수 최고점 150점), 자연계100점 만점에 97.5점(만점표점 134점)까지 1등급이 나왔을 것이다.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으로 환산 시 자연계는 54.6점으로 전해보다 8.7점 상승하였고 인문계는 평균 44.2점으로 전해에 비해 6.7점 상승하였다.

외국어 영역(영어) 역시 매우 쉬웠다. 계열 구분 없이 16675명(1.92%)의 만점자가 나왔다. 75점일 경우 인문계, 자연계 둘 다 10%를 넘어갔다. 80점 만점에 전체 평균 점수가 50.9점(100점 만점에 63.6점)으로 전해에 비해 2.2점(100점 만점에 2.7점) 상승하였다. 만점표점은 130점이었다.

수리탐구 2도 사탐과 과탐도 쉽게 출제되었으며 계열을 구분하지 않고 사회탐구는 7440명, 과학탐구는 10204명의 만점자가 나왔다.(총 17244명)

수리탐구1,2와 외국어가 빼도박도 못할 물이었으나... 언어가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에 만점자는 1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원점수 380점 이상인 수험생은 인문계 수험생 중 약 2900명 정도(0.63%), 자연계에서는 3600명 정도(1.18%)였고, 390점 이상은 인문계, 자연계 모두 200명 내외(인문계 0.05% 이내, 자연계 0.07% 이내)로 인문계는 1999학년도와 비슷하였으나, 자연계는 언어가 어려운 것 때문인지 전해보다 약간 줄어들었다. 그 이상의 점수권에서는 인문계, 자연계 모두 1999수능보다 도수가 적은 편이다.

2000학년도 수능의 영역별 1등급 커트라인은 다음과 같다.
언어 105/120(만점의 87.5%) (만점자 10명) (만점표점 144점)
수리 인문 72~73/80(만점의 90%~91.25%) (만점자 4887명)(표준점수 최고점 150점)
수리 자연 78/80(만점의 97.5%) (만점자 11515명) (만점표점 134점)
외국어 78.5/80(만점의 98.125%) (만점자 16675명)
(만점표점 130점)

3. 둘러보기 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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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이전
1994
1995
1996


▣ 1차 실험평가(1990년)
▣ 2, 3, 4차 실험평가(1991년)
▣ 5, 6, 7차 실험평가(1992년)

▣ 2회 시행
8. 20.(금), 11. 16.(화)

▣ 첫 수요일 수능
▣ 인문·자연·예체능 구분 도입

▣ 본고사 시행 마지막 해
1997
1998
1999
2000


▣ 수리 영역 주관식 도입
▣ 수능 만점 200점→400점
오나타 사건

▣ (수시 모집 첫 시행)
▣ 선택과목·표준점수 도입
▣ 첫 수능 만점자 배출

▣ 응시 인원 최다
2001
2002
2003
2004

▣ 제2외국어 영역 신설
▣ 전 과목 만점자 수 최다(66명)
▣ 듣기 방송 미디어 포맷이 EBS FM에서 카세트 테이프로 변경

▣ 성적표 등급 표기 첫 시행
▣ ‘수리 · 탐구 영역 ( I )’은 ‘수리 영역’으로 명칭 변경, ‘수리 · 탐구 영역 (II)’는 ‘사회탐구 영역’과 ‘과학탐구 영역’으로 분리
▣ (정시 라군 폐지)
▣ (특차 전형 폐지)
▣ (수시 제도 30% 확대)

▣ 9월 모의평가 도입(2002년 9월 3일)
▣ 소수점 배점 반올림 성적표 지급 소송 사태 발생

▣ 6월 모의평가 도입(2003년 6월 11일)
▣ 소수점 배점 전면 폐지, 정수 배점 전환
첫 복수 정답 인정

2005
2006
2007
2008

▣ 첫 예비평가 실시(2003년 12월 4일)
▣ 수리 가형 선택 과목 도입
▣ 탐구 선택 과목 도입
▣ 직업 탐구 도입
▣ 제2외국어/한문 영역 명칭 변경
▣ 스페인어Ⅰ 명칭 변경
▣ 아랍어Ⅰ · 한문 도입
▣ 인문 · 자연 · 예체능 구분 폐지
대규모 휴대전화 부정행위 사건 발생

▣ 부산 APEC 정상회의로 인한 수능 1주일 연기
▣ 시험 시 전자기기 압수 의무화, 수능 샤프 일괄 제공, 필적확인란 문구 도입

▣ 시험일 수요일 → 목요일 변경
'수능 등급제' 시행 및 논란
2008학년도 수능 물리Ⅱ 복수정답 사태 논란
▣ (내신등급제 도입)

2009
2010
2011
2012


▣ 수능 등급제 폐지
▣ 표준점수 • 백분위 제도 환원

▣ 눈으로 미리 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제지에 겉표지 도입
▣ 수능 연기 (신종플루)(정상 시행)
▣ (수시 1학기 모집 폐지)

▣ G20 정상회담으로 인해 수능 1주일 연기
▣ EBS 70% 연계 시행 (~2021)
▣ 듣기 방송 미디어 포맷이 카세트테이프에서 CD로 변경
▣ 필적확인란 문구 사전 유출 사고
▣ 중국산 수능 샤프 입찰 비리 논란
▣ (수시 공통 지원서 도입)

▣ '만점자 1%' 조정 정책 공표
▣ 채점 시 이미지 스캐너 도입
▣ 수리 영역 문제지 8면에서 12면으로 변경
▣ 탐구 선택과목 수를 4과목 → 3과목으로 축소, 과학탐구Ⅱ 과목에 대한 최대 선택 수 제한 폐지

2013
2014
2015
2016


▣ '만점자 1%' 조정 정책 2년 실시 후 폐지
▣ (수시 모집 지원 6회 제한)

▣ 두 번째 예비평가 실시
언수외국수영 명칭 변경
▣ 국어 · 수학 · 영어 A / B 형 체제 도입 및 언어 영역 듣기 폐지
▣ 탐구 선택과목 수 3과목 → 2과목으로 축소
▣ 기초 베트남어 도입
▣ 한문 [math(\rightarrow)] 한문 I 으로 명칭 변경
수능 출제오류 관련 소송전 최초 발생

▣ 영어 A / B 형 체제 1년 실시 후 폐지
NEAT로 영어시험 대체(무산)
2017
2018
2019
2020

▣ 시험일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변경
▣ 스마트 워치 등 전자 시계 착용 금지
▣ 수능 모의평가 실물 정답지 미배부
▣ 국어 A / B형 체제 폐지
▣ 수학 A / B형 체제 폐지 및 가 · 나형 체제 환원
▣ 수학 영역 세트 문항 폐지
▣ 기초 베트남어 [math(\rightarrow)] 베트남어Ⅰ으로 명칭 변경
▣ 한국사 절대평가 전환 및 필수 영역화

수능 연기(지진)
▣ 영어 절대평가 전환

▣ 국어 영역 정오표 지급
▣ 국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 사과

▣ 재수생 수능 성적표 사전 유출 파동
2021
2022
2023
2024

▣ 수능 연기 및 첫 12월 시행(코로나19)
▣ 자연계 기하·벡터 제외
▣ 수능 개편 1년 유예

[ 펼치기 · 접기 ]
▣ 2015 개정 체제로 수능 개편
▣ (명목상) 문·이과 통합 수능 체제
▣ 예비평가 폐지 및 예시문항으로 대체
▣ 국어 2중 1택제 도입(언어와 매체·화법과 작문)
▣ 수학 가/나형 폐지 및 3중 1택제 도입(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 EBS (70%→)50% 연계 및 영어 영역 직접연계 폐지
한국사 영역 2009개정교육과정 유지
▣ 한국사 영역 답안지 탐구에서 분리
▣ 사회탐구/과학탐구 계열구분 폐지 및 17택2로 전환
▣ 제2외국어/한문 영역 절대평가로 전환
생명과학 II 영역 소송으로 인한 사상 최초 정답발표 연기
▣ 평가원장 난이도 조절 실패와 출제오류 사태 사과 및 사퇴

▣ 양이 많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문서1, 문서2, 문서3, 문서4 참조.

한국사 영역 2015 개정 교육과정 적용
▣ (서울 상위권 10개 대학 정시·의약계 지역인재 40% 선발 도입)

윤석열 정부 수능 출제 방침 지시 관련 파문
▣ (수시 비교과 사실상 폐지)



2025
2026
2027
2028
▣ 일부 대학교 이공계 미적분·기하 필수 폐지
▣ 정시에 학교폭력 이력 반영 대학 증가
▣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 모든 대입 전형에 학교폭력 이력 반영 의무화
(시행 미정)
▣ 선택과목 폐지
▣ 탐구 영역 통합사회, 통합과학 공통 응시 체제로 전환
▣ (내신 5등급제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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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도 같은 월,일이다.[2] 1981년생이 대부분이었는데 1998~2001 수능을 응시한 세대들(1979~1982년생)은 정말 많이 태어난 세대라서 84~86만명대다. 특히 1981년생은 그중에서도 86만 7천명으로 가장 많이 태어났다. 그 뒤로 1984~199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저출산 세대가 되어서 응시자 수가 줄었다. 참고로 2021 수능 응시자수가 역대 최소인데 421,034명이다. 2021 수능인원의 2배가 넘는 인원이 본것이다.[3] 1981년 6월 13일생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 후 변호사인 부친 박종성씨(사이트)의 뒤를 이어 김앤장 소속 변호사로 근무중이다.[4] 고려대 00학번인 가수 성시경이 방송에서 본인이 수능을 볼때 1교시 언어영역에서 생소한 시 세개를 묶어 11문제가 나온 신유형에 당황하여 오답이 속출하는 바람에 이제 할만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수능도전을 멈췄다는 발언을 한 바가 있을 정도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