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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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세계무역센터의 모습

1993 World Trade Center (WTC) bombing

1. 개요
1.1. 배경
1.2. WTC가 표적이 된 이유
2. 사건 진행
2.1. 준비
2.2. 테러 발생 및 피해
2.3. 일당 검거
2.4. 이후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993년알카에다세계무역센터에 가한 테러.

미국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중동발 테러이기도 하며, 이 테러 후 알카에다는 1998년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2000년 USS 콜 테러사건 등의 크고 작은 테러를 감행해 오다가 2001년 9.11 테러라는 전세계구급 테러 사태를 일으켰다.


1.1. 배경[편집]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냉전 체제 하에 있던 미국소련에 대항하는 위치에 있던 반군(무자헤딘)을 대량 지원했는데 이 지원으로 엄청난 무자헤딘이 생겨났다. 근데 전쟁 끝나고 이들이 전부 실업자가 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보고 오사마 빈 라덴은 무자헤딘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는 알카에다를 창설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몇몇 사건을 터뜨리게 되는데, 걸프 전쟁 당시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짓을 저질렀고 덧붙여 1차 인티파다 때 팔레스타인에서 벌인 이스라엘의 행패를 그대로 본 무자헤딘 단체들이 극대노알카에다를 위시로 하여 반미로 전향해 이 테러를 시작으로 엄청난 수의 테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1.2. WTC가 표적이 된 이유[편집]


세계무역센터(WTC)는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자유의 여신상, 할리우드 등과 함께 미국의 상징이기도 했다.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되기 충분하다는 요건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상당한 어그로를 끌기 충분한 점도 있었거니와 이 건물이 없어졌을 때 미국의 체면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을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했다. 이후 알카에다미국 대사관을 테러하고, 구축함도 테러하지만 크게 어필이 안 되자 아예 작정하고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파괴했다!


2. 사건 진행[편집]



2.1. 준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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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대장 람지 유세프([1]رمزی یوسف, Ramzi Ahmed Yousef).

알카에다의 수석요원 람지 유세프와 테러범들은 1990-91년경 트레이닝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고, 1992년 9월부터 차례로 밀입국하기 시작했다.

입국하자마자 람지 유세프는 테러에 쓰일 대형 사제폭탄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한 대원은 입국검사 도중 폭탄 설계도가 발견되어 추방당하기도 했다. 일당들은 뉴저지에 거주지를 잡고 테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1993년 2월 중순, 테러 예정일을 약 10~15일 남겨둔 상태에서 유세프는 폭탄 제작을 완료했다. 그리고 라이더 밴을 한 대 렌트하여 그 차에 폭탄을 장착했다.[2]


2.2. 테러 발생 및 피해[편집]


1993년 2월 26일 오후 12시 02분, 람지 유세프와 에야드 이모일은 세계무역센터 지하 2층 지하주차장[3] 화물 공용창고 근처에 밴을 주차 후 폭탄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도주하였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1WTC3WTC사이 지하에 차를 주차 후 도주하였는데, 이것이 후에 큰 실수였음이 밝혀졌다.

12시 17분 32초, 1WTC와 3WTC 사이 지하 2층에서 폭탄이 폭발하여 지하 2층과 지하 1층 사이에 30m짜리 구멍이 생기고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지하 5층까지 바닥이 주저앉게 되었다. 특히 지하 4층과 지하 5층은 각종 냉각시설, 전기시설 등이 위치한 층이었기에 이 층까지 온갖 잔해들이 파고들어와 피해를 입히자 단지 전체에 전기를 공급하는 메인 파워라인이 모두 손상되어 비상발전기까지 먹통이 되면서 세계무역센터 단지 전체[4]가 정전되었고, 충격으로 인해 지하 6층을 지나던 대형 수도관도 파열되어 지하 6층 일대가 침수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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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별 피해 상황. 지하 2층에서 폭발한 폭탄의 위력으로 인해 1층부터 지하 5층까지 바닥이 무너져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폭발과 폭발 직후 발생한 화재로 인해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300~400대가 손상되거나 전소되었으며 폭발로 인해 환기 시스템 역시 완전히 고장나 지하에서 발생한 폭발, 화재 연기가 지하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던 1WTC, 2WTC 환기통로와 엘리베이터 샤프트, 계단을 타고 각 빌딩 93층까지 올라가 그 유독가스를 마신 건물 내부의 수많은 사람들이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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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 입구 부근 지하 1층에서 관측한 피해 상황.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기둥에서 바닥이 떨어져 밑으로 꺼져 있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메인 파워라인 손상으로 인해 비상발전기까지 먹통이 되면서 WTC 단지 전체에 전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게 되자 수백명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었다. 일례로 2WTC 107층 전망대에서 내려오고 있던 17명의 유치원생들이 35층 정도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춘 채 구조되기 까지 무려 5시간이나 걸리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1, 2WTC의 고층에서 일하던 일부 사람들은 밑으로 내려가기보단 옥상으로 직접 올라가 구조를 청했고 실제로 31명이 이 같은 과정으로 구출되었다.[5]

전력 손실의 결과로 로워 맨하튼 일대의 전파 송출을 담당하던 1WTC 옥상 안테나 역시 먹통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로워 맨하튼 대부분의 라디오, TV 방송이 거의 일주일 동안 먹통이 되었고 로워 맨하튼 일대의 무선전화 서비스 역시 일주일 동안 먹통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천만다행히도 폭발의 규모에 비해 사망자는 많지 않았다. 총 6명의 사망자[6]가 발생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폭발 당시 가까운 지하주차장에 있었고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 있던 지상 부분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전술했듯 이들은 1WTC와 3WTC 사이[7] 지하 2층에 밴을 세우고 폭탄을 폭발시켰는데, 폭탄의 양과 폭발력 자체는 1WTC나 2WTC 하나를 확실히 무너트리는 데에는 충분했다는 무서운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8] 세계무역센터 같은 랜드마크의 특성상 지하주차장도 언제나 항상 붐비는 상황 때문에 이들은 쌍둥이 빌딩의 취약한 중심코어 부분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부분에 주차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쌍둥이 빌딩에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도 못하고 엉뚱한 3WTC 지하 바닥 부분만 무너져 내리는 피해에 그치게 되었다.[9]

만일 이들이 쌍둥이 빌딩 중심코어 부분에 가깝게 주차 후 폭발을 일으켜 건물이 무너졌다면, 비행기 충돌 이후에도 1시간 정도는 건물이 그대로 서 있어 저층에 있던 사람들이라도 탈출이 가능했던 9.11 테러와는 달리[10] 눈 깜짝하는 사이에 폭발로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탈출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9.11 테러 이상의 사망자만 수만 단위로 늘어나는 끔찍한 상황이 일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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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앞 대로변. 온갖 응급차량들이 엉켜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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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저녁의 세계무역센터. 폭발로 인해 이뤄진 대피와 빌딩 폐쇄로 인해 평소와는 다르게 빌딩 중앙 부분의 불이 완전히 꺼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엄청난 피해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단지 일대는 긴급히 1~2주 동안 휴장하게 되었고, WTC 단지 지하에 있던 지하철역 역시 약 2주간 폐쇄되었다.

2.3. 일당 검거[편집]


사건 초기에만 해도 FBI는 지하 5층에 있던 변압기의 폭발을 의심했지만 조사 도중 폭탄 성분이 검출되면서 명백한 테러로 규정짓고 수사를 시작했다. 이어 FBI는 테러 당시 쓰인 차의 일부를 발견하고 그 차의 렌트 기록과 CCTV 기록 등을 토대로 일당 중 한 명이었던 모하메드 살라메흐의 신원을 밝혀냈다.

테러범 일당은 테러를 일으키고 수 시간 내에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미국에 잔류한 일당들도 있었다. 한편 테러범 중 차를 렌트했던 모하메드 살라메흐는 묵었던 아파트의 보증금을 받지 못했고 재입국을 했다가 3월 4일에 체포되었다. FBI는 모하메드를 취조하여 미국에 남아 있던 테러범들을 모조리 잡았다. 그들은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1994년 5월 미 연방법원은 구속된 테러범들에게 종신형을 선고하고 모하메드 살라메흐에게는 240년 형을 선고했다. 모하메드 살라메흐의 형량은 1999년에 116년 11개월로 감형되었다가 2021년에 유죄 판결 중 하나가 뒤집히면서 86년 11개월로 감형되었다. 여담으로 그는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었는데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시절에 단식을 감행했다가 강제급식이 실시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1995년 보진카 계획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주도했던 람지 유세프는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체포되었다.[11] 그런데 람지 유세프는 체포 후 조사관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야!"
("This is only the beginning!")

당시 이 말을 들었던 조사관들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하였으나 약 6년 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유세프는 자신의 죄목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1997년 11월 재판에서 판사는 유세프에게 240년 형을 선고했고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사실상 무기징역인 셈.


2.4. 이후[편집]


테러 약 1~2주 후 긴급 보수공사를 끝내고 일부 건물들에 한해서 세계무역센터는 재개장을 했지만 아직도 곳곳에 피해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재개장 이후에도 부분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테러 이후 재발 방지 및 보안강화 논의 끝에 세계무역센터는 1995년 완전히 재개장했다.

테러 이후 모든 비상계단에 전력이 나가도 사용 가능한 비상등에 예비 베터리 등이 장착되었고 난간과 계단 부분에 형광 페인트를 발라 비상시에도 대피가 가능하게 조치하였다. 테러 당시 경찰과 소방관들 사이에서 대피와 수습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명령 오달 및 상황 혼선이 있었던 것을 참고하여 FDNY(뉴욕 소방국)의 고층 전용 라디오 통신기가 건물에 설치되었으며, 쌍둥이 빌딩 1층 로비 부분에는 경찰과 소방 인원을 통합 지휘하는 커맨드 센터가 신설되었다. 그런데 이게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6년 후 벌어진 9.11 테러 때 상황이 꼬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테러 공격을 받은 후 커맨드 센터가 즉각 가동되어 임무를 수행했지만 결국 붕괴 직전 인원들이 철수하면서 일시적으로 기능이 마비되어 더 큰 혼란이 발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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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1일 세계무역센터가 재개장하며 광장에 추모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하지만 이 조형물은 9.11 테러로 인해 파괴되었다. 테러 사망자들은 이후 9.11 메모리얼 파크에 함께 이름이 새겨졌다. 파괴된 조형물의 파편도 함께 전시되었다.

피해가 가장 컸던 3WTC 소유자인 VISTA International은 피해 복구를 포기하고 호텔을 매리어트에 매각했고 완전히 피해 복구가 끝난 1995년에 재개장했다.

9.11 테러의 충격과 인지도가 워낙 높기에 이 테러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언급하는 글이나 사람들 앞에서 헷갈려하는 일이 있다. 예컨대 고질라(1998)에 세계무역센터 테러 이후 최대의 피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영화는 2001년 이전에 개봉했기 때문에 2001년 이후에 고질라를 본 사람들 중에서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모르는 사람들이 당황하는 일도 있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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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르두어.[2] 폭탄이 상당히 컸는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폭탄의 중량은 약 590킬로그램이라고 한다.[3] 세계무역센터 지하는 건물마다 따로 떨어진 구조가 아니라 단지 전체가 하나의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4] 길 건너편에 있는 7WTC 제외[5] 후에 9.11 테러 때도 헬기가 1, 2WTC 옥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구출하려 시도했지만, 연기가 너무 자욱해 실패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씁쓸하다.[6] 모니카 스미스라는 임산부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7명이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 추모비에는 모니카 스미스와 그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함께 적혀 있다.[7] 실질적으로는 3WTC에 조금 더 가깝게 주차하였다.[8] 구체적으로 테러범들은 1WTC 지하에 폭탄을 폭발시켜 1WTC를 2WTC 방향으로 무너뜨려 두 건물 모두 순식간에 무너뜨리려는 의도로 폭탄을 설치했다.[9] 3WTC는 당시 VISTA 호텔로 사용되고 있던 건물이다. 피해가 적었다고 할지언정 만일 이 3WTC가 큰 피해를 입어 무너져내리거나 지상 부분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의 충격이 있었다고 하면 랜드마크 호텔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상황에서 피해는 훨씬 커졌을지도 모른다.[10] 북쪽 타워의 경우 비행기가 충돌한 92층 이상에 있던 사람들은 전원 사망했고, 남쪽 타워의 경우 비행기가 충돌한 지점보다 높은 곳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 생존자가 있었다.[11] 사실 필리핀발 도쿄행 항공기 테러 후 수사관들의 수사로 본국에서 검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