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 파리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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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파리 올림픽
제2회 올림픽 경기대회
Jeux de la IIe olympiade
Les Jeux olympiques d'été de 1900
1900 파리 올림픽 경기대회

Games of the II Olympiad Paris 1900


파일:파리올림픽.jpg

대회기간
1900년 5월 14일 ~ 10월 18일
개최국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파리
참가국
28개국
참가선수
997명[1]
경기종목
19개 종목, 95개 세부 종목
개회선언
에밀 루베
프랑스 대통령
개·폐회식장
벨로드롬 드 벵센

1. 개요
2. 개최
3. 실패
4. 이색종목
5. 메달 집계
6. 여담
7. 폐막 이후



1. 개요[편집]


1900년 5월 14일부터 10월 18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2회 하계올림픽.

22개국 1319명의 참가자들로 전 대회에 비해 외형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엑스포의 부수 흥행행사로 전락한 대회. 모국에서 훌륭하게 올림픽을 꾸려보려던 쿠베르탱의 이상은 시작도 하기 전에 산산조각났고 올림픽을 관객 동원용으로 생각한 박람회 측은 IOC의 규정을 무시하고 낚시 대회와 소방수 경연, 비둘기 죽이기 대회 같은 종목을 채택하기도 하는 등, 다음의 제3회 세인트루이스 대회와 함께 역사상 가장 실패한 올림픽이 되었다.


2. 개최[편집]


전 대회인 아테네 올림픽에서 생각 외로 이득을 봤는지(?) 그리스 측에서는 계속 아테네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어했지만,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IOC에서는 다음 올림픽은 1900년에 아테네가 아닌 파리에서 개최된다고 하였다.[2]

같은 해에 열린 1900 파리 엑스포의 부속 행사로 열렸다. 대회가 엑스포 일정에 맞추어 무려 6개월동안 종목별로 분산개최가 되었다. 그 때문에 이 대회는 올림픽이라는 이름이 아닌 국제경연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원래 개막 예정일은 7월 14일. 즉,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어서 하는 수 없이 개막을 하루 연기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 날은 미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안식일이서 미국에서는 반발. 하지만 국제 스포츠 무대의 1인자로 떠오른 미국을 경계하기 위해 프랑스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날 개막식을 열어 일부 미국 선수들의 불참을 불러온다.

이 대회부터 미국의 언론은 국가별 메달 집계를 보도하기 시작하였으며, 금메달을 획득한 나라의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다른 메달리스트는 부동자세로 경의를 표하는 민족주의적 의례가 시작된 것도 이 대회부터이다. 국가별 경쟁을 막으려는 IOC 헌장에도 불구하고 초기 대회부터 국가 단위의 격전장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실패[편집]


간단히 말하면 엑스포 관람객들을 위한 보너스 볼거리 정도로 취급했다. 관람객 중 일부가 즉석 참가하기도 했다. 이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정도의 막장 운영이었다. 종목별 시상과 기록도 몇달 후에나 이루어지고 종합적인 대회 보고서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엑스포의 부속 행사로 치루어지다보니 각종 예술 경연이 대회 종목으로 포함되고 실제 시상도 이루어졌다. 이 부분은 현재 IOC에선 인정하지 않고 별도 행사로 표기하고 있다. 아래에서 보듯 심지어는 소방수 불끄기, 인명 구조처럼 스포츠 경기라고 보기 어려운 종목도 많았다. 거의 동네 운동회 수준이었던 것이다.

별도의 올림픽 대회 조직위원회가 구성되지 않고 엑스포 주최측이 행사를 주도하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아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4. 이색종목[편집]


  • 인명 구조 - 수영의 세부 종목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응급처치까지 하는 경기인데 리얼리티를 추구했는지 마네킹 같은 대체제를 빠뜨리는게 아니라 실제 사람을 빠뜨려서? 인명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폐지되었다. 구조 실패지금은 월드 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있고, 당연하게도 지금은 실제 사람이 아닌 마네킹을 사용하고 있다.
  • 비둘기 사격 - 사격의 세부 종목이다. 날아가는 비둘기를 쏘아서 명중시키는 경기인데 당시 경기가 끝난 뒤 사격 경기장 전체에 비둘기 피와 깃털로 엉망이 되었고, 한 경기당 희생된 비둘기 수가 무려 300여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심지어 비둘기 사체가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잔인성을 이유로 폐지된 이후 클레이 피전 사격으로 대체되었다.
  • 곡사포 사격 - 역시 사격의 세부 종목이다. 넓은 안전 지대에 대포를 쏴 거리와 정확성을 겨루는 경기인데 날아간 포탄에 의해 민가에 불이 붙어 폐지되었다.
  • 비둘기 경주 - 말 그대로 비둘기를 풀어 놓고 하는 경주인데 비둘기들이 번번이 멀리 날아가 버려 대실패해 폐지되었다.
  • 낚시 - 얼마나 많고 큰 물고기를 낚는지 겨루는 경기이다. 변별력 부재로 퇴출되었다.
  • 기구 경주 - 헬륨 기구와 열기구로 세부 종목이 나뉘었다. 비행 거리, 시간, 연착륙 등이 점수 산정 기준이었지만 느린 속도로 인한 스타성 부재로 폐지되었다.
  • 소방 - 가건물에 붙은 불을 끄는 종목이다. 실제 사람을 빠뜨리면 안된다는건 생각 못했지만 실제 건물에 불 붙이면 안된다는건 생각했나보다
  • 연 날리기 - 누가 연을 '가장 세련되고 관능적인 방식으로 날리는가'를 겨루었다고 하며, 주어진 시간 동안 연을 가장 높이 날리는 높이 날리기 부문과 200m 높이에서 2시간 동안 버티는 오래 버티기 부문이 있었다.[3] 그러나 연을 세련되고 관능적으로 날리는(...) 것에 대해 평가 기준이 모호했던데다, 대회 당일 강한 돌풍이 부는 바람에 시작과 동시에 대부분의 연이 날아가 버려 폐지되었다.
  • 모터스포츠 - 당시 프랑스가 자동차 산업 선도국이라 대부분 르노, 푸조, 드 디옹 부통, 파나르 르바소, 들라이예 등의 프랑스 메이커가 참여했지만 외국 메이커도 소수 참가하여 스포츠카(400kg 미만/초과), 4인승, 6인승, 7인승, 택시, 승합차, 용달차, 트럭, 소방차(...), 파리-툴루즈-파리 등 다양한 클래스로 나뉘었다. 르노 사의 창립자 루이 르노는 파리-툴루즈-파리 소형차 종목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 오토바이 경주
  • 보트 경주
  • 잠영, 줄다리기[4] 정도면 양반이고, 그 외에도 200m 장애물 수영, 승마 멀리뛰기, 승마 높이뛰기 등이 있었다.


5. 메달 집계[편집]


1900 파리 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순위
국가
메달
합계



1
[[프랑스 제3공화국|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 프랑스
25
41
34
100
2
[[미국|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 미국
19
14
14
47
3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파일:영국 국기.svg
]] 영국
16
6
9
31
4
[[올림픽|

파일:오륜기.svg
]] MIX[5]
6
3
3
12
5
[[스위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 스위스
6
2
1
9
6
[[벨기에|

파일:벨기에 국기.svg
]] 벨기에
5
5
5
15
7
[[독일 제국|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 독일
6
5
2
13
8
[[이탈리아 왕국|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 이탈리아
2
1
0
3
9
[[대영제국|

파일:영국 국기.svg
]] 대영제국령 호주
2
0
3
5
10
[[덴마크|

파일:덴마크 국기.svg
]] 덴마크
1
3
2
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896-1915)천사.svg.png
]] 헝가리
1
3
2
6
12
[[미국 통치기 쿠바|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 쿠바
1
1
0
2
13
[[캐나다 자치령|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868-1921).svg
]] 캐나다 자치령
1
0
1
2
14
[[스페인 왕정 복고|

파일:스페인 국기(1785–1873, 1875–1931).svg
]] 에스파냐
1
0
0
1
15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 오스트리아
0
3
3
6
16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 노르웨이
0
2
3
5
17
[[인도 제국|

파일:영국 국기.svg
]] 인도
0
2
0
2
18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 네덜란드
0
1
3
4
19
[[보헤미아 왕국|

파일:보헤미아 왕국 국기.svg
]] 보헤미아
0
1
1
2
20
[[멕시코|

파일:멕시코 국기(1880-1909).png
]] 멕시코
0
0
1
1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파일:스웨덴 국기(1844).svg.png
]] 스웨덴
0
0
1
1

6. 여담[편집]


여성이 최초로 참가한 대회이기도 하다. 아마 그리스에서 계속 개최되었으면 상당히 늦게나 여성이 참가했을 것으로 보인다.[6] 하지만 쿠베르탱 남작은 여성이 참가하는 걸 무척 싫어해 반대해왔는데 그는 여성은 남성 메달리스트에게 메달을 건네주면 된다고 자주 말해왔다. 그러나 IOC 내에서도 여성 배제가 옳냐는 논쟁이 있었고 결국 일부 종목 참가를 승인하게 된다

여성이 최초로 참가한 대회이니 당연히 최초의 여성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하게 된다. 영국의 테니스선수로 출전했더 샬롯 쿠퍼가 그 주인공으로 현대 최초의 올림픽 여성 금메달리스트이다.[7]#

전 대회에서 레슬링과 역도가 제외되었으며, 2016년 올림픽에 부활하는 골프와 럭비를 포함하며 13개의 종목(그외에 양궁 / 크리켓 / 경마 / 축구 / 펠로타 / 폴로 / 조정 / 요트 / 줄다리기 / 수구가 채택되었다.)이 새로 신설이 되었다. 그리고 1896 아테네 올림픽에 써져있는대로 종목은 남아있지만 좀 이상한 몇몇 종목은 제외가 되었다.

엉터리 올림픽이었지만 그래도 영웅은 탄생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3관왕에 오른 레이어리가 그 주인공인데, 올림픽 첫날 벌어진 제자리 높이뛰기에서 168cm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했다. 2위의 기록이 120cm 내외임을 감안할때, 그리고 도움닫기 높이 뛰기의 당시 기록이 180cm임을 감안할때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기록은 지금도 세계신기록으로 남아 있다. 1912년 스톡홀롬 대회를 끝으로 이 종목이 아예 사라져버렸기 때문.

고대 올림피아 제전의 종목이기도 한 투원반에서 헝가리의 루돌프 바우어는 투원반 사상 처음으로 몸을 회전시켜 던지는 기술을 선보이며, 36.04m 올림픽 기록을 세우고 우승한다. 이 금메달은 비록 미처 조직위가 준비하지 못해 나중에 우송되었지만 헝가리가 이 대회에서 유일하게 획득한 것이다.

다국적 혼성팀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는 대회였다. 정확히는 당시에는 '같은 나라 출신들만 팀을 이룰 수 있다'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국적 상관 없이 팀을 짜기도 한 것. 줄다리기에서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이루어진 다국적 혼성팀이 줄다리기에서 우승을 하였으며, 폴로도 영국/미국으로 구성된 팀이 1,2위를 했으며 영국/프랑스로 이루어진 팀이 3위를 했을정도.

이 최악의 올림픽과 동행하는 희대의 반영웅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영웅적인 장르인 마라톤에서 나왔다. 마라톤 참가자들이 베르사유 궁전을 왕복하는 예정코스의 답사를 모두 끝낸 상황에서 경기 직전 사이틀 경기장 주변 골목길을 도는 것으로 코스가 엉뚱하게 변경되면서 사건은 시작한다. 외국 선수들은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변경이 골목길 지리를 잘 아는 자국 선수들을 우승시키기 위한 간계라고 항의했으나, 간단히 묵살되었다. 살인적인 더위와 골목의 먼지 속에서 거행된 이 경기의 우승자는 당연히(?) 프랑스의 빵집 배달부 미셸 데아토(룩셈부르크 출신이라서 국적 논란이 있다)였다. 5위로 들어온 미국의 아서 뉴톤은 경기 초반에 프랑스 선수를 제치고 선두로 나서 어떤 선수도 자신을 앞지른 이가 없는데 막상 결승점에 도착해 보니 프랑스 선수 3명이 들어와 있었다면서 IOC에 항의 하였으나, 그의 주장은 무시되었다. 더군다나 그의 기록이 종전의 세계기록을 45분이나 단축 시킨 2시간 59분 4초였다는 것도 뉴톤의 항의가 설득력 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예증. 하지만 마지막 코미디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데아토 자신은 12년이 지나도록 자신이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실을 몰랐던 것.

2인용 조정 경기에서는 인원 정리가 안돼서 관객과 선수들이 뒤섞였고, 이 와중에 네덜란드 팀은 키잡이가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버린다. 네덜란드 조정팀은 어쩔 수 없이 지나가던 프랑스 소년을 길거리 캐스팅해서 키잡이 자리에 앉혔는데 우승했다. 소년은 시상식에는 참석했으나 네덜란드 팀과의 사진 한장만 찍은 후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고 떠나서 별다른 기록이 없지만, 사진상으로는 7~12세 정도로 추측되어 올림픽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 여겨진다.

이 대회는 역대 정상적으로 개최된 하계 올림픽 중 윤년이 아닌 평년에 개최된 유일한 대회이다.[8] 그레고리력에서 4의 배수인 년도 중 100의 배수이면서 400의 배수가 아닌 년도는 윤년이 아니기 때문. 단 100의 배수인 년도 중에서도 400의 배수인 년도는 윤년이다. 따라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윤년이고, 다음 평년 올림픽은 2100년 올림픽이다. 그때까지 올림픽이 남아있다면 말이지만... 그리고 19세기에 열린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이기도 하다.


7. 폐막 이후[편집]


올림픽 운동의 주창자 쿠베르탱 남작은 자신의 모국에서 열린 이 막장 올림픽을 두고두고 창피해하다가 명예회복을 위해 결국 1924년 다시 한번 파리에 개최권을 주었다. 그리고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1924 파리 올림픽은 그럭저럭 성공적인 대회가 된다.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도 박람회와 함께 열리긴 했지만 쿠베르탱 남작과 IOC의 개입으로 철저하게 별도 행사로 치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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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 975명, 여자: 22명[2] 이는 IOC 위원장인 비켈라스와 사무총장인 쿠베르탱과의 의견 대립 때문이기도 했다. 비켈라스는 그리스의 상징적인 행사를 쿠베르탱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3] 심지어 대형, 중형, 소형으로 참가자 체급(?)도 구분되었다.[4] 다만 요 경기는 꽤 오래 갔다.[5] 다국적연합[6] 고대 올림픽이 오직 남자만의 행사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대에 여성 스포츠 대회는 완전히 분리돼서 별개 운영되었다.[7]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 2세의 여동생 퀴니스카(Cynisca)가 전차 경주에서 2회 우승하여 고대 올림픽 최초의 여성 우승자로 기록되어 있다.[8] 단 정상적으로 개최되지 않은 올림픽을 포함하면 1906 아테네 중간 올림픽이나 2021년으로 연기되어 열린 2020 도쿄 올림픽같은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