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대권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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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출마 예상 후보군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실제 대선에 등록한 후보에 대한 내용은 제19대 대통령 선거/후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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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원내 정당
3. 원외 정당
4. 무소속
5. 경선 참여자
6.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6.1. 무소속
6.1.1. 강인권
6.1.3. 김마리아
6.1.5. 김환생
6.1.6. 권정수
6.1.8. 안광희
6.1.9. 최석규
7. 불출마자
8. 사퇴 후보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대권주자들의 목록이다. 지난 대선마다 유력한 후보에 들었으나 떨어져 권토중래를 하는 사람들(문재인,안철수 등), 새로이 떠오른 사람들(심상정) 등 후보군이 다양하고 많은 편이다. 아래의 목록은 가나다순으로 작성했다. 요약 차원이며, 자세한 내용은 각 개인 문서를 참고할 것.

인물들의 출생지는 출생 당시의 행정구역을 따랐다.

실제 출마 후보는 제19대 대통령 선거/후보를 참고할 것.


2. 원내 정당[편집]


''' 2016.5.30. ~ 2020.5.29.'''

[ 임기 개시 ]
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svg

122석

야당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svg

123석

파일:국민의당(2016년) 흰색 로고.svg

38석

파일:정의당 흰색 로고.svg

6석

무소속

11석

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580009; font-size: .8em"
300석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33.3%; margin: 0 -10px"
[ 후반기 개시 ]
여당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svg

129석

야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svg

112석

파일:바른미래당 흰색 로고.svg

30석

파일:민주평화당 흰색 가로 로고.svg

14석

파일:정의당 흰색 로고.svg

6석


파일:민중당(2017년) 흰색 1차 로고.svg

1석

파일:대한애국당 흰색 로고.svg

1석

무소속

7석

재적

300석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33.3%; margin: 0 -10px">
[ 임기 종료 ]
여당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svg

128석

야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가로).svg

112석


파일:민생당 흰색 아이콘.svg파일:민생당 흰색 로고타입.svg

20석


파일:정의당 흰색 로고.svg

6석


파일:우리공화당(2020년) 흰색 로고.svg

2석

파일:국민의당(2020년) 흰색 로고2.svg

1석

파일:열린민주당 흰색 로고.svg

1석


파일:민중당(2017년) 흰색 2차 로고.svg

1석

파일:친박신당 흰색 로고.svg

1석

무소속

18석

재적

290석

제국 중추원 · 임시의정원
제헌 · 2 · 3 · 4 · 5민 · 5참 · 6 · 7 · 8 · 9 · 10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2.1. 더불어민주당 - 문재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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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더불어민주당 아이콘.svg
문재인 (文在寅)
파일:MoonJaeIn.jpg}}}
출생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군[1]
18대 대선
본선 2위 (48.02%, 민주통합당)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
기호
1번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자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2016년 8월 21일, 지지자들과 함께 울산을 방문했을 때 지지자들에게 "나는 재수에 강하다"[2], "준비된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선 출마를 강력하게 시사했다고 한다.[3]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오랜 시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나 막판에 성공적인 외부 인재 영입과 대규모 온라인 입당 열풍을 이끌어내 절망적이었던 민주당 분위기를 잘 환기시켰고 김종인비대위 대표와 더불어 분열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를 막고 더불어민주당20대 총선 승리를 직접 견인해내 더불어민주당 대세론의 진 주인공이 되는 반전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를 기준으로 현재 야권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대권 주자로서 '문재인 대세론'을 몰고 다니는 중이다. 우선 대통령 선거 본선을 치러본 경험이 없는 다른 대권주자들과는 달리, 이미 그 당시만 해도 박근혜라는 보수 진영 최고의 정치 스타를 상대로 본선을 치러본 경험이 있고, 그때 이미 충분한 인지도를 쌓아놨으며, 18대 대선 기간 동안 박근혜 캠프와의 공방전을 거치면서 개인 처신에 관해서는 더 이상 털릴 게 거의 없는 후보로 평가 받는다.

특히 정보 분야 쪽 인력 풀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 받았었는데 이번 20대 총선에서 검사 출신이고,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다 팽당했던 조응천, 경찰의 표창원, 국정원 인사처장을 지낸 김병기 등을 데려와 20대 국회의원 당선을 도우면서 이 분야의 약점을 대부분 보완했다는 평가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국내 정치계에서 10년간 떠나 있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과는 달리 이미 18대 대선에 한 번 털려본 문재인 본인에게는 대권을 가로막을 만한 큰 의혹이 없었으나[4] 캠프 몸집이 커지면서 캠프 내의 인사들로부터 각종 구설수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18대 대선박근혜 캠프 측에서 꺼내들었던 아들 문준용의 공기업 채용 특혜 의혹을 반 문재인 진영에서 재점화시켜 이 문제가 다시 언론을 타기도 했다.

2017년 2월 13일 더불어민주당 경선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완전국민경선제에서 득표율 과반 이상을 승리하며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경선 이후 안철수와 다시 양강구도를 이루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경선에서 탈락한 안희정, 이재명 후보의 지지자들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점.[5]
  • 중도층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점.[6]
  • 아들 문준용에 대한 특혜 채용 의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단지 네거티브 전략으로 치부한 점.

박근혜의 탄핵을 계기로 후보 검증을 더욱 면밀히 하게되는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문재인의 모습에 실망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7]

이후 문재인과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에서는 전략을 바꾸어 안철수보다 더 나은 정권교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걸고 있으며 국민의당보다 더 많은 의석 수, 참여정부에서의 참모 경험, 4년 전에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만큼 충분히 검증된 후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문재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에 법적 대응도 하고 해명도 적극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중도층을 포용하기 위해 안희정, 이재명과 화합을 다지는가 하면 그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선대위에 인선하였다. 또한, 여러 정책과 공약을 계속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비문 중진에서 이종걸은 물론이고 백의종군까지 선언했던 박영선, 변재일까지 선대위에 끌여들여서 친문패권 논란도 종식시키는 상태이다.


2.2. 자유한국당 - 홍준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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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洪準杓)
파일:홍준표 공식프로필.jpg}}}
출생
1954년 12월 5일, 경상남도 창녕군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 4위
상황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기호
2번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 당당한 서민대통령

한나라당 대표이자 경상남도지사이다.

경상남도지사 시절 무상급식 중단 정책성완종 스캔들에 연루된 뒤로는 서울중앙지법으로 부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측으로 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장에게는 사실상 탄핵에 해당하는 주민소환이 이루어질 뻔했다.

사살상 홍준표는 대권 도전이 불가능해진 상태였으나 2017년 2월 16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출마는 가능해졌다.# 하지만, 대선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 동안 성완종 리스트와 무상급식 중단 논란으로 인해 손상되었던 이미지를 짧은 시간에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가 과제. 게다가 연일 문재인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끊임없는 네거티브와 막말 논란을 일으키면서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2017년 3월 18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후보 중 친박계의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한때 홍준표 후보가 친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강성 친박을 제외한 친박에게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8]
  • 이재명이 사이다 발언과 행보로 진보 지지층에게 어필했던 것처럼 보수층에게 먹히는 사이다 발언을 하고 있다는 점.[9]
  • 바른정당과의 단일화에 용이하다는 점.[10]

그러나 홍준표 본인은 무당층과 중도층, 그리고 진보 지지층에 대한 확장력이 무척 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바른정당과의 단일화를 통해서 보수층의 표를 결집시킬 수 있을진 몰라도 무당파 중도층과 진보 지지층의 눈쌀을 찌푸리게 할 만큼 홍준표 본인 스스로도 그동안 어그로를 많이 끌어왔기 때문에 그간의 발언이나 행적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 이런 지지층에게까지 어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게다가 홍준표가 다른 지자체들은 멀쩡하게 돌리고 있는 무상급식 정책을 홀로 중단시켰을 때 경상남도에서는 이제 경상남도에서 새누리당 생명은 끝난 줄 알라는 극언까지 나왔을 정도로 반발이 심했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전한다. 홍준표의 무상급식 중단 때문에 급식비 부담까지 짊어지게된 3040대 경남도민들이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나온 홍준표를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마음으로 찍어줄 것인지, '이날만을 기다려왔다'는 마음으로 보복 투표를 할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17년 3월 31일, 경선 결과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홍준표가 이번 대선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을거라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모래시계'로 알려진 유능한 검사 이미지가 있다는 점.
  • 박근혜와 거리를 둬서 친박의 이미지가 없다는 점.
  • 국회의원, 도지사 등 공직 선출 경험이 많다는 점.
  • 보수지지층이 보다 확실한 보수색을 가진 후보를 원한다는 점.
  •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지도자들처럼 '스트롱맨'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

하지만 이번 대선이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측면도 존재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막말 논란이 잦다는 점.
  •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배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후 구속이 된 상황까지 왔다는 점.
  •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서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는 점.[11]
  • 바른정당과의 보수 단일화를 위해서는 친박 청산이 필수적인데 홍준표가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12]

선대위는 중앙선대위 대신 지역선대위를 기반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애초에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 했으나 본인이 고사하고 비대위원장에서도 사퇴하여 없던 일이 되었다. 대신 당대표 권한대행 및 원내대표 정우택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발탁하고, 여러 인물을 영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홍준표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모델을 생각하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유승민과의 단일화를 이루어 단일화 후보로 자신이 나서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이렇게 4자 구도가 되어 자신이 승산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 정부는 독재정치로 인해 민심을 잃었지만 그래도 경제 하나만큼은 좋았으며 외교 면에서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할 정도로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자유한국당은 경제, 외교면에서 완벽한 낙제점을 받았다.[13] 따라서 1987년 민주정의당 상황은 그냥 양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유한국당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홍준표가 머리가 나쁜 정치인이 아니라는 걸 볼 때, 문재인, 안철수 등 진보 진영의 집권을 막거나 막지 못하더라도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합당을 통해 위기에 처한 보수정당의 재건을 위해 출마한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즉 본인이 유승민과의 단일화를 통해 완주하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심상정 4자 구도로 흐름이 흘러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홍준표로 보수, 중도층 유권자가 옮겨 갈 가능성이 있다.[14] 당선까지는 어렵더라도, 그가 의미있는 득표를 기록한다면 대선 후 보수정당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지고, 더불어민주당에게 뺏긴 원내1당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어느정도 마무리 되면서 두 당이 더는 떨어져 있을 이유 또한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자유한국당의 절대 다수는 친박이라서 비박으로 구성된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의 재결합을 원할 가능성은 낮다. 애초에 유승민을 포함한 바른정당 후보들의 주장은 보수 성향 후보끼리의 단일화이지 합당이 아니며, 그나마도 홍준표가 바른정당을 두고 '스스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라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에선 후보 단일화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당 내에서도 강성 친박 세력들은 바른정당과의 합당은 배신자를 끌어들이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고 국민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는 홍준표를 바른정당이 포용할 가능성도 낮다. 홍준표가 출마를 선언한 이유가 뭐든지 간에, 보수정당을 재건해봤자 별로 지지도 못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강성 친박 중 하나인 조원진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대선 후보로 출마한 상황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홍준표는 강성 친박 세력을 지지대열에서 이탈시키지 않기 위해 박근혜가 파면되고 구속되자 친박은 더 이상 없다며 바른정당이 보수 단일화의 필수 요건이라고 요구한 친박 인적청산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선대위나 당직 중요기구에 친박들을 대거 기용했다. 그러면서도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여 단일화를 성사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카드 모두 바른정당의 완강한 거부[15], 조원진의 탈당과 대선 출마로 인해 보수 단일화도, 집토끼인 강성 친박 세력을 지키기도 어렵게 되어 홍준표자유한국당의 계획이 타격을 입게 되었다. 물론 강성 친박 의원들은 현재까지 추가 탈당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상황에 따라 추가 이탈이 있을 수 있어 홍준표자유한국당은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16]


2.3. 국민의당 - 안철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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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安哲秀)
파일:안철수 의원.jpg}}}
출생
1962년 2월 26일, 경상남도 밀양군[17]
18대 대선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무소속)
상황
국민의당 대선 후보
기호
3번

국민이 이긴다

2011년 11월,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촉발된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정치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지는 "안철수 현상"이 일어난다. # 그런데 안철수 원장이 민주당에서 앞서던 한명숙, 박영선 후보가 아닌 5%대 지지율의 무소속 박원순 후보를 지지선언하여 화제가 된다.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과도 후보 단일화를 한 뒤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2012년 7월, 계속되는 국민들의 양당 혐오와 안철수를 향한 정치 출마 요구에 따라 책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고, 그 내용과 공약들이 다수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막강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상대로 다시금 거론되었으나, 문재인 후보와 껄끄러운 단일화 과정을 거친 뒤 사퇴했고, 결국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4년 6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민주당(2013년)이 대선 때처럼 패배를 할 수 없기에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합당한다. 이후 야당의 지도부를 안철수문재인이 번갈아 맡게 된다.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앙숙 안철수의 국민의당(2016년)과 문재인이 더불어민주당이 갈라서게 된다. 무려 민주당에서 호남을 떼어냈기에 새누리당의 단독 180석 돌파도 예측되었지만, 문재인이 수도권에서 대승하여 더불어민주당이 1당이 된다.[18] 또한 국회선진화법 아래에서 민주+국민 쪽으로도, 새누리+국민 쪽으로도 180석이 되지 못 해서 제3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어필하지 못 하게 되고, 3당이 합의해야만 굴러가는 식물국회로 돌입했다.

2016년 8월 28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안철수는 다른 대권주자들 중에서 박근혜탄핵을 주장한 시점이 빠른 편이지만, 그리 주목 받지 못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당 장악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새로운 원내대표로 호남계 인사가 당선되면서 그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그 이후 당대표 마저 박지원이 당선되면서 당 내 입지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여 출마 전선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였다. 국민의당이 사실상 호남 자민련으로 변하면서 안철수의 행보도 불투명해졌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2017년 3월 31일, 안철수는 사면심사위원회를 활성화하여 대통령의 사면권한 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하였고# 그 과정에서 기자가 박근혜의 사면에 대해 물었을 때 '국민이 원한다면 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 발언하였다. 일각에서는 '박근혜를 사면하려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였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안철수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국민의당과 안철수측은 이에 반발하며, 대통령의 사면권한 남용방지를 위한 원론적인 입장표명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 비방을 중지하라고 대응했다. 이에 대해 다시 안철수를 비판하는 측은 '국민이 원한다면 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는 발언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이라는 전제가 모호하며 후에 다시 말 바꾸기를 하려는것 아니냐"며 안철수를 비판했고 이에 다시 안철수의 발언을 옹호하는 측은 국민여론을 수렴하여 사면위원회가 결정할 일이며 이미 국민여론 절대 다수가 사면을 결사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를 사면 할 이유도 없는데 단지 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할 내용이라는 말을 과장하여 마치 대통령의 사면권을 박근혜를 사면시키는데 사용하는 것처럼 왜곡, 비약, 과장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오히려 이재명을 제외한 민주당 어느 후보도 박근혜 사면 불가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내로남불식 네거티브 전략은 본인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2017년 4월 4일, 경선 결과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부인인 김미경 교수의 1+1 채용 의혹, 국민의당 경선과정에서 불법 동원 의혹, 조폭 연루 의혹, 단설 유치원 관련 논란 등 수 많은 논란이 터지고 있음에도 본인은 물론이고 까지도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4. 바른정당 - 유승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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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劉承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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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19]
상황
바른정당 대선 후보
기호
4번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보수의 새희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다.

원래 2007년 당대표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해 원조 친박으로 불렸다. 그러나, 노선과 견해차이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18대 대선 직전 갈라져서 언론 등에서는 탈박이라고 불렀다.

김무성 대표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적당히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그냥저냥 일 잘하는[20] 원내대표였으나 야당과 합의하여 국회법 개정안[21]을 통과시킨 이후 여당과 청와대 간의 갈등이 일어났고, 2015년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를 주도한 그에게 배신의 정치를 운운하며 폭탄발언을 날림으로써 순식간에 친박비박간의 갈등의 중심 쟁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사퇴 연설에서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저격하는 듯한 발언을 하여 상당히 요란하게 사퇴했다. 그러던 중 3월 23일, 공천 문제와 관련하여 탈당을 선언했다. 이후 김무성의 옥새런 사건을 통해 그가 출마한 대구 동구 을이 새누리당 무공천 지역이 되었고,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무난히 당선되었다. 친박과의 갈등으로 복당이 요원해보였으나 6월 16일 비대위의 결정으로 전격적으로 복당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도 친박과 비박간의 갈등이 있었다.

진보 계열에서도 '말이 통하는 보수'라고 불리며 반감이 적다는 것 또한 강점이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정치적인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알려지면서 최소한 2007년부터 박근혜의 연설문이 당 외부의 어딘가를 거쳐서 수정되었다는 의혹이 다시 제기되었다. 이때 2005년 박근혜 당대표 비서실장으로 10개월 일하고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 정책메시지단장을 역임하는 등 원조친박이었던 유승민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 쟁점이었다.[22] 거기에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인 TK 지역에서는 이미 배신자로 낙인찍혀 큰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2017년 1월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7년 2월 1일,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강력하게 부상하는 대선 후보로 점쳐졌다. 기존 반기문이 소유하고 있던 보수 지지세를 등에 업을 수 있고, 본인이 추구하는 이미지 또한 반기문 보다 좀 더 젊고 진보적인 보수 이미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대선 후보로서 유리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 후보 단일화론을 주장하면서, 탄핵 정국 이후 자유한국당에 대한 반발이 극에 달한 기존 야당 지지층은 물론 중도~중도보수층의 지지도 얻지 못했으며, 극우에 가까운 보수는 투표를 안하면 안했지, 바른정당을 지지할 생각을 안하고 중도층에게는 안철수가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자유한국당국민의당에게 샌드위치를 당하는 신세이기 때문이었다.

2017년 3월 28일, 경선 결과 바른정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2.5. 정의당 - 심상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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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沈相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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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2월 20일, 경기도 파주군[23]
17대 대선
민주노동당 경선 2위
18대 대선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진보정의당)
상황
정의당 대선 후보
기호
5번

노동이 당당한 나라,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

정의당 3선 국회의원이다.

20대 총선 당시 고양시 갑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야권연대가 불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2.97%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며 본인의 높은 확장성을 입증했다.

박근혜 탄핵 소추 과정에서 야당 3당 공조를 이끌어낸 커맨더 역할을 휼륭하게 수행하며 지지율과 인지도가 올랐고 팬클럽도 생겼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2017년 1월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7년 2월 16일, 경선 결과 정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24]


2.6. 새누리당 - 조원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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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 (趙源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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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25]
상황
새누리당 대선 후보
기호
6번

대한민국을 확실히 살릴 대통령

소위 삼성동계로 칭해지는 강성 친박의 일원이며 새누리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현재의 새누리당은 친박단체 탄기국, 박사모 측에서 독자적으로 결성한 정당으로, 자유한국당으로 개칭한 구 새누리당과는 전혀 계보가 다른 정당이다. 다만, 완전히 다른 정당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이 새누리당에 자유한국당 극성 친박이 가담할 수도 있다. 더불어, 사실상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중 강경파들이 모여서 만든 원외 프리덤 코커스 같은 존재라서 완전히 다르다고 보기는 힘들다.

4월 8일 개최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자유한국당을 얼치기 우파 정당이라고 비난, 탈당을 선언하였다. 새누리당 합류 이후 출마가 유력해졌으며,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 역시 "국회의원이 있는 정당과 없는 정당은 하늘땅 차이로 다르다"며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분을 영입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고 그 분이 오늘 여기 나오셨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원진은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최종 추대되었다. 이로 인해 홍준표자유한국당은 어느 정도 타격을 입게되었다. 가뜩이나 홍준표는 2위로 최종 경선에서 탈락한 김진태의 지지자들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탄핵 반대세력을 달래고자 박근혜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으며 친박계를 선대위나 당직에 대거 등용하기도 하였다.[26][27]

하지만 조원진의 대선 출마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 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탈당과 대선 출마로 인해 강성 친박 지지자들의 일부가 이탈할 것이 예상되면서 자유한국당의 후보 홍준표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다급해진 나머지 새누리당바른정당은 함께 가야할 존재라며 보수대연합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지지자들의 성향도 다르고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 뻔한 단일화를 양쪽이 응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고 조원진 본인도 완주를 선언했다.[28]


3. 원외 정당[편집]



3.1. 경제애국당 - 오영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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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국 (吳永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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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7년 8월 21일, 제주도 남제주군[29]
상황
경제애국당 대선 후보
기호
7번

경제대국-국민행복, 문제는? 경제다!!

경제대통령

의료기 제조회사인 하하그룹 회장. 가정용 대장 세척기를 개발하여 국내외에서 특허를 받고, 대한민국 유망 중소기업 대상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경력을 보유한 기업인이다.

대선후보 등록 마감을 겨우 열흘 앞둔 2017년 4월 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최종후보로까지 등록했다.

본인이 말하는 출마 동기를 보면, 경제애국당원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권유를 받고 "대한민국을 경제대국, 잘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전 인류가 잘 살고 행복한 지구촌, 전쟁 없고 분쟁 없는 지구촌"으로 만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3.2. 국민대통합당 - 장성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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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 (張誠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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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3년 9월 5일, 전라남도 고흥군
상황
국민대통합당 대선후보
기호
8번

99% 국민에게 희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택 비서를 거쳐,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17대 대선에서 국민선택이라는 정당을 창당하여 대선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가장 최근에는 TV조선에서 장성민의 시사탱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나 진행 능력에 논란이 제기되면서 하차한 상태다. 2016년 12월 21일,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5.18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2017년 1월 17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자세한 구상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2017년 1월 11일, 국민의당에 입당해 안철수와 경선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5.18 민주화 운동 폄훼 발언 논란으로 인해, 당내 국회의원 39명 중 23명이 호남을 지역구로하는 국민의당은 호남 여론을 의식하여 입당을 유보하였고, 결국 국민의당 입당이 불허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집사로, 기독자유당을 만들었던 전광훈 목사가 지지를 선언한 후보이기도 하다.기독일보, 합동헤럴드, 뉴스앤조이

2017년 3월 27일, 본인을 중심으로 창당된 국민대통합당 창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이후 4월 3일, 정당 등록에 성공하였다.

2017년 5월 2일, 지지세력의 한 축이었던 전광훈기독자유당이 돌연 홍준표 지지를 선언하였다.# 그것도 장성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3.3. 늘푸른한국당 - 이재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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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李在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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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5년 1월 11일, 강원도 강릉군 묵호읍[30]
상황
늘푸른한국당 대선 후보
기호
9번

개헌 대통령

이명박 정부 시절 실세로 불린 친이계 좌장.

20대 총선친박계가 주도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 후 무소속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 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그 후 복당하지 않고 최병국 등과 함께 중도 성향의 신당 창당 작업에 착수, 2016년 8월 10일 '중도신당' 현판식, 8월 16일 늘푸른한국당(약칭 : 늘푸른당) 당명 결정, 9월 6일 중앙관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 대회를 거쳐 마침내 2017년 1월 11일, 정식으로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하였다.

2016년 말, 정계를 통째로 뒤흔들 핵폭탄급 정계개편 소요가 발생하자 정계 개편의 한 축으로 떠오를 것이 예상되었으나, 원외정당인데다 또다른 중도 성향 정당들인 국민의당바른정당과도 다른 애매한 포지션으로 인해 정치권 및 언론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상태.[31]

창당과 함께 손학규, 정운찬 등을 대선후보로 영입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자, 당 대선기획단은 2017년 2월 16일에 전체회의를 열어 이재오를 대선 후보로 추대하기로 결의하였다.# 마침내 2월 28일, 전체 당직자 연석회의에서 72명 중 67명(92%)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대선 후보로 추대되었다.# 3월 12일, 대선후보 추대를 수락하였다.#

3월 20일,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15명 중 유일하게 반공법 위반 전과가 있다. 의외로 통일공약만큼은 정의당 수준으로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워서 군소후보 토론회 최대의 승자였다는 평.


3.4. 민중연합당 - 김선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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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동 (金先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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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7년 9월 9일, 전라남도 고흥군
상황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기호
10번

이제는 세상을 바꾸자, 민중후보 김선동

제18,19대 순천시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트려, 마약류 및 총기류 소지 법률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32]

2017년 2월 2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내 경선 예비후보로 단독출마,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3월 25일, 투표 결과 찬성 9,677표(95.4%)를 득표해 민중연합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33] 그리고 4월 15일, 이재오와 함께 후보 등록을 했다.


3.5. 한국국민당 - 이경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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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李京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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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4년 1월 20일, 충청북도 단양군[34]
상황
한국국민당 대선 후보
기호
12번

통일이 답이다, 민족통일 대통령 이경희

2015년에 윤영오와 함께 중도 성향의 정당인 한국국민당을 창당한 당 대표이다, 3·1 만세운동 정신을 계승한 민본정치, 중도정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민족주의에 중도 성향이지만 비례대표 발언 영상등을 보면 재벌 개혁, 여성 청소년 인권, 노인 복지와 2030세대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며 2030세대의 희생을 강요하고 복지를 멀리하며 찬성식 투표를 하는 현 세태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둥 중도라고는 해도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이 우선인듯하다.

그렇지만 비례대표와 후보 본인이 의견이 같은지는 미지수이다. 당 홈페이지에 후보 모집이나 경선내용도 안 올라왔는데 등록된 것을 보면 사실상 확정인듯.

여담으로, 전과 5범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아래 김정선, 김환생의 3건보다 많으며 후보자 중 최다 전과이다.


3.6. 홍익당 - 윤홍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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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尹泓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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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4년 2월 2일, 전라남도 광주시[35]
상황
홍익당 대선 후보
기호
14번

양심이 승리하는 세상!

양심대통령

동서양 철학과 고전을 통한 윤리교육, 양심교육으로 알려진 인문학 단체 홍익학당의 대표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2016년 11월 25일, "양심이 답이다"를 기치로 내걸고 당리당략이 아닌 양심으로 하는 양심정치, 분열과 대립이 아닌 정의로운 양심국가의 건설을 외치며 홍익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2017년 3월 26일, 창당대회를 열었으며 4월 10일에 정당등록되었다.

2017년 4월 7일,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4. 무소속[편집]



4.1. 김민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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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찬 (金旻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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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2월 4일, 서울특별시
상황
무소속 대선 후보
기호
15번
[1] 현 거제시[2] 실제로 문재인은 대입 재수생이다. 종로학원 진입 시험 1등으로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하였다.[3] 김영삼 전 대통령도 2번 도전, 김대중 전 대통령도 4번 도전 끝에 당선됐다.[4] 제17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탈락하였으나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당선되어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검증을 잘 못해서 이런 정책을 펼쳤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썰전에서 유시민전원책이 한 말처럼 박근혜 당시 후보에 대해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논란이 있지만, 최순실이 언론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시점에서 터졌기 때문에, 언론플레이로 보는 의견이 다수다. 증언도 사람마다 엇갈리고, 그때 문재인 전 대표는 참여정부 비서실장이라서, 논란에 대한 책임도 얼마만큼 짊어질지를 알 길이 없다. 또한 교차 검증이 가능한 다른 유의미한 증거가 아직 부족하다.[5] 문재인 지지자들은 특히 다른 경선후보 지지 의원들에게 18원 후원금이나 문자 폭탄을 보냄으로써 그들에게 상처를 안겨주었고, 이는 선대위 구성에서 박영선, 변재일 의원이 선대위 합류를 거부하고 김종인 의원이 탈당을 하며 이언주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으로의 입당을 결정하게 되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이로 인해 문재인 후보는 안희정, 이재명 지지자들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게 되었다.[6] 사실 문재인의 지지세가 상승한 것은 박근혜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박근혜탄핵되고 나자 이제는 적폐청산 외에도 다른 것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문재인 본인과 문재인 캠프에서는 그러한 방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7] 15대 대선, 16대 대선에서 대세론을 형성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도 아들 병역 특혜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김대중노무현 후보에게 연속해서 패배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문재인의 모습에서 이회창의 모습이 겹친다고 말하고 있다.[8] 홍준표는 박근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여럿 했었다.[9] 홍준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 대해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고 있다. 이러한 점은 강경 보수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요소로 꼽힌다.[10] 친박에 속하는 이인제, 김진태 후보의 경우 바른정당과의 단일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전부터 단일화를 주장해왔던 유승민조차 친박의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와는 단일화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상황이라 불가능하지만, 홍준표 후보는 친박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른정당과의 단일화에 용이하다.[11] 실제로 바른정당의 대선후보인 유승민출마자격도 없는 사람이 출마한다며 홍준표의 이러한 약점을 계속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향후 대선행보에 있어서도 다른 진영의 후보들이 계속해서 홍준표를 공격하는 요소로 쓸 것이 뻔하다.[12] 심지어 중도로 분류되는 국민의당과는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13] 경제 면에서는 가계부채 증가, 청년실업 증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몇백조 원에 달하는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발생한 책임이 있으며, 외교 면에서 홍준표 후보조차도 졸속이라고 평가하는 위안부 협정, 미중간 어중간한 줄타기로 인한 대미,대중관계 악화등이 있다.[14] 무엇보다 홍준표는 예전부터 박근혜를 비판한 인물이다.[15] 바른정당은 홍준표가 성완종 리스트로 재판받고 있는 점, 친박 인적청산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아 단일화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16] 다만 역설적으로, 이탈이 더 빨라질 경우 바른정당이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친박 청산이 자동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이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17]밀양시[18] 당시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적폐들을 안철수가 데리고 나가줬다"고 판단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이 "안크나이트" 유머 시리즈로 정리되곤 하였다. 1편이 2016년 총선, 2편이 2017년 대선, 3편이 2018년 지선.[19]대구광역시[20] 이철희 소장이 썰전에서 지속적으로 KY 체제에 칭찬을 할 정도로 김무성 대표와의 궁합도 좋고, 일도 잘했다.[21] 대통령 시행령을 국회가 수정할 수 있게 요구->청하는 법안이다.[22] 일단 이 부분은, 정황상 유승민이 박근혜와 친한 사람 중에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모를리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본인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 편이었다. 다만 최순실이 구체적으로 어떤 짓을 했는지를, 그리고 연설문을 고치던 사람이 최순실이라는 것을 유승민이 알았는지의 여부가 핵심 떡밥이었다.[23] 현 경기도 파주시[24] 이로써 심상정 대표는 두 번 연속으로 진보정의당, 정의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25]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26] 실제로 선대위의 명단이나 당직 인사를 자세히 보면 친박계가 중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7] 더불어민주당 조차 현재 문재인안희정이재명의 표를 제대로 못 긁어와서 안철수와 접전을 했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진박세력의 존재 때문인데 진박 표를 뜯기게 되면 자유한국당은 말 그대로 싸그리 다 아작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28]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바른정당은 대통령 탄핵과 구속을 주도한 역적 세력이며 같이 갈 수 없다는 입장이며 이는 자유한국당의 주축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강성 친박 지지세력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장 당내 최종경선 2,3위를 차지한 김진태와 이인제는 바른정당과의 단일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선 과정내내 홍준표 후보와 각을 세웠다. 당내 세력기반이 미약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 입장에서는 이들을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홍준표 후보가 바른정당과의 단일화를 시도한다면 자유한국당의 주축세력인 강성 친박지지 세력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다. 바른정당 입장에서도 이들과 단일화를 해버리면 창당명분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지지층들도 대부분 안철수 후보 쪽으로 이탈해버릴 것이라는 여론조사도 나온 상황이라 실리도 없는 단일화를 단행할 이유가 없다.[29]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30]강원도 동해시[31] 국민의당은 호남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계 정당이며, 바른정당은 김무성, 유승민 등 보수성향이 강한 인물들이 중심이 된 정당. 이에 반해 이재오는 친이계 인사이자, 민중민주주의 계열 운동권 출신이라 국민의당과도, 바른정당과도 함께하기 쉽지 않다. 이재오늘푸른한국당의 성향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 참조[32] 그 공석은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넘어갔다.[33] 민중연합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투표 방식은 온라인 투표와 ARS 투표를 통한 찬/반 투표였으며, 유효 선거권자 14,072명 중 10,148명(72.1%)이 투표했고, 김선동 후보는 온라인 투표에서 6,921표의 찬성표와 210표의 반대표, ARS 투표에서 2,756표의 찬성표와 261표의 반대표를 얻었다고 한다.[34] 기사 하단 참조[35]광주광역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습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람

매년 주한외국대사관의 날 행사를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하며 주한외국대사관들과 국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월드마스터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비영리단체다.#

2017년 3월 17일,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그리고 최종후보로 등록해 유일한 무소속 후보가 되었다.


5. 경선 참여자[편집]


아래 인물들은 한 정당의 경선에 참여한 인물들이다.[36]


5.1. 더불어민주당[편집]



5.1.1. 안희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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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安熙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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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5년 5월 1일, 충청남도 논산군[37]
상황
경선 탈락 - 2위

정권교체 그 이상의 가치

경선 당시 충청남도지사로, 통일민주당 김덕룡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16대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일하며 민주당에 입당했다. 중앙 정치에서 활동하지 않아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는 대중적인 인지도에서 밀리는 편이지만, 충청남도지사를 두 번 연임하며 행정력을 보이고 있다. 시도지사 직무 평가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2014년부터 이미 대권에 뜻이 있음을 미리 밝히기도 했다. 게다가, 다른 대권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차기 대권 뿐만 아니라 차차기 대권까지도 생각하는 듯 하다.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청와대로 가겠다는 꿈은 분명히 갖고 있는 듯하다.

다만, 그의 기본적인 성향이나 정치 역정 등을 따진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 경선에 나섬으로써 자신을 대권 주자로 확실히 데뷔하는 신고식 자리로 활용할 것이고,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경선때 부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인은 이런 '차차기 후보'란 시선에 대해 불쾌감을 표하기는 했다.#

설령 경선에서 낙선하더라도 20대 대선을 노려볼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있는 부분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문수의 사례처럼 지자체장 사퇴를 하지 않은 채로 경선에 직접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견을 내놓고, 팽목항을 방문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등 대권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모습이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2017년 1월 2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충청권 및 중도층을 상당수 흡수하였지만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선의로 그랬을 것이라는 이른바 선의 발언과, 자유한국당과도 연대할 수 있다는 대연정 발언, THAAD 배치와 위안부 협약등을 인정하는 듯한 태세와 이승만, 박정희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말하는 등 2월 후반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아 전망이 어두운 편이다.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해 경선에서 탈락했다.

5.1.2. 이재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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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李在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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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4년 12월 22일[38], 경상북도 안동군[39]
상황
경선 탈락 - 3위

이재명은 합니다!

경선 당시 성남시장으로 안상수 창원시장과 더불어 기초자치단체장으로서는 유일하게 거론되는 대권 주자이다. SNS에서의 활발한 소통으로 일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노무현을 연상하게 하는 솔직하면서 강경한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별명과 전투형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강한 발언과 신흥 주자라는 점 때문에 한국의 트럼프, 한국의 샌더스라고 불리기도 한다.[40]

2016년 9월 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성남시장을 거치며 어느 정도 검증된 능력과 활발한 SNS 소통을 통해 2030세대를 기반으로 점점 확장하다가 박근혜 하야 발언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안철수를 넘어 반기문까지 위협하는 지지세를 기록하며, 차기 대권 주자로서 영향력을 점점 발휘하고 있다.

성남시 주민의 강한 지지와 중도~좌파, 진보세력, 일부 2030세대의 지지도 베이스로 하고 있으며 본인이 흙수저 출신 지체장애인이라는 점,[41]페미니즘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크다는 점[42]으로 서민층, 신좌파층에게도 지지를 얻고 있다.

다만, 그의 강경하고 직설적인 발언이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만큼 반대파에게는 반감을 가지게 만들고[43], 과거 논문 표절과[44] 음주운전 등과 같은 논란 그리고 정치적 기반이 약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45] 특히 음주운전은 자칫 잘못하면 후보 검증 과정에서 낙마할 수도 있는 중대한 요소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또한 경력 면에서도 기초자치단체장만 역임했다는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수도권에서 문재인에게 밀렸으나 2등을 하였으며, 결국 경선에서 탈락했다.

5.1.3. 최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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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 (崔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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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3년 8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시[46]
상황
경선 탈락 - 4위

김대중·노무현 정신으로 정권교체

現 고양시장이다.

고양시의 부채를 재임 기간 내에 청산하기도 했고, 티스푼 공사였다는 비판도 있지만, 능곡 지역의 골칫거리였던 삼성 건널목 문제를 처리했다. 또 고양시와 고양이가 음이 비슷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고양이를 고양시 홍보에 이용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하는 것도 하였었다. 고양시/SNS 항목 참조. 시정관련 호평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재명 성남시장, 박주민 국회의원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선 몇 안되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기도 하다.#

반면, 선거 당시 약속했던 서정초등학교 옆 방사선 공장 문제 해결을 못하면서 학부모들은 한 달이 넘는 기간 시청 앞에서 천막 시위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유치원 옆 자동차 정비 공장, 산황동 정수장 옆 스프링힐스 골프장 증설 문제, 백마중학교 앞 지하차도 출입구 건설 문제, 고양동 동물 화장터 설치 문제 등 각종 민원 처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행보를 보면 이재명 성남시장보다 부족할진 몰라도 비슷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젊고 떠오르는 재선 시장이며 빚을 탕감하고 차기 경기도지사 유력 후보 중 한 명이라는 점이 같다.

2017년 1월 5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아서 안희정, 이재명만큼 득표할 수 없었고, 결국 경선에서 탈락했다.


5.2. 자유한국당[편집]



5.2.1. 김관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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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金寬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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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2년 11월 29일, 경상북도 선산군[47]
상황
경선 탈락 - 4위

야당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후보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구미시장으로 당선되어 3선 구미시장을 거쳐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로 당선되면서 3선 경상북도지사를 지내고 있다.

중앙 정치권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나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새누리당의 내홍 과정에서 이인제, 정갑윤과 함께 혁신과통합 보수연합의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2017년 2월 1일,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출마 선언은 당이 어느 정도 추스러질 때 하겠다면서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자유한국당 19대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했으나, 당원 3위(12.2%), 여론조사 4위(11.2%)로 합산 11.70% 4위로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다.#


5.2.2. 김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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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金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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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2월 1일, 강원도 원성군[48]
상황
1차 컷오프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으로 친박 성향 논객으로 유명하다.

2017년 2월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하지만, 1차 컷오프에서 조경태, 신용한과 같이 탈락하였다.#


5.2.3. 김진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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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金鎭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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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4년 10월 13일, 강원도 춘천시
상황
경선 탈락 - 2위

하나된 보수 유일한 대안, 대한민국의 힘(him)!

공안검사 출신의 재선 국회의원이다.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이래 김영란법 반대, 세월호 인양 거부, 백남기 농민 관련 발언, 그리고 촛불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물로,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촛불집회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한편, 거의 매주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며 탄핵 기각 또는 각하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극우 성향의 사람들로부터 홍준표만큼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2017년 3월 14일, 애국시민들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상처를 어루만져 드리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탄핵에 대한 여론#이나 심판 결과를 감안하면 표의 확장성은 매우 낮는 수준. 강성 친박 세력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정식 창당할 경우 그곳으로 당적을 옮겨 출마할 가능성도 높았지만, 박사모 대표 정광용에 따르면, 김진태는 자유한국당에서 출마하기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3월 16일, 황교안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출마가 확실해지자, 탄기국 대변인 정광용은 박사모 카페를 통해 김진태 지지를 선언하였다.#

3월 17일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 비전발표대회에서, 김진태의 지지자들이 500명 이상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고 김진태를 연호했다. 최근에는 지지율이 5프로대로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어 홍준표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박근혜를 지지하는 아스팔트 보수층 지지율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의 최종 국정지지율은 4~5%대였다. 하지만 친박단체를 제외하고는 비토층이 너무 많은 관계로 본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같은 경선 후보였던 안상수가 제기한바 있다. 김진태는 토론회에서 노골적으로 강성 친박임을 드러내었는데 이러한 점은 경선에서는 박근혜 지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본선인 대선에서는 확실히 악재다. 대선은 결국 중도층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나는데 김진태는 이러한 점에서 확실히 낙제점을 가지고 있다.[49]

정치인이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큰 지지를 받는 경우도 있다. 또 자신의 목소리를 많은 국민이 듣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허나 박근혜는 국민들의 큰 비판을 받으며 탄핵당한 대통령이란 점에서 볼 때 박근혜를 옹호한 김진태가 당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자유한국당 19대 대선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당원 2위(21.1%), 여론조사 3위(17.5%), 합산 2위(19.3%)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다.#

경선에 탈락하고 난 후 김진태는 친박집회에서 자신이 이번에 처음으로 고시, 선거를 통틀어 처음으로 실패했다며 자신의 수난사에 기록하겠다는 말을 했다. 향후 김진태의 존재는 차기 정부에 있어서 큰 악재가 될 게 뻔하다. 현 상황상 자유한국당 후보가 아닌 다른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지위를 이용하여 개혁입법을 철저히 방해할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50]

그래서인지, 김진태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받고 있는 상황이라 제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 의원직을 상실하기를 바라는 의원들이 많다는 풍문도 들리는 실정이다.


5.2.4. 신용한[편집]



동명이인의 강사가 아니라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이다.

2017년 3월 7일, 보수의 세대교차를 이루겠다고 밝히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1차 컷오프에서 조경태, 김진과 같이 탈락하였다.


5.2.5. 안상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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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安相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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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6년 5월 28일, 충청남도 서산군[51]
18대 대선
새누리당 경선 5위
상황
2차 컷오프

일자리 대통령

동명이인 안상수가 아닌, 인천광역시장을 역임한 현직 국회의원이다.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결혼과 집, 꿈, 사람답게 사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족한 일자리가 문제 라며 대선 출마의 뜻이 있음을 밝혔다.

2017년 2월 2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경선 의향층 3위에 들며, 나름 다른 군소 후보들과 달리 가능성과 지지층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그러하여, 1차 컷오프까지는 통과했으나 결국 2차 컷오프의 벽을 넘지 못했다.


5.2.6. 원유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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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철 (元裕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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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2년 9월 26일, 경기도 송탄시[52]
상황
2차 컷오프

든든한 대통령, 강한 대한민국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다.

현재 대권주자 기근 상태인 새누리당의 위기상태에 본인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공약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북한 핵에 대응하는 조건부 핵무장 계획, 규제 개혁, 유라시아 철도 연결 등을 발표하였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는데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중에서 나경원, 안상수와 함께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자유한국당 소속 정치인이며, 유일하게 친박 집회 찬성을 자제해달라고 말한 대선 후보였다.[53]#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퇴거 당시 입장문을 읽고 사저에서 만나는 등 친박 행보도 보였다.

이러한 애매한 행보 때문인지 나름 원내대표까지 했던 중진이었으나, 2차 컷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5.2.7. 이인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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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李仁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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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8년 12월 11일, 충청남도 논산군[54]
15대 대선
본선 3위 (19.2%, 국민신당)
16대 대선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사퇴
17대 대선
본선 6위 (0.7%, 민주당)
18대 대선
선진통일당 대선 경선 후보 사퇴
상황
경선 탈락 - 3위

대역전의 시작 불사조[* 진짜 공식 슬로건이다(…).] 이인제

판사 출신 노동인권 변호사에서 최연소 노동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역임, 제15대 대통령 선거제17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왔으며 특히 제15대 대선에서는 연고지 몰표 없이 19.2%를 득표하였다. 또한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제16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도 위력을 과시하고,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으로 변경하여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주선하는 등, 나름 충청권 정치 거물이었다. YS에게 발탁되어 DJ에게 갔다 JP를 거쳐 이후 다시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되는 등 좌우 가리지 않는 당적 변경을 하고도 30여년간 살아남았다.

2016년 12월 11일, 새누리당 친박계 50여명이 참여한 혁신과통합연합의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2016년 12월 12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새누리당 분당으로 인해 대선 후보를 내기는 내야 했으니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은 높았다. 게다가, 최고위원 시절 대표 최고위원 경선에서 서청원보다 높은 국민여론으로 2위의 지지를 받은 적도 있기에 확장성이 높다는 점도 강점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를 강하게 옹호하는 행적으로 인해 실제 선거에서 지지를 받는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당적을 자주 옮겼다는 점 때문에 당원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점도 있었다.[55]

자유한국당 19대 대선 후보 선충 경선에서 당원 4위(5.1%) 여론조사 2위(24.6%)의 득표로 합산 3위(14.85%)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다.#


5.2.8. 조경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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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태 (趙慶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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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8년 1월 10일, 경상남도 고성군
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예비선거 탈락
상황
1차 컷오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직을 옮겼으며 강점으론 부산의 지지세가 강하는 것이다. 2016년 이전까지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사하구 을에서 3선 연임을 했다는 점이 이를 보증했다.

2017년 3월 13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1차 컷오프에서 김진, 신용한과 같이 탈락하였다.


5.3. 국민의당[편집]



5.3.1. 김원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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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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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5년 8월 21일
상황
컷오프
전 양주시 지방세 심의위원회 위원장, 무료 세무상담위원이자 현 양주경제사무소 소장이다.

2017년 3월 14일, 국민의당 경선 후보로 등록하였다.#


5.3.2. 박주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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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 (朴柱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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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9년 7월 23일, 전라남도 보성군
상황
경선 탈락 -3위

대연합과 협치, 국민의당 집권카드

제20대 국회 상반기 국회부의장이자 국민의당 중진 의원이다.

2017년 3월 14일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구현하겠다. 국민통합과 협치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다른 경선후보들과 달리 인지도가 낮아 3위로 경선에서 탈락했다.


5.3.3. 손학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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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孫鶴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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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7년 11월 22일, 경기도 시흥군[56]
17대 대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2위
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2위
상황
경선 탈락 -2위

믿을 수 있는 변화, 손학규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31대 경기도지사를 지냈고, 옛 민주당대표를 역임하기도 한 거물급 정치인이다. 사실상 대통령, 국무총리 빼고 어지간한 자리는 다 해봤다. YS 키즈의 일원.[57]

상당히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을 걸어온 인물로, 한때 한나라당 소속이었다가 당내 대선 경쟁에서 밀려 탈당한 이후 2007년부터는 야권 소속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18대 대선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해 문재인과 당 내 경선을 벌이기도 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 7월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강진군 백련사 근처에서 칩거 생활을 하며 한동안 정치권에서는 잠잠했으나, 약 1년 뒤 새정치민주연합2015년 10월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문재인 대표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그의 경기도지사 때의 무난한 행정 능력, 두 번의 당대표 경력, 보수 정당 출신이었던 경력으로 인한 중도보수세력 표심 흡수가 가능하다는 점으로 인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본인은 대권 출마 및 정치계 복귀 의지가 없다고 밝혔으며, 이전에도 정계 은퇴 선언 및 복귀가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섣부른 복귀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2016년 10월 20일,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했다.

2017년 1월 14일, 국민주권개혁회의를 만들었다.

2017년 2월 7일 국민의당에 합류하였다.#

2017년 3월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5.3.4. 양필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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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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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7년 8월 25일, 전라남도 광주시[58]
상황
컷오프
로컴의 CEO로 22인의 친구라는 위안부 자선기금 단체 설립으로 몇번 언론에 공개되었다. 2016년 12월 말 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2017년 3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다만, 본인의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안철수, 손학규, 천정배 등 거물들이 있는 국민의당의 경선 승리부터가 깜깜하다. 아니나 다를까 중앙일보에 광고를 내고 예비경선에서 이 경선은 불법#이라고 난동을 부렸다가 끌려나갔으며#, 결국 컷오프를 당했다.


5.3.5. 이상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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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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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7년 6월 20일
상황
컷오프
2017년 3월 14일, 국민의당 경선 후보로 등록하였다.#


5.4. 바른정당[편집]



5.4.1. 남경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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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南景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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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5년 1월 20일, 경기도 용인군[59]
상황
경선탈락 - 2위

준비된 미래 남경필

남원정의 일원 중 한명으로 정치경력 내내 쇄신파, 소장파의 길을 걸어와 잠재적 대권주자로 항상 포함된다. 하지만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아들이 군대에서 군 복무 중 폭행강제추행사건을 일으켜서, 구속되어 이회창이나 정몽준처럼 아들내미 문제를 안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일이 터진 시점이 하필이면 임 병장 사건하고 윤 일병 사건으로 군내 가혹행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한창 들끊던 때라 더더욱 발목을 잡히게 되었다.

경기도 행정을 연정 개념으로 잘 이끈 덕에 경기도 내에서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 연정조차도 성남시에서 자체 잉여 재정으로 시행하려던 3대 무상복지를 저지하면서 금이 가고 있는 상태.

게다가 20대 총선에서 경기도의 핵심인 서울 위성도시권을 더불어민주당에서 거의 다 싹쓸이하는 바람에 도정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한 저지는 대체적으로 당의 압박 때문이며, 본인은 20대 총선 이후의 정국에서도 연정을 위해 부지사 자리 하나를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국회의원에게 양보하고 권한 또한 더불어민주당에 더 많이 양보하는 등 이른바 연정 2.0을 일궈내려 노력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5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었으나# 2016년 들어서 대권 도전 가능성을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윤여준 전 장관을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 단장으로 임명하는 등 대선 불출마 선언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6년 9월 2일, CBS와의 인터뷰에서는 대권 도전에 대한 결정은 내년에 밝힐 것이고 만약에 대권 도전을 한다면 모병제를 공약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9월 7일 당내 잠룡중에 한명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한림대학교 강연에서 자신의 모병제 주장을 비판하자 공개토론을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서 당내 잠룡들간의 대권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

2017년 1월 2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유승민에 밀려 경선에서 탈락하였다.


5.5. 정의당[편집]



5.5.1. 강상구[편집]



파일:정의당 V 로고.png
강상구 (姜相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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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1년 11월 5일, 전라북도 김제군[60]
상황
경선 탈락 - 2위

가슴 뛰는 변화

민주노동당을 시작으로 진보신당, 정의당 대변인을 지냈었다.

정치혁명의 출발은 진보정치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주기 위해서 출마선언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의당 내에선 심상정 대표가 확실히 이길 듯한 분위기이며 인지도 또한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천호선, 조승수 등 당내 유명 인사들에게 확실히 밀려 정의당 대선 후보로 나서긴 어렵다는 여론이 많으나, 이번 기회로 인지도가 상승될 수도 있다.

2월 16일 경선 결과 심상정 대표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밀려 탈락했다. 인지도와 경력 모두 심상정 대표에게 크게 밀렸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이변을 만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5.6. 새누리당[편집]



5.6.1. 변희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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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邉熙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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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4년 4월 22일, 경기도 강화군[61]
상황
경선 후보 사퇴
미디어워치의 대표 고문이자, 일베저장소 인증과 진중권 등의 진보 논객들과의 토론으로 유명한 보수 논객이다.

자유한국당에서 본인들이 밀던 김진태가 경선 탈락하자 대선 후보를 낼 필요가 있다는 말에 출마 선언을 하였다. 그렇지만 박사모나 탄기국 측에선 그렇게까지 긍정적이진 않은 편이며 차라리 김진태, 남재준을 데려 오라는 의견이 많다.

새누리당 경선 후보로 나섰지만#, 조원진이 새누리당에 입당함에 따라 타 경선주자들과 함께 조원진 추대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경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5.6.2. 정광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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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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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3월,경상북도 영일군[62]
상황
경선 후보 사퇴
박사모 회장이자 탄기국 대변인이다.

문재인을 고소하고 손석희, 이정미, 강일원, 김이수, 김수남등에게 욕설과 비방을 자주 하며, 유재석, 김제동, 박명수, 정우성[63] 등 방송인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4월 3일 폭력시위 혐의로 3차 출석 요구까지 받았다.

새누리당 경선 후보로 나섰다.# 박사모에서 설득하여 대선 후보로 선출한 데다, 새누리당 차기 대표로 추대하고 싶다고 밝힌 만큼 변희재, 정미홍보다 당내 경선에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조원진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자 4월 8일 친박집회에서 조원진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이어 정미홍이 타 경선 후보들과 함께 조원진 추대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경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5.6.3. 정미홍[편집]



전직 KBS 아나운서로 박사모의 친박 집회에서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며 다시금 화제를 끌고 있는 인물이다.

친박 극우적 발언의 도가 가히 변희재, 김진태, 정광용, 서석구, 김문수에 견주거나 능가할 정도인 데다가 기존 박사모 층도 큰 거부감이 없는 듯 하다.

새누리당 경선 후보로로 나섰지만,# 조원진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자 4월 8일 친박집회에서 타 경선주자들과 함께 조원진 추대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경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5.6.4. 허평환[편집]



전 기무사령관. 전역 후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행복당을 창당했으나 득표율 미달로 당시 선거법과 정당법에 의해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에는 문재인 캠프의 안보 정책 특보로 영입됐으나, 발표된 지 불과 3시간 30분만에 새누리당에 입당해 박근혜 지지 선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

최근 친박집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종종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더니, 결국 새누리당 경선 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조원진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자 4월 8일 친박집회에서 정미홍이 타 경선 후보들과 함께 조원진 추대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경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6.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편집]


아래의 인물은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6.1. 무소속[편집]



6.1.1. 강인권[편집]



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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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0년 12월 6일, 제주도 남제주군[64]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36] 한 정당으로부터 추대받았으나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인물은 불출마자로 다룬다.[37]논산시[38] 형제들이 일찍 죽어 생일을 늦추려는 과정에 어머니가 이재명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점쟁이 에게 물어 정한 생일이다.[39] 현 경상북도 안동시[40] 사실 포지션은 트럼프보단 샌더스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성향도 비슷하며 민주당 내 2위인 데다 2030세대, 중도~좌파, 진보층의 지지를 근간으로 하고 신흥 대권주자라는 점이 가깝기 때문.[41] 초등학교 졸업 이후 돈을 모으기 위하여 공장으로 갔고 그곳에서 프레스기에 팔이 들어가 왼팔이 으스러졌으며 공장의 화학 물품과 폭력을 휘두르던 작업 반장 때문에 후각 장애와 부분 청각 장애도 얻었으며 고무가 손가락에 박혀 현재도 있다. 대학은 이후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장학금으로 간 것.[42] 이재명의 굽은팔 같은 저서를 보면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문제를 이해하고 존중함이 드러난다. 실제로 워킹맘 정책이나 무지개 운동을 응원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43] 때문에 비꼬는 사람들은 이재명에 대해 진보계의 홍준표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보수에서도 홍준표의 막말 논란에 대해 질색하는 사람은 보수계의 이재명으로 부르기도 한다.[44] 훗날 논문 표절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45] 과격한 발언으로 똑같이 논란이 되는 홍준표도 이점까지도 이재명과 닮았다.[46]광주광역시 남구[47]구미시[48] 현 강원도 원주시[49] 이제는 막말로 유명한 홍준표 후보에게조차 극우, 골박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심지어 같은 강성 친박인 이인제에게 토론회에서 친박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50] 대표적으로 최순실 특검 연장법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51] 현재는 태안군. 1989년 태안군 분리 이전에는 현 태안군 전체가 서산군 관할이었다.[52]평택시[53] 물론 촛불집회도 포함해서 한 말이지만 자유한국당 내에 이런 발언을 하는 이들은 소장파 비례대표들 뿐이었다.[54]논산시[55] 실제로 대표 최고위원 경선에서 여론조사는 2위였지만, 당원투표에서 6위를 하면서 턱걸이로 간신히 지도부에 입성하기도 하였다.[56] 손학규가 출생한 곳은 현재 서울특별시 금천구이나, 손학규 본인이 줄곧 출생지를 경기도 시흥으로 표기하고 있다.[57] 이명박, 이재오 등의 인물들도 이에 포함된다. 노무현, 손학규, 이명박, 이재오, 이회창은 김영삼이 발탁하긴 했으나, 이들은 김영삼 직계보다 외부 영입인재로 분류되기에 상도동계가 아닌 YS 키즈로 분류한다. 김무성 외에는 강삼재, 김덕룡, 김무성, 박관용 등이 대표적인 상도동계 인사이다.[58]광주광역시[59]용인시[60]김제시[61]인천광역시 강화군.[62]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63] 4명 모두 진보 성향을 드러낸 적이 있으며 유재석 외 3인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등재되어 있다.[6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전직 서귀포 강피아노 학원 원장이었고, 현재는 가요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에는 지난해부터 원희룡 제주지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배짱도 없고, 중앙에 힘도 없더라"며 본인이 직접 출마했다고 밝혔다. 추천장을 받기 위해 서울-경기-부산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고 하며 본선에서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2016년 12월 기사에는 현행제도상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성금 98만원을 내놓은 서귀포 대성 퀸 가요방 대표 강인권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동일인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다.#


6.1.2. 김기천[편집]




김기천 (金基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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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9년 5월 1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세계 최고! 김기천! 세계 최고! 대한민국!

전직 의사이자 무영램프를 만들어 성공한 의료기기 제조 업체인 닥터킴의 대표이다. 동명의 배우와는 동명이인.

2017년 3월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개성공단 재개와 재벌에 대한 특권 해체를 주장하며 특권 없이 공정하고 출신, 학벌, 연고와 관계 없이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또, 재산의 분배를 주장하였다.


6.1.3. 김마리아[편집]



김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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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5년 1월 8일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6.1.4. 김순권[편집]




김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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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5년 5월 1일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노벨상 후보에도 오른 슈퍼 옥수수로 유명한 옥수수 박사이며 나이지리아의 빈민에게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를 만들어주어 명예추장이 되었던 전적이 있다.

남북통일을 시대적 소망이라고 밝히며 출마 선언을 하였다.#[65] 분권형 개헌과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하였으며 임기 3년째에 대통령직에서 사임하리라고 한다.

현재 유력 후보 중 문재인종북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보수를 끌여들이기 어렵고[66] 안철수에게는 열망이 보이지 않으며, 보수 후보들 중엔 남북관계를 진전할 후보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6.1.5. 김환생[편집]



김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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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7년 11월 18일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65] 이전에는 늘푸른한국당에서 이재오가 대선후보로 확정되기 전에 후보로 잠시 검토된 적이 있다.[66] 문재인을 종북이라고 하는 것인지 종북이라는 틀이 걸려 보수을 끌여들이기 어렵다는 뜻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프레임'에 사로 잡혔다는 표현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에.

2015년, 보루네오 가구의 대표를 약 3개월간 맡은 적이 있고[67] 현재 삼우산업개발의 대표이사로 지내고 있다.


6.1.6. 권정수[편집]



권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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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0년 5월 6일
14대 대선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친민당)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1983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한학마을을 설립 하고# 전통 서당인 신명한문서숙(新明漢文書塾)을 운영했던 시골 훈장님이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인의예지 효제충신'이라는 유교적 도덕정치를 외치며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결국 최종후보로 등록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이 때 창당한 친민당은 무려 3년 5개월간 살아남았다.

1996년에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친민당 후보로 논산시-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 후로 정계은퇴한 줄 알았으나 2017년 3월 17일, 선관위에 예비 후보 등록을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종 후보로 등록하지 못했다.아마도 돈이 없어 등록 못 한 것으로 보인다.[68]


6.1.7. 노남수[편집]




노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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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9년 12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시[69]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67] 그 잠깐 사이 적자였던 보루네오를 상당히 회생시켜 놓았던 것을 보면 능력은 있는 듯하다.#[68] 링크의 글을 쓴 지지자의 말에 의하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6천만원 기탁하면 국민들이 따라 움직여주리라" 믿었고, "77세 후보로서 수십명의 후보중 장유유서를 실천하는 후보자의 양보와 지원도 조금은 기대"했던 모양이다.[69]광주광역시 북구

삼성전자 경영혁신팀 등에 13년 근무했고, OP국제평화재단 혁신위원장 등을 맡으며 시민운동가로도 활동한 바 있는 대학원생 겸 정치인.

삼성전자 혁신팀에서 근무하던 중 2000년도 재벌기업의 200억 탈세비리의혹을 고발했다 구속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시민운동가로 전향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광역시 북구을 의원으로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하였으나 낙선되었고, 과거 광주광역시의원 선거에도 나간 적이 있다. 새정치연합에 소속되었던 적이 있으며, 과거 민주당, 안철수 등을 지지하였으나 현재는 둘 모두 지지하지 않는 듯 보인다. 장애인 특별 지원법등 장애인 관련 법안을 자주 언급하고 노인 복지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자의 상당수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이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듯 하다.

2017년 3월 30일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2017년 4월 14일, '미래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초청 포럼' 행사장에 들어가려다 주최측에 제지당했고, 이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심장병이 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못했다.


6.1.8. 안광희[편집]



안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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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5년 12월 17일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6.1.9. 최석규[편집]



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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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2년 3월 22일, 강원도 원주시
상황
예비후보 등록 - 사퇴



7. 불출마자[편집]


아래의 인물들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예비후보로도 등록을 안하고 경선 참여도 최종적으로는 하지 않은 후보들을 기재하는 곳이다.


7.1. 더불어민주당[편집]



7.1.1. 박원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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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朴元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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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6년 3월 26일, 경상남도 창녕군
상황
불출마 선언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한나라당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서울특별시장을 지내고 있었다

시민단체 출신이라 계파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즉, 어느 한편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기는 힘들지만, 비토를 받을 확률도 낮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2016년 12월 29일, 서울특별시장을 유지한 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7년 1월 24일, 민주당 경선이 완전국민경선 방식으로 정해지자 이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고#, 이어서 1월 26일, 사실상 불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결정되었다.#


7.2. 자유한국당[편집]



7.2.1. 김문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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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金文洙)
출생
1951년 8월 27일, 경상북도 영천군[70]
상황
불출마 선언
전직 경기도지사이자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위원장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대패하였다. 38%의 득표율로 60%를 훌쩍 넘긴 김부겸에 비해 초라한 성적을 받고 낙선해 큰 타격을 받은 상황이다.

2016년 11월 22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탄핵을 찬성하는 새누리당/비상시국위원회 소속으로써 당초 새누리당 탈당이 예상되었으나 탈당하지 않았고 2017년 들어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발언을 하는 등 완전히 돌아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7년 3월 15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유한국당의 경선에 필요한 자금이 없어서 불출마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도 친박들의 표가 사실상 김진태에게 쏠리고 있기 때문에 출마해도 친박 이미지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2.2. 박판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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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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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5년 5월 1일, 전라남도 화순군
상황
불출마 - 미등록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 수감되어 옥고를 치른 5.18 유공자다.

14대, 16대 총선에 고향인 화순군[71]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1996년 일본 외무상의 독도 관련 망언 때 이를 규탄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일본을 방문, 일본 외무성 정문 옆에서 삭발식을 했고,[72] 귀국 후에는 광화문 파출소 앞 노상에서 13일간 단식을 이어가기도 했다.

전남야구협회장, 5.18 민주화운동 화순지역 상임고문 등 지역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다. 2010년, 홍사덕의 권유로 한나라당에 입당[73]한 후, 이재오2010년 재보궐선거 출마를 도왔고, 제18대 대통령 선거때는 박근혜 캠프에서 국민대통합 기획본부특보를 지냈다. 2013년에는 새누리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새누리당 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2017년 2월 27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3월 17일 경선 컷오프를 위한 정견발표장에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볼때 경선 예비 후보를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7.3. 국민의당[편집]



7.3.1. 천정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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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千正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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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4년 12월 12일, 전라남도 무안군[74]
상황
불출마 선언
전직 변호사이자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을 맡았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하고 '호남 정치 복원'이라는 기치 아래 야권을 재구성하기 위한 신당을 창당한 후 2016년 1월 25일에 국민의당과 통합을 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대권주자 중 한명으로 거론되었다. 본인이 주장해 온 호남정치론이 국민의당을 통해 실현되었으며, 본인이 담당한 수도권 선거에서 단 2석을 얻어 타격인 안철수 공동대표와 대조적으로 천정배 공동대표는 자신이 출마한 광주에서 지역구를 모두 석권했다.

2016년 11월 20일에 열린, 야권 대권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8명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2016년 12월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지지율 부진으로 인해 3월 14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7.4. 개혁국민신당[편집]



7.4.1. 유한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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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8년 1월 15일, 전라북도 금산군[75]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민주당계 정당의 거물 정치인 유진산의 4남이자 전 국회의원(5선. 10~13대, 16대). 2016년 충청향우회장으로 취임한 후 충청권 정치인들과 접촉하는가 싶더니 2017년 3월 23일, '보수 단합'을 외치며 정계 복귀 및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관련 기사

출마 정당은 개혁국민신당. 항목 보면 알겠지만, 걸어온 길이 상당히 아스트랄한 정당. 성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같은 충청권 대권주자들인 이인제, 정운찬 등과의 연대 가능성도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개혁국민신당 홈페이지를 보면 대통령 선거 후보를 모집한다고 되어 있다. 심지어 작성일자가 본인이 출마를 선언한 후인 4월 2일이다. 그리고 유한열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트위터 쪽도 마찬가지. 결국 대통령 선거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이후 올라온 공지에 따르면 본래 유한열을 당에서 후보로 추대하였고 지도부의 배석하에 국회에서 출마 선언 기자회견까지 했으나 유한열 본인의 사의 표명으로 출마하지 못했다고 한다.#[76]


7.5. 국민행복당[편집]



7.5.1. 남궁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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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4년 1월 3일, 경기도 파주군[77]
상황
당내 대선 후보 교체

전 사회문화연구회 회장.[78] 경기도 파주시에서 제15대(1996년, 무소속) 및 제17대 국회의원 선거(2004년, 새천년민주당[79])에 출마하여 낙선되었다.

2015년에 본인의 정치사상을 정리한 저서 <정의주의>를 집필하며 일찌감치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듯. 본인 트위터 복지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이것만 놓고 보면 거의 이분에 버금가는 수준(...) 2017년 3월 2일, 국민행복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임명되었고, 3월 10~20일, 총 11일간의 대통령 후보 공모를 거쳐 21일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당 홈페이지 게시물 외에 관련기사 검색이 안됐는데, 이틀 지나서 한 군데 뜨긴 떴다. 현장취재 기사는 아니고, 그냥 적어준 내용 받아서 실은 듯...혼자 사진이 폰카다

그런데, 후보등록일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후보가 이명수로 교체되었다. 당 홈페이지에서도 아무 말 없이...[80]


7.5.2. 이명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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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국민행복당 소속 후보로, 해당 정당에서는 남궁준(정치인)으로 후보가 결정되었다가 뒤늦게 회의를 통해 후보로 확정되었다.#버려진 남궁준

그러나 대통령 선거 최종 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국민행복당 쪽에서도 별 말이 없다. 이후 당 총재가 홍준표 지지를 선언하였다.


7.6. 통합민주당[편집]



7.6.1. 안동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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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0년 1월 14일(음력), 전라북도 진안군
16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대한통일당)
17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경제통일당)
18대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경제민주당)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

한국의 맥 아카사카 급인 후보로 16대, 17대, 18대를 모두 출마 선언하였다가 최종 미등록 후보로 끝났었으나, 이번엔 확실하게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근래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공약등을 말하는 등 의외로 정상적인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특유의 특이한 말투[82]와 그림판으로 만든 듯한 포스터들은 여전하다.

여담으로 그와 마찬가지로 대선에 출마 선언을 한 허경영은 피선거권이 상실된 상태로 만약애 안동옥이 최동후보등록에 무난히 성공하면 허경영을 대체할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통합민주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진보 성향이지만, 민족주의가 강한 환단고기환빠 성향 주자라 더불어민주당 등의 민주당계 정당과는 거리가 멀다.

# 여담이지만 요 근래 당 카페에 나무위키를 인용한 글이 올라왔다. 총재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렇게 광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최종 후보자로 등록하지 않았다(...)


7.7. 무소속[편집]



7.7.1. 김종인[편집]




김종인 (金鍾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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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0년 7월 11일, 경기도 시흥군[83]
상황
불출마 선언
[70]영천시[71] 보성군-화순군 선거구[72] 원래는 할복을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73] 새천년민주당 당원이었던 적도 있었고, 민주당계 정당에 여러 번 공천신청을 했으나 번번이 탈락했다고 한다.[74] 현 전라남도 신안군 지역[75] 현재는 충청남도 금산군[76]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이 링크에서 개혁국민신당이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 미루어 후보측과 소속정당 간에 정치적 견해차가 있었는지도... 어쩌면 워낙 고령이라 본선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을 듯.[77]파주시[78] 남궁준의 경력 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직함. 단, 어떤 단체인지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없다.[79] 탄핵으로 인해 민주당이 전멸한 선거) 무려 제2야당 후보였던 남궁준의 총선 성적을 확인하고 싶으면 여기 참조.[80] 후에 당 총재가 홍준표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 보아, 정치적 견해차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민주당 출신에, 리버럴보다도 상당히 좌파적인 정치사상을 지닌 남궁준이 당 정체성에 맞을 리가(...) 다른 당에 가라[81] 우측의 인물이 이명수 후보다.[82] 자신을 제3자처럼 칭하면서도 스스로처럼 칭한다. 거의 2.5인칭급. 또, ~ 할 것. ~할 것이다.를 번갈아 사용한다.[83] 김종인 출생지역은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속함.

위기돌파 통합정부 대통령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이다.

2016년 1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겸 선거대책위원장 으로 영입되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기여하였다.

3월 7일,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3월 8일, 탈당계를 제출하면서 의원직도 상실되었다.

2017년 3월 27일,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29일에는 정운찬, 홍석현과 단일화하여 공동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2017년 4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대선 목적은 내각제 개헌과 자신의 정치 활동의 최종 목표인 경제민주화임을 밝혔다.#

4월 12일, 국민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7.7.2. 반기문[편집]




반기문 (潘基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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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
상황
불출마 선언

제8대 UN 사무총장이다.

2016년 방한 일정 첫날인 5월 25일 제주도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러가지 역할에 대해서는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며 출마 의사를 사실상 밝혔다.# 대선 후보로 언급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나이에 관해서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야권을 비롯해 여권에서도 예상보다 높은 수위의 발언으로 평가하며 반기문의 대권 도전 시사로 받아들였다.

굿모닝 런던에 따르면 반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설득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는 시나리오가 돌고 있었다고. # 진위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이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친박 세력 측 후보로 나설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반기문 지지하는 산악회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대통령 준비위원회가 출범되었다.# 전부 여권 출신이며, 친박 서청원 의원도 같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당사자들이 명의도용이라면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2016년 12월 1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박연차 게이트가 재점화되면서 위기에 몰렸다. 게다가 2016년 10월 25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제대로 터지면서 친박의 지원을 받는 반기문 지지율에 직격탄을 날리게 되어 1위 자리를 문재인에게 뺏기고, 여론까지 급격하게 나빠져 2위 자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았다. 또한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에 제동을 거는 UN 총회 결의안이 존재했다.

2016년 12월 31일, UN사무총장직에서 퇴임하였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박연차에게 돈을 받았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라고 밝히며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2017년 1월 12일 상당한 언론의 집중을 모으며 귀국한 뒤로 대권주자로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그러나 지지층의 기대에 못 미치는 행보를 보여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정치인 반기문의 첫 인상을 어필해야 했지만 반대로 각종 논란들만 만들어졌다.[84]

결국 2017년 2월 1일, 오후 3시 32분경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였다. SBS KBS MBC 등 주요 지상파 언론사와 각 언론사에 속보로 보도되었다.# 참모진들도 TV를 보고 이를 파악했을 정도로 발표 준비는 극비로 진행되었는데, 측근 한 명만이 대본을 봐주기 위하여 참석했고 그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기자회견 역시 고작 15분 전에 기자들에게 알렸다. 이때 기자들이 반기문에게 발표를 생방송으로 할 지를 물어봤는데, 반기문 측에서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한다. 이를 통하여 중대한 사항에 대한 기자 회견이라는 것 정도는 기자들도 알았겠지만 그것이 불출마 선언이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 근거로 이 현장영상의 3분 18초경 부분에서 반기문이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문장을 읽을 때 기자들이 놀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해당 부분에서 시작됨)

정치에 손을 댄 경험이 없다보니 구설수에 오르며 각종 논란들이 쏟아지는 것에 전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기에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또한 아무런 소속이 없기에 정치 활동 비용도 다 개인사비로 지불해야 하기에 점점 부담이 되었다는 관측도 있다.

그리고, 공식으로 사퇴 선언을 하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았으며 다시는 정치판에 엮이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보면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게다가 그걸 견디고 남아봤자 당선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이니, 더 논란이 생기기 전에 사퇴해서 UN 사무총장으로서의 마지막 명예라도 지키겠다는 현실적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85]


7.7.3. 장호권[편집]




장호권 (張豪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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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9년 5월 14일, 서울특별자유시[86]
상황
불출마 선언
[84] 개중에는 오해라던가 사소한 논란들도 있다. 정치인이 되려면 이러한 것들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였다.[85] 실제로, 그동안 지속적인 비판을 하였던 세력들도 훌륭한 선택이라는 뉘앙스로 반기문의 불출마 선언을 환영하였다.[86]서울특별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군사독재 시대에는 정치인으로, 재야 민주화 운동가로 맹활약했던 장준하의 장남이다.

부친이 의문사한 후 27년간 해외 망명생활을 하다 2003년 귀국하고, 부친이 발간하던 월간 시사잡지 사상계의 복간에 매진하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친일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제로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이대로 가면 독재를 떠나 나라가 다시 외세에 넘어갈 것이 걱정되어 부친 장준하 선생이 자신의 몸을 빌려 외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2017년 4월 1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4월 16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7.7.4. 정운찬[편집]




정운찬 (鄭雲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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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7년 3월 21일, 충청남도 공주군[87]
상황
불출마 선언

동반성장이 답이다

함께 2017, 희망한국!

참여정부시절 서울대학교 총장이자 이명박 정부국무총리였다.

2017년 1월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3월 29일, 김종인, 홍석현과 단일화하여 공동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4월 14일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7.7.5. 한성수[편집]



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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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8년 2월 3일
상황
불출마 선언

전 세무법인가덕 국제부대표,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외래교수이자 현 미국 워싱턴 DC 변호사

2017년 3월 17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불과 1주일 후인 3월 24일, 대선 출마를 철회하였다.# 가족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날 상황이라며, 나랏일도 서로 화합하지 못하면 이런 위험한 지경이 되는데, 가족을 설득하지 못한 자신이 과연 더 많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출마를 철회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7.7.6. 홍석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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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9년 10월 20일, 서울특별시
상황
불출마 선언

중앙일보 · JTBC 의 전 회장이자 한국기원 총재이다. 2017년 3월 18일, 자신이 23년간 몸담았던 중앙일보 · JTBC 회장직을 사임했는데[88], 이 과정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89] 대체적인 평으로는 개국 시점부터 이어져 온 다른 종합편성채널과는 차별화된 JTBC만의 독특한 편성 전략, 손석희의 영입으로 대두된 언론 신뢰도 상승의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재벌업계, 특히 삼성그룹과의 밀접한 관계[90]가 불안요소라는 점이었다. 만약 출마를 하게 될 경우, 이미 원내 5당이 모두 경선 후보 접수를 마감하거나 경선 후보를 확정지은 상태이기에 실질적으로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았다.

3월 29일, 김종인, 정운찬과 회동을 갖고 세 사람이 각자 출마 선언을 한 뒤 일정 시점에서 단일화하여 공동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4월 11일,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혀, 대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7.7.7. 홍정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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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0년 6월 8일, 충청북도 충주군[91]
상황
대선 최종후보 미등록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던 시민단체 활빈단의 대표로, 3월 15일, 출마 선언을 하였다.[92]

수구 세력과 기득권 세력들의 썩은 정치판 껍질을 벗긴 보수세력과 종북 성향의 이들을 배제한 진보세력 및 중도성향 지지자까지 통합한 새로운 진보와 보수 통합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출마하겠다고 밝혔다.출마 선언문

보통 보수단체/보수성향 시민운동가로 분류되나, 타 보수단체들, 특히 친박 단체들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종북척결, 국정교과서 지지, 사드배치 찬성, 테러방지법 찬성 등 극우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 왔지만, 갑질/빈부 양극화와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가 하면 소녀상 철거 반대, 독도 망언 규탄 등 일본에 대해서는 줄곧 날선 태도로 일관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박근혜 조기퇴진, 최순실 재산몰수, 김기춘/우병우/조윤선 구속수사 등을 강도 높게 촉구해 왔다. #

정리하자면, 안보 문제나 정부 정책과 관련해서는 보수정권의 입장을 지지하나, 윤리/도덕적인 문제, 부정부패에 관해서는 얄짤없는 듯.[93]

최종후보로 등록하지는 못했는데, 이 기사를 보면 “이번엔 비용 등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실제 대선 출마를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고백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는 있었던 듯하다.


8. 사퇴 후보[편집]



8.1. 통일한국당 - 남재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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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南在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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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4년 10월 20일, 충청남도 대덕군[94]
상황
대선 후보 사퇴
기호
11번

진짜 보수!

나는 대한민국이다!

육군참모총장 출신 전직 국가정보원장으로 친박 인사였다.

비록 성향은 보수지만 비하나회 출신에다가 전두환 정권을 반대하여 진급이 누락되거나,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정윤회의 비선실세 보고서를 올렸다가 이틀만에 경질된 이로 상당히 다사다난하다. 경질된 이후 완전히 돌아선것인지, "내가 최순실을 알았다면 총이라도 들고 청와대로 들어 갔을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종북좌파를 척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겠다며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뒤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그렇지만 최대 흑역사인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과 다소 논란이 있는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이 그의 국정원장 경력중에 존재하였으며,[95] 극우 성향인데도 친박도 아니라 대선에서 보수 진영의 지지는 요원해보였다.

최근 친박 집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김진태자유한국당 경선에서 탈락한 상황에서 친박들로부터 약간의 지지를 얻고 있고, 훌륭한 군인으로 존경받던 현역 시절의 행적[96]과 뚜렷한 안보관에, '바른말 하다 박근혜에게 내쳐진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박근혜에게 실망한 일부 보수층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새누리당과 그와 연관된 박사모, 탄기국 등이 그를 대선 후보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박사모까진 아니더라도 골수 우파 성향이 있는 이들이나 비박이지만 극우인 이들이 그를 지지하기 시작하여 보수 진영의 지지가 강해지고 있다. [97]

하지만 최근에는 조원진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면서 열기가 식은 모습이다. 이에 대해 남재준 측은 입당을 제의받은 적은 있으나 대선후보 제의를 받은 적은 없으며, 이와 관계없이 무소속으로 대선을 완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7년 3월 24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17년 4월 14일, 통일한국당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2017년 4월 29일, 홍준표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였다.#


8.2. 한반도미래연합 - 김정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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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金正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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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58년 10월 28일, 서울특별시
상황
대선 후보 사퇴
기호
13번

새시대/새물결/새희망

2016년, 보수, 친박, 민족주의 성향의 한반도미래연합을 창당, 당대표로 활동했다.

2017년 3월 24일, 선관위에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한반도미래연합 대표 외에도 (재)제대군인지원정책연구원 원장/국방위원장/부이사장, 국방경제전략연구소 소장, UN산하(?) 세계재활기구(WRO)상임의장[98], (주)씨가드그룹 회장 등 직함이 상당히 많다.#[99]

전과로 사기 2건에 근로기준법 위반이 있다.

2017년 4월 21일,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였다.#


9. 관련 문서[편집]





[88] 다만 실제로는 아들인 홍정도가 2015년 12월 중앙미디어네트워크 · 중앙일보 · JTBC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이후에는 홍정도 대표이사가 실질적인 업무를 대부분 수행해왔다. 때문에 아버지의 회장직 사임에 따라 홍정도가 차기 중앙미디어네트워크 · 중앙일보 · JTBC 회장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89] 일각에서는 작은 힘을 대권도전이 아니라 킹메이커로 해석하고 있다. [90] 매형이 이건희이고, 이재용, 이부진의 입장에선 홍석현이 외삼촌이다. 애초에 중앙일보 자체가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이 세운 언론사이다.[91]충주시[92] 굳이 이 날에 한 이유는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기 위해 일어난 마산 의거 57주년에 맞추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93] 지금까지 그의 주장은 '활빈단 홍정식'으로 이미지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다. 위 사진과 같이 거리에서 혹은 논란대상인 기관/단체 앞에서 현수막 들고 시위하는 게 그의 방식이기에.[94]대전광역시 대덕구[95] 그는 바지원장에 불과했다는 시각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정말 바지원장이었다 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96] 국정원장 취임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군인으로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체로 평가가 좋은 편이다.[97] 유승민, 홍준표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는 수준이다.[98] UN 산하에 세계재활기구가 창설되었고, 그 본부를 우리나라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는데, 본인 인터뷰 외에는 관련된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99] 그런데, 이 단체들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려고 구글링해 보면, 거의 비슷비슷한 링크에 다다르게 된다. 그나마 다른 페이지에서도 확인되는 단체는 제대군인지원정책연구원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