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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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道
조선의 행정구역이다. 전국을 여덟 개의 도(道)로 나누어 팔도라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 분리되고 개편되면서 여덟 개의 도라는 의미의 팔도라는 말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지만, 1896년 개편에서는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를 제외한 각 도가 '~남/북도'라는 비슷한 명칭으로 나뉘기도 했고, 여전히 문화/언어/생활권상으로는 8도에 따라 얼추 나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8도 단위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전국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인다. 1896년까지의 행정구역이라 전통문화나 군가 등 역사적 정통성이 중요한 맥락을 강조할 때 쓰인다. 군가 팔도 사나이, 방탄소년단의 팔도강산이 있고, 기업 팔도의 이름 역시 이 의미에서 나왔다.
경기도를 제외한 각 도의 이름은 조선시대 당시 각 도에서 가장 유명했던 두 도시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도의 이름을 구성하는 도시는 조선시대 동안 몇차례 바뀌기도 했으며, 가령 함길도의 경우 길주군이 경성군으로 바뀌어 함경도가 된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도시들은 조선시대 당시에는 각 도를 대표하는, 현재의 광역시급 위상을 가진 도시였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지역 개발이 경부축으로 쏠리면서 대부분 쇠퇴하고 과거의 위상은 사라졌다. 현재에도 과거의 위상을 유지하는 도시는 북한의 수도가 된 평양시[2] 와 북한 제2의 도시 함흥시, 그리고 충북의 중심지 청주시 뿐이다. 지역권 자체가 낙후된 전라북도의 전주시와 강원도의 강릉시, 원주시도 도내 대표도시라는 위상은 유지하고 있다.
이전 남북국시대엔 신라 9주 5소경과 발해 5경 15부 62주를, 고려시대에는 10도와 5도 양계 체계를 사용했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로 나누었다. 각 도는 한성부를 기준으로 좌도/우도로 얼추 나뉘었으나[3] 임의적인 지역 구분이었을 뿐 정치적 단위는 아니었다.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으로 23부로 개편하였으나 이듬해에 도로 도제로 환원하면서 기존의 팔도 중 경기, 강원, 황해를 제외한 나머지 도를 남북도로 나누어 13도 체계가 되었다.
13도 체계는 일제강점기에도 큰 틀에서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한국 한자음 지명을 일본 한자음으로 읽었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4] 예를 들어 충청 남/북도(Chungcheong nam/buk do)를 츄세이 난/호쿠도(Chusei nan/hoku do)로 읽거나, 경상 남/북도(Kyeongsang nam/buk do)를 케이쇼 난/호쿠도(Keisho nan/hoku do)로 읽거나, 전라 남/북도(Jeolla nam/buk do)를 젠라 난/호쿠도(Zenra nan/hoku do)로 읽는 식이었다.
부군면 통폐합이 단행된 시기기도 하다.
남북분단 직후 남한에서는 제주도를 분리시킨다. 전통적으로 제주도(島)는 전라도(道)의 일부로 간주되었는데, 이 이후 그런 시각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북한은 황해도를 남북으로 나누는데 황해남도, 황해북도의 위치를 보면 남북으로 나누기보단 동서로 나눈 것에 더 가깝다. 또한 자강도와 량강도를 새로 만들었다.
지금은 광역시와 특별자치도를 제외하면 광역자치단체로서의 '도'는 남한만 해도 7도다.[5] 북한은 9도. 원래는 제주도와 강원도가 특별자치도가 아니였기에 원래는 둘 다 9도였다. 이에 대하여 북한이 '도를 늘려 한국과의 균형을 맞추고 지역간 통일협상에서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량강도와 자강도를 추가로 만들었다'는 설이 유명하다.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 않겠지만 더 큰 이유는 행정구역을 기존보다 더 세분화해서 더 쉽게 통치하기 위한 것. 황해남/북도나 자강도, 량강도, 평양직할시[6] 등 '북한 당국이 멋대로 만든' 행정구역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와 달리 북한은 특별자치도나 광역시 등 '남조선 당국이 멋대로 만든' 행정구역을 인정한다.
이외 금산군, 울진군, 울릉군 등 몇몇 행정구역의 소속 도가 변경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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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八道
조선의 행정구역이다. 전국을 여덟 개의 도(道)로 나누어 팔도라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 분리되고 개편되면서 여덟 개의 도라는 의미의 팔도라는 말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지만, 1896년 개편에서는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를 제외한 각 도가 '~남/북도'라는 비슷한 명칭으로 나뉘기도 했고, 여전히 문화/언어/생활권상으로는 8도에 따라 얼추 나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8도 단위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전국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인다. 1896년까지의 행정구역이라 전통문화나 군가 등 역사적 정통성이 중요한 맥락을 강조할 때 쓰인다. 군가 팔도 사나이, 방탄소년단의 팔도강산이 있고, 기업 팔도의 이름 역시 이 의미에서 나왔다.
2. 이름의 유래[편집]
- 경기도 - 수도 주변 지역을 의미하는 지명 경기(京畿)
- 충청도 - 충주시 + 청주시
- 전라도 - 전주시 + 나주시
- 경상도 - 경주시 + 상주시
- 강원도 - 강릉시 + 원주시
- 황해도 - 황주군 + 해주시
- 평안도 - 평양시 + 안주시
- 함길도[1] - 함흥시 + 길주군
경기도를 제외한 각 도의 이름은 조선시대 당시 각 도에서 가장 유명했던 두 도시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도의 이름을 구성하는 도시는 조선시대 동안 몇차례 바뀌기도 했으며, 가령 함길도의 경우 길주군이 경성군으로 바뀌어 함경도가 된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도시들은 조선시대 당시에는 각 도를 대표하는, 현재의 광역시급 위상을 가진 도시였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지역 개발이 경부축으로 쏠리면서 대부분 쇠퇴하고 과거의 위상은 사라졌다. 현재에도 과거의 위상을 유지하는 도시는 북한의 수도가 된 평양시[2] 와 북한 제2의 도시 함흥시, 그리고 충북의 중심지 청주시 뿐이다. 지역권 자체가 낙후된 전라북도의 전주시와 강원도의 강릉시, 원주시도 도내 대표도시라는 위상은 유지하고 있다.
3. 역사[편집]
3.1. 8도 이전[편집]
이전 남북국시대엔 신라 9주 5소경과 발해 5경 15부 62주를, 고려시대에는 10도와 5도 양계 체계를 사용했다.
3.2. 8도[편집]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로 나누었다. 각 도는 한성부를 기준으로 좌도/우도로 얼추 나뉘었으나[3] 임의적인 지역 구분이었을 뿐 정치적 단위는 아니었다.
3.3. 13도[편집]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으로 23부로 개편하였으나 이듬해에 도로 도제로 환원하면서 기존의 팔도 중 경기, 강원, 황해를 제외한 나머지 도를 남북도로 나누어 13도 체계가 되었다.
13도 체계는 일제강점기에도 큰 틀에서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한국 한자음 지명을 일본 한자음으로 읽었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4] 예를 들어 충청 남/북도(Chungcheong nam/buk do)를 츄세이 난/호쿠도(Chusei nan/hoku do)로 읽거나, 경상 남/북도(Kyeongsang nam/buk do)를 케이쇼 난/호쿠도(Keisho nan/hoku do)로 읽거나, 전라 남/북도(Jeolla nam/buk do)를 젠라 난/호쿠도(Zenra nan/hoku do)로 읽는 식이었다.
부군면 통폐합이 단행된 시기기도 하다.
3.4. 분단 이후[편집]
남북분단 직후 남한에서는 제주도를 분리시킨다. 전통적으로 제주도(島)는 전라도(道)의 일부로 간주되었는데, 이 이후 그런 시각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북한은 황해도를 남북으로 나누는데 황해남도, 황해북도의 위치를 보면 남북으로 나누기보단 동서로 나눈 것에 더 가깝다. 또한 자강도와 량강도를 새로 만들었다.
지금은 광역시와 특별자치도를 제외하면 광역자치단체로서의 '도'는 남한만 해도 7도다.[5] 북한은 9도. 원래는 제주도와 강원도가 특별자치도가 아니였기에 원래는 둘 다 9도였다. 이에 대하여 북한이 '도를 늘려 한국과의 균형을 맞추고 지역간 통일협상에서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량강도와 자강도를 추가로 만들었다'는 설이 유명하다.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 않겠지만 더 큰 이유는 행정구역을 기존보다 더 세분화해서 더 쉽게 통치하기 위한 것. 황해남/북도나 자강도, 량강도, 평양직할시[6] 등 '북한 당국이 멋대로 만든' 행정구역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와 달리 북한은 특별자치도나 광역시 등 '남조선 당국이 멋대로 만든' 행정구역을 인정한다.
4. 팔도의 일람과 현재 행정구역[편집]
이외 금산군, 울진군, 울릉군 등 몇몇 행정구역의 소속 도가 변경되기도 하였다.
5. 둘러보기[편집]
[1] 당시에는 함경도가 아닌 함길도로 불렸다.[2] 다만 평양은 남북국시대를 제외하면 한국사에서 대부분 주요도시로 기능했다.[3] 예외로 함경도는 좌도/우도가 아닌 남도/북도로 나뉘었고 평안도는 좌도/중도/우도로 나누었다.[4] 마치 '홋카이도'를 우리식으로 읽으면 '북해도'가 되는 것과 같은 맥락[5] 2024년 1월 18일부터는 6도로 바뀐다.[6] 엄밀히는 직할시의 지위로서 평안남도에서 분리만 되었지 실제 공식 명칭은 '평양직할시'가 아니라 그냥 '평양시'지만 도에서 분리된 직할시임을 명시하고자 편의상 평양직할시로 기술. 대한민국 정부는 직할시로서의 평양시는 부정하고 평안남도 관할의 일반시로서만 간주한다.[7] 한성부(한양)는 경기도 소속이 아닌 별도의 행정구역으로서 존재했었다. 하지만 강서구와 같이 한성부가 아니었지만 현재 서울에 편입된 경우도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잠시 경기도 경성부로서 경기도 산하로 격하되었다가 해방 직후 서울특별자유시로 재승격되었으므로 서술. 부(행정구역), 서울특별시/역사 문서 등 참조.[8] 1981년 경기도에서 분리, 인천직할시로 승격.[9] 2019년 10월 황해북도에서 분리 승격[10] 1914년 경기도 삭녕군 내문면, 마장면, 인목면이 강원도 철원군으로 이관.[11] 6.25 전쟁 직후 경기도 연천군 삭녕면이 강원도 철원군에 편입되어 폐지됨.[12] 2023년 특별자치도로 전환.[13] 1963년 강원도 철원군 신서면을 경기도 연천군으로 이관.[14] 1914년 강원도 울도군(현재의 울릉군)(전통적으로 강원도의 일부로 간주되었으나 1906-1914년 사이에는 경상남도 소속. 따라서 이관 당시에는 경상남도 소속이었다), 1963년 강원도 울진군을 경상북도로 이관.[15] 1989년 충청남도에서 분리, 대전직할시로 승격.[16] 금산군이 전라북도에서 충남으로 이관.[17] 2012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일부 지역에서 분리 신설.[18] 1914년 충청남도 평택군이 경기도 진위군에 통폐합.[19] 1914년 보령군, 비인군 관할 도서 일부를 전라북도로 이관.[20] 1963년 경상남도에서 분리, 부산직할시로 승격.[21] 1997년 경상남도에서 분리 승격.[22] 1981년 경상북도에서 분리, 대구직할시로 승격.[23] 1963년 경상북도 봉화군의 일부(춘양면 덕구리, 천평리)가 강원도 영월군으로 편입되었다.[24] 1986년 전라남도에서 분리, 광주직할시로 승격.[25] 2024년 전라북도에서 전북특별자치도로 전환 예정.[26] 1946년 전라남도에서 분리 승격, 2006년 특별자치도로 전환.[27] 1914년 전라북도 여산군 채운면이 논산군으로, 1963년 전라북도 금산군 전역이 충청남도로 이관되고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이 논산군 구자곡면과 통합하여 논산군 연무읍으로 편입.[28] 2000년 함경북도에서 분리 승격. 2003년 폐지되어 함경북도로 환원되었으나 2010년 다시 분리 승격.[29] 1952년 함경남도 장진군 북면, 동상면, 동하면으로 자강도 랑림군을 신설.[30] 1954년 함경남도 북부, 함경북도 무산군 대부분, 자강도 후창군으로 신설.[31] 1946년 원산시, 문천군, 안변군을 강원도로 편입.[32] 1952년 함경남도 요덕군을 신설하면서 구 영흥군의 땅거스러미가 평안남도 맹산군으로 편입.[33] 1949년 평안남도에서 분리 승격.[34] 1979년 평안남도에서 분리 승격. 2004년 폐지되어 평안남도로 환원되었으나 2010년 다시 분리 승격.[35] 1949년 평안북도에서 분리 승격.[36] 1954년 량강도 신설로 자강도 후창군을 량강도로 이관.[37] 2010년 평양시 중화군, 상원군, 승호구역를 황해북도에 편입.[38] 1945년 38선이 그어지면서 황해도 옹진군을 장연군 백령면(백령도, 대청도, 소청도)과 벽성군 해남면, 대강면, 송림면을 편입하여 경기도로 이관하였으나, 6.25 전쟁 결과 옹진반도 본토를 상실하고 백령면과 송림면(대연평도, 소연평도) 두 개 면으로 이루어진, 서해 5도만 남은 상태에서 1973년 부천군의 폐지로 부천군 도서 지역을 편입한 후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39] 1954년 황해도를 남북으로 분도.[40] 1988년 황해남도 은률군 송관리를 와우도구역, 1996년 황해남도 과일군 초도리를 항구구역에 편입.[41] 1952년 신양군을 신설하면서 곡산군 봉명면 일부를 편입.[42] 1952년 판교군을 신설하면서 곡산군 등촌면 일부를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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