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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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그리스어
Επιστολή προς Εβραίους
라틴어
Epistula ad Hebræos
영어
Epistle to the Hebrews
한자(한국어)
가톨릭: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히브리書)
개신교: 히브리書
중국어
간체자: 希伯来书
정체자: 希伯來書
일본어
ヘブライ人への手紙
기본 정보
저자
신원 미상
분량
13장
수신자
미상

1. 개요
2. 저자
3. 수신자
4. 구조
5. 주요 구절
6. 여담



1. 개요[편집]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 6절 (공동번역성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간 이도 그의 일손을 멈추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 안식을 누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옛사람들처럼 순종하지 않다가 낭패를 보아서야 되겠습니까?

히브리서 4장 10-11절 (공동번역성서)


성경의 65번째/58번째 권.

가톨릭 전통에서는 바울로 서간으로 묶이지만, 바울로 서간 중 특이하게도 글 내부에서 저자를 명시하지 않았다.[1] 책 제목에서 가리키듯 흔히 유대계 기독교인으로 생각된다. 풍부한 구약성서 인용과 제의적 관심이 돋보이는 것도 이유. 아람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쓰이긴 했지만, 유다인 식자층은 그리스어에도 능통한 경우가 많았으므로 언어 유무로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는 없다.

히브리서 신학의 독자성은 대사제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서간에서만 그리스도에게 사용되는 '대사제' 칭호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이 칭호로써 신학적 구상의 축점軸點이 놓였고, 이를 중심으로 여타 관념들이 대체로 제자리를 찾는다. 유랑하는 하느님 백성 관념이나 성경 해석 또는 대사제 표상 가운데 무엇을 히브서의 중심으로 언명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단호히 마지막 것을 택해도 될 것이다.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신약성경신학》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2014, 499쪽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제로 보는 난해하면서도 독창적인 신학이 특징이다. 히브리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간답게 유대인들의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다루고 있으며, 많은 수의 구약성경 인용, 그 중에서도 살렘(평화)의 왕인 멜기세덱(말키-나의 임금; 체덱-정의)에 대한 많은 언급을 포함한다. 멜기세덱은 신약에서는 히브리서에서만 유일하게 언급된다.

문학적으로 보자면, "히브리서는 세련된 통사론과 정선된 어휘를 구사하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품격 있는 문서다. 저자는 당시의 합성어에 대한 헬레니즘적 선호에 상응하여, 10개의 어구를 아예 새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교육과 훈육(5,12-14; 12,7-11)으로부터 농사(6,7-8; 12,11), 건축(6,1; 11,10), 항해(6,19)를 거쳐 운동 경기(12,1)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비유를 즐겨 사용한다. 저자의 뻬어난 문체와 수사학적 어법 선호는, 그가 수준 높은 언어 훈련을 받았고 고대문화에 조예가 깊었음을 증언해준다. 저자는 충실한 수사학 교육을 받았음이 거의 확실하다. ....... 수사학적 재능은 바오로를 능가한다."[2]


2. 저자[편집]


신약성경/형성#히브리서 문서 참조.


3. 수신자[편집]


후대에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는 제목이 붙긴 했지만, 본문 자체 안에는 그런 말이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는 제목이 뜬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서간이 율법에 보이는 깊은 관심과 통찰은 수신자들이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인상을 갖게 하며, 이미 교부 시대에도 그렇게 보았으며, 근대 성서주석학에서도 이는 부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수신자 공동체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보지 않으며, 이방계 그리스도인, 혹은 유다계와 이방계의 혼합 공동체를 수신자로 본다.


4. 구조[편집]


히브리서의 구조를 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문학적 구조에 초점을 찍은 오분(五分) 모델과 논리적/주제적 구조에 초점을 찍은 모델 삼분(三分) 모델로 나뉜다.

1) 오분 모델 - 견본: 알베르 반호예Albert Vanhoye[3]
[
도입
]

1,1-4
[
I
]
- 그리스도의 이름
1,5-2,18교리
[
II
]
- 하느님께 신뢰받고 인간을 동정하는 대사
3,1-4,14훈계
4,15-5,10교리
[
III
]
- 멜키체덱의 본을 따른 대사제이며 구원의 원천인 그리스도
5,11-6,20훈계
7,1-28교리
8,1-9,28교리
10,1-18교리
10,19-39훈계
[
IV
]
- 신앙과 인내
11,1-40교리
12,1-13훈계
[
V
]
- 의화의 열매
12,14-13,19훈계
[
종결
]

13,20-21
13,22-25

2) 삼분 모델 - 견본: 볼프강 나우크Wolfgang Nauck[4]
[
I
]
1,1-4,13: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
[
II
]
4,14-10,31: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
[
III
]
10,32-13,25: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오분 모델은 히브리서에서 교리 단락과 훈계 단락이 번갈아 바뀐다는 문학적 고찰이 적극 반영되었으며, 히브리서를 댓귀 교차법, 주제 예고, 특징적인 단어 · 문장 · 문학 유형 · 고리어 등으로 서로 밀접히 연결되면서 전체가 매우 조직적으로 짜여진 작품으로 본다. 또한 학술과는 별개로, 히브리서의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한 모델이다.

삼분 모델은 오분 모델이 너무 지나치고 기계적으로 문학적 분석에 집착한다고 비판하며, 외적인 문학 구조보다는 내적인 논리 전개에 더 관심을 가진다. 삼분 모델은 특히 독어권 성서학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삼분 모델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마르틴 카러Martin Karrer, 〈히브리서〉
-2
''Der Hebräerbrief''
in 마르틴 에브너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등 공저, 《신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이종한 번역, 분도출판사, 2013, p.730]


  • 1장: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상속자, 만물의 창조주, 만물의 유지자, 하느님의 본체의 형상이시고, 죄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모든 천사들은 구원을 상속할 사람들을 섬기는 영들일 뿐이다.

  • 2장 1절~4절: 하느님께서 기적 및 성령의 은사들과 함께 증언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무시한다면 징벌을 피할 수 없으므로,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2장 5절~18절: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다스리도록 하기 위하여,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잠시 낮아져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고난을 당하셨다.

  • 3장 1절~6절: 예수께서는 모세처럼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께 충성했으나, 종으로서 충성한 모세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아들로서 충성하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더욱 위대하다.

  • 3장 7절~4장 11절: 시편 95편은 시편 95편이 쓰여진 다윗 시대를 기준으로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5] 시편 95편 11절[6]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안식은 여호수아가 세운 이스라엘이 아니라 천국을 말하는 것이며, 하느님께 불순종 하다가 멸망하지 말고 믿음으로 그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

  • 4장 12~13절: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예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별해낸다.

  • 4장 14절~5장 10절: 승천하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자.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시나 인간과 똑같이 시험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기 때문에 은혜를 얻기 위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 대제사장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람들을 대표하여 예물을 드리고 속죄제사를 지내는 사람인데, 대제사장은 자기 자신도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무지하고 미혹된 사람들을 동정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시편 110편 4절[7]에 따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육체 가운데 계실 때에 고난을 당함으로 순종을 배우셨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 5장 11절~6장 12절: 회개, 믿음, 세례, 안수, 부활, 영원한 심판 등의 그리스도에 대한 초보적 가르침조차 잘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온전한 데로 나아가자. 하늘의 은사, 성령, 하느님의 선한 말씀, 천국의 능력을 맛보고도 완전히 타락해버린 사람은 회개하여 다시 새롭게 될 수 없다. 게을러지지 말고, 구원을 위하여 열심을 내며, 믿음과 인내로 약속을 상속받은 사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자.

  • 6장 13절~20절: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자기 자신을 걸고 복 주실 것을 맹세하셨고, 아브라함은 오래 참은 끝에 그 약속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시편 110편 4절[8]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맹세하셨고, 하느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이 맹세는 믿는 자들에게 확실한 소망과 위로가 된다.

  • 7장 1절~10절: 멜기세덱은 살렘 왕으로, 부모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지만,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고, 레위 자손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레위 자손들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셈이다. 또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는데, 축복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윗사람이다.

  • 7장 11절~28절: 만약 레위 계열의 제사장을 통해 완전함을 이룰 수 있었더라면,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다른 제사장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께서는 율법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의 힘을 따라 멜기세덱과 유사한 다른 한 제사장이 되셨는데, 예수께서는 맹세 없이 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시편 110편 4절[9]의 맹세에 따라 제사장이 되어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해주시는 분이 되었다. 제사장직이 변하면 율법도 반드시 변하게 되어있는데, 전에 있던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할 수 없어 폐지되었다. 또한 언젠가 죽어야 하고 날마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 레위 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영원히 사시며 십자가에서 단번에 모든 제사를 이루셨기 때문에, 영원히 제사장직을 누리시고 자신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시며 중보하신다. 율법은 연약함을 가진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지만 하느님의 맹세는 영원히 완전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세웠다.

  • 8장: 우리에게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우신 참된 성소에서 섬기시며, 성부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대제사장은 예물과 제물을 드리기 위해 세움을 받은 존재인데, 세상에는 모세의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성소가 있고 이것은 하늘의 있는 것의 모형에 불과하다. 따라서 예수께서 세상에 계셨다면 하늘에 있는 참된 성소에서 섬기실 수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새로운 대제사장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은 율법이라는 첫 언약에서 허물을 발견하시고 예레미야 31장에서 첫 언약을 사라지게 할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

  • 9장 1절~15절: 첫 언약에도 예배 규례들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다. 성소라고 불리는 첫 번째 장막에는 촛대, 상, 진설병이 있고, 지성소라고 불리는 두 번째 휘장 뒤의 장소에는 분향 제단, 언약궤가 있다. 제사장들은 항상 첫 번째 장막으로 들어가 제사를 행하고,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피를 가지고 두 번째 장막으로 들어간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열리지 않은 첫 번째 장막은, 제사하는 사람의 양심을 온전케 할 수 없는 첫 언약에 대한 비유이다. 피를 가지고 두 번째 장막인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구속을 완성한 것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는데,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가 부정한 사람들의 육체를 정결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고, 첫 언약 아래서 저지른 죄들을 대속하려고 죽으셔서 부름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유업에 대한 약속을 받게 하셨다.

  • 9장 16절~9장 28절: 유언은 유언한 자가 살아 있을 때에는 효력이 없듯이,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는데, 첫 언약도 동물의 피가 필요했고 피로써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물건들이 정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나은 제사로 정결하게 돼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여러 번 드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있는 성소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자신을 단번에 드리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을 고대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이다.

  • 10장 1절~22절: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지 참 형상은 아니다. 매년 드리는 제사로는 사람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만약 매년 드리는 제사가 사람들을 온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사람들이 단번의 제사로 정결하게 되어 더 이상 용서받은 죄를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고, 반복하여 제사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10] 그러나 황소나 염소의 피는 죄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11] 제사를 지내도 사람들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단번에 죄에 대한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고 온전하게 되었고 제사를 반복해서 지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인해 두 번째 언약을 상징하는 지성소로 들어갈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한다. 우리에게는 위대한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우리는 죄악된 마음을 깨끗이 씻었으므로, 확신에 찬 믿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자.

  • 10장 23~39절: 하느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백하는 소망의 믿음을 단단히 붙잡고,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며, 성도들끼리 모이기를 소홀히 하지 말자. 진리에 대한 지식을 받은 후 악의적으로 믿음을 저버린다면 더 이상 속죄하는 제사가 남아있지 않으며, 두려운 마음으로 맹렬한 심판의 불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환난을 이겨낸 지난 날들을 기억하며 담대함을 버리지 말고 천국을 소망하자.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에 이를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생명을 얻을 사람들이니, 인내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자.

  • 11장: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며, 선진들은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다.[12]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임을 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하느님은 자신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다. 믿음으로 끝내 약속된 것을 받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환영했고,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본향을 찾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13] 그리고 그들은 지금 천국을 사모하고 있는데 하느님은 그들을 위하여 천국을 예비하셨다. 믿음으로 살아서 약속된 것을 받았던 사람들도 있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던 믿음의 선조들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는 더 나은 것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는 그들이 온전해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14]

  • 12장 1절~13절: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며,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 예수께서는 바로 앞에 놓여있는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고, 결국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게 되셨다. 하느님은 사랑하시는 자들을 연단하는 분이시고, 비록 연단이 받을 당시에는 괴로우나, 연단을 받은 사람들은 결국 의와 화평의 열매를 맺게 되므로 힘들더라도 기운을 내자.

  • 12장 14절~17절: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라야 하는데, 이것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하므로 주의하라. 또한 에서가 장자권을 잃은 이후에는 장자권을 되찾을 기회가 없었듯이, 세속적으로 살다가 죽어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어졌을 때에는 후회해도 소용 없으므로 그런 일이 없도록 살피라.

  • 12장 18절~29절: 여러분은 무서운 시내산 같은 곳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인 시온산과 새 언약에 이르렀다. 하느님이 땅에서 하신 경고를 거역한 자들도 심판을 피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느님이 하늘로부터 하시는 경고를 거역했을 때의 심판을 피하겠는가? 하느님이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모든 피조물들을 갈아엎을 날이 이를 것이므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느님을 섬기자.

  • 13장 1절~9절: 형제를 사랑하고, 나그네를 잘 대접하며, 고난을 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라. 또한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음행을 하지 말며, 하느님이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시니 돈을 사랑하지 말라. 사역자들의 삶의 결과를 지켜본 후에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이상한 가르침에 빠지지 말고, 식탐을 부리지 말라.

  • 13장 10절~15절: 유대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가지고 가고, 짐승의 몸은 진 밖에서 불살라진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동물의 시체가 진 밖에서 불살라지듯이 몸으로는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는 천국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항상 예수의 이름을 고백하며 하느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리자.

  • 13장 16절~25절: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느님은 이런 제사를 기뻐하신다.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힘쓰는 사역자들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순종하라. 우리가 여러분에게 더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 하느님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를 원하며, 하느님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빈다. 디모테오가 석방되었고, 나는 곧 그와 함께 여러분을 방문할 것이다. 사역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한다.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빈다.


5. 주요 구절[편집]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2 옛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 (공동번역 성서)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회개가 선행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내가 산 주식이 무조건 오를 것이라고 믿는다고 해서 그 주식이 무조건 오르는 게 아니듯이, 이 구절에서 말하는 믿음을 단순히 지식적인 확신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구절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발휘하게 되면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느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고, 그것이 곧 하느님의 일하심과 하느님의 약속이 진짜라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뜻이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개역개정판)


할례, 안식일, 각종 제사법등은 그것을 행해서 온전해지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이루어질 것들을 미리 암시하는 표징[15]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나, 참 형상인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장차 올 것의 그림자에 불과한 율법들도 다 이룬 것이고, 율법 아래에 있지 않게 되어,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 외의, 자질구레한 음식 규정이나, 안식일, 할례 등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원래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만 지키면 되고, 그것이 최상위법이며, 그 밖의 율법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하위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육신의 힘으로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수 없기에, 믿음을 통해 성령을 따르면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되고,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사함받아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올바른 기독교 교리다. 참고로 구약의 율법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각종 종교적 의식을 통해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훈련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율법을 어길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회개시키는 데에 쓰였을 뿐이지, 율법 계명 하나하나가 절대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16][1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개역개정판)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히브리서 10:19~22(가톨릭 성경)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6-29(개역개정판)


만약 이 구절을 죄인 것을 알면서 어떤 죄를 저지른 적이 한번이라도 있으면 절대로 구원 못 받는다고 해석해버리면, 그것이 죄인 것을 분명 알았을테지만 예수님을 3번 부인한 베드로는 지옥에 가야 한다. 이 구절은 회개할 기회가 수없이 주어졌는데도 끝까지 그것을 거부한 사람에게는 어느 시점부터 더이상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1:39-40(개역개정판)


이 구절은 구원받긴 했지만 살아서 약속된 것을 받지도 못했고 불완전한 구원을 누리던 죽은 구약 성도들에게, 십자가 사건으로 신약 성도들을 위한 시대가 옴으로써 온전한 구원의 기회가 열렸다는 뜻이다.


6. 여담[편집]


  • 영어권에서 히브리서와 관련된 농담이 있다. 한 부부가 누가 아침에 모닝 커피를 타줘야 하는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 아내가 남자가 커피를 타야 한다는 내용이 성경에 쓰여 있다고 히브리서를 보여 주었다는 유머가 있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가 영어로 'Hebrews'. 즉 He brews[18], 그가 (커피를) 탄다라는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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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바울로 서간들은 친서이든 차명이든 저자가 바울로라고 본문에 적혀있다.[2] 마르틴 에브너(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신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이종한 옮김, 729-730쪽[3] Albert Vanhoye, La structure littéraire de l'Épitre aux Hébreux, Paris, 21976[4] Wolfgang Nauck, Zum Aufbau des Hebräerbriefes, in: Judentum. Urchristentum. Kirche (FS J. Jeremias) (BZNW 26), Berlin 21964[5] 히브리서는 '너희도 마음을 완악하게 하면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라는 뉘앙스로 시편 95편을 해석하고 있다.[6]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7]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8]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9]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10] 죗값을 치를 수 있는 온전한 제사는 단번에 미래의 죗값까지 다 치를 능력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전제로 깔려있는 말이다.[11]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구약시대에 죄를 용서받은 것은 죄가 가리어진 것이지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12]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면, 그것이 곧 하느님의 일하심과 하느님의 약속이 진짜라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뜻이다.[13]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역대상 29:15)

이 부분은 역대상 29장 15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전도서 등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불가지론을 내세우고 있고, 그 밖에도 구약성경의 많은 믿음의 인물들이 죽으면 막연하게 스올로 간다는 사후세계관을 내비친 것으로 보아, 구약 시대의 믿음의 선진들이 살아있을 때에 천국 소망을 가졌다기 보다는, 유한한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해 허무함을 느껴 막연하게 무언가를 더 원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14] 십자가 사건으로 신약 성도들을 위한 시대가 옴으로써 믿음을 따라 죽었던 구약 성도들에게도 온전한 구원의 기회가 열렸다는 뜻이다.[15] 각종 제사법들의 참 형상은 십자가 대속, 할례의 참 형상은 믿음, 안식일의 참 형상은 영생 등이고, 구약 율법들은 그러한 참 형상의 예표라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다.[16]내가 그들에게 선하지 못한 율례와 능히 지키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을 멸망하게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라. (에스겔 20장 25-26절)[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태복음 19장 8-9절)[18] brew의 3인칭 단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