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안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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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훌리안 카스트로.jpg
이름
훌리안 카스트로 (Julián Castro)
출생
1974 년 9월 16일 (49세)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정치학 학사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법무박사(J.D)
정당
민주당
약력
샌안토니오 시의원(2001~2005)
샌안토니오 시장 (2009 ~2014)
미국 주택도시개발부 장관(2014 ~2017)
1. 개요
2. 가족사
3. 정치 이전
4. 정치 경력
4.1. 샌안토니오 시의원
4.2. 샌안토니오 시장
4.3. 오바마 행정부
4.4. 2016년 대통령 선거
4.5. 2020년 대통령 선거
5.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
5.1. 경제
5.2. 무역
5.3. 교육
5.5. 환경
5.6. 외교 정책
5.7. 선거유세 비용 처리 계획
5.8. 사회적 문제 및 인권
5.10. 총기 소유권
5.11. 이민자 문제


1. 개요[편집]


훌리안 카스트로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샌안토니오 시장 , 제 16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9년 1월 12일 샌안토니오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참여를 선언했다

2. 가족사[편집]


그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마리아 로시 카스트로와 제시 구스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미국 언방 하원의원 호아킨 카스트로의 일란성 쌍둥이 형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치카노[1] 정당인 라 라자 우니다의 설립을 도왔던 정치 운동가로 1971년 샌안토니오 시의회에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카스트로는 언젠가 "어머니는 아마 내 형제와 내가 공직에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자라면서 그녀는 그녀의 아이에게 매우 지루한 많은 집회와 회의와 다른 행사들에 데려갔다 ."그의 아버지 제시 구즈만은 은퇴한 수학 교사 겸 정치 운동가다. 로지와 제시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했고 1992년에 헤어졌으며. 형제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 카스트로 가가 텍사스로 오게 된 뿌리는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의 할머니 빅토리아 카스트로는 멕시코 북부 출신의 고아로 부모님을 잃은후 6살에 대가족과 함께 텍사스로 건너왔다고 한다.

3. 정치 이전[편집]


샌안토니오에 있는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에 다녔고, 그곳에서 미식축구, 농구, 테니스를 배웠다. 월반하여 1992년에 졸업했고 집에서 가까운 트리니티 대학에서 테니스 선수 장학금으로 영입 제의를 받았으나 스탠포드 대학을 선택하였다.
그는 1996년 스탠포드에서 정치학과 커뮤니케이션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 스탠포드 학생회 선거에서 그와 호아킨이 선거운동을 통해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면서 정치에 입문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 나와 동생은 당해 입학생 평균보다 낮은 점수로 힘들게 스탠퍼드에 입학했지만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과 로스쿨에서 잘할 수 있었다. "라고 말했다. 그는 2학년과 3학년 사이에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카스트로 형제는 1997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해 2000년 법무 박사로 졸업하고 잠시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4. 정치 경력[편집]



4.1. 샌안토니오 시의원[편집]


2001년 훌리오는 샌안토니오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5명의 후보들을 상대로 6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2] 그는 115,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서부 지역인 7번 구역의 대표를 맡았다. 인구는 70%가 히스패닉계였으며 노인이 많은 구역이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시의회 의원으로서 지역 내 PGA 공인 골프장과 도심지 교외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에 반대하였다.

4.2. 샌안토니오 시장[편집]


2005년 샌안토니오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며, 은퇴한 필 하드버거 판사와 보수 성향의 캐롤 슈베르 시의원이 포함된 분야에서 선두 주자로 널리 인식되었다. 그는 하드버거가 결선투표에서 51.5%의 표를 얻었을 때 약 4000표 차이로 패배했다.

2009년에 다시 샌안토니오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카스트로는 2005년의 하드버거 판사의 런닝메이트를 자신의 선거캠프로 불러들이고 선거운동을 직접 운영하다시피 했다.카스트로는 2009년 5월 9일 56.23%의 득표율로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샌안토니오 역사상 다섯 번째 라틴계 시장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50위권 내의 대도시 역사상 최연소 시장이었다. 카스트로는 2011년과 2013년에 손쉽게 재선에 성공하여, 2011년에 82.9%, 2013년 6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0년에 지역사회 전반의 비전투적인 노력인 SA2020을 만들었다. 그것은 2020년에 산 안토니오에 대한 그들의 집단적 비전을 바탕으로 산 안토니오 사람들이 만든 목표 목록을 만들었다. SA2020은 그 비전을 현실로 바꾸는 임무를 맡은 비영리 단체가 되었다. 또한 2010년에 커피 대학을 설립하여 샌 안토니오 지역 학생들에게 강의서비스를 제공했다. 2012년 그는 유치원 이전 영유아의 교육을 확대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주도했다. 카스트로는 샌안토니오에서 가장 유명한 사업가 찰스 버트와 조 로블레스 두 사람을 설득하여 유치원 전 교육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고 3천만 달러의 판매세를 통과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끌었다.

2010년 3월 카스트로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젊은 글로벌 리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 해 말, 타임지는 그를 "40세 이하"의 미국 정치계의 떠오르는 스타 목록에 올렸다.

2012년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최초의 히스패닉계 인사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2012년 선거 이후 2017년 이후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미 교통장관직을 거절했다. 그러나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택도시개발장관직 제의를 받아들였다. 카스트로는 워싱턴에서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2014년 7월 22일부터 시장직을 사임했다. 샌안토니오 시의회는 그를 대신할 의원인 아이비 테일러를 선출했다.

4.3. 오바마 행정부[편집]


2014년 5월 22일,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차기 주택도시개발 장관 후보자로 카스트로를 발표했다. 그는 2014년 7월 9일 상원에서 인준받았고, 관리예산처장에 내정된 숀 도노반과 인수인계를 마치고 2014년 7월 28일 취임했다. 이 발표에 이어 카스트로는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취임 첫날인 2014년 7월 28일 의회 히스패닉 코커스 연구소가 주최한 '라티노 내각 인사 기념 리셉션'에서 표창을 받았다.
2017년 퇴임하자마자 카스트로의 마지막 메모에는 그의 지도 하에 있는 그 부서의 다양한 업적들이 정리되어 있었다.이러한 분야에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HUD의 연구, 10억 달러 규모의 국가재난복원경연대회를 통해 자연재해를 입은 지역사회 재건, 연방지원주택의 선도안전보호 확대 등이었다.

4.4. 2016년 대통령 선거[편집]


2015년 10월 15일 카스트로는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지지했다. 힐러리는 카스트로가 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카스트로는 일을 잘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할 것이다. 2016년 1월 아이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다가오면서 힐러리 클린턴과 카스트로 토론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1월 말 카스트로는 아이오와에서 클린턴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2016년 7월, 미국 특별 고문실은 카스트로가 공식적인 자격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2016년 캠페인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해치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카스트로는 오류를 인정하고 그의 팀에게 해치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4.5. 2020년 대통령 선거[편집]


카스트로는 이미 2018년 뉴햄프셔 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2018년 5월 12일 뉴햄프셔 헤니커에 있는 뉴잉글랜드 칼리지에서 졸업식 연설을 했다. 카스트로는 2018년 11월 중간선거 이후 2020년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8년 12월 12일 카스트로는 탐사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2019년 1월 12일 2020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카스트로는 이날 발표에서 포괄적 이민개혁의 일환으로 메디케어(Medicare-for-all) 보편적 사전 K, 불법 이민자들의 시민권 행로를 강조했다.

카스트로는 1924년 이후 부통령, 주지사, 상원의원을 역임하지 않은 최초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다. 그는 2020년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첫 텍사스 출신 후보이며 만일 경선에 이기고 당선까지 할 수 있다면 세 번째로 젊은 대통령이 될 것이다.


5.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편집]



5.1. 경제[편집]


그는 " 균형예산 정책을 믿는다"고 말했다

5.2. 무역[편집]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샌안토니오 시장 시절 북미자유무역협정(FTA)의 강력한 지지자였지만 '노동자와 환경보호 강화'를 위해 재협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낸 적이 있다.

5.3. 교육[편집]


대학 2학년까지의 학비를 무료로 하는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보편적인 유치원생들을 지원하고, 샌안토니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지방세 인상에 의해 재정 지원을 받는 4살짜리들을 위한 유치원 전 프로그램을 어렵게 통과시켰다

5.4. 의료보험[편집]


보편적 의료보험과 모두를 위한 의료보험을 요구하고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함으로써 그러한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경제적 의료법'을 지지했다.

5.5. 환경[편집]


파리 기후협약을 지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탈퇴를 비판해 왔다. 카스트로는 재임 중 기업들과 협력해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그는 녹색 뉴딜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과거에 카스트로는 "화석연료를 포함하는 에너지 정책" 을 주창하는 동시에 "화석연료 일자리의 이점을 지적하는 것"을 주장해왔다.

5.6. 외교 정책[편집]


시리아에서 미군이 점진적으로 철수하는 것을 지지하면서도 트럼프의 이 문제에 대한 접근도 비난했다.

5.7. 선거유세 비용 처리 계획[편집]


대통령 후보로서 "PAC 비용을 전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그는 2017년 선거관리위원회(PAC)를 결성해 선거비용을 대부분 부담하는 동시에 '젊고 진보적인' 민주당 정치인 수십명에게 기부했다.

5.8. 사회적 문제 및 인권[편집]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임신 20주 이후 낙태 접근 제한과 그 밖의 제한에 대한 주법에 대해 "열심히" 반대했다.

5.9. LGBT[편집]


LGBT의 권리를 옹호해 왔으며, 시장으로서 동성결혼에 대한 법적 인정을 거부하는 텍사스 주의 법에 반대했다. 그는 또한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인 '인터-아메리카 커뮤니케이션'의 회원이다.카스트로는 2009년 샌안토니오 시장 최초로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총책임자로 활동했으며, 2011년에는 이 도시에서 국내 파트너에게 혜택을 제공하라고 촉구했다 2012년 전국 시장들과 함께 동성결혼 평등 청원서에 서명했다.

트위터에서 트랜스젠더들이 군대에 복무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1차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낙태를 트랜스 여성으로 잘못 지칭하며 남성들에게 낙태를 허용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나중에 트위터에서 정정된 후에 모든 트랜스인과 비 바이너리인을 포함하도록 정정했다.

5.10. 총기 소유권[편집]


총기 규제 강화를 지지하고 있으며, 공격용 무기 유통을 금지하며 대용량 대구경 무기에의 접근을 제한하고, 사적 거래를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11. 이민자 문제[편집]


미국 내 대부분의 불법 체류자들에게 시민권 통로를 지지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장벽' 계획에 반대해 왔다. 또 2019년 6월 26일 제1차 민주당 경선후보 토론회에서 불법 입국을 형사처벌하는 대신 민사재판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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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멕시코 뿌리에 대한 정체성이 강한 미국 대도시지역의 이민자들을 뜻한다 [2] 그의 나이 26세로 샌안토니오 최연소 기록을 갱신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