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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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정편
2.1. 후지츠보 중궁
2.2. 후지츠보
3. 우지10첩
3.1. 후지츠보 뇨고



1. 개요[편집]


藤壺

겐지모노가타리에 나오는 건물 이름으로 비향사(飛香舎)의 다른 이름이다. 비향사는 천황=주상이 머무는 청량전(清涼殿) 북쪽이자 홍휘전 서쪽에 자리하는 후궁오사(後宮五舍) 전각 중 하나로 안뜰에 등나무가 심어져 있어 후지츠보=등나무 안뜰로 불리었다. 이는 기리츠보 갱의의 거주지였던 숙경사(淑景舍) 안쪽에 오동나무가 있다고 해서 오동나무 안쪽=기리츠보라 불린 것과 같은 것이다. 해당 전각은 홍휘전(弘徽殿)과 더불어 세력이 있는 여어에게 내리는 전각으로 웃전 동쪽은 고키덴 웃전, 웃전 서쪽은 후지츠보 웃전이라고 불리었다.

겐지모노가타리 시대 때 건물 대부분이 사라진 것과 달리, 비향사는 지금도 청량전과 마찬가지로 교토고쇼에 남아있는 건물이다.


2. 정편[편집]



2.1. 후지츠보 중궁[편집]


藤壺女御 → 藤壺中宮 → 藤壺入道中宮

후지츠보 여어 내친왕藤壺女御內親王 → 후지츠보 중궁 내친왕藤壺中宮內親王 → 후지츠보 입도 중궁[1]

정편 초기의 주요 인물. 히카루 겐지의 첫사랑이다.

파일:3C9346F7-27A9-4566-BE5E-36D252CD2627.jpg <아사키 유메미시>의 후지츠보 중궁.

히카루 겐지의 아버지 기리츠보테이/동호제(桐壺帝)가 겐지의 어머니 기리츠보코이/동호 갱의(桐壺更衣)와 꼭 닮았다는 이유에서 후궁으로 들인 여성. 첫 입궐 당시에는 뇨고(女御)라서 후지츠보 뇨고/등호 여어(藤壺女御)였다가, 아들을 낳자 중궁(中宮)이 돼서 후지츠보/등호 중궁(藤壺中宮)이라 불리게 된다. 14살에 처음으로 입궁했으며 당시 9살이었던 겐지와 처음으로 만났다.

겐지의 아버지 기리츠보테이/동호제(桐壺帝) 덴노 이치노인의 넷째 황녀로 내친왕(內親王)[2]이다. 기리츠보 갱의와 닮은 이유로 14살에 아버지뻘인 황제의 후궁으로 들어간 그녀는 후지츠보(비향사) 거처와 후지츠보 여어라는 명칭을 얻는다.

신분이 높으면 무조건 찬양하고 보는낮으면 일단 깔고 보는 세계관이라 후지츠보 여어는 고키덴 여어도 함부로 못 해서 누구도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행동한다. 작품 내에서는 완벽하게 이상적인 여성[3]으로 그려진다. 외모도 히카루 겐지와 빛나는 후지츠보라는 식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볼 때 작중 최고 수준의 미녀다.[4]

그러나 그 탓에 겐지는 후지츠보를 짝사랑하게 되는데 그녀가 몸이 안 좋아(월경이었을 가능성도 높다) 친정에 있을 때 겐지가 시녀를 매수해 쳐들어온 겐지와 검열삭제까지 하게 된다. 겐지가 한밤중에 후지츠보의 침실로 숨어들어가 그녀를 덮쳤고, 저항하던 후지츠보는 끝내 당하고 그의 아들 주노미야를 낳는다. 친부도, 임신 기간도 속여 겨우 태어난 이 아이는 기리츠보테이의 아들로 인정되지만, 이 와중에도 친부인 겐지가 이 아들을 보며 하는 생각이란 '아이가 이리 아름다울 수가!- 나를 닮았다 - 그러니 나도 나를 더 소중히 해야지!'(...) 이렇게 아이가 자신과 너무 닮아 친부임이 들킬까 두려운 와중에서도 답 없는 자뻑을 보여주고 자빠지셨으니, 정작 피해자 후지츠보는 남편을 보며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것과 대비되는 인간성.

기리츠보테이는 허허거리며 후지츠보가 겐지의 친모와 닮아 아이도 겐지와 얼굴이 똑같다며 주노미야를 다음 동궁으로 정하고 후지츠보를 중궁으로 올린다. 겐지를 동궁으로 앉히지 못했던 기리츠보테이는 겐지와 똑같이 생기고 모계 신분도 높은 막내 아들을 다음 동궁으로 삼고 겐지를 후견인으로 대리 만족한 셈 친다. 세간에서 중궁 자리는 친정의 세력과 공이 큰 고키덴 여어의 차지라고 생각하던 상황이라, 여어는 물론 사람들도 의리를 팔아 먹었다고 험담하지만 기리츠보는 오히려 네 아들은 다음 후계자니 적당히 하라고 고키덴을 부드럽게 깐다(...) 덕분에 고키덴 여어의 한이 더 쌓여 겐지의 후견을 받을 동궁도 미움을 사서, 후지츠보는 기리츠보 덴노 사후 태후 고키덴의 득세로 핍박받는 동궁을 지키기 위해 법화팔경 때 출가한다.

당시 후지츠보의 출가 이유는 단순히 태후 세력이 동궁을 견제하는 걸 막는 것 외에도 겐지 때문에 못 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겐지는 고키덴 세력에 찍힐 짓을 부지런히도 하고 다녔고, 부황이 세상을 뜨자 뒷일 생각 없이 후지츠보를 찾아와 자길 받아달라고 호소하며 떼를 쓰기도 했다. 누가 봐서 이 사실이 소문나면 겐지와 아들이 나란히 찍혀나가 쫓겨나는 정도를 넘어서 기본 생매장 감.

허나 자기 마음만 중요해 남이 피해입는 건 상관하지 않는 작자+"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그것이 사랑!!"이라는 미친 캐치프레이즈로 본인의 개짓을 정당화하는 겐지는 눈치 없이 아무 때나 쳐들어와 덮치려고 해서 그녀와 시녀들의 피를 말린다. 자신의 염려 따윈 헤아리지도 않고 들이대는 겐지를 견디다 못한 중궁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출가 밖에 답이 없다고 결론 내린다. 아들마저 두고 갈 각오로, 겐지가 알면 쳐들어와 방해할까봐 깜짝 출가해버려 출가한 여인을 못 건드리는 계율상 겐지도 그녀를 더 괴롭히지 못하게 되어 한숨 돌린다.

출가한 이후에는 입도 중궁이라고 불리며, 출가한 중궁은 황태후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황태후로 칭해지지 않는다.

출가 당일에 열린 법회에서 이를 진행하다 말고 후지츠보의 백부가 되는 아자리가 난데없이 그녀의 출가를 선언한다. 겐지가 눈 앞에서 머리를 자르고 비구니가 된 후지츠보에게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지 묻자 후지츠보는 출가 결심이 흔들릴까봐 그랬다고 말했다. 그 따위로 살면서도 광신적인 열혈 불빠인 겐지는 극락 못 갈까 봐 무서워서(...) 비구니는 누구라도 건드리지 않기에, 후지츠보는 겨우 겐지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것 같았으나...

아들과 떨어지는 것까지 감수했는데 정작 겐지가 이모뻘 되는 친척누나이자 형수가 될 예정이었던 오보로즈키요와 눈맞고 관계하다 들키고, 쫓겨나기 전 제 발로 나간다며 동궁을 두고 스마로 튀는 뻘짓을 벌이자 마음 아파한다. 이후 동궁의 후견인으로서 겐지와 공동전선을 형성, 아키코노무 중궁을 며느리로 정하는 등 아들에 관한 일에서만 겐지를 상대하려 한다. 물론 겐지는 제 버릇 개 못 주지만 중궁은 씨도 안 먹히게 잘 처신한다.

실상은 겐지 때문에 일생이 엎어진 피해자 중 하나. 황녀로 태어나 내친왕, 중궁, 여원까지 최고 지위들을 전부 얻은 팔자 좋은 여자로 보이지만, 실은 겐지에게 너무 당하고 평생 세상을 속이며 맘 편할 날 없이 살다 37세에 요절해버린 비운의 캐릭터. 신분, 총애, 뭐든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이 그저 편히 살 수 있었던 후지츠보의 삶은 평생 스토커로 들러붙는 겐지 덕분에 안 해도 될 몸고생 마음 고생 다 하고, 일생동안 성격에도 안 맞는 대형 사기를 치며 근심으로 마음 졸이는 신세가 되었다. 그 때문에 아사가오 권에서 후지츠보가 겐지의 꿈에 나타나 겐지를 원망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후지츠보의 오빠는 병부경 친왕에서 식부경 친왕이 되는데 무라사키노우에의 아버지로, 타마카즈라의 남편인 검은 수염 중장의 정처[5]를 비롯한 여러 여식이 있었고 후지츠보는 조카딸도 며느리로 들였다.

명목상으로는 무라사키노우에의 고모지만 무라사키는 겐지 때문에 식부경 친왕의 친정 식구로 인정 받지 못해서 후지츠보 중궁과는 신분도 천지차이에다 감히 조카라고 말도 못 꺼낼 처지가 되어 한번 만나보지도 못했다. 후지츠보는 겐지가 자신의 조카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그가 정신을 차리겠거니 하지만, 무라사키마저 일생을 후지츠보의 대용으로 겐지에게 이용당한다.

2.2. 후지츠보[편집]


藤壺

기리츠보 덴노의 아들이자 히카루 겐지의 이복형제인 스자쿠 덴노의 후궁이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는 군주에 대해 테이/제(帝)라고 썼다 상황이 되거나 불교에 귀의하면 인/원(院)으로 표기를 바꾼다.

기리츠보 덴노의 선제이자 형인 이치노인의 딸로, 위에 나오는 후지츠보 중궁 및 그 오빠인 효부쿄노미야의 배다른 자매다. 하지만 후지츠보 남매와는 신분이 다른데, 남매는 친왕과 내친왕으로 대우받지만 이 여동생은 부왕의 생전에 이미 신적강하로 성씨를 받고 일반 귀족이 되면서 히카루 겐지처럼 미나모토氏씨(원씨/겐지)를 하사받는다.[6]

사촌형제인 스자쿠가 동궁일 때 후궁으로 입궁. 나이시노카미/상시(尚侍)[7]가 스자쿠인의 총애와 태후의 비호를 받으며 후궁을 휘둘러 납작해져 산다. 그래도 동궁 때부터 오랫동안 같이 한지라 스자쿠는 다음으로 이 후지쓰보만 제일 총애해 다른 후궁들의 불만을 사다 딸 하나를 남기고 죽는다.

혈통상으로나 즉위 전부터 제일 오래 지내 중궁도 될 수 있었지만 빽 좋은 나이시노카미한테 치여 산지라 마음 약한 스자쿠 덴노는 후지츠보를 대우해 주고 싶어했지만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데 문제는 그 딸인 온나산노미야를 무지막지하게 편애한다는 것. 겐지만 편들던 부왕이 했던 걸 그대로 배웠는지 다른 공주들은 재산도 온나산노미야한테 가고 남은 허접데기들만 대충 얻는 등 떨거지 취급을 받자 제일 대우받는 온나산노미야는 모르는 남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지만 정작 후궁들 사이에선 찍힌다.

세력도 외가도 없이 남겨진 온나산노미야, 그것도 어딘가 모자란 것 같은(...)데다[8] 눈칫밥까지 먹는다고누구 때문? 더 애닳아하며 어떻게든 더 대우받게 해주고 싶어 든든한 사위를 찾던 스자쿠는 결국 자신을 여러 차례 물먹였던 이복동생 히카루 겐지에게 철없는 셋째딸을 떠맡겨 마지막까지 호구 인증을 하고(...) 결국 이로 인해 겐지 일가와 온나산노미야까지 파국을 맞는다. 겐지에게 일생 당해온 스자쿠 덴노 입장에선 의도치 않게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카운터 펀치였을지도(...) 딱히 본인은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3. 우지10첩[편집]



3.1. 후지츠보 뇨고[편집]


藤壺女御

좌대신의 딸이라는 언급을 볼 때 설정상 후지와라씨(藤原氏)로 추정된다.

스자쿠인의 아들인 금상의 후궁 후지츠보는 금상이 동궁일 때 1등으로 입궁한 첫 후궁이다.

아카시노히메기미(후일 아카시 중궁)가 동궁에게 입궁하게 되자 경쟁이 안 된다고 여긴 다른 귀족들이 자기 딸을 후궁에 보내기 망설이자 겐지는 그저 후궁에는 풍류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다른 후궁도 들이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눈치 게임 끝에 좌대신의 딸이 동궁의 첫 여자로 입궁해 동궁의 첫 잠자리 상대까지 하는 위업을 달성하지만(잠자리라도 그냥 한 방에 같이 누워 자고 성인이라 보여주는 형식) 결국 아카시노히메기미에게 밀려 콩라인으로 전락. 기리츠보에 거처를 정한 겐지의 딸은 부친의 빽도 있어 제일 대우 받고 언급된 아들만 3명이다.

아카시노히메기미가 아카시 중궁이 되어 뇨고에 머물게 되어도 동궁에게는 나름 의미 있는 후궁이라 신경써 주지만 아카시 중궁 위세에 눌려 살고 딸 하나를 겨우 낳고 애지중지한다. 전 태정대신 차남인 고바이가 그녀를 짝사랑해 들이댐을 완전 무시로 일관해 안 들키고 잘 넘어가지만, 딸이 성인식 직전에 급사. 금상은 매우 애석하게 여겨서 그 딸 온나니노미야를 돌봐줄 궁리에 골몰한다. 후지츠보 뇨고의 친정은 잘나가다 멈춘 상태였기에 온나니노미야의 후견인이 될 정도로 출세한 믿음직한 사람이 없었다. 후지와라 씨족은 헤이안 시대 때 권세가였던 만큼 내부알력이 심했고 당연히 권력다툼 도중에 몰락하는 세력들이 많아 도우지/등원씨라 불리던 무가와 지방관 후지와라 씨족이 괜히 있던 게 아니다. 여어는 좌대신의 딸이었지만, 후견이던 부친의 사후 친정 상황이 내친왕을 맡기에는 상태가 별로였던 것.

그러자 금상은 우지10첩의 주인공이자 세간에 겐지의 막내아들로 알려진 카오루를 상대로 지정한다. 궁에 드나들기 귀찮은 카오루는 아예 공주를 사가로 데려와 살지만 부부라기보다는 신하가 주군을 돌보듯 하는 사이. 결론적으로 사위를 완전 잘못 고름(..........) 카오루는 작중 행적을 보면 겐지보다 더한 놈이다. 아내의 언니인 첫째 공주 온나이치노미야(중궁의 딸)를 우연히 엿보고 흑심을 품고 아내를 이용해 편지 교환을 시키는 등 접근하려는 행각까지(.............)

원래 처소는 여경전이었으나 비향사로 바뀐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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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가한 후의 명칭으로, 헤이안 시대에는 출가한 중궁은 황태후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중궁으로만 불린다.[2] 헤이안 시대 때는 황제의 딸이 내친왕(內親王)이고 황제의 손녀가 여왕(女王), 증손자부터는 신적강하였다.[3] 작중 가장 이상적인 여성이 무라사키노우에인지 후지츠보인지는 연구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고, 일반적으로 겐지 본인이 무라사키노우에 앞에서 후지츠보를 찬양하는 장면이 있다 보니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던 것은 후지츠보로 보고 있다. 다만 기리쓰보 첩 마지막에 겐지가 니조노인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후지쓰보 여어와 같은 이상적인 여자를 니조노인에 두어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이 여자는 니조노인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니조노인에서 죽은 무라사키노우에로 여기고 있다.[4] 한편 기리츠보 갱의가 후지츠보 중궁을 닮았다는 점에서, 그녀가 그렇게 총애받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얼굴 덕이려니(...) 하지만, 미모는 이유 중의 하나이고 다른 까닭도 있었다. 사실 아들인 히카루 겐지의 눈부신 미모를 생각할 때, 어머니인 기리츠보 갱의의 미모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는 것.[5] 식부경 친왕의 적자이자 무라사키의 이복언니로 귀신에게 들려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지라, 검은 수염 중장이 자식들을 둔 상태에서도 쫓아내려 하자 이에 분노한 식부경 친왕이 딸을 데려와 검은 수염 중장과 만나지 못하게 막는다. 이런 가정파탄을 본 타마카즈라는 검은 수염 중장과 혼인하는 걸 거북해 했다.[6] 미나모토氏외에도 신적강하로 생긴 본성이 평씨/헤이시, 헤이케타이라氏와 귤씨인 타치바나氏다.[7] 히카루 겐지의 연인인 오보로즈키요. 우대신의 딸이자 고키덴 태후의 여동생이며, 스자쿠인의 이모. 본래는 오보로즈키요를 중궁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밀회가 들통나서 해당 기회는 날아갔다. 아오이노우에 사망 후 우대신은 겐지에게 오보로즈키요와의 결혼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 결국 오보로즈키요는 여관으로 입궁했다.[8] 작중 하는 행동을 보면 상당히 철이 없고 머리가 꽃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