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덤프버전 :

파일:US 오픈 로고.svg
역대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
2008년
파일:스위스 국기.svg 로저 페더러

2009년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2010년
파일:스페인 국기.svg 라파엘 나달


파일:78A728BD-2D4A-49AB-996E-4C2A47D2C366.jpg

후안 마르틴 델포트로[1]
Juan Martín del Potro
생년월일
1988년 9월 23일 (35세)
국적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display: none; display: 아르헨티나"
행정구
]]

출신지
아르헨티나 탄딜
프로데뷔
2005년
신장
198cm (6 ft 6 in)[2]
사용 손
오른손 (두손 백핸드)
ATP 싱글 랭킹
최고 3위
ATP 더블 랭킹
최고 105위
개인전 통산 성적
439승 174패 (71.7%)
복식 통산 성적
41승 44패 (48.24%)
개인전 타이틀 획득
22회
그랜드슬램 타이틀 / 결과
호주 오픈 8강 (2009, 2012)
프랑스 오픈 4강 (2009, 2018)
윔블던 4강 (2013)
US 오픈 우승 (2009)
올림픽 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단식 동메달
2016 리우 올림픽 단식 은메달

통산 상금 획득
$25,889,586
후원
나이키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커리어
3. 선수 소개
3.1. 2016년
3.2. 2017년
3.3. 2018년
3.4. 2019년 이후
4. 플레이 스타일
5. 타 선수들과의 상대 전적
6. 여담
7. 참고 링크



1. 개요[편집]


BIG 4가 점령중인 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의 남자 단식 테니스계에서 빅4를 제외하고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을 우승한 세 명 중 하나[3]이자 21세기 남미 최고의 테니스 선수 중 1명[4]으로 평가받는다.

아르헨티나 자국에선 스포츠 국민 영웅 대접을 받는다. 당대에서는 리오넬 메시 다음가는 인기라고 한다. 실제로 델 포트로의 전성기였던 2009년에는 08-09시즌 바르셀로나의 6관왕을 이끈 메시를 제치고 아르헨티나 올해의 스포츠선수 상을 수상했다.

빅4 세대에서 빅4에 가장 근접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음에도, 지독한 유리몸으로 커리어를 절반 이상 날려먹은 매우 안타까운 선수이기도 하다. 당장 아래 그랜드슬램 성적표에서 불참한 경기 횟수만 봐도 알 만하다.

2009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후보였던 라파엘 나달을 준결승전에서 3-0(6-2, 6-2, 6-2)으로 격파하고 결승전에서도 세계 랭킹 1위인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3-2(3-6, 7-6<7-5>, 4-6, 7-6<7-4>, 6-2)로 누르고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한 경력이 있다.

로저 페더러를 메이저 결승에서 꺾은 단 3명의 선수 중 1명이다.[5][6]


2. 커리어[편집]


  • 개인전 통산 성적: 439승 174패
  • 단식 타이틀 획득: 22회
  • 복식 통산 성적: 41승 44패
  • 복식 타이틀 획득: 1회
  • 통산 상금 획득: $25,889,586 (한화 약 313억)

그랜드슬램 대회:
  • 호주 오픈: 8강 - 2009, 2012
  • 프랑스 오픈: 4강 - 2009, 2018
  • 윔블던: 4강 - 2013
  • US 오픈: 우승 - 2009

기타 대회
  • ATP 월드 투어 파이널: 준우승 1회 - 2009
  •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우승 1회, 준우승 3회
  • 올림픽 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단식 동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단식 은메달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

연도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
2005



예선
2006
불참
1라운드
불참
1라운드
2007
2라운드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2008
2라운드
2라운드
2라운드
8강
2009
8강
4강
2라운드
우승
2010
4라운드
불참
불참
불참
2011
2라운드
3라운드
4라운드
3라운드
2012
8강
8강
4라운드
8강
2013
3라운드
불참
4강
2라운드
2014
2라운드
불참
불참
불참
2015
불참
불참
불참
불참
2016
불참
불참
3라운드
8강
2017
불참
3라운드
2라운드
4강
2018
3라운드
4강
8강
준우승
2019
불참
4라운드
불참
불참
2020
불참
불참
취소
불참
2021
불참
불참
불참
불참
2022
불참
은퇴

빅 타이틀 우승 기록

3. 선수 소개[편집]


2005년에 프로로 전향하여 2008년에 ATP 투어 남자 단식 첫 결승 진출 겸 우승을 달성하는 등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만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기록하였으며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8강 진출을 달성하며 성적이 급상승했다.

전성기가 시작되는 2009년에는 그랜드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남자 단식 8강 진출,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을 기록했고, 2009년 ATP 월드 투어 파이널 남자 단식 준우승과 2009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캐나다 마스터스 남자 단식 준우승 및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월드 투어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 2회를 기록하면서 2010년 1월에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3.1. 2016년[편집]


2015년까지도 줄부상과 수술이 이어지며 거의 경기 출전을 못했으나, 2016년 2월에 덜레이 비치 오픈을 시작으로 ATP 월드 투어에 복귀했다. 그리고 윔블던 남자 단식 64강전(2회전)에서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를 꺾으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7] 복귀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기뻤는지 팬들의 환호를 받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본선 64강전(1회전)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2-0(7-6<7-4>, 7-6<7-2>)으로 잡는 기염을 토하며 무난히 순항중이다. 이름값이나 커리어로 치면 1라운드에 붙을 상대가 아닌데 그동안 너무 놀아서(...) 세계 랭킹이 141위까지 추락하는 바람에 1라운드부터 성사된 빅매치. 참고로 조코비치와의 테니스 남자 단식 64강전(1회전)을 위해 숙소를 나서던 도중 엘리베이터 정전이 되는 바람에 40분간 갇히는 곤욕을 치루었는데, 본인은 별로 놀라지 않았는지 셀카 찍으면서 구조를 기다렸단다(...) 게다가 2012 런던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조코비치를 꺾은 적이 있는터라 조코비치를 상대로 올림픽에선 무패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8]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선 라파엘 나달에게도 2-1(5-7, 6-4, 7-6<7-5>)로 역전승하면서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결승에선 스코틀랜드의 앤디 머레이에게 패하여 은메달을 차지했다.

리우 올림픽 2주 후에 열린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8강에 진출하여 38개월만에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다시 8강에 올랐고, 10월엔 스웨덴스톡홀름에서 열린 ATP 월드 투어 스톡홀름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33개월만에 다시 ATP 월드 투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함으로서 2016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델 포트로는 자신이 부상에서 재기하였음을 증명했다.


3.2. 2017년[편집]


2017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선 8강전에서 올해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을 2번이나 우승하며 부활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3-1(7-5, 3-6, 7-6<10-8>, 6-4)로 꺾었다! 그리고 US 오픈 남자 단식 4강전에선 라파엘 나달과 맞붙었으나 델 포트로가 1세트를 선취하고도 2~4세트를 내리 나달에게 내주며 세트 스코어 1-3(6-4, 0-6, 3-6, 2-6)으로 패배하며 US 오픈 남자 단식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US 오픈 이후에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상하이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월드 투어 스톡홀름 오픈 남자 단식 우승, ATP 월드 투어 바젤 오픈 남자 단식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2017년 하반기에 강력한 성적 상승세를 타고 있다.


3.3. 2018년[편집]


2018년 호주 오픈에서는 토마스 베르디흐에 져 32강전에 그쳤지만 약 한 달 뒤 열린 500 시리즈 아카풀코 오픈에서 우승함으로 올해 첫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또 바로 다음 대회인 마스터스 1000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는 결승까지 가 로저 페더러를 꺾으며 마스터스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서 델 포트로는 페더러와의 상대전적은 밀리지만 결승전에서는 페더러보다 우위를 점하는 몇 안되는 선수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줬으며, 세계랭킹 6위를 달성했다. 또 마이애미 오픈에서도 니시코리 케이, 밀로시 라오니치를 꺾으며 4강까지 오르며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4강에서 당시 미칠듯이 치고오르던 존 이스너[9]에게 세트 스코어 2-0(6-1, 7-62)로 패배했다.[10]

한 달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델 포트로는 마드리드 오픈에 출전하는데, 16강에서 두산 라요비치(95위, 세르비아)가 포트로를 몰아붙이자 스스로 흔들하더니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 롤랑 가로스에서 무난하게 순항하여 8강에 진출했고, 8강에서는 마린 칠리치를 상대로 우천으로 1박2일간 경기를 펼친 끝에 승리하여 4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그러나 4강서는 17년 US오픈 4강에서 만났던 라파엘 나달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브레이크 한 번 못 따내고 맥없이 0-3(4-6 1-6 2-6)으로 무너지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다만, 4강 진출의 결과로 자신의 커리어하이인 랭킹 4위로 다시 올라서게 되었다.

2018 윔블던에선 질 시몽 등을 때려잡으며 무난히 8강에 진출하여 라파엘 나달과 붙게 되었는데, 이번 대회 최고의 명경기라 불릴만한 용호상박의 풀세트 접전 끝에 3-2(7-5 6-7<7-9> 4-6 6-4 6-4)로 정말 아깝게 패해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250대회인 로스 카보스 오픈에서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파비오 포니니에 패배해서 준우승에 그쳤다. 그래도 이 대회 덕분에 8년 전 자신의 최고기록이었던 세계랭킹 4위를 넘어서고 커리어 최초로 세계 랭킹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손목 부상으로 인해서 로저스컵 출전을 철회했다. 바로 다음 대회인 신시내티에서는 정현닉 키리오스 등을 잡으며 8강에 올라갔지만 다비드 고팡에게 연속으로 타이브레이크에서 지며 패배했다.

2018 US오픈에서는 무난하게 3회전까지 통과를 한 상태이다. 그 이후 보르나 초리치, 존 이스너를 누르며 4강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올해 윔블던에서 접전 끝에 졌던 세계 랭킹 1위의 라파엘 나달과 다시 끝장승부를 벌이게 되었는데, 세트스코어 2-0으로 리드하고 3세트에 돌입하려던 찰나 나달의 기권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완벽히 부활한 노박 조코비치에게 0:3으로 완패하며 9년만에 US 오픈 정상 탈환에 실패하고, 세계랭킹도 조코비치에게 3위를 내주고, 4위로 내려앉게 되었다.

이후 베이징에서 무난히 결승에 갔으나 하반기 폼이 아주 좋던 바실라쉬빌리에게 패했고, 마스터스 1000 상하이 오픈에서 초리치와 경기하다 넘어진 것이 큰 부상으로 이어지며 시즌을 마감, 파리 마스터즈와 투어 파이널에서는 뛸 수 없게 되었다.


3.4. 2019년 이후[편집]


이후 2019년 호주 오픈도 부상으로 거르게 되었다. 프랑스 오픈 전후로 복귀해 몇 대회를 뛰었으나 2018년에 다친 무릎부상이 재발하여 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되면서 시즌은 커녕 커리어 전체가 위기에 빠진 상태가 되었다. 이후 2021년까지도 복귀 소식은 요원한 상태.

결국 2022년 2월 부에노스 아이레스 오픈이 자신의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 선언했고, 2라운드에서 같은 아르헨티나 국적 선수인 페데리코 델보니스에게 0-2로 패배하며 은퇴경기를 치뤘다. 아르헨티나 홈팬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 눈물의 은퇴연설을 하며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198cm로 엄청난 장신을 이용한 괜찮은 서브와 흔히 투어 최고의 포핸드[12]로 꼽히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포핸드가 장기이지만, 포핸드와 비교했을때 백핸드의 수준은 많이 아쉬운편.

역시 키가 크다보니까 움직임이 둔해 수비범위가 좁은편이기도 하고[13][14], 네트로 전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또 다른 약점은 유리몸이라는 것이다. 매우 부상을 많이 달고 다니는 선수들 중 하나이며, 2014년도 손목부상으로 전반기를 통째로 날리기도 했다.

손목부상으로 오랫동안 시달렸는데 이 문제로 인해 백핸드가 더 약해졌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슬라이스의 빈도를 높혔다고 하는데.. 문제는 슬라이스도 그렇게 좋은편은 아니다. 본인도 슬라이스를 자주 사용하는건 원래 자기 스타일과 맞지 않지만 손목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결정이었다고. 제 2의 전성기를 보내던 2018년에도 손목 부상이 툭 하면 발생하여 델 포트로의 커리어에 발목을 잡았다.


5. 타 선수들과의 상대 전적[편집]


TOP 10 랭커들 중 문서가 존재하는 선수들만 기입하였습니다. (5전 이상)

  • 델 포트로의 전적이 우세한 상대
--


  • 델 포트로와 전적이 동률인 상대
--


  • 델 포트로의 전적이 불리한 상대
-

6. 여담[편집]


  • 파일:델뽀뜨로무릎이뿌러뜨로.png
델포트로의 부상 역사를 담은 사진. 상술했다시피 델 포트로는 엄청난 잦은 부상, 유리몸으로 유명하다. 온몸에 수없이 많은 부상을 당했으며, 2009년 전성기 시절을 보낸 이후 손목에 크리티컬한 부상을 입으며 곧바로 암흑기가 돌입되었고, 2018년 제 2의 전성기 시절 이후에는 무릎 부상이 심화되어 다시 암흑기가 겹쳤다. 그럼에도 슬램 우승을 포함해 수많은 커리어를 쌓은 게 대단할 따름. 은퇴 7개월 후에 자국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아직도 달리기를 하거나 계단을 오르면 무릎의 통증이 심하다는 사실을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2009년 US 오픈 남자 단식을 우승한 이후, 로저 페더러는 본인의 시대가 가면 델 포트로가 테니스계를 점령할 거라는 인터뷰를 남긴 적이 있다.[15][16]

  • 눈물이 굉장히 많은편이다. 그랜드슬램 같은 메이저 대회 8강 이상 경기에서 패배하고 난 후에는 기자회견에서 눈시울을 붉히는걸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며 대회 우승을 할 시에는 말할 것도 없다. 2009년 US 오픈 우승을 확정하고 나서는 하도 울어서 패자인 로저 페더러가 승자로 보였을 정도... 이런 이미지에 들어맞게 성격도 굉장히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고 잘 알려진 선수 중 한명이다. 공교롭게도 은퇴경기를 치루는 선수들을 몇 명이나 상대한적이 있는데[17] 모두 다 자신과 치루는 경기를 커리어 마지막 경기로 만들어버린 경력이 있다... 물론 경기가 끝나고는 세레머니 하나 없이 상대방에게 달려가 포옹해주고 먼저 코트를 떠나며 배려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테니스가 신사적인 스포츠인 만큼 보통 이렇게 해주는게 정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델 포트로의 매너가 많이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 이런 델 포트로도 유망주시절엔 2008년 (당시 19살) 로마 오픈에서 앤디 머리와 말다툼과 신경전을 벌이는 사건은 있었다. 자세히 나온 기사는 없지만 정황상 델 포트로가 머리의 어머니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고... 패드립이었는지는 자세히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보통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패드립을 하기 마련인데 주디 머리[18]는 거의 아들의 모든 경기에 응원을 하러 올 정도로 헌신적이다. 주로 상대방 관련인물이 박스에서 본인의 경기에 방해되거나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항의를 하는데 사실 테니스 경기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긴하다.[19] 다행히 원만하게 해결이 됐는지 그 이후에 서로 상대할때마다 경기가 끝나면 훈훈하게 마무리 지었다.


7. 참고 링크[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7 06:28:20에 나무위키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 등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실제로는 조금 더 클 가능성이 높다. 같은 6'6로 올라와있는 즈베레프, 메드베데프, 하차노프, 칠리치 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 보통 델 포트로가 조금씩이나마 크게 나온다.[3] 나머지는 2014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스위스의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와 2014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크로아티아의 마린 칠리치.[4] 보통 구스타부 쿠에르텡과 더불어 언급된다.[5] 다른 2명은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6] 델 포트로가 부상을 너무 자주 당해서 그렇지 빅4중에서 페더러를 상대로 25전 7승 18패, 조코비치를 상대로 18전 4승 14패로 이 둘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으며, 나달 상대전적은 14전 5승 9패, 앤디 머레이 상대 전적은 10전 3승 7패로 꽤 열세이긴 해도 어느 정도 선전하는 수준이고 여기에 델 포트로의 빅4를 제외한 다른 탑랭커 상대전적은 꽤 좋은 편이다. 심지어 스탠 바브린카한테 전적이 우세하다![7] 참고로 바브린카는 잔디코트 성적이 비교적 나쁜편으로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모두 우승경험이 있지만 윔블던에선 8강이 최고성적으로 썩 좋지 못하다. 윔블던 이후 US오픈에서 또 두선수가 맡붙었는데 바브린카가 우위를 보이며 3-1로 승리했다.[8] 통산 성적은 11승 4패로 조코비치의 우위. 조코비치의 4패 중에 2패가 올림픽이라는 비 ATP투어 남자 단식 경기이며 다른 1경기는 2011년 데이비스컵 4강 단식. ATP투어에서 델 포트로의 승리는 2013년 마스터스 1000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 4강전이 유일하다.[9] 이스너는 16강서부터 마린 칠리치, 정현을 2-0으로 꺾어 완승했다.[10] 이후 이스너는 결승에서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꺾으며 우승까지 차지했다.[11] 플랫 구질은 빠르고 낮게 튀기 때문에 상대가 받아치기 힘든 공격적인 샷이지만 포물선 또한 거의 직선에 가까운 때도 있을정도로 낮아서 네트에 걸리기 쉽다. 이런 특성상 높은 공은 베이스라인을 넘기지 않도록 찍어눌러서 쳐야되며 낮은 공은 플랫하게 치려고하면 네트를 넘기려고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오히려 베이스라인을 넘기거나 네트에 쳐박기 십상이다.[12] 페더러, 나달, 잭 삭, 닉 키리오스의 포핸드와 더불어 투어 최고의 포핸드로 꼽힌다. 균형잡힌 포핸드인 페더러, 스핀에 특화된 나달, 삭, 키리오스와는 다르게 이스턴 그립을 잡고 플랫하게 내지르는 화끈한 포핸드로 유명하다. 포핸드 영상들을 보면 스윙 시 스트링 베드가 바닥을 향해있는 대다수의 프로들과 다르게 바닥과 수직으로 스윙되는 경우가 자주 보이는 편이다. 물론 아예 스핀을 넣지 않는건 아니고 너무 낮은 공이 오면 리버스 포핸드로 상향 스윙을 넣어서 탑스핀을 넣기도 한다.[11][13] 다만 이는 탑랭커 수준에서의 이야기이며, 델 포트로는 키에 비해서는 절대 굼뜬 선수가 아니었다. 정말 서브와 포핸드만 최상급인 거북이면 아무리 잘해도 잭 삭 수준의 성적밖에 못 낸다. 대부분의 서브봇들은 낮으면 10%, 높아봐야 15% 정도의 리턴게임 승률에 그치는데 델 포트로의 커리어 리턴게임 승률은 25%를 상회하며, 이는 육상부로 유명한 가엘 몽피스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부상 이전에는 더욱 뛰어나서 2008년에는 아예 조코비치보다도 좋은 리턴 성적을 거둔 적도 있다.[14] 사실 이건 키뿐만이 아니라 몸무게가 무거운 것도 원인이다. 체력과 순발력이 중요한 테니스라는 종목 특성상 왠만한 190대 선수들이 키에 비해 마른 체형을 유지하고 80 - 90kg정도의 몸무게가 나가는 반면 델 포트로는 무려 97kg에 달하는 거한이다. 이런 근육질인 몸이 위협적인 포핸드를 만들어내는데 큰 공헌을 했지만 반대로 수비범위가 좁아지고 조금만 무리하면 부상을 당하는 체질이 되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물론 델 포트로가 자주 부상을 당한 부위는 다리보단 왼쪽 손목이었지만 묵직한 체구로 인해 좁은 수비 범위에서 무리하게 라켓을 휘두르다가 생긴 충격이 누적돼서 손목 부상이라는 형태로 터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이런 상대적인 악조건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통해 빅 3시대에 몇 안되는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따낸 걸보면 역시 재능이 남달랐다고 볼 수 있다.[15] 2009년에 그 말을 했던 페더러가 2018년에도 그랜드슬램 우승을 달성했으니...결국 2020년대 들어 페더러가 저물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델 포트로도 이미 저물고 있었다.[16] 물론 2009년 당시 델 포트로 겨우 20살의 젊은 선수이기도 했고 그의 포핸드가 잘터지는 날이면 상대가 누구든 당해내기가 힘드니 다른 약점들을 잘 보완하면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남긴 말이었을 것이다.[17] 그 중 한명이 앤디 로딕이다.[18] 여담으로 이분도 전직 테니스 선수 및 코치였다. 앤디 머리가 12살까지는 직접 테니스를 가르치셨다고 한다.[19] 대표적인 사건이 스탠 바브린카로저 페더러와의 경기 당시에 페더러의 부인인 미르카 페더러가 본인이 서브를 치는 상황마다 방해를 한다고 항의했던 사건이 있었고 절친인 둘 사이에서 분위기가 굉장히 냉랭하게 경기가 진행되었던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둘은 경기 직후 바로 이야기를 나누고 풀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