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다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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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청 고성(兴城古城)[1] 내부 구시가지
1. 개요[편집]
중국 랴오닝성 서부의 지급시. 진저우에서 서남쪽으로 40km 떨어진 보하이 만 북해안에 위치해 있다. 옛 지명은 진저우 서쪽에 있다는 의미인 진시(锦西)였는데, 1994년 호로병 (표주박) 형태의 반도 이름을 따서 후루다오로 개명하였다. 지급시의 관할 인구는 240만명이고, 그중 도시 자체에는 80만명이 거주한다. 남쪽으로 7km 떨어진 현급시인 싱청시에도 약 60만이 거주하며, 두 도시 사이는 해안을 중심으로 연담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싱청 시가지 서부에 위치한 흥성고성은 명나라 말기 원숭환의 거점이자 영원성 전투가 벌어진 그 영원성으로, 일대의 주요 관광지이다.
산업에 있어 중공업과 경공업이 혼재하며, 조선소에서는 중국의 핵잠수함을 건조한다. 화북과 둥베이 지역을 연결하는 입지 조건상 친황다오와 다칭을 연결하는 지하 송유관이 지나간다. 철도에 있어 베이징, 선양 방면 고속철이 지나고 푸신과 청더 방면 일반 철도가 지난다. 뜬금없지만 미국의 라스베가스와 자매도시이다. 휘하의 싱청시는 한국의 서귀포시,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2021년 후루다오 비구이위안배 한중일 바둑대회가 열렸는데, 삼국의 공동 우승으로 마무리되었다. 같은해 9월 중국 전력난 사태 시에는 피크 시간대에 전자렌지와 온수 사용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2. 역사[편집]
역사적으로 요서 회랑의 주요 거점이었으며, 일대의 가장 오래된 도시인 싱청은 990년 요나라의 사서에 등장하였다. 그후 상술하였듯 17세기 명 말기에 싱청은 만주족의 서진을 막기 위한 거점인 영원성으로 기능하였다. 그리고 1913년 현 시가지에 진시 현이 설치되었고, 봉천군벌 장쉐량에 의해 항구 도시로 개발되었다. 그와 함께 철도가 놓였고, 해변 휴양지로도 알려졌다. 1930년대 만주국 시절 인근 진저우를 중심으로 한 진저우 성의 일원이던 진시 현은 일본군의 정유 공장이 세워져 관동군의 보급항이 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화베이-둥베이 지방의 주요 항구들 중 유일하게 국민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후루다오는 만주에 남은 백만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장이 되었다. 1948년 전장이 되기 전까지 재중 일본인들은 후쿠오카의 하카타 항으로 향하는 배에 앞다투어 몸을 실었다. 도중 사망한 이들은 후루다오의 치산(茨山) 묘지에 본국 방면으로 묻혀 있다. 국공내전 시기인 1948년 가을에는 인민해방군의 만주 평정에 있어 쓰핑과 함께 주요 전장인 랴오펀 전역의 결과, 선양시에서 철수한 중화민국군은 후루다오를 거쳐 해상으로 도주하였다. 80년대 들어 빠르게 발전한 도시는 1986년 진시시로 승격되었고, 1989년 지급시가 되어 진저우의 관할에서 벗어났다. 1994년 시명을 진시에서 해변의 반도인 후루다오로 바꾸었고, 기존 후루다오 구를 룽강 구로 개칭되었다.
3. 갤러리[편집]
파일:중국 영원성.png
파일:흥성 중국.jpg
싱청 고성(兴城古城) 풍경
파일:구문구 중국.jpg
친황다오와의 경계 즈음에 있는 주먼커우(九门口). 만리장성에서 유일하게 물을 건너는 곳이다.
파일:영원성 중국 위성.png
싱청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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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명칭 닝위안(宁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