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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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순왕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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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효장세자의 세자빈
효순현빈 조씨 | 孝純賢嬪 趙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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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진종의 왕비
효순왕후 | 孝純王后


대한제국 진종의 황후
효순소황후 | 孝純昭皇后



파일:파주영릉.jpg

영릉 전경
출생
1715년 12월 28일(음력 12월 14일)
조선 한성부 숭교방 사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일대)
사망
1751년 12월 20일(음력 11월 14일)
(향년 37세)
조선 한성부 창덕궁 건극당 의춘헌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능묘
영릉(永陵)
재위기간
조선 왕세자빈
1727년 11월 1일 ~ 1728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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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풍양 조씨
부모
부친 - 풍릉부원군 조문명
(豊陵府院君 趙文命, 1680 ~ 1732)
모친 - 완흥부부인 전주 이씨
(完興府夫人 全州 李氏, ? ~ 1734)
형제자매
4남 1녀 중 장녀
배우자
진종 소황제
자녀
친자 없음
양자 - 정조 선황제
작호
현빈(賢嬪) / 현빈궁(賢嬪宮)
전호
연복전(延福殿)
휘호
휘정현숙(徽貞賢淑)
시호
조선: 효순빈(孝純嬪)
효순왕후(孝純王后)

대한제국: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조선 영조의 장남인 효장세자의 아내. 남편 효장세자가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요절하면서 본인도 평생을 세자빈의 신분으로 살았으나, 이후 양아들로 입적된 정조가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면서 그녀 역시 사후 왕후로 추존되었다.


2. 생애[편집]


1715년 조문명[1]과 전주 이씨의 딸로 태어났다.

1727년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빈으로 간택되었으나, 바로 이듬해 세자가 요절하면서 14살에 과부가 되었다. 1735년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영조로부터 현빈(賢嬪)이라는 빈호(嬪號)를 받았다.

이날 임금이 명하여 시임 대신·원임 대신과 양관(兩館)·정부(政府)·육조 참판 이상을 불러 빈청(賓廳)에서 회의하게 하였는데, 효빈(孝嬪)·철빈(哲嬪)·소빈(昭嬪)이라는 삼망(三望)을 갖추어 올리니, 의망(擬望)을 더하라고 명하였다. 또 장빈(莊嬪)·단빈(端嬪)·사빈(思嬪)으로써 의망을 더하였으나, 임금이 여러 글자의 음과 뜻이 모두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여 손수 ‘현(賢)’자를 써서 내렸다.


반평생 정쟁 속에서 목숨을 위협받은 영조는 남자혈육들이 가장 위협적인 정적이거나, 영 못 믿을 지경이어서인지 남자에게는 의심을 하고 까다로웠다. 그 와중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주던 사람들이 주로 궁중의 여성들이었던 탓에, 주변 여성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면이 있었다. 실제로 영조의 불같고도 깐깐한 성격을 달래서 가정과 궁중의 화목을 지키는 데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 며느리였던 현빈 조씨, 딸 화평옹주, 숙종의 계비이자 영조의 법적 어머니인 인원왕후 등이 영조의 왕위 등극을 적극지원하거나 고집을 다독이고 후엔 아버지에게 치이는 사도세자를 그나마 감싸주었는데, 이 여성들이 짧은 기간에 줄줄이 죽은 후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히스테리도 극심해졌다. 이 점은 마더 컴플렉스로 유난히 여성에게 적대적이던 성종과 비교된다.

일찍 남편을 잃은 현빈 본인도 남편처럼 병을 얻어서 36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로 사망했다. 시호는 효순빈(孝純嬪).

영조는 현빈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두 자식[2] 중 한 명이라고 했으며, 현빈의 사망 후에도 생일을 챙겼다. 또 영조는 현빈이 삶아주는 밤을 좋아해서 자주 며느리의 처소에 찾아가 밤을 얻어먹었고, 현빈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에도 '나를 위해 준비한 밤이 아직 소반 위에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사후 남편 효장세자의 묘에 합장되었으며, 영조가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켰으므로 정조 즉위 후 효장세자가 진종(眞宗)으로 추존됨에 따라 함께 효순왕후로 추존되었다. 이후 1908년 대한제국 순종황제에 의해 다시 황후로 추존되면서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로 불리게 되었다.


3. 대중매체[편집]


  • 소설 이별가:효장세자빈 이야기의 여주인공이다. 아라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는 점을 반영해 남녀관계에 무지했다가 유진한과의 만남으로 점차 사랑에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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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조문명과 삼촌 조현명은 왕세제 시절 영조를 보호한 인물로, 완론탕평을 주도한 영조의 측근이다.[2] 다른 한명은 친딸 화평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