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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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5~6세기 신라의 고총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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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470호
구미 황상동 고분군
龜尾 凰顙洞 古墳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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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산68번지 외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면적
164,737㎡
지정연도
2006년 3월 7일
제작시기
신라[1]
위치



파일:GMHSD2.jpg
황상동 고분군의 인동 1호와 2호분이 위치한 구릉의 모습.[1]

1. 개요
2. 조사 내용
3. 외부 링크
4. 사적 제470호


1. 개요[편집]


凰顙洞 古墳群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위치한 신라의 고분군이다. 2006년에 사적 제470호로 지정되었다.


2. 조사 내용[편집]


파일:GMHSD.jpg
인동 1호분 조사 당시의 모습.[2]

구미시낙동강에 의해서 나뉘어져 있는 형상인데, 그 동쪽인 구 인동면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고분군 권역의 중심이 되는 고총고분군이다. 황상동 고분군에 대해서는 경북대학교 박물관과 대구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조사된 바 있다.

주 묘제로는 수혈식 석곽을 채용하고 있는 고분군으로 대구대 박물관에서 조사한 141호, 경북대 박물관에서 조사한 인동 1, 2호가 그 중 대형분에 해당한다. 낙동강 중류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소위 판석조 석곽으로 비교적 얇고 큰 판재(板材)의 형태의 돌로 마치 곽을 짜놓은 듯한 형태의 석곽을 채용하고 있다. 이러한 판석조 석곽의 양상이 나타나는 곳이 이곳 황상동 고분군을 비롯한 인동지역, 그리고 칠곡 약목면, 성주 성산동 고분군, 칠곡군 일대, 대구 북동부 권역이 해당한다. 목곽묘 전통에서 나타는 양단부장의 형태가 판석조 석곽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면 장방형의 판석조 석곽을 채용하는 것이 모든 고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상위층의 대형분을 중심으로 채용되고 가끔씩 중간 위계급의 고분에서도 채용된다는 점에서 완연한 지역적 전통으로까지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재론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추정된다.

부장유물의 특징에서는 몇가지 지역적 특징이 확인되는데, 이 역시 낙동강 중류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으로 방추차가 포함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토기 유물군에서도 목곽묘 단계에서부터 유사도 상으로 중류역과의 공통성을 띠고 있으며, 이후 이 인동지역을 중심으로한 신라토기의 지역 양식으로 정형화되는 시점이 되어서야 황상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지역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특히 고배가 그 대표적인 것으로 이단투창고배라는 신라토기의 범주 내에서 비교적 길쭉한 형태의 비율로 만들어지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러한 소위 인동양식 토기들의 소비권은 황상동 고분군을 비롯하여 지금의 구미 3공단 조성시에 발굴조사된 옥계동 고분군이나 신당리 고분군, 진평 인의동 고분군 등의 천생산 주변 지역의 고분군에서 소비되고 있어 양식의 분포권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의외로 반대쪽 낙동강 건너의 박정희 기념관 관련 부지에서 조사된 상모사곡동 고분군에서도 황상동 고분군에서 확인되는 토기 양식이 확인되고 있어 정치체의 범위를 추론하는 단초로 활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일부 성주 성산동 고분군에서 주로 소비되는 성주양식토기와 의성 금성산 고분군에서 소비되는 의성양식토기와 그 부장 유물의 구성이 황상동 고분군에서 나타나고 있어서 주변 지역과의 교류상도 보여주고 있다.

철기류의 부장량은 어느정도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의외로 금공유물 자체의 부장량이 조금 떨어지고 고총의 수량적 측면에서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고총군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고총군들에 비해서는 다소 위계가 떨어지는 고분군이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되려 금공유물 등의 출토 부장량의 위계 등을 따져보면 의성 금성산 고분군이나 성주 성산동 고분군 축조 세력에 비하면 적기 때문에 정치, 군사, 지리적 차원에서의 중요성을 판단하여 신라 중앙에서의 지원이나 물적 교류의 차원에서 중요도가 다소 낮았을 수 도 있고, 또는 위의 구미시 선산읍에 소재하는 낙산리 고분군과의 모종의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어 추가적인 연구가 요망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3. 외부 링크[편집]




4. 사적 제470호[편집]



구미시 황상동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인동동 소재지의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구릉의 남쪽 사면이며, 고분군 서쪽으로 2㎞ 떨어져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고분은 남쪽으로 뻗은 능선의 상부와 다소 급한 경사면에 분포하는데, 대형고분들은 주로 능선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소형고분들은 경사지가 다소 급한 능선의 경사면에 분포되어 있다.

신라가 고대국가로서 체제를 갖추어 나가던 4~6세기에 축조된 경북 북부지역의 중심고분군 가운데 하나로 1962년 이후 3차에 걸친 발굴조사와 1회의 정밀지표조사 결과 목곽묘 59기, 석곽묘 90기, 토광묘 2기, 석실묘 1기 등 대형분 28기를 비롯하여 봉토분 271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금제귀걸이를 비롯하여 토기류 345점과 철기류 78점 등 2,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지역의 삼국시대 역사와 문화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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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6년의 모습이라서 지금의 발전한 모습과는 차이가 많으며 밑으로는 초가집도 보인다.[2] 1966년의 조사로서 사진 속의 모습이 다소 조선시대같은 스멜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