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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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皇甫讓
(? ~ 1135?[1])

1. 개요[편집]


고려의 인물.


2. 생애[편집]


검교우복야 수어사잡단을 지냈다. 잡단으로 있을 때인 인종 8년(1130) 지어사대사 이주연, 중승 임원준, 시어사 고당유, 전중시어사 문공원과 당대의 폐단을 상소했다. 그러나 왕은 황보양 등의 지적을 두세 가지만 따를 뿐이었다.


3. 가족관계[편집]


  • 전처
    • 아들
  • 후처: 경주 김씨
    • 아들: 황보서
    • 아들: 황보존

황보양은 사별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뒀고,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김의진의 손녀와 재혼해 두 아들을 뒀다.

전처와 사이에서 둔 자녀는 새어머니 김씨의 사랑을 받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다. 황보서는 인종 20년(1142) 3월 추밀원사 왕충이 지공거, 형부시랑 권적이 동지공거가 돼 감독한 진사시에서 급제했다. 예빈주부동정 관직을 지냈으며, 자신을 뽑아준 권적의 장녀와 결혼했다. 황보존은 인종 21년(1143) 박경산이 감독한 남성시(국자감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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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보양의 처 김씨의 묘지명에 따르면 김씨는 '거의' 15년을 과부로 살았다.(旣孀居垂十五年) 김씨가 1149년에 죽었으니, 15년 전은 1135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