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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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oan_of_arc_burning_at_stake.jpg
잔 다르크의 화형 장면을 그린 그림인 루앙의 화형대에서의 잔 다르크
(Joan at the Stake in Rouen, 쥘외젠 르네프뵈(Jules-Eugène Lenepveu) 작, 1889, 캔버스에 유화)

1. 개요
2. 상세
3. 현대에서의 화형
4. 화형을 당한 실존 인물



1. 개요[편집]


화형(, Burning at the stake)은 고대, 중세, 근대, 심지어 현대 일부 국가, 결사에서까지 세계적으로 행해진 사형(死刑)의 일종이다. 에 타서 죽는 것은 분사라고 한다. 산 채로 화장시키는 것과 같다.


2. 상세[편집]


가장 잘 알려진 화형은 중세 시기의 화형으로[1], 주로 이단이나 마녀 등 종교적인 이유로 형이 집행되었다. 물론 그 외의 이유로 화형에 처해진 죄인들도 많았다. 특히 대체적으로 살인죄를 저지른 여성운 화형에 처하는 일이 많았다. 영국에서는 대역죄(High Treason)를 지은 여성에게[2] 화형이 행해졌다.

이단, 마녀를 불태우는 것에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 불의 힘으로 추악한 죄를 태워 없앤다는 의미
  • 부활의 때가 되어도 부활할 육신마저 없게 하려는 의미
  • 불로 태우면 영혼도 소멸될 것이라는 믿음

아무래도 다른 사형 방법에 비해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고 특히 잔인하여 다른 문화권에서도 화형은 해당 문화권의 주류 종교를 거부하는 이단이나 정말 천하의 악당이 당하는 형벌로 여겨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속아 처형당할 때 "개종하면 교수형, 안 하면 화형"이라는 제안에 별 수 없이 개종하고 교수형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유럽에서 마녀사냥과 관련한 화형을 제외하고 가장 악명 높고 충격적인 화형 방식은 폭군의 지시를 받은 어떤 고대 그리스의 발명가를 통해 만들어졌다. 팔라리스의 황소 문서로. 다만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그저 괴담이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장작 위에 세운 기둥에 사람을 묶어두고 불로 태우는데 쉽게 죽지 않으며[3] 고열과 연기 때문에 죽기 전까지 상당히 괴롭다고 한다.[4][5]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불 자체에 타서 죽기 전에 연기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로 인해 질식사시키는 비중이 크다는데 연탄가스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끔찍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실제로는 죄질이 비교적 덜하다면 애초에 화형주에 올리기 전에 교수형을 시킨다거나 불을 붙이자마자 미리 끈 등을 이용하여 교수형한 후 그 시체를 태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일반적인 방법인 기둥에 묶어서 불로 태우는 게 아니라 사다리에 묶은 뒤 불타는 장작더미에 얼굴 정면부터 불에 닿게 밀어넣는 방식도 있었다고 한다.[6] 로마의 순교자 라우렌시오 성인은 화가 난 집정관에 의해 석쇠에 올려져 화형을 당했으며 그 와중에도 한쪽은 익었으니 뒤집어 익혀 먹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17세기 무렵부터 너무 잔인한 형벌이라고 사람들이 기피했고[7] 이단재판이나 마녀 심판 자체가 폐지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점차 사라져서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일단 사형수를 죽인 후 남은 시체를 태워 없애는 용도로 사용된다. 유럽과 중동 등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중동에서 한참 IS의 세력이 강성했을 때 화형을 실시한 전례가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도 분형(焚刑)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는데 주로 역모 관련자의 처형법이었다. 일본에서는 주로 방화범들에게 이 형을 집행했는데 가뜩이나 목조로 지어져 불에 취약한 일본 전통 가옥의 특성상 불 한 방에 마을 전체까지 훅 갈 수도 있기 때문에[8] 보통 심각한 범죄가 아니었다. 이 문제는 심지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까지도 해결되지 못해 미 육군항공대의 커티스 르메이가 그 미 해군의 수송선단이 보급에 난항을 겪을 정도의 양의[9] 소이탄을 일본 전역에 쏟아붓는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주었고 결국 이 문제는 태평양 전쟁으로 더 이상 타버릴 것도 없을 만큼 다 타 버린 뒤에 전후복구 과정에서야 겨우 해결되었다.[10] 일본식 화형(火焙り, 히아부리)는 죄인을 남녀 모두 나체로 만든 후 기름을 붓고 기름에 절은 도롱이를 입혀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으며 기독교 박해 때 기독교도들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반도 지역에서는 많이 쓰인 사형법이 아니지만 삼국시대에는 이따금 발견되었다. 일례로 김유신김춘추와 간통해 아이를 밴 죄로 여동생 문희를 명예살인하(는 시늉을 하)려고 화형에 처(하는 척 연기)한 일이 있었다.[11] 고구려도 반역자에게 화형을 집행한 뒤에 부관참시(시신의 목을 벰)를 했는데[12] 신당서에 따르면 군중을 모아다가 횃불을 들고 다투어 불을 붙이게 했다고까지 한다. 다른 기록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이는 연개소문에 대한 충성 표현의 의미였을 수도 있다.

너무 가혹한 형벌이라 불교와 유교 문화가 중심이 되는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관련된 기록이 보이지 않지만 불행히도 19세기 말에는 반대로 엄청나게 집행되었는데 동학농민운동 후 동학신도를 학살하는 방법으로 일본군과 조선군(관군) 양쪽에서 화형을 자주 썼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는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보복 학살의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고 생포되어 정식 재판에 회부된 전봉준 등 동학군 지도부는 교수형을 받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지옥편에 이 처형 도구와 제작자가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옥에서 많이 쓰는 사형이다. 불꽃 속에 갇혀 처벌받는 죄인들의 고통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13 ~ 14세기를 살았던 단테가 자신의 작품에서 비유의 수단으로 이 기구를 들었다는 건 개발 후 천 년도 넘게 지난 당시 중세인들에게도 이 '시칠리아의 청동황소' 이야기가 상식처럼 널리 퍼져 있었고, 충격적인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13]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수달궁예에게 화형을 당한 것으로 각색되었으나 실제 기록상으로는 참수되었다고 한다.


3. 현대에서의 화형[편집]


정식 처형으로는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사라진 행위지만 사적 형벌로서는 아직도 남아 있어서 종종 저질러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휘발유를 채운 타이어를 희생자의 목에 걸고 불을 질러 태우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백인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흑인들이 같은 흑인들에게 이런 식으로 많이 처형당했다. 일명 Necklacing. 브라질에서도 마약 갱단들이 적대 조직원들이나 민간인을 상대로 이런 식으로 분살하는 경우가 있으며 엘리트 스쿼드라는 영화에도 나왔다.

2015년에는 IS요르단 조종사를 이런 식으로 살해하고 영상을 유튜브에 당당하게 공개해 충격을 줬다. 이슬람 율법에서도 화형은 알라만이 사후에 내릴 수 있는 형벌이라며 금지하지만 이들은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들을 정당화하며[14] 위와 버금가는 잔혹한 형벌들을 지속했다가 결국 모든 이슬람 국가들을 적으로 돌리고 비참하게 몰락했다. 이는 적법한 형벌도 아닌 그저 테러에 의거한 범법행위인 살인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분살(焚殺), 소살(燒殺) 혹은 피살이라고 칭하는 게 옳지만 이러한 단어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그 이유는 요즘 언론이나 매체에서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올바른 용어는 알아 두는 게 좋다.

북한에서는 김정일김일성사망하기 약 4~5개월 전에 자신들을 암살할 계획을 짠 군인 10여명을 강건명칭종합군관학교 운동장에서 공개적으로 화형시킨 적이 있다고 한다. #

수능 끝난 고3 중에는 '화형식'이라고 하여 책을 불태우는 학생들도 있다. 그동안 학업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인데 스트레스 해소가 될지는 몰라도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 참고서들은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대학교 공부를 위해서, 혹은 과외를 하게 되어서 다시 펴 볼 일이 생기는데 이럴 때 책들을 죄다 처분해 버렸다면 금방 후회하게 된다. 물론 수능 자체의 대비에만 쓰이는 EBS 교재나 모의고사 모음집 따위는 다시 쓸 일이 없으니 처분해도 괜찮다.[15]

경우에 따라 현대 사회의 기업들은 자사 상품을 불태우기도 한다. 삼성이 자사 제품의 불량률을 개선하기 위해 화형식을 한 적이 있고 버버리도 자사 제품을 불태워 없앤 바 있지만 환경오염, 재고낭비 문제로 인해 현재는 사양길을 걷고 있다.

국기를 불태우는 행위를 화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국기를 불태우는 건 해당 국가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므로 그 나라와 완전히 척을 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얀마에서는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을 막아 버린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를 불태운 적이 있다. 참고로 태극기를 태우면 잡혀간다.


4. 화형을 당한 실존 인물[편집]




5. 창작물에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화형/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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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마녀사냥이 자주 있었던 시기는 중세가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 근세다. 자세한 내용은 마녀사냥 문서로.[2] 남성에게는 교수척장분지형(Hanged, Drawn and Quartered)이라고 하여 죽기 직전까지 교수형을 가한 후 산 채로 내장을 끄집어내고 사지를 토막내 효수하는 극형이 가해졌다. 가이 포크스가 이 방식으로 처형되었다.[3] 천천히 화상을 입으면서 잿더미가 되어 간다.[4] 몸의 일부가 불에 닿을 때 느끼는 고통은 생물체가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통증이 심하다. 다만 화형 당한 사람의 사인은 화상으로 죽기 전에 연기로 인해 질식해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5] 드라마 튜더스에서 한 여자가 정치적인 이유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친구가 고통이라도 덜어 줄 생각으로 여자 목에 화약가루를 넣은 주머니가 달린 목걸이를 걸어 준다. 그래서 장작더미에 불이 붙고 곧 화약이 터져 여자는 즉사하게 되어 긴 시간 동안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된다.[6] 사일런트 힐에서 사다리를 이용한 화형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이 시빌 베넷을 사다리에 묶어서 화형시키는데 직접 불길로 밀어넣지는 않고 사다리를 기울여 열기를 쬐게 한다. 불길이 닿지 않아도 열기 때문에 사람이 통구이가 된다. 둠스데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화형에 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경우엔 형벌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먹기 위해서 굽는 것이다.[7] 이미 17세기부터 화형 대신 교수형으로 변경되었다.[8] 당시 일본의 수도인 에도(지금의 도쿄)만 해도 메이레키 대화재 같은 대규모 화재가 수차례 있었다.[9] 미 해군의 수송선 전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미 해병대가 행정 착오로 인해 정상적으로는 보급이 불가능한 양의 식량을 요청했는데 그걸 진짜로 보급해줘서 5개월간 1억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분량의 식량이 '태평양 전선의' 미 해병대에'만' 보급되었고 미 해병대는 그 식량을 현지에서 떠맡기고 현지 주민들에게 공짜로 뿌리는 등 짬처리하느라 개고생해야 했다. 다르게 말하면 그 분량을 보급하면서 태평양 전역의 미 육군과 해군, 유럽 전선의 미군과 연합군에 대한 보급 및 랜드리스에는 영향이 없었으며 그런 수송부대가 보급해주는 물량이 달려서 폭격을 중단해야 할 지경이었다는 것에서 얼마나 퍼부어 댔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심지어 보급해 주는 당사자인 미 해군도 그 많은 물량을 벌써 다 썼을 리 없다고 하면서 사기치지 말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었을 지경이었다.[10] 이는 조선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에서는 일본처럼 화형에 처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방화범은 사형감이었다.[11] 덕만공주(훗날의 선덕여왕)의 행차길에 젖은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놔서 연기가 잘 나도록 해서 덕만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한것이다. 진짜 죽일 생각이였다면 공주 가는 길에 연기 잘 나는 젖은 장작까지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화형은 너무 위험성이 크다. 화형을 하면 필연적으로 연기가 치솟을 테고 덕만이 일을 보고는 김춘추 보고 빨리 가서 구하라고 했다는데서 보듯 진짜 김유신이 문희를 죽이려고 했거나 죽였다가 덕만에게 걸렸다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12] 원문은 "叢炬灼體 乃斬之"인데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이를 일반적인 화형이 아니라 "횃불로 지져서 문드러지면 목을 베었다"고 해석했지만 횃불로 지진다는 것은 불태운다는 것을 굉장히 온건하게 해석한 것이고 문드러진다는 의미는 다 타고 숯검댕이가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번역의 선정성을 무리하게 배제하느라 무리한 번역이 됐다.[13] "(전략) 자기 몸을 / 줄로 다듬어 준 사람의 울음을 따라 / 처음으로 울었던 시칠리아의 황소가 // 그 안의 비탄에 빠진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울부짖으면, / 비록 놋쇠로 만들어졌지만, 마치 / 고통으로 찢어지는 자의 신음 소리처럼 들리듯, (후략)"(지옥편 27곡 7행 ~ 12행) (박상진 번역, 민음사판) 번역자의 각주에도 이 '시칠리아의 황소'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14] 이 사건으로 인해 같은 이슬람 수니파에서도 경악했으며 반발이 심했다.[15] 그래서 자신의 전공에 필요한 책들은 건지고 그 외의 책들만 화형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인문계열로 진학하는 사람들은 국어, 영어, 사회책은 가져가고 수학, 과학만 불사른다든지, 반대로 자연계열 진학자들은 수학, 과학은 가져가고 국어, 영어, 사회책만 태운다든지 등. 실제로 자연과학대학 1학년 과목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수업 복습이 필수이니 섣불리 버리기보다는 최소한 입학 직전 겨울방학 동안이라도 본인 전공 과목의 고등학교 교과서 정도는 읽고 가는 게 나중에 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