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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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화승총의 모습

1. 개요
2. 화승총의 발전사
4. 종류
5. 득세
5.1. 진형
5.2. 사격방법
6. 단점
7. MANPADS의 북한식 명칭
8. 여담



1. 개요[편집]


15세기 중반 유럽, 16세기 동아시아 등에서 쓰인총으로 화승총(, Matchlock gun[1])은 화승을 이용해 점화하는 구형 전장식 총기를 일컫는다. 조총 역시 이러한 화승총의 한 종류이다.

심지를 사용해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격발하지만, 그렇다고 심지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매우 원시적인 방식은 아니였다. 실제로는 심지를 방아쇠와 연결해두었다가 방아쇠를 당기면 불이 붙은 심지가 화약에 닿아 점화하며 격발시키는 방식이였으며, 이러한 화승총은 사람이 손으로 들고 다니면서 사용하는 화약식 개인 사격 병기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2. 화승총의 발전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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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의 발달은 대포에서 비롯되었는데, 처음에는 화약을 터뜨려서 얻는 소음과 화염으로 충격과 공포를 조성해 적의 사기가 떨어지고 진형이 흐트러지면 기존의 냉병기로 무장한 기병이나 보병이 이를 덮쳐 때려잡는 양상으로 운용되었다.

시간이 지나 포가의 개량과 함께 야금술의 발전에 따라 대포의 주조기술이 발전하고, 또 탄도학이나 포술 등 화기의 운용에 대한 고찰을 통해 위력을 높이고자 하는 학문이 생겨나면서 대포의 위력이 배가되었다. 이로 인해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축성술에 대한 관념이 얇고 높게 쌓는 것에서 낮고 두껍게 쌓는 것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조금 나중의 이야긴 해도 오랜 세월동안 전장의 주력이었던 기병의 몰락도 불러오게 되었다.[2]

대포가 발전하면서 포의 크기가 줄어들고 대포를 공성용 외에도 함상포나 야전포 등의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당대의 전략가들은 당연히 이러한 화기를 보병을 대신하는 장거리 무기로 운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가졌고, 이런 생각을 처음 구현한 화기 역시 핸드 캐논이라는 대포를 단순히 축소한 듯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3. 핸드 캐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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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액터(역사 재연 배우)가 재현한 모습.

이름조차도 Handgonne, 즉 'Hand Cannon'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이 단순한 장비는 처음 등장한 대포와 마찬가지로 형편없는 명중률과 위력, 그리고 조악한 구조 등으로 인해 운용조차도 소음과 연기로 적에게 충격을 주는 용도로 썼다. 즉, 핸드캐논 하면 근대 이후의 유탄발사기 등을 연상하지만, 실제로는 일반적인 총보다 핸드캐논이 더 먼저 발명되었다. 총의 유래 자체가 대포의 소형화였기 때문이다.

리인액터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적을 조준하면서 긴 막대기를 치켜 들고, 거기에 화승이 꺼지지 않게 곁눈질로 보면서 화약접시의 화약이 날아가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하는 등 운용상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3]

핸드캐논은 이런 운용상의 어려움 때문에 사라질 뻔했으나, 곧 혁신적인 발견으로 인해 주력무기의 위치를 차지하니, 그것은 바로 쇠뇌에 사용하던 방아쇠의 적용이었다. 이 시기 동양에서도 돌화창(突火槍)[4]과 노(弩)에 사용하던 방아쇠가 있음에도 돌화창에 방아쇠를 적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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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방아쇠의 모습. 화승이 닿는 부위엔 Pan이라는 화약접시가 보이고, 그 위는 바람에 화약이 날아가지 않게 보호하는 덮개이다.

방아쇠의 작동 방식은 트리거 락(Trigger lock)과 스냅 락(Snap lock)으로 나뉘는데, 트리거 락은 스프링의 힘이 항상 용두(Cock)와 방아쇠에 작용하고 있어서 방아쇠를 누른 만큼 용두가 고개를 숙여 화승이 화약 접시에 닿는 방식이다. 방아쇠의 압력이 강해서 방아쇠를 누를 때 많은 힘이 들어가는 만큼 손 떨림 때문에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당시 전장에서는 여전히 밀집대형을 유지하고 일제사격을 통한 탄막을 형성했기 때문에 명중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방아쇠를 당기던 손가락에 힘을 풀면 용두가 고개를 올리게 되고, 가벼운 충격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용두가 처박혀서 오발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덜해서 안전성면에서는 인정받아 흔히 쓰였다.

스냅 락은 용두를 수동으로 젖히고(코킹) 방아쇠를 누르면 스프링의 힘으로 화약 접시에 화승을 박는 방식이다. 현재의 싱글 액션 방식과 동일한데, 방아쇠 압력이 약해 오발사고가 나기 쉬웠고 화승이 화약 접시에 박을 때의 충격으로 화승이 용두에서 튕겨져 나가거나, 점화약에서 발생한 폭압 때문에 화승이 꺼지는 문제가 있어서 트리거 락에 비해 선호도가 낮았다. 그러나 명중률과 반응속도는 트리거 락에 비해 유리했기 때문에 사냥용으로 쓰였다. 일본에 전래된 화승총이 이 방식이라 그 후 일본과 조선의 조총은 전부 스냅 락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후대에 나올 점화 방식에 비하면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이 장치가 끼친 영향은 절대적으로, 16세기 중반에 발명된 개머리판과 합쳐져 개인 화기의 명중률과 운용에 엄청난 진보가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방아쇠도 단순한 지렛대에서 벗어나, 스프링을 이용해 현재 볼수있는 소총의 형태와 비슷하게 변해갔다.

개머리판은 조준선을 시야와 일치시키고, 반동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방아쇠는 점화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러한 도구의 발명은 총병이라는 병과를 탄생시켰다.


4. 종류[편집]


초기형인 핸드캐논을 제외한 당시의 화승총은 머스킷(Musket)과 아르케부스(Arquebus)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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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부스는 휘어진 총이라는 뜻으로, 대략 15~17세기경 사용되었다. 당시 표준 아르케부스는 대략 1m의 길이와 5kg의 무게에 50구경(13mm)이고 탄자의 무게는 19g으로 머스킷 대비 짧고 가벼운 총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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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킷은 아르케부스에 비해 무겁고 길고 큰 구경을 가진 총을 뜻한다. 당시 표준 머스킷은 1.4m의 길이와 7kg의 무게에 75구경(19mm)이고 탄자의 중량은 38g. 무거운 탄자와 총신의 길이 때문에 아르케부스에 비해 위력이 확연히 높지만 무겁고 화약을 많이 넣어서 경량화 되기 전에는 흔히 포크(Fork)라고 부르는 단각대를 받치고 사격했다.
위의 핸드 캐논과 비교해보자. 극과 극이 무언지 깨달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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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부스와 유사한 중국 명나라 때의 노밀총(魯密銃).@ 중동 지역에서 전래된 화승총을 중국에서는 노밀총이라 불렀다.

머스킷과 아르케부스가 공존하던 시대에는 방탄 흉갑을 입고 권총과 아르케부스를 튕겨내는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갑옷을 확실히 관통할 수 있는 머스킷을 아르케부스보다 높게 쳤다. 거기다 용병은 아르케부스 대비 몸값을 2배 가량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르케부스는 점차 도태되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7~10kg에 달했던 머스킷이 아르케부스 수준으로 가벼워지자 아르케부스는 사라지고 머스킷만 남아서 발전하게 된다. 같이 읽기

위에서는 신나게 둘을 구분해서 설명했지만 무기사가 항상 그렇듯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하는건 후대의 이야기고, 당시에는 그냥 큰 총은 머스킷, 작은 총은 아퀘버스라 부르는게 일반적이었다. 용병들이 보수를 더 받으려고 아퀘버스를 머스킷이라고 우긴다거나, 고용주가 급료 깎으려고 머스킷을 아퀘버스라고 우기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5. 득세[편집]


초반 불신받던 병기인 화승총은, 1525년 프랑스프랑수아 1세와 합스부르크가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이탈리아 지배권을 두고 벌인 파비아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8천명의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기사가 포함된 23,500여 명의 군대는 3천 명의 스페인 총병대를 포함한 23,000여 명의 군대와 격돌하게 되는데, 스페인 총병대는 프랑스 기병대의 후미를 교란, 수십회의 일제 사격으로 기병대를 흩어버리는데 성공한다. 이로써 보병과 기병간 유기적인 운용을 하지 못한 프랑스군은 크게 패주해 반나절 사이에 전멸하고 만다. 파비아 전투 이후로 유럽의 군대에서는 보병의 비율이 크게 늘어났으며, 파이크병과 총이 혼합된 병종이 보병의 표준처럼 자리잡게 된다.


5.1. 진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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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창병과 같이 움직였는데, 사격을 하는 동안 창병들이 기병대의 견제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사격대형은 느린 사격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열로 된 대형에서 선두열이 발포하고 마지막줄로 가면 다음 열이 발포...를 무한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 이를 Counter March(뒤로 행군)라고 한다. 이는 진형의 전진속도는 매우 느렸으나 대형이 매우 촘촘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기병에 대해서도 창병이 보호를 해주기 때문에 유리하였다.


5.2. 사격방법[편집]


화승총을 사용하는 병사는 흔히 12 Apostle, 혹은 단순히 Apostle, 즉 12사도[5]라고 부르는 한 번에 발사할 수 있는 정량의 화약이 들은 카트리지를 밴들리어라는 밴드에 달고 다녔다.

왜 12사도냐 하면, 그 당시는 탄의 무게가 기준이어서 1파운드의 납을 가지고 총알을 얼마나 만드느냐에 따라 총알의 크기를 계산했기 때문이다.[6][7] 표준 머스킷의 경우 1파운드(453g)의 납으로 38g의 총알을 12개 만들었다. 그러나 반드시 12개일 필요는 없고 15개를 만드는 바스타드 머스킷, 8개를 만드는 헤비 머스킷도 전부 12사도라고 불렀다.



설명도 같이 듣고 싶다면 이 영상을 보자. 한글 자막본

보다시피 장전이 매우 느렸기 때문에 보통은 12사도를 다 쓰는 경우는 없었고 당시 병사들도 5발 이상 쏘면 꽤 험한 격전을 치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예외는 있어서 뭐든지 튕겨내는 스페인 테르시오에 속한 병사라면 12발 다 쏘는 일도 곧잘 일어나곤 했다.


6. 단점[편집]


  • 장전 시간이 상당히 길다. 화약을 두 번에 걸쳐 넣고, 총알을 끼우고, 막대기로 화약과 총알을 잘 눌러 섞어주고, 고정대에 화승을 꽂고, 화승에 불을 붙이고 사격하는 식이다. 고작 한 발을 쏘기 위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우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하니 1분에 두세 발을 쏘는 사람이 명사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8] 물론 밑에 서술된 것처럼 이 험난한 과정 중 한두 가지를 빼먹어 화승총을 못 쓰게 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실제로 임진왜란신립이 이 점을 강조하여 화승총이 조선군에게 큰 위협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선조에게 강조했고, 어느정도 들어맞았다. 신립의 기병대는 늪지대에서 기병을 운용했던 탓에 그 기동성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집중 포화를 당해 전멸당한 것이지, 화승총의 성능만으로 기병을 제압했다기엔 무리가 있다.

  • 화승을 점화하면 꺼지지 않게 계속 일정시간마다 뽑아줘야 한다. 그래서 화승총병은 보통 팔이나 모자에 여분의 화승을 줄줄 감고 다녀야한다. 특히 30년 전쟁 당시 총병들은 모자와 상의 곳곳에 흰 화승줄이 감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설의 전투에서도 철포병이 팔에 화승을 둘둘 맨 장면이 잘 구현되었고,[9] 영화 알라트리스테를 보면 화승의 불똥을 살리기 위해 가끔씩 후후 불어주는 모습이 잘 표현된다.

  • 사격 중에도 화승 관리는 계속 주의해야 한다. 발사 시에 화약접시에 고개를 처박은 화승이 폭발압에 불이 꺼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문에, 숙련된 사수는 반 접기라고 해서 화승 끈의 양쪽 끝단 모두에 불을 붙여두고 있다가 한쪽이 꺼지면 다른 쪽으로 붙이는 기법을 쓰기도 했다.

  • 타는 냄새가 솔솔 나기 때문에 매복, 기습이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냄새만 나는 게 아니라 불꽃도 선명하다.

  • 이미 불이 붙어있는 화승을 상시 휴대하기 때문에, 화약고 같은 화재위험구역에서는 절대 경계 근무를 설 수 없다! 이런 임무에는 보통 휠락이 사용되었다.

  • 을 쏘려면 화승에 불을 붙여야 하며, 화승에 점화하기 위해서 횃불이나 모닥불을 피우고 거기에 불을 붙여야한다. 아니면 부싯돌이라도 튕겨서 불 붙이든지. 밤에 습격을 받으면 대응사격 따위는 불가능하다. 비상용, 호신용으로 갖고 다니다가 급하게 뽑아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임무 역시 휠락이 차지했다. 당시에도 현대의 라이터 비슷한 물건이 있긴 했지만 작은 상자에 부싯돌, 철편, 부싯깃을 담아두고 다니는 형태였기 때문.

  • 비가 오면 사용에 있어 매우 큰 지장을 초래한다. 하지만 비가 오면 거의 못쓰게 되어버린다는 단점은 이후의 수발식 머스킷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화승을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비가 오면 화약 접시의 점화약이 젖어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퍼커션 캡의 개발 이후에는 습기에 좀 더 강해졌지만 흑색화약 자체가 습기를 머금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무연화약의 발명 이후다. 그래서 무연화약과 후장식 총기의 발명 이전까지 습지에선 이 운용하기 더 좋았다. 활의 경우 아교풀을 사용하는 각궁 등의 복합궁의 경우를 제외하면 습기에 그렇게까지 크게 영향받지는 않는다. 쇠뇌는 보통 복합궁이 아니므로 습기와 관계 없이 운영 가능하다.

  • 후대 플린트락 시대에서도 종종 벌어진 일이지만, 가끔 병사들이 총알 넣는 장전봉(꼬질대)을 빼지 않고 사격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모든 전장식 총들은 장전봉 없으면 장전을 못한다. 당시 총알 없이 화약만 넣고 공포탄 사격할 때 방심하고 병사들 앞에 있던 교관이 발사된 장전봉에 관통상을 입는 사고도 있었다.[10] 이를 고증하기 위해서인지 개그로 풍자하기 위해서인지 찰튼 헤스턴과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한 영화 사총사에서 위그노 군에 잡힌 로슈포르가 총살을 당할 뻔 할때 총알과 함께 장전봉이 날아오는 장면이 있다. 총신 내부의 마찰과 장전봉 자체 질량 그리고 손잡이 부분이 뭉툭한 특징 때문에 발사된 장전봉에 맞아죽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아주 근거리라면 이걸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 위와 비슷한 유형의, 사용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사례로 깜빡하고 화약을 안 넣고 총알을 장전하는 상황. 순서를 헷갈려서 화약보다 먼저 총알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장전할 때 와딩을 대고 꼬질대로 꾹꾹 눌러서 장전하므로 거꾸로 놓고 탁탁 치는 정도로는 당연히 안 빠지며 전장식의 특성상 뒤에서 밀어낼 방법도 없으므로 한방에 사용 불능이 되어버린다. 길다란 막대에 끝부분이 와인 오프너처럼 생긴 전용 도구를 사용해서 납탄을 후벼파서 고정한 뒤 당겨서 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11]


7. MANPADS의 북한식 명칭[편집]




북한에서는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화승'도 아니고 '총'도 아닌데 어째서?라는 말이 나올 텐데, 김길선의 증언으로는 김정일이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휴대용 대공 유도 무기를 '화승총계렬'로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12]

아마도 이건 이건 북한이 처음 라이선스 생산한 휴대용 대공미사일이 소련제 스트렐라 계열 대공미사일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스트렐라'라는 러시아어 명칭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화살' 내지 '화승총'인데 북한에서는 외국어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는 정책을 따르므로 원산지의 고유명칭 대신 후자의 번역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번역명칭이 이후 라이선스 생산된 이글라 계열 미사일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로 인해 '화승총'이라는 어휘는 북한에서 생산되는 휴대용 대공 미사일의 총칭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김정일이 그렇게 부르라 했으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김정일의 교시는 '스트렐라'를 저렇게 번역하라는 것이었을수도 있고, 이글라 계열까지 화승총 제식명칭을 쭉 쓰라고 내린 것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김길선이 '화승총계렬'이라고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후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8. 여담[편집]


조선의 화승총은 오버테크놀로지라고 한다.[13]

창궐에서는 이 총을 연발로 발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느린 재장전과 삼보방포, 삼수병 등 화승총의 사격특성과 당시 운용교리를 비교적 잘 재현한 추노남한산성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사극에서는 아예 핸드캐논에도 안 쓰였을 심지를 박고 나무로 감싼 쇠막대 수준으로 재현하고 있다. 사실은 한국 사극에선 이 화승총의 작동 및 운용 방식을 제대로 고증하는 경우가 매우 적은데, 이 꼬라지가 난 이유는 예산 상의 문제도 있지만 제대로 된 흑색화약 총기를 고증대로 만들 경우 한국에선 총포법에 걸리기 때문이다. 구식 화약병기를 무기가 아닌 골동품으로 분류해 법적 제한이 없거나 적은 미국, 유럽권과는 다른 상황. 덕분에 연구기관의 화약무기 재현도 제동이 걸리는 마당에 예산 등 여건이 제한된 방송사나 프롭제공사들이 어차피 대다수 시청자들은 신경쓰지 않는 고증요소에 굳이 법적으로까지 골치를 썩어가며 비싼 돈 들여 골몰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보다 싸고 간편한 심지총이나 시대배경이 안 맞는 프롭들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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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tchlock'은 '화승(slow match)'을 사용한 '발사구조(firelock)'를 뜻한다.[2] 기병의 완전한 몰락은 2차대전 이후였다.[3] 그래서 중세 유럽의 핸드캐논 사수들은 2인 1조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명이 핸드캐논을 조준하면 다른 한 명이 화승으로 점화하는 방식이었다.[4] 돌화창이 서구에 전파되어 핸드 캐논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는 주장도 있다.[5] 예수12사도 할때 그 사도가 맞다. [6] 현재도 산탄총의 구경은 아직도 이렇게 계산한다. 가량 12게이지 산탄이라고 하면 1/12 파운드짜리 납탄 지름과 같은 구경을 뜻한다[7] 반대로 대포는 포탄을 만드는 데 몇 파운드의 납을 쓰느냐가 포탄 크기의 기준이었다. 이 역시 2차대전까지 '~파운더'라는 식으로 쓰이던 명칭.[8] 그 와중에 한반도의 사냥꾼들은 1분에 4~5발을 쏘았다는 기록이 결코 적지 않은데, 20초와 12~15초의 차이가 많은 듯 적고, 적은 듯 많은 차이라 화력이 33~67% 상승했다 볼 수 있어 나선정벌 시기부터 쭉 조선의 포수들을 많이 요구했다.[9] 그 외에도 총병이 총을 한 번 쏜 다음에 재장전할 동안 활과 투석으로 원거리를 보조하는 것도 나왔다.[10] 플린트락 머스킷이긴 하나, 영드 샤프 시리즈 1편 샤프의 소총수에서도 패트릭 하퍼가 꼬질대를 넣고 사격해 프랑스군을 관통상으로 사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11] 이건 총알이 총신과 꽉 맞물리는 경우에 해당하는 내용이고, 총알의 직경이 총구보다 작은 경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총알이 작으면 명중률이 좀 떨어지고 총구를 조금만 아래로 향해도 총알이 굴러나와 아래를 조준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으나 재장전이 월등하게 빨라져서 일부러 작은 총알을 쓰기도 했다.[12] 해당 인터뷰[13] 세 개중 중 첫 번째는 모형 플린트락 머스킷에다 정작 부싯돌 격발기는 그대로 둔 채 약실과는 무관한 영 이상한 위치에 대강 도화선 박아놓고 화승총이라 우기고 있고, 두 번째는 대놓고 화승은 커녕 플린트 락 머스킷도 아니라 훨씬 더 미래에나 나올 수 있는 볼트액션 소총을 어디서 구해와서 장난질해놨고, 세 번째는 아예 모양만 그럴싸한 핸드캐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