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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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홍한식
洪翰植, 洪漢植

출생
1885년 1월 13일
한성부 서부 황화방 소정동계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홍한식은 1885년 1월 13일 한성부 서부 황화방 소정동계(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 정동교회 전도사로 복무하던 중 1910년 3월 서울지방 감리사 존스가 하와이 감리회의 요청을 받고 하와이로 2명의 전도사를 선정할 때 뽑혀 하와이로 건너갔다. 이후 1911년 1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산하 올라9리반지방회 학무, 1913년 9월 호노카4동지방회 학무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14년 3월경 호놀룰루에서 한인청년회를 조직하고 이사부 임원이자 서기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달 <하와이한인교회보> 편집인이 되어 1권 1호를 발행하였다. 같은 해 4월 한인청년회 종교부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15년 하와이지방총회 총회장으로 선출된 데 이어 1916년에도 총회장으로 선출되었으나 4월까지 활동한 뒤 사임하였다. 1919년 하와이지방총회 대표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3월 박용만을 후원하는 대조선독립단(大朝鮮獨立團) 총단 임원 조직시 학무로 선정되었다. 1928년 4월 호놀룰루에서 대한민족통일촉성회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9월과 1929년 10월 미 감리교에서 운영하는 호놀룰루의 대동국어학교 교장으로 근무하였다.

1930년 1월 안원규·조용하(趙鏞夏) 등 29명과 함께 하와이 한인 정치기관 수립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대(奉戴)를 결의하고 하와이 한인협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하와이대학에 한국어와 역사 과목을 설치하기 위해 ‘한국 국어, 문화 및 역사 위원회’를 발기하였다.

1931년 10월 하와이 한인단체 대표들과 미국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에게 만주와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의 즉각 철수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같은 해 12월에는 중화민국 정부에 탄원서를 보내 임시정부 공식 승인과 지원을 호소하였다.

1937년 2월 하와이국민회에서 역사 편찬을 결정하자, 사료수집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8월에는 하와이국민회에서 찬무부를 조직하자, 찬무부 세칙 기초위원으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하와이국민회와 이승만 계열의 대한인동지회와의 합동 추진 교섭위원으로 줄곧 노력하였다.

1942년 한길수(韓吉洙)를 후원하는 중한민중동맹단(中韓民衆同盟團) 기밀단원으로 활동하였고, 1944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총지부 집행위원과 선전부 위원, 1945년 1월에는 집행위원 겸 조직부 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1913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홍한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