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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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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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매드 맥스
1986년 《크로커다일 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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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물랑 루즈》
2010년 《애니멀 킹덤》
2017년 《스위트 컨트리》

1. 개요
2. 역사
3. 현재
4. 시상식
5. 인물



1. 개요[편집]


Cinema of Australia

호주영화 산업에 대하여 서술한 문서.


2. 역사[편집]


호주에서는 시드니에 위치한 더 살롱 루미에르(the Salon Lumière)에서 1896년 10월 처음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월 27일, 해당 극장에서는 호주 최초의 단편 영화가 상영된다.

호주 최초의 장편 영화 《켈리 갱 이야기》는 1906년 멜버른의 아테네움 홀에서 처음 상영되었는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기록상 세계 최초의 장편 영화다.[1] 멜버른은 당시 세계 최초의 영화 제작사 중 하나인 '라임라이트(the Limelight Department)'가 위치한 도시이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이곳은 호주 영화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1910년대는 호주에서 영화 붐이 일어난 시대였으나, 1912년 '범법자에 관한 영화 제작 금지법(The Bushranger Ban)'이 통과되고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여기 더해 1920년대는 호주 내에서 영화를 자체 제작 후 분배하는 과정이 미국 영화, 영국 영화를 수입하는 것보다 훨씬 비싸졌기 때문에, 호주의 영화 산업은 아주 긴 침체기에 빠진다. 결국 1923년에는 호주 상영 영화 중 94%를 미국 영화영국 영화가 차지하기 이른다.

이후 1931년에는 미국에서 수입된 광학 음향 장비를 사용하여 호주 최초의 사운드 영화가 제작되었다. 또 호주 최초의 장편 영화 제작 회사인 씨네사운드 프로덕션(Cinesound Productions)이 설립되었다. 당시 이 회사는 할리우드 모델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을 호주 영화 산업에 시도하며 1930년대 호주의 대표적인 국내 스튜디오가 된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장편 영화 제작이 중단됨에 따라 씨네사운드 프로덕션은 문을 닫게 된다.

1940년대 이르러서는 해외에서 호주 영화계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가령 1933년 찰스 초벨 감독의 영화 《In the Wake of the Bounty》에서 주연으로 뜬 에롤 플린은 이후 미국, 영국 시장에 진출하여, 호주 영화계에서 배출한 1세대 할리우드 스타가 되었다. 초벨 감독은 1944년 《The Rats of Tobruk》를 포함해 성공적인 호주 영화들을 다수 제작했으며, 그가 감독한 1955년 《Jedda》는 호주 영화 최초로 색상으로 촬영된 작품이자 칸 영화제에 진출한 첫 번째 호주 영화가 되었다. 1942년에는 켄 G. 홀 감독이 《Kokoda Front Line!》으로 호주 최초의 오스카상을 수상하였다.

1960년대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 전무한 침체기였으나 1970년대 호주 뉴 웨이브 시네마를 예고하는 초기 작품들이 등장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또 1968년부터는 당시 총리였던 존 고튼의 기획 하에 호주 정부의 영화와 예술에 대한 지원이 시작되었다. 주 정부 차원의 이러한 조치들은 1980년대 중후반까지 호주 영화 산업의 화려한 부활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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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위어의 《행잉록에서의 소풍》
이윽고 1970년대, 호주 영화계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대표적으로 《웨이크 인 프라이트》[2], 《워크 어바웃》, 《파리를 삼켜버린 자동차》[3] 등의 성공적인 영화들이 연달아 나왔다. 특히 피터 위어 감독의 《행잉록에서의 소풍》[4]과 켄 한남(Ken Hannam) 감독의 《Sunday Too Far Away》는 호주 영화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영화들이 다룬 주요 주제 중 하나는 '호주의 혹독한 대자연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이후 "아웃백 고딕(Outback Gothic)"으로 불리는 스릴러·공포 영화 사조로 자리잡게 된다. 자연 환경과 이를 둘러싼 범죄가 주가 되는 요소는 이후 매드 맥스 시리즈에서 디스토피아 테마와 결합된다.

한편 이 시대에는 저예산 영화들을 중심으로 호주의 구어체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사조가 형성되기도 하였으며, 이것을 "오즈플로이테이션(Ozploitation)"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또 뉴질랜드 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사실 이건 뉴질랜드의 영화 산업이 1970년대에 등장할 정도로 협소한 편이다 보니 그냥 호주 영화로 편입되어 퉁쳐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다.

이어 1980년대에는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 시리즈와 폴 호건 주연의 《크로커다일 던디[5]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더욱 국제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때를 기점으로 다수의 미국 영화, 영국 영화 제작사들이 호주와 영화를 공동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다수의 호주 출신 배우들이 미국, 영국으로 진출하였다. 당시 멜 깁슨의 갈리폴리로 성공을 거두자 할리우드 진출을 했고, 제프리 러시, 올리비아 뉴튼 존 등도 이런 방식으로 영미권에 진출했다.

1990년대는 아카데미 시상식 등으로 근 20년 간의 성과를 거두는 동시에, 미국이나 영국 영화계로의 호주인 감독, 배우 인력 유출이 가속화 되었다. 당시 대다수의 호주 배우들은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과 영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러셀 크로우, 히스 레저,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 등 현재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중견 배우들은 이때 건너간 것이었다.

이런 현상으로 호주 영화계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스타일을 벗어나서 자국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시기를 갖게 된다. 교외에 사는 주민의 삶에 대한 실험적인 저예산 코미디/드라마 영화들이 상업적으로도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다문화 이민자 증가에 따른 사회의 변화가 반영되며 호주의 하위 문화와 이민 경험을 그린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였다. 호주 원주민 차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는데, 대표적으로 닉 파슨스 감독의 《Dead Heart》, 롤프 드 히어 감독의 《The Tracker》, 필립 노이스 감독의 《Rabbit-Proof Fence》등의 영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데이비드 걸필리 같은 호주 원주민 출신 스타가 탄생하였으며, 2006년에는 원주민 언어로 촬영된 최초의 장편 상업 영화 《Ten Canoes》가 을 비롯한 다수 영화제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명맥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삼손과 데릴라》, 《스위트 컨트리》 등의 영화를 제작한 워윅 손튼이 있다.

2000년대에는 《물랑 루즈》와 《해피 피트》 등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호주-국제 공동 제작 영화가 강세를 보였으며, 특히 2008년 개봉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 《오스트레일리아》[6]는 호주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작품이 되었다. 반면 호주 국내 영화 제작 시장은 침체기에 빠져있었는데, 제작되는 영화 종류와 예산의 범위를 넓히면서 2009년 말부터 다시 강력한 흥행작이 나왔다. 특히 2010년 개봉한 범죄 영화 《애니멀 킹덤》은 호주 영화계에서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선댄스 등 전세계 영화제에서 찬사받으며 2000년대 들어 가장 성공한 호주 영화가 되었다. 주연 벤 멘델슨, 조엘 에저튼, 가이 피어스 모두 이 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되었으며, 영화 자체는 이후 미국 드라마로도 리메이크 되었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3. 현재[편집]



파일:2019 ex us film.png

2019년 미국 영화 협회(MPAA)의 집계[8]

인구 수를 감안했을때 인구 대비 영화시장이 큰 편[9]이지만, 캐나다, 뉴질랜드와 마찬가지로 인력과 자본이 미국이나 영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큰 문제이다. 또 같은 영어권 국가인 미국이나 영국에서 질 좋고 다양한 작품이 공급되다 보니 호주 내 자체 제작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 호주에서 자체 제작되는 영화는 1년에 30편 내외로 시장 규모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다.


4. 시상식[편집]


호주 아카데미상
AACTA Awards

파일:AACTAAward.jpg
국가
호주 파일:호주 국기.svg
주최
호주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대표적으로 호주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상(Australian Academy of Cinema and Television Arts Awards, AACTA)이 있다. 호주의 가장 권위있는 시상식으로, 미국영국의 아카데미만큼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영어권의 메이저 시상식 중 하나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주목하는 시상식이어서, 여기서 상을 탄 작품은 미국판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한다. 또한 AACTA 시상식에서 자주 상을 타는 감독과 배우들은 대체적으로 미국, 영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1958년 '호주 영화 협회상(Australian Film Institute Awards, AFI)'으로 시작해 1986년 텔레비전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였으며,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수상부문은 크게 여섯 부문으로 영화상, 텔레비전상, 국제영화상 등이 있다.


5. 인물[편집]



5.1. 유명 영화 감독[편집]




5.2. 유명 영화 배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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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딱히 예술적인 목적이 있었기보다는 '장편 영화를 상영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엄청난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었다고. 그러나 현재는 필름이 유실되면서 16분 정도만 볼 수 있는 상태다.#[2] 1971년 개봉한 테드 코체프 감독의 원초적이고 기이한 스릴러 영화. 파격적인 내용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마틴 스콜세지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후 코체프 감독은 람보 시리즈를 제작하며 유명해졌다.[3] 1974년 개봉한 피터 위어 감독의 호러 코미디로,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영화라고 한다.[4] 1975년에 개봉한 영화로 실제 여학생들의 실종 사건을 토대로 만들었다.[5] 당시만 해도 코미디언이었던 폴 호건이 처음으로 각본을 쓴 영화였다. 호건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도 출연했는데, 이 영화가 초대박이 터지면서 국제 무대에서 영화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크로커다일 던디》는 지금까지도 호주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로 자리매김 하였다.[6] 호주 - 영국 - 미국 공동 제작 영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호주에 대한 내용으로, 니콜 키드먼, 휴 잭맨, 데이비드 웬햄, 벤 멘델슨, 브라이언 브라운, 잭 톰슨, 데이비드 걸필리 등 그야말로 호주 국민 배우들을 총출동시켰다.[7] 참고로 위의 그래픽에서는 북미 영화 시장(114억 달러)이 따로 표시되어있지 않은데, MPAA가 미국 기관이어서 그렇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만 표로 따로 나온 것이다.[8] #에 따르면, 호주 영화 시장은 북미 영화, 중국 영화, 일본 영화, 한국 영화, 영국 영화, 프랑스 영화, 인도 영화, 독일 영화, 멕시코 영화, 러시아 영화 시장에 이어서 세계 11위로 나타났다.[7][9] 가령 인구가 10배에 달하는 인도네시아보다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크다. 다만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4000달러 대인데다가 불법복제 DVD가 많이 돌아다닌다는 점은 감안해야되기는 하다.[10] 국적은 뉴질랜드지만 호주 영화계 출신이어서 호주에서도 자국 배우로 친다.[11] 러셀 크로우와 마찬가지로 호주 국적을 가진 배우는 아니지만 호주 영화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