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페르난데스(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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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페르난데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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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4_seibu.pn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04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번호 14번
데릭 메이
(1998)

호세 페르난데스
(1999)


이라부 히데키
(2000~2001)
애너하임 에인절스 등번호 27번
브라이언 워드
(2000)

호세 페르난데스
(2001)


훌리오 라미레즈
(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4번
강혁
(2001)

페르난데스
(2002)


최경철
(2003~2006)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42번
쿠벤카
(2012~2016)

페르난데스
(2003)


세라피니
(2004~2005)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1번
타카야마 히사시
(2000~2003)

페르난데스
(2004~2005)


쿠리야마 타쿠미
(2008~)
{{{#ffffff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42번}}}
로페즈
(2005)

페르난데스
(2006)


마커스 그원
(2007~2009)

{{{#ffffff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17번}}}
토가노 히사시
(2005~2006)

페르난데스
(2007~2008)


대럴 래스너
(2009~2013)
오릭스 버팔로즈 등번호 3번
무라마츠 유토
(2005~2008)

페르난데스
(2009)


시마무라 잇키
(2010)
{{{#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52번}}}
호시 히데카즈
(2008~2009)

페르난데스
(2010~2011)


타케야마 신고
(2012~2014)

{{{#ffffff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3번}}}
루이즈
(2011)

페르난데스
(2012)


케이시 맥게히
(2013)
오릭스 버팔로즈 등번호 44번
스즈키 후미히로
(2005~2012)

페르난데스
(2013)


소노베 사토시
(2014)





파일:세이부호세.jpg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스카우터
호세 마요바넥 페르난데스
José Mayobanex Fernández Rojas

생년월일
1974년 11월 2일 (49세)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몬트리올 엑스포스 입단
소속팀
몬트리올 엑스포스 (1999)
애너하임 에인절스 (2001)
SK 와이번스 (2002)
치바 롯데 마린즈 (2003)
세이부 라이온즈 (2004~2005)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6~2008)
오릭스 버팔로스 (2009)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10~2011)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2)
오릭스 버팔로스 (2013)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4. 여담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몬트리올 엑스포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SK 와이번스, 지바 롯데 마린스, 세이부 라이온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오릭스 버팔로스 소속의 도미니카 공화국 국적의 야구선수.


2. 선수 경력[편집]



2.1.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3072201001767600136541.jpg
MLB 몬트리올 엑스포스애너하임 에인절스 로스터에 들기도 했지만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1]가 2002년 시즌을 앞두고 KBO 리그 SK 와이번스와 계약, 이후 팀의 주전 3루수로 자리매김한다. 당시 팀내에 확실한 거포와 핫코너가 공석이었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급 영입이었던 셈.

2002년 SK에 합류한 페르난데스는 시즌 개막 후 내내 무안타에 그치다가 무려 9경기 만에 KBO 리그 데뷔 첫 안타를 쳐내는 등 시즌 초에만 해도 퇴출 후보 1순위였으나[2], 5월부터 타격감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가까스로 퇴출 위기를 모면하였다. 7월에는 14경기에서 무려 9개의 홈런을 치는 등 시즌이 갈수록 괴물급 활약을 하였고, 9월 13일에는 무려 한 경기 8타점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어느덧 홈런 순위권에 오르며 이승엽, 심정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또한 인천 연고팀 선수 중 최초로 한 시즌 40홈런을 넘겼다.[3] 시즌 후 그의 성적은 타율 0.281, 45홈런 107타점.

2002년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그의 기록은 실로 엄청난 수준인데 .281이라는 결코 낮지않은 타율을 유지하며 무려 45홈런을 쏘아올렸고[4] 107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다. 하지만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던 이승엽(47홈런)과 심정수(46홈런)에게 밀리며 홈런 3위에 그쳤다.

여기까지만해도 정말 아쉬운데 설상가상으로 KBO 골든글러브 수상에도 실패한다. 경쟁자인 김한수에게 소위 한국인 버프+우승팀 프리미엄이란 존재로 인해 밀릴 수밖에 없었고 외국인 선수에게 짜게 굴었던 당시 골든글러브 수상 분위기가 결정적이었다.

2002년 시즌 종료 후 SK는 그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페르난데스와 재계약을 원하며 협상을 하였으나, 페르난데스의 활약을 본 일본 구단들이 페르난데스를 영입하기 위해 머니 게임을 벌이자 결국 큰 금액으로 인해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2.2. 일본 프로야구 시절[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40px-Jos%C3%A9_Fern%C3%A1ndez_2009.jpg

{{{#ffffff [[오릭스 버팔로스|오릭스 버팔로스]] 시절}}}

SK 와이번스와의 연봉교섭에 실패한 페르난데스는 2003년 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하면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게 된다.[5] 일본 진출 첫 해인 2003년 123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3, 32홈런, 100타점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2003년 시즌 후 롯데에 돌아온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수비력 등을 문제삼아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8] 결국 롯데를 나와 세이부 라이온즈와 계약한다. 2004년에서는 이토 츠토무 감독의 지휘 아래 마쓰자카 다이스케, 나카지마 히로유키, 와다 카즈히로, 알렉스 카브레라 등과 함께 세이부 라이온즈의 주축 전력으로 활약하며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이끄는 주니치 드래곤즈를 물리치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OPS 0.8, 20홈런 전후를 꾸준히 기록하면서 오랜 기간동안 퍼시픽리그의 수준급 외국인 타자로 자리잡았다. 2006년 퍼시픽리그 3루수 베스트나인을 탄 것은 본인으로서도 첫 타이틀. 상술했듯 텃세 때문에 KBO 골든글러브를 못 탄 걸 만회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라쿠텐 창단 이후 팀에서 나온 첫 개인타이틀 수상 사례로도 의미가 있다. 라쿠텐을 나온 뒤로는 기량이 꽤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수비력은 완전히 상실했지만[9], 2010년대 초반까지도 여러 팀들에서 중심타선의 공백 한 자리를 메우다가[10][11] 2013년 오릭스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은퇴 이후[편집]


2016~17년에는 한신 타이거즈의 외국인 스카우트로 활동했고, 2018년부터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스카우트로 활동중이다.


4. 여담[편집]


  • 일본에서는 여러 구단을 오가면서 준수한 성적을 찍어줬고 특히 신생구단인 라쿠텐에선 눈물나는 전력 아래에서 중심타자이자 팀의 구심점이 될만한 몇 안되는 베테랑 선수로 활약했기에 좋은 기억을 가진 팬들이 많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심과 야구, 팀워크에 대한 진지한 자세 등이 담긴 발언들이 알려지며 팬들 사이에서 '철학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을 정도.

  • 다만 의외로 한 성깔 하시는 선수인 게 분명하다. 벤치 클리어링 때 몸소 외인 선수들끼리[12] 신경전도 벌였다.80년대~00대의 일본 프로야구 역대 외인들의 벤치 클리어링 장면.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1999
MON
8
.208
24
5
0
1
1
7
0
.240
.29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1
ANA
13
.080
25
2
0
0
2
10
0
.148
.12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2
SK
132
.281
499
140
45
107
49
114
4
.353
.59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3
지바 롯데
126
.303
478
145
32
100
54
106
4
.376
.57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4
세이부
131
.285
513
146
33
94
53
117
5
.357
.526
2005
120
.293
420
123
26
84
46
91
5
.366
.54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6
라쿠텐
132
.302
490
148
28
88
53
75
2
.370
.541
2007
132
.270
444
120
22
79
49
94
8
.347
.457
2008
142
.301
541
163
18
99
53
78
5
.368
.47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09
오릭스
117
.261
410
107
15
47
31
71
4
.318
.42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10
세이부
57
.339
221
75
11
45
19
26
1
.387
.538
2011
142
.259
529
137
17
81
39
84
3
.308
.39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12
라쿠텐
129
.243
440
107
3
51
44
67
2
.313
.3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타수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도루
출루율
장타율
2013
오릭스
25
.188
80
15
1
4
4
13
0
.235
.250
MLB 통산(2시즌)
21
.143
49
7
0
1
3
17
0
.192
.204
NPB 통산(11시즌)
1253
.282
4566
1286
206
772
445
822
43
.340
.457
KBO 통산(1시즌)
132
.281
499
140
45
107
49
114
4
.353
.599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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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디까지나 MLB 기준에서의 평가일 뿐이다. 세이버 매트릭스의 대두로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스탯이긴 해도 트리플 A 타점왕에 오르는 등 AAAA 리거로서의 면모는 보이고 있었다.[2] 이 당시 LG로 이적한 톰 퀸란과 함께 무안타 행진을 이어가며 둘 다 퇴출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페르난데스는 반등에 성공했고, 퀸란은 13경기 무안타 끝에 결국 짐을 쌌다.[3] 그 말인즉 페르난데스 이전까지 인천팀에는 40홈런 이상을 친 선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팀 컬러가 심각한 물방망이(…)였기에 이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 페르난데스의 등장 전까지 인천 연고팀 선수 중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1996년과 1998년 30홈런을 쳤던 박재홍이었다. 이후 14년 뒤인 2016년 최정이 인천 연고팀 선수 중 2번째이자 인천 연고팀 소속 국내 선수로는 첫 번째로 한 시즌 40홈런을 기록했고 2017년에는 페르난데스가 세운 45홈런 기록마저도 깼다. 그리고 2018년 홈런공장 북미지점장님홈런공장 도미니카지점장님이 다시 기록을 달성했다.[4] 이 기록은 2017년 9월 13일까지 역대 KBO 리그 3루수 한 시즌 최다 홈런기록이자 역대 SK 와이번스 소속 야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었다. 그러나 최정이 이 기록을 모두 깼다.[5] 본래 치바 롯데는 시즌 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활약했던 로버트 로즈를 영입했으나, 로즈가 스프링캠프 도중 야구에 흥미가 없어졌다며 돌연 퇴단해 버리는 바람에 주포 자리가 비게 되면서 황급히 로즈의 대타로 호세를 영입하게 되었다.[6] 2004년~2005년 치바 롯데에서 있었다. 2019년 마린 스타디움에 홈런 라군이란 이름의 X-존이 설치되기 전까지의 치바 롯데 선수단 중 최후의 30홈런 기록 달성자였으며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도 경험을 한다.[7] 이승엽 이전에 롯데에 먼저 있던 외인[8] 당시 발렌타인 감독의 구상은 3루 자리를 유망주 이마에 토시아키에게 넘기고 장타력 부족은 이승엽[6]과 베니 아그바야니[7] 등의 새 외국인 타자들의 활약으로 채운다는 것이었다. 2004년에는 3할-30홈런을 기록한 베니 정도를 빼면 그다지 들어맞지 않은 구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조합으로 2005년 일본시리즈를 우승했고, 롯데를 나온 페르난데스도 세이부 등에서 괜찮은 커리어를 보냈으니 결과적으로는 윈윈이 되었다.[9] 2012년에는 다시 주전 1루수로 복귀해서 풀시즌 1루수로 뛰었다. 다만 성적은 개박살나면서 OPS .626의 1루수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10] 나이가 들어도 지명타자로 기용할수 있는 지바 롯데, 세이부, 라쿠텐, 오릭스 등 퍼시픽 리그 소속팀 스카우트들의 표적이였다.[11] 2011년 세이부에서 17홈런을 기록했는데 이 당시 리그가 극심한 투고타저였음을 감안한다면 그럭저럭 선방했다고 봐 줄수도 있지만 2012년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장타력까지도 죽어버리는 바람에 발도 느리고 타율도 낮은 똑딱이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2013년까지 일본에서 뛸 수 있었던 이유는 2011년을 끝으로 기한을 채워 용병쿼터와 상관없이 내국인 취급을 받았기 때문. 라쿠텐에서 뛴 2012년에는 규정타석을 채우고 3홈런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냈다. OPS도 .626으로 최악. 아무리 본인이 노쇠화했고 투고타저가 심각했던 당시 리그 상황을 고려해봐도 주전 1루수가, 그것도 용병타자가 3홈런에 OPS .626을 찍는다는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성적이다.[12] KBO 리그를 몸담던 SK감독을 맡던 트레이 힐만이나 삼성에서 뛰던 악마 발비노 갈베스 등등 여러 선수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