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발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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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발다노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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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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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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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56대




호르헤 발다노의 수상 이력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아르헨티나의 축구인


파일:external/www.lavozlibre.com/jorge-valdano.jpg

이름
호르헤 발다노
Jorge Valdano
본명
호르헤 알베르토 프란시스코 발다노 카스테야노스
Jorge Alberto Francisco Valdano Castellanos

출생
1955년 10월 4일 (68세)
라스 파레야스
국적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display: none; display: 아르헨티나"
행정구
]]

신체
188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해설가
소속
선수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73~1975)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1975~1979)
레알 사라고사 (1979~1984)
레알 마드리드 CF (1984~1987)
감독
레알 마드리드 CF (1991~1992 / 유스)
CD 테네리페 (1992~1994)
레알 마드리드 CF (1994~1995)
발렌시아 CF (1996~1997)
국가대표
23경기 7골 (아르헨티나 / 1975~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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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철학자 (El Filosofo), 시인 (El Poeta)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프런트 경력
6. 이후
7. 기록
7.1. 선수
7.1.1. 대회 기록
7.1.2. 개인 수상
7.2. 감독
7.2.1. 대회 기록



1. 개요[편집]


아르헨티나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에는 몸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장신의 타겟형 스트라이커였으며, 특히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디에고 마라도나, 호르헤 부루차가와 삼각편대를 구축해 조국의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CD 테네리페, 레알 마드리드, 발렌시아의 감독직을 역임했고, 레알 마드리드의 단장으로 부임하여 갈락티코스를 구축하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발다노는 16살 때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뛰었다. 1975년 스페인 세군다 디비시온데포르티보 알라베스로 이적하여 1979년까지 활약하였다. 그해 라리가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하였고, 그 후 1984년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여 활약하였다. 그는 1985년과 1986년 UEFA컵 우승에 공헌했는데, 1985년 결승에서는 1골을 넣었고, 1986년 결승에서는 2골을 넣었다.

그러다 발다노는 간염에 걸렸고, 1988년에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external/www.fifa.com/867738_full-lnd.jpg
발다노는 1975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했는데 1975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아르헨티나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알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사기는 떨어졌고, 결국 아르헨티나는 2차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발다노는 헝가리를 상대로 2차전에서 부상을 당해 첫 월드컵을 허무하게 끝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한 발다노는 디에고 마라도나호르헤 부루차가와 함께 삼각편대를 결성하여 맹활약을 펼친다. 조별리그 개막전에서 32년만에 본선에 진출한 대한민국을 상대로 2골을 넣었고, 이후 불가리아전에서 1골을 넣었다.


결국 결승전까지 승승장구한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서독을 만난다. 처음에는 아르헨티나가 선제골을 넣어 앞서갔고, 발다노 역시 후반전에 골을 넣으며 2:0으로 앞서갔으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루디 푈러가 동점골을 넣으며 2:2로 서독에게 따라잡히게 된다. 그러나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은 부루차가가 결승골을 넣으며, 결국 아르헨티나가 3:2로 우승을 차지한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피지컬이 뛰어나고 몸싸움을 잘하며 침투까지 잘하는 타켓형 스트라이커였다.


4. 지도자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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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감독 시절의 발다노

레알 유소년팀 감독 시절에 레알의 상징이 된 라울 곤살레스를 발굴해 냈고 이후 잠시 마드리드를 떠나 CD 테네리페의 감독으로 2년간 외도, 1992/93 시즌에 팀을 5위로 끌어올리고 UEFA컵에 진출시키는 등 나름 지도자로서의 수완을 선보였다.

이에 1994년, 전격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1군 감독으로 취임하여 첫 시즌인 1994/95 시즌에 득점왕 이반 사모라노의 활약으로 라리가 우승까지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는데, 이 시즌 홈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는 5:0으로 완승하며 라이벌 바르셀로나에게 굴욕을 선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1995/96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1996년에 발렌시아 CF로 옮겨서 1997년까지 1시즌간 더 감독직을 수행하고 짧았던 지도자 생활을 끝마쳤다.


5. 프런트 경력[편집]


레알 마드리드 CF 성인팀, 즉 갈락티코스 1기의 단장이 된 발다노는 팀을 정상궤도로 올려놓는 업적을 쌓기도 하였으나 베컴을 영입하는 바람에 팀의 조직력이 와해될 위기에까지 몰렸다. 결국 클로드 마켈렐레첼시 FC로 이적해 나가고 들어온 데이비드 베컴 역시 루이스 피구와 포지션이 완벽하게 겹치면서도 서로 융화가 안되는 문제점 때문에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서 해임됐다. 팀의 성골 레전드인 그가 레알의 이름값에 꿀려하지 않은 감독인 일개 감독 무리뉴의 말에 따라 한큐에 해임당한 것은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행보를 막기 위한 구단 수뇌부의 실리를 챙긴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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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톰과 제리로 보이는 것은 눈의 착각. 그런데 실제로 둘의 관계는 톰(발다노)과 제리(무리뉴)에 비견되긴 하다. 체격도 톰과 제리다.

결국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이 발다노를 해임. 현재는 실직자가 된 상태이다. 페레즈는 발다노가 해임되어 공석이 된 사무총장 자리에 새파랗게 어린[2] 지네딘 지단을 임명할 것이라 공언했다. 그리고 지네딘 지단이 발다노의 후임이 되었다.

2012-13 시즌을 끝으로 주제 무리뉴 감독은 레알을 떠났고 지네딘 지단 또한 사무총장 직을 그만두고 레알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는데 13-14 시즌이 끝난 현재 레알 보드진에 복귀한다는 소식은 없는 상태다.


6. 이후[편집]


현재 스페인 Movistar 에서 스페인 라리가UEFA 챔피언스 리그 해설을 하고있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이후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7. 기록[편집]



7.1. 선수[편집]



7.1.1. 대회 기록[편집]






7.1.2. 개인 수상[편집]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3]: 1985-86


7.2. 감독[편집]



7.2.1. 대회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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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무리뉴는 바르셀로나와 절대적인 기량 차이는 인정하며 일단 라인을 내려 수비를 다진 후 역습 축구를 주장했다. 반면 발다노는 그런 건 레알이 추구하는 축구와 맞지 않는다며 시원한 공격 축구를 주장했다. 문제는 발다노 의견대로 전성기에 오른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번 라인을 올려 공격 축구를 시도했다가 공도 제대로 못 잡아보고 5:0으로 참패해버린 것. 현실을 직시하게 된 수뇌부는 곧바로 발다노를 잘라버리고 무리뉴의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사실 무리뉴는 레알 감독 이전 인테르를 이끌고 선 수비 후 역습으로 바르셀로나를 물리친 경험이 있었기에, 자기 의견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2] 1972년 생이 축구 구단에서 2인자 격인 사무총장의 자리에 오른다고 생각해보면... 참고로 무리뉴가 지단보다 9살이나 많다.[3] 돈 발롱 어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