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성대학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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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1. 역사[편집]


1977년 2월 7일에 기독교 대한감리회 총리원 이사회 실행부위원회에서 감리교 서울신학교를 설립결의 하였고, 이후 감리교 서울신학교 설립이사 및 유지이사로 이사회를 구성하여 초대 이사장에 김창희 감독, 초대교장에 박근수(설봉) 감독이 취임하며 1977년 4월 1일, 협성대학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신학교가 개교한다.[1]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무인가 신학교 정비령'[2]에 따라 1981년, 기독교 대한 감리회 감독회의에서 연회별 기존 6개 신학교의 통합을 결의한다. 그렇게 기존 6개의 신학교가 서울 신학교를 중심으로 1983년 3월 4일에 감리교회 협성신학교[3]라는 이름으로 통합하여 개교한다. 그렇게 통합된 협성신학교는 1985년 1월에 4년제 대학 학력인정교로 지정받게 되고, 같은 해 9월 경기도 남양주시의 입석캠퍼스에 본관과 강당이 설립되었다.[4] 그로부터 2년 뒤인 1987년, 경기도 화성군[5] 봉담읍 상리에 위치한 현재 캠퍼스 대지 67,681㎥를 매입하고, 사회복지학과, 해외선교학과, 교회음악과의 총 3개 학과를 새로 신설한다.[6]

1988년 12월 31일, 비로소 남양주 입석캠퍼스에서 현재 자리의 봉담캠퍼스로 이전한다. 캠퍼스의 총 규모는 11,799㎡(3,569.18평)로, 교육관 8,838㎡(2,673.48평), 강당 1,068㎡( 323.06평), 도서관 876㎡( 264.98평), 기숙사 928㎡( 280.71평), 기타부속실 89㎡( 26.92평), 체육장 14,876㎡(4,500평)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후 1990년 9월, 대학개편 계획을 문교부[7]로 부터 승인 받아, 1년 뒤 1991년 11월에 신학교에서 신학대학으로 개편한다.[8] 이후 1992년 3월, 박근수(설봉) 교장이 초대학장에 취임하였고, 같은 달에 사회복지 연구소와 학생회관(1,740㎡)[9][10]을 준공한다. 1992년 7월에는 사회복지학과, 지역사회 개발학과의 최초 2개 학과로 이루어진 야간학부를 새로 신설한다.

1993년, 명칭을 '협성신학대학교'[11]로 변경하였고, 명칭이 대학에서 대학교로 바뀜에 따라 박근수(설봉) 초대학장은 초대총장으로 취임한다. 1993년 9월에는 기존의 야간학부에 경영정보학과, 미술학과, 산업디자인과의 총 3개 학과를 새로 추가하고, 신학관을 새로 준공(2,689.02㎡)한다.

1994년, 비로소 명칭을 협성신학대학교에서 현재의 교명인 '협성대학교'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같은 해 9월, 산업디자인학과, 실내건축학과, 도시계획공학과의 총 3개 학과를 새로 신설하였으며, 야간학부에 광고홍보학과, 유통정보학과, 문예창작학과, 영어영문학과, 음악학과의 총 5개 학과를 새로 추가한다. 또한 교회음악학과의 명칭을 '음악학과'로 변경하였고, 미술학과와 산업디자인과 실습실을 준공(397㎡,120평)한다.
[1] 이 시기에 서울 신학교를 포함해 6개의 신학교가 개교한다.[2]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무인가 신학교로 인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짐.[3] 목회학과 40명으로 시작.[4] 목회학과 60명으로 증원.[5] 당시는 시로 승격 이전 (2001년 시로 승격).[6] 1년 뒤인 1988년 12월, 해외선교학과와 교회음악과는 신학과로 통합된다. [7] 현 교육부[8] 협성신학연구소 설치[9] 현재의 국제교류센터 건물[10] 현재의 학생회관은 2007년에 새로 완공된 것.[11] 이전까지 협성신학교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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