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문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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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문의 변
玄武門之變
시기
626년 음력 6월 4일(양력 7월 2일)
장소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 태극궁의 북문인 현무문
원인
당 고조의 후계자 문제
교전세력
태자파
(이건성 파벌)

(방어)


진왕파
(이세민 파벌)

(공격)


주요인물
지휘관

고조(초대 황제)
이건성(태자)

이원길(제왕)
위징
왕규
설만철
지휘관

이세민(진왕)
방현령
두여회
단지현
울지경덕
장손무기
후군집
상하
고사렴
정지절
장공근
우문사급
진경
굴돌통
장사귀(張士貴)
최선위(崔善爲)
당검
설만균
결과
이세민의 태자 책봉과 전권 장악
영향
당 고조의 퇴위와 이세민의 황제 즉위

1. 개요
2. 배경
3. 과정
4. 결과
5.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당나라에서 626년에 이세민이 두 형제[1]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군사반란 및 내전. 이세민이 정관지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룩했는데도 찬탈자요 패륜아 취급을 받게 된 중국사의 대사건이자 군사반란이다.


2. 배경[편집]


617년 들어 수 양제 양광의 지나친 폭정에 지친 백성들에 의해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태원유수 이연은 이 시기 일어난 수많은 반란군 지도자 중 하나로 자신의 세력을 강하게 키워 수도 장안을 침공해 수 공제를 옹립하고 뒤이어 폐위시키더니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당나라를 건국했다. 이때가 618년 6월 18일이었다.[2]

621년 고조가 이세민에게 동도 낙양을 중심으로 중원 동부의 문•무 행정을 맡기자 이세민의 군사력을 두려워한 황태자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이 암살음모를 꾸몄다. 셋 중 이세민의 명성이 단연 높았기에 황태자는 이세민이 자신을 몰아낼까 두려워했다.

624년 윤 7월 21일, 이원길의 비빈들이 고조에게 일러바쳤다.

"이세민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천명을 가졌으니 바야흐로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인데 어찌 하찮게 죽겠는가'라고 했습니다..."


화가 난 고조가 이세민을 불러 말했다.

"천자하늘의 뜻이 있어야 오르는 것이지 지혜와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천자인 나와 태자인 형이 너의 앞에 있는데 그리도 천자가 되고 싶으냐?"


이세민은 일단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소문의 진원지와 어떻게 해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는지 철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는데, 이 말을 들은 고조가 진노했다. 그때 한 관리가 급히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돌궐군이 북방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고조는 다시 아들 이세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가 출병하자 고조는 장안에서 함양의 동쪽까지 와서 전별[3]했다.

"황상은 적의 노략질과 도적질이 있을 때마다 이세민에게 명령을 내려 이를 토벌하게 했지만,

일이 평정된 다음에는 시기와 의심하는 마음이 더욱 심해졌다." 《자치통감


그리하여 626년 6월 3일, 이세민은 형제들에게 죽지 않기 위해 먼저 칼을 뽑을 결심을 한다.


3. 과정[편집]


이세민은 형제들을 유인하기 위해 아버지 고조를 찾아갔다.

"신은 형제들에게 조금도 죄를 짓지 않았는데 지금 신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죽어서 군주이신 아버지를 영원히 작별할 수 있습니다."

고조는 이 일을 다음 날 아침 형제를 모아 처리하겠다고 대답했다.

자치통감》은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음력 6월 4일(양력 7월 2일) 이른 아침, 이세민의 형인 황태자 이건성과 동생인 제왕 이원길이 심문을 받기 위해 태극궁의 북문인 현무문으로 들어섰다. 함께 온 정예병 2,000명은 문 밖에 남겨 둔 채였다. 둘은 경비가 엄중한 궁성에 복병이 숨어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임호전(臨湖殿)까지 와서야 비로소 이상한 공기를 느끼고 서둘러 말을 되돌리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대형(大兄)! 어디로 가시는지요?


놀란 이원길은 형 이세민에게 활을 쏘았으나 맞히지 못했으며 이세민이 지체없이 형 이건성에게 활을 쏘았다. 황태자는 말에서 떨어져 즉사했다.

이세민의 부하 울지경덕(蔚遲敬德)이 70명의 기병과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원길을 향해 좌•우 양방향에서 시위를 당겼다. 이원길은 놀라 말에서 떨어졌으나 죽지는 않았다. 그때 이세민의 말이 갑자기 숲속으로 뛰어들었는데, 이세민이 나뭇가지에 걸려 낙마했다. 머리에 충격이 갔는지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 추격하는 병사들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온 이원길이 쓰러져있는 이세민의 목을 활대로 눌렀다.

울지경덕이 말을 타고 들어와 말했다.

그만 두시오!

놀란 이원길은 허겁지겁 아버지 고조가 있는 무덕전으로 도망쳤다. 울지경덕이 곧바로 추격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이원길의 등 정중앙에 꽂혔고, 원길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죽은 황태자 이건성의 부하인 설만철이 2,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현무문에 도착했다. 그러자 이세민의 부하 장공근이 문을 닫았다. 문 밖에서 수비하는 경군홍과 여세형이 황태자파인 설만철의 부하들과 난투극을 벌였다. 경군홍과 여세형은 몸을 던져 싸웠고, 장렬히 전사했다.

피 튀기는 싸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현무문을 돌파하지 못한 설만철이 군대를 돌려 이세민의 지휘 본부인 진왕부(秦王府)를 박살내러 가는 순간, 울지경덕이 이건성과 이원길의 머리를 현무문에 걸었다.

설만철의 궁부 병사들의 시선이 잘린 두 머리에 집중되었고, 황자끼리의 처절한 권력 다툼은 이 상징적 행위로 그 종식을 알렸다. 주인을 잃은 병사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흩어져 버렸고, 설만철은 수십 명의 부하와 함께 종남산으로 도망갔으며, 나머지는 들로 흩어졌다. 설만철은 이세민을 따르던 형 설만균 덕분에 이세민에게 용서를 받았다.

한편 정변 소식을 들은 고조는 궁성 안의 호수 가운데로 배를 타고 도망갔다. 완전무장한 울지경덕이 배를 타고 고조앞에 나타났는데, 자신을 죽이러 온 줄 안 고조는 공포에 떨며 물었다.

"음, 오늘 이 화란을 일으킨 사람은 누구인가? 경은 여기 와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울지경덕이 대답했다.

"진왕(秦王) 이세민께서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주살했습니다. 제가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두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자 고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권력을 완전히 상실한 고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세민을 황태자로 세우며 대권을 이양하겠다고 선언(양위)해야 했다. 이세민은 즉시 병사를 보내 이건성의 다섯 아들과 이원길의 다섯 아들을 남김없이 죽여 후환을 막았다.

한편 이세민이 형제와 조카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연금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북방의 초원에 전해지자, 태종의 궁색한 상황을 정확히 간파한 동돌궐은 젊은 새 황제를 그냥두지 않았다. 바로 그 달에 힐리 가한은 무려 100,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장안 부근까지 진격해 왔다. 장안성 안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장정은 겨우 수만 명에 불과했는데, 당시 정황은 동돌궐이 압도적으로 유리했고, 태종에게는 대군을 동원해 침입해온 유목 군대를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 동돌궐은 수확없이 절대 물러나려 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태종은 어떠한 굴욕이라도 참고 전쟁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장안성에 있는 금, 은, 비단 등 모든 재물을 끌어모아 힐리 가한에게 바치고 화의를 요청했다.

4. 결과[편집]


이건성, 이원길 두 형제와 그 아들들은 모두 살해당했고, 동궁과 제왕부의 군사들도 모두 해산되었으며, 이건성과 이원길의 남은 가족들은 황실 호적에서 모두 파여 쫓겨났다. 이세민은 아버지 고조를 알현하고 새롭게 황태자 자리에 올라 사실상 당나라의 전권을 손아귀에 넣고 훗날 당 태종으로 즉위했다.

한편 위징은 태자 이건성을 강하게 지지한 부하로서 이전부터 진왕 이세민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한 인물이었는데, 현무문의 변 이후 이세민은 오히려 위징을 중용했다. 위징의 유능함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이세민이 당나라의 제2대 황제가 되어 정관의 치를 이루지만, 가정사로 보면 아버지를 내치고 형제를 죽이며, 자신이 죽인 동생의 부인을 후궁으로 삼고 열 살 남짓한 어린 조카들을 모조리 죽이는 등, 갖가지 패륜을 저지른 탓에 문제가 심각했다. 이후 후계문제까지 발생하여[4] 자식들 중 그나마 멀쩡한 이치를 후계를 세우는 등[5], 정치를 잘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당대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다.


5. 창작물에서[편집]


영화 <라스트 템테이션>과 드라마 <연개소문> 59회에서 바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그런데 실제 현무문의 변 당시 태자 이건성은 38세, 진왕 이세민은 29세, 제왕 이원길은 24세였는데,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이보다 앞선 수 양제와 이밀의 죽음 이후에 연기자를 청년에서 장년으로 교체하는 바람에 배역 인물의 실제 나이와 배우의 나이의 격차가 심하게 나버렸다. 그래도 국뽕 넘치는 이 드라마에서 그놈의 고구려 타령이 배제된 장면인 데다가 당 태종 역의 서인석의 카리스마로 명장면이 나왔다.

중국 드라마 <진왕 이세민>은 이세민이 제위에 오르는 과정을 다루는 만큼 마지막으로 다룰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이세민이 위정으로부터 이건성과 이원길이 현무문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현무문으로 간 뒤에 비장한 영상미와 함께 현무문이 열리는 씬만 나오고 이건성, 이원길과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생략된 채 바로 이세민이 당 태종으로 즉위하는 장면으로 넘어가며 드라마가 막을 내린다. 원래 내용이 그대로 나오면 주인공의 이미지가 손상을 피할 수가 없어서, 극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중요한 장면을 생략한 보기 드문 진행이다.

1984년 홍콩 TVB에서 방영했던 퓨전 사극 <결전현무문>도 이 사건을 다루었다. 198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옹미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의 2003년 영화 <황산벌>에서 연개소문이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의 지도자가 참석한 국제회의 장면에서 "짐이 천자가 된 것은 하늘의 뜻이니라."라고 엄숙하게 선언하는 당 고종 이치를 보고 연개소문이 고깝게 생각하면서 이 사건을 언급한다.

연개소문: 보라우. 아바지 당 태종이가 형제들 쳐 죽이고 황제된 것도 하늘이 정한 질서네? (김춘추가 정권의 철학적 정통성을 거론하자) 정통성? 기래. 내레 쿠데타[6]

일으켜서 정권 잡았다, 와? 김춘추, 너레 반쪽짜리 왕족 주제에 김유신이랑 짝짜꿍이 해서리 정권 잡디 않았서? 의자왕, 니 아바지도 서자디?[7] 여기 정통성 있는 놈이래 누구래 있어야?! 전쟁은 정통성 없는 놈들이, 정통성 세우려고 하는 기 아이야!

의자왕: 아, 고것이 정치적 경륜이제.


연개소문의 발언으로 그동안 쌓였던 삼국 간의 악감정이 폭발하고 이를 보다 못한 당 고종 역시 백제와 고구려에게 선전포고를 선언하게 된다.

[1] 이복형제도 아니고 진짜 친형과 친동생이다. 조선의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이 그래도 이복동생이 목표였다는 걸 보면 이쪽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2] 수 공제는 몇 개월 뒤 이연의 아들 이세민에게 살해당했다.[3] 잔치를 베풀어서 작별함.[4] 맏아들 이승건은 미친 놈인 데다가 게이라서 남색을 탐했고, 총애하던 남첩을 아버지 태종이 죽였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으며 차남 이태는 머리는 좋았지만 엄청나게 비대했던 데다가 성정이 잔학해서 역시나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5] 몸이 허약하고 비교적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제위에 올라도 자기 형들을 죽일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겨졌다. 결과적으로 형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 부인에게 황위를 넘기는 더욱더 기상천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6] 쿠데타(Coup d'État)는 불어이기 때문에 재현 오류이지만 영화의 희화화된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인 만큼 적당히 넘어가 주자.[7] 무왕의 출신이 불확실한 것을 반영한 대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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