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르뒤스 엇호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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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물리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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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마르튀니스 펠트만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Gerardus 't Hooft


파일:’tHooftPot.1.jpg

출생
1946년 7월 5일 (77세)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 덴헬더르
국적
[[네덜란드|

네덜란드
display: none; display: 네덜란드"
행정구
]]

직업
이론물리학자
분야
이론입자물리학 (양자장론)
학력
위트레흐트 대학교 (수학 · 물리학 / Kand.)
위트레흐트 대학교 (이론물리학 / Ph.D.[1])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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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스코푸스.png 파일:orcidid.png



1. 개요
2. 생애
3. 세부 연구 분야
4. 기타
5. 물리학에 관한 어록



1. 개요[편집]


네덜란드의 이론물리학자. 분야는 양자장론이다.

2. 생애[편집]


1946년 7월 5일 네덜란드 덴헬더르의 학자 집안에서 1남 2녀중 둘째로 출생했다. 아버지는 해양공학자였고, 어머니는 레이던 대학교의 동물학 교수였던 Pieter Nicolaas Van Kenpan의 장녀였다. 외할머니는 195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였던 프리츠 제르니케의 누이로, 제르니케는 엇호프트의 외외종조부이다.

유년기는 헤이그에서 보냈고, 해양공학자였던 아버지는 공학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자 자동차, 선박공학, 라디오 서적을 선물로 주었다. 8살에는 가족들을 따라서 10개월동안 잠시 런던에서 체류하기도 했는데, 영어를 첫번째 외국어로 습득했다. 잠시 초등학교에 다니기도 했었고, 하루는 시골로 여행을 가서 난생 처음으로 산을 보기도 했었다. 그때 당시 영국에는 Meccano라는 장난감이 유행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Meccano를 사와서 같이 설명서보고 조립했지만, 독창적으로 Meccano를 조립하는것에 더 흥미를 두었다.

Dalton Lyceum이라는 숙제 자료를 탐구하는 방과후 시간이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분위기에 적응을 잘했지만, 다만 고전학을 1년더 배워야했는데, 물리학자였던 삼촌은 물리를 하는데 “고전학은 필요없지만, 그렇다고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언해준것을 생각해서 고전학을 1년 더 배웠다.

10대 중반에는 네덜란드수학올림피아드에 2번 출전해서 16살에 열렸던 NMO에서 1차를 통과하고, 2차 시험에서 은상을 받았다. 연습이 부족해서 2차는 몇 문제를 못풀었었다고 회상했다.

1964년 시험을 통과하고, 위트레흐트 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추천을 따라 위트레흐트 학군단에 들어갔고, 이미 군복무를 한 신입생도 있었던 학군단에서 일탈을 자주해서 고학년 선임에게 과학을 뺀 어떤것이든 흥미를 갖지않는 것에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다만, 생물학 전공이었던 선임이 전공지식 몇가지를 물어보자 답변에 흡족한 나머지 너는 물리학과가 아닌 생물학과로 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1968년에 물리학과를 졸업할 당시 소립자 물리학을 연구하던 마르튀니스 펠트만이 지도교수로 부임했는데, 첫만남 당시 삼촌을 포함해 외할아버지 또한 위트레흐트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한 가족력을 삼아서 가족 찬스로 높은 성적을 받았다는 의심을 사서 꽤 피곤하기도 했으나, 양-밀스 게이지 장 이론 및 질량 생성의 원인이 되는 자발적 깨짐 대칭중 골드스톤 모형같은 그 당시에 새로운 이론이었던 양자장론 모델을 소개해주었기도 했다.

1969년부터 박사 졸업까지의 연구주제는 양-밀스장의 재규격화였는데, 펠트만의 연구주제였던 중간자가 광자로 분해되지 않는 ABJ 변칙의 수학적 모델의 계산적 오류를 시작으로, 1970년 Cargese에 열린 여름 학교에서는, 자발 대칭 깨짐의 재규격화를 다루는 Levy-Gell Mann 모형에 대한 이휘소와 Levy, Symanzik의 강연을 듣고, 위트레흐트로 돌아와 regulator를 활용한 경로적분 재규격화 방법론들을 연구해 양-밀스 장에 관한 재규격화를 고안하는 논문을 제출했다.

그와 펠트만의 재규격화 연구는 와인버그와 살람의 표준 모형이 실험적으로 검증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어 많은 실험물리학자들로 하여금 표준모형의 검증에 나서게 했고, 1973년 CERN에서 중성 흐름이 발견되어 표준모형이 증명되기에 이르렀다. 와인버그와 살람의 아이디어를 재규격화를 통해 실험 가능한 형태로 정식화한 공로로 그와 펠트만은 199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3. 세부 연구 분야[편집]


양-밀스 장의 라그랑지언 포멀리즘 및 경로적분 방법의 양자화의 재규격화와 강한 CP 대칭성 깨짐을 만족하는 정식화[2]를 연구했다.

4. 기타[편집]


  • 언제는 초등학교 학우가 “라디오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라고 말한것을 들은적이 있는데, 이를 반박하고자 라디오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들이 작동하는 원리를 체득했다.

  • 10살때는 피아노를 배웠는데, 계기는 남동부 벨기에의 펜션으로 놀러갔을때, 피아노와 악보책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어떻게 보는지 알려준다음 흥미가 생겨 교사를 따로 초빙해서 배웠다. 꽤 엄격하게 지도하긴 했지만, 양손으로 치는것을 배우지 않은채 양손으로 칠수 있게 되어 교사를 놀라게 했다.

  • 2022년부터 뤼터 내각에서 교육문화과학부 장관을 역임하기 시작한 수리물리학자 로베르트 다익그라프(Robbert Dijkgraaf)의 박사 과정 지도 교수였다.

5. 물리학에 관한 어록[편집]



"나는 끈 이론을 '이론'이나 '모형'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일종의 '직감'에 지나지 않는다. 물리학 이론이라면 입자의 질량이나 전하를 계산하는 등 물리적 대상을 서술하는 정량화된 규칙이 있어야 하며, 그로부터 일어나는 현상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당신에게 의자를 준다면서 "다리는 아직 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밑창과 등받이, 손걸이는 곧 배달될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당신은 "의자를 받았다"고 말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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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사 학위 논문 : Renormalization of massless Yang-Mills Fields = 무질량 양-밀스 장의 재규격화(1972).[2] 후에 Peccei와 Quinn의 CP 대칭성 보존 정식화의 제약 조건의 구축에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