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이스라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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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2. 21세기
3. 대사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헝가리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냉전시절에 외교관계를 맺었고,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양국간의 교류, 협력이 증가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편집]


시오니즘 운동이 한창이던 20세기 초반 당시 헝가리 내 유대인 인구는 3/4 가량이 이디시어 대신 헝가리어를 구사할 정도로 헝가리 문화 및 헝가리인에 깊이 동화되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것을 계기로 헝가리는 엄청난 양의 영토를 이웃 국가에 떼어주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헝가리 민족주의는 과거보다 더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를 띄게 되었다. 1920년 헝가리 왕국(1920~1946) 정부는 유대인 인구가 헝가리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유대인 입학생 비율을 5%를 넘지 못하도록 입시 정책을 손보았으며, 1938년부로 뉘른베르크 법을 모방하여 여러가지 반유대주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38년 새로 재정된 법에서 유대인들이 법조인, 의료인, 언론인 등 고학력 전문직이 되는 것을 입학사정관제 비슷한 방식으로 전체에서 2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였으며, 1941년에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통혼을 법적으로 금지하였다. 1943년 헝가리는 나치 독일이 자국인 유대인들을 상대로 홀로코스트를 하는 것을 묵인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헝가리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헝가리 내 유대인 인구 상당수가 헝가리 이민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헝가리는 소련에 위성국가가 되었고, 이에 따라 이민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로 이민이 자유롭지는 못했다. 냉전 시대 당시 헝가리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해있던 상황이라 제1세계 멤버인 이스라엘과 껄끄러운 관계였다.

1980년대 헝가리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90년대초에 공산정권이 몰락하면서 헝가리의 체제가 변환한 이후 양국관계는 개선되었으나, 이미 헝가리 내 유대인 인구는 대폭 감소하거나 혹은 완전히 동화되는 방식으로 급감한 이후였다.


2.2. 21세기[편집]


양국간의 교류와 협력은 2010년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가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양국은 교류,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양국간의 교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2019년 2월 19일에 헝가리측은 예루살렘에 무역사무소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오늘날에는 헝가리 내에는 소수의 유대인들이 남아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 내에 아슈케나짐 유대인들 중에서 헝가리 출신 조상을 둔 경우가 적지 않다.

2017년에 헝가리에서 헝가리계 유대인인 조지 소로스를 비판하는 광고가 늘어나는 등 반유대주의움직임이 일어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7월 18일에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헝가리의 과거 나치 부역 역사를 비판했다.#

2018년 7월 17일에 오르반 총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했는데, 인권단체들이 항의시위를 했다.# 그리고 반유대주의에는 무관용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2020년 9월 13일에는 EU국가들중엔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협약 서명식에 참여했다.#

2021년 3월 9일에 오르반 총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해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했다.# EU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휴전 성명을 하자 헝가리는 EU를 비판했다.#


3. 대사관[편집]


양국은 대사관을 두고 있다. 부다페스트에는 주 헝가리 이스라엘 대사관이 존재한다. 헝가리측은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했지만, 2018년에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옮겼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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