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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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허을(許鳦)
생몰
1885년 2월 19일 ~ ?
출생지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지명동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생애[편집]


허을은 1885년 2월 19일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지명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박승룡 등과 함께 명천군 하가면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일으켜 화개 장터에서 5,000여 명의 군중을 집결시킨 뒤 화가장터로 행진했다. 이후 그들은 면장 면장 동필한(董弼漢)[1] 을 끌어내어 "너도 조선 사람이니 우리의 대열에 참가하여 같이 만세를 부르자"고 했다. 그러나 동필한이 "나는 조선총독이 임명한 면장이니 총독의 지시가 없이는 만세를 부를 수 없다."고 하자, 군중들은 격분해 면장에게 침을 뱉고 이리저리 쳤다.

이 일로 체포된 허을은 1919년 11월 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허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성구동 광천 동씨 집성촌 출신. 아래와 같이 구한말부터 지역 유지로 군림하였다. 구한말이던 1907년 10월 23일 함경남도 관찰도주사(觀察道主事)에 임명되었다.# 이후 1910년 11월 5일 조선총독부 도서기를 그만두었고 1911년 7월 12일부터 1912년까지 경성군 서기로 근무했고, 1915년 9월 9일에 화태금융조합(花台金融組合)을 설립하여 대표로 취임, 1933년 4월 당시에도 대표로 있었다.# 1918년 8월 28일 함경농공은행 주주로서 조선식산은행 창립에 참여하였다. 1919년 전후부터 명천군 하가면장을 지낸 사실이 확인된다.조선총독부 직원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