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근 일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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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의문사 의혹 제기
3. 33년 만의 순직 인정
4. 사건을 다룬 매체


1. 개요[편집]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제7보병사단에서 일어난 군 의문사 사건.

2. 의문사 의혹 제기[편집]


1984년 4월 2일,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강제징집허원근(許元根) 일병강원도 화천군 소재 육군 제7보병사단 GOP 철책근무지 전방소대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7사단 헌병대는 허 일병이 처음에는 M16 소총을 오른쪽 가슴, 두 번째는 왼쪽 가슴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으며 마지막에는 오른쪽 눈썹에 밀착해 사격, '두개골 파열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유족들은 M16소총을 스스로에게 3발이나 (그것도 한발씩) 사격한다는게 말이 되냐며 자살로 인정하지 않았다.

2002년 9월 제1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는 술에 취한 상관이 우발적으로 총을 쏴 허 일병을 살해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으며 이에 대해 국방부는 자살이 맞다고 주장했고, 제2기 의문사 진상위에서 다시 한 번 타살임을 발표했다. 이에 기반하여 허 일병의 유족이 지난 2007년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1심 재판부는 2010년 2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하고 국가는 유족들에게 9억 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2013년 8월에 자살로 판결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가 자살이라 판결한 근거는 M16 소총을 오른쪽 가슴, 왼쪽 가슴, 마지막으로 오른쪽 눈썹에 총을 댈 수 있는 자세가 되기에 자살이 가능하다는 것이였다. 총을 쏴서 관통상이 났다는 전제조건이 없이 댈 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관통상의 영향으로 흩어져있어야 할 뇌조직과 뇌수가 보이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M16 소총의 회전력으로 혈액과 뇌조직이 비산(날아서 흩어짐)해서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근거로 자살이 맞다고 민사소송의 배상책임에 원고 패소 판결을 한 것이다.

M16 소총을 오른쪽 가슴, 왼쪽 가슴, 마지막으로 오른쪽 눈썹에 총을 댈 수 있는 자세가 되기에 자살이 가능하다는 말을 해석하면 허일병이 오른쪽 가슴을 먼저 쏜 다음 왼쪽가슴을 쏘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눈썹에 총구를 대고 쏴서 자살했다는 소리다.

국방부의 자살 주장 근거와 민사소송 항소심의 재판결과에 의하면 M16 소총을 자신의 몸에 밀착해서 바이탈 파트에 두 번 쏘고도 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다시 몸을 가눠 눈썹에 밀착하여 한번 더 총을 쐈다는 이야기이다. 상식적으로 일반적인 사격자세도 아닌 불편한 자세로 행하게 되는 자살시도를 인체의 급소에 세 번이나 사격이 가능하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국방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국방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순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 1995. 10.경 ○○ 소위가 복부에 2발, 우측 머리에 1발을 각 발사하여 복부 관통 총창 및 머리파열상으로 사망.

* 1980. 2.경 상병 ○○○가 M16 소총으로 자신의 하복부에 6발을 발사하고 턱밑에 1발, 입에 1발 등 총 8발을 발사하여 자살.

* 1981. 2.경 이병 ○○○이 M16 소총으로 복부에 1발, 좌 대퇴부에 5발을 발사하여 자살.


일부 밀덕들이 허원근 일병 사건을 포함, 이런 사례들을 두고 모잠비크 드릴이 자살이냐고 반문하지만, 오히려 이런 사격술 이론은 "사람은 가슴~배에 총을 맞아도 그리 쉽게 저지되거나 즉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는다.[1]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리볼버탄이 심장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척추에 박히는 바람에 죽지 않고 며칠을 고통 받다 "스스로에게 총을 발사하는 것마저도 실패하다니."라고 말한 뒤 여관 침대에서 죽었고,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로도 유명한 문국진 교수도 (이 사건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치명상만 아니면 한두 발이건 서너 발이건 본인엔게 발포할 수가 있다"고 했다.[2] 즉, 일반인들의 상식(믿음)과 달리 총알을 몇 발이나 쐈다는 것만으로는 자살이나 타살이냐 분간할 수 없다.

1994년 군사기밀보호법 개정 전까지 이러한 사건들은 법적으로 '군사기밀'로 간주되어[3] 보도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언론 보도가 안 되었다.

이에 유가족들은 다시 상고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10일, 대법원은 허 일병이 자살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하고 군의 부실수사를 지적한다. 그리고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 하지만 살해됐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대신 대법원은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면서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말했다. 이로써 이 사건은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3. 33년 만의 순직 인정[편집]


2017년 5월 16일, 국방부는 오랜 기간동안 자살인지 타살인지 논란이 있었던 허원근 일병의 사망 구분을 순직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 이는 지난 2월 14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허 일병에 대해 순직 인정을 권고한 결정을 국방부가 따른 것이다. 또한 국방부는 법제처 등 유관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진상규명 불명자'에 대한 순직심사가 가능하도록 '군인사법시행령' 개정도 추진한다.

4. 사건을 다룬 매체[편집]


2013년 10월 12일에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방영되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시사 프로에서 종종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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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잠비크 드릴은 주로 9mm 권총에 사용하는 사격법으로, 9mm 권총탄과 5.56mm 소총탄은 그 위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 9mm 권총탄은 케블라로만 된 낮은 등급의 방탄복으로 막을 수 있지만, 5.56mm 소총탄은 케블라 뿐 아니라 방탄판이 들어간 높은 등급의 방탄복을 사용해야한다. 또한, 9mm는 그 특성상 인체에 한 조각으로 박히는 형태인데, 5.56mm는 파편효과로 인해 살상력의 급이 다르다.[2] 원문: "군의관에게 들은 얘기입니다만, 어느 군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시신을 부검했더니 총알이 네 발이 나왔어요. 마지막 한 발이 심장을 관통한 치명상이 되어서 자살이 틀림없다는 감정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유족은 어떻게 스스로 죽으려는데 네 발이나 쏠 필요가 있겠냐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타살이 아니냐는 거죠. 법의학자라면 알겠지만 치명상이 되지 않으면 한두 발이건 서너 발이건 본인에게 발포할 수가 있는 것이죠." -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2003), 문국진/우에노 마사히코 저, 해바라기 출판사, p.108~110. 공저자이자 발췌문의 대화 상대인 우에노 마사히코는 일본 동경도 감찰의 출신의 법의학자다.[3] 군사기밀보호법 11조(출판물등에 관한 가중처벌, 1994년 개정 이전의 것) 신문·잡지 또는 라디오·텔레비젼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제7조·제8조 및 제10조의 죄를 범한 자는 각조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