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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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행정구역



[ 경국대전(1485년) ]
경관직京官職
한성부漢城府
개성부開城府
외관직外官職

경기
京畿
충청도
忠淸道
경상도
慶尙道
전라도
全羅道
황해도
黃海道
강원도
江原道
영안도[1\]
永安道
평안도
平安道

도 이하 행정구역



경주慶州
전주全州


영흥永興[2\]
평양平壤
대도호부


안동安東


강릉江陵
안변安邊
영변寧邊

광주廣洲
여주驪洲
파주坡洲
양주楊洲
충주忠州
청주淸州
공주公州
홍주洪州
상주尙州
진주晉州
성주星州
나주羅州
제주濟州
광주光州
황주黃州
해주海州
원주原州

안주安州
정주定州
의주義州
도호부
수원水原
강화江華
부평富平
남양南陽
이천利川
인천仁川
장단長湍

창원昌原
김해金海
영해寧海
밀양密陽
선산善山
청송靑松
대구大丘
남원南原
장흥長興
순천順天
담양潭陽
연안延安
평산平山
서흥瑞興
풍천豐川
회양淮陽
양양襄陽
춘천春川
철원鐵原
삼척三陟
경성鏡城
경원慶源
회령會寧
종성鍾城
온성穩城
경흥慶興
부령富寧
북청北靑
덕원德源
정평定平
갑산甲山
강계江界
창성昌城
성천成川
삭주朔州
숙천肅川
구성龜城

양근楊根
풍덕豊德
안산安山
삭녕朔寧
안성安城
마전麻田
고양高陽
임천林川
단양丹陽
청풍淸風
태안泰安
한산韓山
서천舒川
면천沔川
천안天安
서산瑞山
괴산槐山
옥천沃川
온양溫陽
합천陜川
함양咸陽
초계草溪
청도淸道
영천永川
예천醴泉
영천榮川
흥해興海
울산蔚山
양산梁山
함안咸安
금산金山
풍기豐基
곤양昆陽
보성寶城
익산益山
고부古阜
영암靈巖
영광靈光
진도珍島
낙안樂安
순창淳昌
금산錦山
진산珍山
김제金堤
여산礪山
곡산谷山
봉산鳳山
안악安岳
재령載寧
수안遂安
배천白川
신천信川
평해平海
통천通川
정선旌善
고성高城
간성杆城
영월寧越
평창平昌
삼수三水
문천文川
고원高原
단천端川
함흥咸興[3\]
중화中和
상원祥原
덕천德川
개천价川
자산慈山
가산嘉山
선천宣川
곽산郭山
철산鐵山
용천龍川
순천順川
희천熙川
이산理山
벽동碧潼
운산雲山
박천博川
위원渭原
영원寧遠

현령(縣令, 종5품) 파견
용인龍仁
진위振威
영평永平
양천陽川
김포金浦
문의文義
영덕盈德
경산慶山
동래東萊
고성固城
거제巨濟
의성義城
남해南海
창평昌平
용담龍潭
임피臨陂
만경萬頃
금구金溝
능성綾城
신계新溪
옹진瓮津
문화文化
우봉牛峯
금성金城
울진蔚珍
흡곡歙谷

용강龍岡
삼화三和
함종咸從
영유永柔
증산甑山
삼등三登
순안順安
강서江西

현감(縣監, 종6품) 파견
지평砥平
포천抱川
적성積城
과천果川
금천衿川
교동喬桐
통진通津
교하交河
연천漣川
음죽陰竹
양성陽城
양지陽智
가평加平
죽산竹山
홍산鴻山
제천堤川
덕산德山
평택平澤
직산稷山
회인懷仁
정산定山
청양靑陽
연풍延豐
음성陰城
청안淸安
은진恩津
회덕懷德
진잠鎭岑
연산連山
이산尼山
대흥大興
부여扶餘
석성石城
비인庇仁
남포藍浦
진천鎭川
결성結城
보령保寧
해미海美
당진唐津
신창新昌
예산禮山
목천木川
전의全義
연기燕岐
영춘永春
보은報恩
영동永同
황간黃澗
청산靑山
아산牙山
개령開寧
거창居昌
삼가三嘉
의령宜寧
하양河陽
용궁龍宮
봉화奉化
청하淸河
언양彦陽
칠원漆原
진해鎭海
하동河東
인동仁同
진보眞寶
문경聞慶
함창咸昌
지례知禮
안음安陰
고령高靈
현풍玄風
산음山陰
단성丹城
군위軍威
비안比安
의흥義興
신녕新寧
예안禮安
연일延日
장기長鬐
영산靈山
창녕昌寧
사천泗川
기장機張
웅천熊川
광양光陽
용안龍安
함열咸悅
부안扶安
함평咸平
강진康津
옥과玉果
고산高山
태인泰仁
옥구沃溝
남평南平
흥덕興德
정읍井邑
고창高敞
무장茂長
무안務安
구례求禮
곡성谷城
장성長城
진원珍原
운봉雲峯
임실任實
장수長水
진안鎭安
무주茂朱
동복同福
화순和順
흥양興陽
해남海南
대정大靜
정의旌義
장련長連
송화松禾
장연長淵
강령康翎
은률殷栗
강음江陰
토산兔山
이천伊川
평강平康
김화金化
낭천狼川
홍천洪川
양구楊口
인제麟蹄
횡성橫城
안협安峽
홍원洪原
이성利城
길성吉城
명천明川
양덕陽德
맹산孟山
태천泰川
강동江東
은산殷山

대마對馬[4\]
[1\] 1470년(성종 1) 함경도에서 개칭, 1498년(연산군 4) 함경도로 개칭.
[2\] 1470년(성종 1) 대도호부에서 승격, 1498년(연산군 4) 대도호부로 강등.
[3\] 1470년(성종 1) 부에서 강등, 1498년(연산군 4) 부로 승격.
[4\] 1592년 기점으로 속주로서의 지위 상실.



[ 23부제(1895년) ]

한성부(漢城府)
한성, 고양, 파주, 교하, 적성, 양주, 포천, 영평, 연천, 광주(廣州), 가평
인천부(仁川府)
인천, 부평, 강화, 교동, 김포, 통진, 양천, 시흥, 과천, 안산, 수원, 남양
충주부(忠州府)
충주, 제천, 청풍, 단양, 영춘, 음성, 진천, 괴산, 연풍, 청안, 여주, 이천(利川), 음죽, 용인, 양지, 죽산, 원주, 평창, 정선, 영월
홍주부(洪州府)
홍주, 결성, 예산, 덕산, 대흥, 서산, 해미, 태안, 청양, 정산, 아산, 온양, 신창, 당진, 면천, 보령, 남포, 서천, 비인, 한산, 임천, 홍산
공주부(公州府)
공주, 천안, 목천, 직산, 진위, 평택, 안성, 양성, 회덕, 진잠, 연기, 전의, 은진, 연산, 노성, 부여, 석성, 청주, 문의, 보은, 회인, 옥천, 청산, 영동, 황간, 금산(錦山), 진산
전주부(全州府)
전주, 고산, 익산, 함열, 여산, 용안, 옥구, 임피, 김제, 금구, 만경, 정읍, 고부, 태인, 부안, 고창, 흥덕, 무장, 장성, 영광, 지도
남원부(南原府)
남원, 운봉, 장수, 무주, 진안, 용담, 임실, 순창, 담양, 창평, 곡성, 옥과, 구례, 순천(順天), 광양, 돌산
나주부(羅州府)
나주, 남평, 광주(光州), 능주, 화순, 동복, 낙안, 흥양, 보성, 장흥, 강진, 해남, 영암, 함평, 무안, 진도, 완도
제주부(濟州府)
제주, 정의, 대정
진주부(晉州府)
진주, 산청, 단성, 함양, 안의, 하동, 거창, 사천, 곤양, 남해, 합천, 초계, 삼가, 고성(固城), 의령, 함안, 칠원, 창원, 진해, 웅천, 김해
동래부(東萊府)
동래, 기장, 양산, 거제, 울산, 언양, 경주, 연일, 장기, 흥해
대구부(大邱府)
대구, 현풍, 경산, 하양, 자인, 인동, 칠곡, 선산, 금산(金山), 지례, 개령, 성주, 고령, 청도, 영천(永川), 신녕, 의성, 비안, 군위, 의흥, 밀양, 창녕, 영산
안동부(安東府)
안동, 예안, 청송, 진보, 영양, 청하, 영천(榮川), 순흥, 풍기, 상주, 함창, 문경, 예천, 용궁, 영덕, 영해, 봉화
강릉부(江陵府)
강릉, 울진, 평해, 삼척, 양양, 고성(高城), 간성, 통천, 흡곡
춘천부(春川府)
춘천, 홍천, 낭천, 횡성, 양구, 인제, 철원, 김화, 금성, 평강, 회양, 양근, 지평
개성부(開城府)
개성, 풍덕, 장단, 삭녕, 마전, 이천(伊川), 안협, 금천, 토산, 평산, 수안, 신계, 곡산
해주부(海州府)
해주, 연안, 배천, 옹진, 강령, 장연, 송화, 풍천, 안악, 은률, 장련, 재령, 신천, 문화, 서흥, 봉산
평양부(平壤府)
평양, 삼화, 용강, 강서, 증산, 함종, 중화, 상원, 황주, 강동, 삼등, 성천, 양덕, 안주, 영유, 숙천, 순안, 순천(順川), 은산, 자산, 맹산, 영원, 개천, 덕천, 영변, 운산, 희천
의주부(義州府)
의주, 용천, 선천, 철산, 정주, 곽산, 박천, 가산, 태천, 구성, 삭주, 창성, 벽동
강계부(江界府)
강계, 후창, 자성, 초산, 위원, 장진
함흥부(咸興府)
함흥, 덕원, 정평, 영흥, 고원, 문천, 안변, 단천, 이원, 북청, 홍원
경성부(鏡城府)
경성, 부령, 길주, 명천,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
갑산부(甲山府)
갑산, 삼수


[ 13도제(1896년) ]


경기도
광주(廣州), 개성, 강화, 인천, 수원, 여주, 양주, 장단, 통진, 파주, 이천(利川), 부평, 남양, 풍덕, 포천, 죽산, 양근, 안산, 삭녕, 안성, 고양, 김포, 영평, 마전, 교하, 가평, 용인, 음죽, 진위, 양천, 시흥, 지평, 적성, 과천, 연천, 양지, 양성, 교동
충청북도
충주, 청주, 옥천, 진천, 청풍, 괴산, 보은, 단양, 제천, 회인, 청안, 영춘, 영동, 황간, 청산, 연풍, 음성
충청남도
공주, 홍주, 한산, 서천, 면천, 서산, 덕산, 임천, 홍산, 은진, 태안, 온양, 대흥, 평택, 정산, 청양, 회덕, 진잠, 연산, 노성, 부여, 석성, 비인, 남포, 결성, 보령, 해미, 당진, 신창, 예산, 전의, 연기, 아산, 직산, 천안, 문의, 목천
전라북도
전주, 남원, 고부, 김제, 태인, 여산, 금산(錦山), 익산, 임피, 금구, 함열, 부안, 무주, 순창, 임실, 진안, 진산, 만경, 용안, 고산, 옥구, 정읍, 용담, 운봉, 장수, 구례
전라남도
광주(光州), 나주, 영암, 영광, 순천(順天), 제주, 보성, 흥양, 장흥, 함평, 강진, 해남, 무장, 담양, 능주, 낙안, 무안, 남평, 진도, 흥덕, 장성, 창평, 광양, 동복, 화순, 고창, 옥과, 곡성, 완도, 지도, 돌산, 대정, 정의
경상북도
상주, 경주, 대구, 성주, 의성, 영천(永川), 안동, 예천, 금산(金山), 선산, 청도, 청송, 인동, 영해, 순흥, 칠곡, 풍기, 영덕, 용궁, 하양, 영천(榮川), 봉화, 청하, 진보, 군위, 의흥, 신녕, 연일, 예안, 개령, 문경, 지례, 함창, 영양, 흥해, 경산, 자인, 비안, 현풍, 고령, 장기
경상남도
동래, 진주, 김해, 밀양, 울산, 의령, 창녕, 창원, 거창, 하동, 합천, 함안, 함양, 고성(固城), 양산, 언양, 영산, 기장, 거제, 초계, 곤양, 삼가, 칠원, 진해, 안의, 산청, 단성, 남해, 사천, 웅천
황해도
황주, 안악, 해주, 평산, 봉산, 연안, 곡산, 서흥, 장연, 재령, 수안, 배천, 신천, 금천, 문화, 풍천, 신계, 장련, 송화, 은률, 토산, 옹진, 강령
평안남도
평양, 중화, 용강, 성천, 함종, 삼화, 순천(順川), 상원, 영유, 강서, 안주, 자산, 숙천, 개천, 덕천, 영원, 은산, 양덕, 강동, 맹산, 삼등, 증산, 순안
평안북도
의주, 강계, 정주, 영변, 선천, 초산, 창성, 구성, 용천, 철산, 삭주, 위원, 벽동, 가산, 곽산, 희천, 운산, 박천, 태천, 자성, 후창
강원도
춘천, 원주, 강릉, 회양, 양양, 철원, 이천(伊川), 삼척, 영월, 평해, 통천, 정선, 고성(高城), 간성, 평창, 금성, 울진, 흡곡, 평강, 김화, 낭천, 홍천, 양구, 인제, 횡성, 안협
함경남도
덕원, 함흥, 단천, 영흥, 북청, 안변, 정평, 삼수, 갑산, 장진, 이원, 문천, 고원, 홍원
함경북도
경흥, 길주, 회령, 종성, 경성, 경원, 온성, 부령, 명천, 무산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해주목
海州牧
Haeju-mok


파일:대동여지도 해주목.jpg
파일:1872년 지방지도- 황해도 해주목.jpg
관아 소재지
해주목 해주읍 중동
하위 행정구역
21동 1읍
면적
면적 74.47㎢
인구
6만 3,472명[1]
마지막 해주목사[2]
한형리(韓炯履)[3]

1. 개요
2. 상세
3. 역사
4. 관련 문서


파일:1910년대 해주읍성 전경2.jpg
해주목 읍내 전경
파일:해주도병풍(동아대학교 소장).jpg
해주도병풍에 그려진 해주목과 부임행차 장면


1. 개요[편집]


해주는 수양산 남쪽에 있으며 그 경치가 제법 유람할 만하다. 황해도에서 해주는 문장과 예의, 과거 급제가 으뜸이었다.

택리지


海州牧
황해도의 중심이자 해서에서 가장 큰 고을. 황해도 행정과 군사의 거점이자 중심역할을 하였으며, 남쪽으로는 황해를 끼고 있었던 덕분에 다양한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예로부터 조선시대 황해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을들 중 하나로 꼽혔다. 지금의 황해도 해주시의 대부분 지역이 바로 해주목의 관할이었다.[4]

2. 상세[편집]


파일:해주읍성 전경.png
해주목 관아와 남문 전경

황해도 남쪽의 해주만에 위치하였던 고을이다. 예부터 그 지리적, 환경적 특성 덕분에 고려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 황해도의 계수관이 바로 이곳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세조 즉위 2년인 1456년에 폐지될 때도 황해도의 중심지였다. 계수관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황해감영과 해서의 중심지로 꼽혔다.

이곳 해주목에 파견된 수령은 목사였으며, 황해감영에 파견된 감사와 목사가 한 읍치 내에 같이 있었다.[5] 하지만 이곳 해주목에는 목사를 별개로 파견하지 않고 이곳 황해도 관찰사가 수령을 함께 겸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생겼을 때에는 황해도 해주목 판관을 별도로 선정하였으며, 수령(관찰사)를 보좌하는 역할을 겸하였다. 이곳 해주목에는 황해도(해서) 지역의 군사들을 총괄하는 황해병영의 군영이 읍내에 함깨 존재하였다.

이처럼 조선왕조 500년 동안 황해도 행정과 군사의 거점이자 중심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 황해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을로 꼽혔다. 전략적, 경제적으로도 황해도 일대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풍요로운 재령평야와 연백평야가 있어, 황해도에서 제일가는 양반고을이었다. 또한 남쪽으로는 황해가 위치하고 있으며, 어업이 발달하였다.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지역 중 하나인데, 대표적으로 김구안중근이 바로 이곳 해주목 출신이다. 이처럼 해주목은 독립운동과 그 연관성이 상당히 깊었고, 활발히 일어났던 지역이다.

3. 역사[편집]


본래 고조선의 관할권에 들어왔던 통치 영역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에는 한사군진번군이 설치되었으며, 진번군이 대방군으로 바뀐 이후에도 한사군의 통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백제가 삼국 최초로 이 일대 지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후 남하정책을 펼치던 고구려가 이 지역을 백제와의 전쟁을 통해 병합하면서 이 지역에 내미홀군(內米忽郡)이라는 행정구역을 만들었다.

통일전쟁이 끝난 후이자 신라 경덕왕 재위 7년째 였던 748년, 그 이름을 내미홀군에서 폭지군(瀑池郡)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신라 효공왕이 즉위하고 있을 때였던 905년. 마침내 이 지역은 '해주'라는 이름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통일신라가 멸망하고 나서도 이 지역은 고려 성종이 즉위 2년이었던 983년에 으로 승격되어 부사가 다스리게 되었고, 성종이 즉위한지 15년이 지난 995년에는 절도사가 파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종 즉위 3년째 였던 1012년에 절도사가 해주목에서 폐지되고, 현종 즉위 9년째인 1018년에 마침내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라는 이름으로 그 명칭을 부여받았다.

1122년에 서해안 방위의 중심도시이자 개경을 지키는 수도 방위부로서의 역할로 인하여 마침내 도호부 중에서 가장 군사적 거점에만 지정되던 '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러다가 고려 고종 1247년에 다시 해주목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가 다스리는 '군영'의 소재지로서의 성격까지였으며, 특히 1389년 이후 관찰사영의 소재지가 되어 서해도의 여러 군사적, 행정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조선 건국 2년이 지난 1393년, 황해도 제2의 도시로 꼽혔던 황주와 함께 황해도의 계수관으로 정해졌다.

4.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6 02:11:24에 나무위키 해주목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1789년 『호구총수(戶口摠數)』의 기록을 기준으로 함.[2] 해주군수[3] 1909년 1월 22일승정원일기에서 기록한 마지막 해주군수.[4] 월경지 및 행정구역 이동과 개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5] 이는 8도에 위치한 다른 감영들 또한 마찬가지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