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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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에 등장하는 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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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무렵의 지도. Khitans위에 "Tatabi"가 보인다.
1. 소개
2. 기록
3. 여담
4. 해족이 건국한 국가


1. 소개[편집]


해(奚)는 고막해(庫莫奚)라고도 한다. 랴오허(요하)와 라오허(노합하) 일대에서 동호계 거란 등과 잡거한 종족들로 동호가 그 원류라고 하며, 선비 우문부 또는 흉노의 일파라고 한다.[1] 돌궐 제2제국이 남긴 퀼테긴 비문의 타타비(tataby)를 해족으로 추정한다.

중국 남북조 시대 (특히 북위)에 시라무렌 강(약락수) 남쪽과 라오허 유역에 거주했다. 유목을 했고, 융단 장막에서 머물며 수레를 가지고 군영을 만든 뒤 500명을 두어 지켰다고 한다. 거란과 자주 충돌했고 당나라 고조 이연 때 중국과 교류했다. 당시는 거란보다 해족이 더 강성했다.


2. 기록[편집]


648년에 해족의 추장 가도자(可度者)가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에 항복하니 요락도독부를 설치했다고 한다.

무주측천무후 치세때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자 돌궐 제2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712년 당나라 장수 손검이 12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해족을 습격했지만 당군이 패배했다.

715년에 당나라에서 다시 요락주를 설치하여 해족을 간접 지배했다.

788년 동호계 실위와 함께 당나라의 변방을 습격했으나 군사 60,000명이 격퇴당했다.

830년과 847년에는 해족이 대대적으로 당나라를 침공했으나 대패를 당하고 오히려 털렸다.

9세기 중엽 이후 거란족에 통합당했으나, 추장 거제(去諸)가 일부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에 항복했다. 이로써 동해(東奚 : 친거란파)와 서해(西奚 : 친당파) 두 개로 나뉘었다.

요나라 시기 거란의 부속 민족이 되어 해왕부를 세워 자치를 했다.

요나라 말기 생여진의 금나라가 흥기하여 거란의 통치체제가 흔들리자 1123년 해왕 회리보[2]대해국(大奚國) 신성황제(神聖皇帝)를 자칭했으나 1년 만에 부하들한테 피살되고 멸망했으며, 이후 해족은 금나라 치하에서 동화되어 소멸되었다.


3. 여담[편집]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따르면

"해금은 오랑캐 중 해족이 좋아하는 악기이다. 현도(絃鼗)에서 나온 것으로 모양도 같다."

고 했다. 해금은 나중에 한반도의 고려로 전해졌는데 이후 토착화가 잘 되었는지 당악기가 아니라 향악기로 분류되었다.

요나라 말기~금나라 초기의 격변으로 해족들이 발해 유민들과 함께 고려로 도피한 기록이 존재한다.


4. 해족이 건국한 국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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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란족이 원래 해족의 일원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2] 回離保, 거란명은 소간(蕭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