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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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
海金剛
Haegeumgang


파일:해금강.jpg


해금강

1. 개요
2. 상세
3. 관람
4. 서복이 다녀갔다는 전설


1. 개요[편집]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 이름은 금강산에 있는 '해금강'에서 따온 이름이다.


2. 상세[편집]


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갈도(葛島, 칡섬). 1971년에 대한민국 명승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다. 해금강은 엄밀히 말하면 정식 명칭이라기보단 별명인데, 어원은 그 모습이 바다의 금강산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정식 명칭인 갈도보다는 해금강이라 훨씬 많이 불리고 있다.

한국의 해안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웅장한 경관으로 과거부터 거제시의 대표적인 절경이며 가장 오래된 유명 관광지다.

바람의 언덕신선대에서 해금강으로 이어지는 해금강로 도로변에는 수국종려나무가 있어 수국이 피는 7월 전후로 이곳을 찾으면 이국적인 모습과 이를 사진에 담으려는 인파로 장관을 이룬다.


3. 관람[편집]


해금강은 굉장히 가파른 바위절벽으로 된 섬이라 직접 상륙할 수는 없고 기본적으로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관람한다. 육지에서도 해금강종점, 우제봉전망대 쪽으로 가면 볼 수 있지만, 해금강 사진들의 깎아지는 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모습은 바다 쪽 모습이며, 반대로 육지에서 바라보는 반대편의 모습은 여느 섬처럼 평범하다. 대신 이쪽은 일출 모습으로 인기가 있다.#

아무튼 해금강으로 유명한 바다 쪽 면을 보려면 유람선을 타야 하는데, 해금강은 거제의 대표 관광지인만큼 거제시 여러 포구에서 유람선이 출발한다. 장승포, 지세포, 구조라, 도장포 등에서 유람선을 타고 갈 수 있는데, 지세포나 구조라는 거제 시가지에서 가까운 곳이고, 반면 바람의 언덕 옆인 도장포는 해금강에서 아주 가까운 곳인데 어디서 출발해도 요금은 만몇천원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 도장포 출발이 약간 더 싸고 도장포 출발은 항해거리가 너무 짧아지기 때문인지 남쪽의 다포섬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가는 편수가 많은 듯 하다.

2000년대 이후로 외도가 유명세를 타면서 대부분의 유람선이 해금강과 외도 두 곳을 돌아보는 루트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외도가 주 관람지가 되고 해금강이 선택지가 된 경향이 있다. 단 외도를 안 가고 해금강만 보는 유람선도 편수는 적지만 다니고 있다.

해금강은 섬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섬 중앙에 십자모양으로 갈라진 수로가 있는데 파도가 잔잔한날 작은 유람선이나 보트로 항해할 때 십자동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일반적인 외도+해금강 루트를 달리는 큰 유람선은 이 수로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로 앞까지만 갔다가 돌아나온다. 해금강 안쪽까지 들어갔다 나오고 싶으면 도장포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제트보트를 타는 것이 낫다. 단 제트보트 특성상 안경이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놀이공원 기구마냥 빠르고 거칠기 때문에 스릴은 있지만[1] 해금강의 모습을 느긋하게 사진 찍고 감상하기엔 좀 짧을 수도 있다.


4. 서복이 다녀갔다는 전설[편집]


해금강 절벽에는 진시황의 신하 서복(서불)이 명을 받아 동남동녀와 같이 불로초를 찾으러 동방으로 향했을 때 이곳에 들러 새겼다고 하는, 일종의 인증 문자인 서불과차(徐巿過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글자가 적힌 절벽은 1959년에 역대급으로 강력했던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덮쳤을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즉 지금은 해금강에 가도 이 글씨를 더이상 읽을 수 없고 아주 미미한 흔적만이 남아있으며, 옛날에는 인지도도 낮고 찾아가기도 힘든 위치였기 때문에 이 글씨를 남긴 사진도 없다. 다만 글씨가 있었음을 전하는 기록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경상우병사였던 조익찬(曺益贊)이 1870년대에 지은 시와 1881년에 영의정 이유원이 전하는 기록이 있다.

특히 이유원의 기록은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데 거제에 유배되었을 당시 해금강을 찾아 탁본을 떴고 이 글자가 옛 서법(書法)의 일종인 도해법(倒薤法)과 만세고등(萬歲枯藤)[2] 방식으로 쓰여졌으며 '사람들이 서불 2자는 맞고 과차 2자는 아니라는데, 나는 과차 2자를 보았다'라는 기록과 후에 이 탁본을 들고와서 지은 "갈도석각가(葛島石刻歌, 1881년)"를 남겼다.

서불은 당시 거제의 와현 마을에 머물다 일본으로 건너갔다고도 한다. 서복이 중국에서 동쪽으로 향하며 여기저기에 들렀다는 전설은 다른 곳에도 있으며 남해안 다른 지역과 제주도, 일본에도 전해져 내려온다.##

남해군 금산에도 서불과차로 추정되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다만 "글자"인지, "그림"인지가 불분명하고 글자라고 해도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해 연구 대상이다. 그럼에도 남해군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계곡 입구에 서복상을 세워놨다. 또 서귀포시 정방폭포 절벽에도 서복이 다녀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서귀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추사 김정희가 이를 발견하여 탁본을 떴다고 한다. 서귀포시도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정방폭포 근처에 서복 전시관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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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좁은 해금강 내부 수로에서는 천천히 운행한다.[2] 서예 용어로 만년이 된 마른 등나무와 같이 붓질을 할 때에는(특히 세로획) 힘차고 굳세게 해야 한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