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마헤라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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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지리
3. 역사
4. 자연
5. 경제


1. 개요[편집]





Pulau Halmahera

인도네시아말루쿠 제도에 있는 이다. 말루쿠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며 면적은 17,780km²이다. 북말루쿠주의 주도 소피피(Sofifi)가 중부에 소재한다. 인구는 2010년 기준 449,938명이다. 면적 기준 인도네시아의 섬 가운데 일곱 번째로 크지만[1], 인구 밀도는 낮아 수마트라 인근의 방카섬, 니아스섬이나 소순다 열도플로레스섬, 숨바와섬보다도 인구가 적다. 인구 기준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섬 가운데 15위 정도이다. 옛 이름으로 자일롤로(Jailolo)섬, 질롤로(Jilolo, Gilolo)섬이라고도 부른다.

바로 서쪽에 트르나테섬과 티도레섬이 있다. 이 둘은 할마헤라와 대조적으로 인구 밀도가 높다. 특히 트르나테섬의 도시 트르나테에는 할마헤라섬의 100분의 1 정도인 162km²의 면적에 20만 명 정도(2020)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북쪽에는 모로타이(Morotai)섬, 서남쪽에는 바찬(Bacan) 제도, 남쪽에는 오비(Obi) 제도 등 말루쿠 제도의 다양한 섬들과 접해 있다. 동남쪽의 바다는 할마헤라해(Halmahera Sea)라고 하며, 이를 지나면 바로 뉴기니 서부이다. 오비 제도 아래로 조금 가면 스람섬이 나온다.


2. 지리[편집]


할마헤라섬은 전역이 열대 우림과 산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경지로 개발할 만한 곳이 매우 적다. 활화산도 몇 개 있다. 몇십 년에 한 번꼴로 분화하는 섬의 최고봉 감코노라산(Gunung Gamkonora, 1,560m. 최근 분화는 2007년)이 대표적이다.

도시는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섬 최대 도시는 주도 소피피가 아니라 동북쪽 해안의 토벨로(Tobelo)로, 2020년 기준 인구는 34,150명이다. 섬 주민의 약 80%가 무슬림, 약 20%가 기독교도이다.

술라웨시티모르처럼 할마헤라 역시 복잡하고 다양한 언어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서부, 특히 전통 시대의 자일롤로 술탄국에서는 말루쿠 향료 무역의 공용어 중 하나인 트르나테어가 사용되었지만, 트르나테어 외에도 섬의 여러 지역에서는 여러 서파푸아어족 및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언어가 쓰여 왔다. 대략 남부는 오스트로네시아계 언어, 북부는 서파푸아계 언어 사용권으로 나눌 수 있다. 남부를 중심으로는 동부말레이폴리네시아어군(Eastern Malayo-Polynesian) 하위 남부할마헤라서뉴기니어군(South Halmahera–West New Guinea)의 불리어(Buli), 타바어(Taba), 파타니어(Patani), 가네어(Gane), 마바어(Maba) 등의 토착 언어가 있고, 북부를 중심으로는 서파푸아어족 북부할마헤라어파(North Halmahera)의 갈렐라어(Galela), 토벨로어(Tobelo), 서마키안어(West Makian), 롤로다어(Loloda), 타바루어(Tabaru), 사후어(Sahu), 파구어(Pagu) 등의 토착 언어가 있다. 토벨로어는 상술한 토벨로 지역을 중심으로 할마헤라 동북부에서 넓게 쓰이고, 이보다 북쪽에서는 갈렐라 지역을 중심으로 갈렐라어가 어느 정도 세력이 있다.


3. 역사[편집]


트르나테와 인접한 섬 서부 자일롤로(Jailolo) 지역을 중심으로 13세기 무렵에 토착 왕국이 있었다는 토착 연대기 기록이 있으며 13~15세기 국왕의 계보가 내려오고 있지만, 역사가 어느 정도 사실적 윤곽이 잡히는 것은 15세기 후반 무렵이다. 이 지역은 희귀 향신료 정향이 자랄 수 있는 곳이라 정향이 트르나테 및 티도레와 함께 지역 국가가 어느 정도 향료 무역에 개입할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이 되었다. 15세기에 자일롤로에 이슬람이 전래되었으며,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 자일롤로 국왕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16세기 초 자일롤로의 지배자 술탄 유수프(Sultan Yusuf, 재위 1514 이전~1530)는 향신료를 찾아 지역에 온 포르투갈인들과 접촉하였다. 유수프는 인근 트르나테와 대립하면서 티도레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역에 진입한 포르투갈을 견제하기 위해 스페인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유수프의 어린 아들 피루즈 알라웃딘(Firuz Alauddin, 재위 1530~1536) 재위기에 자일롤로는 포르투갈과의 전쟁에서 패했고, 자일롤로의 소규모 스페인 파견군은 압도적인 포르투갈군을 앞두고 전투를 포기했다. 유수프의 조카 술탄 타르키분(Sultan Tarkibun, Katarabumi, 재위 1536~1552)은 명군으로 자일롤로의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으며, 현지 언어들을 기록하는 독자 문자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것으로 기록된 문서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위협을 느낀 트르나테와 포르투갈은 자일롤로를 침공하여 1551년 3월 오랜 포위 끝에 함락시켰다. 자일롤로는 트르나테의 속국이 되었고, 군주는 전통적인 왕(kolano) 칭호를 사용하지 못하고 공(sangaji)으로만 불리게 되었다. 절망한 늙은 군주 타르키분은 1552년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

17세기 초 자일롤로는 잠시 독립했지만, 1656년 다시 트르나테의 지배하에 놓였고 이는 18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트르나테는 17세기 말부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영향권에 속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자일롤로와 트르나테 치하 다른 할마헤라 지역들 역시 네덜란드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다. 18세기 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지배에 반발하여 티도레의 왕자 누쿠(Nuku)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누쿠의 도움으로 1796년 자일롤로가 잠시 무함마드 아리프 빌라(Muhammad Arif Bila, 재위 1797~1806)를 군주로 하여 명목상 독립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티도레 휘하에 있었다. 그러나 1806년 네덜란드는 티도레를 침공하여 점령하고 복속시켰고, 자일롤로 등지는 다시 명목상 트르나테 치하가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과정에서 네덜란드의 세력이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영국이 진입하여 무함마드 아리프 빌라의 아들인 무함마드 아스가르(Muhammad Asgar, 재위 1806~1811)를 체포하고 서할마헤라 지역을 점령했다.

1817년 네덜란드 세력이 말루쿠로 귀환하자 무함마드 아스가르는 네덜란드 세력에 자일롤로 술탄으로 복위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무함마드 아스가르와 동생 무함마드 하줏딘(Muhammad Hajuddin)을 중심으로 자일롤로 술탄국 부흥 운동이 벌어졌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 뒤로는 자일롤로를 포함한 할마헤라 지역은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지방이 되었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과정과 인도네시아 합중공화국에서는 동인도네시아 자치국에 속했다가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 통합되었다.


4. 자연[편집]


쿠스쿠스, 극락조의 서식지 중 하나이다.


5. 경제[편집]


식량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지만, 18세기까지는 말루쿠 제도에서 인근 트르나테, 티도레 등과 함께 정향의 드문 생산지였다. 오늘날에는 술라웨시 중부·남부와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니켈코발트의 주요 생산지로 떠올랐다. 금광도 일부 개발되어 있다. 그 밖에 섬 주민들은 어업, 임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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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모르섬 바로 다음으로, 인도네시아령인 서티모르만 따지면 할마헤라가 서티모르보다 조금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