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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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鍾建
1902년 12월 8일 ~ 1986년 7월 28일 (향년 83세)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의와 대한민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경찰공무원, 법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우계(愚溪)이다. 창씨명은 니시하라 쇼켄(西原鍾建).
2. 생애[편집]
1902년 12월 8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931번지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해 경기도 경성부 계동(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47-1번지로 이주했다.
경성부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의 공판에 회부되었고, 같은 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미결 구류일수 중 90일 본형에 산입),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곧 출옥했다.
출옥 후 일본으로 유학가 가나자와 제4고등학교와 교토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32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193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 일반공무원 및 경찰공무원 고위직을 지냈다.
8.15 광복 이후부터 미군정 경무부 차장과 1946년부터 1946년 9월 17일까지 제3대 전라북도경찰국장, 경찰부 공안국장, 경무부 차관으로 근무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 함안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후보를 사퇴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남도 함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조경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함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조경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함안군 선거구에 출마해 자유당 조경규 후보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정계 은퇴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과 경시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과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3. 선거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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