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야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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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축구감독


파일:Hans Jakob.jpg

이름
한스 야코프
Hans Jakob
출생
1908년 6월 16일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 뮌헨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바이에른 주기.svg
사망
1994년 3월 24일 (향년 85세)
독일 바이에른뮌헨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SSV 얀 레겐스부르크 (1926~1942)
FC 바이에른 뮌헨 (1942~1946)
1. FC 리흐텐펠스(1946-1947)
SSV 얀 레겐스부르크(1947~1949)
감독
1. FC 파사우 (?-?)
SSV 얀 레겐스부르크 (1959-1960)
국가대표
38경기(독일 / 1930~1939)

1. 개요
2. 생애[1]
2.1. 어린 시절
2.2. 선수 생활
2.3. 감독 생활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수상
4.1. 국가대표
4.2. 주대표
4.3. 개인



1. 개요[편집]


독일의 전 축구인.


2. 생애[2][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뮌헨에서 태어난 야코프는 어린 시절 가족들을 따라 부모의 고향인 레겐스부르크로 이주하였다. 12살때부터 TV 1861 레겐스부르크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필드 플레이어로 시작했지만 팀에서 골키퍼가 모자라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다. 1924년 TV 1861 레겐스부르크의 축구팀이 분리되어 오늘날의 SSV 얀 레겐스부르크가 되었다.


2.2. 선수 생활[편집]



2.2.1. 클럽[편집]


야코프는 18살이던 1926년 1군 무대에 데뷔하였다. 레겐스부르크는 가울리가[3] 시기에 중위권 정도에 위치하던 팀이었고 1935-1937년에는 강등을 당한 적도 있었다. 1937년 이후에 레겐스부르크는 가울리가 바이에른에 머물렀고 야코프는 1942년까지 레겐스부르크에서 1000경기를 뛰었다고 전해진다.

1942년부터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4년, 시즌으로는 3시즌을 보냈으며 1947년에는 리흐텐펠스에서 1년간 머물렀다. 그 이후에 친정팀 레겐스부르크 리저브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1949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하였다.


2.2.2. 국가대표[편집]


1930년, 남부 독일 챔피언십에서의 활약을 지켜본 네르츠가 야코프를 대표팀에 발탁하였다. 야코프의 데뷔전은 1930년 11월의 노르웨이전이었고, 그 이후에는 빌리발트 크레스, 프리츠 부흐로 등과 주전 골키퍼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한 야코프는 주전 자리를 지키던 크레스가 4강전에서 부진한 틈을 타 3,4위전에 출전했고 오스트리아전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주전 자리의 우위는 야코프가 차지하였고 1935년에는 전체 A매치 출장, 1936년 올림픽, 1937년의 브레슬라우 엘프[4] 등 중요한 시합에서 야코프가 독일의 골문을 지켰다.

1938년 월드컵에도 야코프의 이름이 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프랑스에서 볼 수 없었는데 네살배기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

야코프의 마지막 A매치는 1939년의 헝가리전이었고 독일은 1대5로 대패했다. 야코프가 뛴 대표팀 38경기에서 독일이 거둔 성적은 22승 8무 8패였다.


2.3. 감독 생활[편집]


야코프는 은퇴 이후 FC 파사우와 친정팀 SSV 얀 레겐스부르크에서 감독을 맡기도 했다. 특히 레겐스부르크에서는 팀을 1부 리그에 올려놓기도 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용감한 플레이를 즐기던 골키퍼.

레겐스부르크 소속으로 유일한 독일 국가 대표선수이자 클럽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 레겐스부르크 홈구장의 남쪽 스탠드에 그의 이름이 헌정되어 있다.


4. 수상[편집]



4.1. 국가대표[편집]




4.2. 주대표[편집]


  • 아돌프 히틀러 컵 우승 1회: 1933(바이에른)


4.3. 개인[편집]


  • 레겐스부르크 시민 은메달: 1986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나치 독일 시기의 최상위 지역 리그. 여기에서 우승한 팀들에게 독일 축구 챔피언십의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4] 브레슬라우는 현재 폴란드의 도시 이름이고 엘프는 숫자 11을 뜻한다. 중립경기장은 아니고 당시 브레슬라우는 독일 영토였고 제2차 세계 대전때 잃은 영토를 모두 포기해서 지금은 브로츠와프라는 폴란드 도시로 남아있다. 이 시합에서 독일은 덴마크를 8대0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뭉개버렸고 덴마크 대표팀 입장에서는 지금도 대표팀 역사상 최다 점수차 패배를 허용한 불미스러운 기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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