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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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colbgcolor=#00718f><colcolor=#ffffff><width=25%> 감독 ||차상현 ||
|| 코치 ||임동규 · 신보식 · 조두영 · 공태현 ||
|| 스태프 ||박기호 · 장원석 · 오해준 · 김하정 · 김지연 · 이지언 · 이경하 ||
||<-2><bgcolor=#ffffff,#1f2023> ||
|| 아웃사이드 히터 ||10 강소휘
C
· 11 최은지 · 18 권민지 · 19 유서연
VC
||
|| 아포짓 스파이커 ||5 실바 · 17 문지윤 ||
|| 미들 블로커 ||13 정대영 · 15 문명화 · 23 윤결 · 34 한수지 · 54 오세연 ||
|| 세터 ||3 이윤신 · 7 안혜진 파일:부상 아이콘.svg · 9 김지우 · 14 김지원 · 32 톨레나다 ||
|| 리베로 ||4 한다혜 · 8 김민지 · 20 유가람 · 47 한수진 ||
||<-2><bgcolor=#ffffff,#1f2023> 타 V-리그 여자부 구단 명단 ||




한수지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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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지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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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지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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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지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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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GS칼텍스 등번호 6번
우형순
(2005~2006)

한수지
(2006~2007)


하께우
(2007~2008)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등번호 5번
결번

한수지
(2007~2010)


염혜선
(2010~2011)
대전 KGC 인삼공사 등번호 4번
김사니
(2007~2010)

한수지
(2010~2019)


이예솔
(2019~2023)
GS칼텍스 서울 KIXX 등번호 9번
표승주
(2014~2019)

한수지
(2019~2021)


오지영
(2021~2022)
GS칼텍스 서울 KIXX 등번호 1번
이소영
(2012~2021)

한수지
(2021~2022)


김주희
(2022~)

GS칼텍스 서울 KIXX 등번호 34번
결번

한수지
(2022~)










GS칼텍스 서울 KIXX No.34
한수지
Han Soo-Ji

출생
1988년 12월 31일[1] (35세)
전라북도 전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전주동초 - 전주근영중 - 전주근영여고
가족
남편(2017년 6월 결혼)
언니 한은지(1987년생)
여동생 한혜지, 한민지(1997년생), 한주은(1999년생)
포지션
미들 블로커 | 세터
신체
183cm | 77kg | 280mm | O형
프로 입단
2006-07시즌 V-리그 1라운드 1순위 (GS칼텍스)
소속 구단
인천 GS칼텍스 (2006~2007)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07~2010)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2] (2010)
대전 KGC인삼공사 (2010~2019)
GS칼텍스 서울 KIXX (2019~)
응원가
이전: 슈퍼주니어 - Mr. Simple
블락비 - Very Good
현재: Carda - Remedy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GS칼텍스 1기 - 현대건설 시절
2.2. KGC인삼공사 시절
2.3. GS칼텍스 2기
3. 개인 수상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GS칼텍스 서울 KIXX의 미들 블로커. 세터, 아웃사이드 히터, 아포짓 스파이커가 모두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다.[3]

구단 내 최고참 주장으로서 모범이 되는 행동과 상대적으로 약한 GS칼텍스의 센터진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해서 선수단은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많은 존경을 받는다.


2. 선수 경력[편집]


초등학교 4학년 시기에 배구를 시작했다. 언니인 한은지[4]를 따라 같은 길을 가면서 중고등학교 시기부터 이미 장신 세터로 유명세를 탔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맞춰 배유나[5]와 함께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2.1. GS칼텍스 1기 - 현대건설 시절[편집]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 2006-07 시즌에 정지윤의 백업으로 활약해 그 시즌 신인왕을 수상했다.

그러나, 2007년 오프 시즌 첫 FA 당시 이숙자정대영을 영입하면서 강민정과 같이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 보상 선수로 이적하게 된다.

2007-08 시즌에 현대건설의 유니폼을 입고서 이숙자가 떠난 주전 세터를 맡았지만, 소포모어 징크스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토스워크를 보여 줌으로 인해, 첫 경기 이후 겪은 11연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하위로 팀을 추락시켰다. 오죽했으면 연패 기간 중 실업 시절 현대 주전 세터였던 강혜미를 긴급히 인스트럭터로 초빙할 정도였으니.관련 기사

결국 2008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을 목포여상의 세터 염혜선을 지명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후 2008-09 시즌에는 출전 빈도가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도 외국인 선수 활용에서 염혜선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며 2009-10 시즌 황현주 감독의 부임 속에서 당당히 정규 리그 우승을 인도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아니다 싶어서 결국 2010년 여름 FA 시장에서 현대건설이 공격력 보강을 이유로 흥국생명에서 황연주를 영입했고 동 시기 인삼공사의 FA였던 김사니가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면서 보상 선수로 흥국을 거쳐 인삼공사로 이적했다.

즉, 현건-흥국 간 황연주 ↔ 보상금+선수, 흥국-인삼 간 김사니 ↔ 보상금+선수라 실질은 인삼공사가 보상 선수를 현대건설에서 받아간 셈이다. 그리고 입탈망효과 동시 발동


2.2. KGC인삼공사 시절[편집]


파일:external/www.kovo.co.kr/161025%20KGC%20%ED%95%9C%EC%88%98%EC%A7%80%2001.jpg

어찌되었든 언니 한은지가 있던 인삼공사로 이적한 후 10-11 시즌에는 김사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2011-12시즌 세터 코치였던 이성희의 지도를 통해 외국인 선수 몬타뇨와 현건 시절 동료 한유미, 그리고 장소연, 김세영 트윈 센터진에 언니와 같이 인삼공사의 첫 통합 우승을 인도한다. 그리고 FA를 신청해 인삼공사와 재계약하였는데...

통합 우승 이후 여름에 언니인 한은지가 결혼을 이유로 은퇴하는 등 주요 선수들이 다 팀을 떠나고, 오프 시즌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이 발견[6]되며 전반기를 접었고관련 기사, 인삼공사는 차희선 하나로 세터진을 버텼다. 이후 원 포인트 블로커로 합류했다가 발목 부상으로 후반기에 제대로 합류했지만, 20연패와 팀 최하위를 막지 못했다. 연패 탈출 후 기사

13-14 시즌에는 주장 완장을 차면서[7] 초반에 차희선과의 트레이드로 왔지만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이재은과 출전을 분담하면서[8] 주전 세터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센터진이 붕괴되었을 때[9]에는 본인의 하드웨어를 무기로 센터로 출전하면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14-15시즌부터는 그냥 항암 치료 전적으로 받은 동정도 싹 팔아먹는 몰빵 토스로 거하게 욕을 먹고 있다. 그래도 어떤 놈처럼 사고는 안 치니 다행이지만 시즌 후 국가대표로 차출,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이효희의 백업 세터 역할을 수행했다.[10]

2015 - 2016 시즌도 마찬가지. 팀의 성적이 부진하다 보니 세터 입장에선 확실한 득점원인 용병 헤일리에게로 많은 공을 올리게 되고, 이는 상대팀 입장에서 수비하기 편한 상황을 제공하여 팀이 패배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여기에 부정확한 토스까지 더해져 많은 팬들에게 이성희 감독과 더불어 팀 부진의 원흉이라고 까였다. 오히려 이적해 온 김해란의 디그 후 2단 연결 토스가 더 깔끔하다고 비교되는 수모는 덤.

시즌 후 인삼공사에 새로 부임한 서남원 감독이 포지션 파괴를 선언하면서, 비시즌 동안에 센터와 라이트 훈련을 많이 했다고 한다. 백어택을 아주 잘 한다고 2016 청주 코보컵에서는 세터가 아닌 라이트와 센터로 출전하여 포지션 변화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 주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팀을 컵 대회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본인은 대회 MIP를 수상했다. 이에 좋은 반응이 있었는지, 컵 대회를 마치고 센터로 보직 변경했다. 이는 한수지의 커리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GS에 트레이드되었을 때도, 센터로 기용되었기 때문. 이리하여 이다영의 별명 세ㄴ터를 빼앗았다.

2016-2017 V리그에서도 팀의 주전 센터로 출장하고 있다. 세터일 때부터 좋았던 높이를 이용한 블로킹은 포지션 변경 이후 위력이 더해졌고,[11] 속공에 이동공격까지 완벽히 구사하며 웬만한 센터 이상의 기량으로 지난 시즌과 다른 성적을 기록하며 팀에 기여하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 왜 진작 센터로 뛰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섞인 소리가 나올 정도.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토스에 대한 부담감은 줄어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재은이 후위에 있으면 유사 시에 전위세터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2016-17시즌 올스타전에서 세터->센터라는 별명으로 출전했다. 그만큼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을 의미한다.

2017년 6월 17일에 결혼을 했다. 이 날 결혼식에는 인삼공사 매니저 한동민을 포함하여 박세윤(레프트), 김혜원(세터), 박상미(리베로)가 팀을 이뤄서 축하공연을 해주기도 하였다. 이후 이 팀에는 '윤혜미 밴드'라는 별명이 생겼다. 한수지는 성실함과 착한 성품, 남다른 배려심으로 인삼공사 팬들 사이에서는 1등 신부감으로 꼽히기도 했는데, 프로포즈마저 자신이 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곧이어 국가대표에도 센터로 뽑혔다. 결혼식과 대표팀 훈련 기간이 겹쳤는데, 신혼여행을 다음 해로 미루는 등, 국가대표에 대한 적극성과 진정성을 보여 팬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인삼공사와 재계약에 성공했다. 연봉이 무려 3억인데, 연봉킹 양효진 정도는 되어야 받을 만한 거액을 짠돌이 구단으로 소문난 인삼공사가 안겨줬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이 깜짝 놀랐다. 일명 '한삼억' 사건. 한편 한수지를 영입하는데 올인한 현대건설 프런트는 또다른 내부 FA 대상자였던 김세영과는 협상 테이블도 차리지 않았고, 이후 영입에 실패하자 뒤늦게서야 김세영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감정이 상한 김세영은 뒤도 보지 않고 그대로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는 나비효과까지 일어났다. 결과적으로는 한수지와 김세영 모두 놓치게 되자 현대건설 팬들은 그 짠돌이 인삼에게 졌다며 프런트에 극딜을 퍼부을 만큼 파장이 컸고, 한수지의 잔류 소식은 인삼의 통큰 투자와는 별개로 오버페이가 아니냐며 시즌 내내 회자될 정도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그 뒤 한수지가 부진에 빠지자 한삼억은 곧바로 까는 소스가 되고 만다.


2.3. GS칼텍스 2기[편집]


2018-19 시즌 종료 후 5월 28일에 염혜선이영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GS칼텍스 서울 KIXX로 이적하였다. 이로써 12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비록 보상 선수로 입단했지만 지금은 팀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는 인삼공사의 간판 선수인데 전 시즌에 좀 부진했다고 보내버리니 팬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프런트를 까는 중. 반면 GS 팬들은 잉여 자원으로 수준급 센터를 얻어온 것에 환호하고 있다. 이적 후 연봉이 꽤 많이 깎였는데[12], 인삼 시절 한삼억 소리를 들어가며 돈값 못한다는 비난에 대한 부담감이 컸는지 한수지가 많이 양보했다는 GS 관계자의 피셜이 있었다.

GS칼텍스가 워낙 평균 연령이 어린 팀이라서 오자마자 팀 최고참이 되었다.[13] GS칼텍스청평에 어마어마한 시설의 클럽하우스를 신축하면서 본인도 바뀐 숙소에 많이 놀랐던 듯. 이렇게 한수지가 합류하면서 GS칼텍스는 신인왕을 수상한 선수를 다시 3명 보유하게 되었다. (한수지, 이소영, 강소휘)

후달리는 블로킹 높이 탓에 GS의 센터진은 리그 최약체로 평가받았으나 206cm에 달하는 리그 최장신의 러츠, 방탄유리 김유리와 함께 철벽 블로킹 라인을 구축하여 약점을 완전히 메꿨다. 팀이 워낙 센터속공을 안 쓰니 블로킹 원툴이라고 투덜대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실 블로킹 하나만으로도 매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빛수지, (한수지 영입은) 신의한수지 등등의 별명이 붙으며 날이 갈수록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2020-21시즌 연봉 협상에서 다시 3억으로 복귀했다. 샐러리캡이 23억으로 상승한 것도 있고 시즌 후 FA이기 때문에 혹시나 이적해도 GS가 보상금을 많이 타먹을 요량.

20-21시즌 2라운드 기준 무려 양효진을 제치고(!) 블로킹 기록 1위를 수성하고 있다. 하지만 3라운드 도로공사전부터 발목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나오지 않다가 결국 4라운드 인삼공사전을 앞두고 발목 수술을 받게 되어 시즌 아웃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차상현 감독이 인터뷰에서 무리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고 6R 인삼공사전부터 벤치에 합류하면서 일말의 챔피언결정전 출장 가능성을 남겼으며 자신도 챔결에서 1분이라도 뛰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 교체로 출전하여 블로킹 1득점과 서브 1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아웃되어 숙소를 잠시 떠나 있던 와중에도 꾸준히 몸을 유지했고 의사가 아직 전력으로 점프는 무리라고 말했으나 통증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차상현 감독에게 타진. 교체선수로 코트 위로 나서 브루나를 단독 블로킹해버리고 서브에이스를 올리는 등 팀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었다. 세터로는 2번 챔결에 나선 적이 있으나, 센터 포지션으로는 첫 챔피언결정전 출장이었다.

3차전에서 김연경이 미쳐 날뛰며 3, 4세트를 연이어 참패한 가운데 5세트에 코트에 나서서 블로킹 득점을 올리면서 코트 위의 GS 선수들이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유서연과 이소영의 활약에 힘입어 5세트는 큰 점수차로 승리. 본인으로서는 9년 만의 우승을 달성했다. 최고참으로서 상징성만이 아니라 실력으로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며 우승을 견인했다.

시즌 후 FA가 되었다. 부상으로 시즌의 반을 날려먹었지만 연봉 삭감 없이 3억에 재계약을 하며 GS에 잔류하였다. 그리고 2021-22 시즌에는 이소영이 인삼공사로 떠나며 자연스럽게 비게 된 주장 직책을 맡게 되었다. 등번호도 KOVO컵까지 9번이었지만 이후 이소영의 보상 선수로 온 오지영에게 9번을 양보하면서 1번으로 바꿨다.

2021-22시즌 초반에는 GS의 센터진 중에서 홀로 잘 버텨주고 있다. 김유리가 부진하고 문명화가 부상을 입어 결장하는 가운데, 센터알바 중인 권민지와 함께 활약하고 있다. GS의 2013-14시즌 우승 이후 찾아온 갑작스런 암흑기는 정대영의 이탈의 영향이 컸었던 것을 감안하면 베테랑 한수지가 버텨주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선수들 전원에게 요거트를 사주는 모습이 인스타에 올라올 정도로 따뜻한 주장이다.

2021년 11월 30일 2R 인삼공사전 1세트 12-10 상황에서 이소영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잡아내며 개인 통산 블로킹 600득점을 달성했다.[14] (역대 7호) # 3세트에서는 15-8 상황에서 발디그를 성공시키며 실점을 막았고 결국 강소휘의 득점으로 연결되었다. #

2021년 12월 8일 3R 페퍼저축은행전에서 결정적인 블로킹과 좋은 이단 연결 등 GS가 흔들릴 때마다 주장으로써 잘 잡아주는 모습을 보이며 이날의 팡팡 플레이어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GS 선수들의 시그니처인 MVP 물 세례를 피해서 빛의 속도로 도주하였다.

2022-23 시즌부터 34번을 단다. 본인의 학창 시절 번호와 남편의 농구 동호회 번호를 하나씩 땄다고 한다. 1번을 배구 입문 때부터 달았다던 김주희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박은진의 부상으로 인해 대체선수로 소집, 2022 FIVB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게 되었다. 출전 선수들 중 유일하게 80년대생.

2022-23 시즌 6라운드 초반까지 세트 평균 0.82개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리그 1위를 기록했다. 결국 시즌 종료 결과 혼자 블로킹 0.8개를 넘기며 생애 첫 블로퀸을 확정지었다.


3. 개인 수상[편집]


  • 2005 아시아유스선수권대회 세터상 #
  • 2006-07 HILLSTATE V-리그 신인선수상
  • 2009-10 NH농협 V-리그 세터상
  • 2011-12 NH농협 V-리그 스파이크서브퀸 (86km/h)
  • 2016 청주 KOVO컵 MIP


4. 여담[편집]


  • 전 대통령과 꽤나 닮아서 한명박, 가카라는 별명이 있다. 덕분에 경기 때 중계라도 달리면 4대강 서브, 4대강 속공, 블로킹은 명박산성 등 관련 드립이 빵빵 터진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못 하면 바로 구속 또는 재수감 시키라고 까인다(…). 본인이 아주 싫어하는 별명이 하나 있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의 별명으로는 언니인 한은지에게서 물려받은 한장군, 2016-2017 시즌 포지션 변경 이후 새 포지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주며 놀라운 활약을 펼쳐 불리게 된 배구 천재 등이 있다.

  • 2022 코보컵 기준으로 포지션명이 변경되었는데, 센터에서 미들 블로커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하필 미들 블로커의 약자가 Middle Blocker, 약자로 MB(...)[15]라 포지션명과 함께 한수지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기분이 묘해질수 있다.

  • 2010년에 한수지가 겪은 연쇄 이적과 비슷한 경우가 이후 프로 야구판에서 벌어졌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다음 해에 엇비슷한데 현실이 된 경우[16]5년 후 비슷한데 현실이 되지 않은 경우[17]로 재현되었다.

  • 2017년 드래프트에서 한수지의 11살 어린 막내동생 한주은[18][19]이 KGC인삼공사에 4라운드에 지명이 되며 3자매 드래프트 지명이라는 진기록을 만들어냈다. 이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기록이기도 한데, 이전에 형제, 자매, 남매 2명이 같은 종목이든 다른 종목이든 프로스포츠에서 지명되는 사례는 자주 있었으나 형제, 자매, 남매가 3명인 경우는 이 사례가 최초다. 덤으로 언니 한은지와도 같은 팀에서 뛴 적이 있으니 세 자매가 동시는 아니지만 같은 팀에서 뛰게 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냈다.

  • 은근히 우승 운이 없다. GS에서 현대건설로 이적한 해에 GS가 우승, 현대건설에서 흥국생명을 거쳐 인삼공사로 이적한 해에 현대가 우승을 하며 1년 차이로 우승을 2번이나 놓쳤다(…). 그래도 KGC 시절 몬타신의 활약으로 우승을 해본 적이 있어서 무관은 아니었으며, 그리고 2020-21 시즌에는 친정팀 GS에서도 우승을 하면서 이젠 우승 운이 없다고 하기는 힘들어졌다.

  • 팬 서비스가 전반적으로 좋은 GS칼텍스 선수들 중에서도 엄청 좋은 편이다. 주장으로서 솔선수범 함은 물론이고 다른 선수들까지 적극적으로 팬 서비스에 가담시키도 한다. 2022년 4월 15일에 열린 우리끼리 봄배구(팬미팅) 행사 때 팬이 사진 찍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근처에 있는 후배 선수들까지 사진에 다 나오게 찍기도 하였고, 노모와 함께 온 팬에게는 본인이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져지 상의를 선물로 줬다.

  • 유독 등번호를 많이 바꾼 선수다. 프로 입단 직후 GS칼텍스에서는 6번을 달았으나 현대건설로 이적 후 남은 배번인 5번으로 바꾸었다. 인삼공사로 이적 후엔 다시 남은 배번인 4번으로 바꾸었다. 인삼공사에서 뛴 10년간은 같은 번호를 유지했으나 GS칼텍스로 이적 후엔 한다혜가 사용중이었기에 9번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9번으로 2시즌을 뛰었으나 9번이 시그니처와도 같은 오지영이 GS칼텍스로 이적하자 번호를 양보하고 1번을 단다. 그러나 다시 한 시즌만에 배구 입문부터 1번을 달아온 신인 김주희에게 번호를 양보하고 34번으로 배번을 변경한다. 34번은 학창시절 달던 본인의 배번(3)과 남편이 사회인 농구클럽에서 사용하는 배번(4)을 합친 숫자라고 한다.

  • 어떤 팬으로부터 첫 번째 우승을 했다고 눈물을 흘렸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와~ 이제는 눈물도 흘리지 않네. ㅋㅋㅋ라며 달리자, 우승하면 눈물을 흘리겠습니다.라며 답변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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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단 프로필상 생일은 1989년 2월 1일.[2] 황연주의 보상 선수로 이적 후 곧바로 김사니의 보상 선수 이적. 그래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뛴 적은 없다.[3] 그래서 2017-18 시즌 올스타전에서 리베로 빼고 다 함이라는 저지 닉네임으로 출전을 했다.[4]대전 KGC인삼공사 라이트[5] 고등학생 시절 배유나는 선배인 김연경을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던 사기 공격수였다. 근데 2007년 GS칼텍스 입단 후 구단 성적을 이유로 부업이었던 센터와 날개를 왔다갔다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존재가 된 게 문제지만.[6] 오죽했으면 복귀 이후 같은 처지였던 최태웅이 물어 볼 정도였다.(자신의 롤 모델이기도 했다. 최태웅도 림프암과 싸우면서 훈련과 경기를 뛰었다.)[7] 사실 부주장이었다. 주장은 임명옥이었는데 리베로라 주장 표식(등번호 밑의 작대기)을 달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서 작대기는 본인이 달게 됨. 이후 2017-18시즌 도중에 이재은으로부터 주장직을 물려받았다. 2016-17시즌에 센터로 포지션 변경을 한 이후에 한 시즌만에 정식으로 주장이 된 셈.[8] 이재은이 리그 전 국가대표 차출로 인해 인삼공사 선수들과 맞출 시간이 없었다.[9] 2013 안산 우리카드배 KOVO컵부터 센터로도 뛰었다. 원체 센터진이 부실했던 인삼공사 입장에서는 높이라도 높이려는 고육책. 당시 선수가 9명에 불과했으니... 이후 13-14시즌에서는 이재은의 선발 출전시 선발 센터로 나오기도 했다.[10] 그 역할을 해야 할 이다영이 허리 부상으로 차출 불가인 상황이었다.[11] 양효진에 이은 리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4라운드에 막 접어든 현재 그 수치는 무려 세트당 0.89. 성공 개수만을 따지면 56개로 53개인 양효진에 3개 앞서고 있다.[12] 한 기사에 의하면 2억원 선까지 깎였다고 한다.[13] 한수지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90년대 ~ 00년대생이며 거기에 주축 대부분이 95년생 이후 출생 선수들이다. 아기 용병이라 불리던 94년생 이소영이 한수지가 입단했을 때 기준으로 셋째일 정도니 말 다했다. 킥스온에어에서는 이를 착안해 민트보스라고 불린다.[14] 2라운드가 종료된 현재 블로킹 부문 5위를 기록하고 있다.[15]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별명 중 가장 유명한 별명이다.[16] 임경완의 보상 픽으로 데려온 이후, 당시 MLB 진출을 타진했다가 돌아온 정대현의 영입으로 인해 원래 소속 팀인 SK 와이번스로 복귀했다. 보상 선수로 들어왔어도 해당 선수를 보호 선수 명단에서 고려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봉이 롯데 기준으로 잡아놔 많이 받은 게 위안거리?[17] 다만, 이 때 롯데 구단에서 보호 선수 명단을 보상 선수 공시일 직전에 히어로즈 구단에 넘겼기 때문에 없던 일이 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 선수는 또 다시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넥센 히어로즈로 갈 뻔했다. KBO에서 보호 선수 명단을 넘긴 시점에서 롯데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를 보상 선수로 지명하라는 유권 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도 간단하게 공시 직전 팀 소속으로 인정되어 보호됐기 때문이다. 4년 전의 반면교사가 약이 된 격. 롯데망국생명과 동급 취급받는 건 수모긴 하다 그래도 선수들이 최소한 술 문제 빼면 해서는 안 될 행동은 안 하거든[18] 한수지는 5자매 중에 둘째다. 즉 큰언니가 한은지. 그 밑으로 동생 셋이 모두 배구를 했거나 하고 있다. 그야말로 배구가족.[19] 한 시즌 뛴 후 팀을 나갔으며, 현재 목포과학대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