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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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annna.jpg
본명
류숙진
출생
1981년 6월 13일
서울특별시
사망
2014년 1월 13일 (향년 32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신체
169cm, 50kg
학력
서울미술고등학교 (졸업)
데뷔
2004년 'Bounce'

1. 개요
2. 상세
3. 사망






Bounce MV
Bounce 라이브

데뷔곡 'Bounce'


1. 개요[편집]


2000년대 초중반에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솔로 여가수.


2. 상세[편집]


예명이었던 '한나'는 성경 인물의 이름을 딴 것으로 어머니에 의해 지어져 본명 외에 어릴 때부터 집에서 부르던 또 다른 이름이다. 워낙 익숙한 탓에 식구들이 본명을 착각할 정도라고 밝혔었다.

유치원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녀 고등학교까지 서울 미술고등학교를 다닐 만큼 미술에 대한 재능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가수의 꿈 역시 오래도록 품은 것이었으며 가수의 길을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대학을 포기했다. 이런 저런 오디션을 거치다 음반 제작 사칭 사기까지 당한 전력이 있는 그녀는 여섯 번째로 시도한 JYP 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을 통해 발탁, 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한나는 박진영 사단에서의 연습생 생활을 4년간 거치게 된다. 그 동안 박진영과 박지윤의 백업 댄서로 활동했던 것을 비롯해 데뷔전 태사자박준석과 함께 '같이 들을까?'라는 대사로 큰 인기몰이를 했던 SK SKY 뮤직폰 CF에 출연했으며, 젝스키스 출신의 강성훈의 뮤직비디오에 여주인공으로 참여하고 같은 소속가수 의 정규 2집 후속곡 '내가 유명해지니 좋니?'의 피쳐링까지 맡았었다.

결국 2004년 여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했다. 강렬한 힙합 비트가 돋보이는 걸스힙합 컨셉의 정규 1집 앨범 타이틀곡 'Bounce'는 프로듀서 JYP의 전두지휘 아래 히트 작곡가 방시혁이 작곡했으며, 안무는 '스위치'의 단장이었던 철이와 미애 출신 미애(본명 김미애)가 담당했다. Bounce의 랩 피쳐링으로 미료[1]가 참여하였고 방송 활동에는 미애가 립싱크로 출연했다.[2]

원래 2003년 8월에 발매하려던 첫 앨범은 같은 소속사인 비의 앨범 히트로 인한 후속 앨범 제작에 맞물려 시기가 무기한 연기 된다. 이미 만들어 둔 곡들과 새로 작업 한 곡들을 포함해서 나온 첫 앨범 <First Collection: Bounce>의 발매 시기는 딱 1년 뒤인 2004년이었다.

정규 1집 앨범은 박진영과 방시혁[3]의 지휘 아래 기존 박진영 사단의 스타일에 한나만의 분위기를 얹는다. 힙합과 일렉트로니카의 조화를 포인트로 삼았다. 이에 걸맞는 캐스커, 가재발, 김도훈 등 각 장르 분야별 전문가의 참여가 눈에 띈다. 간혹 타이틀곡 Bounce를 표절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는데, 정규 앨범 아웃케이스 트랙리스트 부분에 Bounce의 샘플링 원곡자 Jermanie Dupri 등 네 명의 외국인 이름과 EMI Korea의 퍼블리싱을 받았다는 부분을 표기해뒀다.



그러나 이듬해 내놨던 같은 소속의 후배 임정희와는 달리 푸쉬가 다소 약했다. 항상 JYP가 그러하듯 이중 레이블로 분산시켜 한나를 활동시킨 것이다. M-Style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서 매니지먼트를 했는데, 이는 추후 JYP에서 제작한 데뷔 초의 미쓰에이백아연의 매니지먼트를 AQ 엔터테인먼트[4]가, 2AM의 매니지먼트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했던 것과 같다. 그래서 한나가 JYP 소속의 가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한나의 정규 앨범의 크레딧과 Thanks To.을 보면 친오빠 같은 방시혁, 어릴적부터 정신적 지주라는 박진영, 거기에 제일 도움을 많이 준 홍승성 이사의 언급이 나오는데, 이는 나중에 큐브 엔터테인먼트의 대표가 되는 홍승성이다.

하지만 당시 2000년대 초반에는 한나가 내세운 미국의 팝 댄스 느낌보단 역시 클럽스타일의 뽕끼 댄스곡이 대세였다. 게다가 이 당시 나왔던 섹시컨셉 여가수들은 전부 '이효리 짝퉁' 취급을 면치 못했기에(...) 이렇다할 반응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정규앨범 수록곡 '자꾸 생각나', '뭐가 미안해', '유혹의 기술' 등이 호평을 받았지만 데뷔전에 주목받은 기대만큼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결국 한나는 정규 앨범 한 장을 끝으로 JYP와 계약 해지를 하게 됐다.

앨범 땡스투에는 , 임정희, 원투 등 JYP 소속 가수 외에도 '크레센도'라는 친목 모임을 통해 가수 환희, , 거미, 버블시스터즈의 영지, 빅마마의 이영현과 친분이 있던 것으로 적혀있다.

이후 2년간의 공백끝에 새로운 소속사인 아이디플러스(ID PLUS)와 계약하며 2006년 여름, 한태수가 작곡한 댄스곡 Luxury를 발매하며 두번째 활동을 이어갔다. Luxury는 오리지널, 클럽, 소울, 하우스, 싱글(MV Ver.) 등 무려 5가지 버전을 선보였다.






Luxury MV
Luxury 라이브

이 소속사는 J's 소속[5]이었다가 1집 이후 계약해지됐던 유니[6]를 데려와 호러 섹시 뮤직비디오로 짭짤한 재미를 봤던 회사였다. 다만 유니는 악플이라는 큰 고통에 시달려야 했지만 이에 한나 역시 호러 섹시컨셉 2탄격으로 갸루 화장을 한 일본 여자귀신(?)으로 등장한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며 당시 유행이던 모바일 섹시 화보 촬영까지 했으나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1탄만한 2탄은 없다...는 걸 증명한 셈. 후속곡으로는 '나의 눈에 기억이'라는 발라드곡으로 짤막하게 활동했다.

이후 다음해인 2007년 1월, 같은 소속가수 유니의 자살 문제로 소속사는 공중분해 되었고, 한나 역시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됐다. 관련 기사 이후 작곡가 방시혁과 DJ 가재발의 프로젝트 그룹인 바나나걸의 3집 객원보컬로도 참여했고, 또 몇 년 후 S♯ARP 출신의 서지영, 김우주 등이 소속된 기획사 초콜렛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고 디지털 싱글을 냈으며 '한지서'로 예명을 바꾼 뒤 배우로 전향해 2011년 영화 '돈가방'과 2012년 단편 영화 '까만 크레파스'에 주연으로 출연 후 소식이 뜸해졌었다.


3. 사망[편집]


2014년 10월, 그녀의 비보가 뒤늦게 언론에 전해졌다.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고인의 어머니가 발견했다.

실제로는 1월 13일에 생을 마감했으나 지인들과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아 모르고 있다가 9달이 지나고나서야 비로소 유족을 통해 뒤늦게 지인들에게 비보가 알려졌다고 한다. 한나는 죽음 직전까지 공황장애를 앓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자신의 힘든 사정을 지인과 동료에게 전혀 털어놓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전 소속사였던 JYP 역시 기사를 보고 나서야 사망 사실을 알았다며 비통함을 전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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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멤버 미료 맞다. 당시 브아걸 데뷔전이었으며 허니패밀리 탈퇴 이후 참여했다.[2] 한나의 MBC 음악캠프 데뷔 무대에서 미료가 랩을 라이브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으나, 이후는 당시 안무팀의 단장이었던 미애가 전부 립싱크로 출연했다.[3] 특히 가재발이 작곡한 1번 트랙(Intro)와 작사만 참여한 6번 트랙을 제외한 정규앨범의 전곡이 방시혁의 곡이다.[4] 같은 이름을 썼던 라이언전의 A team 엔터와는 다른 회사이다.[5] 당시 럼블피쉬, 심은진(베이비복스 출신)이 몸담았던 소속사[6] 실제로 이 문단을 읽다보면 유니와 한나는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