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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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원원장 · 사법원원장 · 감찰원원장 · 고시원원장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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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대 가오슝시장

중화민국 제11계 입법원장
한궈위
韓國瑜(한국유)[1] | Daniel Han Kuo-yu


출생
1957년 6월 17일 (66세)
중화민국 타이완성 타이베이현 중허향
(현 중화민국 신베이시 중허구)
학력
육군군관학교 (40기 / 학사)
둥우대학 (영문학 / 학사)
국립정치대학 (법학 / 석사)
재임기간
제25대 가오슝시장
2018년 12월 25일 ~ 2020년 6월 12일
제11계 입법원장
2024년 2월 1일 ~ 현직
소속 정당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2, 3, 4, 11
경력
제12대 타이베이현의회 의원(1990~1993)
제2~4대 입법위원(1993~2001)
타이베이농산물도매공사 총경리(2013~2017)
가오슝시장(2018~2020)
입법원장(2024~)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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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초기 정치 활동
2.4. 가오슝시장(2018~2020)
2.6. 총통 선거 이후
2.7. 가오슝 시장 파면
2.11. 2024년: 입법원장 선출
2.11.1. 11계 입법원장 재임
3. 지지층
4. 논란
5. 기타
6. 선거 이력



1. 개요[편집]


대만정치인, 현 제11계 입법원장(국회의장). 중국국민당 소속으로 뚜렷한 친중 성향의 정치인이다.

국민당 소속 지방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3선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이후 15년여 동안 정계를 떠나 있다가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진보당의 텃밭인 남부 가오슝직할시 시장 선거에 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며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당선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돌풍을 일으킨 결과 다가오는 제15대 총통 선거국민당 대권 잠룡으로 한순간에 떠올랐으며, 기세를 몰아 실제로 출마해 국민당 후보로 지명되면서 총통 선거에 임했다. 그러나 재선에 도전하는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 총통에게 패해 낙선한 뒤 "시장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총통 선거에 정신이 팔려 시정을 돌보는 데 소홀했다"는 역풍까지 맞아 가오슝 시민들의 주민소환투표로 파면되어 불명예 퇴진의 오명을 쓰고 말았다. 야인 생활 15년여 만에 복귀한 정치권에서 단 3년여 만에 돌풍의 아이콘에서 몰락의 아이콘으로 롤러코스터 같이 순식간에 떴다가 져버린 인물이 된 셈.

가오슝 시장직에서 파면된 이후 다시 3년여 동안 가끔씩 언론에 얼굴을 비추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동정 없이 야인으로 지내다, 2024년 1월 제16대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제11대 입법위원 선거국민당 비례대표 위원 후보 1번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로써 2002년 총선에서 낙선한 지 무려 22년 만에 4선 입법위원이 되어 입법원(국회)으로 복귀했다. 제11대 입법원이 개원하는 2024년 2월 1일 입법원장(국회의장) 선출 투표에서 국민당 후보로 나섰고, 두 차례에 걸친 투표 끝에 민진당 유시쿤 후보를 꺾고 제11계 입법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시장 파면 뒤 국가 의전서열 3위[2]에 오르며 성공적으로 정계에 복귀하게 되었으며, 입법부 수장으로서 향후 총통으로 취임할 친미·반중 독립 지향의 라이칭더 당선인과 치열한 상호 견제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2. 생애[편집]


한궈위의 어린시절 부터 가오슝 시장 당선 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2019년의 다큐멘터리[3]

2.1. 어린 시절[편집]


군인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 한지화(韓濟華, hán jìhuá 1920-2003)는 허난성 출신으로, 황포군관학교 17기생으로 오랫동안 국민혁명군에서 복무했고, 2차대전에는 인도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이후 중국 공산당과 싸우다가 대륙이 공산당에 넘어가자 대만으로 왔다고 한다. 이런 군인 아버지로부터 6남으로 태어났다.

18세에 중화민국 육군사관학교에 40기로 입학했다. 상위(한국 계급으로는 대위)까지 이르렀으나 장기복무를 신청하지 않고, 전역 1년 전에 동오대학 영문학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1986년 전역한 후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4]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지도교수는 마잉주 총통 시절 국가안전회의 비서장을 역임하는 등 중국과의 양안대화, 협력을 강조하는 대표적 인사인 쑤치였다. 당시 그가 쓴 학위논문은 대륙의 일국양제중화민국 헌법에 위배되며, 대륙의 통일전선 공세를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대학 강사, 중국시보 기자 등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2.2. 초기 정치 활동[편집]


1990년 타이베이현 지방의회 의원(도의회 의원격)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93년에 타이베이현, 지금의 신베이시에서 입법위원(=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같은 지역구에서 3선으로 활동했다.

1993년 5월 5일, 입법원 국방위원회에서 퇴직 연금 예산에 관해 심의하던 중 민진당 천수이볜 입법위원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의 뺨을 후려갈긴 뒤 테이블을 뒤엎고 다시 머리를 가격하는 등 신체적 폭행을 가했다. 천수이볜은 이로 인해 3일을 입원했으며, 이 사건의 가해자로 민진당으로부터 거센 비판과 함께 사과 요구를 받게 되었다. 결국 스밍더의 중재로 사과했다.#

1994년 입법위원 재임 당시 국민소환제에 따라 파면될 위기에 놓였으나, 과반수 투표, 과반수 찬성[5]에 도달하지 못하고 21%의 투표율로 개표하지도 못하고 각하되었다.#

2002년 낙선하여 입법위원 생활을 마쳤으니, 무려 10년이 넘도록 정계를 떠나있었던 셈. 이후 이런저런 임명직을 거치다가, 2012년부터 5년 동안은 타이베이시 산하의 농산물 도매공사(臺北農產運銷股份有限公司)에서 총경리(대표이사격)로 재직했다. 그 전 대표이사가 대만 독립파 우인닝(吳音寧)이었는데 농산물 유통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이사장 직에서 파면되었다. 이후 한궈위는 중국으로의 농산물 유통을 활발히 하여 賣菜郎[6]이라는 이미지를 쌓게 되고 2018년 지방선거의 발판이 된다.

2.3. 2018년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편집]


2017년 중국 국민당 주석 경선에 출마했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6명의 후보 중 4위로 낙선했다.[7]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1년 후 당의 구세주가 될거라고는 아무도 몰랐겠지 이후 국민당 지도부에서는 한궈위를 연고도 없는 가오슝의 지역위원장에 임명했다.

가오슝은 메이리다오 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민주진보당의 아성이다. 1994년 지방선거 당시 우둔이가 가오슝시장에 당선된 적은 있지만 우둔이도 본성인 출신이었고, 또한 리덩후이 총통이 집권하면서 민진당이 주장한 정책 상당수를 받아들이던 때라 국민당과 민진당의 스탠스 차이가 큰 시절도 아니었다. 아예 외성인인 한궈위를 가오슝으로 보낸 것은 한국에 비유하자면 국민의힘에서 경기도 지역구 국회의원하던 사람을 광주광역시로 보낸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당에서조차 그를 '버리는 카드' 취급했다는 의미.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가오슝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연히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전임 가오슝시장이자 민진당의 중진인 천쥐 총통부 비서장의 측근이며 민주진보당의 차세대 주자인 천치마이 후보에게 25%p차이로 밀렸다. 그러나 한궈위는 절망하지 않고 선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애썼다. 대만의 전통적인 정치 이슈양안관계 대신 가오슝 시내 경제정책, 네거티브 없는 포지티브 선거, 그리고 대머리도 당당하다! 사회에서 차별받는 대머리들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고 자랑하자!와 같은 캠페인으로 선거 분위기를 쇄신한다.

이에 반해 민진당 천치마이 후보는 선거 초반 양안관계 논쟁에 함몰되며 이슈를 선점하는 데 실패했다. 이 때문에 한궈위 후보의 유세에는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한궈위는 그 다음으로 교통문제를 건드렸다. 가오슝 첩운 계획이 계속해서 티스푼 공사에 휩싸이자 빠른 시간 내에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8] 타이베이에서 농산물 도매공사 대표로 활동했던 'CEO 이미지'를 앞세워 지역 경제 활성화를 내세운 것도 효과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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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이내로 좁혀진다. 25%p 차이나던 선거가 백중세로 돌변한 것. 선거 양상이 급변하자 대만 언론들에서는 한궈위 후보의 선전을 한류와 한궈위의 성을 따와 한류(韓流)라고 불렀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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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4일 2018년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 개표 결과, 10%p가 넘는 격차로 대승을 거둔다. 개표 초반에는 엎치락뒤치락 했으나, 개표율 50%쯤 될 때부터 구산구, 다랴오구 등 외곽 교통소외 지역의 개표가 시작되자 몰표가 나오면서 격차가 확 벌어졌다. 1994년 우둔이 이후 24년만에 당선된 중국 국민당 소속 가오슝 시장이자,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로 사상 첫 외성인 가오슝시장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그동안 가오슝에서 지속되어 온 외성인 금기의 벽까지 무너뜨린 셈.

그의 당선에 관한 중앙일보 기사 참조.

2.4. 가오슝시장(2018~2020)[편집]


선거 기간 동안에 양안관계 관련 논쟁과 최대한 거리를 두었지만, 당선 직후 92공식이 자신의 대중국관이라고 밝혔다. 이거야 국민당 소속, 그것도 외성인 출신이니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사실 지지자들의 반응도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정도.[10]

11월 28일, 시장 당선인 자격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였고, 여기저기에서 "한궈위 화이팅!(韓國瑜 加油!) 을 외치는 응원 소리가 들리는 등,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시민들과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커원저 시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기자들에게 "대만의 발전을 위해 커원저 시장과 협력하기로 했다. 우리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당선 직후 2004년에 신호 위반으로 사고를 일으켜서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궈위는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고, 네티즌들은 오래전 일을 왜 꺼내냐면서 오히려 언론사를 비판했다.

한궈위의 공약으로는 사랑의 대관람차, 타이핑다오 석유 발굴, 디즈니랜드 유치, F1 그랑프리 유치, 와세다대학 유치, 임달화 가오슝 홍보대사 위촉 등이 있었으나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관련 업체와 협의하지도 않고 공약을 남발한 것이다.#

거기다 시정도 개판으로 했다. 출근을 오후 느즈막히 하거나 아예 안 하는 경우가 많았고 가오슝시의회에서 국민당 의원들을 제외한 의원들의 견제를 받지 않고 선거 구호 "가오슝이여 부자가 되어라."라고 일관하곤 했다. 이에 답답해서 시대역량황지에 의원이 고개를 젖혔는데 눈이 뒤집어져서 백안여신(白眼女神)으로 화제가 되었다. #

2020 총통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몇년 전만 해도 나는 과일 장수에 불과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11] "아직 그런것은 생각을 해 본적 없으며, 일단은 가오슝시장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 라는 답변을 했다.

파일:hanchu.jpg
2019년 3월, 지난 총통 선거의 국민당 후보였던 주리룬 전 신베이시장과 회동했다.

일단 시장 직무에 전념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지만, 국민당 지도부는 그가 당내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참가하기를 바라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있다. 결과는 둘째치고, 최소한 경선 참가를 해서 당내 경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이고, 총통선거 과정의 정국 주도권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3월말 류제이(劉結一)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과 만나 92공식 지지 의사를 다시금 밝혔다.# 홍콩, 마카오, 선전, 샤먼을 방문하여 경제경협을 추진하고 있다.

4월에는 미국을 방문해 하버드 대학교 강연에서 차이잉원의 대중정책에 비판했다.# 현지 화교 모임에서는 "2020년 1월 11일(대만 차기 총통선거 날짜)에 만나자"고 말해 향후 행보에 관한 여운을 남겼다.

방미 기간 중에 3명의 전현직 총통들(천수이볜, 마잉주, 차이잉원)에 대해 '국립대만대 법대 출신'이 대만 경제를 망쳤다며 모두까기식 행보[12] 를 보였다.[13] 공식 출마 선언만 안했을 뿐, 이미 대선 주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행보를 보이는 중.

국민당 지도부는 한궈위를 '초청' 형식으로 당내 총통후보 선출 경선에 참가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국민당의 현행 경선 방식으로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자신의 여론조사 우위를 앞세워, 자신에게 유리한 선출 방식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총통 당선될 경우 가오슝에서 집무하겠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그리고 선거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3개월이나 휴가를 내었다. 당선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시정은 뒷전이고 총통 선거에 전념하겠다니 가오슝 시민들은 분통이 터졌다. #


2.5. 제15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편집]


6월 1일 타이베이의 총통부 청사 앞에서 열린 집회를 통해 국민당의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참가할 것임을 공개 선언했다. 이날 집회에는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참가하였다.

6월 16일, 일국양제 수용을 공개 거부했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로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친중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3월 홍콩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비밀 회담한 사실이 재조명되며 '사상 검증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미국 정치매체 포린 폴리시가 한궈위의 당선에 중국 공산당의 인터넷 여론조작이 역할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악재가 터졌다. 포린 폴리시에 의하면 지방선거 당시 한궈위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인터넷상의 열성 지지자들이 실은 대륙 출신들이란 것이다. 실제 한궈위의 페이스북 팬카페는 대륙 출신임을 의심케하는 간체자를 사용했고 팬카페의 계정도 원래부터 있던게 아니라 한궈위가 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팬카페상의 네티즌 지지자들은 집권당인 민진당 후보를 공격하고 사실과 다른 일을 유포했으며 한궈위를 비판하는 사람에겐 엄청난숫자의 댓글을 다는 공격도 벌였다는 것이다. 포린 폴리시가 한궈위의 페이스북 팬카페의 관리자 6명중 3명의 신상을 구인구직 포털 링크드인에서 찾아냈는데 이들은 자신을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텐센트에서 근무한다고 소개한걸 발견해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선거가 끝난후 페이스북 팬카페 관리활동을 중단하고 전혀 상관없는 다른 한궈위의 팬들에게 계정을 양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페이스북상의 한궈위 지지그룹들이 대부분 간체자를 쓰고 그들이 게시한 경력이 모두 비슷비슷해서 중국공산당의 사이버부대가 만든 가짜 계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포린 폴리시는 보도했다.

7월 15일, 당내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에서 4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로 국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궈타이밍, 커원저가 불출마하면서 차이잉원과 양자 대결을 하게 되었다.

중국 국민당 지도부에 대해, 원래 가오슝 시장으로 일하고 대선 출마 의사가 없던 본인을 대선으로 불러냈으면, 당에서 지원을 똑바로 하라고 역공을 가했다. 이는 냉정하게 말해서 당내 단합이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2년 마잉주 재선 직후부터 국민당 내부는 롄잔 파와 反롄잔 파로 갈려서 싸우고 있다. 한궈위는 당연히 반 롄잔파이고 주리룬신베이 시장은 롄잔파이다. 한궈위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우둔이 주석과 주리룬 신베이시장 측이 공공연히 후보 교체론을 흘리면서 당 내에서 한궈위를 흔들었다.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는 것들도 반응이 신통치 못하다. 대만 전국의 높은 산봉우리에 청천백일기 국기를 세우겠다고 했다가 취소하고, 수십만점이나 되는 국립고궁박물원의 유물들을 한곳에 동시 전시하겠다고 한다든지...[14] 총통 후보로서 어울리는 진지함을 보여주지 못한채, 기행과 실언의 주인공으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11월 11일 장산정 전 행정원장을 부총통 후보로 영입하여 러닝메이트로 결정했다. 기사

첫 외신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포기를 선언하지 않는 한, 중국과의 평화협정에 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친중 이미지를 떨치려는 노력이라는 평가.

각 당의 부총통 후보가 모두 정해진 11월 말의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과의 여론조사 격차가 15%~20%로 크게 벌어졌다. 이는 홍콩 사태의 장기화와 대만 경제 지표의 호조[15]가 차이잉원 총통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1월 말 호주로 망명한 중국인이 자신을 전직 정보공작원이라고 밝히면서, 중국이 지난해 국민당이 승리한 대만 지방선거에서 한궈위 시장측에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개입을 했다고 주장해 더욱 곤경에 처했다.[16] ## 당연히 한 시장과 국민당은 극구 부인하고 있으며, 특히 한 시장 본인은 "중국으로부터 돈을 한푼이라도 받은 게 드러나면 당장 후보에서 사퇴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선거를 불과 한달 앞둔 12월 4일의 여론조사에서는 차이잉원과의 격차가 무려 34.1%로 벌어졌다. # 차이잉원의 지지율은 50%가 넘는데, 한궈위의 지지율은 17.9% (...) 다만 중도좌파 성향의 녹색당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이므로, 신뢰성은 각자 판단해야될 문제. 게다가 한궈위가 해당 발표 직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에 거짓으로 응답해라"라고 공개 주문한 일이 있어서 민진당과 지지자들은 이번의 지지율 격차 증가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12월 21일 취임 1주년을 앞두로 친한궈위 행진과 반한궈위 행진이 동시에 가오슝에서 열렸고 메이리다오역에서 두 진영이 충돌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다행히 충돌은 없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이, 한궈위는 친한궈위 행진은 버스를 대절해서라도 가오슝 시민 이외의 국민들이 참여하도록 했으나, 반한궈위 행진은 가오슝 시민 이외의 국민들의 참여를 제한하여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둔 1월 9일 저녁, 100만 지지자 동원령을 내려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었다. 마잉주 전 총통을 비롯한 국민당 전현직 지도부도 참석해 당의 단합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리고 1월 10일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가오슝에서 선거 유세를 끝마쳤다.

선거 당일 딸과 함께 투표를 했으며, 취재진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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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들 앞에서 패배를 공식 인정하는 한궈위 시장.

결국 38.6%의 득표율에 그치면서 57.1%를 득표한 차이잉원에 패하여 낙선했다. 불과 1년여 전 민진당의 아성에서 승리하며 대만 정계의 돌풍을 일으켰지만, 대선에서 떨어지고 가오슝 시 내에서마저 지지율이 하락하면서,[17][18]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2.6. 총통 선거 이후[편집]


선거 패배를 인정한 직후 예정되어 있었던 기자회견을 취소하고[19] 가족들, 측근들과 함께 평소에도 종종 방문하던 가오슝의 한 식당에서 훠궈를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던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식당에 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낙선 이후 첫 식사이지만 그래도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20]

낙선 직후 첫 월요일인 1월 13일부터 가오슝 시장의 업무에 복귀했다. 복귀에 앞서 시청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20분간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동안 시장 업무를 소홀히 한 것은 가오슝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며, 선거도 끝났으니 이제 다시 가오슝을 위해 열심히 일 하겠다고 말했고, 또한 이틀 전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하고 식당에 간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한 기자가 선거 이후의 양안관계 전망에 대한 견해를 묻자, 더 이상 자신이 나설 사안이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1월 14일 가오슝 시 행사에서 인사를 하며 국민당 주석직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7. 가오슝 시장 파면[편집]


2020년 1월부터 진행된 주민소환 서명에서 1%를 초과하였고 4월 7일. 시 선거 관리위원회는 주민소환 청원의 두 번째 단계에서 수집된 약 406,000개의 서명 중 377,662건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여 선거인의 10%의 기준을 넘어섬에 따라 2020년 6월 6일 주민소환 투표 실시가 확정되었다.# 이는 중화민국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최초의 주민소환이다.

한궈위는 법원에 주민소환 절차를 중단해달라는 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어 그대로 진행된다.#
5월 15일 자신의 SNS를 통해 6월 6일 선거에 대해 아예 투표에 불참하거나 반대표를 던져 줄것을 요청하면서 시장 업무에 소홀히 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4월 29일 가오슝 시내에 설치된 주민소환 플래카드 광고를 철거하였다. # 4월 30일에도 # 그리고 5월 3일에도 # 새벽 불시에 철거하여 가오슝 시민들의 분통을 터뜨렸고 소환각을 좁혔다.

투표 전날인 6월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것이 어쩌면 가오슝 시장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의 시장직을 돌아보며 자신을 지지해준 가오슝 시민들과 시청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

선거 당일 가오슝 시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고, 호우 특보까지 발령 되어서 투표율에 중대한 변수가 되었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시간 17시 12분, 파면 동의표가 60만 표를 돌파하면서 소환이 확정되었다. 17시 25분 시청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나와 2018년 시장선거 당시 자신을 지지해준 89만명의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투표 결과를 수용하고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가오슝 시정을 잘했는데 민진당이 반한궈위 국가 팀을 만들어 대중 매체를 매수하고 루머를 퍼뜨려서 파면으로 몰고 갔다. 나를 파면할 힘으로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힘써라."라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투표하러 나오지 않은 130만 가오슝 시민들에게 감사하고 그래서 선거는 정의롭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궈위 가오슝 시장에 대한 주민 소환 투표

선거인수
%
% 퍼센트
선거인수
2,299,981
100.00
기준
574,996
25.00
주민소환 찬성
939,090
97.40%
40.83%
주민소환 반대
25,051
2.60%
1.09%
유효표
964,141
99.47%
41.92%
무효표
5,118
0.53%
0.23%
투표수
969,259
100%
42.14%

한궈위가 당선될 때에는 89만여 표로 당선됐는데, 주민소환으로 파면당할 때는 약 94만 표가 한궈위 소환에 찬성표를 던졌다. 지역별로도 국민당 지지세가 강한 동북부를 제외하고 투표율은 25% 이상이며 찬성이 압도적이다. 민진당의 아성임을 감안하더라도 압도적인 결과인데, 기본적으로 근태상황조차 좋지 않았던 것이 파면까지 이르게 된 주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날 저녁 한궈위의 측근인 국민당의 쉬쿤위안(許崑源) 가오슝 시의회 의장이[22] 주민소환 결과에 충격을 받아 17층 아파트의 자택에서 투신자살했다. 기사 향년 63세. 투신하기 불과 5분 전인 현지시간 20시 40분에 한궈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누가 승자인가. 민진당이 파면에는 이겼지만 가오슝은 이겼는가."라고 승복하지 않는 내용의 게시물을 공유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자살 직전에 올린 게시물 그가 투신한 현장에는 지지자들의 꽃다발이 놓였으며, 한궈위 역시 그날 밤 현장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로써 가오슝은 불과 하루 만에 시장과 시의회 의장 자리가 모두 공석이 되었다.

파면의 후폭풍은 시의회 질의 때 맞붙었던 시대역량의 '백안 여신' 황지에 시의원[23]에게도 옮겨붙었는데, 쉬쿤위안의 장례식에 갔다가 한궈위 지지자들에게 욕을 들었는지 눈물을 보이고 나왔고, 지역구 펑산구(鳳山區)에서 주민소환을 당하기도 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한궈위 지지자들이 이런 식으로 한궈위를 파면하도록 선동한 시의원들이나 입법위원들을 하나씩 소환할 계획이라고 하는 것이다.[24] 이러다간 가오슝 시의회 의원들 전부 소환당하게 생겼다. 그러나 최초 주민소환 타겟이었던 황지에 의원의 파면 투표에서 비동의가 약 6만 5천으로 동의보다 1만표 정도 많이 나오면서 범녹 계열 시의원들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대만의 시사평론가인 자오샤오캉보복성 파면 등 초강수를 두어서라도 민진당을 선출직 공무원 파면 관련 법안 수정을 위한 협상 테이블로 불러 내야한다는 등의 다소 거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투표 유효 기준이 투표율 25% 이상은 너무 낮다거나 주민소환이 정치적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등 여러 비판들이 나왔다. 그러나 선거인 기준 40%가 넘게 참여해서, 이래나 저래나 할말이 없기는 하다.

한편, 8월 15일 치러진 가오슝 시장 보궐선거에는 여성 3선 시의원인 리메이전(李眉蓁, 1979~ )이 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진당의 천치마이 후보가 67만표, 70%가 조금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획득하여 시장으로 당선이 되면서 의외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25]

2020 대선에서 한궈위의 정치적 능력이 드러났고, 자신을 뽑아준 가오슝 시민들에 의해서 주민소환을 당했기 때문에 사실상 정치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다[26]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궈위 본인은 시장직 사퇴 기자회견장에서, 주민소환 투표 이후에도 가오슝에서 계속 지내겠다고 말했다. 한궈위는 중국 국민당의 비주류 인사인 만큼, 어차피 타이베이 일대로 돌아가도 당장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처가인 윈린으로 간다는 설이 나왔을 정도로, 한궈위는 갈 곳이 없다. 한궈위는 국민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가오슝으로 내려올 때 타이베이시에 있던 본인 집을 팔아 버렸다고 한다. 한궈위 본인은 가오슝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며, 시장직 사퇴 이후에도 가오슝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북부로 간다 한들 타이베이 시장인 커원저대만민중당 소속[27]이고[28], 신베이 시장인 허우유이주리룬을 따라 국민당 주류 계파롄잔파이다. 제15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에서 롄잔파는 한궈위보고 대선 출마하라며 등을 떠밀어 놓고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국민당 지지율이 떨어지자 한궈위를 내다 버렸고 한궈위는 비주류라서 이런다며 국민당 지도부에 대한 실망감도 대놓고 표출한 바 있다.

때문에 아예 국민당 탈당설도 돌았고, 한궈위가 국민당을 탈당할 경우 대만민중당에 '개별적'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됴 있었다.

2.8. 2021년[편집]


가오슝시에 계속 거주하고 있으며, 다른데로 이사가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전면 부인하며 죽어도 가오슝에서 죽을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번갈아 하는 중이다. 페이스북 링크 이를 통해 그의 강력 지지층인 韓粉의 위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것을 입증해주었으며, 최근 국민당의 온라인 상의 정치적 영향력이 민진당을 넘어 대만 전체 정당 중 1위를 기록하는 데에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 국민당 내부에서는 이런 현상에 동조하면서도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지지세력들도 계속 결집을 모색하여 한궈위 반대 진영 정치인들의 파면을 재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1월에는 주민소환 투표에서 92.23%의 압도적 찬성률로 민주진보당 소속 타오위안 시의원인 왕하오위(王浩宇)[29]의 파면을 이끌어 냈다. 지난해 가오슝 시의원 파면투표에서 패배한 후 첫 파면 투표 성공이다. 이 기세를 몰아 한궈위를 주민소환 시키는 데 앞장선 입법위원(국회의원)인 대만기진 천보웨이의 파면을 추진하였다. 한궈위의 지지자들의 주도하에 타이중 제2선거구[30] 주민소환 투표를 성사시켰으며, 2021년 10월 24일 투표율 51.7%, 찬성률 51.5%로 천보웨이를 파면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한궈위 지지자들은 다음 차례는 천치마이라며 선전포고를 날렸다. 아직까지 범록진영의 텃밭에서 시의원 또는 입법위원의 파면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천치마이의 시정에 대한 평가가 썩 좋지 않기에 다음 타겟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정가에서는 범록 성향의 입법위원 프레디 림(林昶佐, 무소속, 타이베이시 제5선거구[31])[32]도 보복성 주민소환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2021년 12월 18일 열린 국민투표에서도 주리룬 대표와 함께 4개 안건 전부 찬성[33]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사실상 차이잉원 2기 정부에 대한 중간 심판으로 분위기를 몰고 갔으나 오히려 4건 모두 반대 다수로 부결되면서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


2.9. 2022년[편집]


1월 9일에 열린 타이중시 제2선거구 보궐선거[34]타이베이시 제5선거구 프레디 림 의원 주민소환투표에서 각각 민주진보당 린징이(林靜儀) 후보 당선, 프레디 림의 의원직 유지가 확정되어 다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한궈위 입장에서 프레디 림 주민소환 투표는 아쉬운 것이, 찬성표 자체는 반대표보다 많이 나왔지만, 투표율 부족으로 인한 정족수 미달으로 파면이 불발되었다.[35] 전체 유권자 수의 25%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프레디 림에 대한 찬성률은 55.93%가 나왔지만 투표율이 41%에 그치면서 전체 유권자 수의 23.3%만이 찬성한 것으로 나왔다.

2022년 5월 현직 가오슝 시장인 천치마이의 가오슝 지역도 확진자가 확산 되었고 가오슝 전체 시민 선제검사 및 PCR 검사 준비가 되지 않거나 확진자 관리 미흡하는 부분등의 확진 상황을 들어 지지율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순간적으로 하락했던 천치마이의 지지율이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회복되고 가오슝에서 민진당의 압승이 예견됨에 따라 그런 전망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2.10. 2023년[편집]


가오슝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연 활동하면서 소통하고 있다. 다만 현재 거주지는 가오슝시가 아니라 윈린현 더우난진에 있다.

2023년 10월, 차기 정부총통 선거를 앞두고 국민당 주리룬 주석이 한궈위에게 국민당 부주석직을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후 한궈위가 직접 여러차례 허우유이 후보의 유세에 참가하기도 했다.

2023년 11월 18일, 2024년 1월 열릴 제11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전국부분구(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되었다.#


2.11. 2024년: 입법원장 선출[편집]


1월 13일 치루어진 제11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중국국민당 비례 1번으로 당선되었다. 아울러 국민당이 원내 1당을 차지하고 민진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입법원장에 취임할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국민당 역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에 한궈위가 입법원장에 오르기 위해서는 민중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민중당 주석직을 맡고 있는 커원저 전 타이베이 시장은 이에 대해 현재 당 내에서 심도 있게 논의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 만장일치로 장치천 전 국민당 주석을 러닝메이트로 하여 입법원장 선거에 나서게 됐다. 상대는 현직 입법원장-부원장인 민진당의 유시쿤-차이치창 티켓.

2024년 2월 1일, 새 입법원 임기가 시작되어 대만에서 입법원장 투표가 실시되었는데 1차 투표에서 국민당 한궈위 54표, 민진당 유시쿤 51표, 민중당 왕싼싼 7표, 무효 1표[36]로 1위를 차지했고, 과반이 아닌 단순다수자 당선으로 치뤄지는 2차 투표에선 국민당 측이 대만민중당을 포섭하는데에 성공했는지 민중당 의원들이 전부 기권해 다수득표로 입법원장직에 선출되어 그는 총통선거 낙선 및 가오슝 시장직 파면 이후 4년만에 정치적으로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연이어 열린 입법원 부원장 선거에서도 민중당 입법위원들이 2차투표에서 전부 기권하는 형태로 국민당을 우회지원해 국민당 장치천 54표, 민진당 차이치창 51표로 국민당 측이 이겼다. 이로써 국민당은 대권을 쥐지는 못했지만, 라이칭더 총통 임기 4년동안 의회권력을 가지면서 라이칭더 총통과 민진당을 견제할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과거 민진당 소속으로 첫 재임한 천수이볜 전 총통 당시에도 국민당을 위수로 한 범람 진영이 입법원 과반을 차지했던 여소야대 정국 하여서 양 측이 강대강으로 충돌을 빚었던 전례가 있는데, 한궈위의 입법원장 당선으로 민중당이 민진당 편을 들어주지 않을거라는게 명확해진 상황이다. 이제 민진당 출신인 라이칭더 차기 총통은 임기 4년[37]동안 명백한 여소야대 입법원과 상대해야하는데, 서로 정치적 성향이 상반되는[38] 민진당 총통과 국민당 입법원장이 탄생하게 되었다. 과연 양당이 과거의 전철을 밟아 충돌을 빚게 될것인지, 아니면 서로 제3의 길을 찾게 될 것인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다만 입법원 부원장으로 지명한 러닝메이트인 장치천은 화독 성향에 중공에 비판적인 성향으로, 입법원장이 되기 위해 한궈위가 그간 가져온 신념을 많이 내려놓은 만큼 장치천이 민진당과 국민당간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2.11.1. 11계 입법원장 재임[편집]



3. 지지층[편집]


파일:20200523001796.jpg
총통선거를 3개월 앞둔 2019년 10월의 쌍십절 행사 당시 모여든 한궈위 지지자들의 모습.

2018년 지방선거 전후로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지지층이 형성되었다. 중국어로는 韓粉이라고 한다.[39]

극단주의 세력들처럼 민폐를 일으키기도 했다. 일례로 한궈위 국민 소환 서명을 받았을 때 서명을 하면 무료로 바나나 크레페를 주겠다는 가게에 쳐들어가서 나가 죽으라고 욕설을 퍼부은 한궈위 지지자가 있었다.#

극성 한궈위 지지층은 같은 국민당 정치인들 SNS에 가서 악플을 남기곤 한다. 일례로 우둔이 전 대표 페이스북에 "더 이상 우 대표라고 부르지 마라. 민의를 모르는 당을 어떻게 구하냐. 국민당은 쓸모 없는[40] 당"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궈위는 가짜 지지층이라고 선을 그었다. #

지지층 중에는 주로 북부지역 출신과 노년층이 많은 편이긴 하나 젊은층과 가오슝에서도 격렬 지지자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41] 나이나 출신지역만으로 이 사람의 지지여부를 판단할 수가 없다. 일단 지지층의 성향 자체가 강성이기 때문에 대만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다른 정치인은 몰라도 이 사람 얘기는 호기심에라도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한궈위 재임 시절 가오슝 사람에게 發大財(부자가 되어라, 한궈위 시장 선거 구호) 또한 욕설에 가까울 정도로 금기어였다.

한궈위가 대선에 낙선할 때나, 국민소환에서 파면되었을 때 당연히 멘붕하였고, 차이잉원을 파면하자[42], 심지어는 딸 한빙을 시장 선거에 출마시키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들은 국민당 당 대표 출마 등의 정계 복귀를 바라고 있다.

6월 8일 시대역량황지에 시의원을 비롯하여 한궈위를 파면하는데 동조한 시의원이나 입법위원을 하나씩 소환할 계획이라고 한다. 황지에의 경우는 펑산구(鳳山區) 지역구 주민 1단계 연대 서명이 끝나고 2단계 연대 서명에 들어갔다. 언론 보도나 인터넷에서의 기세와 달리 파면 동의가 20프로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그 동력이 많이 꺾였다. 결국 2021년 2월 6일 황지에 시의원의 주민소환이 부결되었다. # 그러나 2021년 천보웨이 대만기진 국회의원을 날리는 데 성공했다.

6월 13일 한궈위의 지지자들은 총통부 청사 앞에서 쉬쿤위안을 추모하고 차이잉원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한궈위가 총통 후보 시절 대규모 유세를 하던 시절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물론 2020년 총통선거에서 한궈위를 지지한 552만 명 중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한궈위 팬클럽 내에서도 상식적인 사람들이 꽤 많이 있지만, 강성 지지층들이 민폐를 많이 일으키는 바람에 오히려 그들이 지지하는 한궈위의 인기를 떨어트린 여러가지 원인(홍콩 사태, 친중 행보, 여러가지 구설, 시장직을 소홀히 하고 총통 선거에 나간 것 등) 중 하나가 되었다.


4. 논란[편집]


2019년 2월 28일 2.28 사건 기념식에서 2.28을 "오늘은 제73주년 8.23[43] 기념일"이라고 말실수를 했다.#[44] 나중에 이에 대해 "나는 끝까지 2.28이라고 했다"라고 잡아뗐다.

2019년 3월 22일 홍콩 방문 시 "제가 알기로 행복지수 1위인 나라는 알프스 산맥 옆에 있는 부탄인데, 그 나라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하고 멍청하다"라는 망언을 했다.#

2019년 3월 26일 국무원 대만 판공실에서 일국양제를 인정하고 왔다는 논란에 한궈위는 중국 관료들을 다 내보내고 기자들 앞에서 "자신은 쑨원 선생님의 신도이고 국부께서 1912년 만주 청나라를 뒤엎고 중화민국을 세웠다"라고 허세를 부리다가 삼민주의를 민족, 민권, 민주(민생이 맞다)라고 말실수를 했다.#

2019년 6월 12일 어느 인터뷰에서 "홍콩과 마카오는 일국양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현재 중화민국 지구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실수를 했다. # 친중파 성향에 대한 의심을 받자 이에 대해 순전히 말실수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2019년 7월 9일 "내가 22살 때인 1979년에 민진당 의원에게 투표했다."라고 민진당 지지층을 끌어안는 듯한 발언을 했으나 민진당 설립 연도는 1986년이고, 1979년에는 장제스 사후이지만 서슬 퍼런 메이리다오 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독재가 활개치던 시대였다. 근데 1979년에는 증원선거가 없었고 지금의 지방공직인원 선거에 해당하는 현장 선거도 없었는데 어느 선거에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도 의문.

2019년 9월 6일 일본인 학자 마쓰다 야스히로(松田康博)와 쓰웨이 청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장소를 바꿔놓고, 평소 늑장 출근으로 비판을 받던 한궈위가 "오늘은 안 늦었다. 내가 일본 사람을 25분 기다렸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

2019년 9월 16일 선거운동 중 다과회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집에서 밥 먹는데 난초가 필요하냐"라는 망언을 했다.#

2019년 10월 28일 장화시의 유세 현장에서 "차이잉원 총통을 비롯해서 민진당 사람들은 하얗고 뚱뚱한 사람들만 있다. 나 같은 국민당 사람들은 구릿빛에 마른 사람들만 있다"라고 망언을 했다. # 그 전 지방선거에서도 가오슝은 늙고 병들고 가난한 도시라는 망언을 해서 어그로를 끌었다.

총통 선거 기간에도 "고궁박물원의 모든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겠다."# "3000m 이상의 산에는 국기 게양대를 설치하겠다.[45]"#라는 지방선거 시절 공약 남발을 또 시전하였다. 그리고 나서 어제 안 된다고 했다고 발뺌했다. #

2019년 10월 29일 계속 떨어지는 지지율에 "차에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있다."라는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연상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아서 그냥 어그로인 것으로 보인다. 가오슝시의회의 이에 대한 질의에 가오슝시청 막료들은 "있음과 없음 사이"라는 애매한 답을 하여 한궈위 편을 들었다. #

2019년 11월 1일 타이베이 대공습을 모르는 한궈위가 2차 대전 때 타이베이는 미국에 폭격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

2019년 11월 11일 민진당에 차이잉원라이칭더 러닝메이트가 정해지자 "금병매반금련무대가 한 이불을 덮은 것 같다"라고 망언을 했다. # 이에 대해 한궈위는 그 말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

2019년 12월 29일 열린 TV 토론회에서 뜬금없이 같은 당의 마잉주 전 총통을 나약하다며 디스했다. 이에 열받은 마 전 총통 측은 즉각 반박문을 배포하며 # 자신은 나약하지 않다고 했다.

총통 선거를 6일 앞둔 2020년 1월 5일 신베이시 연설에서 뜬금없이 "중학교 때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 다리가 하얗고 예뻐서 매일 다리를 보느라 성적이 떨어졌다"라고 성희롱을 했다. #


5. 기타[편집]


  • '다니엘 한'(Daniel Han)이라는 영어식 이름도 쓴다. 그가 시장 취임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집무실 사진의 명패에도 쓰인 것이 확인되었다. [46]

파일:hancartoon.jpg
파일:hanliquor.jpg
한석원
  • 자신의 대머리를 부각시킨 캐릭터를 제작해서 선거에 활용했다. 이를 활용한 고량주 광고도 제작되었다.

  • 2018년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 도중에 자기 이름에 한국(韓國)이 들어가는 것을 두고 질문이 나오자 "한국에서 가오슝으로 관광객을 늘릴 방법을 찾을 것.[47] 한국은 매우 중요한 대만의 파트너 국가이다."라 말했다. 시장 취임 이후 염태영 수원시장과 만나 우호협력을 체결하였다.#

  • 아내 리자펀 (李佳芬)도 정치인인데, 윈린현 지방의원으로 2004년부터 3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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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궈위의 1남 2녀중 장녀인 한빙(韓冰, 사진 가운데)은 올해 25세로, 캐나다에서 유학하고 있다가 아버지의 선거유세를 적극적으로 도운 덕분에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딸이 현지에서 청순한 외모로 인기가 상당히 많다. 아버지의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 휴학까지 하고 한궈위가 "(네가 이렇게까지 도와줬는데도) 내가 낙선하면 나 싫어하게 되겠네?"고 물었는데 "그래도 아빠를 계속 응원하겠다"고 답변하는 등 이런 가정적인 면모 역시 시너지 효과를 내서 아버지의 인기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아버지의 당선 이후 한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총통 선거 전날 마지막 가오슝 유세에서 꽃다발을 들고 나와서 아버지께 드리고 지지자들 앞에서 한궈위 지지 연설을 했다.
  • 이름인 한궈위는 단어 '한국어'의 중문 발음이기도 하다.[48] 그리고 마지막 글자인 유(瑜)는 쯔위의 이름 '위'에 쓰이는 바로 그 글자다. 2년전 대선에서 쯔위 사건이 선거를 민진당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었다는 걸 생각하면 미묘한 우연의 일치. 게다가 한궈위는 이름에 '한국'이 들어가고, 쯔위는 한국에서 아이돌 활동을 한다.[49] 한궈위는 정치인이고 쯔위는 본의와 무관하게 정치에 말려들었다는 점이 다르지만.


  •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정치인이다. 특히 중국 국민당에게 불모지나 다름없던 가오슝에 스스로 내려가서 중앙당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개인기로 가오슝 시장에 당선되고 차기 대선주자 1위까지 등극하니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던 국민당[50]에서는 한궈위를 초청 형식으로 경선에 참여시켜 끌고와 대선후보로 차출했다. 그런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각종 실언 등의 여파로 한궈위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정작 한궈위를 데려온 국민당 주류는 한궈위를 모른척 해버렸고, 나중에 주민소환투표 때도 별다른 지원사격을 하지 않아 한궈위가 파면되도록 내버려뒀다. 한궈위가 이렇게까지 몰락한 데에는 본인의 망언 등 자업자득도 있지만 어찌보면 국민당 주류의 감탄고토토사구팽당한 셈.

  • 범록연맹 지지자들로부터는 친중(친중공)의 대부 격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한궈위를 지지하는 보수 세력은 범람연맹 전체적으로 보면 친중 색채가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 부정론 : 한궈위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터지자마자 일국양제 거부 선언을 강하게 했으며, 중국 공산당 측이 대만에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면 양안간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TV 토론회에서 차이잉원 총통이 가오슝 시장 재직시절 중국의 대만판공실[51]을 찾은 걸 문제삼자 민진당셰창팅도 가오슝 시장 재직 시절 대만판공실을 찾지 않았냐고 차이 총통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 긍정론 : 중공의 첩자였다고 주장하는 왕리창은 중공 정부가 한궈위에게 34억원의 선거자금을 댔다고 주장했다. 범록 측에서는 한궈위가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하고 일국양제 거부 선언을 한 것은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반론한다. 실제로 중국 관영언론들과 CTi[52]는 다른 국민당 정치인과 비교해도 한궈위를 아주 찬양하듯이 띄워주기도 했다.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0
제12대 지방의회 선거
타이베이현의회 2구


10,173 (8.02%)
당선 (7위)
초선
1992
제2대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현
81,885 (5.89%)
당선 (3위)
초선
1995
제3대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현
59,109 (4.18%)
당선 (5위)
재선
1998
제4대 입법위원선거
타이베이 3구
46,650 (9.93%)
당선 (3위)
3선
2018
지방공직인원 선거
가오슝시
892,545 (53.86%)
당선 (1위)
초선[53]
2020
제15대 정부총통 선거
중화민국 자유지구
5,522,119 (38.61%)
낙선 (2위)

2024
제11대 입법위원 선거
비례대표
4,764,293 (34.58%)
당선 (1번)
4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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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韓이 성씨고, 國가 형제들의 돌림자라 본명이 이렇다. 그래서 대만 방송에서 한궈위 때문에 한국을 뜻하는 중국어 발음 한궈가 이전보다 자주 들리다 보니, 이를 알아듣는 한국인들은 꽤 묘한 기분이라고 한다.[2] 대만에서 입법원장은 총통과 행정원장에 이은 의전서열 대우를 받는다.[3] 한궈위의 인기가 정점에 달했던 5월에 나온 방송인데, 공교롭게도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 이후로 인기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다.[4] 동아시아 대학원. 대만의 대학교들은 한국의 대학원에 해당하는 고등교육기관에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고(그래서 대학원생을 연구생研究生이라 부른다), 진짜 연구기관에는 '연구중심'(한국식으로 연구'센터')이라는 명칭을 붙인다.[5] 본래 1/3 투표였으나, 당시 리덩후이 총통의 지휘하에 국민당이 날치기로 선거파면법을 개정해서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지금의 1/4 투표가 되었다. 대만은 국민소환과 주민소환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그 기준도 같다.[6] 대만어로 '베차랑', 야채 장수라는 뜻이다.[7] 당시 당선자는 우둔이이다.[8] 사실 가오슝 첩운 계획이 삼천포로 빠진 제일 큰 이유는 가오슝 첩운 순환선 2차구간 이후가 노면전차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해당항목 참조.[9] 정치에서 Flow라는 단어의 번역에 대해 일본 쪽 용어를 받아들인 한국과 독자적인 번역한 중화권의 용어 차이로 일본과 한국은 Flow를 정치권 이슈에서 風(바람)으로 표현했고, 중화권에서는 Flow를 派(파도)로 번역했다. 파도의 흐름이라는 뜻에서 대만에서 한류가 된 것.[10] 애초에 대독파가 아닌 이상 양안통일파는 당연한거고 화독파도 명시적으로는 92공식을 인정할수밖에 없다.[11] 가오슝시장 출마 이전에 타이베이 농산물 도매공사의 총경리로 일했던 것을 빗댄 표현이다.[12] 그런데 이 발언의 여파 때문인지 마잉주 전 총통은 한궈위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홍콩 민주화 운동 여파로 인기가 떨어지는 등 각종 악재가 겹쳤음에도 나몰라라 했고, 총통선거 이틀 뒤에야 유세장에 얼굴을 비쳤다.[13] 1996년 직접선거 도입 후 대만의 역대 총통들은 모두 최고 명문대학인 국립대만대 출신이고, 특히 2000년 이래 당선된 3명은 국립대만대 법대 동문들이다. 한 시장의 발언은 이들을 기득권층으로 몰면서 자신이 일반 대중들과 더 친숙한 인물임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14] 해당 공약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자, 유물들을 촬영 및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변경했다. 하지만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이고, 디지털화 작업도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어서 급조된 공약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15] 2019년 3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측치 2.4%(전년동기대비)보다 높은 2.9%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반사이익을 대만이 일부 받은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 있던 금융회사들은 싱가포르로 투자했지만 홍콩에 있던 IT 기업들이 대만에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16] 해당 인물은 당시 대만에서 공작을 펼치기 위한 신분 위장 목적으로 한국 여권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한 시장 이름에 '한국'이 있어서?[17] 가오슝에서 61만여 표(35%)를 얻으면서 2년 전 시장 선거 때 얻었던 89만여 표(53%)의 3분의 2 정도밖에 얻지 못했다. 입법위원 선거에서 가오슝 지역을 민진당이 석권한 것도 앞으로의 시장 업무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18] 그동안 가오슝이 타이난과 함께 민진당의 아성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만큼 1년여 전 국민당 후보인 한궈위가 당선된 것이 더 이례적이었던 것.[19] 선거 후의 기자회견은 보통 당선된 측에서 하지, 낙선된 측에서는 패배 인정 발표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차이잉원은 2012년 낙선 당시 대선 패배 인정 연설에 앞서 민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20] 그동안의 여론조사도 그렇고, 패배는 그 전부터 직감했을 것이다.[21] 원래 선거 당일 날씨가 좋지 않으면 투표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일례로 18대 총선 당시에도 비로 인해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2021년에 열린 과천시김종천의 주민소환 투표에서도 비로 인한 투표율 미달로 개표하지 못했다.[22] 대만 북부 출신인 한궈위와 달리 이 사람은 가오슝 출신이며, 2010년부터 시의원을 하면서 천쥐 시장을 맹렬히 공격하고, 한궈위 시장 때에는 국민당 이외의 시의원들의 질의 시간을 줄여버리는 등, 한궈위의 호위 무사로 활약했다. 이 사람은 본래는 민진당 소속이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국민당으로 당적을 변경했다.[23] 1993년생으로 초선 시의원이다.[24] 가오슝 이외의 한궈위 지지자들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한궈위 파면을 이끈 입법위원들을 소환할 계획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타이중의 한궈위 지지자들은 대만기진의 천보웨이(陳柏惟) 입법위원을 소환환다는 식인데 2021년 10월 결국 파면됐다.[25] 불과 2년 전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천치마이 후보는 이번 재보궐 선거보다 많은 74만여 표를 얻고도 44%에 그치며 한궈위에 졌는데, 이번에는 67만여 표를 얻었는데도 7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26] 선출직 공무원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서 권력을 위임받고 집행하기 때문이다. 주민소환은 선출직 공무원의 권력을 직접 회수한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당신은 정치가로서 소질이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증한 것이다. 주민소환과정에서 불법적인 요소가 없는 한, 다른 곳에서 정치인생을 이어가고자 하더라도 '주민소환 당한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는 항상 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어디서도 정치인생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국민들이 공식적으로 파면에 찬성한 정치가를 당의 대표로 선임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된다.[27] 한궈위는 커원저 시장 밑에서 타이베이시농수산유통공사의 사장을 지냈다.(2015년 ~ 2017년)[28] 중화민국의 지방단체장은 3선이 금지되어 있어서 2022년에는 커원저 시장도 퇴임했다.[29] 2020년 1월 11일까지는 녹색당 소속이었다.[30] 지역구가 타이중이지만 고향은 가오슝이며 가오슝 주민소환 투표 당시 천보웨이가 가오슝에 상주하며 한궈위 파면 여론을 이끌었다. 이 지역구는 기존 토호세력이 꽉 잡고 있던 지역을 정치 신인인 천보웨이가 승리한 곳인데 해당 지역구에 대한 서술은 제10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 항목에 아주 자세히 나와있다.[31] 중정구 대부분, 완화구 전역을 커버하는 선거구로, 총통부, 중정기념당을 관할하고 있는 선거구다.[32] 록밴드 Chthonic의 리더였다. 2016년 시대역량 소속으로 처음 당선되었으며 2020년에는 시대역량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 사람도 매우 강경한 대만 독립 성향 정치인이다.[33] 안건은 제4원전 재가동 동의안,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금지 동의안, 국민투표일 대선 연계 동의안, 타오위안 천연가스시설 건설 중지 및 이전 동의안이다. 민주진보당은 전부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34] 대만기진 천보웨이의 의원직 상실로 인해 열렸다.[35] 참고로 한국은 주민소환 투표에서 투표율이 미달되면 개표 자체가 안 된다. 반면 대만은 정족 표수를 미리 정해놓고, 개표할 때 표의 수가 정족수에 미달되면 안건이 폐기된다.[36] 민중당 측 표인데, 기표잉크가 투표지에 묻어 무효처리됨[37] 입법원에서 행정원장 불신임안이 가결되어 라이칭더입법원을 해산할 경우 바뀔 수 있다.[38] 국민당은 친중국, 민진당은 현상유지/탈중국이 다수파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라이칭더 총통은 강성 대만독립파이며, 한궈위 입법원장은 노골적으로 친중 행적을 보여온 바 서로 정치적 성향이 매우 대조적이다.[39] 파생되어서 차이잉원의 지지층을 英粉, 커원저의 지지층을 柯粉이라고 한다.[40] 원문을 살리면 "잡고 일어나지 못하는 유선(扶不起的阿斗)"이라는 뜻이다.[41] 한궈위의 폭발적인 인기는 가오슝 시장 선거 당시 대머리를 내세워 인기를 끈 것이 시초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오슝에도 한궈위 지지자들이 꽤 있는 편이다.[42] 국민소환제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대만에서는 입법의원은 물론 국가원수인 총통까지 소환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모든 선출직의 파면이 가능한 셈. 실제로도 천수이볜마잉주 전 총통 모두 야당에 의해 소환될 뻔 한 적이 있었다.[43] 1958년 중국과의 진먼 포격전을 기념하는 날이다.[44] 우리나라로 치면 5.186.25라고 말실수한 격이다.[45] 대만의 최고봉이자 가오슝에 위치한 위산에 국기 게양대를 설치하겠단 의미로 해석되며 위산의 해발고도는 3,952m로 아시아에서 21번째로 높다.[46] 대만 정치인들 가운데 영어 예명을 함께 쓰는 사례로는 쑹추위 친민당 주석의 '제임스 쑹', 주리룬 전 신베이시장의 '에릭 주', 라이칭더 총통의 '윌리엄 라이(William Lai)'가 있다. 사실 정치인들 뿐만 정규 학교교육을 받은 국민들 거의 대부분은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국(Kim, Lee 등)이나 일본 이름(Tanaka, Sato 등)에 비해, 중화권 이름은 서양인들에게 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학교에서 아예 영어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들이 많다. 미국 및 서구권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생긴 현상. 특이한 경우로는 로마자로 쓰긴 하지만 영어가 아닌 일본어식 이름을 쓰는 사람도 있다. 자기 이름의 일본어 음독인 Kiku를 쓰는 천쥐가 좋은 예.[47] 가오슝에도 나름 매력적인 관광 명소가 많기는 하지만, 타이베이와 근교 지역과의 거리 차이 때문인지(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 정도로 떨어져 있으니까) 한국인 관광 실적은 저조한 편이었다가 여행예능 촬영 및 일본 불매운동 및 홍콩 민주화 운동이 겹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가오슝 방문 한국인 숫자가 상당히 늘었다. 가장 쉬운 것은 가오슝 국제공항한국으로 이어지는 직항편을 늘리는 일인데 이걸 하려면 가오슝 공항 확장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가오슝 공항 확장은 천수이볜 때 추진됐으나 타이완 고속철도 개통 이후 대만 국내선 항공이 멸종하면서 취소되었는데, 한궈위는 가오슝 공항 확장도 가오슝시의 예산이 확보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공약했다.[48] 韓國語도 중문으로 한궈위라고 읽는다. 다만, 한국어의 語는 3성으로, 한궈위 당선자의 瑜는 2성으로 읽는다. 그런데 앞의 궈(국)의 성조가 2성이여서 실제 발음은 거의 차이가 없다.[49] 때문에 중국 사이트에서 둘의 이름을 동시에 검색해보면 그쪽 사정을 모르는 중국인들은 한궈위가 쯔위의 별명(한국+쯔위)인줄로 착각하기도 한다.[50] 당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의 인기가 없었긴 했지만 국민당의 주리룬이나 우둔이같은 기성 정치인들은 그 인기가 없던 차이 총통보다도 호감도가 떨어져서 한궈위를 차출하지 않았더라면 승산이 없었다.[51] 중국어로 사무실을 판공실이라고 한다.[52] 대만의 보수성향 주요 종합편성채널이였다. 친중공, 친범람 편향 보도로 악명 높았지만 2020년 말에 면허를 연장해주지 않아 폐지되었다. (#)[53] 2020년 6월 6일 주민소환투표 결과에 의해 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