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드 하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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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드 하다디의 수상 이력


파일:FIBA 아시아 컵 로고.svg
2007[1]
2009[2]
2013[3]
2015
2017[4]

2013 FIBA 아시아 챔피언십 베스트 5
제이슨 카스트로
PG / 파일:필리핀 국기.svg
김민구
SG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린 치 치에
SF / 파일:중화 타이베이 올림픽기.svg
오신 사하키안
PF / 파일:이란 국기.svg
하메드 하다디
C / 파일:이란 국기.svg

2017 FIBA 아시아컵 베스트 5
셰아 일리
PG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모함마드 잠시디
SG / 파일:이란 국기.svg
파디 엘 카티브
SF / 파일:레바논 국기.svg
오세근
PF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하메드 하다디
C / 파일:이란 국기.svg





페트로치미 반다르 이맘 No. 15
하메드 하다디
Hamed E. Haddadi
حامد حدادی[1]

출생
1985년 5월 19일 (38세)
국적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신장
218cm
체중
120kg
포지션
센터
NBA 드래프트
2004 NBA 드래프트 미지명
소속
샤힌 아바즈 (1999~2002)
페이칸 테헤란 (2002~2007)[2]
사바 배터리 테헤란(2007~2008)
멤피스 그리즐리스 (2008~2013)[3]
피닉스 선즈 (2013)
풀라드 마한 이스파한 (2013)
쓰촨 블루웨일스 (2013~2014)
마흐람 테헤란 (2014)
칭다오 더블스타 이글스 (2014~2015)
쓰촨 블루웨일스 (2015~2016)
페트로치미 반다르 이맘 (2016)
쓰촨 블루웨일스 (2016~2017)
페트로치미 반다르 이맘 (2017~ )

1. 개요
2. 커리어
3. 플레이 스타일
4. 수상 내역
6. 여담




1. 개요[편집]


이란농구 선수이자 前 NBA 선수. 포지션은 센터이며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 대표팀을 여러 차례 좌절시키면서 국내에도 유명해졌다.


2. 커리어[편집]


2004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으나 뽑히지 못했다. 이후 이란에서 계속 프로리그 생활을 이어나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조별예선에서 아르헨티나, 리투아니아 등 상위권의 팀을 상대로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NBA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다만 팀은 전패를 당해 탈락하면서 더이상의 경기는 치르지 못했다.

2008년, 드디어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부름을 받아 NBA에 입성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NBA에서는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는데, 느린 발로 인해서 주로 벤치 멤버로 뛰거나 D-리그에서 시즌을 보내거나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나마 커리어 하이 경기가 있다면 2008-2009 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 10득점, 8리바운드, 1블록을 기록하면서 역전승을 이끌어낸 경기 정도가 꼽힌다.

결국 피닉스 선즈를 마지막으로 2013년, NBA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중국 프로 농구로 눈을 돌렸는데 칭다오에서 뛸때는 평균 20.4득점, 13.9리바운드, 3.7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국가대표를 은퇴했었으나 이란의 상황이 말이 아니라 결국 다시 복귀했다. 그러나 이미 늙은 하다디는 이란의 추락을 막을수 없었고 복귀 이후 이란은 졸전만 거듭중이다. 결국 월드컵 마지막 경기 레바논전 패배 이후 다시 대표팀을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218cm의 장신으로, 매우 위력적인 골밑 장악력을 가지고 있다. 스피드는 느리지만 페인트존 공략 능력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파워가 매우 좋고, 포스트에서의 유연한 무브 덕에 득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여기에, 시야가 매우 좋아 팀의 외곽 슈터들을 잘 살려준다.

그렇지만 NBA에서 중용받지 못한 까닭은 기동성에 있다. 큰 체격과 파워는 NBA에서도 부족할 것이 없었지만 경기의 페이스가 무척 빠르고 수비자 3초룰이 있는 NBA에서 국제무대처럼 골밑을 사수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 과거와 같이 센터들의 포스트업 시도가 많던 시기도 지났기 때문에 하다디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포스트업도 NBA 기준에서는 그렇게 세련된 편이 아니였다. 90년대 후반~2000년도 초반 몸빵형 장신센터의 수요가 지금보다 높았던 시기에 뛰었으면 더 좋은 커리어를 보냈을지도 모르는, 시대를 잘못 만난 선수.


4. 수상 내역[편집]


수상 내역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7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베스트 5/대회 MVP
2009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베스트 5/대회 MVP
2011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베스트 5
2013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베스트 5/대회 MVP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5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3위/베스트 5
2017 FIBA 아시아컵 준우승/베스트 5/대회 MVP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은메달
올림픽 리바운드왕 (2008)
올림픽 블록왕 2회 (2008, 2020)


5.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천적[편집]


제대로 된 몸상태, 소위 '풀컨디션'의 하다디는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는 재앙에 가까웠다. 한때나마 아시아 No. 2 센터 소리를 듣던 하승진이 힘과 높이에서만큼은 밀리지 않았다.오히려 한수 위라고 봐야 하지만 활동량에서 너무 차이가 나서 박살이 나기 일쑤였다. 마찬가지로 대표팀 센터를 맡았던 김주성, 이종현, 이승준은 압도적인 높이와 파워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나마 버티는 힘이 좋은 이승현이 키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버티는 모습을 보여준 편이다.

한국이 홈의 이점을 지닌 데다가 하다디가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던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김종규, 제대로 경기를 뛸 몸상태가 아니었던 2017 아시아컵에서는 오세근 역시 각자의 방법으로 하다디를 공략했고 어느 정도 막아냈다.

나름 한국이 수차례 맞대결의 경험으로 터득한 하다디를 공략하는 방법은 1.빠른 공격을 통해 하다디의 느린 발을 공략하고 2.매치업하는 빅맨이 정확한 중장거리 슛으로 하다디를 밖으로 끌어내고 3.어떻게든 힘으로 버텨내는 것이다. 4.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길 기도한다[4]


6. 여담[편집]


  • 성격이 매우 다혈질이다. 심판에게 항의하거나, 상대팀 선수에게 시비를 거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2015 창사 아시아선수권에선 자신을 수비하던 최준용에게 시비를 걸다 U파울을 받기도.[5]

[1] 페르시아어.[2] 2003년에는 알 나스르, 2004년에는 사남 테헤란에서 뛰기도 했다.[3] 2008년에 D리그인 다코타 위저즈에 내려가기도 했고, 2011년에는 이란 리그의 Melli Haffari Ahvaz에서 뛰기도 했다.[4] 취소선은 쳐져 있지만 사실 이게 제일 중요(...)[5] 이 둘은 2017 아시아컵에서 재회한다. 경기 내내 외곽수비를 버리다시피 하던 하다디가 최준용이 3점을 시도하자, 갑자기 수비를 열심히 하다 3점 파울을 내주는 등 여전히 악감정이 남아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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